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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31일 금요일

과거사위, 용산참사 수사 ‘편파적’·청와대 ‘외압’ 가능성 확인했지만...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19-05-31 18:51:53
수정 2019-05-31 19: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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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김철수 기자

2009년 1월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 진상규명 과정이었던 당시 검찰 수사가 소극적·편파적이었으며, 청와대 등 정치권력의 수사 외압이 의심된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과거사위는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심의한 결과를 31일 공개했다.
우선 진상조사단은 용산참사 발생 당시 화재의 위험이 매우 큰 상황에서 화재 발생에 대비한 준비가 매우 미흡했음에도 경찰이 진압 작전을 중단하지 않은 채 강행한 것은 경찰청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어겨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진압작전 필요성 여부에 대해 진상조사단은 “철거민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낮은 기온과 살수로 인한 추위와 배고픔 등으로 농성을 장기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웠고, 일반시민이 통행하는 도로 쪽으로는 화염병이나 벽돌 등을 투척하지 않았으므로 긴급하게 진압작전을 개시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고 봤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단은 “무리한 진압을 결정하고 졸속으로 실행한 것은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였으므로 사건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경찰지휘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했지만 서면조사에 그쳤다”며 “검찰이 경찰 진압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부족했다고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용역업체 직원들의 불법행위 및 이에 대한 경찰의 묵인과 방조는 수사 초기 확보된 동영상 자료에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며 “용역업체 직원의 살수(撒水) 및 방화 행위에 대해 묵인·방조한 경찰의 위법행위(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철거민들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와 경찰관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수사를 균형있게 다루지 못한 점 등을 언급하며, “수사 과정과 결과는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피의자 뿐 아니라 국민에게서 그렇다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가 있다. 그러나 거리로 내쫓긴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정의로움’을 충족하기엔 부족했다고 판단된다”고 총평했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이 사건 수사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거나 왜곡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심의해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진상조사단 결론과 온도차를 보였다. 물리적으로 철거민들이 일으킨 화재와 경찰의 무리한 진압 중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이 사건의 본질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은폐나 왜곡은 아니’라는 과거사위 심의 결과는 다소 의아한 대목이다.
청와대 등 개입 의심…수사상 잘못으로 실체 확인 못 해
당시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 권력기관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진상조사단은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 사건으로 인한 촛불시위 차단을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낸 점, 경찰청 대응문건에 ‘민정2비서관’이라고 적힌 부분이 있는 점 등에 비춰 진상조사단은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이 개입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외압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통신사실확인자료가 누락돼 김 청장에게 수신된 통화기록이 확보되지 못한 수사 과정의 잘못에 그 원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족 동의 없는 시신 부검, 수사기록 열람·등사 등도 문제…검찰 공식 사과 권고
진상조사단은 과거 검찰이 사망자들의 시신을 유족 동의 없이 긴급부검하도록 구두 지휘한 점, 철거민들의 재판에서 변호인들의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한 점 등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는 검찰이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함께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교육 및 제도 개선, 긴급부검 지휘에 대한 검찰 내부의 구체적 판단 지침 마련, 검사의 구두 지휘에 대한 서면 기록 의무화 등도 권고됐다.
과거사위는 이날 심의를 끝으로 약 1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강경훈 기자

법조팀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실종자 수색 난항…헝가리 시민 “예견된 사고, 한국인 희생 안타까워”


등록 :2019-05-31 10:25수정 :2019-05-31 13:1

[다뉴브강 참사 르포]
헝가리 현지 언론 “이번 사고는 인재” 지적
‘정부합동 신속대응팀’ 선발대도 현장 도착
헝가리 시민들, 다뉴브강 인근 ‘촛불’ 추모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서 현지 주민, 관광객 등 추모객들이 촛불과 꽃으로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서 현지 주민, 관광객 등 추모객들이 촛불과 꽃으로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일 밤 9시(이하 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헝가리 이름 두너강) 머르기트 다리. 밤늦은 시간에도 다리 아래 정박한 대형 크레인은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이곳 인근에서 침몰한 소형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와 실종된 이들을 찾기 위해 구조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전날 내린 비로 강물은 흙탕물이 되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날 헝가리 언론들은 “현재 다뉴브 강 속은 가시거리가 40~50㎝밖에 되지 않는다. 구조 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사고 지점인 머르기트 다리의 2번째와 3번째 교각 사이는 계속 내린 비로 강 위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수면이 높아져 있었다. 이 때문인지 밤 10시 현재 유람선에 타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 33명 가운데 사망자 7명, 실종자 19명, 구조된 이가 7명인 현황은 오전 상황과 변동이 없었다.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은 <한겨레>와 만나 “헝가리 정부가 허블레아니호 인양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나 수심이 깊고 가시거리가 좋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알려왔다. 인양은 지체되고 있으나 수색과 구조는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헝가리 한국문화원 관계자도 “현장 주변에서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달받았는데 사망자와 실종자, 생존자 수는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에서 변동된 게 없다”고 밝혔다.
헝가리 현지에서는 이번 사고가 ‘인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헝가리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인덱스>는 “진로를 바꾸려고 한 대형 크루즈 선박과 침몰한 허블레아니호 사이에 제대로 교신이 오가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하며 앞으로 다뉴브강을 오가는 배들은 자동 선박 식별 및 추적 시스템을 갖추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형 선박 운항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크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머르기트 다리를 찾았다는 부다페스트 시민 둘라 시에타포(62)는 “오후 1~3시 사이엔 대형 선박 10대가 한꺼번에 이곳을 지나기도 한다”며 “정부가 다뉴브강에서 돈을 벌겠다는 기업들을 규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견된 사고인데 하필 그 희생자가 한국인이 된 것이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했다. 2016년 기준 다뉴브 강을 운항하는 대형 크루즈 선박은 250개로 집계된다.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현지 주민, 관광객 등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현지 주민, 관광객 등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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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도착하는 한국 정부 대응팀

한국 외교부와 소방청 등에서 실종자 수색 등을 위해 꾸린 정부합동 신속대응팀도 사고가 발생한 부다페스트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의 설명을 보면, 30일 오후 8시30분께 외교부 대응팀과 소방청 구조대 등으로 꾸려진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 1차 선발대가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했다. 해경 구조대와 해군 해난구조대 등이 포함된 2차 후발대는 31일 오전 8~9시께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해 즉시 현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신속대응팀 전체 인원은 모두 39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지휘를 위해 급파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31일 오전 8시께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해 바로 사고 현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헝가리 정부는 31일 오전 9시께 구조 진행 상황을 브리핑한다.
주헝가리 한국대사관도 비상대응반을 꾸려 사고 수습 등 대응에 나섰다. 오스트리아와 체코 등 헝가리 주변국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비상대응반을 파견했다. 이번 패키지여행을 주관한 참좋은여행사 직원 14명도 30일 저녁 8시30분께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해 사고가 발생한 다뉴브강 인근에 대책본부를 꾸렸다.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기관은 사고 수습에 전념하고, 여행사는 가족을 돌보는 형태로 역할 분담을 했다.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현지 주민, 관광객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생환을 염원하며 놓고간 꽃과 촛불이 놓여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현지 주민, 관광객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생환을 염원하며 놓고간 꽃과 촛불이 놓여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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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르기트 다리 곳곳에 추모 촛불

