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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31일 목요일

군인권센터,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군 수사 내용 공개


“링거 맞혀 다시 폭행, 성기에 안티푸라민 바르기도···”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시간 2014-07-31 17:42:56 최종수정 2014-07-31 18:20:56 윤 일병 사망사건 군인권센터는 지난 4월 사망한 윤 모 일병의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에 관한 군 수사내용을 공개했다.ⓒ뉴시스 “성기에 안티푸라민 바르기, 가래침 핥아먹게 하기, 치약 한통 먹이기··· 윤 일병은 부대 전입 후 한 달동안 매일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31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 사망한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 윤 모(24) 일병의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가혹행위에 관한 군 수사내용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 4월 7일 윤 일병은 내무반에서 만두 등 냉동식품을 함께 먹던 중 선임병에게 가슴 등을 맞고 쓰러졌다. 윤 일병은 당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뇌손상을 입어 다음 날 사망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윤 일병이 사망한 의무대의 상습 가혹행위는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잔혹했다”고 설명했다. 군인권센터가 확보한 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윤 일병은 부대로 전입 온 3월 초부터 사고가 발생한 4월 6일까지 매일 선임병들로부터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로 상습 폭행을 당했다. 윤 일병 폭행 증거사진 윤 일병 폭행 증거사진ⓒ군인권센터 선임병들은 폭행을 당해 다리를 절고 있는 윤 일병에게 다리를 절뚝거린다며 다시 폭행했으며, 힘들어하는 윤 일병에게 링거 수액을 주사한 다음 원기가 돌아오면 다시 폭행을 가했다. 또 허벅지 멍을 지운다며 윤 일병의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발라 성적인 수치심을 주기도 했으며, 치약 한통 먹이기, 잠 안 재우고 기마자세 서기 등의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이 같은 상습폭행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도 부대에서는 어떠한 병사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군인권센터 측의 설명이다. 본부중대에서 떨어져 있는 의무대대의 물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이 부대를 관리하던 유일한 간부였던 유모 하사(23) 역시 윤 일병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가혹행위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 하사는 가혹행위를 주도한 나이가 많은 이모(25) 병장에게 ‘형’이라 부르며 함께 어울리기까지 했다. 임태훈 소장은 “상습적인 폭행, 사고 직후 폭행사실을 숨기자고 입을 맞추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 의식을 잃은 윤 일병에게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정황 등으로 봐서 가해자들의 공소장을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화통화 결과 사단장과 군단장 등이 윤 일병 사건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군 수사 당국이 사건을 축소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소장 변경 및 사건의 진상을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30일 군 수사당국은 윤 일병에게 상습 구타를 가했던 이모 병장(25)등 병사 4명(상해치사)과 가혹행위 등을 묵인한 유모 하사(23)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단식일기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세월호 가족 단식 18일째 “10만 촛불 기도합니다” 입력 : 2014-07-31 19:05:37 노출 : 2014.07.31 21:31:44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시작한 지 18일째다. 애초 15명으로 시작한 단식농성단은 단 두 명만 남았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과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47)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후송됐다. 김씨는 광화문 광장에 유 대변인은 국회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한뎃잠을 자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후 10시면 쓰러지듯 잠들고 오전 5시께에 일어난다. 광화문에서 생활하지만 집안 걱정도 끊이질 않는다. 그는 단식 11일째 일기에서 ‘멋 부리기 좋아하는 둘째 딸’에 대해 썼다. “둘째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애에요. 그것밖에 몰라. 옷 예쁘게 입고 꾸미고. 그런데 유민이 사고 나고 나서는 잠만 자요.” 사실 김씨는 이렇게 단식이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단식 9일째인 지난 22일자 일기에서 “단식을 하며 싸우면 여당 의원님들과 대통령이 특별법을 수용할 거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부가 무섭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가슴이 없는 철면피들만 있더라”고 썼다. 단식을 이어갈 수 있는 큰 힘은 국민들에 대한 ‘기대’다. 세월호 100일 촛불집회 이튿날 그는 “국민들이 이토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정성을 봐서라도 꼭 특별법을 제정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썼고, 지난 29일 일기에는 “촛불이 하나 둘 모여 8월 15일에는 10만이 넘는 촛불이 밝혀지지라 기도 해봅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7·30재보궐선거 결과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 했다. 유가족들에게 이번 재보선은 특별법 통과가 될 수 있는 마중물이었다. 김씨는 31일 일기에서 “이것이 국민들의 심판일까요. 일부 주장처럼 우리 유가족이 너무하는 걸까요.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김씨가 단식을 이어가며 쓴 '단식 일기' 일부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다.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2일 오늘은 단식 9일째 입니다. 보통은 새벽 5시면 눈에 떠져요. 밤 10시가 되면 쓰러져서 자고요. 아침에 갑자기 빗발이 날려 일어나자마자 텐트 위에 비닐 덮니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비닐 덮고 나니 어지럽더라고요. 한 시간 정도 다시 잠들었네요. 배고프다는 건 못 느끼겠고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굳이 먹고 싶다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다만 이가 너무 아파서 소금으로 양치질을 못 할 정도고요. 어깨가 아파서 힘듭니다. 의사는 약이 없다네요. 단식 멈추고 밥을 먹어서 몸에 영양분을 줘야 한대요. 단식하기 전에는 단식을 하면서 싸우면 여당 의원님들과 대통령이 특별법을 수용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정부가 무섭네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아요. 가슴이 없는 철면피들만 있더라고요. 단식하다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겁니다. 7월 23일 오늘은 단식 10일째 입니다. 유민이에게 편지를 썼어요. 유민아 유민아. 아빠가 정부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우리 유민이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 못 했구나. 벌써 내일이면 100일이 되네. 우리 이쁜 딸 지금은 행복하고 편하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지? 지난 몇 년 동안 여름 휴가 한번 못 가서 마음이 항상 아팠어. 그래도 작년 가을에 아빠가 좋은 회사 취직해서 올해는 유민이랑 유나랑 꼭 여름휴가 가려고 계획까지 세워놨는데. 왜 아빠가 마음이 더 아프고 슬픈지. 왜 이렇게 단식까지 하면서 싸우는 지 알겠지? 우리 유민이 살아 있을 때 해준 게 너무 없네. 앞으로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더 아프다. 아빠가 너무 많은 죄를 지었구나. 아빠가 힘들게 살아서 미안해.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4일 오늘은 단식 11일째 입니다. 단식 전에는 밥을 하루에 한 끼, 많이 먹으면 두 끼를 먹었어요. 이제 단식 끝나면 무조건 하루 세 끼 먹고 싶은 걸로 꼬박 꼬박 먹을 겁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광화문 검정 봉지 들고 다니는 사람만 봐도 죽겠어요. 둘째는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애에요. 그것밖에 몰라. 옷 예쁘게 입고 꾸미고. 그런데 유민이 사고 나고 나서는 잠만 자요. 학교도 잘 못 다니고. 애 엄마가 깨워도 애가 일어나질 못 한대요. 애 엄마가 전에 밤새 너무 슬프게 울었어요. 그래도 그 이후로는 학교 잘 다니고 있대요. 7월 25일 세월호 100일 집회 끝나고 새벽 네 시에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하네요. 여기 광화문 광장에 사람이 꽉 찼어요. 국민들이 이토록 지지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정성을 봐서라도 꼭 특별법을 제정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7월 28일 오늘은 단식 15일째 입니다. 아침부터 야당 의원들이 분주하게 이순신 동상 앞으로 모였어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라고. 기자회견이 끝나고 전해철 의원과 몇몇 의원들이 내 몸 상태를 걱정하시며 단식을 중단하라고 하셨어요. 나는 단식을 안 멈출거에요. 그러니 야당 의원들도 약한 모습 보이지 마시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좋겠네요. 날씨가 덥네요. 김병권 위원장은 어제 총회 참석했다가 바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제 광화문 단식은 예지 아빠와 나, 둘만 남았네요. 두 시가 넘으면 한 낮의 폭염이 시작됩니다. 예지 아빠 혈압이 3일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70/50으로 떨어졌어요. 위험 수치라고 하네요. 예지 아빠도 오늘 병원으로 갔습니다. 솔직히 나도 두렵네요. 이제 광화문에 혼자 있어야 하는데. 언제 쓰러질지. 그래도 우리 유민이를 생각하면. 공포에 질리고 두려움에 몸서리 치며 엄마, 아빠 살려달라고 울부짖다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그 생각 하면서 참고 버티고 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이 억울하게 생매장 당했는지 꼭 밝혀 내려면 나라도 광화문을 지켜야지요. ▲ 단식 농성중인 2학년 10반 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씨를 1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만났다. 사진=박준수 제공 7월 29일 오늘은 단식 16일째 입니다. 대전에서 한 시민이 오셨습니다. 큰 쇼핑백을 건네 주셨어요. 힘내라고만 하고 몇 마디 하지도 않고 펑펑 우시며 가버리셨어요. 쇼핑백을 열어보니 노란 종이배 304개랑 편지 한 장이 있었어요. 편지를 펼쳐봤는데 아무런 글도 없는 백지편지.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3일 전부터 광화문 국민 문화 촛불 행사를 하고 있어요. 그레도 첫날보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네요. 촛불이 하나 둘 모여 8월 15일에는 10만이 넘는 촛불이 밝혀지리라 기도 해봅니다. 7월 31일 오늘은 단식 18일째 입니다. 이것이 국민들의 심판인가요. 여당 11곳 야당 4곳의 결과가 나왔네요. 일부 주장처럼 우리 유가족이 너무하는 걸까요. 더 많은 보상, 배상을 받으려고 단식까지 하며 싸우고 있는걸까요. 정말 우리는 유가족충인가요. 여기서 단식을 중단하고 주는대로 먹고 떨어져야 할까요. 너무도 허탈합니다. 국민들의 심판이. 야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처 때문인 거 같습니다.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보면 야당은 강하게 어필하지도, 밀어붙이지도 않았어요. 도대체 유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는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네요. 무능한 당 지도부의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일기마저 쓰기 싫네요. 이하늬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haneelooki

통일의 국제정세


<분석과전망>통일의 외적 조건은 동북아의 화해.협력.평화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07/31 [17: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현 시기 벌어지고 있는 북미대결전은 우리의 통일문제와는 어떠한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일까? 정세전문가들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추상이 아니다. 매우 실물적이며 구체적인 문제의식이다. 북미대결전을 통일문제와 결부시킨다는 것은 통일 관련되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어내고 또한 그 전망을 밝히는 문제이다. 통일 관련되는 국제정세란 통일의 객관요인으로서의 국제정세를 의미한다. 통일의 객관요인인 국제정세와 관련, 지난 9~11일 이화여자대학교가 주관한 제13차 한독포럼은 통일 관련 전문가들에게 적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럼에는 독일통일 관련 독일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 중에서도 한독포럼 독일 측 위원장인 하르트무트 코쉬크(55) 연방하원의원은 단연 돋보였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한파 의원이어서이다. 독한의원친선협회 의장이기도 한 코쉬크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는가 하면 한국관련 저서도 <독일·한국-통일·분단>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 평화·화해, 그리고 통일의 길을 가는 한국> <우정의 정원-독·한 관계의 과거, 현재와 미래> 등 세 권이나 된다. 독일에서도 출중한 정치인이다. 독일 통일 직후인 90년 하원의원 당선 후 지난해 총선까지 무려 7선의원을 거쳤다. 지난해까지 앙겔라 메르켈 내각의 재무차관을 지냈다. 코쉬크는 통일의 객관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국제정세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문화일보 김영희 대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물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독일 통일에 찬성했다는 것 그리고 회의적 시각을 가졌던 주변 국가들도 태도를 바꿨던 것을 먼저 강조했다. 그것들이 독일 통일을 유리하게 했던 대표적인 유럽정세라는 것이었다. "독일 통일은 그 당시 유럽의 정치적인 환경, 그리고 미국과 소련 관계를 포함한 국제적인 환경을 배경으로 해서 가능했다"고 언급한 것이다. 코쉬크는 자신의 견해를 동북아정세에 대한 것으로 확장시켜 피력했다. "남북, 한·중, 한·일 관계의 정상화로 동북아 화해·협력·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통일의 외적 조건"이라는 이영희 대기자의 견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를 하면서다. 통일의 객관요인으로 기능하는 국제정세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밀하게 구상하고 주도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 기본이며 그 주도의 동력 또한 분명하게 존재하게 되어있다. 많은 정세전문가들이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포하고 인공위성제조발사국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특히 핵-경제병진노선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한 것 등에 대해서 통일의 객관요인과 관련시켜서 보려고 하는 이유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높이는 활동은 현재로서는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성을 구성.강화하는 결정적 내용이다.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당장에는 북미대립의 축으로 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대북적대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힘과 힘이 격돌하는 국제정세의 역학관계에 따르는 추론이다. 이를 통해서 정세전문가들이 확인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성 약화가 미국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북미대결전의 결과로 강제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반세기 이상 치열하게 진행되어왔던 북미대결전의 역사를 천착해보면 상식적 수준에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다. 미국의 대북적대성 약화는 통일관련 동북아정세에서 핵심적 요소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적대성 약화 징후는 직접적으로 감지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군사적으로 치열한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북미관계이다. 그렇지만 시선을 돌려 동북아정세라는 큰 틀에서 보면 최근 시기에 들어 미국의 대북적대성이 약화되고 있는 흐름들을 비교적 또렷하게 확인하게 된다. 일본의 대북교섭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북한에 있는 ‘일본납치자문제’ 그리고 일본의 대북경제제제 일부 해제 등을 교섭내용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종국적으로는 북일수교를 그 방향으로 진행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대북관계개선 흐름은 객관적으로 보면 미국의 대북적대성이 외부에서부터 약화되고 있는 것에 따른 결과이다. 이는 동시에 이후 미국 자체의 대북적대성 약화를 가속화시킬 조건으로도 된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관계개선 움직임이 최소한의 성과라도 마련하게 된다면 이것이 통일의 객관조건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코쉬크는 일본이 중국 북한은 물론 특히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전향적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일본 경제의 미래가 지역의 신뢰와 협력에 달렸다는 걸 알아야 한다"면서 "일본은 과거사 청산을 넘어서 다른 국가와 이해하고 소통하는 다리를 놓는 것이 결국에는 이기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거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는 북일정상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과거청산문제이다. 일본의 대한 과거사청산문제는 한일관계개선의 핵심으로서 위안부 문제나 독도문제 해결 등을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북일정상화문제와 한일과거사청산문제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있는 문제이다.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물론 북일정상화문제이다. 북일관계진전이 한일관계발전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한일과거사청산 문제가 이때껏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북일정상화에 진척이 없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현 시기 이루어지고 있는 북일대화를 우리정부가 실천적으로 면밀히 주시해야되는 이유이다. 코쉬크가 이영희 대기자의 말에 동의한 것 중에서 한중관계 발전 역시 통일의 외적 조건으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요소이다. 7월초 한중정상회담은 밀월관계를 과시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들을 적잖게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교류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992년에 수교를 맺은 이래 중국은 10년 동안 한국 최대 교역국의 지위에 올라있다. 한국 수출에서 무려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중국이다. 국제사회는 특히 양국이 정상회담 후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하기로 한 것에 대해 크게 주목했다. 미국으로 하여금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게 했던 것도 이것이었다. 코쉬크가 이영희 대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헬무트 콜 초대총리가 독일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에 대해 높게 평가한 것은 우리정부의 통일정책 구사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프랑스·영국·폴란드 등은 독일 통일을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난관이었다. 이에 대해 콜은 ‘독일 통일은 유럽의 정치환경과 상치돼서는 안 된다’ 논리로 대응했다.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정책을 콜이 곧바로 내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코쉬크의 주장에 따르면 콜의 그러한 적극적인 행보는 결국 독일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에 상당한 성과를 낸 것이었다. 코쉬크가 콜을 높이 평가한 것은 결국 우리정부에게 한일관계는 물론 한중관계도 통일정세 형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어갈 것을 주문한 것에 다름 아니다. 코쉬크가 통일의 외적 조건으로서 동북아정세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것으로서 남북관계문제이다.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통일관련 국제정세로 지향시켜나가는 노력을 하는 것은 결국은 남북관계개선과 결부되어야만이 통일관련 직접적인 성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대통령 되고 싶다"던 손학규, 꿈을 접다


[인물탐구] 1993년 민자당 입당으로 시작한 손학규 정치역정 '21년' 14.07.31 19:55l최종 업데이트 14.07.31 21:00l이주연(ld84) 기사 관련 사진 ▲ 손학규 '웃으며 떠납니다'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를 나서며 차량에 올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7월 31일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약속한 시각. 회견 장소인 국회 본청 앞에 도착했지만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차 문을 열지 않았다. 3분여 간 미동도 않던 그는 눈가를 훔친 뒤 차 문을 열고 나섰다. 1993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들인 뒤 21년 간 쌓아온 정치 역정을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2012년 6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다,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던 그는 2년여 뒤인 이날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나의 꿈을 이제 접는다,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했던 짐들을 이제 내려 놓는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하루 전 치러진 수원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한 손 상임고문은 "지금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20여 년 간 정치인으로 살아온 손 상임고문은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라고 말하며 정치인으로서 마침표를 찍었다. "한나라당 탈당 후 시베리아 땅으로... 순탄치 않았지만보람 있었다" 손 상임고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주당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냈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는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를 시작하며 민주자유당(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입당한 것이 그에게는 부정적인 꼬리표로 작용했다. 그는 민자당 입당 직후 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5대 총선에서 재선한 그는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3선 의원이 됐고, 2002년 민선 3기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랬던 그는 2007년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빅 3'로 꼽혔던 그는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기 위해 저 자신을 깨뜨리며 광야로 나선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라며 "한때의 돌팔매를 피하려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선택을 두고,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정치 생명을 걸고 탈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창당 과정에 역할을 했고,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대표를 두 차례 역임했음에도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 상임고문을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희미해진 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2012년 7월 고 김근태 의장을 따르는 당 내 모임인 '민평련'이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그는 "5년 전 한나라당에서 탈당했다"며 자신의 주홍글씨를 언급했다.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억지로 벗으려 할 것도 없다"라며 "다만 내가 젊어서부터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 사회적 약자, 남북 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김근태 의장이 '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겠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주홍글씨를 언급하며 '죗값을 치르겠다'는 그에게 민평련은 대선 후보 지지투표에서 손 상임고문을 1위로 뽑는 것으로 답했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입니다" 기사 관련 사진 ▲ 정계은퇴 선언한 손학규 7.30 경기 수원 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실제 그의 뿌리는 '야성'에 있었다. 민자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그는 대학 시절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투신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에는 고 김근태 상임고문,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던 때에도 기독교 사회운동에 몸담았었다. 손 상임고문은 박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날 동시에 목숨을 얻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부마항쟁 시 체포대 보안대로 끌려가) "이유도 묻지 않고 48시간 동안 두들겨 맞았다, 그러고 나가더니 이틀 밤이 지나서야 헌병이 와 '괜찮으실 거에요'라고 하더라"라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돌고 돌아 자신의 뿌리로 돌아온 손 상임고문은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선출됐고, 18대 총선(2008년)을 진두지휘했다. 대선 대패 후 총선 참패도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이뤄내고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결국 당시 통합민주당은 81석 확보에 그쳤다. 그는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 당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평당원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할 것"이라며 대표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 생활에 돌입했다. 2년여 뒤, 정계에 복귀한 그는 2010년 10월 민주당 당대표로 또 다시 선출됐다. 이후 2011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당선됨에 따라 당 안팎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당 대표로서 손 상임고문은 '야권대통합'을 제안하며 야권 지형 확장에 나섰고, 그 결과 정치권 바깥에 있던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이해찬·문성근 등 친노 핵심인사와 김기식·이학영 등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된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을 이뤘다. '야권 대통합'은 그에게 자부심이었다. 2012년 9월 대선 후보 순회 경선이 이뤄지던 때, 마지막 경선지인 서울에서 손 후보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누가 뭐래도 저는 야권 대통합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야권 대통합으로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기대를 받고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을 받게 되었다. 야권 대통합이 되었으니 제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새 지도부의 구성을 원혜영 임시 대표에게 맡기고 저는 조용히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갔다.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쭉쭉 뻗어 올라 새누리당을 10% 이상 앞섰다. 우리는 총선 승리의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다." 당시는 이미 문재인 후보로 대세가 기울어져있던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그는 이렇게 연설을 마쳤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호응을 얻었던 손 상임고문은 결국 문 후보에 패해 당의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대선 후 독일 유학길에 오르며 정치권 밖에 머물렀던 손 상임고문은 '자의반 타의반' 7·30 재보선에서 수원병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결국 패배했다. 20년 정치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자리. 31일 손 상임고문은 회견 내내 웃음을 띄며 정계은퇴 뜻을 밝혔다. "정치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국민의 삶이 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시베리아 땅으로 나선이래 민주당과 함께한 저의 정치 역정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보람있는 여정이었다"라고 정리했다. 앞으로의 일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유로운 시민인데 무슨 특별이 일정이 있겠어요,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21년간 정치인으로 살았던 그는 이제 '자유인 손학규'가 됐다. 태그:손학규, 저녁있는 삶, 정계은퇴 태그입력

“죽산의 뜻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사대주의 배격해야”


“죽산의 뜻처럼 남북이 하나 되어 사대주의 배격해야” 죽산 조봉암 선생 55주기 추모제 열려 이창훈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7.31 18:12:01 트위터 페이스북 ▲ 죽산 조봉암 선생의 55주기 추모제가 31일 오전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의 55주기 추모제가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중앙회(회장:김용기) 주관으로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개최됐다. 이날 추모제에서 김용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죽산 선생의 죽음 이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4.19민주혁명과 이 나라를 수십 년간 독재 치하에 놓이게 한 5.16군사정변이 연이어 일어났다"고는 "만약 죽산 선생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 뜻을 이뤄냈더라면 우리 역사의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며, “어서 고인의 뜻이 이뤄진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무용가 이삼헌 씨와 정영미 씨의 진혼무 광경.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추도사에 나선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최근 국제정세를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국가원수들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탓이 아니라,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에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지 이사장은 "이러한 때에 사대주의에 빠져 나라의 정신을 팔아먹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죽산 선생 뜻처럼 남북이 하나가 되어 나라의 힘을 키우고 사대주의를 배격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죽산의 장녀 조호정(86세)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과 각계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 추모국화가 놓여진 죽산 영정.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 1953년 광복절 8주년에 중앙청앞에서 경축사를 낭독하는 죽산. [사진제공-이창훈 통신원] 죽산 조봉암이 1959년 7월 31일 서울형무소에서 오전 11시 3분에 사형된 뒤로 오랫동안 진실이 묻히게 된다. 그러던 중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그의 측근들에 의해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재개된다. 이어 장택상의 비서로 정치에 들어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진상규명을 요청하였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07년 7월 18일 진실화해위원회(당시 위원장 송기인)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재심 등의 상응조치를 권고했다. 이후 법원에서는 재심을 받아들여 2011년 1월 20일 59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더불어 유족들과 기념사업회는 보훈처에 죽산 선생을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편, 북측에서는 자주독립운동과 조선공산당에 참여했던 죽산 선생이 이승만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자, 애국열사릉에 가묘를 설치하고 1990년에는 ‘조국통일상’을 추서하는 등 민족지사로 모시고 있다.

