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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홍종학의 ‘절세’와 이재용의 ‘조세회피’를 구분 못하는 사회

홍종학의 ‘절세’와 이재용의 ‘조세회피’를 구분 못하는 사회
홍종학 후보를 공격하는 이유는 재벌을 보호하기 위해?
임병도 | 2017-11-01 09:30:1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듀프레인은 간수들의 세금 보고 등을 도와주면서 정상적인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유튜브 화면 캡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드 듀프레인(팀 로빈스 분)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옥 같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교도소 내에서 괴롭힘을 받던 듀프레인은 간수에게 세금을 줄여주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교도소장의 검은돈을 관리하는 비공식 회계사로 일하게 됩니다.
듀프레인은 탈옥하면서 교도소장이 부정부패로 모은 돈을 빼내고 비리 서류를 신문사로 보내 쇼생크 교도소의 부정부패를 심판하면서 유유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육체적 능력이 없는 듀프레인이 절세라는 기막힌 방법으로 간수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칩니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빼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요새 한창 논란이 되는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때문입니다.

‘국세청에 나온 절세 방법이 탈세로 공격받다니’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외할머니로부터 증여 받은 부동산을 놓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과 언론은 연일 탈세와 불법이라며 도덕성을 거론하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세금 안내서를 보면 재산을 분할해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알려주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건물을 딸과 손녀에게 지분 형태로 나눠 증여한 것을 쪼개기라고 공격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부동산 지분은 불법이나 탈세가 아닙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2017 세금절약 가이드’를 보면 ‘재산을 취득할 때는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말고 분산시켜라’며 절세 방법을 알려줍니다. 만약 이런 방식이 불법이라면 국세청이 알려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구재이 사단법인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은 페이스북에 홍종학 후보를 공격하는 야당과 언론의 모습이 ‘세법을 전혀 몰라 생긴 ‘무지의 소치’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구 학회장은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차용계약서를 통해 돈을 빌려 증여세를 납부한 것은 ‘세무행정에서 일부러라도 작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며 ‘증여세를 신고하고 납부하면 세무서에서 세금을 누구 돈으로 냈는지, 계약이자 등 진짜인지 가짜인지 반드시 확인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재이 학회장은 홍 후보자 논란에 대해 ‘쪼개기 변칙증여보다는 세법이 인정한 분할증여이고 고도의 절세비책이라기보다 납세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여진다.’라며 오히려 납세를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고 밝혔습니다.

‘홍종학의 절세와 이재용의 조세회피’
▲홍종학 후보자 딸이 받은 부동산 지분은 상식적인 유산 상속이지만, 이건희 삼성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현금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상속과 조세회피이다.

홍종학 후보자의 딸은 8억 6천만 원의 부동산 지분에 대해 2억 2천만 원의 증여세를 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금 61억 원에 대해 16억 원의 증여세를 납부했습니다.
홍 후보자의 딸은 돈이 없어서 임대료를 받으면 갚는 조건으로 엄마에게 돈을 빌려 증여세를 냈습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현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증여세를 납부했습니다.
홍 후보자의 딸이 받은 부동산 지분은 손녀를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물려준 ‘유산’입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돈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종잣돈이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가지고 ‘삼성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매해 550억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해 이 돈으로 ‘에버랜드’ 지분을 확보합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경영권을 승계받게 됩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증여받은 현금으로 모은 재산이 현재 8조 3100억 원입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 세계 억만장자 순위 중 199위입니다.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평범한 유산 상속과 ‘절세’였다면,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편법 승계를 목적으로 한 ‘조세회피’였습니다.

‘홍종학 후보를 공격하는 이유는 재벌을 보호하기 위해?’
홍종학 후보의 ‘절세’를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무조건 국민의 눈높이와 차이가 나는 ‘도덕성’이라며 공격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운운하는 자체가 의구심이 듭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재벌에 편중된 정부 지원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홍종학 후보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도 그가 했던 재벌 개혁 관련 발언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동안 홍 후보는 여러 차례 재벌 중심적인 정부 지원을 비판해왔습니다.
‘재계,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 소통, 고민해야’
‘저의 과제는 재벌 중복지원 찾아 없애는 일’
‘재벌에게 퍼주겠다는 자세, 국민 불쌍해졌다.’
‘연대보증, 청년 창업 의욕 떨어뜨리는 구시대 유물’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법 반대, 매국 행위’
‘아마존 혁신 본받자는 것, 어림없는 얘기’
홍종학 후보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된다면 재벌에 편중된 정부 지원은 줄어들고, 중소기업 지원은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당연히 재벌 입장에서는 홍 후보자가 장관이 되는 것이 불리합니다.
구재이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은 자유한국당과 언론이 홍 후보자를 공격하는 행태에 대해서 ‘증여와 차용과정에 대한 냉정한 검토 없이 마치 탈세와 탈법을 저지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국민 앞에서 분명하게 소명할 청문회를 앞두고 국민의 옳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진짜 ‘내로남불’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면서 홍종학 후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자신들이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하는 모습은 오히려 그 의도를 의심케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432 
홍종학 후보를 공격하는 이유는 재벌을 보호하기 위해?
임병도 | 2017-11-01 09:30:1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듀프레인은 간수들의 세금 보고 등을 도와주면서 정상적인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유튜브 화면 캡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드 듀프레인(팀 로빈스 분)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옥 같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교도소 내에서 괴롭힘을 받던 듀프레인은 간수에게 세금을 줄여주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교도소장의 검은돈을 관리하는 비공식 회계사로 일하게 됩니다.
듀프레인은 탈옥하면서 교도소장이 부정부패로 모은 돈을 빼내고 비리 서류를 신문사로 보내 쇼생크 교도소의 부정부패를 심판하면서 유유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육체적 능력이 없는 듀프레인이 절세라는 기막힌 방법으로 간수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칩니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빼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요새 한창 논란이 되는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때문입니다.

‘국세청에 나온 절세 방법이 탈세로 공격받다니’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외할머니로부터 증여 받은 부동산을 놓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과 언론은 연일 탈세와 불법이라며 도덕성을 거론하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세금 안내서를 보면 재산을 분할해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알려주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건물을 딸과 손녀에게 지분 형태로 나눠 증여한 것을 쪼개기라고 공격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부동산 지분은 불법이나 탈세가 아닙니다.
국세청이 발간한 ‘2017 세금절약 가이드’를 보면 ‘재산을 취득할 때는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말고 분산시켜라’며 절세 방법을 알려줍니다. 만약 이런 방식이 불법이라면 국세청이 알려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구재이 사단법인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은 페이스북에 홍종학 후보를 공격하는 야당과 언론의 모습이 ‘세법을 전혀 몰라 생긴 ‘무지의 소치’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구 학회장은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차용계약서를 통해 돈을 빌려 증여세를 납부한 것은 ‘세무행정에서 일부러라도 작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며 ‘증여세를 신고하고 납부하면 세무서에서 세금을 누구 돈으로 냈는지, 계약이자 등 진짜인지 가짜인지 반드시 확인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재이 학회장은 홍 후보자 논란에 대해 ‘쪼개기 변칙증여보다는 세법이 인정한 분할증여이고 고도의 절세비책이라기보다 납세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여진다.’라며 오히려 납세를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고 밝혔습니다.

‘홍종학의 절세와 이재용의 조세회피’
▲홍종학 후보자 딸이 받은 부동산 지분은 상식적인 유산 상속이지만, 이건희 삼성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현금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상속과 조세회피이다.

홍종학 후보자의 딸은 8억 6천만 원의 부동산 지분에 대해 2억 2천만 원의 증여세를 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금 61억 원에 대해 16억 원의 증여세를 납부했습니다.
홍 후보자의 딸은 돈이 없어서 임대료를 받으면 갚는 조건으로 엄마에게 돈을 빌려 증여세를 냈습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현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증여세를 납부했습니다.
홍 후보자의 딸이 받은 부동산 지분은 손녀를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물려준 ‘유산’입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돈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종잣돈이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가지고 ‘삼성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매매해 550억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해 이 돈으로 ‘에버랜드’ 지분을 확보합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경영권을 승계받게 됩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증여받은 현금으로 모은 재산이 현재 8조 3100억 원입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 세계 억만장자 순위 중 199위입니다.
홍종학 후보자의 딸이 평범한 유산 상속과 ‘절세’였다면,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편법 승계를 목적으로 한 ‘조세회피’였습니다.

‘홍종학 후보를 공격하는 이유는 재벌을 보호하기 위해?’
홍종학 후보의 ‘절세’를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무조건 국민의 눈높이와 차이가 나는 ‘도덕성’이라며 공격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운운하는 자체가 의구심이 듭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재벌에 편중된 정부 지원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홍종학 후보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도 그가 했던 재벌 개혁 관련 발언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동안 홍 후보는 여러 차례 재벌 중심적인 정부 지원을 비판해왔습니다.
‘재계,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 소통, 고민해야’
‘저의 과제는 재벌 중복지원 찾아 없애는 일’
‘재벌에게 퍼주겠다는 자세, 국민 불쌍해졌다.’
‘연대보증, 청년 창업 의욕 떨어뜨리는 구시대 유물’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법 반대, 매국 행위’
‘아마존 혁신 본받자는 것, 어림없는 얘기’
홍종학 후보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된다면 재벌에 편중된 정부 지원은 줄어들고, 중소기업 지원은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당연히 재벌 입장에서는 홍 후보자가 장관이 되는 것이 불리합니다.
구재이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은 자유한국당과 언론이 홍 후보자를 공격하는 행태에 대해서 ‘증여와 차용과정에 대한 냉정한 검토 없이 마치 탈세와 탈법을 저지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국민 앞에서 분명하게 소명할 청문회를 앞두고 국민의 옳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진짜 ‘내로남불’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면서 홍종학 후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자신들이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하는 모습은 오히려 그 의도를 의심케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432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해수면 상승 제주가 목포 5배, 지역별 대책 세워야

해수면 상승 제주가 목포 5배, 지역별 대책 세워야

육근형 2017. 10. 30
조회수 1381 추천수 0
해수면 상승은 연안 지반운동, 인근 해역 수심, 지형 따라 다 달라
기후변화 대응책은 해수면 상승폭 훨씬 큰 기존 재해대책 안에 포함돼야

j11.jpg» 지난해 11월 15일 지구와 달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는 '슈퍼문'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상승하자 제주시 한경면 용수~신창 해안도로에 바닷물이 넘치고 있다. 연합뉴스

“2100년, 해수면 상승 1m”,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변할까?
“2100년, 해수면 높이 1m가량 상승.” 2013년 어떤 환경전문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에서 제5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그해 가을에 발간했는데, 이를 국내에 소개한 기사였다. 