머르기트 다리는 평소 밤이 되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유명 야경 전망대다. 그런 관광 명소가 29일 한국인들을 태운 유람선 침몰로 구조를 기원하고 수색을 지켜보는 참담한 자리가 됐다.
다리 주변에는 헝가리 시민, 현지와 한국 취재진 등 90명가량이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가족, 연인 등과 함께 현장을 찾아 밤늦은 시간 까만 늪처럼 보이는 강과 그 위에 떠 있는 대형 크레인 수색선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머르기트 다리 주변을 서성이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뉴브 강둑과 머르기트 다리, 강둑에서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면 나오는 또 다른 길 곳곳에는 부다페시트 시민들이 직접 가져와 두고 간 수십여 개의 촛불과 꽃이 길게 놓였다. 시민들은 촛불이 강한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유리 마개를 씌워두기도 했다. 국화꽃을 비롯한 하얀 꽃들도 수십여 개의 촛불 옆에 함께 놓였다. 시민들은 초를 땅에 세우고 불을 붙이고 다시 유리 마개로 덮으며 이번 사고로 실종된 이들이 어딘가에서 살아있길 기도했다.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현지 주민, 관광객 등 추모객들이 놓고 간 촛불과 꽃이 놓여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일 밤(현지시각)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에 현지 주민, 관광객 등 추모객들이 놓고 간 촛불과 꽃이 놓여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헝가리 대학생 페헤르 사볼츠(23)는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고 사고가 발생한 것을 처음 알았다”며 “짧은 시간 안에 사고가 벌어졌고 아직도 물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볼츠는 이어 “현재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 와서 강을 바라보는 것이다. 너무나도 큰 비극”이라고 덧붙였다. 초를 들고 함께 사고 현장을 찾은 헝가리인 레반타와 베르나데 부부는 “1명이라도 살아서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현장을 찾은 베트남인 유학생 판 푸옹 위엔은 “많은 이들이 사망한 사고인 데다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많아 나를 비롯한 이곳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 같다”며 “사고가 발생하고 24시간가량 지났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들이 살아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날 다뉴브 강둑에 여러 개의 촛불을 놓은 파바이 에텔 카도 “지금 물이 차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긴 어려울 것 같지만 여전히 그들이 살아있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남은주 김민제 기자 mifoc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6108.html?_fr=mt1#csidx4040e4bc32b0310b307378d7f4f2f69 

2019년 5월 29일 수요일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보다 먼저 해야 할 일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보다 먼저 해야 할 일
김용택 | 2019-05-30 09:22:0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귀하는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켰으므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07년 7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1989년 국가의 권력기관이 총동원 돼 교단에서 내쫓은 1,467명에게 18년이 지나 준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이런 교사가 교단에서 내 쫓겨야 하는가?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됐을 때 당시 문교부(현재의 교육부)가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며 일선 교육청에 내려 보낸 공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전교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정부가 공인해준 것이다.
“오늘의 이 쾌거는 학생, 학부모와 함께 우리 교직원이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족·민주·인간화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운동을 더욱 뜨겁게 전개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동지여! 함께 떨쳐 일어선 동지여! 우리의 사랑스러운 제자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굳게 뭉쳐 싸워 나가자.”
1989년 5월 28일 순진하게도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을 낸 전두환 노태우 학살집단이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희생물이 표적이 된 전교조 교사를 ‘성직자인 교사가 노동자라며 용공분자 부도덕한 교사로 몰아 교단에서 내쫓았다. 사법부 하나가 아니라 안기부를 비롯한 당시 권력기관을 비롯한 언론까지 총동원해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와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를 교단에서 몰아냈던 것이다.
당시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 1만여 명 중 자신이 옳다고 ‘탈퇴각서’에 도장을 찍어 제출하지 않은 교사들을 하루아침에 생존권을 빼앗기고 교단에 내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쿠데타를 혁명으로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광주학살을 민주주의라고 가르칠 수 없다는 전교조는 그렇게 안기부와 검찰, 경찰, 언론… 등 국가권력이 총동원해 교단에서 내어 쫓기고 말았다. 권력에 눈이 어두운 학살자들은 탈퇴각서를 쓰지 않은 1,465명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에서 학원민주화 운동을 하는 교사들까지 무자비하게 칼자루를 휘둘렀다.
국가의 폭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구속·파면·해임 등 형사처분 및 신분상 불이익을 당한 2,000여 명의 교사들은 해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김영삼정부가 내놓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에 의해 1,504명의 해직교사들은 교단으로 돌아왔지만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가 준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 하나 외에 그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발령 받은 지 6개월도 채 안된 신규교사와 당시 3~40대였던 교사들은 정년퇴임을 했거나 정년 1~2년을 남겨 놓고 있다. 1.457면 중 반 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연금도 받지 못해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하면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전교조 해직 1호 교사 인천의 신맹순선생님은 지금도 80이 다 된 노구로 저녁마다 동네로 돌아다니며 고물을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직교사들은 해직 30년이 지난 이제 ‘해직교사원상회복추진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호봉이라도 인정해 줄 것을 바라고 있지만, 그것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와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가난과 병고로 고통 받는 나라에 민주주의니 정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던 촛불 대통령, 국민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대통령,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은 어디 있는가? 양승태 재판거래로 드러난 전교조 법외노조취소도 급하다. 그러나 30년 전 사법부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이 총동원해 양심적인 교사들에게 가한 폭력은 언제까지 회복시켜 줄 것인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928 

사과는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이 만들었다

조홍섭 2019. 05. 29
조회수 235 추천수 1
큰뿔사슴 등이 통째로 삼켜 씨앗 퍼뜨리도록 수백만년 전 진화

ap1.jpg» 사과의 작물화 과정. 왼쪽은 오늘날 모든 사과의 기초가 된 4종의 야생사과이다. 이 야생사과를 낳은 것은 거대 초식동물이었다. 오른쪽은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지난 2000년 동안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한 사과를 나타낸다. 슈펭글러 (2019) ‘식물학 최전선’ 제공.