2014년 7월 30일 수요일

[좌담] 열하루 '세월호 단식' 끝내는 새정치민주연합 4명의 의원들


"정치력 부재와 불신, 내 탓이오! 세월호 특별법, 협상 대상 아니다" 14.07.31 14:10l최종 업데이트 14.07.31 14:10l 남소연(newmoon) 장윤선(sunnijang) 기사 관련 사진 ▲ 단식 11일째 강동원,유은혜,남윤인순,은수미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유은혜, 남윤인순, 은수미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처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유가족들께서는 건강을 생각해서 단식을 멈춰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 저희가 대신 단식을 하고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남윤인순, 유은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지난 20일 '엄마의 심정'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그들보다 엿새 앞서 국회 본청과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시작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매일 아침 국회에서 마주치면서 도무지 미안하고 민망해 피할 수 없었던 동조단식이었다. 뒤이어 25일 강동원 의원이 단식대열에 합류했다. 세월호 참사 106일을 맞이하는 7월 30일 현재까지도 특별법 제정에 한 치도 진전이 없는 도돌이표 상황에서 이들은 단식을 일단 끝내기로 했다. 단식 중이던 유족 20여 명이 이미 실려 나갔고 이젠 둘만 남은 상황이지만, 국회의원 넷이 단식만 하고 있기엔 '싸워야 할' 현안이 너무 많아 8월 새로운 투쟁국면을 위한 전환적 조치인 셈이다. 그들은 이날 국회 본청 2층 앞 콘크리트 바닥에 철푸덕 앉아 좌담을 시작했다. 야당 국회의원 넷이 무려 열하루씩이나 곡기를 끊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해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생까는' 상황에서 더는 이대로 앉아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들은 "정치실종" "정치의 부족" 등을 성토하며 "내 탓이오"를 외쳤다. 전직 사회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고작 단식이나 하고 있음에 매우 열패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곡기까지 끊었지만 국민들로부터 칭찬은커녕 원성만 자자한 현실도 자괴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일부 댓글엔 "뒈질 때까지 단식을 하건 말건" 등의 냉소도 쏟아진다. 곡기를 끊어도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는 정치현실에 암담한 듯 한숨도 자주 터졌다. 이들은 또 "유가족들은 8·15 때 교황님이 오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빨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당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를 향한 쓴 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직을 걸고 세월호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며 "그럼 직을 걸고 추진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셔야 한다"고 두 대표를 정조준 했다. 다음은 7·30 재보궐선거가 열린 30일 오전, 네 의원과 나눈 좌담을 정리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이후 바뀌었나? 바뀔 조짐 있나" - 지난 20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만 열하루가 지났는데 무엇이 달라졌나. 은수미(아래 은) :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저희보다 먼저 단식을 시작한 유가족들을 대신하겠다는 거였고, 다른 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였다. 그러나 여기서 만 열하루를 보내며 느낀 건 암만 저희가 나선들 유가족들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그 장면을 바라보다 저희도 따라 동조단식을 하는 건 정말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가 제대로 섰더라면 유가족들이 단식하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단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단식하는 건 예외적 정치행위다. 이것이 잦아지거나 반복되면 안 된다. 11일간 나는 이 세상을 바로잡지 못한 정치 부족함을 뼈져리게 느꼈다." 유은혜(아래 유) :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때도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더 부끄럽고 더 죄송하다. 이유는, 열하루가 지났지만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고작 단식밖에 할 수 없느냐, 비판도 있지만, 저 스스로도 이런 상황…. 참담하다. 세월호 특별법은 단지 유가족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어떤 지표로 가져갈 것인지 중차대한 결정을 해야 할 문제다. 우리 사회 근간을 바꾸는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다시 고민되는 열하루였다." 강동원(아래 강) :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참사다. 국민과 유가족들이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달라고 했다. 그럼 국회는 당연히 특별법을 만들어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계속 딴죽을 걸고 있다. 그럼 이때 뭘 해야 하느냐, 고민하던 중 세 분이 먼저 단식을 결행했다. 여성 세 분이 먼저 결행해서 남성으로서 너무 죄인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단 동조단식이라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했다. 오늘로 6일째인데 주로 정치가 국민들에게 무엇으로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남윤인순(아래 남윤) : "유가족들도 저희도 막무가내로 시작한 단식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국정조사를 모니터링 할 때 국회의원들이 무슨 생각인지 다 지켜보았다. 그러고도 그분들은 최대한 국회의 절차를 존중하면서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시작한 단식이 벌써 열하루가 됐다. 정치가 먼저 이분들의 손을 잡고 해결해야 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그저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밖엔 못했다." - 네 분 모두 전직 운동가 출신이다. 이제 정치인이 됐으니 정치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열하루나 단식을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까. 강 : "우리 당을 많이 비판하는 이유가 있다. 절박하지도 않고, 야성도 없고, 새누리당이 야당인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인지 헷갈린다는 분도 계시다. 저는 이 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지만 뜻있는 분들의 힘을 모아서 단식 이후에는 새로운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7·30 재보선이 끝나면 당 지도부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새로운 투쟁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으니 기대해 본다. 당론으로 힘을 모아 세월호 특별법을 꼭 제정해야 한다." 유 : "무슨 일이든 절박해야 이뤄진다. 우리 정치에 절박함이 있었나? 세월호 참사는 유례도 없는 일로 대한민국의 총체적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탐욕적 자본과 그 자본에 기댄 권력, 인간 같지도 않은 짐승과도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과연 우리 당이 얼마나 절박함을 갖고 접근했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당의 행동으로, 추진력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해야 한다. 선거도 끝난 마당에 더 이상 논의를 늦출 수는 없다." 남윤 : "선거 전에는 당 지도부가 재보선 때문이라는 말로 세월호 특별법 추진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만약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조직정비를 해야 한다면서 당무위원회를 새로 정비하고 지역위원장 선출에 몰입한다면 우리 당은 또다시 근본이 서지 않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이합집산할 것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7·30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는 당력을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모아야 한다." 은 : "당이 시민의 바다에 풍덩 빠져 정치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 보상문제가 불거지면 그 시점에 당이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 여론조사를 통해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국민적 여론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근거를 갖고 새누리당과 협상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보상은 해주지만 진상규명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과 진상규명하려면 우리가 먼저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어야 했다. 새누리당의 뒷덜미를 잡고 국민이 원하니 당장 특별법 추진해라, 이런 전환점이 필요하다." 강 : "이명박근혜정권을 겪어보니 국가운영을 과거 군사독재시절처럼 한다. 그럼 우리의 투쟁방식도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정도 민주화 됐으니 대충 그들과 화해와 타협? 그걸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맨날 새누리당에 당한다. 이제는 우리 당이 역사의 흐름까지 내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투쟁방식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 게 안 되니까 국민들이 우리를 얼마나 질타하고 있나. 우리는 다 느끼는 것을 왜 지도부는 못 느낄까 싶다." 유 : "당이 이제는 세월호 특별법을 원 오브 뎀(one of them, 여러 가지 중 하나)의 이슈로 볼 게 아니다. 흩어지지 않고 조직된 힘으로 하나가 되어 싸우는 유가족처럼 우리 당도 이제 실천을 단단하게 묶어가야 한다. 지금 유가족들은 8·15 때 교황님이 오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빨리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당이 중심을 잡고 행동구심력을 세워야 한다. 당이 이제 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 :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 아무도 안 믿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바뀌었나? 바뀔 조짐이 있나? 달라질 조짐이나 희망을 100일 넘게 못 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 앞에서 정치불신은 더 커졌다. 정치불신을 없앨 방법에도 지도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해양교통사고 발언, 지도부는 왜 화 안 내나" - 세월호 참사 이후 적폐를 해소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해양교통사고라고 한다. 보수언론은 이제 노란깃발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한다. 단식 농성 중 만난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어떤 반응인가. 기사 관련 사진 ▲ 단식 11일째 은수미,유은혜,남윤인순,강동원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유은혜, 남윤인순, 강동원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일 국회 본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남윤 : "새누리당 의원들 중 유가족들과 인사하는 분들은 몇 안 된다. 이 현장 자체를 외면하고 지나간다. 내가 이곳에 열하루 있었지만 유가족들에게 목례하고 지나가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거의 못 봤다. 홍문종 전 사무총장 등이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에 빗댄 건 그 자체로 정부여당이 치러야 할 책임론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다. 이제 다 잊고 일상으로 넘어가자는 건데 7·30 재보선이 끝나면 그런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본다." 강 : "야당이 강력하게 투쟁하면 여당이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성숙된 모습을 보일 거다. 그런데 오히려 깔아뭉갠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새누리당이 우리 당 지도부의 정체성을 너무 잘 알아서 완전 자신만만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다면 우리 야당이 더 강한 정신과 절박함을 갖고 더 세게 싸워야 한다. 정당의 존립기반은 집권인데, 집권하겠다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나는 현 지도부를 탓할 생각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부터 현재까지 이와 같은 리더십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누리당과 대응하지 않으면 만년 새누리당에게 끌려 다닌다. 우리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유 : "여당의 야당 무시는 오래됐다. 여당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우리 잘못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정부여당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대통령 눈물 흘린 지 불과 두 달도 안돼 노란 리본을 거두라는 말을 한다. 해양교통사고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표변할 수 있나. 우리가 어리숙한 건지 새누리당이 능수능란한 건지 원 구성이나 특별법 관련 등등 뭐든 자기들 멋대로 표변하고 약속도 안 지킨다. 거기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역할은 대단한 것 같다.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 친박계 여당의원 몇몇 실세가 정말 정국을 농락하고 있다. 국민도 야당도 안중에 없다. 언론까지 전부 장악한 그들은 너무 잔인할 정도로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남윤 : "새누리당과 적당히 타협해서 성과를 얻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표리부동은 새누리당의 문제가 아니다. 표리부동에 순진하게 대응하는 우리가 문제였던 거다. 새누리당 욕하는 건 공허하다. 새누리당 행태에 어떻게 맞서 싸울 건지 우리가 먼저 죽을 똥 살 똥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총선도 가능해질 것이다." 은 : "비통하긴 하지만 무시당할 짓을 하니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에서 세월호 참사를 해양교통사고라고 말한 게 한둘인가? 그럼 당이 화를 내야 한다. 윤리위에 제소하고 징계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당은 지도부부터 아무도 화조차 안 낸다. 만약 새누리당이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자기 이익이 조금이라도 해쳐진다고 생각하면 난리를 친다. 과거 야당이 그랬다.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면 난리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새누리당이 여러 번 도발해봤는데, 그때마다 우리 당이 화낼 줄도 몰라, 대응도 안 해, 그럼 밟는 거다. 무시한다. 국상 중인데, 교통사고 운운하는 패륜을 저지르면 의원직 내놓아라 난리를 쳐야 옳다. 노란 리본을 정리하라고? 야당은 통곡해야 한다. 그런데 무감각하다." "8월의 이슈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끌고 나가야" - 단식을 정리하고 난 뒤엔 어떤 활동이 예정돼 있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나. 은 : "1단계는 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도록 의총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국민대토론회를 열어서 논의를 모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일들이 당 차원에서 안 된다 해도 나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럼 뭘 해야 할까. 그게 참 고민스럽다. 당 차원에서 총력투쟁이라고 해놓고 결과적으로는 하향평준화 돼서 일상활동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단식 이후 그냥 일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 : "당이 국민 속에서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무장해서 당 차원의 투쟁활동을 더욱 총체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 유 : "세월호 특별법 문제가 장기전으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한숨). 당 지도부의 결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으러 나가는 자발적 시민모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내일부터는 새로운 국면이 열려야 한다. 8월의 이슈로 세월호 특별법을 끌고 가면서 내일(1일)이라도 당장 의총을 열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다." 강 : "전국에서 매일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3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온 국민이 국상으로 세월호 참사를 함께 겪고 있는데 왜 대통령이 결단하지 않나. 이건 코미디다. 지방선거 때는 표 달라고 눈물을 흘리더니, 유가족이 단식하시다가 무려 20여 분이 쓰려졌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를 갔다.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7시간 동안의 행적 조사하자니까 사생활 소리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우리 지도부가 어떻게 돌파하려고 하는지… 유병언 시신 가짜논란 속의 정치상황에서도 헤게모니를 쥐지 못하는 지도부라면 정말 문제 아닌가." - 끝으로 김한길 안철수 두 대표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은 : "지금은 할 말이 없다. 비판도 애정이 있을 때 하는 거다. 내가 새누리당을 아예 접어버리는 것은 그들이 짐승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정말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닌, 사람이 할 태도가 아닌 행동을 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나 스스로 정치인으로서 대안적 깃발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우선적 고민 사항이다.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나 제안은 준비 안 돼 있어 할 말 없다." 남윤 : "선거 끝나면 선거 평가하면서 조직 강화에 나설 것이다. 이때 조직만 강화할 게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서 두 대표 중 한 대표가 실질적으로 맡아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당력을 여기에 싣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유 : "두 대표께서는 지금까지 했던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직을 걸고 세월호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럼 직을 걸고 추진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셔야 한다. 120석이 넘는 의석의 야당.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집권여당이 벌이는 이 기만의 시대, 어떻게 제1야당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당대표로서 절박한 고민의 결과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강 :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당력을 모아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졸들에게 작전도 지휘도 못하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전직 대표, 현직 대표 당 중역들 할 것 없이 모두 의견을 모아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안철수-김한길 사퇴’ 뒤에 감춰진 새누리당의 무서움


지역 민심을 파고든 새누리당의 허풍 공약 임병도 | 2014-07-31 08:35: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7.30재보궐 선거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이 참패했습니다. 새누리당이 11석을 확보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겨우 4석만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2012년 총선 때는 새누리당이 152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27석이었는데 7.30재보궐 선거 결과 새누리당이 158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30석으로 새누리당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한 이유는 '전략 공천 파문'과 '리더십 부재',' 선거전략 부재' 등으로 이미 선거 전부터 나와 있는 문제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야당이 무능해서만 새누리당이 승리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당이 무능한 부분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의 치밀한 선거 전략이 빛을 발했던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새누리당이 어떻게 선거에 임했는지 분석함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왜 무능하다는 소릴 듣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문제는 경제였다' 선거 때마다 가장 잘 먹히는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안보'와 '경제'입니다. 북풍과 같은 안보 카드는 보수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경제'는 중산층을 혹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7.30재보궐 선거가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종청사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합니다. 내수 경기 회복을 위한 규제 철폐와 소비를 증진하기 위해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 등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회의'는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경기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층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40조 7,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풀겠다고 나섰습니다. 야권이 세월호와 야권 단일화 문제에 신경을 쏟고 있는 동안, 조중동과 경제 언론들은 일제히 '가계 경제 회복'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힘을 쏟고 있다는 '경제 카드'를 일제히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이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질질 끄는 수법을 통해 본질을 회피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피로감이 달한 국민을 향한 '경제 카드'는 엄청난 효과를 보였습니다. '지역 민심을 파고든 새누리당의 허풍 공약' 새누리당은 선거 전에는 항상 귀에 솔깃한 공약을 내놓습니다. 선거 후에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래도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말하는 공약은 지역 민심을 잘 반영하는 공약들입니다. 이번 7.30재보선에도 새누리당 후보들은 지역 현안과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공약들을 내놓으며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경기 수원병 김용남 후보는 '수원역을 KTX 출발역'으로, 수원을 정미경 후보는 '수원 공군비행장 이전 사업'과 같은 지역 민심이 가장 원하는 숙원 사업을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대전 대덕 정용기 후보는 '연축동 개발 사업'을 충남 서산,태안 김제식 후보는 '태안 기름 유출사고 피해 조속한 보상'을 약속하며 지역 주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는 '순천과 곡성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는 '예산 폭탄론'을 던져 소외당하고 있는 전남 순천,곡성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했던 말을 표정 한 번 안 바꾸고 뒤집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뻔뻔하게 선거 때마다 달콤한 말을 쏟아 붓습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꾼들의 화려한 언변과 화술, 그럴듯한 약속에 속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선거 때마다 지역 현안과 민심을 파고드는 공약을 내밀며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기술만큼은 거의 프로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 읍소전략, 다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은 항상 선거 막판에 '살려주세요','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읍소전략'을 내놓습니다. 이번에도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선거 직전 '나경원 후보가 어렵습니다','나경원 후보를 살려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 많은 사람들에게 빈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전남 순천,곡성 이정현 후보도 '죽도록 부려 먹다가 못하면 그때 다시 쓰레기통에 넣으시더라도 한 번만 제 손을 잡아달라'며 애걸복걸하는 '읍소 작전'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들의 읍소전략을 살펴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는 점과 또 하나는 그들의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동작을 나경원 후보는 2위 노회찬 후보와 929표 차이로 겨우 승리했습니다. 무효표 1,403표만 아니었으면 질 수도 있었을 상황입니다. 1 새누리당은 여의도연구소 등을 통해 어느 여론조사 기관보다 뛰어난 지지율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1일 단위로까지 만들 수 있는 그들의 역량이 있기 때문에 선거 막판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분석하고 대비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읍소전략'을 단순히 우습게 보기보다는 그만큼 치밀한 데이터와 행동을 병행한다고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014년 7월 31일 오늘 조선일보 1면의 머리기사는 '안철수,김한길 사퇴'입니다. 7.30재보선 결과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사퇴할 것이라는 예측은 하겠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정치]7월9일 - 7.30재보선, 야당의 무덤이 될 수 있다 (이미 야권 패배는 예측됐던 상황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입니다. 야당이 야성을 잃으면 머리를 잘 써서 전략이라도 잘 세워야 하는데 그도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력은 더욱 형편없어지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직력은 분열과 반목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사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새누리당이 얼마나 무섭고 치밀한 집단인지 먼저 분석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도덕성도 가치관도 역사관도 형편없는 새누리당이지만, 선거만큼은 어떻게 이기는지 아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도 여전히 빨간색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1. 노동당 김종철 후보 때문이라는 억측은 하지 말자, 진보정당을 지지하는표심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01