기후변화에 관한 우리에게 익숙한 기사이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 문제에 명망 있는 과학자 수십, 수백 명이 과학적인 검토 과정을 거쳐 미래 지구환경 변화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다. 지구온도 상승이든 해수면 상승이든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는지를 언급하고, 나아가 우리가 아는 여러 도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으로 마무리된다. 남태평양의 투발루가 금세기 안에 바닷물에 잠겨 국가 자체가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정말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에는 2100년까지 해수면이 1m 상승한다고 적혀 있을까? 맞다. 하지만 일부만 맞다. 그 예측치는 기후변화를 예측할 때 사용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최악의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에서도 희박한 확률(약 5% 발생확률)로 제시한 수치다. 아무런 조처 없이 지금의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시나리오인 RCP 8.5에서 해수면 상승은 평균 0.74m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5%의 발생확률로 함께 제시한 값이 0.52m에서 0.98m이다. 즉, 이 문제를 다룬 기사들은 발생 가능한 다른 세 개의 시나리오는 배제한 채, 최악 상황의 시나리오만을 소개한 것이며, 그 시나리오에서조차 매우 희박한 경우(5%의 발생확률)로 발생할 수 있는 98㎝ 해수면 상승을 기정사실화했다. 

비록 낮은 확률이어도 위험에 대비하고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부풀리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정책 역시 다른 정책처럼 제한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해 투입하는 과정이다.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야 한다. 

그1.jpg
해수면 상승에 대한 시나리오별 예측 결과 : 위 그림은 2081년부터 2100년까지의 평균치로 RCP8.5에서 해수면 상승 평균 예측값은 0.63m(0.45-0.82m)이며, 2100년 기준으로 인류가 온실가스 저감에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가정한 RCP 8.5에서도 예측한 해수면 상승값은 0.74m임. 자료: Church et al.(2013), p.1180(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 제1작업반 보고서 중) 

열대성 폭풍우는 해수면을 수 m 이상 끌어올려 

잠시 화제를 돌려 태평양 건너 미국의 상황을 보자. 지난여름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허리케인을 직격으로 맞았다. 허리케인 하비(Harvey) 이야기다. 하비는 과거 50년 동안 텍사스주에 상륙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이십만 가구 이상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70여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도 알려졌다.1) 피해액만 우리 돈으로 130조원(1200억 달러) 이상 200조원(18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된다. 이는 미국에 가장 큰 피해를 끼쳤다고 하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버금가는 피해규모이다.2)

그렇다면 미국의 허리케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매해 크고 작은 영향을 주는 열대성 폭풍우인 태풍으로 인한 주된 피해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당연한 얘기지만 열대성 폭풍우는 바람은 물론 큰비를 몰고 온다. 이번 하비 내습 당시 텍사스 일부 지역에서 누적강수량만 무려 1600㎜가 넘기도 했다. 평소보다 집중된 호우는 도시의 배수용량을 넘어서기 일쑤다. 하비가 상륙한 휴스턴시에 발달해 있던 운하와 관개 시스템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둘째, 열대성 폭풍의 피해는 연안의 저지대에 집중된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휴스턴시는 물론이고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즈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지역 모두 걸프만 연안의 광활한 저지대에 만들어진 도시로 본래 습지가 발달한 곳이어서 과거부터 범람의 피해가 잦은 곳이다. 특히 이번에 하비는 텍사스주에 상륙한 후 방향을 틀어 해안을 따라 500㎞ 이상 이동하면서 연안 저지대를 침수시켰다. 우리나라에 태풍 매미가 내습했을 때에도 마산만에서 피해를 입은 구역은 연안과 하천 주변의 매립지에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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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로 피해를 입은 텍사스주 연안 지역. 자료: 뉴욕타임즈(2017.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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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만 해일침수 재해 지도. 해안지역에서는 2m 이상의 침수 흔적이 나타났고 주로 매립지를 따라 침수가 발생했다.

셋째, 바다의 조위 변화다. 폭풍이 연안에 상륙할 때 바다의 물때가 고조(高潮)인 경우 피해는 배 이상 늘어난다. 폭풍해일이 고조를 타고 더 높은 해수면을 만들어 해안으로 밀려들고, 내륙의 막대한 빗물은 빠져나갈 곳을 못 찾다 결국 둑은 터지고 범람한다. 전자를 외수침수, 후자를 내수침수라 한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아닌 내수외수(內水外水)의 상황을 맞는 격이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해수위는 평소보다 3~6m 더 상승했고, 올해 상륙한 허리케인 하비는 바다 수위를 4m 이상 밀어 올렸다. 2003년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준 태풍 매미 역시 해수위를 평소보다 2m 이상 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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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 내습 당시 마산항 조위 변화 : 태풍이 상륙한 시점이 만조 때와 겹친 데다 태풍과 함께 밀려온 폭풍해일로 평상시 해수위보다 2m 이상 해수위가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김차겸(2003)

기존의 정부 대책과 계획에 기후적응대책이 반영되어야 

반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률은 얼마나 될까? 국립해양조사원이 관측한 해수면 높이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해역은 과거 약 30년간 연평균 2.5㎜의 상승률을 보였다. 상승률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제주 인근 해역에서는 연간 5.7㎜에 달하는 높은 상승률을 보이지만, 서해는 1.3㎜, 남해는 2.0㎜ 수준이다. 더욱이 같은 남해에서도 거문도는 5.6㎜인 반면, 가까운 추자도에서는 2.1㎜ 수준이다. 이처럼 지역별로 해수면 상승률이 다르게 관측된다. 이는 연안지역에서 지반의 상하 운동이나 인근 해역의 수심, 연안의 지형에 따라 해수면 상승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에서와 같이 높은 해수면 상승률만을 기준으로 해수면 대책을 논하기보다는 지역별로 다른 해수면 상승에 대한 원인과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다. 해수면 상승은 기후변화 같은 지구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태풍 대비나 연안 개발과 같은 지역적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5.jpg
우리나라 연안의 해수면 상승률. 자료: 국립해양조사원(2010)

지금도 바닷가에 나가면 매일 수 m에 달하는 조차로 물이 들고 난다. 큰 파도나 해일, 태풍이라도 오게 되면 거기서 다시 수 m 이상 해수면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100년 후 1m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대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까?

예를 들어 2100년 해수면 높이를 가정하여 연안 지역의 시설물 등의 기준을 높이고자 해도 수십 년에 불과한 시설물의 수명을 고려하면 과도한 수준을 요구하는 대책이 되기 쉽다. 연안의 시설물 수명이 2100년까지 가지도 못하는데 2100년에 예측되는 해수면 높이에 대응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시설의 수명이나 설계수명을 고려해 20~30년 내를 목표로 해서는 해수면 상승이 평상시 다른 태풍이나 해수면 변화에 비해 작기 때문에 특별히 차별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가 역시 어렵다. 기존의 풍수해대책에 이미 태풍 내습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나 집중호우에 대비하는 현실적인 대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이미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른 '풍수해 저감 종합계획'에 태풍이나 해일 등 대규모 기상 현상에 대한 대비가 포함되어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과 같은 추가적인 변화는 여기에서 함께 고려하면 될 일이다. 과도하게 부풀린 측면이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문제’를 대응하느라 당장 현실적인 대비가 필요한 ‘지역적 해수면 상승 문제’를 소홀히 다루거나 미뤄서는 안 된다. 그동안 노하우와 경험이 쌓여온 지역적 해수면 상승 대책에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 대책을 포함하여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정부 정책을 별도의 정책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원칙적으로 기존에 있던 관련 정책에 녹여내야 한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5년마다 수립하는데, 사실 그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재해·재난이나 풍수해 대응 정책에 기후 적응대책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별로 해수면 변화의 원인과 피해양상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역적인 고려 역시 중요하다. 중앙정부가 수립하는 기후변화 적응대책에서는 장기목표를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리되, 분야별 관련 정책이나 지역계획에서는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반영해 실행하고 확인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육근형/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1) "Hurricane Harvey Death Toll Hits 70," NBC News Dallas Ft. Worth, September 9, 2017.
2) "The Thirty Costliest U.S. Tropical Cyclones," Not adjusted for inflation. NOAA Technical Memorandum, August 2013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국정원 방송장악 공모’ 김재철 자택, 방문진 등 압수수색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 30일 김재철 전 사장 등 MBC 전·현직 임원 등 압수수색… 고영주, 방문진 압수수색 중 출근 “말씀드릴 것 없어”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MB 정부 국가정보원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한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에 나섰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2011년경 국정원 관계자와 MBC 임원들이 결탁해 MBC 방송·제작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혐의로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 MB 정부 국가정보원과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해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방문진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 정부 국가정보원과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해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방문진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검찰은 “압수수색 대상자들은 당시 MBC PD수첩 등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MBC 프로그램들과 관련해, 방송 제작진 및 진행자 교체, 방영 보류, 제작 중단 등 불법 관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MBC 담당 직원 및 김재철 전 사장 등 당시 MBC 임원진 3명”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MBC 경영진 교체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김 전 사장 등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방침이다.  
▲ MB 정부 국가정보원과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해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와 임무혁 방문진 사무처장(왼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 정부 국가정보원과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해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와 임무혁 방문진 사무처장(왼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앞서 검찰은 지난 13일 MBC PD수첩을 탄압한 인물로 꼽히는 윤길용 MBC NET 사장을 소환해 조사했으며 이보다 앞서 김 전 사장의 측근인 전영배 MBC C&I 사장을 출석시켜 장시간 조사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지난달 일부 공개한 MB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에 경영진 비판 성향의 기자·PD들에 대한 인사 배제나 퇴출을 기획한 내용이 있어 논란이 일었다. 해당 문건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로 2010년 3월2일 국정원이 작성·보고한 것이다. 이 날은 김재철 사장 취임 첫날이기도 했다.
한편,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30일 오전 9시35분 출근했다. 고 이사장은 입장을 묻는 미디어오늘 기자 전화에 “수사 중인 사안에 말씀드릴 것 없다”고 했다. 지난 27일 국회 방문진 국감에서 ‘국정원장을 만난 적 있느냐’는 질문에 “국정원장은 애국 활동을 하는 분이라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MB 정부 국가정보원과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해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오전 9시35분경 출근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MB 정부 국가정보원과의 방송 장악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포함해 MBC 전·현직 임원진 3명의 주거지 및 사무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에 대해 검찰이 30일 오전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오전 9시35분경 출근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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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점에 다가선 핵대결, 굴복의사 드러내 보인 미국

[개벽예감272] 종착점에 다가선 핵대결, 굴복의사 드러내 보인 미국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10/30 [10:02]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
2. 매우 다급해진 미국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 
3. 대통령 특사나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려는 계획
4. 종착점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멈춰 서겠는가 


1.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

산천이 가을빛으로 짙게 물든 지금, 현실은 중대하고 심각한 물음 앞에 마주서 있다.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조미핵대결, 전 세계가 긴장된 시선으로 지켜보는 조미핵대결은 어떻게 끝나가고 있는가? 
조미핵대결이 전개되는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면, 2017년 10월 중순 이후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는 놀라운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서술하려는 목격장면은 2017년 10월 한 달 동안 조미관계 속에 나타났으나, 사람들이 예사로운 일로 여겨 그냥 넘어간 일련의 상황변화다.  