사과나무는 왜 ‘쓸데없이’ 그토록 크고 달콤한 열매를 매달까.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기울인 육종 노력의 결과라는 게 통설이었다. 사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형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증거를 토대로 파격적인 주장이 나온다. 사과나무는 사람의 육종에 앞서, 수백만년 전 지금은 멸종한 거대 초식동물이 열매를 삼켜 씨앗을 퍼뜨리도록 크고 맛좋은 열매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로버트 슈펭글러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 역사학 연구소 박사는 28일 과학저널 ‘식물학 최전선’에 실린 리뷰논문에서 사과의 기원에 관한 최근 이론의 흐름을 짚으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장미과 식물은 버찌와 산딸기 등에서 보듯이 작은 열매를 맺지만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은 열매가 매우 크다”며 “작은 열매는 새가, 큰 열매는 대형 초식동물이 삼켜 씨앗을 퍼뜨리기에 좋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그는 “화석과 유전자 증거로 볼 때 이들 대형 과일이 인간이 재배를 시작하기 수백만년 전 이미 진화했다”고 덧붙였다. 논문은 그 시기를 신생대 마이오세 말(약 600만년 전)이라고 밝혔다.

ap2.jpg» 마지막 빙하기 때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던 큰뿔사슴. 큰 열매의 야생사과를 퍼뜨렸을 것이다. 파벨 리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큰 열매가 달린 야생사과를 먹던 거대동물의 예로 그는 마지막 빙하기 말까지 산 큰뿔사슴과 야생말을 들었다. 역대 최대 사슴이었던 큰뿔사슴은 키가 2.1m인데 뿔은 폭 3.6m에 무게 40㎏에 이르렀으며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다.

그러나 거대 초식동물은 지난 빙하기가 끝나면서 대부분 멸종했다. 씨앗을 퍼뜨릴 동물이 사라지면서 지난 1만년 동안 큰 열매가 달리는 야생사과의 분포지는 위축됐다. “빙하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피난처에서 근근이 살아남았고 멀리 확산하지 못한 것은 그 증거”라고 그는 밝혔다.

ap3.jpg» 우즈베키스탄 수도 부하라의 노점에서 전통 품종인 작고 달콤한 노란 사과를 팔고 있다. 로버트 슈펭글러 제공.

사과를 되살린 것은 사람이었다. 슈펭글러 박사는 “열매 크기에 견줘 씨앗이 작은 사과는 작은 사슴, 곰 등 잡식동물을 통해 확산이 가능했다”면서 “그러나 거대동물을 이어받아 사과를 고대 교역로인 실크로드 전역에 퍼뜨린 주체는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사과는 2000년도 더 전에 남부 유럽에서 재배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 남아 있다. 또 고고학 유적은 1만년 이상 전에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야생사과를 채집했음을 보여준다.

또 유전자 연구를 보면, 현대 사과는 적어도 4종의 야생사과가 교잡된 결과인데 그 장소는 실크로드였다. 고대 교역로 곳곳에서 보관된 사과 씨앗과 묘목이 나오고, 그 요충인 카자흐스탄 톈산 산맥은 사과 유전 물질이 기원한 곳이기도 하다.

ap4.jpg» 톈산 산맥의 야생사과. 다 익어도 떨어지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거대 초식동물을 위한 형질이다. 마틴 스티치 박사 제공.

사람들은 1000가지가 넘는 사과 품종을 만들어냈고 오늘날 경제적·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일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사과는 벼나 밀이 작물화한 것과 같은 경로를 거친 것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사과는 기본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과가 달리는 나무의 씨앗을 오랜 기간 선발과 증식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잡종화와 접붙이기를 통해 단기간에 또 우발적으로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사과라는 것이다.

그는 “사과와 같은 과수의 작물화는 곡물이나 콩의 작물화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과의 한 세대는 20년이어서 인류가 수천 년을 재배했다 하더라도 곡물처럼 2000∼3000세대에 이르지 않는다. 고고학 증거는 사과가 작물화한 지 100세대 미만임을 가리킨다. 인간의 재배로 진화를 이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슈펭글러 박사는 “작물화 과정은 모든 식물에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세대가 긴 나무의 작물화 과정을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ap5.jpg» 톈산 산맥의 야생사과 낙과를 먹는 말. 과거에는 야생말이 야생사과를 먹고 씨앗을 퍼뜨렸을 것이다. 아르투르 스트로셔러 제공.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pengler RN (2019) Origins of the Apple: The Role of Megafaunal Mutualism in the Domestication of Malus and Rosaceous Trees. 
Front. Plant Sci. 10:617. doi: 10.3389/fpls.2019.006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끝내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안 한 문재인 정부

끝내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안 한 문재인 정부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5/30 [09: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전교조가 법외노조 취소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새로운 투쟁에 돌입했다. (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서른 번째 생일을 결국 법외노조 상태로 맞았다전교조는 창립 30주년이 되는 5월 28일까지 정부에게 법외노조 취소 결정을 요구했지만 끝내 문재인 정부는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창립기념일 다음 날인 29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외침에 귀를 막고 침묵으로 답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전교조는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는 적폐인가 아닌가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로 희생된 해고자들을 방치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계승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청와대는 촛불의 명령을 외면한 채 정치 논리의 허상에 빠져 사법부와 입법부 뒤로 숨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정부가 ILO핵심협약 비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이려면 이에 따른 가시적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며 그것은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92항의 폐기라고 강조했다.

▲ 청와대 앞에서 농성에 돌입한 전교조 조합원들. (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전교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9일 동안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진행하던 전교조 지도부·해고자’ 천막농성을 청와대 앞으로 옮겼다.

전교조는 이날부터 6월 11일까지 전교조 학교단위 조직인 분회 비상 총회를 열어 현 상황을 공유하고 연가투쟁을 결의할 계획이다. 6월 1일에는 노동법 개악 없는 ILO핵심협약 즉각 비준 등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집중 참여한다나아가 6월 12일 '법외노조 취소 거부하는 문재인 정부 규탄 전국 교사 결의대회'를 진행한다. 6월 17일에는 결사의 자유 쟁취를 위한 10,000미터 대행진과 법외노조 취소 촉구 촛불집회에 함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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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전교조 법외노조촛불 시대의 적폐로 남길 것인가
촛불 정부라면 적폐 청산으로 답하라

역사적인 전교조 서른번 째 생일을 결국 법외노조 상태로 맞게 되었다우리의 간절하고도 정당한 외침을 문재인 정부는 끝내 외면하였다청와대는 그동안 법외노조 취소 기회를 번번이 스스로 걷어 차버렸다오늘 우리는 다시 청와대 앞에 서서 법외노조 취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음을 밝힌다.

박근혜 정권이 해고자를 이유로 전교조 탄압 시나리오를 시작했을 때전교조 조합원들은 총투표를 통해 9명의 해고자와 함께 하기로 힘있게 결정했다이는 교육민주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동료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고이에 대해 전교조 조합원들은 부당한 국가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지켜내겠다고 답했다그 대가로 전교조는 7년에 가까운 세월을 법내노조와 법외노조를 오가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전교조는 법외노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작년에는 위원장의 한 달 가까운 단식농성을 비롯하여 올해는 72,535부의 법외노조 취소 민원서를 제출하고, 326명의 사회원로와 1,610개 시민단체시도교육감협의회학부모단체퇴직 선생님 기자회견 등 각계 각층에서 법외노조 취소의 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촛불의 외침에 귀를 막고 침묵으로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를 촛불 정부라 말한다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을 말하였다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는다.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는 적폐인가 아닌가?
전교조 법외노조 조치로 희생된 해고자들을 방치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계승할 것인가?