민심은 박근혜 대신 ‘새정치-야권’을 참혹하게 심판했다


[기자칼럼] 세월호 참사와 국정파탄에도 새누리 싹쓸이, 순천곡성마저 내준 진짜 이유는 입력 : 2014-07-31 01:02:43 노출 : 2014.07.31 08:10:49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온갖 실정과 국정 실패를 이어갔지만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야당을 견제세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민심은 박근혜 정권이 아닌 새정치연합을 혹독하게 심판했다. 30일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전국 15개 지역구 가운데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해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새정치연합은 4곳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나경원(동작을), 배덕광(부산 해운대기장군갑), 정용기(대전 대덕구), 박맹우(울산 남구을), 정미경(경기 수원시을-권선구), 김용남(수원시병-팔달구), 유의동(경기 평택시을), 홍철호(경기 김포시), 이종배(충북 충주시), 김제식(충남 서산시태안군), 이정현(전남 순천시곡성군) 후보가 당선됐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은 권은희(광주 광산구), 박광온(수원시정-영통구), 신정훈(전남 나주시화순군),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군) 등 전남지역 3곳과 수원 1곳에서 당선됐다. 특히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선거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영남권 기반 정당에 의석을 내줬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요인으로 우선 35%도 안되는 낮은 투표율(32.9%)을 들 수 있다. 투표율이 이렇게 낮은 데엔 여름 휴가철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으나, 제1야당으로서 야권을 대표하는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휴가철 여부를 떠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서민의 고통, 민주주의 파괴에 신음하는 시민의 분노,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대변하고 기댈 곳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자신들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선택하지 않았다.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이 진도앞바다 한 복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박근혜 정권이었는데도 민심은 혹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보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불신이 더 컸다. 무능한 정권보다 더 무능한 야당이 된 것이다. 나경원 새누리당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당선자의 유세 장면. ⓒ연합뉴스 새정치연합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인가. 이번 7·30 재보선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회의원 배지라는 권력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한 것이 야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최대 전략지역이었던 서울 동작을에 기동민 후보를 공천하면서 ‘동지를 배반하게 한 공천’이라는 오명을 낳으며 세월호 참사와 잇단 인사참사라는 최악의 국정운영을 견제해야할 시급한 시기에 신뢰를 잃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을 공천은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호남에는 새정치가 아무나 공천하면 다 된다고 여기는 오만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을 뿐 아니라 권은희 스스로도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양심적 내부고발자로서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공천을 둘러싼 복마전은 결국 사상 첫 새누리당의 전남지역 의석 확보라는 이변을 낳았다. 이정현이라는 정권 실세의 성공 가능성 만큼이나 서갑원 새정치연합 순천곡성 후보의 공천 역시 잡음이 많았다. 서 후보는 부적절한 '전력'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사람이었다. 막판에 나름 극적이었던 서울 동작을 지역의 단일화도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노회찬 후보는 나경원 후보를 맹추격했지만 결국 900표 차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생채기 후에 이뤄진 단일화 효과가 빛이 바래는 순간이었다. 일각에선 공천 과정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새정치연합이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 맞설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회의론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해 여름휴가 때 사진. 사진=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인사파동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공개 사건, 시국선언에다 심지어 무고한 시민 수백명이 수장되는 실황을 전국민이 목격하고 있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무능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권력집단이었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은 이런 국가비상사태에서 박근혜 정권을 대체할 만한 역량도, 이에 맞서는 순교자적 헌신과 자기희생의 진정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무슨 짓을 해도 30%는 박근혜를 지지할 것이라는 패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1년 반 동안 끌려다녔다.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야당으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각종 파동을 겪으면서도 선거운동하는 동안 두각을 나타낸 후보도 없었다. 거물이라는 이유로 손학규, 김두관을 내세웠지만 알려진 이름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심어준 선거였다. 이와 함께 각종 실정에도 다시 집권여당에 158석이나 안겨준 선거결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온갖 정권의 악재에도 최악의 결과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현재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야권을 재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다시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환골탈태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쇄신을 촉구하기 전에 야권 스스로 전면쇄신할 수 있도록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편에선 이런 야권의 붕괴를 틈타 박근혜 정권이 일방 독주를 펴는 것 역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3분의 2가 박 대통령을 지지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고려인 동포, 자동차타고 MDL 통과한다


고려인 동포, 자동차타고 MDL 통과한다 北, 국경 통과 승인..南, MDL 통과 승인할 듯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7.30 18:45:55 트위터 페이스북 ▲ 러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들이 자동차를 타고 지난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 오는 8월 15일 북측을 거쳐 MDL을 통과해 남측으로 들어온다.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러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동포들이 자동차를 타고 오는 8월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온다. '고려인이주150주년기념사업회'(공동대표 이해찬, 정몽준)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몰고 직접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남북 군사분계선을 8월 15일 넘어서 올 예정"이라며 "우여곡절 끝에 북한 당국에서 승인을 내어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MDL 통과 협조가 공식적으로 접수될 경우, 필요한 절차에 따라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도 도라산 남북출입경사무소(도라산CIQ) 통과와 관련한 절차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 고려인들의 MDL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이동 경로.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진행 중인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은 고려인 38명이 차량 11대를 이용 지난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을 거쳐 러시아 동쪽 하산을 향해 이동 중이다. 이들은 다음달 8일 러시아 하산에 도착, 나진-하산 철도를 이용해 방북, 나진시에서부터 평양까지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어 다음달 14일 개성에 도착, 평화음악회를 가진 뒤, 15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다.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일정표. [사진제공-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특히, 이들은 북측에 차량 3대를 기증할 예정이며, 오는 8월 교황방한 일정에 맞춰 18일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다. 이들 고려인들은 남측에서 서울시 환영행사 및 축하공연, 현충원 참배, 국회 및 국무총리 예방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부산을 거쳐 동해로 이동, 24일 러시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과 관련해 남측 행사에 동참할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모집내용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려인들과 함께 자동차 대장정에 동참하는 내용을 골자로 남측 1백여명, 차량 25대 등을 예상하고 있다. 참가 신청은 다음달 4일까지이며 신청문의는 '동북아평화연대'(1688-7050)로 하면 된다.

미군기지 이전계획, 전면 수정되나?


<분석과전망>한반도군무력을 강화하려는 미국, 물 건너가는 자주국방 한성 기사입력: 2014/07/30 [17: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어 한반도정세전문가는 물론 군사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그것이다. 한미양국이 한미연합 전투부대를 창설하고 이를 경기 북부에 주둔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 그 구체이다. 지난 25일 최윤희 합참의장이 회의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세세한 내용까지도 흘러나왔다. 경기북부에 산재한 미 보병 2사단 중 포병여단과 한국군전방 부대 중 포병, 기계화 부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동두천이나 의정부 등 경기 북부에 주둔시킨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는 것은 한미연합야전사령부의 부활이었다.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된 것은 지난 1992년이었다. 한미당국이 한미연합 전투부대를 창설하게 되면 22년 만에 한미양군당국이 전투임무를 함께 수행할 연합부대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으로 된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은 여기에서 멎지 않았다. 용산기지 안에 있는 한미 연합사령부 역시도 서울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29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사안이다. 이것들은 한미당국이 수립한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폐기되고 있음을 대단히 화려하게 보여준다.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경기북부와 용산에 있는 모든 주한미군을 2016년까지 전부 한강 이남으로 배치되게 하는 계획이다. 동두천 등 해당지역의 주민들에게서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 뻔하다. 미군기지가 떠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계획을 철회시키냐면서 반발할 것이다. 해당 지자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거센 반발이 나올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드러냈다. “미군기지 이전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다만 한미 연합방어 수준을 최상으로 유지할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라는 국방부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30일 SBS뉴스가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반발을 잠재우겠다는 수사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미군기지 한강이남 철수’라는 명제는 수정 없이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동두천에 있는 미군기지를 우리 정부가 이양받고, 우리정부는 그 자리에 한미연합 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미군기지는 없다. 다만 미군만 있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부리는 기가 막힌 ‘꼼수’라는 말이 전문가들에게서 나오는 이유이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에서 그 누구도 우리나라의 군사력 강화 혹은 안보 강화를 읽지 못한다. 복잡할 것 없이, 이는 결코 군사력강화가 아니다. 안보강화도 아니다.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켜준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미명이기도 하다. 그 미명을 스스로 깨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미국의 우산에 맡기는 꼴이 된다. 미국의 우산에 의존하는 안보는 어떤 경우든 강한 안보가 아니다. 안보의 약화. 그것이 본질적 모습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국방력을 흔히 자주국방이라고 한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에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군기지 한강이남 배치를 합의하면서 내세웠던 것도 이 자주국방이었다. 전시작전권을 당초 2012년에 돌려 받기로 합의했던 결정적 문제의식도 그 자주국방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주국방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말았다. 비근한 예가 전시작전권회수문제이다. 2012년 회수되었어야했던 전작권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했다. 이도 모자라 현 정부는 또 2022~2023년 정도로 재연기했다. 이것만으로도 ‘자주국방’이라는 문제의식은 완전히 소멸되었음이 확인된다. “국방정책이 걸핏하면 바꾸는 그 무슨 부동산정책이냐” 적지 않은 전문가들에게서 수도 없이 나왔던 지적이다. 그러나 국방정책을 부동산정책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현 시기 정세를 관통하지 못하는 문제 있는 관점으로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으로 둔갑하는 것에서 확인하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귀환정책의 한 구체이다. 한국의 주한미군부대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대한반도군사력공고화가 미국의 아시아귀환정책에 따른 것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코 부동산정책이냐는 말로 비판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최근에 미국이 태평양지역에 군무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결정적 이유이다. 레이 마부스 미 해군장관이 28일 최신예·최현대식 장비를 태평양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첨단 스텔스 구축함을 태평양지역의 특정한 곳에 배치하는 것을 필두로 미국의 연안전투함(LCS) 32척 중에서 4척을 싱가포르에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와 사세보에 현재 있는 상륙준비단 이외에 또 하나의 상륙준비단을 추가로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주한미군재배치 계획이 확정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주한미군 한강 이북 잔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아울러 이는 2020년대 환수하게 된다는 전시작전권문제를 또 다시 흔들어놓을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사드(THAAD)도입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 한미연합 부대 창설과 전시작전권 재연기는 하나의 패키지” SBS가 30일 보도한 것으로 군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은 요원한 것인가?”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떠나 한반도정세전문가는 물론 군사전문가들이 일치되게 내놓고 있는 말이다. 일종의 탄식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가장 급 높은 회의체가 한미안보협의회(SCM)이다. 8월과 9월이 지나 10월에 있게 될 SCM에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주목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다. 관련기사 아시아에 군무력 집중 배치하는 미국 ‘핵에는 핵으로’ 북, 미 본토 핵 공격 준비 끝, 최후명령만 남아 강화되는 북한의 대미군사공세 김정은 위원장 ‘미군기지 목표 전략군 로켓 훈련 지도’ 러시아 외무성, 미국 사드 배치 반발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가자에서: 야외 감옥에 갇혀 사느니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겠다. 허핑턴포스트US- Mohammed Suliman 게시됨: 2014년 07월 29일 16시 15분 KST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29일 17시 28분 KST 가자는 살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포위된 작은 면적에 인구는 넘쳐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친절하다. 또 먹거리가 일품이고 해변이(약간 지저분하지만) 있어서 자유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민에게 준다. 또 이스라엘의 전투함이 앞바다에 수없이 떠 있는 사이로도 석양의 아름다움은 부인할 수 없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주로 아이들로 이루어진 거리의 행상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택시를 한 번 탑승해보라. 아마 하차하기 전에 새로 만든 친구, 즉 택시기사와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것이다. 시장은 완전 카오스인데 실로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교통혼잡시간이라고 해 봤자 UNRWA(국제연합난민구제사업국학교)나 바르셀로나 또는 레알마드리드 로고가 붙어있는 티셔츠를 입은 어린 학생들이 하교 후에 집에 가기 위하여 길에 쏟아져나오는 모습이다. 그걸 보면서 난 가자의 인구가 얼마나 젊은지 깨닫는다. 밤거리도 대낮만큼 활발하다. 해변이나 카페에서 물담뱃대를 물고 시샤를 피우는 모습 아니면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쉬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즉, 가자인도 보통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해변도 삭막 그 자체다. 학교는 죽음을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는 수많은 난민의 임시처소로 변하였다. 아름다운 삶의 음향이 끔찍한 사망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무인 항공기는 공중에서 감시하고 제트 전투기는 큰소리로 허공을 찌른다. gaza 28일, 몸에 국기를 두른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한 지역을 지나고 있다. ⓒAFP 늘 저만치에 폭탄 사례가 있다. 하지만 '저만치'라는 말은 매우 상대적인데 바로 집 앞의 폭발로 창문이 깨지고 내 심장도 자신의 놀란 고함에 깨질 수 있다. 순간적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죽었다는 소리 아닌가. 이런 일이 하루에 수없이 반복되고 결국은 지쳐서 집안 한 어두운 구석에 몸을 구겨 부근에 계속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이 자신을 못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가자의 주민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다시 한 번 받고 있다. 6년 사이에 세 번째다. 미사일이 민간인의 집을 맞추면서 온 가족이 단번에 사라진다. 한꺼번에 식구 25명이 죽은 사례나 또 다른 가족에서 18명이 비슷하게 사망한 것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슨 이유도 없이 가장 가난하고 사람이 들끓는 지역에 퍼붓는 끊임없는 폭탄 세례와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한 구급차나 민간보호단체의 접근을 막는 그런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민간인은 겨냥하지 않는다."고 이스라엘 측은 말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만약에 정상인이라면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군."이라고 말이다. 이스라엘은 최첨단의 정교 무기로 현재까지 약 1,000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중에 80%가 민간인이라고 인권단체들은 추측한다. 그 중에 약 200명이 어린아이인데 그들 일부는 목이 잘리고 내장이 터지고 완전히 까맣게 탔다. 또 한 NBC 기자 아이먼 모헤딘은 이스라엘 전투함이 쏜 미사일을 맞은, 해변에서 놀던 바쿠르 가족의 어린이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또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대학살의 현장 알 슈자이예(Al Shujayah)에서는 사건 후 잃어버린 사촌 형제를 그 잿더미에서 찾겠다고 헤매며 돌아다니던 젊은이 하나가 저격수의 총알을 맞고 죽는 비극에 비극을 더 하는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무인 항공기는 아침 식사로 요거트를 사러 나온 아리프 가족의 두 형제를 미사일로 죽였다. 또 닭과 비둘기 먹이를 주러 자기 건물 지붕 위에 서 있던 어린아이 셋도 미사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수천 톤의 폭탄을 떨어뜨린 이스라엘의 무력에 희생된 사람들은 아래 또 있다. 한 번의 공습으로 아부자메 가족의 26명이 죽었다. 알 나자 가족은 20명을 잃었고 알 바치 가족은 18명, 알 카사스 가족은 9명, 알 케일라니 가족은 7명, 카와레 가족은 8명, 하마드 가족은 5명, 등 죽음의 행렬은 계속된다. 안락한(?) 내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거다. 휴전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하마스 쪽에서 대포 발사를 중단한다면 이스라엘도 가자와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지속적인 폭력을 중단할 것인가?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말로는 뭐라고 하던 현실은 팔레스타인 측에서 무력항의를 중지한다고 이스라엘이 이 지역 점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포위되었던 유대인들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다 죽겠다."고 하였었다. 현재 게토에 포위되어있는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보편적인 개념을 참 잘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정복을 반대하는 자세로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고 또 존엄성 속에서 죽는다. 우린 전쟁에 지쳐있다. 적어도 나는 피의 장막과 죽음, 그리고 온갓 파괴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뿌리 깊은 부당한 예전의 상태로(Status quo) 돌아간다는 것은 더 받아드릴 수 없다. 더는 이 야외 감옥에 존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무시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두 죽음의 사이에.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한 죽음과 이스라엘이 가자를 가로막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말이다. 아무 때나 가자를 들락거릴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한다. 우리 학생이라고 왜 원하는 해외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없느냐 말이다. 가자 바깥에서의 치료를 막는 이스라엘 때문에 주민들이 죽는 게 말이 되는가? 어업 종사자들은 총에 맞아 죽임당할 걱정 없이 바다에서 일하고자 한다. 물과 전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우리의 땅만 점령한 게 아니라 우리의 몸과 운명까지 점령하려고 한다. 이런 불합리는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 이 글은 가자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인권운동가 Mohammed Suliman가 허핑턴포스트US에 기고한 블로그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 From Gaza: I Would Rather Die in Dignity Than Agree to Living in an Open-Air Prison 가자지구의 사람들 1 / 35   AP/연합뉴스 다음 Previous Next 더 보기:팔레스타인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희생자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가자지구 르포가자지구 현지 리포트이스라엘 공습가자지구이스라엘 가자지구이스라엘이스라엘 하마스국제가자지구 희생자

10년 만에 ‘박근혜 마케팅’ 없이 선거 치르는 새누리


10년 만에 ‘박근혜 마케팅’ 없이 선거 치르는 새누리 등록 : 2014.07.29 20:24수정 : 2014.07.30 09:23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4twitter116보내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대전 대덕에 출마한 정용기 후보(왼쪽)가 22일 오전 대전 회덕역 앞에서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대전/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박 대통령 당 위기 때마다 힘 됐지만 당보다 낮은 지지율 탓에 언급 줄여 앞으로 지지율 반등 어렵단 전망에 ‘선거의 여왕’ 없는 선거 지속될 듯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 하루 전인 29일 아침 수원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었다. 김무성 대표는 “수원의 발전을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힘이 꼭 필요하다”며, 민생경제, 지역일꾼, 경기부양책, 경기회복 등 경제 관련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박근혜’라는 단어는 거의 입에 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3년 7개월 남은 임기 동안 민생경제 활성화로 서민들의 주름살을 펴드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하는 정도에 그쳤다. 7·30 재보선의 뚜렷한 특징은 ‘박근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 지도부는 빨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반바지를 입는 등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팔지는 않는다. 심지어 후보들의 유세 차량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지도부나 후보들이 ‘박근혜 마케팅’에 몰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왜 그럴까?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세종/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7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새누리당 정당 지지도보다 낮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어선 현실을 새누리당이 정확히 포착해 대응하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빨간 옷만 보고도 변화를 믿어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변화 이벤트가 계속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면에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은 지방선거에서 이미 소진된 쟁점이다. 경제 살리기와 세월호 심판론이 맞붙으면 경제 살리기가 유리하다. 여당의 제스처는 놀라울 정도로 현란한데 야당은 너무나 미숙하다.” ‘박근혜 마케팅’이 사라진 것은 일시적인 것일까, 지속적인 것일까? 새누리당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가 다시 올라기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앞으로 선거에 직접 개입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지속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정치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선거의 여왕’이었다. 탄핵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 당시 그는 손에 붕대를 감고 한나라당 의석 121석을 방어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얼굴에 칼을 맞고 압승을 이끌어 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바꾸고 색깔도 바꾸었다. 새누리당은 예상을 깨고 152석을 차지했다. 신화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원희룡 제주지사가 탄생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전 교통정리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선거의 여왕이 수렴청정을 한 셈이다. 반면에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선거는 예외없이 부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그런 경우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난히 선거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특수한 신분,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 민심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진정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작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선거의 여왕’ 신화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특집 정치토크, 7.30 재보선을 말하다 [성한용의 진단 #297]

세월호, 무능이 체계적으로 덮이고 있다


[시민정치시평]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거짓을 버리는 싸움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30 07:32:39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희생자들 말고는 외견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는 수사권 부여를 놓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건 희생자들의 가족들이다. 오직 진상과 책임 규명이라는 한 가닥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분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냉정하고 차갑다. 책임을 지겠다고 한 사람이 책임을 가리겠다는 이 해프닝 같은 현실. 거듭되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생하는 안전사고. 단순히 사람의 실수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제도의 작동 불능 상황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희생자뿐이랴. 분명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었다. 나라의 기본이라고 할 신뢰가 사라지고, 온갖 불신과 맹신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을 뿐이다. 서로의 일상이 기대될 때 신뢰가 생기고, 그때에야 비로소 서로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대가 사라지면 자신의 편협한 관점에서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돌변한다. 유병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신뢰가 무너진 사회 공권력의 민낯인 것이다. 비판과 견제를 해야 할 언론이 앞장서 선정적인 보도로 진실을 현혹하는 것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시민의 행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사실 불행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이른바 진상 규명은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그 잘잘못을 가리는 첫 번째 단계이다. 유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원하는 것도 이런 진상 규명의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의혹이 생기면 한 점 의심이 없도록 일관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의혹이 일 만한 것을 낱낱이 가려내는 일이 진상 규명의 본령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단지 무능력의 탓일까. 아니다. 무능력 이상의 것, 단순히 진상 규명에 머물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 100일, 잔인한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이 24일 서울광장에서 추모공연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00일, 잔인한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이 24일 서울광장에서 추모공연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대응은 실망 수준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건만, 답보 상태에 있다. 천만인 서명에 돌입한 것도 이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과 시각은 실망 수준을 넘어 불순한 의도까지 느끼게 한다. 핵심 쟁점인 '수사권과 공소권', '특검 추천권'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직접 수사권을 부여하자는 야당의 입장에 대해 '사법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여당의 현란한 수사적 논변이 제기된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자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보다 당략적인 이해타산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싶다. 지난 일요일, 야당은 '특검 추천권'이라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 안은 여당의 요구를 수용해 상설특검이 수사를 하되, 야당 추천의 특검이 임명한 특검보를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실질적인 수사권을 확보한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여당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물론 법과 제도의 창출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을 만드는 취지이다. 이번 경우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노력이 중요하다. 진상 규명은 진실에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다. 특별법은 더욱이 한시적이다. 그런데 여당은 특별법을 일반법과 연계시켜 마치 일반법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혹 밀어닥칠 쓰나미 파국을 막겠다는 심산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사건 진상의 규명에는 당략적 접근이 필요 없다. 그런데도 명분에 몸을 숨겨 당략적인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희생자, 유가족, 시민의 간절한 요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진행 과정이 불신을 키우고 있다. 사건의 진상을 원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철저히 무시할수록 거짓을 조직적으로 은폐한다는 의혹이 커져가는 법이다. 이번 사건에서 불신을 키운 것은 바로 정부다. 공권력 집행의 무원칙과 부패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진상을 가려내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세월호 참사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이 무능력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것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라는 일종의 채찍질이다. 깊은 반성과 올바른 행동은 자신의 무능을 던져버리는 현명한 방법이다. 정부는 그 쉬운 선택마저 마다했다. 무능을 체계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시도가 기만이다. 거짓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거짓이 거짓을 낳을 수밖에 없음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이 말하는 바다. 체계적인 거짓이 작동하는 체제는 항상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쫒는다. 신뢰의 자리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권력의 동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권력 게임의 최후 승자가 누구인지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진정한 관심은 진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민주주의 권력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일련의 진행 과정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제도는 권력 게임의 놀이판이 아니다. 우리를 지킬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왜 발생했는지 모른다. 100일이 지나도 우리가 왜 이런 무지의 상태에 있는가. 진상 규명을 회피하면서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면 진상 규명이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 규명은 그 이상이다. 조직적인 은폐, 제도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를 활용해서 고의적으로 속이는 것, 즉 체계적인 은폐에 대한 진실 규명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현실에 대한 진실 규명이다.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은 일부 논객이나 의원이 말하는 보상이 아니다. 그 핵심은 진실을 막는 우리 안에 절대적 악과 싸우는 데 있다. 오로지 진실의 힘으로 맞서야 하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유령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기만이라는 유령과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관광 활성화에 올인한 북한, 그 이유는?