그 상황변화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가운데 어느덧 10월이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2017년 9월 15일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북태평양으로 발사한 이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10월 중 어느 날 반드시 쏠 것으로 예견하고, 조미핵대결 전개상황을 주시해온 세계 각국의 군사전문가들과 정치분석가들은 조선이 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더 이상 발사하지 않는지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조선이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가 중지되었음을 말해주는 징표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9월 15일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2형이 발사되기 직전 수직으로 세워진 모습이다. 미사일 동체에 적혀있는 일련번호가 뚜렷이 보이는데, 이것은 화성-12형이 계렬생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은 그 날 이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 조선이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가 중지되었음을 말해주는 징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의 숨통을 조여 온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는 왜 중지되었을까? 조선이 미국에 대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조선의 초강경하고, 연발적인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국제사회에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오직 조선에게만 조용히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경우다. 조선은 미국이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일 때, 바로 그럴 때만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해줄 수 있다.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다는 말은, 조미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진 미국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조선과 무조건 대화하고 싶다고 제의하는 다급한 행동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의 허세를 실세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조선에게 ‘최대 압박’을 가하면서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밝힐 때까지 조선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여왔는데, 그처럼 ‘강대한 미국’이 ‘약소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하면서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나 우리가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때, 무지와 편견, 오해와 착각이 만들어낸 조미관계의 허상은 곧바로 깨져버리게 되나니, 그 허상이 깨져나간 공간에서 아래와 같은 새로운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 미치광이처럼 반발하며 발광전략에 허둥지둥 매달렸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2017년 10월 10일 이후 이상하리만치 바뀌었다.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 연단에서 조선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극악한 전쟁폭언을 토해놓아 전 세계를 경악과 충격에 빠뜨렸던 그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었다. 조미관계를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언론매체에 귀띔해준 사람은 그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외교수장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국무장관이다. 2017년 10월 15일 틸러슨 국무장관이 <CNN>과 진행한 대담에 시선이 쏠린다. 의미맥락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영어원문을 함께 인용한다. 

“대통령은 북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고 한다(The president is trying to motivate action on North Korea). 그는 전쟁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다(He is not seeking to go to war). 또한 대통령은 이것(조미핵대결을 뜻함-옮긴이)이 외교적으로 해결되기 바란다는 점을 내게 분명히 하였다(The president has also made clear to me that he wants this solved diplomatically). 그런 외교노력들은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Those diplomatic efforts will continue until the first bomb drops).”

오해와 편견에 빠져 정세를 언제나 거꾸로 읽는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이 인용문의 전체적인 의미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맨 마지막 문장만 부각시키면서, 외교노력이 실패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였다.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한 외교노력을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틸러슨 국무장관의 말은 외교노력을 중단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2017년 10월 1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과 대담하는 장면이다. 그 대담에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조선에 대한 행동이라는 말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뜻한다. 2017년 10월 10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한반도 철군문제와 그에 따른 외교적 선택방안이 논의되었으므로, 그 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된 날로부터 닷새 뒤 틸러슨 국무장관의 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였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위의 인용문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더 중요한 문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힌 바로 그 대목이다. 그가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한다면, 그건 어떤 행동인가? 위의 인용문에 나온 틸러슨 국무장관의 말을 빌리면, 그 행동은 “외교노력(diplomatic efforts)”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이다. 

이런 의미맥락을 파악하면, 2017년 10월 10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군 수뇌부로부터 한반도 철군문제를 보고받고,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교적 선택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7년 10월 1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트럼프의 발광전략 뒤에 무엇이 보이는가?’에서 자세히 논하였다. 

2017년 10월 10일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한반도 철군문제와 그에 따른 외교적 선택방안이 논의되었으므로, 그 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국가안보회의가 진행된 날로부터 닷새 뒤 틸러슨 국무장관의 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 대한 행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였음을 말해준 것이었다. 지난 9월 19일 유엔총회 연단에서 조선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극악한 전쟁폭언을 토해냈던 미치광이 대통령이 지난 10월 10일 이후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게 된 전향적인 태도변화, 이것이야말로 조미핵대결이 종착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CNN> 대담에서 위와 같은 징표에 대해 언급하기 이틀 전인 2017년 10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럴 만하다면, 나는 협상으로 향하게 될 것(I would be open to negotiations if plausible)”이라고 답변하였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0일에 진행된 특별한 국가안보회의를 계기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과 협상하려는 외교노력을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매우 다급해진 미국,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 

하지만 극도로 과열되었고, 그래서 매우 위태로워진 핵대결국면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틸러슨 국무장관이 꺼내놓은 몇 마디 말에 이끌려 협상국면으로 왈칵 전환될 수는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외교절차가 필요하다. 핵대결국면을 협상국면으로 전환시킬 외교절차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조미협상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급 대화가 그런 외교절차로 될 수 있다. 

2017년 10월 23일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은 러시아 쌍끄뜨 뻬쩨르부르크 대학에서 진행된 비공개 연설에서 “조미 간 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조미대화라는 것은 회담이나 협상이 아니라 상호연락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조선과 미국이 언론의 눈길을 피해 서로 연락하였다는 말이다. 조선과 미국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어느 한 쪽이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고 다른 쪽이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도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조선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집해왔다. 그런 미국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은 미국이 조건을 달지 않고 대화를 제의해올 때, 다시 말해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일 때, 그 제의를 받아주겠다고 응수하였다. 이처럼 상충되는 입장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는 어떤 형태의 대화도 진행될 수 없었고, 어느 한 쪽이 자기 주장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런데 급기야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은 실무급 대화를 조선에게 제의하였다. 위에서 인용한 틸러슨 국무장관의 <CNN> 대담에서 언급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노력이라는 것은 조건 없는 대화를 조선에게 제의한 행동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조선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행정부가 종래의 고집스런 태도를 버리고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하였다는 사실이다. 조미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조선과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고 다급하게 제의한 것이야말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성 계열 대륙간탄도미사일 연속발사, 괌포위사격계획 발표, 태평양에서의 수소탄기폭시험 예고발언 등으로 차츰 증강되어온 조선의 초강력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얻어맞으며 국가안보파탄의 벼랑끝에 아슬아슬하게 떠밀린 트럼프 행정부는 너무 다급한 나머지 제국의 체면은 접어두고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기 위한 협상을 준비할 실무급 대화부터 조건 없이 시작하자고 먼저 조선에게 제의하였다.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지푸라기를 움켜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런 대화제의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건 없이 실무급 대화를 시작하자는 제의를 조선에 보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꼴이 드러날까 걱정하였고, 그래서 그 사실을 꽁꽁 숨겼다. 그런 까닭에 최선희 국장이 비공개 연설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었던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이 2017년 10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 국제비확산회의'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그는 러시아 쌍끄뜨 뻬쩨르부르크 대학에서 진행된 비공개 연설에서 "조미 간 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다"고 밝혔다. 조선이 핵포기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는 조선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던 트럼프 행정부가 종래의 고집스런 태도를 버리고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하였다. 조미핵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조선과 무조건 협상하고 싶다고 다급하게 제의한 것이야말로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건 없이 실무급 대화를 시작하자는 제의를 조선에 보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조선에게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꼴이 드러날까봐 걱정하였고, 그래서 그 사실을 꽁꽁 숨겼다. 그런 까닭에 최선희 국장이 비공개 연설에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었던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일본 텔레비전방송 <TBS> 2017년 10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미협상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급 대화는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과 조섭 윤 미국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2017년 10월 말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다고 한다. 최선희 국장이 10일 동안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지난 10월 26일 모스크바를 떠났으므로, 조미 실무급 대화는 10월 27일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은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시아 순방 직전에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자고 조선에 제의하였고, 조선은 그 제의를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조미 실무급 대화와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시아 순방일정이 순차적으로 물려있었음을 주시하면서, 2017년 10월 25일에 방영된 미국 텔레비전방송프로그램 <팍스 비즈니스 넷웍(Fox Business Network)>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며칠 뒤에 있게 될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지칭함-옮긴이)가 나를 데리고 가는 베이징과 다른 곳들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이틀 머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일본과 한국에도 갈 것이다. 그리고 바라건대 그것은 역사적이고 긍정적으로 될 거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북조선문제를 해결해야 한다(And it will be, I think -- hopefully it's historic and positive and we have to solve the North Korea problem). 그것은 매우 큰 문제다. 그 문제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어야 했다. 그 문제는 내가 백악관에 들어가기 훨씬 전에, 해결하기 쉬웠을 때 해결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문제가 내게 주어졌으니, 나는 그것을 해결한다. 나는 문제들을 해결한다(But it was given to me and I get it solved. I solve problems).” 