청와대는 촛불의 명령을 외면한 채 정치 논리의 허상에 빠져 사법부와 입법부 뒤로 숨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전교조는 촛불의 이름으로 이를 엄중히 규탄한다.

얼마전 정부는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발표했다정부가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이려면 이에 따른 가시적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그것은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 9조 2항의 폐기이다이는 청와대가 결단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행정조치로써정부가 사법부와 입법부에 법외노조 해결의 책임을 미루며 정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행정조치조차 하지 않는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전교조는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청와대 앞에서 법외노조 취소를 위한 천막농성을 시작한다모든 책임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에게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를 박근혜 정부의 적폐로 남길 것인가문재인 정부의 적폐로 남길 것인가촛불 정부라면 적폐 청산으로 답해야 한다전교조 법외노조 취소가 그 답이다.

<우리의 요구>
○ 전교조 법외노조즉각 취소하라!
○ 해고자를 전원 원직 복직시켜라!
○ 촛불이 명한 적폐 청산당장 이행하라!

2019년 5월 29
전국교직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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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한국인 7명 사망 19명 실종

단체관광객 탑승한 유람선, 크루즈선과 충돌
2019.05.30 08:36:13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국민 33명 등이 탑승한 유람선이 침몰해 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실종됐다.

외교부는 지난 29일 오후 9시(현지 시각)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부다 지구에서 한국 단체 여행객 33명과 헝가리 승무원 2명이 탑승한 유람선이 크루즈선과 충돌,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여행객 33명 중 현재까지 7명이 구조됐으며 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실종자 19명에 대한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를 재외국민보호 대책본부로 격상하고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소방청 등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의 조속한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신속대응팀은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을 팀장으로 외교부 6명, 소방청 12명(구조대 포함) 등 총 18명 규모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29일(현지 시각)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관광객이 탑승한 유람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 헝가리 당국이 실종자 탐색 및 수습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외교부는 "주 헝가리 한국 대사관은 사고 인지 즉시 현장대책반을 구성, 영사를 현장에 급파해 헝가리 관계 당국과 협조하여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병원에 후송된 구조자에 대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여행사 측과 향후 대책을 협의하는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지속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도시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주요 관광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창복 “열쇠는 남북합의, 대중적 평화운동 펼칠 것”

6.15남측위, 후원의밤 개최...'광화문 6.15민족자주대회' 추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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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0  08: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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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2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후원의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원회는 그 본연의 위상과 목적에 맞게, 남과 북이 맺은 공동선언들에 동의하는 각계각층과 더 크게 연대하기 위한 보다 큰 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29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후원의밤 행사에서 “6.15남측위는 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대중적인 평화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창복 의장은 “지난 5월 23일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중국 심양에서 실무협의를 가졌다”며 “남북관계의 현 교착국면을 풀 열쇠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숙의했다”고 전하고 “그 열쇠는 바로 남북합의”라고 밝혔다.
“남북이 맺은 약속,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충실한 이행이야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는 것.
  
▲ 참석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호응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의장은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남과 북의 다양한 만남과 교류도 끊임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오는 6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는 6.15공동선언 19주년 민족자주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건의드린다”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구호인 ‘겨레를 잇는 평화와 통일의 오작교’를 언급하고 “우리가 오작교가 되어 우리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최은아 6.15남측위원회 사무처장은 올해 2월 금강산 새해맞이 연대모임부터 4.27 인간띠잇기, 지난 23일 심양 정책협의까지의 경과를 요약 설명하고, “판문점 선언 1조 1항에 담겨 있는 정신,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다'는 정신이야말로 지금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개척하는 가장 강력한 정신”이라고 말했다.
특히 23일 선양 남북해외 정책협의에서 “남북선언을 충실히 이행하자, 시민들과 함께하는 평화통일운동을 더욱더 활발히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에 남북해외가 뜻을 모았다”고 전하고 “다가오는 6.15 19주년에도 역시 민족공동행사를 성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측이 선양 실무회담을 당일 현지에서 취소를 통보한 기류라든지 촉박한 일정 등을 감안하면 6.15남측위가 제안한 평양 6.15공동행사는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추진’ 의지를 밝힌 것. 6.15남측위 관계자는 “가능성은 남아있고 끝까지 성사를 위해 남북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최 처장은 올해 주력사업으로 ‘코리아 평화선언’을 국내외 각계각층과 함께 조직하고, 지난해에 이어 ‘9월 UN 시민평화대표단 파견’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여름부터 각계각층이 번갈아가면서 금강산을 방문하는 운동을 펼치겠다고도 했다.
  
▲ 6.15남측위원회 후원회장을 맡은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오늘의 시대정신인 통일'을 위해 후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250여 참석자들 앞에서 함세웅 신부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삼열 6.15남측위 후원회장은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렸을 때 독립운동을 했다. 그때는 나라를 되찾는 운동, 독립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때 시대정신이었다”며 “오늘의 시대정신은 통일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좀더 우리가 마음을 합쳐서 통일운동에 매진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6.15남측위원회는 단군 이래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평화와 통일, 우리 민족의 숙명적 과제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며 6.15남측위원회에 후원을 호소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축사에 나서 “역사적 선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길은 답답하고 우리의 가슴은 답답하다”며 “6.15선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오작교를 반드시 놓겠다는 이런 마음으로, 오늘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저도 이 자리에 함께한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는 “초심을 갖고 이제 후배들이, 후학들이 우리 자녀세대들이 우리와 같은 뜻으로 민족일치와 화해를 위해서 앞장서 나갔으면 참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며 “6.15공동선언의 뜻이 민족의 일치와 화해, 공존의 지름길,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민의 참여를 좀더 활성화시키고 6.15정신을 다시 또 살린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우리의 결의의 표현이고 남북관계 해결을 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또 더 나아가서 동북아평화를 위한 결정적인 과제”라며 6.15남측위의 활동에 기대감를 표했다.
  
▲ 행사장 입구에서 재일 조선학교 학생 문집『꽃송이』인증사진 남기기 이벤트도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성악가 김윤태 교수의 축가 무대도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안지중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후원의밤 행사에서는 성악가 김윤태 상명대 연기뮤지컬 교수가 축가를 불렀고, 250여명의 참석자들은 만찬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황인성 민주평통 사무처장과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2019년 5월 28일 화요일

"한국, 평화협정의 불가피성 미국에 설득해야"


이삼성 "평화협정 없는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
2019.05.29 08:07:29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선언 이후 북한 비핵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은 미국이 당초 합의에서 후퇴해 북한의 일방적 선 핵포기를 요구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중재자를 자임한 한국이 이러한 미국의 변화된 입장에 끌려간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지난 26일 서강대에서 열린 제9회 맑스코뮤날레에서 '한반도의 평화: 6.12 싱가포르선언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과 한국외교'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 비핵화는 평화협정과 동시에 진행돼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면서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평화협정 협상의 명분과 불가피성을 당당히 밝히고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미선언의 핵심은 평화협정체제 구축에 의한 북한 비핵화 진행이라는 대원칙에 미국 대통령이 동의한 것이었고 그것을 국제사회를 향해 명확히 선포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이 선언 이후 북한이 비핵화 일정표와 북미 간 외교·경제관계 정상화 일정표를 함께 엮어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선언 이후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선행조치들을 요구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미국 측의 조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즉 북한의 선 비핵화 요구라는 과거 패턴으로 복귀한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018년 10월 6일 4차 방북 직전 "최종적,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FVID)가 완수되면 평화협정이 가능하다"며 달라진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싱가포르 선언 직전인 5월 27일 상원 청문회에서 행한 그의 발언에서 명백히 후퇴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할 것을 요구하듯이 미국이 북한에게 제공할 보장들 역시 마찬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 계획은 협상을 타결해서 상원에 회부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 목표다"라고 말했었다.