[한반도 현안 톺아보기 3] 조성찬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조성찬 | landjustice@hot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7.29 11:59:34 트위터 페이스북 조성찬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의 관광 활성화 전략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중국 여행객이 직접 자동차를 타고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거나, 북한이 러시아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소식은 일부에 불과하다. 북한은 현재 도로, 철로, 비행기 등 인프라 시설 정비에서 시작하여 인터넷 관광상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관광을 통한 치열한 생존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관광 활성화에 올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관광이 빠른 시간 내에 민생을 챙기면서도 부족한 외화를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발전 전략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발전 전략으로서 관광이 갖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최근 브라질 월드컵 8강의 신화를 일구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코스타리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경향신문, 7월 7일자). 2013년 국내총생산(GDP)이 1인당 1만 2900달러로 세계의 102위에 불과하지만, 영국 신경제재단이 진행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2009년과 2012년에 1위를 차지한 코스타리카의 핵심 발전전략이 바로 생태관광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이기 때문이다. 생태관광이라는 말만 들어도 바로 금강산 관광이 떠오른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전략은 생물 다양성에 기초한 코스타리카의 발전전략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핵무기 개발로 주변국의 지속가능한 존립 자체를 부정할 것처럼 보이는 북한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북한에게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화석에너지 고갈이나 탄소배출 등으로 인한 대기 및 환경오염 등의 우려가 없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속가능한’ 경제개발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즉, 북한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경제발전이 농업에서 출발하여 경공업 및 더 나아가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생태관광이 ‘지속적으로’ 발전 동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느냐의 차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생태관광이 경제의 연쇄적인 발전에 마중물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 특유의 지속가능성은 경제개혁 및 경제의 단계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다. 관광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인식 변화 이유는? 큰 이미지 보기 ▲ 마식령스키장내 호텔 전경. 북한은 작년 말 마식령스키장을 개장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스키관광객을 모집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북한은 기본적으로 자연명소와 역사유적지 및 온천 휴양소 등 관광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곳이다. 다만 당국이 관광에 대한 폐쇄적 인식으로 인해 그 활용 가능성을 현실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관광은 자본주의 문화의 일부라고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외국인의 방문이 많아질수록 체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관광에 대해 다소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는 관광을 외자유치 유망분야로 지정하여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그 역할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한국관광공사, 2001). 관광에 대한 북한의 인식태도가 크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1980년대 시작된 북한의 경제위기가 가장 주된 배경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대만이나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을 본 북한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비교적 적은 투자로도 단기간에 상당한 외화 획득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한국관광공사, 2001). 결정적으로 제2차 핵실험(2009.5.25)에 성공하자 안보에 자신감을 갖게 된 북한이 관광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가장 우선적으로, 핵실험 성공 이후 김정일은 외화 획득 수단으로 광산, IT산업과 함께 관광을 지목했다. 후계자인 김정은은 이러한 전략을 승계하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관광산업을 촉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관광산업 촉진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 바로 2013년 1월에 군용으로 사용되던 삼지연공항(백두산 부근), 어랑공항(칠보산 근처) 및 갈마공항(원산)을 민간용 공항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이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이 김정일 정권 때보다 적극적으로 관광산업을 독려하고 있는 분위기는 베이징의 북한 전문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의 가렛 존슨(Gareth Johnson) 이사의 논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6년 이상 북한 관광을 추진하고 있는 그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김정은 체제 이후의 변화를 "놀라운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변화의 핵심 동력은 내부 자원 고갈과 국제사회의 고립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난을 해결하려는 국가적인 차원의 관광전략이라고 지목했다. 그리고 관광의 성격이 이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나진·선봉에서는 관광객들이 시장과 은행을 이용할 수 있고 회령에서는 중학교도 가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도 예전처럼 전면 금지는 아니에요. 김정은 체제 이후 변화는 놀랍다고 할 만큼 큽니다."(북한전략센터, 2014.06.18). 가렛 존슨은 논문에서, 북한이 관광산업을 얼마나 장려하고 있는지 다양한 관광상품과 정책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관광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종식시키고자, 북한이 관광객 유치를 적극 장려하고 있어서, 기자(journalists), 한국인, 한국 거주 미국인을 제외한 모든 관광객에게 여행비자를 발급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북한 여행은 일정 정도 규제가 따르기는 하지만 생각하는 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북한의 관광산업 육성 전략의 핵심은? ▲ 올해 5월 발표된 '원산-금강산지구 총계획도'. 위로부터 원산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이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관광산업에 대해 일정 정도 경험을 축적한 북한이 최근 취하고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관광특구 및 관광개발구의 지정을 통한 입체적인 관광전략의 추진이며, 둘째,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관광상품의 개발이다. 2002년에 금강산 관광특구를 지정한 북한은 2013년 5월 29일에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같은 해 11월에 경제특구와 13개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설치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2014년 6월 11일 북한의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는 정령으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특구)’를 발표했다. 북한은 최근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13개의 경제개발구를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개발구’가 2개이며, 관광 기능이 포함된 경제개발구는 모두 4개였다. 이처럼 북한의 발표는 사실상 관광산업을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관광활성화 전략의 또 다른 특징은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의 6월 24일자 방송에 따르면, 북한에서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도 지방정부 스스로 광산개발이나 관광개발 또는 외국과의 합작기업도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일연구원이 격주로 발간하는 ‘주간통일정세’를 기초로 하여 최근(6월-7월) 관광 관련 기사를 정리해 보니, 다양한 관광상품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북한의 다양한 관광상품 및 관광전략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이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방법은 크게 국가관광총국이 산하기구를 통해 직접 판매하는 방식, 합작합영회사를 설립하여 판매하는 방식 및 해외 여행사에 의뢰하여 판매하는 방식이 있다. 둘째, 북한 관광의 최대 고객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0년 4월에 북한 단체관광을 정식으로 개시하였으며, 매년 6~7만 명의 중국인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특히 단둥과 평양을 오가는 국제열차를 이용하는 관광객 규모는 연간 1만명 규모로 집계되고 있다(신화통신, 2014.7.10). 셋째, 북한은 관광산업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러시아, 일본, 말레이시아는 물론 심지어 미국 등 서양의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넷째, 지방정부를 주축으로 민생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 지방정부는 그동안 외국인에게 보여주기를 꺼려했던 내부의 여러 생활 자원들을 관광자원화 하여 체험형 관광상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북한은 이미 철도·도로 등 관광 편의를 위한 인프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중국 여행객의 방문 편의를 위해 베이징-평양 직항노선 외에도 상하이-평양 직항노선, 다롄-남포 여객선 운항계획, 자동차 여행 등 다양한 교통수단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들 ▲ 원산지구 관광구역도. [통일뉴스 자료사진] 현재 북한에게 있어 관광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비교우위가 있는 유일한 분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용현, 2014). 북한은 특유의 지정학적 입지와 오염되지 않는 자연환경을 통한 경관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잘 보전된 역사, 문화자원과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남북관광협력단 북한관광팀, 2004), 이러한 평가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풍부한 지하자원과 저렴한 토지 및 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대륙의 진입로라는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그나마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북한이 오히려 관광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는 것은 기존 인식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다. 북한의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갖는 나름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단기간에 적은 투자로 고수익 등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북한이 현재 추진하는 관광사업들은 대체로 생태관광 내지 체험관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광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숙박시설, 도로, 철도, 항공 등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인프라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할 때 단기적으로 많은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관광은 대외 정치적 환경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어 정치적 위험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셋째,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영향을 적게 받는다. 넷째, 북한의 폐쇄적인 상황이 오히려 안보관광의 중요한 상품이 되고 있다. 다섯째, 관광산업은 공업기능 중심의 경제특구, 경제개발구 등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로 연결시킬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금강산관광특구이다. 금강산관광특구의 근거법인 ‘금강산관광지구법’ 제21조에서 첨단 과학기술부문의 투자도 관광지구에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관광지구 내 일부를 공단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으며, 실제로 2003년 1월에 공업단지를 마련하기로 양측이 합의하기도 했다. 북한의 관광전략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에 주는 의미 ▲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가 작성한 '특수경제지대 개발 실태와 전망'에 소개된 온성섬관광개발구. [통일뉴스 자료사진] 북한의 관광산업 전략은 현 상황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제회생 전략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관광상품은 기본적으로 생태관광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환경파괴 등 부정적 효과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격의 관광산업은 외부 및 내부의 정치적인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비교적 지속가능한 사업의 유형에 해당한다. 이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생태관광 중심의 관광산업(3차산업)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농업, 경공업 및 다른 영역의 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 있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그 해답은 토지사용료 또는 관광수입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정부가 재정자립을 위해서 도시 및 지역경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서 토지사용료 및 관광수입이 발생한다. 실제로 금강산광관사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현대아산과 50년 토지사용권 계약(2002.11.13 - 2052.11.13)을 맺은 북한은 토지사용료 수입과, 관광객으로부터 관광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개발구의 설치 및 운영이 있다. 그리고 본고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업소와 협동농장에게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대신 토지사용료와 전기료 등을 부과하는 방식이 있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관광사업, 개발구 운영, 기업소와 협동농장의 자율 경영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사업주체 또는 이용주체가 토지 및 자연자원을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향유하는 대신 그 대가인 사용료를 지방정부에 납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용료는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지방정부 재정수입을 창출한다. 바로 이러한 구조가 북한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의 본질이며, 그 핵심에 생태관광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이 관광산업에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이러한 재원을 활용하여 농업, 경공업 및 다른 영역의 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중국인민대학교 공공관리학원 토지관리학과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공저인「중국의 토지개혁 경험(부제: 북한 토지개혁의 거울)」(한울, 2011.6.),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평사리, 2012.1.)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 토지연조제 실험이 북한 경제특구 공공토지임대제에 주는 시사점”, 『한중사회과학연구』(KCI, 2012년 1월, 통권 22호)와 “Introducing Property Tax in China as an Alternative Financing Source”, Land Use Planning(SSCI) 38(2014) 등이 있다. 현재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으로 있다.