3. 대통령 특사나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려는 계획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을 ‘북조선문제(North Korea problem)를 해결할 역사적이고 긍정적인 기회’라고 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해결하지 못했으나 자기는 ‘북조선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한 ‘북조선문제’라는 것은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뜻하는 것이므로, 그는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로 될 것이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과장된 표현을 쓰는 말버릇이 있으므로,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에 대해 말할 때도 과장법을 쓴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로 될 것이라는 말을 그냥 무시해버릴 수는 없다. 그의 말에 덮여있는 과대포장을 벗겨내면, 아래와 같은 실상이 드러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 전에 먼저 조선과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도록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지시하였다. 그래서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였고, 조선도 그 제안을 받아들여 2017년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0월 2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프로그램 <팍스 비지니스 넷웍>에 출연하여 대담하는 장면이다. 대담에서 그는 앞으로 며칠 뒤에 있게 될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에 대해 언급하였다. 대담에서 그는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로 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하면서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이 해결하지 못한 '북조선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장담하였다. 그런데 그의 호언장담을 과장된 표현으로만 볼 수 없는 정황이 조성되었다. 그가 대통령 특사 또는 틸러슨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자신의 조선방문을 준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미국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을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기회라고 기대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하지 못했으나 자기는 미국을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게 하겠노라고 말한 것은,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실무급 대화에서 조미협상의 진행방식 및 의제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2017년 10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전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답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협상방식과 협상의제는 무엇일까?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 실무급 대화에서 조선에게 제의하려고 하였던 협상방식과 협상의제가 무엇인지 시사해주는 정보는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7년 10월 25일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도기사는 조섭 윤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익명의 미국 연방의회 보좌관이 전해준 말을 인용하여 작성된 것이다. 그 보도기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 

첫째,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익명의 연방의회 보좌관은 “그 외교관(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지칭함-옮긴이)은 어떤 종류의 대화라도 재개하려는 매우 절실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The diplomat is searching for a "hail Mary" attempt to restart any sort of talks)”고 지적하였다. 이건 무슨 뜻인가? 지난 10월 10일 특별한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에게 조건 없는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였고, 조선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조선이 그 대화를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매우 다급해진 미국 국무부가 어떤 종류의 대화라도 재개하려고 안달복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조선이 전격적으로 취소해버린 사연에 대해서는 아래서 논한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00년 10월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시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을 백화원 국빈관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뒤쪽에 조명록 차수의 모습이 보인다. 올브라이트의 평양방문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조선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조선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대통령 특사나 틸러슨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기간 중 유세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조미정상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둘째,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익명의 연방의회 보좌관은 조선과 대화하려는 미국의 절실한 시도들에는 “아마도 고위급 특사 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파견하는 것도 포함된다(including a high-level envoy or dispatching Secretary of State Rex Tillerson)”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7년 10월 27일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었던 조미 실무급 대화에서 미국은 고위급 특사 또는 틸러슨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하는 문제를 제의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 대통령 특사 또는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에 가는 목적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의 조선방문을 준비하는 사전협의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였던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J. K. Albright) 당시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자신의 조선방문을 준비하게 하였던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있다.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미중정상회담을 추진하였던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이 1971년 7월 9일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베이징에 보내 자신의 중국방문을 준비하게 하였던 사실도 기억할 수 있다. 


4. 종착점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멈춰 서겠는가

백악관이 예상하지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하였다. 조선이 오슬로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된 조미 실무급 대화를 갑자기 취소해버린 것이다. 일본 텔레비전방송 <TBS> 2017년 10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미국이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전개한 것을 이유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훈련은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과 구축함이 2017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동해와 서해를 오가면서 대조선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한 것을 뜻한다. 로널드 레이건함은 전쟁연습을 마치고 10월 21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들어갔다가 10월 26일 부산을 떠나 한반도작전구역에서 벗어났다.  

미국은 2017년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조선과 합의하였으면서도,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한반도작전구역으로 출동시켜 전쟁연습을 감행하였으니, 조선이 그런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은 조미 실무급 대화를 취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조선전쟁연습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었고, 대화제의의 속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0월에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출동시켜 대조선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한 것은 그들이 조선에게 실무급 대화를 제의하기 훨씬 전부터 계획되고 준비되어온 것이지만, 조선과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합의하였으면 그 계획을 취소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비록 규모를 축소하기는 했지만 전쟁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연습과 대화를 병행하는 어리석고, 모순되는 짓을 저질렀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미국 해군 제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이 2017년 10월 18일 스테덤 구축함, 한국 해군 군함들과 함께 동해에서 대조선전쟁연습을 벌이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항공모함 오른쪽에 보이는 큰 군함이 스테덤 구축함이고, 그 뒤를 따르는 조그만 군함들은 한국 해군 군함들이다. 미국은 2017년 10월 27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조선과 합의하였으면서도,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한반도작전구역으로 출동시켜 전쟁연습을 감행하였다. 조선은 미국의 그런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그렇게 되자,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 직전에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되었고, 조미 실무급 대화가 언제 다시 일정에 오를 것인지 예견하기 힘들게 되었다. 대화전망이 불투명해졌으니, 조선이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하였던 일시적인 조치를 풀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할 가능성도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7년 10월 24일 헤더 노엇(Heather A. Nauert)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취재진에게 “이미 여러 번 밝힌 대로 미국은 북조선과 협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그런데 북조선이 대화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출동시킨 전쟁연습이 진행되는 통에 조미 실무급 대화가 취소된 사정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자신의 동북아시아 순방 직전에 조미 실무급 대화를 진행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상황을 오판한 그는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내쳐버린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되었던 조미 실무급 대화가 무산되었으니, 그 대화가 언제 다시 일정에 오를지 예견하기 힘들다. 대화전망이 불투명해졌으니, 조선이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중지하였던 일시적인 조치를 풀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할 가능성도 보인다. 
“미국과 북조선의 외교노력들은 평양이 대화를 회피하는 바람에 위험에 빠졌다”고 지적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7년 10월 25일 보도기사는, 조선이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당황망조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최근 조섭 윤 대조선정책특별대표가 펼친 외교노력들은 미국의 국가안보파탄을 막아줄 “마지막 버팀대들(last legs)”인데, 조선은 조미 실무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취소하여 그 마지막 버팀대마저 부러뜨린 것이다. 마지막 버팀대가 부러졌으니, 벼랑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국가안보파탄이라는 불덩이가 타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2017년 10월 19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국가안보문제토론회에서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에서 벗어날 시기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가 때를 놓친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9월 15일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지도하면서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거의 다달은 것만큼 전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조선이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해안의 중간쯤 되는 북태평양 상공으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날,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는 조선이 사상 최대 폭발력을 가진 수소탄을 북태평양에서 기폭시키는 날,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17년 9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지도하면서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화성-12형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화성-12형은 일본 열도 상공을 넘어 북태평양에 낙탄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날 북태평양으로 날아간 화성-12형을 보면서,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거의 다다른 것만큼 전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하든지 또는 굴복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뜻이다. 종착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조선이 발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그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으로 국가안보가 파탄되자 결국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미국에게 기사회생의 출로는 오로지 철군밖에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최선희 조선 외무성 북미주국장은 2017년 10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국제비확산회의’에서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핵보유국인 조선과 공존하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출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미국이 핵보유국인 조선과 공존하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든지 또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견된다. 국가핵무력 완성이라는 종착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조선이 발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그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지난 9월 15일 화성-12형 발사훈련을 지도하면서 “전국가적인 모든 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하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이 조선의 핵포기를 유도할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미국에게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2000년 10월 조선과 공동코뮈니께를 발표해놓고 그것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이미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는 동안 조선은 국가핵무력건설에 힘을 집중해오면서 미국과 핵대결을 벌여왔으므로, 오늘 미국은 전략적 패배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조선과 격돌하는 핵대결정세를 끝없이 오판하며, 실효도 없는 경제제재에나 매달려 어물어물하다가 국가안보가 파탄되자 결국 굴복의사를 드러내 보인 미국, 그런 미국에게 기사회생의 출로는 오로지 철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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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적폐다

[유라시아 견문] 2017 : 재조산하, 개조천하
2017.10.29 17:41:59





1. 신극서(New Far West)

적폐가 돌아왔다. 선거 결과를 뒤집었다. 유별난 새 인물도 기득권 양당제를 돌파하지 못했다. 구적폐에 신적폐가 덧쌓인 꼴이다. 미국 이야기이다. 올 5월 사라예보 영화제에 초빙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시국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꼬집는다. 정작 적폐의 정수는 미국의 정치체제(Deep State) 그 자체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네오콘-네오리버럴 합작의 미국식 세계화를 멈추지 못한다. 스톤은 본인이 직접 인터뷰한 신작 다큐 <푸틴>을 상기시켰다. 2000년 이래 푸틴은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에 이어 트럼프를 차례로 상대했다. 대상이 매번 바뀌지만 미국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얼굴 마담을 바꾸어 가면서 금융자본과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체제를 지속할 뿐이다. 올해는 유독 주류언론들도 합세했다. '러시아 스캔들'이라고 하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하고 공연했다. 마치 트럼프의 당선이 푸틴의 선거 개입 때문인 양 왜곡시킨 것이다. '기레기'들이 1년째 선전선동으로 내부 적폐를 외부 탓으로 돌린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과점지배에 넌덜머리를 냈던 미국 (백인) 민중의 '민주적 목소리'를 철저하게 기망시켜 버린 것이다. 조지오웰의 미래소설 <1984>에 딱 어울리는 국가가 오늘의 미국이라는 것이 올리버 스톤의 결론이다. 나는 결코 과장된 진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벌거벗은 임금님, '대안적 진실'에 더 가깝다.
러시아와의 신냉전 국면을 타개하려던 트럼프의 세계 구상은 적폐의 총공세로 초장에 무산되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해결책은 없음을 거듭 피력하던 최측근 책사 스티브 배넌도 축출되었다. 세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고립주의 노선이 조기에 좌초된 것이다. 사실상의 선거 불복 기획이 성공한 셈이다. 재차 적폐들이 미국의 운전대를 잡았다. 난폭한 대리 운전기사를 막후에서 몰아가며 더 많은 군사 개입을 획책하고 실행한다. 따라서 스캔들의 이름 또한 바로 불러주어야 하겠다. '러시아 스캔들'이 아니다. '미국 스캔들'이다. 냉전기 소련 공포증과 혐오감을 총동원한 '워싱턴 스캔들'이다. 과연 미국의 민주주의, 선거는 요식 행위일 뿐이다. 워싱턴에 똬리를 틀고 있는 10% 지배계급연합이 대중을 기만하며 영구히 지배한다. 20세기 한때 '현실 사회주의'라는 말이 있었다. 21세기 이제는 '현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궁리할 때가 되었다. 말과 실이 부합하지 않는다. 껍데기만 남았다.

"미국이 빠지면, 이제 중국이 이끈다."  