문제는 이처럼 달라진 미국 정부의 입장을 한국 정부가 묵종하고 만 데 있다. 지난해 9월 20일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 이후의 일"이라고 못박았다. 즉 평화협정체제 구축에 의한 북한 비핵화 진행이란 싱가포르 선언의 대원칙을 포기한 미국의 입장을 따른 것이다.  

반면 당시 CNN과 인터뷰한 미국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비핵화 자체의 대가로 요구하는 것의 핵심은 평화조약"이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협상을 위해서는 이제 평화협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문제의 정곡을 찔렀다. 

미국 언론과 상당수 전문가들의 눈에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평화협정"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우회하면서도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허언"(empty words)을 일삼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삼성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대해 "4.27판문점 선언까지는 잘 갔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북핵문제 해결의 기본 틀과 관련해서 스스로 채택한 4.27선언과 달리 미국 강경파의 프레임에 동조하거나 순응하면서, 북미를 함께 이끌 수 있는 포괄적인 '틀 지우는 비전'(framing vision)을 결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 중간선거 직후 기자들에게 "(한국 정부는) 우리가 승인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Without our approval, they do nothing!)고 말해 한국 정부가 미국의 입장을 추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선언 이후 한국 정부의 태도는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선행조치론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함으로써 말 그대로 '가야 할 노선은 미국이 정하고 한국은 운전만 하는', 그래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미 간 협상에 맡긴 채 방관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당면한 역할은 "포괄적이면서도 단계적 동시행동의 일정표를 담은 일괄타결인 평화조약 형태의 '합리적인 빅딜'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고 강조했다. 

2019년은 "북한이 호혜적이며 대칭적인 일괄타결로서의 평화조약 체제 구성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미국과 한국의 외교가 그 조건을 마련해낼 것인가, 아니면 북한이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버리고 결국 핵보유국 지위를 향해 분명하게 방향을 잡을 것인가"가 결정되는 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삼성 교수의 발표 논문 중 싱가포르 선언의 배경과 향후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북미 협상 교착 원인에 대한 부분만을 전재한다. 편집자  

▲ 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6.12 이후 북미 협상 교착과 그 원인
 

6.12 북미 정상선언 이후 수개월 간 북미협상에서 최대 이슈는 핵 리스트를 신고하고, 나아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먼저 제거하는 가시적인 조치들(tangible steps)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데 있었다. 북한이 핵무력을 (일부라도) 먼저 내놓는, 이른바 '프런트 로딩' 조치를 취할 것을 미국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처럼 미국은 북한에게 일정한 비핵화 선행조치들을 요구하면서도 그에 상응한다고 북한이 판단할 만한 조치들에는 부정적이었다. 선(先) 비핵화 요구라는 과거 패턴으로 복귀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6.12 싱가포르 선언을 무효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북한은 이를 "강도적 행태"(ganster-like behavior)라며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는데, 이는 결코 예기치 않은 일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종전선언'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종전선언은 적대 관계의 선언적 청산으로서 평화협정 교섭의 전단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교환되면 외교관계 개선과 경제 제재 일부 해제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여기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분석한 것을 보면, 우선 미국의 당시 입장은 북한이 최소한 핵무기와 핵시설 그리고 미사일 리스트를 제출하지 않는 한 종전선언은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종전선언에 응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 안의 강경파와 특히 군부 인사들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동아시아 미 군사력의 위상과 명분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의 패권 대전략"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보았다.  

또한 한국 진보정권이 종전선언을 계기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지위 약화를 추구할 가능성도 우려한다고 했다. 이 언론에 따르면, 존 볼턴과 짐 매티스 국방장관이 종전선언에 가장 반대하고 있었다. 이들 강경파는 설사 북한이 핵리스트 제출에 응해도 "종전선언 전에" 엄격한 검증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02년 국무부의 군축담당 차관으로서 북한과의 제네바합의를 공식 파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그 바람에 북한 핵무장이 본격화되었다는 것 때문에 북한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볼턴은 "자기네들 핵무기의 아버지"(the father of their nuclear program)로 통한다.(1) 볼턴은 6.12 싱가포르 선언까지는 방해하지 않았지만 그 선언이 담고 있는 새로운 대원칙의 실천을 가로막는데 이미 다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셈이다.(2)

미국이 6.12 선언의 대원칙에 충실한다면, 북한 비핵화는 평화협정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평화협정 협상은 시작하지도 않은 채, 종전선언에 과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마저 "쉽게 내주어선 안 되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이라는 것을 하나의 중요한 단계로 격상시키고 그것을 평화협정 협상과 분리한 다음, 종전선언을 빌미로 북한의 비핵화 선행조치를 요구하는 모양새였다. 종전선언을 한미연합훈련 재개 위협과 엮어서 그 대가로 북한의 비핵화 선행 조치들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2018년 10월 6일 폼페이오(Mike Pompeo)가 그의 4차 방북 직전 일본에서 평화협정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최종적,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FVID)가 완수되면 평화협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3) 이것은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무효화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무렵 북한 공식 매체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흥정수단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었다.(4) 

2018년 9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미국 언론 CNN의 보도는 유의할 대목이 있었다. 이 언론과 인터뷰한 미국의 한 전문가는 "북한의 비핵화 의도에 관해 남한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핀트를 벗어나 있다"(All the talks from South Korea about North Korean plans to denuclearize miss the point)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미국이 실질적인 평화협정 협상을 회피하며 살라미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이런 저런 작은 것들(small things)을 요구하는 협상을 할 수는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 자체의 대가로 요구하는 것의 핵심은 평화조약(a peace treaty)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협상을 위해서는 이제 평화협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문제의 정곡을 찔렀다. 미국 언론과 상당수 전문가들의 눈에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평화협정"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우회하면서도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허언"(empty words)을 일삼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2018년 8월 하순 폼페이오의 방북 계획을 트럼프가 취소한 원인이 된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김영철의 편지가 있었다. CNN 등 미국 언론은 김영철의 편지는 '평화협정' 협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폼페이오의 방북이 취소된 배경과 관련해 한국 대표언론 KBS 9시 뉴스를 포함한 한국 언론사들의 보도들은 미국은 비핵화 선행을 요구하는 데 비해서 북한은 "종전선언"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것은 한국 정부와 함께 언론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미국과 한국이 정면으로 직시하고 감당해야 할 문제의 본질이 종전선언이 아니라 평화협정 협상의 본격화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은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명시했음에도, 한국정부가 6.12 공동선언 이후 미국이 후퇴한 이래 "평화협정"이란 개념 자체를 거의 금기시하는 분위기까지도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한국 언론은 그러한 정부의 태도를 투영하고 있었다.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과 그 후의 '평화협정 문제'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선언을 했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 해소에 의미 있는 역사적 진전을 이룬 선언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9월 20일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 이후의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평화협정에 관해 "선 비핵화"라는 종래의 패턴으로 도돌이표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평화협정이 들어서야 할 자리를 멀리 뒤로 미루고 그 대신 종전선언을 앞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써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을 북한의 일정한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대가로 인식하는 점에서 미국의 살라미전략에 포박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위해 필요한 "평화협정 체제를 통한 비핵화의 비전"을 포기했거나 혹은 처음부터 결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북한의 의구심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분명했다. 평화체제 구축 이전에 "(북한) 핵무장의 일방적 해체는 없다"는 것이었다.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과 평양선언이 있은 지 불과 얼마 후인 2018년 9월 29일 리용호 북한 외상이 행한 유엔 총회 연설에서였다. 