"회사 그만 나오래" 51세 남편의 폭탄선언


도둑처럼 찾아온 강제해고... 생계 때문에 자존심 굽히고 결국 14.07.30 10:51l최종 업데이트 14.07.30 10:51l 배은주(bb2005) 6월 하순 어느 금요일. 51세 사무직 노동자인 남편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을 열었다. 출근길에 재수하는 큰아들을 학원 앞에 내려주고, 서울의 동서로 길게 난 올림픽도로를 타고 회사에 출근해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켜 일과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사장이 부르기 전까지는. 오전이 다 가기 전, (고용된) 사장은 남편을 불러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오늘 부로 일에서 손 떼세요." 사유는 '노조가 설립되도록 방만하게 관리한 책임'이라 했다. 여태 노조설립과 관련해 어떠한 언질도 없었던 회사였다. 또한 노조설립 과정에 노사 간 불미스런 불협화음도 없었고 당연히 사측도 승인한 노조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책임을 지라니. 사실상 강제 해고였다. 60세까지 회사 다닌다던 그, 돌연... 기사 관련 사진 ▲ "오늘 부로 일에서 손을 떼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그 다음날 아침, 남편은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둘 거라는 말을 던졌다. 남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최근 사직이나 이직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60세까지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라고 말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분명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어떤 부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직감했다. 그것은 빗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짐을 챙기러 회사에 간 동안 아이들에게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납득할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고 아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거짓말~!"이라고 웃으며 받아들이다가는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가는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한 어떤 무언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만에 벌어진 이 상황을 누구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짐을 챙기고 돌아온 남편은 전날에 벌어진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그는 말을 아꼈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남편이 60세까지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그것을 의심하였다. 남편의 쓸모가 다해지면 언제 어떻게든 버려질 것이라고. 그렇에 짐작했어도 그날은, 도둑처럼 들이닥쳤다. "엄마는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 불과 몇 주 전, 고등학생인 딸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모르는 척 "노후 준비가 뭐냐"고 되물었다. 딸은 "그러니까...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면..."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딸의 진지한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노후준비라는 거 안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써주는 데가 없는데 나이 더 들어 육십 넘어 무슨 힘과 능력이 있어 일하느냐고 했다. 미래 세대를 재생산하고 또 젊은 시절 열심히 노동했으면 노후는 국가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고 한 발 더 나갔다. 아이는 "현실이 어디 그러느냐" 했고, 나는 "그래서 이런 체제를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노후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내 노후설계는 이 체제를 바꾸는 데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남편의 해고 소식을 듣고 나니, 나는 노후가 아니라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러 생각을 해야 했다. 재산이라고는 낡고 오래된 집 하나가 전부, 물론 이 집이라도 있어 전세금 인상이나 애들 넷 데리고 이사 다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수입은 노후를 준비할 만큼 넉넉하진 않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살 수 있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갑자기 일자리를 잃으니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안하게 다가왔다. 교육비가 가장 많이 나가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대책도 아닌 것을 대책이라고 가장 먼저 떠올렸고,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있는 대로 나열해 보았다. 오래전에 일을 그만두었으니 경력이랄 것도 없고 나이도 많아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었다. 식당종업원, 빌딩청소원, 콜센터상담원, 가사도우미, 건설현장 노동 잡부, 베이비시터, 대형마트 계산원, 보험 판매원... 그것도 건강을 전제하고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러나 그만큼 불안정한 일자리들이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그만 떠나라 남편과 나는 1980년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다. 남편은 공부를 잘했다. 학문의 길을 가는가 싶었는데 그는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는 돌연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선택했다. 당시 대학 졸업자들이 대체로 그랬듯이 남편 또한 어렵지 않게 사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 출신에 꽤 괜찮은 성적에 성실하고 정직한 그의 성품은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모두 가산점으로 작용했다. 남편은 20여 년 동안 세 차례 이직했으며 직전에는 외국계 기업에서 인사와 교육, 총무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맡았다. 최근 2년 여 동안은 하루 평균 15시간 일을 해야 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대부분 외국기업들이 무노조 경영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남편이 다니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근 영업직 사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되었는데, 그것이 사용주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사용주는 그것을 빌미로 남편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사실상 강제 해고한 것이다. 남편에게 잘못이 있다면, 바보같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 남편은 평소 자신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소소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매우 꺼렸다. 행여 그럴 여지가 있을 것 같으면 일찌감치 외면하곤 했는데 이번만은 사안이 달랐다. 어떠한 실책도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될 수는 없었다. 아이들 넷 모두 학업중이라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고 혼자 벌어 여섯 식구가 먹고 사는데, 이 상황에서 해고란 그야말로 살인적 행위였다. 우리 가족은 얼마 안 가 빚더미에 앉을 게 뻔했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하든, 사측에 직접 보상을 청구하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남편에게 은근 소송을 권유하였으나 남편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막연했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남편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사실 남편이 그 벽을 높게 보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직한 남편, 아빠가 되어 아내와 자식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지 모른다. 기사 관련 사진 ▲ 지금, 아이들 넷이 모두 학업 중이라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때이고 혼자 벌어 여섯 식구가 먹고 사는데, 이 상황에서 해고란 그야말로 살인적 행위였다. (자료사진)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그는 회사에 1년치 임금을 보상안으로 내놓았고, 회사는 전례 없음을 핑계로 6개월치 조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는 동안 남편의 부당해고에 동료 노동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사측은 일주일도 안 되어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얄팍한 술수였다. 동일한 사용주가 설립한 그러나 별개의 기업체로의 자리 이동이었다. 동일한 보수와 동일한 직책을 보장한다고 하였으나 남편에게 맡겨진 업무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사측은 외견상 해고를 철회하고 새로운 직책을 보장하는 것 같은 카드를 던져 자기 합리화를 완성했다. 그들은 이제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남편의 결정을 기다렸다. 쉰 살이 넘은 남편은 경력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 나이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그가 타진해 본 현실은 냉엄했다. 남편은 사측의 속내를 알면서도 이 카드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자존심에 상처가 난 건 사실이고..." 남편은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말했다. 사측의 교활한 술책보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상처 난 자존심보다 당장 내일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게 남편에겐 우선이었다. 결국 남편은 임금에 합의하고 2년 계약직으로 회사와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 어쨌든 남편은 새로운 회사와 2년 계약을 했고 8월부터 새로운 업무를 한다. 업무 내용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라 한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될까. 어차피 같은 사용주의 다른 회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어떤 걸 빌미로 다시 횡포를 부릴지 모른다. 지금 남편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씁쓸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매 주말이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아 나에게 잔소리를 듣던 그는, 어찌 되었든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지금 오히려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는다. 그는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 나무 분진을 먹어가며 뭔가를 만든다고 뚝딱거리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하고 당한 자신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열중하는지 모르겠다. "평생에 이런 휴가를 보낼 기회가 어디 있겠어, 푹 쉬어"라고 나 또한 그렇게 남 일처럼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어느 토요일이나 일요일인 양, 게으름을 있는 대로 부리는 그런 날쯤으로 여겼다. 남편이나 나나 아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인생'도 멈춰서야 비로소 보이기 마련이라고, 하루 15시간 가깝게 일을 하면서 남편은 자신이 쳇바퀴에서 돌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6월 하순 어느 금요일 아침, 남편의 쳇바퀴는 오전이 다 가기 전에 외부의 힘에 강제로 멈춰 섰고 그는 거기에서 끌려 내려와야 했다. 어지러움과 갈팡질팡도 잠시, 그는 다시 다른 쳇바퀴로 옮겨 타게 되었다. 그의 쳇바퀴는 얼마나 굴러갈까. 얼마나 안전할까. 그리고 그 안에 남편은 예전과 같을까 다를까. 알 수가 없다. 나는 며칠 뒤, 일에 복귀하는 그를 위해 그동안 내팽개쳐 두었던 와이셔츠를 다리고 얼마 전에 사 두었던 남편의 옷들을 손질해 두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본 원고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정세와노동> 103호(2014년 7,8월 합본호)에 투고한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보내기 인쇄 2014. 07. 29 조회수 3818 추천수 1 봉하마을 황새 ‘봉순이’<1>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맑게 가꾼 화포천으로 어느날 짠! 2005년 자연으로 돌아간 일본 복원종 한 마리 건너와 049.JPG » 화포천 습지에서 먹이 활동하는 봉순이. “봉순아, 넌 참 대단한 아이였구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공섬에 들어선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향하면서 나는 네가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고 혼잣말을 했단다. 물론 너보다 체구가 훨씬 작은 제비 같은 여름철새도 바다를 건너 고향을 찾아오지만 그들은 대개 무리를 지어 오기 때문에 홀로 바다를 건너온 네가 더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014.JPG » 상승기류가 형성되면 한바탕 날아올랐다가 제자리로 내려앉는 봉순이. 네가 우리나라에 온 건 3월18일이니까 여름새들이 오는 날짜와 거의 비슷했구나. 두 살밖에 안 된 네가 한국에 오는 여름새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아직 모르지? 내가 사는 곳에 오는 여름새들을 대략 적어볼까? 가장 먼저 오는 녀석이 호랑지빠귀와 되지빠귀라는 녀석이고 그 뒤를 이어 산솔새, 큰유리새, 소쩍새, 울새, 벙어리뻐꾸기, 흰눈섭황금새, 숲새, 검은등뻐꾸기, 파랑새, 꾀꼬리, 두견이, 쏙독새, 호반새, 청호반새, 팔색조, 휘파람새, 상모솔새, 뻐꾸기 등이란다. 모두 이곳이 고향이야. 그런데 너는 이곳 경남 김해시 화포천이 태어난 곳도 아니면서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기 때문에 학자들이나 매스컴 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거야. 신문에 기사 나가자 찾아가 마지막 황새 수컷 총으로 사냥 슬픈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그러니까 네가 상상도 못할 1971년의 일이야. 그해 <동아일보> 4월1일치(하필이면 만우절이람)에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황새 한 쌍이 살고 있다고 보도했어. 1971년이면 인간에게 그리 긴 세월은 아니야. 글을 쓰는 내가 1953년에 태어났으니까. 그 전까지는 이 땅에 황새가 살고 있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우리는 자연생태에 대해 정말 무지했어. 신문에 황새가 살고 있다고 보도되고 사흘 뒤 더 무지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 포수가 수컷 황새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이야. 001.JPG » 황새는 까치처럼 민가 주변에 둥지를 틀고 살았기 때문에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재미삼아 다른 생명을 죽이는 사람들이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짜릿한 쾌감을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건 정말 비인간적이지 않겠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잖아. 그게 무슨 뜻이냐면 인간만이 다른 생명에 대해 배려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다는 뜻이야. 인간이 비행기와 자동차를 만들고 우주로 날아갔대서 만물의 영장은 아니라고 생각해. 봐봐, 너희들은 두 날개로 가볍게 바다를 건너는데 인간은 어디 그래? 거대한 비행기나 배를 타고 화석연료를 마구 써대면서 다니잖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 후 실수의 연속이었어. 이 땅에 남은 황새 한 쌍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면 포수의 총질에 피해를 입지도 않았을 테지. 거기다가 남은 암컷 황새가 해마다 무정란을 낳을 때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어. 그리고 1984년 기어이 암컷 황새가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고 쓰러졌어. 부랴부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치료를 했지. 우리 안에서 살던 황새는 1994년 삶을 마감했단다. 황새가 멸종위기에 몰려있거나 죽어가고 있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으며 그 많은 생물학자들은 다 뭐하고 있었는지, 황새들은 죽어가면서 인간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너 한 마리쯤이야’라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 하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 왜냐하면 봉순이 네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시들해졌거든. 내가 대통령이라면, 내가 문화재청장이라면 내가 경상남도 도지사나 김해시장이었다면, 내가 조류보호협회장이었다면, 너한테 사람을 붙여 네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기록하고 살피고 혹시라도 변을 당하지는 않는지 관리했을 텐데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그러지 않았어. 우리나라에서도 네가 태어난 일본처럼 황새 복원에 성공했고 2014년 7월 현재 150여 마리로 늘어났어. 그러니까 머잖아 이 땅에서 황새가 너울너울 날아다닐 텐데 봉순이 너 한 마리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렇다면 그건 사람들이 큰 실수를 하는 거야. 003.JPG » 다가오는 개도 무서워하지 않고 쫓아버리는 봉순이. 018.JPG »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떼어먹기도 하고 거미를 잡아먹기도 한다. 019.JPG » 가끔씩 홰를 쳐 몸에 붙은 기생충을 털어낸다. 040.JPG » 둥지 재료를 모으는 두 살짜리 암컷 봉순이. 041.JPG » 황새는 목소리로 울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부리를 부딪쳐 소리를 내 소통한다. 네가 어디 보통 녀석이냐? 일본도 우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황새가 멸종하여 바로 복원 작업에 들어갔고 드디어 2005년에 자연으로 날려 보냈어. 너도 그 중 하나였고 유일하게 바다 건너 국외로 건너온 거잖아. 너는 학술적으로도 소중한 존재가 분명하고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도화선 될 수도 있는 거였어. 유기농 들판과 깨끗한 강에 물고기도 새도 몰려와 이렇게 사람들이 너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미안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네가 자주 출몰한다는 화포천과 봉하마을과 퇴래뜰을 뒤지고 다녔어. 5월 말이니까 들판은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려고 써레질이 한창이었어. 며칠 뒤였어. 저만큼에서 하얗고 큰 새가 눈에 띄는 거야. 두루미를 오랫동안 관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네가 금방 황새라는 걸 알아챘어. 예로부터 황새, 두루미, 백로처럼 흰 색깔의 새들은 학(鶴)이라고 불렀지. 학의 어원은 ‘희다’는 뜻을 가졌대. 그러니까 시골 사람들은 너도 학으로 불렀다는 거야. 017.JPG » 황새의 먹이는 미꾸라지, 뱀, 개구리, 곤충 등 다양하다. 먹이를 발견하고 논으로 뛰어드는 봉순이. 너를 보는 순간 나는 ‘그가 황새가 되어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어. ‘그’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말해. 생전의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내려와 살려고 했어. 마을 뒷산 이름이 봉화산이고 봉우리 밑에 있는 마을이라서 봉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대. 090.JPG » 7월17일 일본 도요오카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5회 국제황새회의에서 오염된 화포천을 생태공원으로 가꾼 노무현 대통령이 소개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앞을 흐르는 화포천을 맑게 가꾸는 일이었어. 수백 트럭 분량의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수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깨끗해진 화포천으로 물고기가 돌아오고 새들이 몰려왔어. 화포천은 아름다운 습지공원이 된 거지. 그리고 봉하마을 앞 들판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으로 바뀌었어.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즐겨 입던 우리 민족처럼 그곳을 용케 네가 찾아온 거야. 너희는 오염된 곳에서는 살지 못하는 무척 정갈한 종족이었어. 슬픈 얘기 하나 더 할까? 음성에서 황새가 발견될 당시만 해도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어. 1971년 국민소득이 300달러가 안 됐으니까. 국민이 배곯지 않으려면 당연히 식량증산을 해야겠지. 025.JPG » 제초제를 살포하는 농민. 유기농을 하지 않는 지역이 더 많아 황새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046.JPG » 함부로 쓰고 버려진 제초제 포장지. 습지에서 사는 생물들에게 치명적이다. 결국 대량생산을 위해 독한 농약이 개발되고 드넓은 농경지에 농약이 뿌려지기 시작했어. 최근에는 농민의 노령화로 일본, 네덜란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농약을 쓰는 나라가 되었지. 제초제, 살충제를 사용하면 개구리, 미꾸라지, 새우, 땅강아지, 지렁이, 거미 같은 논습지 생물이 살 수가 없어. 그러면 이들을 먹이로 하는 너희 족속들은 굶을 수밖에 없겠지? 결국 이 땅에서 너희들이 사라진 원인은 우리 인간에게 있었던 거야. 006.jpg »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은 봉순이. 미꾸라지는 황새들의 주식이다. 하얀 몸통 검은 꽁지. 옛 사람들은 우선 너의 ‘스타일’부터 좋아했어. 왜냐하면 예전에는 우리도 하얀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즐겨 입었거든. 영덕대게처럼 길고 붉은 다리에는 네가 누구인지 어디서 온 아이인지 알 수 있는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고 ‘J0051‘이라는 번호가 선명했어. 그 번호로 우리는 일본 효고현 도요요카 황새마을에서 날아온 녀석이라는 걸 알았지. 근데 로봇도 아니고 J0051이 뭐야. 그래서 나는 너에게 ’봉순이’라는, 조금은 촌스럽지만 한국적인 이름을 지어주었어. 봉하마을에 온 여자아이라는 뜻이야. 그 후 사람들도 너를 봉순이로 부르게 되었단다. 글·사진 도연 스님   도연 스님은 철원 지장산의 ‘도연암’에서 삽니다. 안락한 절집을 떠나 홀로 살며 새를 즐겨 찍습니다. 새는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자유로운 존재여서 좋아합니다.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그래, 차는 마셨는가’, ‘중이 여자하고 걸어가거나 말거나’, ‘연탄 한 장으로 나는 행복하네’ 등의 책을 냈습니다. 누리집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http://www.hellonetizen.com/에 가면 그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글 세계적 희귀새 황새, 백령도 폐염전에 최대 규모 찾아와 천수만 황새 부부, ‘느림의 미학’으로 새해 연다 황새 없는 들녘, 뱁새도 외롭다 저무는 2011년 다 내려놓더라도 지켜야 할 딱 하나, 희망 새만금, 덤프트럭 사이로 황새 등 겨울 진객 출현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해경은 본 적 없었고,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④] E학생의 법정 증언 14.07.29 01:26l최종 업데이트 14.07.29 10:36l 박소희(sost) E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 역시 사고 당일 선실(SP-1번방)이 물에 거의 잠긴 뒤에야 빠져나왔다. 28일 다섯 번째 증인으로 나선 그는 처음 배가 기울었을 때 방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내방송이 그를 붙잡았다. "배가 기울어지니까 나갈까 말까 했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불안했죠. 또 '나갈까,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러면서 (방 안에) 있었어요." E학생은 결국 한참 뒤에 방에서 빠져 나왔다. 그는 "사고 초반에 대피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을 밟고 올라오고 해서 애들도 더 많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E학생의 증언 전문이다. 앞부분은 검찰 측, 뒷부분은 변호인 측 신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문에 물이 닿더니... 콸콸콸 물 차는 소리가 났다" [검찰 측 신문] - 세월호에서 배정받은 숙소는? "SP-1번방이다." - 4월 16일 일어났을 때부터 사고 직전까지 상황을 설명해 달라. "아침에 머리를 감으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머리 다 감고 말린 다음에 밥을 늦게 먹었다. 식사한 뒤에 나는 자려고 (방에) 누웠다. 그때 배가 기울었다." - 당시 선실 상황은 어땠나. "일단 배가 기울어지고 나서 창문 쪽으로 애들하고 짐하고 다 쏠려서 친구들이 깔려버렸다. 막 날아가서 부딪치고. '뭐야, 뭐야' 이러면서 가만히 있었는데, 배가 기우니까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반장이 막 괜찮다고 하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한테 '괜찮으니까 침착하게 기다려라'는 카카오톡이 왔다. 안내방송에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배가 점점 기우니까 창문에 물이 닿는 게 보였고, 나중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더라. 불도 다 꺼지고 불안해서 엄마한테 문자 보내고 애들은 통화하고 있던 중에 배가 더 기울어졌다. 갑자기 쩌저적 소리가 나고 콸콸콸 물이 차는 소리가 났는데 (불이 꺼져서) 보이는 게 없으니까 굉장히 무서웠다. 또 갑자기 쾅 소리가 들리면서 캐비닛이 부서지고 아이들이 깔렸다. 나랑 친구는 캐비닛에 갇혀버렸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가 캐비닛을 쳐서 빠져나오니까, 위에서 친구들이 올려주고 뒤에서 받쳐주고 해서 복도로 나왔다. 거기서 반대쪽(선수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그쪽이 아니다'라고 해서 뒤편, 꼬리 쪽으로 나왔다." - 배가 최초로 기울 때 쿵하는 소리나 쇠 긁히는 소리는 못 들었나. "아뇨, 기억에 없다." - 안내방송에선 뭐라고 했나. "가만히 있으라는 게 몇 차례 반복되다가 '주변에 잡을 것 있음 잡고, 구명조끼 입어라'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방송 나오기 전에) 먼저 찾아서 입고 있었다. 애들이 우연히 구명조끼 있는 곳을 찾아서 입자고 하기에 입었다." "해경이나 선원 없이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 결국 선실에서 계속 대기하다가 안에 물이 차면서 몸이 떠올라 나온 것인가. "네. 선실 안에 물이 거의 가득 차서 몸이 떴고 친구들이 도와줘서 나왔다." - 그때 선원이나 해경이 도와줬나. "그런 건 없었고 그냥 우리끼리 (서로) 도와서 나왔다. 해경은 본 적 없었고, 우리가 (선미 쪽으로) 나왔는데, 바로 밑이 물이었다. 거기 어떤 아저씨가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했다. 이미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구명보트로 구조됐다. (해경이) 안으로 들어와서 구해준 건 아니다." - 왜 사고가 난 직후에 방에서 탈출하지 않았나. "배가 기울어지니까 나갈까 말까 했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불안했다. 또 '나갈까,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라.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러면서 (방 안에) 있었다." - 선원들을 믿고 기다린 건가. "네. 그리고 해경도 곧 온다는 방송이 나와서, 해경이 복도 쪽으로 들어와서 우리들을 끌어줄 것으로 알고 계속 기다렸다." - 탈출하면서 다친 곳은 없었는가. "(방에서 나오기 위해) 올라 올 때 다리에 힘을 많이 줘서 다쳤다. 나중에 섬에 가서 보니까 막 긁혔더라." - 정신적으로 힘든 건…. "… 가끔씩 (사고 당시 상황이) 막 생각나고… (이번에 숨진) 애들도 생각나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 마땅한 대가 받아야 한다" - 다른 피해자들은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도 했다. 같은 생각인가. "(승객을 놔두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의 행동에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혹시 세월호 탔을 때 비상탈출 관련 교육을 받은 적 있는가. "세월호에 탔을 때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 텔레비전으로 (동영상 보면서) 교육받지 않았나. "잘 모르겠다." - 선실이나 복도에 붙어있는 안내문에서 '이 배에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비상벨이나 비상 기적 소리가 울리면 탈출해라'라는 문구나 내용이 있는 걸 봤나. "아뇨. 전혀 없었다." - 만약 사고 초반에, 처음 배가 기운 직후에 대피하라고 했다면 더 일찍 탈출할 수 있었나. "초반에, 그때 (대피)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밟고 올라오고 해서 애들도 더 많이 탈출할 수 있었을 거다." "바닷물은 매우 차가웠다" [변호인 측 신문] - (이준석 선장의 변호인) '해경이 곧 온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했는데. "네. '해경이 곧 도착하고 헬기도 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 방송이 나온 시각은? "잘 모르겠다." - 그럼 혹시 방송 내용에 '5분 안에 온다, 10분 안에 온다' 이렇게 시간이 들어있었나. "잘 모르겠다." - 탈출한 시각은 기억하고 있는지. "거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좀 오래……. 잘 모르겠다. (당시 주변에서 내가) 나온 시각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냥 나오자마자 어떤 아주머니가 부모님한테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한 다음 곧바로 섬으로 이동했다. 시간을 볼 겨를이 없었다." - 그럼 배가 기우는 속도는 어땠나. 조금씩 기울었나 아니면 급격하게 넘어갔나. "처음에는 확 기울어졌다가 그 뒤에 천천히 넘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확 기울었다." - 마지막에 배가 확 기울었던 시점은 탈출 전부터 대략 언제쯤이었나. "그건 잘 모르겠다. 처음에 기울고 쭉 안 기울어지다가 확 넘어갔는데…." - (강아무개 1등 항해사·전아무개 조기장·김아무개 조기수의 변호인) OO학생이랑 같이 갇혀 있다가 방에서 나온 건가. "같은 방이긴 했는데, 있던 위치는 달랐다." - (재판장) 물 온도는 어땠나. "매우 차가웠다." [관련기사] [생존 학생 증언 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생존 학생 증언 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 [생존 학생 증언 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 [생존 학생 증언 ⑤]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생존 학생 증언 ⑥] "선원들 엄벌에 처하길 원하는가" - "네" [생존 학생 증언 공판 종합] 참사 104일 만에 입 연 단원고 학생들 태그:세월호, 단원고 태그입력

[기고] ‘반서방 세력’ 악마화 위해 진실 감추는 서구 언론


김원식 재미언론인 발행시간 2014-07-29 08:40:15 최종수정 2014-07-29 08:36:31 바레인 남자아이 바레인 남자아이가 26일(현지시간) 카라나에서 열린 가자지구 지지 집회 중 가자지구 어린이를 죽이지 말라는 배너를 들고 있다.ⓒ뉴시스 외신을 접하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이른바 ‘반군’을 뜻하는 ‘insurgent’이다. 폭력을 행사해 반란을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폭도’, ‘반란 무장세력’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단어는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다. 즉, 현재의 정권이나 지배 계급의 권력에 반하는 모든 종류의 행동이 이 ‘반란’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친서방화 되어있는 이라크 정부나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서 다시 이들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는 세력들이 주로 이러한 ‘반군’이나 ‘급진주의자’ 혹은 ‘테러리스트’로 묘사되어 각종 서구 언론에 보도된다. 하지만 서구 언론에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라며 ‘아랍의 봄’이나 이른바 ‘오렌지 혁명’으로 묘사되는 무장 시위 세력들의 반정부 행위도 당시 해당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반란’이자 ‘반군’인 것이다. 이렇듯 ‘반군’이라는 표현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군’들이 득세를 하게 되면 정권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들은 그들을 이른바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국가에 반하는 무장 세력이 등장했을 때에는 역설적으로 진실 보도를 생명으로 한다는 언론, 특히 서구 언론들이 이러한 ‘나쁜 놈’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엄청난 달러를 퍼부어가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나름 친미적인 정권을 세우고 나서 철군을 완료한 미국은 현재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한마디로 ‘10년 공부’가 아닌 ‘10년 개입’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형국에 처한 것이다.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무장 단체가 ‘이슬람국가(IS)’ 건설을 선포하고 이라크 지역들을 장악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현 시아파인 이라크 정부가 미국의 지원과 돈에만 의존한 채, 엉성하게 국가를 관리하며 부패를 양산한 것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이라크 현 정부나 이를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이들은 이른바 ‘반군’인 것이다. 이러한 반군(?)들이 자라날 토양을 서방 국가 스스로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서방은 이제 그들은 무조건 ‘나쁜 놈’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만 남은 것이다. “4억 달러 강탈해 갔다”?… 그러나 “종이 한 장 사라진 적 없다” 이 이슬람 수니파 무장 세력은 놀랍게도 삽시간에 이라크의 제2의 도시인 모술까지 장악해 가며 세력을 확장했다. 과연 현지 주민들의 동조나 지지가 없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것은 또 달리 평가해 보아야 할 사항이다. 아무튼, 이들은 어쨌든 현재 서방 국가에 반하는 세력이니 이들에 관한 조그마한 소문도 이 잡듯이 잡아내어 도덕성에 타격을 주어야 하는 서방 국가의 절박함이 생겨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서구 언론들이 알아서 총대를 멨다. 지난 6월 이들 무장 세력들이 모술 지역을 장악하자 서구 언론들은 일제히 이들 반군(?) 세력이 모술 중앙은행을 습격해 4억 달러가 넘는 돈과 금괴를 약탈(heist)해 갔다고 보도했다. 6월 20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는 “이들 세력이 약 4억 2천5백만 달러의 돈을 약탈해 갔다”며 “이들이 세계 최고로 ‘부유한 테러리스트’ 그룹이 되었다”고 이라크 정부 관리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모든 서구 언론들이 그대로 보도했다. 한술 더 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일, “‘스탠다드차타드(SC)’와 ‘시티(citi)’등 최근 이라크에 진출한 서방의 대형 은행들이 이러한 내전 상황으로 이라크를 떠나고 있다”고 확대해 보도하면서 더욱 파문을 몰고 왔다. 그런데 스스로 너무 크게 ‘나쁜 놈’으로 만든 데 대한 서구 언론들의 미안함일까? FT는 17일 자 기사에서 처음 약탈 사실을 전했던 이라크 지역 관리가 갑자기 말을 바꾸어 “아직 약탈 사실을 확인해줄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면서 “중앙은행 약탈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FP)>는 24일 자 기사에서 아예 이라크 민간은행협회 대표의 말을 인용하며 “모술에 있는 어떤 은행에서도 종이 한 장 사라진 적이 없다”며 “그러한 약탈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이슬람국가(IS)’를 표방하는 이들 무장 세력은 ‘반군’이라는 이미지 위에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난 다음이었다. 지난 24일에는 IS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11∼46세 여성들을 상대로 할례를 명령하는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발표했으며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그 대상이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AFP통신을 선두로 줄을 이었다. 하지만 FP에 의하면, 이 또한 확인되지 않은 낭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의 카이로 지국장인 레일라 파델에 따르면 모술의 의사에서부터 부족장에 이르기까지 현지 주민들은 이 같은 명령(파트와)은 듣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FP는 24일 전했다. 이 사실을 현지에서 처음 전한 것으로 알려진 재클린 배드콕 유엔 이라크 담당 인도주의 업무 조정관을 담당하는 유엔 이라크사무소 측은 배드콕이 무슨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했느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고 FP는 덧붙였다. FP는 또한, IS가 장악한 현지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성당을 불태웠다는 등 여러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사실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 예로 지난주에는 IS가 성 에프렘 성당을 불태웠다는 외신 보도가 줄을 이었지만, 이 기사와 함께 발행된 사진에 찍힌 교회는 이라크가 아니라 시리아에 있는 가톨릭 교회였으며 이 성당이 불탔다는 것을 확인해준 사람은 모술 시내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FP는 전했다. ‘여객기 참사’ 조사 시작되기도 전에 ‘말레이기 격추=우크라이나 반군 소행’? 이라크에서 최근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슬람국가(IS)’를 표방하는 무장 세력이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국가에는 ‘반군’ 세력이라면 우크라이나에서는 당연히 최근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저항하고 있는 무장 세력이 이들 서방 국가에는 눈엣가시인 ‘반군’ 세력이다. 서방 국가들은 한때 이른바 제2의 ‘오렌지 혁명’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반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크림 반도까지 러시아에 합병을 당하는 수모(?)를 겪은 서방 국가들은 다시 동부 지역 주민들이 친러시아의 분리 국가를 선포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현 우크라이나 정부와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분리주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동부 지역 주민(서구 언론은 ‘반군’이라 표현하지만, 러시아 등 비서방 언론은 ‘민병대’라고 표현)들 간의 내전 상황으로 돌입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상공을 날고 있던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여객기가 피격되어 탑승자 298명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가 발생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방 국가나 서구 언론들은 참사를 자행한 범인으로 분리주의 무장 세력인 우크라이나 ‘반군’을 지목했고 이를 지원한 러시아를 정조준했다. 비행기 사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아서 ‘나쁜 놈’은 이렇게 순식간에 정해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결정적 증거’라면서 우크라이나 반군과 러시아군 간의 통화 도청 자료를 내놓았고 여객기를 피격한 ‘부크(buk)’ 미사일이 사건 전후 반군 지역에서 러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사진이라며 여러 증거(?)들을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한 이런 내용은 이 물증들의 사실 여부나 검증과는 관계없이 신속하게 서구 언론을 타고 보도되었다. 즉, ‘우크라이나 반군=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세계인들 특히, 서구인들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청과 사진은 조작된 가짜”라는 러시아의 주장은 보도하지 않는 서구 언론 <러시아의 소리> 방송 등 러시아 매체들은 “우크라이나 동부서 격추된 말레이기 증명 기록 가짜, 전문가 인정”이라는 제목으로 이 도청 자료가 과거 분리주의 무장 세력이 군용기를 격추했을 때의 대화 내용 등을 단락 별로 짜깁기한 조작품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미 ‘나쁜 놈’을 만들어 놓은 서구 언론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21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주장하는 ‘부크’ 미사일이 러시아로 이송되는 동영상과 사진은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군 합참본부 정보국장은 해당 사진에 등장한 지역의 상점 간판을 인용하며 “그 지역은 지난 5월 11일부터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통제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사진 조작의 증거를 제시했지만, 이 역시 서구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객기 참사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 소행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국 정부 누리집에 여러 장의 ‘부크’ 미사일 관련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또 다른 사진 한 장은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3월에 촬영된 조작으로 누리꾼들에 의해 밝혀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슬그머니 해당 사진을 내렸다. 부크 미사일 이동 사진 7월 19일 우크라이나 안보국 누리집에 올라왔던 ‘부크’ 미사일 이동 사진, 지난 3월에 촬영된 것으로 밝혀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슬그머니 이 사진을 내렸다.ⓒScreenshot: Vk.com 지난 23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차장급 인사는 이례적으로 대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그는 CIA가 그동안 정보(?)를 슬쩍 흘리는 차원이 아니라 왜 “직접 브리핑까지 하느냐”고 한 기자 질문하자 “러시아가 자신들의 소행을 감추려고 너무 많은 선전전을 펼치고 있어서…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 CIA는 이날도 러시아가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군사시설 사진들 몇 장만 제시한 채, 이른바 우크라이나 반군이 ‘부크’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러시아 측으로부터 미국 인공위성이 당시 사고 현장 상공을 비행 중이었는데 결정적 증거가 있다면, 왜 사진을 공개하지 않느냐고 조롱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즉, 이번 말레이기 피격 참사와 관련하여 아직 그 어떤 당사자도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고 있지 못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서구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반군=나쁜 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오히려 ‘피격’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꺼리며 ‘추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중국 정부나 중국 언론들이 더 객관적일지도 모른다. 지금 확인된 것은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사실밖에 없으니 철저한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마스’가 3명 납치, 살해?... 천여 명 넘게 죽이는 이스라엘이 ‘나쁜 놈’ 아닌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에 인해 이른바 서구적 시각에 길들어져 있는 우리는 최근 또 하나의 ‘나쁜 놈(?)’을 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이른바 ‘하마스’라는 무장 세력이다. 역시 ‘급진주의’에다가 ‘테러리스트’라는 악명(?)으로 이미 서구 언론들로부터 ‘나쁜 놈’으로 낙인 찍힌 존재이다. 그러나 최근 기자는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학살에 가까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보면서 이 ‘하마스’가 대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최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청소년 3명을 납치 살해한 범인으로 ‘하마스’를 지목하고 보복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범행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도 않았고, 이스라엘 정부는 자신들의 공격 명분이 된 이 사건 조사 결과는 발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26일, ‘걸프뉴스’와 ‘데일리스타’ 등 영문판 중동 언론들은 미키 로젠펠드 이스라엘 경찰 대변인이 BBC 중동 특파원에게 “유대인 청소년 납치·살해는 하마스 연계 조직이 하마스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들은 이어 로젠펠드 대변인은 “하마스가 납치를 지시한 것이라면 그들이 사전에 이 사실을 알았어야 하겠지만, 하마스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서안지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조사하려고 이스라엘은 4백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연행하며 최근 학살에 가까운 공습을 감행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그렇게 이 잡듯이 뒤졌지만, ‘하마스’가 범인이라는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는 없었다. 그렇게 정당성도 명분도 없는 공습을 이스라엘은 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학살에 가까운 보도들은 뒷전으로 하고 여전히 하마스를 ‘나쁜 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가자지구 봉쇄를 풀라는 주민들의 절박한 요구의 당위성을 보도하는 서구 언론은 찾기 힘들다. 그러는 사이 무려 천여 명이 넘는 무고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죽어 갔다. 그리고 오늘도 이스라엘은 잔인하게 가자지구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정말 누가 진짜 ‘나쁜 놈’인가. 필자 소개:김원식 재미언론인 66년 부산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행정대학원 외교안보석사 5학기 마침. ‘시민자치를 위한 젊은일꾼 모임’ 공동 대표. 시민단체 추천 고양시장·시의원 선거 입후보. 해커스랩 기획팀장 등 보안전문가. 2007년 도미 후 저널리스트 활동 중. 현재. 시사저널·서울신문(나우뉴스) 미국 통신원. 오마이뉴스 민족국제 시민기자. ‘진실의길’ 칼럼니스트. 주권방송 ‘미국에서 바라본 한반도’ 화상 대담 진행. ‘국제 갈등’ 및 ‘디지털 저널리즘’ 수학 중.