독일 총리 메르켈의 발언이다. 시칠리아에서 열린 G7회담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G20 회담, 두 번의 국제회의에서 거듭 밝힌 견해이다. 미국은 이미 파리기후협정에서 이탈했다. 환태평양(TPP)에서도 빠져나갔고, 환대서양에도 시큰둥하다. 유네스코서도 탈퇴했다. 대서양은 갈수록 멀어져간다. 유럽과 미국의 틈이 점점 더 벌어진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난민/이민 문제가 시급한 화두였다. NATO의 개입이 자충수가 된 것이다. 미국을 따라 아랍을 '민주화' 시킨답시고 군사 개입을 하고나면 아랍에서 유럽으로 이민/난민이 몰려드는 형세가 십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구미'(The West)를 고수함으로써 유리비아가 온통 혼란인 것이다. 끝끝내 1945년 이후 확립된 대미종속적 유럽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이다. 미국 고립주의를 따라서 유럽 고립주의로 퇴행한다는 말이 아니다. 출로를 바꾸어 활로를 되찾는다는 것이다. 대서양에서 유라시아로 방향을 선회한다. 유럽의 땅 아래로 에너지의 3할이 러시아에서 흘러들고 있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봉쇄가 유럽에도 폐를 끼치고 해를 입히고 있다. 선봉에 선 나라가 유럽의 심장 독일이다. 독일과 러시아가 합작하는 '다른 유럽' 만들기가 가동된다. 대서양부터 태평양까지,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구대륙 연합이 도모된다. 땅 위로는 중국 자본이 건설한 철도와 도로와 항공로와 인터넷 연결망이 깔린다. 유럽연합과 유라시아경제연합과 일대일로의 합작을 통하여 유럽 최대의 제조업 강국 독일의 제품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수출된다. 베를린-모스크바-베이징의 아귀가 딱-딱-딱 들어맞는다. 윈-윈-윈 전략이다. 

미국이 중국에 무역전쟁을 발동한다는 말도 뒷북이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개혁/개방하던 20세기 후반이 아니다. 이미 중국의 수출과 투자는 2016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유럽으로,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바뀌었다. 내륙형, 대륙형 개혁개방으로 전회하였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온/오프라인 장벽을 높게 쌓는다. 외국인 투자하기에도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자유무역의 거점이 대서양/태평양에서 유라시아로 이동하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확보하고 있는 현금다발이 무게로 따지면 수천 톤에 이른다. 유럽기업과 중국기업 간 동/서 합병이 갈수록 늘어난다. 
서유럽만도 아니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도 새 길을 내고 있다. 알바니아 공항을 중국 자본이 만든다. 마케도니아와 몬테네그로 간 국경 고속도로도 건설한다. 베오그라드의 다뉴브 강에 새로 새워진 교각의 이름도 중국-세르비아 우정의 다리이다. 그리스의 아테네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잇는 고속철도 만들고 있다. 탈냉전 이래 유고연방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1989년 체제의 모순이 응축된 바로 그 장소에 '발칸로드'가 겹겹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올해 세르비아 대선을 베오그라드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 서로마와 북로마 사이 균형을 되찾는다. 걸프만국가의 투자를 유치하여 유럽과 아랍 사이 중용을 취한다. 세르비아는 중국과 동유럽 국가들 사이 '16+1' 연례 회의도 출범시켰다. SU(Soviet Union)에도 EU(European Union)에도 족하지 못했던 발칸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고도 하겠다.  
하여 '歐美'(구미)라는 용어 또한 슬슬 녹이 슨다. 아련한 추억의 옛 단어가 되어간다. 유럽과 아메리카, 유메리카는 200년 앙시앙레짐, 적폐의 온상이다. '구아'(歐亞), 유라시아가 미래형 신조어이다. 오래된 미래가 구대륙에서 새롭게 펼쳐진다. 신상태가 무르익어 신시대가 되었다. 고로 '중동'이라는 말도 재고할 필요가 크다. 근동(Near East)과 극동(Far East)사이에 중동(Middle East)이 자리했다. 유라시아와 유라비아의 극서에 자리한 영국식 지정학이 투영된 용법이다. 그 영국이 유럽에서마저 이탈한 브렉시트는 21세기의 대반전을 상징한다. 아시아로 축이 이동하면서 지리감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유럽이 극서(Far West)가 되고, 아랍은 중서(Middle West)가 된다.  

2. 신중서(New Middle West) 

2017년 트럼프의 첫 UN 연설은 '천민 민주주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천박하다. 얕고 옅다. 좁고 낮다. 그 대척점에서 가장 격조 높고 기품 서린 연설을 선보인 인물이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이었다. 이슬람의 정통 학자 울라마 출신다웠다. 교양이 넘치고 사려가 깊으며 우아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트럼프의 졸렬한 연설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해갔다. 미천한 상놈과 위엄을 갖춘 지도자 간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이슬람 공화국' 이란의 국격을 한껏 과시한 것이다. 대통령의 글쓰기와 말하기, 전범을 제시했다. 

소귀에 경 읽기, 기어이 미국은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할 태세다. 반신반의,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였다. 신뢰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무뢰배, 불량국가이다. 양국 간 합의도 아니었다. 다자협의였다. 러시아와 중국은 당장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도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는 뜻을 표했다. 5+1 합의가 5:1의 대결 구도로 굳어진 것이다. 형세를 보자. 신대륙 국가 하나만 빠진 꼴이다. 미국만 고립된 것이다. 포스트-아메리카(Post-America)라는 신상태, 리-유라시아(Re-Eurasia)라는 신시대를 상징한다. UN에서 로하니가 이란 핵합의를 다른 지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국제관계의 새 모델로 추켜올리자, 맞장구를 쳐주며 추임새를 넣은 인물 또한 메르켈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비롯하여 독일의 여러 기업들이 이미 이란과 합작 사업을 체결했다. 유럽기업과 이란기업 사이에 여러 경제협력이 논의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또한 이란의 천연자원 수입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항상적인 미국의 경제 제재를 경험해왔다. 미국과의 무역이나 투자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내성이 생겼다. 내구력이 상당하다. 고로 미국 혼자서는 아무런 타격을 가하지 못한다. 미국을 따라 동참하는 똘마니 국가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졸개들이 더는 없을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유라시아와 협력하여 이란 경제를 너끈하게 재건할 수 있다. 과연 올해 5월 테헤란에서는 이란에서 열리는 첫 번째 일대일로 포럼이 개최되었다. 이란을 종단하고 횡단하는 고속철도 두 개 노선을 신설키로 했다. 우루무치에서 테헤란을 지나 이스탄불에 가닿는 이슬람세계의 동/서 네트워크도 2020년까지 완공 짓기로 했다. 나아가 이란-유럽 간에는 유로화로, 이란-중국 간에는 위안화로 결제한다고도 한다. '오일-달러'라고 하는 지난 백년의 지하자원-기축통화 공식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희비의 쌍곡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곳은 시리아이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의 교체, '민주화'에 전력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맞은편에서 정권 사수를 지지한 나라가 이란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에 현금을 조달해주며 군인 월급을 지불한 국가가 이란이었다. 시리아의 석유를 수입하여 재정을 보전해주고 의료부대와 보급부대를 투입해준 것도 이란이었다. 이란의 최정예군대, 혁명수비대가 직접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혁명수비대는 일반적인 국군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이슬람혁명을 수호하는 성군(聖軍)이다. 새 천년이 되어서도 이슬람 문명 고유의 정치체제를 부정하고 '민주화'를 이식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더 이상 시리아는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미국의 기획대로 전복되지 않을 것이다. 4+1, 러시아와 이란, 터키와 이라크가 연합하여 시리아의 새 판을 만들어간다.
내전 이후 재건 지원에 총대를 멘 나라는 중국이다. 항산의 제공으로 항심을 지원한다. 한동안 중지되었던 다마스쿠스 박람회가 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참가국들의 면모가 획기적이다. 오스만제국을 분할하여 '시리아'와 '이라크'라는 인공국가를 주조하며 서아시아 대분열체제를 만들어낸 영국과 프랑스는 없었다. 그들을 계승하여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었던 미국도 없었다. 반면으로 브릭스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현금이 가장 풍부한 중국이 시리아의 교통망과 통신망 재건을 주도한다. 달리 말해 시리아 연결망이 일대일로와 직결된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다마스쿠스에 조응하는 '시리아의 날' 행사가 열렸다. 시리아 재건을 표방하는 첫 번째 국제행사였다. 다시금 장소가 의미심장하다. 동부의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니었다. 서부, 왕년의 서역이었다. 닝샤(宁夏)의 회족 자치구, 인춴(银川)에서 개최되었다. 아랍-중국 연맹(Arab-China Exchange Association)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AIIB가 주빈으로 초대되었다. 즉 시리아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아랍국가와 비아랍국가 30여 개국이 참여했다. 중화세계와 이슬람세계의 공진화, 유라시아 합작이다.
'지속의 제국' 중국은 늘 역사적으로 사고한다. 중원의 사람들과 서역 사람들의 가교가 시리아 상인들이었다. 그들이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오가며 아라비아반도의 세계화에 공헌했다. 사막을 지나고 고원을 오르고 바다를 헤치며 활약했던 유라시아-시리아 상인의 거점이 바로 알레포였다. 하여 알레포 탈환의 상징성도 다대했던 것이다. 내전 중에도 알레포 상인들은 고향을 떠나 딴 곳에서 새 살림을 차리고 더욱 촘촘한 시장을 형성해왔던 것이다. 서중국에서 남유럽까지 국경도시와 국경시장을 잇는 뉴 실크로드, 샛길과 새 길을 만들어내었다. '거대한 뿌리'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것이다.  
'난세의 제국' 미국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아랍의 약한 고리 카타르를 쳤다. 트럼프가 사우디를 방문하고 떠나자마자 GCC 국가들이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GCC(Gulf Cooperation Council)란 무엇인가. 미국의 꼬붕 사우디와 그 아랍의 졸개들을 끌어 모은 왕정국가연합체이다. 1981년 출범 당시부터 이란을 겨냥한 조직이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고 하는 현대적/진보적 이슬람국가가 등장하자 보수적 왕정국가들이 혁명 봉쇄를 위해 연합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카타르가 이란과 부쩍 가까워졌다. '계몽 군주' 아래 '이슬람 계몽주의' 소프트파워를 축적해갔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도하에 거점을 두고 있는 <알자지라>이다. 구미가 주도하는 정보/지식 독점 상황을 타개하는 한편으로 '이슬람의 근대화'를 견인하는 언론으로 독보적이었다.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고, 카타르는 수니파 국가이다. 그러나 종파로 갈라지지 않는다. 종파가 다를지언정 '이슬람의 근대화'라는 대의에 협동한다. 아랍의 보수적 수니파 왕정국가들로서는 카타르의 행보가 눈에 가시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겠다는 몹쓸 꼴을 따르기라도 하는 양, 카타르를 징벌하겠다며 못난 짓을 벌인 것이다.  
▲ 이슬람 예술 박물관(카타르 도하).ⓒ이병한