그는 이 연설에서 "(핵·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지와 핵실험장 폭파 등) 북한이 중대한 선의의 조치들을 먼저 취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핵·탄도미사일) 시험들이 중지된 지 근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 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 하나 변한 것이 없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2018년 8월 남북 철도 공동 조사가 유엔사의 군사분계선(MDL) 통행 불허로 무산된 것과 관련하여, "유엔군사령부는 북남 사이의 판문점 선언의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선(先) 비핵화'만을 주장하면서 그를 강압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제재 압박 도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심지어 '종전 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제재가 우리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미군의 핵 위협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 

2018년 10월 유럽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 영국 정상을 만났을 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비핵화 진전"을 대북한 제재 완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10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한반도 평화 구축"을 언명했다. 

그런데 2018년 12월 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 "완전한 비핵화" 뒤에 대북한 제재 해제를 대원칙으로 재확인했다. "한미 정상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기존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고 하였다.(6) 

요컨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및 한국 내 정치권과 국민을 향한 문재인정부의 공식적인 대북정책 원리는 한편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서, 미국을 향한 공식 정책 천명에서는,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선언의 대원칙에서 공식적으로 후퇴한 상태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 이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그렇다면 평화협정 문제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결국 무엇일까? 다음 셋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첫째, 4.27선언의 취지대로 <평화체제 구성을 통한 북한 비핵화>를 내심 원칙으로 간직하면서도, 미국의 변화된 입장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북미 간 대화 지속과 남북관계 발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집중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서 "표면상 후퇴"한 것일 가능성이다.  

둘째, 4.27 판문전선언 당시엔 "평화협정 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의 대원칙에 동의했지만, 이후 미국이 6.12 싱가포르 선언에도 불구하고 그 대원칙에서 후퇴하여 "비핵화를 전제한 평화협정"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문재인 정부도 스스로 후퇴하여 평화협정 문제에 관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을 가능성이다.  

셋째, 4.27 판문점선언에서 문재인정부가 합의한 '평화협정'은 애당초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한 평화협정"이었던 것으로서, 북한의 평화협정 개념에 실제는 동의하지 않았거나 애매한 상태로 두면서 서명했을 가능성이다.  

위의 셋 가운데 어느 쪽인가를 한국정부 주요 인사들의 말과 행동에 비추어 판단하면, 첫째일 가능성은 적어지고, 둘째도 아닌 세번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평화협정에 관한 한국 정부의 인식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평화협정은 "평화의 결과"가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문서"이며, "평화를 붙들어놓기 위한 제도적 장치" 라는 의식이 부재하거나 분명치 않은 데서 생기는 문제이다. 진보 학계까지 포함하여 한국 전문가집단과 지식인사회에서 지배적이었던 사고방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평화협정은 평화의 입구가 아니라 출구"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한 인식의 부작용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쪽이든 평화협정의 추진을 통한 북한 비핵화라는 대원칙을 공식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 핵프로그램의 내면적인 진전과 확장의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하는 평화체제 구성도 남북관계의 포괄적 진전의 가능성도 멀어지는 것이었다.  

포괄적인 호혜적 평화협정 협상은 배제하거나 뒤로 미룬 채, 종전선언 및 "환상적 경제적 미래"(fantastic economic future)를 앞세운 미국의 살라미 전술을 뒷받침하는 효과가 우려되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한국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고 지연시킬 수 있었다. 문재인정부의 이러한 평화협정 개념으로는 "평화체제를 통한 비핵화"를 위한 창의적 중재외교는 가능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협정' 개념의 한계에 직면한 북한의 전략은 우선 평화협정과 비핵화는 북미 협상으로 푼다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북한은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 인식의 한계를 직시하고 평화협정 문제는 남한과의 협상 어젠다에서 분리하여 미국과의 협상에서 다룬다는 것이다.  