장하준 "이대로 가면 2008년 금융위기 재발한다"


"규제 완화는 좋다는 생각 바꿔야…박근혜, 약속 쉽게 깨" 최하얀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28 18:47:41 "막연하게 이런 책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쓸 엄두를 못 냈다." 장하준(51)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2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 첫 마디다. 읽기에 부담이 없고 재미있으며 동시에 독자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경제학 입문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책이 2년 반에 걸쳐 원고를 두 차례나 뒤엎는 노력 끝에 출간됐다.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다. 이 책은 영국의 펠리컨 북스(Pelican Books·펭귄 출판사)의 윌 굿래드 편집자가 지난 2011년 장 교수에게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경제학 입문서를 쓰자'고 제안을 하며 만들어지기 시작됐다. 펭귄 출판사는 1937년부터 2878종의 교양 논픽션 문고본을 제작하다 1989년 종간했으며, 최근 25년간의 동면을 마치고 장 교수의 이번 책을 첫 작품으로 복간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출간된 책의 영문 제목은 다. 장 교수는 이날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도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었다"며 이번 책에 쏟은 그의 특별한 정성을 표현했다. 그는 "보통 입문서라고 하면 논란이 많은 주제나 철학적·역사적 이야기는 빼고 '10가지만 알아라' 식으로 단순화하는데 이는 독자를 깔보는 것"이라며 "독자를 깔보지 않고 복잡하고 껄끄러운 논쟁도 많이 소개했다. 독자들이 스스로 뭐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 장하준 캐임브리지 경제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펴낸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를 번역한 것으로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다. ⓒ연합뉴스 ▲ 장하준 캐임브리지 경제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펴낸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를 번역한 것으로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다. ⓒ연합뉴스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는 없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 44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경제학은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라는 흔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고 있다. 그러면서도 9개 경제학파별 주요 논쟁과 그것이 다루려는 현실 경제 문제를 입담 좋게 엮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앞선 그의 책들이 '현안'에 대한 장 교수 나름의 해설본이었다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경제 전반에 대한 '조감도'다. 큰 그림을 입체감 있게 보이기 위한 책인 만큼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사, 경제학설사 등으로 보통 표현되는 이러한 주제는 결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장 교수는 "9개 학파의 그 모든 이론이 지금도 다 살아있고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경제학 입문서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학계의 절대 주류로 뿌리내린 시카고학파(신고전학파의 한 부류)에서 잠시만 눈을 돌려도,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주제를 좀 더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장 교수가 든 게 생산과 노동 문제다. 장 교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경제를 '교환 관계'로 설명하며 그 주체를 '개인'으로 본다"며 "기업도 개인의 연장에서 보니 '시장' 얘기는 하면서 '생산' 얘기는 하지 않는다. 공장 문제는 사회학자들이 할 일이라고 하며, 경제학은 '직장 문' 앞에서 끝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결과로 주류 경제학은 대체로 '노동'이란 근본적인 주제를 누락하고 있다. 장 교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선 얘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사람들을 자꾸 '소비자'로만 두니 어떻게 돈을 벌게 해서 잘 쓰게 할 것이냐에만 집중하고, 노동 강도나 노동 시간, 고용 불안 문제에 대한 고민은 안 하게 돼 정책에서 노동이 배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는 없다"는 표현을 책에서 썼다. 책 115~116페이지에서 장 교수는 여러 "경제를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데, 혹은 경제학을 '하는' 데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며 "어느 학파도 다른 학파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자기들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숫자를 알아야 현실 경제 '감' 잡을 수 있다" '절대 반지는 없다'와 함께 이 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표현이 '실제 숫자'다. 책의 2부 '경제학 사용하기'를 구성하는 7개 모든 장에 이 '실제 숫자'란 챕터가 포함돼 있다. 장 교수는 "경제학이라고 하면 흔히 숫자를 많이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제학과 나온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세계 GDP,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잘 없다"며 "'실제 숫자'들과 익숙해지지 않으면 현실 경제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실제 숫자'에 대한 '무감각'으로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나라별 다른 가격 수준을 반영한 GDP 혹은 국민총생산(GNP)의 조정치, 즉 구매력 평가(PPP)를 근거로 '어떤 국가가 세계 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따지는 일이다. 시장 환율은 교역이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공급으로만 결정되기 때문에, 교역되지 않는 서비스 부문이 비싼 나라(주로 선진국)들의 구매력 평가 소득은 낮게 계산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선진국의 생활 수준이 저평가된 지표로 국가별 경제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중국 경제 규모가 커져 곧 미국을 따라잡는다고들 얘기하면서 구매력 기준으로들 흔히 잘못 얘기한다"며 "구매력은 생활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지 세계 경제에서 비중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세계은행 집계에 따르면 2010년 각국 GDP를 모두 합한 세계 GDP 63조4000억 달러 중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9.4%, 미국은 22.7%였다. 장 교수는 "모든 숫자를 꼭 다 기억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될 수 있으면 많은 숫자를 (독자들에게) 드림으로써 세계 경제가 대략 이런 식으로 생겼다는 것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모바일 기기에선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이대로면 금융위기 재발…금융 규제로 '경제 안전'도 챙겨야" 책에 대한 설명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장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의 상황을 묻는 말에 "2008년 일어난 일이 재발할 거란 게 제 생각"이라고 답했다. 금융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금융위기 재발 우려는 이 책의 8장 '피델리티 피두시어리 뱅그에 난리가 났어요'에도 상세히 서술돼 있다. 장 교수는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숫자들이긴 하나, 세계 GDP와 금융자산 두 개가 1970년대까지는 1.2대 1 정도의 비율을 보였다가 지금은 추산에 따라 4대 1일에서 5대 1로도 계산된다"며 "이래서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났지만 그 뒤에 이루어진 개혁은 매우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켰던 파생상품에 관한 규제도 새로 도입된 것이 거의 없고, 그나마 조금 이루어졌다는 게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7년이란 유예기간을 두며 강화하게끔 한 정도였다"며 "그러니 다시 예전 일이 재현되고 있다. 미국 주가지수가 2007년 가을에 비해 20%가 높은데, 경제지수는 그 때에 비해 1~2%밖에 안 크다. 주가가 엄청나게 거품이라 고꾸라졌는데 그보다 더 큰 거품이 생긴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위기가 다시 촉발될 시기를 점칠 수는 없다. 그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서구가 갈등하고 있는데, 만약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러시아에서 보복하고자 유럽에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하면 유럽 경제는 박살이 난다. 어떤 게 뇌관이 돼서 촉발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그는 '금융 규제'를 역설했다. 장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낳은 것"이라고 간추리며 "비행기가 떨어지고 배가 가라앉는 물리적 안전만큼이나 경제 안전도 중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깨지지 않은 '규제는 무조건 풀면 좋은 것'이란 생각을 좀 고쳤으면 하는 경제학자로서의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아울러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당시 한국 경제 상황이 그나마 좋았던 것 또한 "부동산 대출 규제 등에서 다른 나라보다 나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규제를 풀었다가 더 악화된 상태에서 위기를 만나면 문제가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약속 너무 가볍게 깬 것 문제" 사내유보금 과세, 못 할 것 없다…배당도 지원 대상인 건 맞지 않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장 교수의 평가 및 생각을 묻는 말도 이어졌다. 이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떤가 박근혜 정부가 처음 했던 양극화 해소나 복지에 대한 약속을 어긴 것이 되게 많다. 일을 하다 보면 경제 사정에 따라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약속을 너무 가볍게 깬 것이 아닌가 한다. 바꾸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잘 설명했어야 한다. 문제가 많았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우리 경제에 어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 한 단계 도약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앞선 대부분 정부가 그랬다. 기술력도 키우고 투자도 많이 하고 시장도 개척해야 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주축으로 하는 새 경제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기업에 쌓인 돈을 풀게끔 하기 위해 과세를 하려 하자, 선진국에선 유례없는 일이란 반발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사내유보금 자체를 문제 삼았던 사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들이 안 한다고 못 할 것은 없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투자를 하거나 임금을 올리거나까지는 좋은데, 배당을 해도 과세 대상에서 봐준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 의도와 맞지 않는다. 배당금으로 주면 30%는 외국으로 나간다. 가계 투자자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외국 투자자들 중심으로 배당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를 더 장려하는 게 우리 경제에 좋은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배당이 끼었는지를 이해를 잘 못 하겠다. - 한국에선 특히 심각한 문제지만 잘 다뤄지지 않는 게 비정규직 문제다. 이에 대한 생각은. 비정규직이 기업 입장에선 유연성을 늘려 좋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로선 매우 고달픈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복지 제도 자체도 부족해 문제다. 단기 고용이 많은 네덜란드 등 유럽 나라에선, 다음 직장을 얻을 때까지 복지 제도로 먹고살 수 있어 한국처럼 문제가 안 된다. 한국은 OECD에서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이 개발도상국인 멕시코를 제외하면 단연 꼴찌다. 우리보다 훨씬 후진국인 터키나 칠레보다도 못하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문제가 더 되는 이유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 중심의 대외 경제 정책을 반대해 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등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자유무역이란 건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하면 서로 자극이 돼서 좋지만 수준 차이가 크게 나는 나라들끼리 하면 결국 후진국이 손해다. 단기적으론 무역 확대란 이익을 보겠지만 장기적으론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1960년대 무역 개방을 했으면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20~30년 뒤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취약 산업인 제약, 화학 산업, 나노, 생명 공학 등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흔히 하는 평가처럼 2년 사이에 무역이 얼마나 늘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각도의 비판이 아니었다. 20~30년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TPP와 같은 지역 그룹에 가입하는 것은 이젠 정치적 문제가 돼 버렸다. 미·중 갈등 속에 어느 그룹에 들어갈 지란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 등을 봤을 때 어느 한쪽에도 쏠려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가 다자간 무역질서를 앞장서서 주창해야 하는 나라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최하얀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돈 먹는 하마, '한반도통일미래센터'


남북기금 600억 이상 지원..당초 계획 488억 훌쩍 초과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7.28 16:17:00 트위터 페이스북 ▲ 오는 10월 개관 예정인 '한반도통일미래센터'. 지금까지만 총 534억 원이 투입돼 당초 총 사업비 488억 원을 이미 초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출처 - 연천군] 청소년 통일의식 고양을 위해 건립 중인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 정부가 12억 9천 8백만 원을 남북협력기금에서 추가 지원한다고 28일 밝혔다. 정부는 '한반도통일미래센터' 사업 초기인 2011년부터 총 534억여 원을 투입했으며, 여기에 내년 예산으로 72억 원을 추가 지원요청한 상태이다. 이는 당초 계획한 총 사업비 488억 원을 초과한 것으로 '돈 먹는 하마'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통일미래센터가 남북 간 제반 인적 교류 지원, 국내외 청소년 통일미래 리더십 배양, 세대.계층 간 소통을 위한 국민통합 등의 기능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경비를 무상 지원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 25일 제265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개최, 운영경비 5억 9천 6백만 원, 자산취득비 7억 원 등 총 12억 9천 6백만 원을 무상지원하기로 의결했다. 현재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건립 중인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 건축비 493억 원, 체험관 설치비 26억 원, 홈페이지 구축비 2억 4천만 원 등 총 521억 4천여만 원이 투입됐다. 그리고 이번 교추협 의결로 12억여 원이 추가 투입, 지금까지 534억여 원이 지원됐다. 여기에 내년도 예산으로 기본 프로그램 운영경비, 운동장 배수시설, 야영장 취수장 등 총 72억 원을 책정해 총 600억 원을 훌쩍 넘어설 예정이다. 이는 2011년 건립 추진 당시 책정한 총 사업비 488억 원을 훨씬 초과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반도통일미래센터' 건립 추진 당시부터 남북 청소년 교류 시설로 활용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혈세 낭비 사업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 2012년 11월 9일 '남북청소년교류센터' 착공식. '남북청소년교류센터'는 지난해 5월 '한반도통일미래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사진출처 - 연천군] 당초 통일부는 '한반도통일미래센터'를 '남북청소년교류센터'로 사업을 시작, 남북관계 정상화 시에 남북 청소년 교류를 통한 공동문화 형성 발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통일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실천 사업의 하나로 △남북 청소년 교류를 통한 남북청소년 공동문화 형성의 발판으로 활용,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의 거점 공간 조성, △청소년 통일의식 제고를 위한 통일미래 대비 현장 학습센터로 활용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남북 청소년 교류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에 △국내 청소년 대상 통일체험 교육, △남북회담, △사회.문화 교류행사,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사용 목적을 바꿔, 지난해 5월 '한반도통일미래센터'로 명칭을 변경했다. 2012년 착공식 당시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청소년교류센터는 남북 간 관계가 정상화되어서 청소년 교류가 활성화됐을 때 그것을 장소로써 활용하는 것도 있다"면서도 "그전 단계에 남북 간 여러 분야에 있어서 교류를 할 때 회담이나 민간이 협의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우리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함양하는 시설로서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소년 통일교육은 통일교육원이 담당하고, 남북회담본부가 남북회담 장소를 목적으로 건립됐다는 점, 그리고 금강산 내에 이산가족면회소가 있고, 남북 간 민간교류는 주로 북측 지역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활용가치가 높을지 의문이다. 결국 앞세웠던 남북 청소년 교류는 남북협력기금을 대규모로 지원받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고, 국내 청소년 대상 통일체험 교육을 위주로 한 통일부 산하 기관을 하나 더 만든 셈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반도통일미래센터' 조감도. A 다목적홀 / B 생활관 / C 야외광장 / D 교육관 / E 운동장Ⅰ / F 직원숙소 / G 운동장Ⅱ / H 가족숙소 / I 체험관Ⅰ / J 체험관Ⅱ / K 노천극장. [사진제공 - 통일부] 여기에 지난 6월 '한반도통일미래센터' 건설현장에서 인부 17명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철근 93톤(약 8천만 원)을 훔쳐 부당이익을 취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는 10월 완공을 목표로 건축 중인 '한반도통일미래센터'는 건축 전체면적 15,112㎡,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에, 최대 52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체험관, 연수관, 야외공연장, 학생생활관, 가족 빌리지, 야영장, 체육시설, 자연학습장 등을 갖출 예정이다.