그러나 카타르 또한 의연하다. 수니파 이슬람 개혁의 선봉국가로서 자부심이 투철하다. 나도 여러 차례 도하 공항을 오고갔다. 지중해 사이 유럽과 아랍, 유라비아 연결망의 허브 도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우디는 좀체 거쳐 간 적이 없다. 사우디가 석유로 번 돈을 미국산 무기 구매로 재지불한다면, 카타르는 언론과 미디어를 키우고 스포츠와 문화 산업에 투자했다.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현대미술관이 자리한 도시가 바로 도하이다. 2022년 월드컵 주최국이 되었을 만큼 국제 축구계에서도 위상이 높다. 카타르 항공을 이용할 때마다 FC 바르셀로나의 슈퍼스타들이 영어와 아랍어로 안내하는 기내안전방송을 시청했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네이마르였다. 하필이면 카타르 단교 사태가 한창이던 무렵에 파리 상제르망으로의 이적 소식이 발표되었다. 카타르 정부가 이 역대 최대 규모의 이적에 관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바르셀로나는 카타르 국영항공사의 후원구단이며, 상제르망은 카타르가 소유하고 있는 구단이다. 경제 봉쇄도 아랑곳없이 세계 최대의 스포츠 시장에서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즉 카타르 단교로 카타르 또한 고립된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LNG 수출국 카타르의 연결망이 반증한다. 최대 교역국은 이미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2010년 이래 중국이 아랍의 지하자원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로 등극했다. 오히려 흔들리고 있는 쪽은 아랍의 적폐, GCC이다. 카타르시트(카타르+엑시트)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이란은 승자로 등극했다. 이슬람세계의 주도권이 확연하게 사우디(왕정)에서 이란(공화정)으로 넘어간다.
사우디, 이란과 더불어 이슬람세계 3강을 겨루는 터키 또한 이란과 부쩍 돈독하다. 시리아 내전 종식에 양국이 의기투합했으며, 이라크를 더욱 잘게 분할하려는 쿠르드 독립의 움직임도 양국이 협력하여 대처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몸소 테헤란을 방문하기도 했다. 터키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각기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후예, 경쟁의식이 남달랐다. (세속의 수장) 로하니 대통령은 물론 (영성의 수장) 최고지도자 하메이니와도 회담했다. 지난해 이스탄불 현장에서 목격한 군사 쿠데타의 좌초 이후 터키의 방향 선회는 가속일로이다. 유럽의 일부가 되고자 했던 지난 백년과 급진적으로 결별한다. 더 이상 EU 가입에 안달하지 않는다. NATO에서도 명목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코소보를 '독립'시키겠다며 공습을 마다치 않았던 EU/NATO가 카탈루냐 사태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위선적 모양새를 냉소하며 비아냥거린다. 행동 또한 잽싸다. 이미 러시아산 S-400을 구매했다. 미국과 NATO의 공개적인 반대 의사에도 보란 듯이 감행한 것이다. 더 이상 20세기의 미국이 아니다. NATO 또한 냉전기의 유산일 뿐이다. 터키판 적폐 청산이다. 돌궐의 후예, 터키의 축 또한 명백하게 유라시아로 이동한다. 조만간 SCO 가입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NATO에서 SCO로의 이동, 세기적인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과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wikipedia

통계 지표가 객관적 토대를 말해준다. 터키와 미국 간 교역은 갈수록 줄고 있다. 미국의 원조로 성장하던 20세기의 터키가 아니다. G20 참석차 함부르크를 방문한 에르도안의 <차이트>(Die Zeit) 인터뷰가 몹시 흥미롭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 터키는 어느 쪽인가? 노골적인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워싱턴까지는 10시간이 걸린다. 모스크바는 2시간 반이 걸린다. 우리는 러시아와 흑해를 끼고 해양 국경을 맞대고 있다. 터키 여행객 가운데 첫손이 독일이고, 다음번이 러시아이다. 추체 상 2020년대에는 러시아 관광객이 첫 번째가 될 것이다.' 이미 양국 간에는 흑해를 가로지르는 송유관이 건설되고 있다. 터키의 핵발전소 또한 러시아가 짓고 있다. 2023년까지 송유관과 발전소 건설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항산과 항심은 공진화한다. 제2로마(이스탄불)와 제3로마(모스크바)가 합작하여 운명공동체가 되어간다.
올해 에르도안의 세르비아 방문 또한 몹시 인상적이었다. 터키가 표방하는 '신오스만주의' 행보와 포개진다. 오스만제국에서 떨어져나가면서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로 전락했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발칸의 소국들과 터키 사이에 FTA 체결이 논의되고 있다. 왕년의 연결망을 복구시키겠다는 뜻이다. 발칸의 남부 이슬람 소국들에서는 터키의 소프트파워에도 다시 솔깃하다. 오스만제국의 절정을 이끌었던 슐레이만 술탄 시대를 회고하는 <찬란한 세기>(Muhteşem Yüzyıl) 가 발칸의 무슬림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에르도안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사이에 있는 무슬림 국경 도시 노비파자르(Novi Pazar)도 방문했다. 거리는 온통 에르도안 사진으로 가득했다. 터키어로 환영(Hosgeldiniz)을 새긴 플래카드도 나부꼈다. 이런 뉴스는 영미권 매체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나도 아랍문자 공론장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지 언론들을 통하여 접하는 에르도안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남유럽부터 동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까지 움마 세계를 아우르는 '이슬람 지도자'로서 매력공세를 펼친다. 신상태와 신시대, 로마문자 공론장만 읽어서는 진실의 절반도 접근할 수가 없다. 키릴문자와 한문, 아랍문자 공론장을 보태어 '관점의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세력의 균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힘의 정치'와 '뜻의 정치'를 겸장해야 한다. 

▲푸틴-살만 정상회담.ⓒyandex.com

(구)중동이 (신)중서로 바뀌어가는 대반전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역설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살만 국왕이 친히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이례적이다. 획기적이다. 역사적이다.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2017년 최대의 외교 이벤트였다고 꼽겠다. 예견한 사람이 있었다. 작년 말 도하에서 인터뷰했던 <알자지라> 전 편집국장이 2017년을 '러시아의 해'가 되리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실로 (구)중동의 미국 동맹국들이 줄줄이 러시아로 전향하고 있다. 이란부터 시리아와 이라크를 지나 터키와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영향력이 부쩍 확장되고 있다.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시리아 내전의 전황이 바뀌면서 존재감을 한껏 높인 것이다. 사우디 국왕이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알현한 것 또한 중동의 판세가 이란-터키-러시아-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인공국가들을 대신하여 오래된 제국의 후예들이 판 갈이를 주도하는 것이다. 더 이상 미국에만 의탁해서는 장래를 장담하기 힘들어진다. 실은 미국으로 말미암아 사우디 역시 곤경에 처해 있다. 러시아를 굴복시킨다며 저유가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동맹국 사우디의 재정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러시아는 '북방의 사우디'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는 자원대국이다. 유라시아의 남과 북에서 공히 최대의 자원 수출국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특기할 사항은 에너지합작에서 나아가 군사합작에도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사우디 역시도 S-400 구매를 결정했다. 소총부터 미사일까지 온통 미국산이었던 사우디의 국방이 다변화되고 있다. 나는 이번 방문이 일시적인 변화라고 보지 않는다. 왕정 국가이다. 차세대로 왕위를 물려주어야 한다. 원만한 정권 계승을 위해서도 러시아의 보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살만 국왕은 무려 한 달에 걸쳐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순방에 나섰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아시아와 러시아 순회, 장기적 국가 비전 "사우디 2030" 또한 유라시아의 대통합에 조응해 갈 것이다. 아라비아와 유라비아와 유라시아의 공진화, 2030년이면 '중동'(中東)이 아니라 '중서'(中西)가 보편적인 용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푸틴-살만 정상회담.ⓒyandex.com

3. 신근서(New Near West) 

이라크와 리비아, 시리아에 앞서 아프가니스탄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앞세운 적폐들이 재차 미군을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새 천년 미국의 '침공' 아래 16년째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땅이다. 아프간 경제는 초토화되었다. '민주주의'를 전도하는 미국의 '해방군'이 세워둔 정부는 부정부패로 찌들어간다. 수도 카불만 근근이 지켜내고 있을 뿐이다. 지방은 군벌 치하이다. 중앙정부는 작동하지 않고, 지방은 무장 세력이 장악했다. 그 사이에서 아프간 민중들을 보호하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 바로 탈레반이다. 

러시아가 아프간에서도 실력을 발휘키로 했다. 시리아 모델을 아프간에도 적용시키고자 한다. 탈레반을 적대하지 않는다. 아프간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들과 협상해야 한다. 탈레반과 다른 세력 간 협상을 이끌어서 연합정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현재의 불안정은 미국의 괴뢰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 홀로 아프간의 안정을 도모할 수는 없다. 푸틴의 빼어난 정치력에 든든한 경제력으로 지원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벌써 인프라를 깔고 있다.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 철도를 깐다. 아프간의 북쪽이 러시아이고, 서쪽이 이란이며, 동쪽에 파키스탄이 자리한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이 아프간까지 연결된다. 러시아-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으로 종단하는 남북 교통회랑도 만들고 있다. 자금은 응당 AIIB에서 출자 받는다. 러시아-중국-이란과의 합작 속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유라시아의 지퍼(Zipper) 국가로 전변한다. 서유라시아와 동유라시아를 잇는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유라시아의 동과 서를 튼튼하게 엮고 남유라시아와 북유라시아를 단단하게 조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두 이슬람 국가를 통하여 유라시아경제연합과 일대일로와 남아시아지역협력(SAARC) 또한 포개지게 될 것이다. 유라시아의 세기, 인도양의 세기에 조응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20세기 대영제국이 남기고 떠난 적폐, 남아시아 대분할체제를 극복해가는 과업이기도 하다. 남아시아 또한 장차 극서와 중서보다 더 가까운 서쪽, 근서(近西)라고 불러도 좋겠다. 

