[기고] '사투리' 대신 '곳곳말' 새 단어 사용하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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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09 | 수정 2025-01-09 07:12 | 발행일 2025-01-09 제21면
곽흥렬 (수필가) |
전라도사투리경연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전라도 말, 얼마나 찰지고 정겨운가. 소식을 듣는 순간 당장 달려가 참견해보고픈 마음이 충동질한다. 한데 무슨 억하심정일까. '사투리'라는 말을 접하자 가라앉았던 알레르기가 또다시 도진다. 이것을 나만의 지나친 거부반응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좀 억울하다 싶다. 그 심경을 호소하기 위해 나는 논리의 응원군으로 '어감'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어감, 이는 말소리 또는 어투의 차이에 따른 독특한 느낌이라는 뜻을 지녔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왕이면 나쁜 어감의 표현보다는 좋은 어감의 표현이 귀를 즐겁게 해주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어감이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경우를 들자면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일 게다. 세상을 살다 보니 별별 이름을 만난다. 김치국, 현상범, 피칠갑은 그나마 덜 괴이한 이름에 속한다. 박아라니 임신중이니 방귀녀 등의 이름은 듣기조차 민망스럽다. 같은 인물도 이름이 고상하면 사람까지 돋보이지만 이름이 저속하면 사람마저 허접하게 느껴진다. 어디 사람뿐일까. 식물 이름도 마찬가지다. 며느리밑씻개, 젖나무, 자지쓴풀…….
이름만 아니다. 숫자 가운데도 어감이 나쁜 말이 적잖다. 이런 표현을 꺼려 다방이며 음식점에서 18번 테이블에 앉은 고객을 '십팔 번 손님' 하지 않고 '열여덟 번 손님'으로 부른다거나, 내비게이션을 켜면 10번 도로에 들어섰을 때 '십번 도로' 대신 '시번 도로'라는 안내음이 흘러나온다. 그 이유가 발음상 거북한 느낌 때문임은 누구든 알 만한 사실이다. '사투리' 또한 이런 유의 하나인가 한다. 물론 어감이 좋지 않아서다. 사투리의 '사'자가 죽을 '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겠지만, 자꾸 죽을 '사'자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한국인들은 대다수 '사'자를 꺼린다. 빌딩에서 4층은 영문자 F를 붙이거나 아니면 건너뛰고 5층으로 표기한다. 병원과 장례식장은 4호실이 없다. 군대도 4사단을 두지 않는다. 초현대 시설인 인천국제공항마저 4번과 44번 탑승구는 없다. 이런 사례들은 한민족에게 '사'자 기피심리가 얼마나 강한지 넉넉히 알 수 있는 대목 아닌가.
'사투리'에서 '사'자만 아니고 '투'자도 그렇다. '투'자가 들어간 낱말은 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녔다. 투정, 투기, 결투 등 명사는 물론 투덜대다, 투미하다, 투깔스럽다 같은 동사, 형용사도 어감이 나쁘긴 마찬가지다. 특히 접미사인 '-투성이'는 부정적 어감의 압권이다.
우리말 사전엔 '투'가 두 가지 뜻을 가졌다고 밝혀 놓았다. 곧 "어떤 일을 하는 방식이나 솜씨"와 "버릇으로 굳어진 일정한 방식의 틀"이다. 후자에서 '버릇' 역시 긍정적 어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버릇은 "여러 번 되풀이함으로써 저절로 익힌 굳어진 행동이나 성질"로 쓰이는데, 여기서 '성질' 또한 '성질내다' '성질머리' 등의 파생어를 낳는 것으로 보아 말맛이 나쁘긴 매일반이다. 아니 이것저것 다 떠나 '사투' 자체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결사 투쟁'의 줄임말 같아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사투리'가 지닌 부정적 어감은 절로 굳어진다.
작가는 문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문법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이론에 기대어 나는 작가로서 '사투리' 대신 '곳곳말'이란 새 단어를 만들어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 '곳곳말'의 논리적 근거는 이렇게 구해진다. 먼저 세상 모든 곳이란 뜻을 지닌 '방방곡곡'에서 출발, 이의 줄임말인 '곡곡'을 찾고, 그다음 '곡곡'의 고유어인 '곳곳'으로 바꾼다. 다시 '곳곳'에다 '말'을 합성한다. 이런 과정을 밟아 만든 신조어가 '곳곳말'이다. '사투리'가 낡고 부정적인 어감을 지녔다면 '곳곳말'은 신선하면서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앞으로는 '곳곳말'이 언중의 호응을 받아 널리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이 고유한 지방어를 사랑하는 방편이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곽흥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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