원산 앞바다에 ‘용궁’ 건설과 조국통일


한호석의 개벽예감 <12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7/28 [11: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유명한 도시 두바이에 있는 주메리아 앞바다에 건설되고 있는 '물의 도시 수중호텔'의 수상건축물 전경이다. 이 수상건축물에서 소음없는 전동차를 타고 수심 20m 바다속으로 내려가면 수중호텔에 당도하게 설계되었다. © 자주민보 북, 수중호텔 건설에 도전장을 내밀다 소년기에 공상과학소설을 즐겨 읽었던 사람이라면, 1870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판된 줄 베른(Jules Verne)의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를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공상과학소설은 인도인 함장 네모(Nemo)가 모는 잠수함 노틸러스(Nautilus)가 신비로운 해저세계를 탐험하면서 겪는 재미난 이야기들로 엮어졌다.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가 출판되기 3년 전에 프랑스 해군은 세계 최초로 420t급 기계동력 잠수함 플롱저(Plongeur)를 건조하였는데, 줄 베른은 186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전시된 그 잠수함을 직접 보고 소설적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문인의 소설적 상상보다 해군당국이 건조한 실물이 먼저 존재했던 것이다. 줄 베른이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에서 펼쳤던 신비로운 해저세계의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유럽인들의 오랜 숙망은 그 소설에 출판된 때로부터 136년이 지난 2006년에 야심에 찬 설계도로 탈바꿈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물의 도시 수중호텔(Hydropolis Underwater Hotel)’ 건설사업이다. 호텔을 바다속에 짓는다니,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수중호텔은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유명한 도시 두바이(Dubai)에 건설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수중호텔은 두바이의 주메리아(Jumeriah) 앞바다에 건설되는 것이다. 설계도에 따르면,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초대형 기둥들이 떠받치는 접시형 수상건축물에서 무소음 전동차를 타고 큰 유리관처럼 생긴 515m 길이의 복선 수중통로를 지나 수심 20m 바다속으로 내려가면, 겉모습이 거대한 해파리처럼 생긴, 객실 220개를 갖춘 수중호텔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 수중호텔은 엄청난 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강철과 콘크리트로 수중구조물을 세우고 플렉시유리(Plexiglass)로 덮는 최첨단 시공기술로 세워지는데, 총건설비가 5억1,100만 달러나 된다고 한다. ▲ <사진 2> 컴퓨터 영상기법으로 그려낸 이 사진은 주메리아 앞바다 수심 20m에 건설될 '물의 도시 수중호텔' 식당을 보여준다. 바다속의 환상적인 모습을 안겨줄 이 수중호텔이 완공되면 세인을 경탄헤 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컴퓨터 영상기법으로 그려낸 <사진 2>를 보면, 주메리아 앞바다 수심 20m에 건설될 ‘물의 도시 수중호텔’은 바다속의 환상적인 모습을 안겨주며 세인을 경탄케 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중호텔의 설계는 ‘심해기술(Deep Ocean Technology)’이라는 설계회사가 맡았는데, 시공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기술공학적 난제를 풀지 못했고, 건설비도 예상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완공예정일은 자꾸 뒤로 밀려나 멀어졌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기술과 최첨단 시공기술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기술공학적 난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막대한 건설비를 요구하는 수중호텔 건설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이 수중호텔을 건설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은, 북의 건축기술수준과 자금동원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믿기 힘든 소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북이 수중호텔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식은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이 지난 5월에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은 지난 5월 2일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진행된 경제개발구 전문가토론회에서 공개되었고, 5월 12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진행된 투자설명회에서 또 다시 공개되었다. ▲ <사진 3> 동해의 항구도시 원산의 야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전력부족으로 북의 도시들이 밤이면 불빛 한 점 없이 캄캄하다는 미국 언론보도는 북을 헐뜯기 위해 꾸며낸 허위보도다. 원산시가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개발, 변모되면, 위의 사진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를 세상에 자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이 말해주는 다섯 가지 놀라운 사실 북은 이미 2013년 11월에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완성하였다. 총계획에 따르면, 원산지구개발은 원산시, 갈마반도, 석왕사로 나뉘어 추진된다고 한다. 북측 언론과 남측 언론에 각각 보도된 관련정보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원산시에는 상업편의봉사시설들, 문화시설들, 휴식명소들, 과학기술교류거점들이 현대적인 건축물로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개발계획이 실현되면 원산시는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원산의 야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변모되면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면모를 세상에 자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은 원산을 찾는 관광객이 날로 증가하는 것에 대비해 현재 1,300명 수준의 호텔숙박능력을 11,000명 수준으로 10배 이상 늘린다고 한다. 또한 원산항에는 25만명이 드나들 수 있는 여객선 부두와 정박장도 건설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 유람선들이 원산항에 들어올 것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 <사진 4> 예로부터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이름난 갈마반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10km 백사장을 품에 안은 울창한 솔밭이 눈길을 끈다. 지금 북은 이 해수욕장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는 중인데, 이 사진은 갈마호텔과 새날호텔이 건설되기 전에 찍은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남, 북, 해외동포들이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서로 만나 지난 날 자기들을 갈라놓았던 분단의 아픈 추억을 저 푸른 물결에 흘려보내며 행복의 웃음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 자주민보 둘째, 백사장, 솔밭, 해당화가 어우러진 송도원 청정해변에는 12,0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을 건설하고, 10km에 이르는 명사십리 해변에는 10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해수욕장, 놀이공원, 자연생태공원, 휴양시설, 물놀이장 등을 건설하며, 두남산지구에는 화초공원, 국제회의장, 전시관, 박람회장, 경기장, 극장, 골프장 등을 건설하고, 갈마반도 앞바다에 떠있는 여러 섬들도 관광명소로 변모되는데, 바로 그 갈마반도 앞바다에 수중호텔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사진 4>는 예로부터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사장’으로 이름난 명사십리 해변이다. ▲ <사진 5> 강원도 고산군 설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명찰 석왕사의 조계문을 촬영한 사진아다. 북이 실행에 옮기는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에는 원산시, 갈마반도와 더불어 풍치수려하고 훌륭한 산림과 계곡에 안긴 문화유적이 있는 석왕사 일대를 자연생태-문화유적 관광지로 개발하는 계획이 들어 있다. 산-바다-도시-문화유적을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자주민보 셋째, 석왕사가 있는 강원도 고산군 설봉산에는 등산로와 호텔들이 건설된다고 한다. 마식령산줄기의 지맥에 속한 설봉산은 해발고가 942m인데, 안변군 남대천으로 합류하는 설봉천이 그 산에서 발원한다. 설봉산은 수령이 200년 넘은 송림과 느티나무숲이 펼쳐져 자연풍치가 뛰어난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다. 원산시로부터 40km 떨어진 설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석왕사는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고려 말기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신증축된, 70여 채의 갖가지 사찰건물들이 자연지형에 맞춰 조화롭게 배치된 유명한 거찰인데, 6.25전쟁 시기 미국군의 폭격으로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민족21> 2008년 10월 1일부에 실린 북측 <통일신보> 기자의 석왕사 답사기에 따르면, 북의 민족문화보존정책에 의해 석왕사가 원상대로 복원되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지금쯤 복원을 마쳤을 것이다. 원산시를 21세기 문화휴양도시, 과학기술도시로 개발하는 것과 함께 석왕사 일대를 문화유적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것은 21세기 문화과학도시와 우리나라 중세기 문화유적을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적인 관광지를 개발한다는 뜻이다. 넷째, 원산지구는 평양-원산고속도로와 함흥-원산고속도로, 원산항과 원산비행장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원산지구과 금강산지구를 잇는 관광도로와 고속관광철도가 건설되면 원산지구와 금강산지구가 단일한 관광지구로 결합되는 것이다. 원산지구는 평양에서 200km, 금강산에서 110km 떨어져 있다. 또한 원산지구는 안변청년발전소와 원산청년발전소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다섯째, 원산지구는 산, 바다, 도시, 문화유적이 하나로 어우러진 거대한 관광지로 건설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들 가운데 산, 바다, 도시, 문화유적이 하나로 어우러진 특출한 관광지는 원산지구 이외에 찾기 힘들다.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요즈음 북측 각지에는 ‘건설열풍’이 불고 있다. 수력발전소를 건설해도 청천강 유역에 발전소를 한꺼번에 10개나 계단식으로 건설하고, 경제개발구를 내와도 북측 각지에 한꺼번에 19개나 설치하고, 축산업을 발전시켜도 광주시 면적(501㎢)보다 더 넓은 약 540㎢의 세포등판을 개간하여 대축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측 각지에서 추진되는 다종다양한 건축물들의 신설 및 개건이나 지역개발은 한결같이 대형화, 현대화, 고급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문명국’의 체모에 맞게 신설, 개건 또는 개발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원산지구도 당연히 세계적인 수준으로 대형화, 현대화, 고급화되는 추세에 따라 개발, 변모될 것으로 예견된다. ‘용궁의 전설’ 잉태한 원산 앞바다 수중호텔 건설 위에서 언급한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수중호텔은 갈마반도 앞바다에 건설되는 것이다. 갈마반도 앞바다는 원산만을 뜻한다. 첫째, 200km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 둥글게 둘러쳐진 원산만으로는 금야강, 덕지강, 남천강, 심포천, 적천천, 갈마천, 학천수, 남대천이 흘러들어 언제나 맑고 푸르며 어족 또한 다양하고 풍부하다. 연평균 물온도가 섭씨 13.3도인 원산만에는 명태, 고등어, 청어, 도루묵, 가자미, 임연수어, 숭어, 문어, 해삼, 조개, 생복, 바지락, 소라, 참굴, 싹새기, 미역, 다시마, 파래 등이 산다. 이것은 원산만이 해양생태관광지로 개발하기에 아주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특출한 자연환경을 갖춘 것으로 하여 원산지구는 세계적인 해양생태관광지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둘째, 원산항에서 동해로 드나드는 원산만의 어귀는 너비가 24.1km로 좁으며, 려도, 신도, 대도, 소도, 소제도, 큰구비섬, 황토도, 우미도, 석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섬들이 그럼처럼 떠 있어서 동해에서 원산만 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준다. 그래서 원산만은 연평균 물결분포가 0.1m밖에 되지 않은 아주 잔잔한 바다로 유명하다. 이것은 원산만이 수중호텔을 건설하기에 아주 적합한 천혜의 해양환경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주메리아 해안 앞바다에 건설 중인 ‘물의 도시 수중호텔’은 파도와 해류이동으로 생기는 해저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공학기술적 문제를 풀지 못해 전전긍긍하는데, 원산만에 건설될 수중호텔은 그런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 <사진 6> 중앙아메리카의 영국령 케이먼제도에서 운항하는 관광용 48인승 잠수정이다. 원산 앞바다에 수중호텔이 건설되면, 북도 관광용 잠수정을 운항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만은 해양생태관광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 자주민보 셋째, 해저지형이 평평한 대륙붕으로 이루어진 원산만에서 가장 깊은 곳은 31m다. 이러한 해저지형은 원산만이 잠수정 관광에 아주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예컨대,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케이먼제도(Cayman Islands)는 잠수정을 타고 바다속을 구경하는 관광으로 유명한데, 48인승 잠수정 애틀랜티스호는 수심 30m까지 잠항한다고 한다. 잠수함강국인 북이 관광용 잠수정을 건조, 운항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산만에 건설될 수중호텔은 잠수정 관광까지 겸한 세계적인 관광지로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해양관광지로 부상할 원산만에 수중호텔을 건설하고 잠수정 관광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구전소설들 가운데 하나인 ‘별주부전’에 나오는 용궁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용궁을 연상시키는 원산만 수중호텔은 북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문명국’의 상징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북이 원산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는 목적은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만이 결코 아니다. 북측 각지의 관광지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것처럼, 원산지구도 당연히 ‘인민의 관광지’로 개발되는 것이며, 외국인에게 개방하는 국제관광은 어디까지나 2차적이다. 그런 사정은 북의 관광명소 명칭에 ‘국제’라는 말이 들어간 곳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원산지구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개건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주인공’들은 북측 각지에서 오는 소년들이고, 외국인 소년들은 8월에 한 차례만 받는다. ▲ <사진 7> 이 사진 1950년 10월 18일 미국군이 원산만 기뢰제거작전에 동원한 한국군 소해정 516호가 촉뢰로 폭파되는 장면이다. 이 소해정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영국 해군에 파견되었던 미국 해군 소해정을 종전 뒤에 넘겨받은 것이다. 6.25전쟁 시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미국은 원산기습상륙을 노리는 대북전쟁연습을 지속적으로 감행하고 있다. 그런데 북은 미국군이 기습상륙을 노리는 원산지구에 세계적인 관광지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 자주민보 북이 미국군의 기습상륙전 예정지에 세계적인 관광지를 건설하는 뜻 이제 원산지구는 북의 국가정책에 따라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모되기 시작했지만, 6.25전쟁 시기에 원산만은 미국이 사상 최대 규모의 소해작전을 벌인 곳으로 세계전쟁사에 기록되었다. 1950년 10월 중순 미국 해병대 제1사단을 앞세운 제10군단의 방대한 병력은 상륙함들을 타고 원산만에 몰려가 상륙전을 벌이려고 하였다. 그들의 원산상륙전은 10월 20일로 예정되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이 동해 연안 곳곳에 부설한 기뢰에 선체가 닿은 미국군 전투함들이 여기저기서 폭파, 침몰되는 바람에 뜻밖의 호된 타격을 입은 미국군은 원산상륙전 개시일 열흘 전에 원산만에 부설된 기뢰부터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조선인민군은 미국군의 원산상륙을 예견하고 원산만에 3,000기에 이르는 기뢰를 부설해놓았다. 미국군은 구축함, 소해정, 수송함, 정찰헬기, 전투기, 수중폭파반(UDT)을 지뢰제거작전에 동원하였고, 일본해상보안청 소속 소해정과 순찰정도 끌어들였다. 2008년 8월 6일 일본 텔레비전방송 가 해상자위대의 비밀보관문서 ‘조선동란특별소해사’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당시 점령군사령부인 미국 극동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소해정 13척, 순찰정 7척, 병력 2,000여 명을 비밀리에 한반도 전선에 보냈다고 한다. 미국은 식민지시기 한반도를 강점하고 한반도 지형지리를 파악한 일제침략군 출신들에게 군복을 입혀 다시 6.25전쟁에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기뢰제거를 조심스럽게 시작한지 이틀 뒤인 10월 12일 625t급 미국 해군 소해정들인 파이럿호(USS Pirate)와 플레지호(USS Pledge)가 촉뢰로 폭파, 침몰되었고, 10월 17일에는 일본해상보안청 소해정 한 척이 촉뢰로 폭파, 침몰되었고,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10월 18일에는 한국 해군 소해정 516호가 촉뢰로 폭파, 침몰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원산만에 침몰한 그 네 척의 소해정 잔해는 바다밑에 남아있을 것이므로, 앞으로 북이 관광용 잠수정을 건조하면 그 잠수정을 탄 관광객들이 그 잔해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원산만은 6.25전쟁 시기에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미국 해병대, 한국 해병대, 일본자위대 가 합동상륙전을 감행하려고 노리는 공격예정지다. 이를테면, 미국은 지난 3월 27일 경상북도 포항 영일만 일대에서 미국 해병대 7.500명, 미국 해군 2,000명, 한국 해병대 2,000명, 한국 해군 1,000명을 동원하고, 강습상륙함 반홈 리처드호(USS Bonhomme Richard), 수직이착륙기 V-22 오스프리(Osprey) 22대, 대잠-해상작전기 P-8A 포세이돈(Posidon), 한국 해군 P-3C 대잠초계기 등을 동원한 대규모 ‘쌍룡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이 상륙전연습도 원산에 기습상륙하여 평양-원산 축선인 ‘제1전방지대’ 이남을 차단하는 미국의 ‘작전계획 5027’에 따라 실시된 것이다. 그에 대응하여 올해 북도 미국의 원산기습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반상륙전연습과 미국 항모타격단의 동해 출현에 맞서는 대함미사일 화력타격연습과 잠수함전연습을 원산 앞바다에서 실시하였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원산지구는 미국군의 기습상륙전과 조선인민군의 집중타격전이 예상되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북은 미국군이 기습상륙을 노리는 원산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 변모시키려는 준비를 갖추고, 그 사업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이를테면, 마식령스키장과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건설 또는 개건되었고, 명사십리 해변에는 갈마호텔과 새날호텔이 신축되었다. 지난 6월 12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현재 원산지구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모되는” 중이고, 지난 1월 21일 중국 <신화망> 보도에 따르면, 북은 앞으로 5~10년 동안 원산지구를 사계절 위락단지와 관광특구로 개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의 관광지개발과 미국의 상륙전연습은 정면으로 배치, 충돌하는 상극이다. 북이 미국군의 기습상륙전 예정지에 세계적인 관광지를 건설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만일 북이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곧 제거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2013년 11월에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수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북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제거할 정치군사적 준비를 이미 갖추어놓았고, 또 그 위험을 앞으로 1~2년 안에 반드시 제거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에서 말하는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하여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곧 제거하려는 북의 결심과 준비가 원산지구개발에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즈음 북측 언론매체들은 사상정신적 준비를 우선하는 싸움준비에서 마지막 완성단계에 이른 조선인민군이 “세기를 이어온 반미대결전을 승리로 곧 결속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기사를 자주 내보내고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7월 26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야간발사연습을 현지에서 또 다시 지도하면서 “이번 화력타격훈련의 폭음은 전략군의 싸움준비완성을 알리는 장쾌한 포성과도 같다”고 지적하고,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그 추종무리들을 하루빨리 이 땅에서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북의 주장을 인용하면, 조선인민군의 싸움준비완성은 조국통일대전준비가 완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에서 전략군의 역할과 임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요즈음 전략군의 타격전준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전략군의 타격전준비완성은 곧 ‘조국통일대전’의 마지막 준비를 완료한다는 뜻이다. 북의 언론에 보도되는 이러한 상황은 남측 언론의 대북보도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위와 같은 현 상황을 인식하면, 북이 미국의 대북전쟁위험을 제거할 정치군사적 준비를 이미 갖추어놓았고, 또 그 위험을 앞으로 1~2년 안에 제거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원산지구개발 총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북의 원산지구개발에 주목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원산 앞바다에 ‘용궁’이 세워질 때 실현될 통일은 어떤 통일인가? 관련기사 강화되는 북한의 대미군사공세 북, “미국 도발하면 징벌 할 것”경고 북, “미국과는 말아닌 물리적 대응으로 결판”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한반도 마지막 선을 향해 남하하는 불시기동-기습타격연습 한반도 운명적인 7월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2014년 7월 27일 일요일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