딴 판이 열리고 새 판을 짜는 사업이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다. 히말라야에서 이행기의 충돌이 불거졌다. 중국군과 인도군이 장기간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금 한글 공론장의 보도는 로마자 공론장에 치우쳤다. 한문 공론장은 말할 것도 없고 키릴문자와 아랍문자 공론장에서도 인도를 지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탄의 영토에서 일어난 일이다. 중국과 부탄 사이 갈등에 돌연 인도군이 등장했던 것이다. 왜 인도가 부탄을 대신하여 영토 분쟁에 참견하고 개입하는가, 인도는 부탄의 독립과 주권을 침해하지 말라며 중국은 일침을 가했다. 사실상 인도의 속국을 오래 지속했던 부탄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노출시킨 꼴이다. 중국이 의도한 바였던가, 지금으로서는 확언할 수 없다. 외교문서가 공개되는 30년 후에나 밝혀질 것이다. 나는 그런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보는 편이다. 냉전기 중국과 주변국 사이 영토분쟁을 추적해본 적이 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자락에 깔려 있었다. 1962년 중/인 국경 분쟁은 제3세계를 둘러싼 양국 간 경쟁의 소산이었다. 1969년 중/소 국경 분쟁은 사회주의 노선을 둘러싼 양대국의 경쟁이었다. 1979년 중국-베트남 국경 분쟁 또한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지배, 즉 캄보디아를 베트남이 점령한 것에 대한 개입이었다. 2017년의 히말라야 분쟁 또한 유라시아의 새판 짜기 주도권을 두고 미래의 G2간 위상을 미리 보여준 것에 더 가까웠다.
사태를 한층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남아시아의 현저한 비대칭적 국제관계를 참조해야 한다. 히말라야 넘어서는 인도가 압도적인 대국이다. 부탄과 네팔, 스리랑카, 몰디브를 훨씬 능가한다. 그 중에서도 부탄이 유독 취약했다. 인도군이 부탄군을 훈련시킨다. 전시작전권이 없다. 부탄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되 외교는 인도가 대신해주었다. 사실상의 보호국이었던 것이다. 명실상부 '독립'한 것은 2007년에 이르러서이다. 비로소 외교주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군사적 종속 상태를 2017년에 드러내게 된 것이다. 중국-부탄 사이 도로 건설에 인도군이 출동함으로써 그 실상이 공개된 것이다. 이로써 2018년 부탄 총선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친인도세력과 반인도세력이 경쟁하고 있다. 역시나 프레임이 중요하다. 친인도와 반인도간 정쟁이 격화될수록 부탄과 인도는 거리감이 생겨날 것이다. 부탄에서 적폐는 친인도 진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노회한 노림수였다고 파악하는 까닭이다.
네팔과 스리랑카는 부탄의 미래다. 네팔의 좌파 정부는 중국과 적극 협력하며 인도와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세력의 균형'과 '관점의 균형'을 추구한다. 공항과 도로와 철도 건설은 물론 태양광 에너지 사업도 중국과 협력한다. 스리랑카에도 좌/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중국과의 바닷길 만들기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동인도양(벵골만)과 남중국해와 서인도양(아라비아해)를 잇는 허브 국가로 스리랑카는 탈바꿈하고 있다. 오래전 정화의 대원정선이 정박했고, 아랍의 신밧드가 황금보물을 발견했던 '실론'의 현대적 귀환이라고 하겠다. 중국-인도 간 대립이라는 '가짜 뉴스'가 홍수를 이루고 있을 때 뉴델리에 머무르고 있던 부탄 대사는 주인도 중국대사관을 방문했었다. 중국인민해방군 창설 90주년 행사를 참관했던 것이다. 중국과 부탄 사이 아직도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없다. 인도가 허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 행사, 그것도 군부 행사에 처음으로 참여한 것이다. 재차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무관할 수가 없다. 항산의 토대가 바뀌면 항심의 방향도 바뀐다. 중국산 공산품이 부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부탄의 약초들이 티베트를 지나 동중국 시장까지 팔려나가고 있다. 부탄이 외교권을 획득한 2007년 중국 여행객은 17명에 불과했다. 올해는 이미 일만 명을 돌파했다. 히말라야의 행복국가 부탄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2할이 유커이다. 장차 그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인구 백만이 되지 않는 이 작은 왕국의 살림살이를 지탱해주는 주요한 수입원이 된 것이다. 역시나 2017년 현재 인도와 영국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유학생들이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미얀마가 자리한다. 대영제국이 남기고 간 적폐의 모순이 뒤늦게 불거졌다. 로힝야족의 난민 행렬이 줄을 이었다. 불교문명에 바탕한 만달라국가와 이슬람문명에 바탕한 움마국가가 사라지고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들어선 것이 병통의 근원이다. 불교도가 다수인 국가에 무슬림이 이주하여 살게 된 것 또한 인도와 방글라데시와 미얀마를 인위적으로 다스렸던 대영제국의 소산이다. 시점과 장소가 공교롭다. 출범 반세기를 맞이한 아세안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노렸다. 하지만 로힝야족 사태로 아세안은 이슬람국가와 비이슬람국가로 나뉘고 말았다. 잔치 날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로힝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아라칸주가 일대일로의 거점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중국의 투자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운남성의 쿤밍과 연결되는 송유관이 깔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라칸을 통하여 중원이 극서와 중서와 근서를 만나는 허브였던 것이다. 이곳이 불안정해지면 유라시아의 에너지 연결망과 교통 연결망에도 장애를 미치게 된다. 음모론까지 제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흔들려고 하고 자와 세우고자 하는 자 사이에, 난세와 치세 사이에 힘과 뜻이 교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힘의 교착만 주목해서는 전체 판을 읽지 못한다. 힘의 대결과 뜻의 대결을 함께 숙고해야 진상이 드러난다. 미국에서 그토록 떠받들던 아웅산 수치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꼴이 마냥 석연치만은 않은 것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겉으로는 인권을 명분으로 미얀마를 때리지만, 실제 목표로 두는 것은 중국의 인도양 진출, 일대일로의 차단일 공산이 높다. BCIM(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 경제회랑을 교란시키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시끄럽고 벵골만은 어지럽다.  

4. 신중원(新中原) 

올해는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이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이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했다. 그러나 중국/홍콩의 일국양제에만 초점을 두는 것 또한 단견이다. 중국학만 해서는 더 이상 중국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는 신시대가 되었다. 그의 동선이 더 중요했다. 시진핑이 그렸던 선을 추적해가야 한다. 홍콩만 간 것이 아니다. 홍콩을 찍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모스크바에서는 함부르크로 이동했다. 한문과 키릴문자와 로마문자의 공론장을 겹겹으로 추적해야 그 전체상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베이징은 더 이상 대륙/홍콩만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린다. 세계지도를 겹겹으로 펼친다. 그 위에서 전개된 수천 년의 역사를 포갠다. 역지사지하고, 지피지기해야 한다. 더 이상 국(가)학은 없다. 유라시아학, 세계학을 해야 한다. 그래야 30년 후, 일국양제에 마침표를 찍는 2047년의 홍콩 또한 전망해볼 수 있다. 

▲ 홍콩-마카오-주하이 대교.ⓒbaidu.com

곧 홍콩과 대륙 간에도 대교가 개통된다. 남중국과 홍콩을 가로지르는 55km 세계 최대의 교량이다. 지금까지는 4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연말부터는 1시간에도 못미치는 이웃도시가 된다. 광동, 션젼, 주하이 등 광동성의 주요 도시와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11개 도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11개 도시 인구를 합하면 7000만에 이른다. 프랑스와 영국 규모의 독자적인 경제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국의 일부로 홍콩이 편입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중화세계와 앵글로색슨세계를 잇는 슈퍼-허브가 된다. 뉴 실크로드의 슈퍼 커넥터가 된다. 신세계화, 다른 세계화를 추동하는 지식과 정보, 금융과 행정의 중추가 된다. 상징적인 행사로 7월에 홍콩 도서전이 열렸다. 올해의 주제는 귀환 20주년이었다. 양안삼지의 주요 작가와 지식인들이 참가하여 다채로운 강연을 펼쳤다. 40여 개국, 700여 출판사가 집결했고, 백만 인파가 몰렸다. 글로벌 화교/화인의 소프트파워를 만천하게 과시한 것이다. 홍콩에 축적된 인문역량을 양껏 뽐낸 것이다. 홍콩은 더 이상 금융도시, 쇼핑의 천국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인문도시로 전변한다. 민간중화(民間中華, Civil China)의 허브로서 홍콩을 자리매김한다. 한문공론장과 로마자공론장이 홍콩에서 접속한다. 중국어가 영어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영어와 중국어가 공진화한다. 일지양문(一地兩文)체제가 정립된다. 다문자세계, 다문명세계이다. 동과 서가 역전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가 회통하고 융합한다.