남북대화 어젠다는 북미협상 어젠다에서 분리시킨다. 북미 간 협상에서 남북관계를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활용한다. 남한과의 협상에서 주요 어젠다는 남북간 군사긴장 해소와 남북 경제협력에 한정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대미 협상 유지와 '핵보유국 지위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의 동시적 추구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핵무장 확장 능력' 포기 (=영변핵시설 폐기)의 수준, 그리고 대미 타격 가능한 ICBM 폐기에 관한 협상을 수단으로 삼아서 미국의 대북 제재의 일정한 해체를 확보해내고, 기왕의 핵무장 수준은 유지하여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노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1994-2018년 기간에 북미 간 성립한 합의와 그 성격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1994년 제네바합의 (Geneva Agreed Framework), 2005년 9.19선언, 2007년 2.13합의, 그리고 2018년 6.12 싱가포르 선언이 있다. 이들 합의 유형은 모두 일괄타결 및 단계적인 동시적 실천의 틀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과 제재 해제 이전에 먼저 실질적 비핵화를 진행하는 합의에 응한 적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 이들 합의의 공통된 한계는 미국의 행정부 수준의 협정 내지 합의(executive agreement)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미국 정치권의 초당적 합의에 기초한 제도적 보장이 결여되어 있다. 동시적 행동의 원칙을 천명하거나 내포했지만, 구체적인 실행의 일정표를 결여하고 있던 것 또한 공통된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합의들의 운명 역시 공통적이었다. 제네바 합의는 미국 내 정권교체에 의해 파기된다. 9.19 공동선언은 미국의 동일 행정부 자신에 의해 번복된다. 2.13합의는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의 판단에 의해 파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2018년의 6.12 싱가포르 선언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미국의 동일 행정부 자신에 의한 번복"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 북미 합의의 역사에서 유추 가능한 향후 북한이 응할 비핵화 합의의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고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일괄타결이다. 미국과 북한 각자의 핵심 요구사안들의 포괄적 동시적 교환이자 단계적인 동시적 실천에 관한 합의이다. 둘째는 미국의 초당적 합의에 의한 제도적 보장이다. 미 의회의 비준을 받는 조약 형태의 평화협정을 의미한다. 셋째는 동시적 교환과 실천에 관한 구체적 일정표를 담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장 완성 이후에 응할 '비핵화 합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위의 조건은 절대 불가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북한이 원하는 일괄타결은 미국의 요구가 비대칭적으로 과도한 형태가 아닌 "호혜적, 대칭적 일괄타결"이라는 점이다. 한국 언론은 "미국은 일괄타결, 북한은 단계적 협상"을 요구한다는 이분법으로 이 문제를 정리해왔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이분법적 이해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보도해왔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언급된 평화협정, 그리고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에 담긴 '항구적 평화체제'는 북한 비핵화의 일정표와 북미 간 외교 및 경제관계 정상화 일정표를 서로 연결해 담아낸 포괄적 일괄타결을 전제로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일괄타결은 비핵화도 경제·외교관계 정상화도 시간적으로는 "단계적"이고 북미 간 행동의 선후에 관해서는 "동시적인" 실천의 일정표를 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북한에게 한국과 미국이 그 선언들을 통해 약속해준 것의 실체는 "단계적인 실천의 일정표를 담은 일괄타결"의 청사진을 함께 만들어내자는 합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괄타결과 단계적 협상을 상호 대립되는 것으로 이분법화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습관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간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한 일괄타결을 원하고, 북한은 그것을 거부하면서 단계적 협상을 원했다는 한국 언론의 도식적인 주장은 북한이 평화협정 협상 본격화를 원할 때 미국은 사실상 북한 비핵화 선행을 앞세움으로써 진정한 평화협정 협상을 거부해온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미국이 얘기하는 '빅딜'이 북한이 기대한 "단계적 실천의 일정표를 담은 일괄타결"로서의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요구로 가득한 것일 때, 그것은 빅딜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선택할 것은 포괄적 협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우선 당장 북한 경제의 목을 조이는 경제제재의 일부 해제라도 확보할 수 있는 중간 딜이라도 추구해보는 일일 터이다. 이것이 지난 2018년 가을 이래 북한이 모색해온 방법론적 전환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때의 중간 딜은 물론 북한이 기존의 핵무장 상태의 골격은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북한이 9월 남북정상의 평양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영변핵시설 폐기를 카드로 미국의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교환하는 협상을 하려 한 것이라면, 그것은 6.12 싱가포르 선언 이후 미국과 한국의 '평화협정' 관련 개념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를 진행할 수 있을 조약으로서의 형식과 내용을 갖춘 대칭적 일괄타결"로서의 평화협정 가능성에 비관적이 되었음을 확인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6.12 싱가포르 선언 이후 북한의 비핵화 협상 전략과 태도는 미국의 후퇴와 한국의 평화협정 개념의 한계라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최고 지도부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협상 중재자 또는 운전자"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핵화 문제에 관해 한국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제한한 것이었다. 북한의 관점에서 비핵화는 평화협정 체제 구축을 통해서만이 실질적 진전이 가능했다. 평화협정을 견인하여 북한 비핵화를 이룩하는 협상과정에서 한국은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다만 한국은 남북관계 발전을 견인함으로써 미국의 대북한 전쟁불사 정책을 견제하고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북미 협상 국면을 가능한 한 유지시키는 역할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2018년 7월 이후 한국외교의 핵심 문제와 숙제는 한국이 미국 내 강경파의 노선에 대한 적극적 견제 노력을 회피하고 그에 사실상 동조(同調)한 데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장은 한미간 공조 유지라는 장점을 누릴 수 있었다. 한미 간 마찰 표면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 보수 세력의 공세와 남남갈등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의 주요 행위자 역할을 포기한 셈이었다. 북한의 핵보유국화를 받아들인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원하면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 달성 후 평화협정"이라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틀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북미 간 평행선을 유지하였다. 북미가 평행선을 벗어나 합류할 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 하나는 북미 모두 윈-윈하는 지점이라고 해야 할 "호혜적이고 대칭적인 포괄적 일괄타결" 결국 평화협정 협상의 비전을 한국정부가 지혜로운 방식으로 외교적 공론화를 하는 것이었다.(7)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과 그 실패의 구도 

2019년 2월 27-28일에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은 일반의 예상과 달리 어떤 합의도 낳지 못하고 결렬로 막이 내렸다. 합의 실패와 관련해 두 가지 가닥의 협상 구도가 드러났다. 하나는 트럼프도 밝힌 것과 같이, 미국은 북한에게 "영변핵시설과 알파(영변외 핵시설)의 폐기"를 요구하고, 미국은 대북한 제재를 해제하는 문제를 두고 벌인 협상이다. 

▲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메트로폴 호텔에서 북미 확대 정상회담이 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른 하나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추가적으로 밝힌 것으로서,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무기와 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일괄타결"을 요구하였고, 대신 "엄청난 경제적 미래"를 북한에게 약속했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이른바 '빅딜' 협상틀이다.(8)

여기서 볼턴이 말한 협상틀을 '일괄타결 방식'으로 본다 해도, 그것은 북한 관점에서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호혜적·대칭적 일괄타결"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비대칭적 일괄타결"의 한 형태거나, 일괄타결이되 북한이 이행할 비핵화 일정과 미국이 그에 보상하는 의무 이행의 순서가 사실상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이행하면 미국이 그것을 평가해서 북한이 원하는 바를 제공한다는 식의 "비핵화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법으로서의 대칭적 일괄타결이 아니라, 북한의 선 비핵화를 향한 전방위 압박외교로의 복귀를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합의의 틀은 기본적으로 다음 두 가지이다. 

① 첫 번째 협상틀은 호혜적이며 대칭적인 포괄적 일괄타결이다. 이 협상틀은 모든 것의 포괄적 타결과 단계적〮 대칭적인 이행 일정표를 담은 것으로서, 북한 비핵화의 단계적 이행과 각 단계마다 북미 외교 및 경제관계에서 미국의 동시적인 약속이 이행되는 일정표를 담는다. 또한 미국 내 초당적인 비준에 의한 조약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를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평화조약을 가리킨다.

② 두 번째 협상틀은 미래 핵(영변 핵물질 생산시설)의 폐기를 카드로 북한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경제 제재의 주요 부분의 해제를 교환하는 것이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 선언 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호혜적이며 대칭적인 포괄적 일괄타결로서의 ①의 가능성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정상회담 후 미국의 태도가 볼턴 등 강경파의 주도 아래 뒤로 후퇴하면서, 김정은은 그 희망을 거의 상실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은 대안을 모색해야 했을 것이다. 그 대안으로 북한이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②의 방안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②의 방안의 전제는 ①의 실현 가능성이 비관적인 조건에서 선택한 차선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 의지를 갖고 이행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북한이 당면한 경제제재의 일부 해제나마 모색하고자 할 때 북한이 취할 수 있는 협상틀인 것이다. 북한이 적어도 기존에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는 영구히 유지하여 핵보유국을 목표로 하면서 다만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협상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의심도 물론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이 정당화되려면 미국이 북한에 제안했다는 '빅딜'이 내용상 과거와 같은 '북한 비핵화 선행'을 조건으로 하는 비대칭적 일괄타결 방식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 내용과 이행 절차에서 북한이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단계적 동시행동의 원칙을 반영한 '호혜적이며 대칭적인 포괄적 일괄타결로서의 평화조약이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미국은 이 점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게 뻔한 비대칭적 요구들로 미국이 북한을 압박했던 정황이 더 풍성하게 전해졌다.  