[단독] ‘또 하나의 비극’ 하이닉스 등록 : 2014.07.27 20:13수정 : 2014.07.27 23:33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281 twitter475 보내기 백혈병 등 ‘반도체 직업병’ 지난 20년간 최소 17명 사망 삼성보다 사망률 높아…산재 인정 받은건 단 1건 불과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D램을 생산하는 경기도 이천공장의 내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삼성 백혈병 얘기를 듣고 솔직히 걱정은 돼요. 케미컬(화학물질) 다루는 데 뭐 몸에 좋겠어요? 병에 안 걸리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런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설마 하며 다니는 겁니다.” 오후 2시 퇴근길에 만난 30대 중반의 여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하이닉스 공장에서 14년째 반도체 오퍼레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공장을 중심으로 아파트단지와 상업지구가 형성된 이곳은 3교대로 일하는 공장 직원들이 아침 6시, 오후 2시, 밤 10시께 무리 지어 출퇴근하는 풍경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소도시의 일상 그대로였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건 그저 평범한 일은 아닌 듯했다. 지난달 초 <한겨레>가 만난 하이닉스 노동자들은 마음속에 담아뒀던 불안감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10년 넘게 오퍼레이터로 일하는 30대 초반 여성의 얘기다. “1년 전쯤인가 누가 암에 걸려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또 개인 질병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텐데, 삼성 백혈병 논란을 보니까 산재일 수 있겠구나 많이들 그럽니다. 하지만 쉬쉬하는 거예요. 괜히 그런 얘기 했다가 찍히면 안 되잖아요.” 최근까지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한 남성 노동자는 “1990년대 중반 입사한 뒤 10여년 동안은 일하면서 마스크 같은 것도 한번 써본 적 없다”며 “자동화 설비도 자주 오작동하기 때문에 이걸 몇시간씩 사람이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게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하이닉스 노동자는 “지금 새 설비 투자를 하고 있지만, 기존 설비는 대부분 일본에서 쓰던 중고품을 수입한 것들이다. 그만큼 공정이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양대 반도체 사업체이지만, 2007년 황유미(당시 23살)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뒤 여론의 관심을 끌었던 삼성과 달리 하이닉스는 백혈병 등 반도체 산업재해 문제가 제대로 공론화한 적이 없다. 대표적인 반도체 산업병으로 연구되는 백혈병 등 림프조혈기계 질환(용어설명 참조) 실태조차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다. 하이닉스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그저 기우일까? 취재 결과,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발병 줄기는커녕 늘어나…여성 악성 림프종 비율 높아 2010년까지만 13명 사망…28명 발병 삼성 공론화 이후에도 눈길 안줘 하이닉스 “림프조혈기계 사망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 악화 막으려면 정밀조사·대처 시급 <한겨레>가 정부 조사 자료와 자체 취재 등을 통해 파악한 하이닉스 출신의 백혈병 등 림프조혈기계 질환 사망자는 27일 현재 최소한 17명에 이른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발생한 가장 최근의 백혈병 사망자로 파악되는 송아무개(40·장비 정비업무·2013년 1월 사망)씨도 삼성전자가 아닌 하이닉스의 22년차 재직자였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는 지난해 5월 37살 여성 오퍼레이터가 악성 림프종으로 숨졌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 그 또한 하이닉스 출신이었다. 현재 퇴사 뒤 홀로 투병중인 노동자들도 확인된다. 또 정부의 공식 조사 자료를 통해 삼성전자(반도체부문)와 비교한 결과, 하이닉스는 림프조혈기계 질환 사망자 규모 및 비율에서 삼성에 뒤지지 않았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하이닉스에서 일하거나 일했던 노동자 가운데 최소 13명(백혈병 5명, 비호지킨 림프종 5명 등)이 림프조혈기계 질환으로 숨졌고, 같은 기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에선 최소 11명이 같은 질환(백혈병 7명, 비호지킨 림프종 3명 등)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간 림프조혈기계 암으로 확정 진단을 받고 암센터에 등록된 이들은 하이닉스와 삼성 모두 28명씩이었다. 이들과 사망자는 대부분 겹치지 않아, 지난 15년 동안 두 회사에서 80명 안팎이 림프조혈기계 질환으로 쓰러진 셈이다. 이는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1995~2007년, 2008~2010년 두 기간을 대상으로 해당 사업장 전·현직 노동자들의 사망·질환 내역을 조사한 연구물을 종합분석한 결과다. 사망 비율을 따지면, 1995~2007년 삼성의 10만명당 사망률은 15.3명, 하이닉스는 18.2명에 이른다. 2008~2010년에는 10만명당 사망률이 하이닉스 6.5명, 삼성 5.2명이다.(상자기사 참조) 클릭하면 확대 하이닉스에서 일하다 2008년 11월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숨진 정철모(당시 42살·13년차)씨도 삼성과의 사망 격차를 벌린 이 가운데 한명이다. 유족들은 엔지니어였던 정씨가 생산라인과 연구소에서 각종 실험·연구 중 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을 사인으로 꼽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수년 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처럼 길고 외로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이닉스와 매그나칩(하이닉스 비메모리 사업부가 분리된 업체)에서 일하다 2011년 5월 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으로 숨진 김진기(당시 38살·14년차)씨는 지난해 3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한 첫번째 반도체 백혈병 환자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회사의 책임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겨레>와 만난 이들 유족은 한결같이 산재 신청과 소송 과정에서 회사 쪽의 철저한 무관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삼성을 통해 반도체 산재 논란이 불거진 지 7년이 지났는데도 하이닉스 노사는 여전히 ‘감추기’에 더 주력하는 모습이다. 발병·사망자 현황 파악조차 안 하거나 못 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지난 13일 <한겨레>에 “건강보험 진료 내역이 개인정보여서 퇴직자는 물론 재직자의 질환 발생 현황도 파악하기 어렵다”며 “2007년까지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 자료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박아무개 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9일 <한겨레>에 “현재까지 노조가 파악한 백혈병 사망자는 한명도 없다. 이 사안에선 회사와 노조의 입장이 같다”고 말했다. 쉬쉬하는 사이 사망자·환자가 이어지고, 가족 몇이 온전히 병과 죽음을 감당하다,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수년간 문제를 제기한 끝에 겨우 대화에 나선 삼성의 초기 대응을 닮은 셈이다. 더 주목할 문제는 하이닉스와 삼성 모두 림프조혈기계 질환 사망·발병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995~2007년 조사에서 두 회사의 림프조혈기계 질환 사망자는 모두 18명으로 연평균 1.38명인 데 비해, 2008~2010년 조사에선 양사 6명으로 연평균 2명꼴이다. 림프조혈기계 암 발병 건수도 1995~2007년 한해 평균 3.38명(총 44명)에서 2008~2010년 4명꼴(총 12명)로 늘었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비호지킨 림프종 발병이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5~2007년 두 회사에서 발생한 비호지킨 림프종 여성 환자는 최소 8명이었다. 당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발병률이 일반인 집단보다 2.7배 높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런데 2008~2010년 3년간 발병자는 이전 13년간 발병자의 절반(4명)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체 여성 가운데 비호지킨 림프종 사망자가 2008년 346명에서 2010년 199명으로 크게 감소해온 추세와 대조된다.(발병자 자료는 따로 없음)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인아 교수(산업보건전문의)는 “2008~2010년 사이 일반인의 비호지킨 림프종 사망자는 줄고 있는데 반도체 업종에선 발병자가 늘고 있다면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삼성이 현재 진행 중인 사과·배상·재발방지 협상에서 성과를 내야 할 뿐만 아니라 하이닉스에 대해서도 엄밀한 조사와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산업의학전문의)은 “삼성은 삼성이라서 주목을 받았다. 이제 에스케이하이닉스도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 인권경영 측면에서라도 반도체 공정의 건강성 평가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전문의)은 “<한겨레> 취재 결과는 대기업간 비교를 떠나, 유해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어느 기업도 숨어선 안 된다는 필요성을 보여준다. 한국이 세계 반도체산업을 선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쪽은 “림프조혈기계 질환 사망자 비율은 일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 또한 (작업 환경과) 백혈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대학에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 안전·보건 관리를 강화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임인택 오승훈 기자 imit@hani.co.kr 에스케이(SK)하이닉스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1983년 창립된 현대전자가 모태다. 1999년 엘지반도체에 흡수·합병된 뒤 2001년 3월 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꿨다. 2012년 3월 에스케이텔레콤이 인수해 지금의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됐다. 2012년 세계 반도체업계 시장점유율에서 7위(1위 인텔, 2위 삼성전자)를 차지했던 에스케이하이닉스는 2013년에는 매출액 14조1650억원을 달성해 세계 5위(1위 인텔, 2위 삼성전자)로 두 단계 뛰어올랐다. 올 상반기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 7조6660억원에 영업이익 2조14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14%, 영업이익은 50%가 늘었다. 반기 기준으로 영업이익 2조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에 공장이 있다. 림프조혈기계 질환 대표적인 ‘반도체 직업병’으로 불리는 림프조혈기계 질환은 피를 만드는 뼛속 조직인 조혈 모세포가 정상적인 분화를 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군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에 따르면 림프조혈기계 암과 기타 림프조혈기계 질환으로 나뉜다. 림프조혈기계 암에는 백혈병, 호지킨·비호지킨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이 포함되며, 그밖에 재생불량성(무형성) 빈혈, 골수형성이상 증후군 등은 기타 림프조혈기계 질환으로 불린다. 백혈병과 더불어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발병 빈도가 높은 비호지킨 림프종은 종양이 온몸에 나타날 수 있고 어디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악성 림프종으로 불린다. 몸의 한정된 림프절(임파선)을 침범하고 종양이 퍼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호지킨 림프종에 비해 치료가 더 힘든 질병이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업체 재직자나 퇴직자 가운데 백혈병, 악성 림프종 등 림프조혈기계 질환이나 각종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분들에 대한 제보를 받습니다. 전자우편: tamsa@hani.co.kr 전화: (02)710-0649

왜 사람들은 '박근혜의 국가'를 혐오하는가?


[서리풀 논평] 혐오의 시대, 국가를 되찾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28 09:24:20 혐오의 시대, 국가를 되찾자 국가는 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간단한 듯 보이나 어렵고 복잡하다. 마키아벨리가 처음으로 개념으로 만들었다고 했던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려 했지만 아직도 간단하지 않다. 개념치고는 썩 좋은 축에 끼지 못한다고 할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실체라는 점에서 현실은 다르다. 국가가 현실에 사용되는 방식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어떤가. 이게 못마땅하면 국가보훈처나 국가 장학금이라는 용법도 있다. 물론 현실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국가 브랜드라는 말도 쓰이고, 최근에는 국가개조라는 말도 등장했다. 국가 장학금과 국가 개조, 양쪽의 국가는 아무래도 느낌이 좀 다르다. 어찌되었든 일상의 국가 경험은 훨씬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추상적인 개념과 이해가 만들어지긴 하지만, 그것은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국가는 추상적 이론이면서 동시에 구체적 행위자다. 예를 들어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의 폭력성을 경험한 사람이면 국가 폭력이란 말을 쉽게 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 폭력 국가라는 말이 실체를 얻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국가는 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처럼 국가의 이론과 현실 경험을 되새기는 이유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국가와 관련된 집단적 경험을 하고 있어서다. 바로 세월호 참사와 의료 영리화 정책이다. 다양한 성찰의 과제를 제기했고 아직도 진행형이나, 한 가지 핵심 질문을 돌아가기 어렵다. 우리에게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는 두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거의 모든 국가 기관과 조직의 부실과 무능력이 100일이 넘게 낱낱이 생중계되고 있다. 꼭 능력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불성실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이 더욱 한심하다. 피하려 해도 그 누구도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해석하며 공유한다. 국가의 본질을 매개하는 하나의 집단 경험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숫자로 나타낼 것은 아니지만, 국가에 관한 한 한국전쟁 이후 가장 강력한 집단 경험이 아닌가 싶다. 조금 더 복잡하고 간접적이긴 하나 의료 영리화 정책도 비슷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의료법인이니 영리 자법인이니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법인 약국이 어떻게 다른지 무슨 수로 아나. 이게 누굴 위한 정책인가 하는 질문이 훨씬 더 쉽다. 그러면 다들 답하는 것이 같다.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들과 서민에게 도움이 되기는 애당초 글렀다. 맹장염이 1000만 원이니 1500만 원이니 하는 '괴담'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대중의 이해와 해석을 반영한다. 이런 차원이면 이미 정책이 아니라 국가를 말하는 방식이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인식하고 해석하며 공유한다. 이런 국가는 도대체 어떤 국가이며 무엇을 하려는 국가인가. 세월호 참사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고 직접적이지만, 우리는 또 다른 집단적 국가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와 의료 영리화 정책은 우연하게 결합되었다. 어차피 모든 경험이 구체적인 한, 그것 각각은 특수하다. 그러나 또한 국가를 공통적인 경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통합적이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프레시안(김윤나영)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일차적인 경험은 혐오감이 아닌가 싶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 때의 그 아득한 심정이란,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할 때의 그 어둑한 느낌이란. 우리는 의료 영리화 정책도 대중적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국가 권력이 앞장서서 일부의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한, 혐오를 피하기 어렵다.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댓글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글들! 물론, 국가에 대한 혐오감은 이제야 생긴 아주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들'로 표현되는 국가와의 분리, 그 중심에는 특히 권위주의적 국가의 억압과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는 피하거나 극복해야(또는 저항해야) 할 대상이었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권위주의 국가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약화되기는 하겠지만,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국가는 다시 '그들'로 회귀하지 싶다. 혐오는 그 계기이자 동력이다. 국가와의 내면적 심리적 관련성은 혐오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의 원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번에는 국가의 무력함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총체적 무능력 상태에 있는 국가를 보았다. 근대 국가가 만들어진 후 다른 어떤 때에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사례가 없는 가장 강력한 경험일 터. 국가의 무능력이란 단지 기술적으로 실력과 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구성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것(또는 못하는 것) 그 자체를 뜻한다. 의도하든 아니든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의료 영리화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무능력(또는 부정적 능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가는 '나'와 적대적인 것, 온건하게 이야기하더라도 완전한 '타자'가 되면서 '나'와 분리된다. 국가와 분리된 개인, 이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무슨 방법으로? 바로 여기에서 다시 역사적 계기가 작용한다. 국가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예 분리된 적이 없다. 다만 새로운 '통치' 방식으로 바꾼 것일 뿐. 바로, 익숙한 신자유주의 통치 방식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어법을 빌리자. 국가는 시장이 산출한 경제적 취약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개입은 중단하는 대신, 특히 개인의 비경제적 취약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역할을 추구한다. 신체, 재산, 주거의 위협을 '대안적 불안'으로 삼아 다른 모습으로 개입한다. 꼭 그대로는 아니다. '우리'의 국가는 경제적 취약성(예를 들어 의료 보장)에 개입을 채 중단하지 못하고, 한편 개인의 취약성에는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신자유주의적 국가 기획은 주춤거리고 있다. 당연히, 그 방향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로의 기획은 더 강화될 것이 뻔하다. 민영화와 영리화, 규제 완화, 시장 기전의 강화는 국가에 대한 혐오를 먹고 자란다. 국가의 무능력과 부도덕이 힘을 보태는 것은 물론이다. 자본주의의 '간사한 지혜(간지, 奸智)'라고 해야 할까. 국가에서 분리되고자 하는 의지와 힘이 새로운 통치 방식이 실현되는 길을 닦는다. 신자유주의 통치 방식은 국가에 대한 혐오와 타자화를 통해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를 혐오하고 스스로를 분리하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그건 간지에 말리는 것, 신자유주의의 통치에 투항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을 것인가. 힐러리 웨인라이트가 말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국가를 '되찾아야' 한다(한국 상황에서는 '되찾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정치 경제의 목표는 정부의 등에서 민중들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국가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의 등에 다시 올라타는 새로운 방식들을 창조하고, 자원을 통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한 당사자인 "정치인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국가 공무원에 관한 좀 더 직접적인 통제력을 가짐으로써, 더욱 중요한 의미에서 국가에 바로 짓쳐 들어간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에 대항해(in and against the state)" "공공 서비스가 운영되는 방식을 급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국가를 되찾자>, 김현우 옮김, 이매진 펴냄)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14만 원 받겠다고... 죽은 채무자 독촉한 '독한 추심'


[기획-부채 탕감①] 천만 원짜리 빚도 십만 원에 '땡처리' 하는 부실 채권 유통 14.07.28 08:30l최종 업데이트 14.07.28 08:30l김시연(staright) 고정미(yeandu)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장기 연체 채무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99%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비롯된 '롤링 주빌리'가 한국에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오마이뉴스>는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희망살림과 함께 장기 연체 부실 채권 '땡처리' 실태와 '대출 권하는 사회'를 고발합니다. [편집자말] 5년 소멸 시효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빚의 굴레를 벗기지 못했다. 지난 21일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 두 번째로 소각한 장기 채무자 99명 가운데는 사망자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7~10년 넘은 장기 연체 채권들의 원금만 10억 원에 달했는데 이미 지난 2009년 2월에 숨진 조아무개(사망 당시 45세)씨의 카드 빚 14만 원도 그 일부였다. 채권 소멸 시효 유명무실 기사 관련 사진 ⓒ 고정미 지난 2003년 1월 한 신용카드사 연체로 시작한 조씨의 채권은 한 유동화전문회사를 시작으로 11년 동안 모두 8차례나 주인이 바뀌었다. 이 가운데 5차례는 채권 소멸 시효 5년이 지난 2008년 1월 이후 거래가 이뤄졌고, 심지어 조씨가 숨진 2009년 2월 이후에도 3차례나 매각됐다. 7번째로 이 채권을 넘겨받은 한 대부업체는 지난 2009년 12월 숨진 조씨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낸 '채권양도통지서'에서 "귀하의 채무가 장기 연체되어 채무금을 일시불 또는 분할 처리할 것을 최종 권고"하면서 '신용불량 등재', '지급 명령', '법원 본안소송'에 이어 '재산 압류' 등 강제 집행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고 '경고'했다. 당시 조씨가 진 빚 원금은 고작 14만3410원이었고 이자 11만 원을 포함해도 25만 원 정도였다. 결국 14만 원을 받아내자고 사망한 채무자를 독촉한 셈이다. 채무자가 종적을 감추고 소멸 시효가 지나도 채권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지난 2002년 당시 22살이었던 유아무개씨는 신용카드 연체로 1700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 당시 카드사 기록에는 2002년 5월 한 달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집이나 휴대폰으로 독촉 전화를 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유씨는 이미 회사도 그만두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같은 해 유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주소 보정' 문제로 기각돼 사실상 채권이 제 기능을 상실했지만 지금까지 대부업체들을 전전하다 12년 만에 소각됐다. 지난 21일 열린 부채 탕감 토론회에서 자발적으로 참석해 자신의 채무 사례를 발표했던 이정식(가명)씨는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소멸 시효가 끝난 뒤에도 원금 30~50%만 내놓으라고 독촉 전화가 왔고 견디다 못해 지난해 법원에 파산 신청해 면책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2003년 카드 대란 당시 '카드 돌려막기' 끝에 3000만 원에 이르는 빚을 얻은 이씨는 군복무 때 당한 부상 때문에 일을 못해 빚을 제때 갚지 못했다. 그 대가는 라면박스 3개 분량의 독촉장과 범죄자가 된 듯한 강한 수치심이었다. 천만 원짜리 채권 십만 원에 사놓고 원금 절반만 갚아라? 기사 관련 사진 ▲ 한 대부업체는 지난 2009년 12월 이미 숨진 조씨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낸 '채권양도통지서'. 이 대부업체는 채무금을 일시불 또는 분할 처리하라고 '최종 권고'하면서 '신용불량 등재', '지급 명령', '법원 본안소송' 과 '재산 압류' 강제 집행 등을 '경고'했다. 당시 조씨가 진 빚 원금은 고작 14만3410원이었고 이자 11만 원을 포함해도 25만 원 정도였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어떻게 소멸 시효를 넘긴 장기 부실 채권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일까? 바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마음만 먹으로면 얼마든지 채권 소멸 시효를 정지시키거나 늘릴 수 있어서다. 이번에 희망살림 등 시민사회단체에 10억 원어치 부실채권을 기부한 대부업체 대표 A씨 역시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소멸 시효가 지난 채권이지만 남겨뒀다 '불쏘시개'라도 쓰려고 했는데 편법으로 추심 행위를 하기 싫어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채권 소멸 시효가 지나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3만 원을 내고 채무자를 상대로 전자 소송을 제기하거나,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1만 원만 입금하면 원금 50%를 면제해 주겠다고 속여 소멸 시효를 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멸 시효가 지났어도 원리금 일부만 갚으면 채무자가 빚을 갚을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소멸 시효를 연장하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에선 채무자가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부실 채권'으로 분류한다. 금융회사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고 회수하기 어려운 부실 채권을 대손상각 처리한 뒤 유동화전문회사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유암코 같은 자산관리회사(AMC), 대부업체 등에 헐값에 넘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 부실 채권 시장 규모는 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산관리회사는 자신들이 회수하지 못한 채권을 다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넘기는데, 이 가운데는 신용정보회사나 금융회사 자회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부동산 같은 담보가 있는 채권은 원금의 70%까지 거래되기도 하지만 카드 연체금 같은 무담보 채권은 여러 업체를 전전하며 원금의 1~10%까지 떨어진다. 1000만 원짜리 채권도 1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셈이다. 실제 국민행복기금이 지난해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에서 매입한 부실채권 가격도 평균 3%에 불과했다. 최근 이같은 부실 채권 거래가 일부 '큰손'들 사이에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채권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부업체와 투자자들은 전문 추심업체에 의뢰해 채권 회수에 나서기도 한다. 5년째 부실채권을 거래해온 A씨는 "무담보 채권은 보통 원금의 2.5~3%까지 거래되는데 위험 부담은 크지만 원금과 이자 등을 포함한 금액의 30% 정도만 받아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서 "그나마 요즘 채권 거래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돌면서 가격이 3~4%까지 뛰었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에 A씨가 기부한 채권 원금은 10억 원 정도지만 실제 매입 가격은 2천 만 원 정도라고 한다. 다만 회수 가능성이 있는 '우량'과 거의 불가능한 '악성' 부실채권이 패키지로 묶여 거래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매입 가격은 이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대부업체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이동문 서울시 민생경제과 팀장은 "부실 채권 회수 가능성은 보통 2~3년이면 판가름이 나는데 연체 1년만 지나도 회수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장기 연체 채권을 회수하려고 독촉하면 민원만 더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업체들을 설득해 사회 환원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빚 탕감하면 채무자 도덕적 해이? 금융회사 약탈적 대출이 문제" 기사 관련 사진 ▲ "1인 1000만원, 10억원 빚 탕감"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가운데)가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10억원, 99명 빚 소각 기자회견'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맨 오른쪽)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희망살림 이사를 맡고 있는 제윤경 대표가 미국의 '롤링 주빌리(희년)'를 본 따 부채 탕감 운동에 나선 것도 국내 부실 채권 유통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미국 시민단체인 '월가를 점령하라'(OWS)는 지난 2012년 11월 시민들에게 7억여 원을 모금해 부실 채권 155억 5천만 원어치 소각했다. 국내에서도 희망살림, 희년함께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지난 4월 1300만 원을 모금해 117명의 장기 채권 4억 7천만 원어치를 소각한 데 이어 이번에 2차 소각을 진행했다. (관련기사 : 7년 넘은 빚 10억 원 탕감... 99%가 99명 살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8월 말 현재 국내 채무불이행자는 3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사망자만 5만 8천여 명이고, 채무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채무자도 114만 명에 이른다. 7년 이상 장기 연체자 30만 명과 기초수급대상자, 고령층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부 장기 연체 채권은 회수해도 실익이 없는데도 채권소멸시효 정지로 불공정 추심을 지속해 상환 능력이 없는 장기 연체자들의 재활을 막고 있다"면서 "불공정 추심 관행을 개선하고 불법 사금융 단속 등을 통해 과도한 추심을 막고 공적 AMC를 통해 회생, 파산 등 법적 채무조정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연구위원은 "금융회사의 채무 조정 범위가 금리를 낮춰주거나 연체 이자 면제, 상환 기간을 늘리는 데 그치고 정작 원금 탕감은 안 되고 있다"면서 "대손상각을 통해 채권을 추심업체에 값싸게 넘기는 대신 그만큼 채무자 원금을 탕감해주면 되는데 '채무자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는 문제 제기에 가로막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보다는 '약탈적 대출'을 일삼는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제윤경 대표는 "선진국에선 우리처럼 채무자를 쥐어짜지 않고 파산, 면책이 쉬워 금융회사에서도 과잉 대출하지 않고 책임 대출을 하고 있다"면서 "미국 '롤링 주빌리'도 면책이 안 되는 의료와 교육 관련 채권이 부실 채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실을 고발하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