홍콩이 중국어세계와 영어세계를 잇는다면 마카오는 포르투갈어세계를 연결한다. 마카오가 중국에 복귀한 것은 1999년이었다. 현재 마카오는 중국에서, 아니 아시아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도시가 되었다. 중국화와 세계화가 공진화하는 장소이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권역이 현재 2억 인구에 이른다. 브라질, 포르투갈, 기니 등 8개 국가와 중국의 경제 합작 포럼이 마카오에서 매년 열린다. 포르투갈은 인구 일천만의 국가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을 거치면 27개 EU 국가와 연결된다. 브라질도 일국으로 그치지 않는다. 5억의 라틴아메리카 시장과 이어진다. 마카오의 포르투갈 식민지 500년사를 '다른 백년'의 밑천으로서 재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유럽과 아메리카/아프리카 사이의 폭력적인 제국주의/식민주의 시절은 잊어도 좋겠다. 대륙간, 문명간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해간다. 대륙과 마카오의 새로운 연결망만큼이나 마카오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다른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화해를 위해서', 탈식민주의-탈제국주의는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다.  
홍콩과 마카오에만 외주만 주는 것도 아니다. 바다 건너 자리한 도시가 샤먼이다. 올해 샤먼에서는 브릭스 정상회담이 열렸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만 회합한 것도 아니다. '브릭스+'도 닻을 올렸다. 아메리카에서는 멕시코가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와 기니가, 동남아시아에서는 태국이, 중앙아시아에서는 타지키스탄이 초대되었다. 시리아의 재건을 약속한 장소가 아스타나였다면, 아프간의 재건을 다짐한 장소는 샤먼이었다. '샤먼 선언'을 통하여 외부자(미국과 NATO)가 아니라 아프간을 둘러싼 유라시아 국가들이 주도하여 아프가니스탄을 되살리기로 했다. '브릭스+'가 아프간을 재건하면 SCO의 일원으로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샤먼 선언에서 더 중요한 지점은 지하자원-위안화-금으로 맺어지는 삼두체제로 세계무역의 새판을 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달러가 사용되지 않는 별도의 국제결제시스템을 만들어간다. 달러 독점 체제를 다극화시키고 '민주화'시킨다. 이란의 천연가스를 위안화로 지불하고 홍콩이나 상하이에서 금으로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경제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현금경제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공산혁명, 마오쩌둥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를 갈수록 보기 힘들어진다. 유라시아의 동서남북에서 알리페이(Ali-Pay)가 마법의 주문처럼 널리 퍼지고 있다. 디지털 유라시아 또한 촘촘하게 형성된다.
그러함에도 지난 200년의 세계화와는 퍽이나 다르다. 자국의 발전모델을 윽박지르며 이식하지 않는다. 문명화, 근대화, 민주화시키지도 않는다. 나에게 좋다고 남에게 강권하지 않는다. 중국 내부의 개혁개방, 흑묘백묘론을 전 지구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념과 체제는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평화와 조화이다. 무역을 통해서 서로의 살림살이를 겹치게 만드는 것이다. 상부상조 운명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장사하고 돈 벌면서 먹고 살자는 것이다.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은 20세기를 향수한다. America First, 미국산 제품이 세계를 석권했던 1955년으로 퇴행한다. 전쟁으로 서유럽과 동아시아가 초토화된 1945년 이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했다. 지금은 1/4도 안 된다. 근근이 20%를 유지하고 있다. 점점 더 비중이 떨어질 것이다. 중국이 실질구매력에서 미국을 앞선 것이 2014년이다. 올해는 115%에 해당한다. 2023년이면 1.5배로 격차가 벌어진다. 2030년이면 GDP도 역전된다. 2045년이면 중국이 미국의 3배가 된다. 벌써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1955년 미국의 대통령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자유 무역을 옹호하고 기후변화를 선도적으로 대처하며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려 든다. 열린 마음으로 외부 세계를 껴안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국주의로 쪼그라들고 있고, 중국은 제국으로 개방되고 있다. 동반구와 서반구가 반전한다.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한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반전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세기형 국민국가가 아니다. 21세기의 새 판, 유라시아의 중원이다. 동서남북으로 길을 뚫는다. 세계의 모든 길이 중원으로 통한다. 그 새 길을 따라서 오래된 합창곡, '구세계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5. 재조산하, 개조산하(再造山河, 改造天下) : Make Eurasia-Korea Great Again

극서와 중서와 근서와 중원을 널리 살피고 있는 극동의 젊은 지배자가 있다. 북조선의 김정은이다. 그를 우습게보아서는 곤란하다. 그가 유학했다는 스위스를 며칠 둘러보았다. 백투혈통 하나로 막중한 책무감을 상속받은 녀석이다. 어릴 적부터 극서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국제적인 도시에서 보고 배운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시야를 훈련받았다. 아랍의 운명 또한 주시해 왔을 것이다.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던 이라크 후세인의 말년을 잘 안다. 리비아 가다피의 운명도 알고 있다. 이란의 현재도 면밀하게 천착하고 있을 것이다. 시리아부터 아프가니스탄까지 형성되고 있는 새 판짜기 또한 직시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호흡이 길 수밖에 없다. 건강관리만 잘하면 10년, 20년, 반세기도 지배할 수 있는 친구이다. 널리 살피고 길게 볼 것이다. 남쪽의 5년짜리 대통령과는 확연히 시선이 다르다. 일단 저 북녘의 왕조체제에 대한 호불호는 괄호 속에 묶어두고 따지지 말기로 하자. 나의 잣대로 남을 재단하는 것도 지난 백년의 몹쓸 습관, 적폐이다. 하나의 민족이되, 두 나라 두 국민임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자. 통일(統一)의 강박을 떨쳐내고 불일불이(不一不二)를 연마해야 한다. 하나이자 둘이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북조선을 같은 피를 나누어가진 동족이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외국'(外國)으로서 있는 대로 감당해야 한다. 그 북조선의 유일권력으로서 김정은 또한 현실로써 감수해내어야 한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관계가 자라날 까닭이 없다.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이야말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차라리 그를 쉰이 되고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 '계몽 군주'가 되도록 견인하는 편이 남한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불가능을 꿈꾸되,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진작부터 이런 관점에서 북핵 해결책을 제시한 나라 또한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지속적으로 '쌍중단'을 요구했다. 북조선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시하고, 미국과 남한 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금 역지사지해야 한다. 북조선만 도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한국도 도발을 그치지 않고 있다. 지구 최강의 군대와 끊임없이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남한이 북조선의 시각에서 어찌 보일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미군이 새 천년 이래 지난 17년간 유라시아 곳곳에서 어떤 일을 벌여왔는지도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다면 한미연합훈련이 방어용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소리인가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쪽 모두 중단해야 한다. 아무런 선행조건 없이 대화에 임해야 한다. 

이란 핵합의를 새로운 국제관계의 모델로 삼자는 로하니 대통령을 복기해보자. 시리아 내전을 해결한 아스타나 합의도 참고해보자.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나선 샤먼 선언도 참조가 된다. 북조선을 유라시아의 일원으로 연결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러시아 또한 중국 이상으로 북조선의 정권 교체에 하등의 관심이 없다. 목표는 북조선(및 한반도)의 안정화이다. 마치 시리아 정권을 안정시키고 유라시아 연결망 속에 시리아를 편입시킨 것처럼 태평양 건너 미국만 해바라기하는 북조선을 유라시아의 새 마당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북조선과 남한을 동북 3성과 연해주와 동시베리아와 북해도(홋카이도)와 소통시키는 것이다. 6자회담이 작동하던 시절에 견주면 중국은 너무나도 커져버렸다. 다시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은 어느 쪽도 썩 내켜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를 잘 활용해야 한다. 모스크바까지 갈 것도 없다. 도쿄에서, 서울에서, 베이징에서, 평양에서 2시간 안팎이면 극동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합할 수 있다.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닌, '블라디보스토크 합의' 같은 것을 궁리해봄직 하다.

▲ 동시베리아 고속도로.ⓒ이병한

혹은 '하노이 합의' 발상도 궁굴려 볼 만하다. 북조선/남한, 중국/대만만큼이나 남/북베트남 또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한 고리로서 작동했다. 냉전기 북조선과 형제국으로 돈독했던 국가이자, 탈냉전기 포스트-차이나의 일환으로 한국과도 친밀한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남한과 북조선 및 주변 4강국과 모두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가 바로 베트남이다. 냉전기 평양에서 일했던 외교관들의 아들과 딸이 직을 계승하여 탈냉전기 서울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인구 1억, 앞으로 아세안의 주도국이 될 나라이기도 하다. 동북아와 동남아를 잇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한 나라이기도 하다. 중화세계의 유산은 물론 서로마(프랑스)와 북로마(소련)의 흔적도 간취할 수 있는 도시가 하노이(河內, Hà Nội)이기도 하다. 곧 APEC 정상회담이 하노이에서 열릴 만큼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이기도 하다. 마치 동방정교세계와 이슬람세계가 연결되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시리아 합의를 만들어낸 것처럼, 하노이를 발판으로 동북아 6개국과 주최국 베트남이 협력하는 '6+1' 구상을 시도해봄직하다.

앞으로 5년이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정권이 5년 더 이어진다. 러시아에서는 푸틴 정권이 6년 더 지속될 것이다. 양국 모두 포스트-아메리카 시대, 리(셋)-유라시아 시대의 다문명세계, 다극화체제에 우호적이다. 천금 같은 5년이다. 천시에 촛불정권이 들어섰다. 향후 5년간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 '다른 백년'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유라시아경제연합과 일대일로와 남북합작이 상호진화해가야 한다. 그게 촛불정권의 '운명이다.' 그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라고 8할의 국민이 촛불을 밝혀주었던 것이다. 적폐 청산이 단지 지난 10년 특정 세력을 겨냥한 정치보복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안에서도 품지 못하는데, 밖을 어떻게 껴안는단 말인가. 저 멀리 동학 횃불의 좌초 이래 지난 뒤틀리고 꼬여버린 120년, 천하대란이야말로 적폐의 근원이다. 천하대란을 천하태평으로 반전시키는 천지개벽이야말로 촛불혁명의 완성일 것이다. 제발 혁명(시대교체)과 반정(反正, 정권교체)을 분별해야 한다. 

▲ 북러시아의 북극해.ⓒ이병한

하늘과 땅이 개벽하고 있다. 북방 천지에서 신대륙이 발견되고 있다. 신해양이 열린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해가 열리고 있다. 북유럽과 북러시아와 동시베리아, 북해도의 여러 항구 도시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북쪽의 바닷길, '아이스 실크로드'(Ice Silk road)가 개창한다. 북해의 바닷길마저 그 자태를 드러내면서 유라시아는 비로소 '사해동포'(四海同胞)에 부합하는 내륙이 되어간다. 태평양은 이제 동해이다. '대동해'(大東海)이다. 대서양은 이제 서해이다. '대서해'(大西海)이다. 인도양은 곧 남해이다. '대남해'(大南海)이다. 북극을 꼭지점으로 '대북해'(大北海)까지 등장한다. 동서남북 사해로 둘러싸인 유라시아는 만인이 동포이다. 민족애와 이웃애가 사해동포애와 공진화한다. 19세기형 구미(歐美)와 20세기형 아태(亞太)를 대신하는 21세기의 구아(歐亞), 유라시아-코리아 구상을 본격화해야 한다. 서쪽에 시리아상인이 있었다면, 동쪽에서는 개성상인이 있었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이자, 20세기 북조선과 남한의 적폐를 해소할 수 있는 개성공단이 자리했던 곳이다. 영어로 나는 고려인(Korean)이었다. 아랍어로도 고려인이었다. 러시아어로도 고려인이다. 2015년 한국인으로 출발한 견문이 2017년 고려인의 자각을 안고 마무리되어간다. 개성과 고려와 유라시아의 공진화를 꾀하게 된다. 개성으로부터 '재조산하'(고려)와 '개조천하'(유라시아)를 재개해야 할 것이다. "Make Eurasia-Korea Great Again", 부디 촛불혁명을 통하여 등장한 신시대의 새 정권이 재조산하(再造山河)와 개조산하(改造天下)를 국시로 삼는 '나라다운 나라',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7년을 미리 회고하는 21세기 고려인의 소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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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