2018년 6.12 싱가포르 선언 이후 2019년 2월 말의 하노이 회담 직전까지 미국이 드러낸 대북 외교는 볼턴 등 강경파가 주도권을 가진 가운데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선행(先行)을 요구하는 양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북한에게 대칭적인 평화조약을 통한 평화적 해결에 희망을 버리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노이 회담에서는 ①의 대칭적인 평화조약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린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중요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서자, 미국은 한편으로 영변 핵시설 외의 미국이 의심하는 추가 핵시설의 동시 폐기를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볼턴 등 강경파들이 심지어 생화학무기까지 거론하며 그것을 '포괄적 빅딜'로 포장했던 것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으로선 6.12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그 선언에서 천명된 대원칙, 즉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라는 틀로부터 후퇴한 상태가 반년 이상 지속된 상황에서 ①의 포괄적인 평화조약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할 수 없었고, 이런 상태에서는 일단 영변 핵 포기를 협상 대상으로 삼아 그 대가로 일정한 경제 해제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북한이 영변 핵 이외의 미국이 의심하는 핵시설까지 신고하고 폐기를 약속하는 이른바 '플러스 알파'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포괄적인 대칭적 평화조약의 협상틀을 수용하지 않는 한, 북한의 옵션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유지를 모색하는 것을 전제한 지엽적 협상과 교환에 한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북한은 ①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②의 수준에서 비핵화 협상을 할 경우, 미국이 대북한 제재의 핵심 부분들을 실질적으로 해제하는 사실상의 전면 해제를 해준다 하더라도 그 대가로 북한이 실행해도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 비핵화 수준은 영변 핵 폐기와 ICBM 추가실험 포기 정도에 그칠 것이다.  

평화조약과 같은, 미국 내 초당적인 법적 구속력 있는 제도적 장치로 북미외교 및 경제관계 정상화가 보장되지 않는 한, 미국이 아무리 "환상적인 경제적 미래"(fanstastic economic future)를 약속한다 해도, 북한이 응할 수 있는 비핵화 수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노이 회담은 명확히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4.27판문점 선언까지는 잘 갔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북핵문제 해결의 기본 틀과 관련해서 스스로 채택한 4.27선언과 달리 미국 강경파의 프레임에 동조하거나 순응하면서, 북미를 함께 이끌 수 있는 포괄적인 '틀 지우는 비전'(framing vision)을 결여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미 중간선거 직후 트럼프는 기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승인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Wiithout our approval, they do nothing!).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평양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와 철도 및 도로 연결과 같은 남북관계 개선의 중단기적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하려 나름 충실하게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유지하게 하고, 미국을 진지한 포괄적 협상에 임하게 이끌 수 있는 진정한 중재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켜 온 것이 사실이다. 중재를 자임하지만, 중재를 이끌어갈 자신의 비전이 미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북한의 선택지 중 ①과 ②에서 모두 한국정부는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촉진할 수 있는 역할의 동력을 상실하고 구경꾼의 위치로 전락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하노이 북미회담을 통해서 노정되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북한과 포괄적 빅딜의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 결과 한국은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빅딜의 방식에 대해 미국에 중재할 기회도, 준비도, 능력도 없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가 현실적으로 부분적 교환을 모색하는 경우에도, 그에 대해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 밖에 없었다. 

미국 강경파들에게는 2017년 12월 중국이 동의하여 결정된 강력한 유엔 제재라는 어렵게 확보한 대북 제재 장치로 북한을 압박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북한과의 어떤 비핵화 협상보다 더 귀중한 기득권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은 제재를 유지하여 북한 경제발전을 저지하고 북한 붕괴를 촉진한다는 관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미 군부 및 정보기관 수장들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2019년 1월 말 CIA 국장과 DNI(국가정보국장)는 의회 증언에서 "북한의 핵 완전 포기는 없을 "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9년 2월 12일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지구(Indo-Pacific) 사령관도 상원 청문회에서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들은 미국이 6.12 싱가포르 선언 후, 그 선언의 대원칙을 무효화함으로써 김정은을 혼란과 "고뇌"에 빠뜨린 점에 대해서는 분명 언급하지 않았을 터이다. 트럼프의 톱-다운 방식의 대북 협상에 대해 견제하고 사보타지하는 볼턴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전선이 작동한 셈이었다. 

볼턴이 2018년 4월 부임한 이후 처음 두어 달은 폼페이오와 트럼프식 협상전략을 방해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6.12 공동선언에 따른 평화협정 협상을 차단하는 데 이미 성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짐 매티스(Jim Mattis) 국방장관과 볼턴(John Bolton)이 주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노이 회담에 앞서 볼턴 중심으로 <백악관-군부-정보기관> 연합전선이 강화되었던 것이라고 보인다. 트럼프는 국내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미국 군부와 연결된 볼턴 등 강경파 연합의 관점에 저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 안팎의 강경파 연합전선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트럼프식 협상이 계속될 경우 미국의 전통적인 동아시아 전략의 기반이 무너질 것을 크게 우려할 수 있었다. 특히 미일동맹의 동요를 우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관건의 하나는 미국이 또 다시 "북한 붕괴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이다. 이를 둘러싼 미국 내 강온파 간 논리 경쟁이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온건파가 유리해 보일 수 있다. 중국 대륙을 60여 시간에 걸쳐 유유히 횡단하며 하노이를 오간 김정은 위원장의 여행 루트는 무엇보다 북중관계 복원의 심도를 말해준다. 그것은 북한 조기붕괴론에 기대려는 미국내 강경파들의 유혹을 제한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미국 내 강온파 간 정책 경쟁에서 강경파를 견제하고 협상파에 힘을 실어주는 보다 적극적 비전과 역할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한국이 중심에 선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과 그에 기초한 동아시아 평화에의 기여는 공염불에 그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지난 4월 1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맺는말 

2018년이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중대한 분수령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반도의 봄이 왔고,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짐으로써 한반도 분단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의 평양선언, 그리고 6월의 6.12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모두가 함께 추구할 이정표를 세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실천은 역시 어렵다는 것을 그 이후의 사태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2019년은 2월 말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으로 희망과 함께 그 한계를 노정하며 시작했다. 북한이 앞서 정의한 호혜적이며 대칭적인 일괄타결로서의 평화조약 체제 구성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미국과 한국의 외교가 그 조건을 마련해낼 것인가, 아니면 북한이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버리고 결국 핵보유국 지위를 향해 분명하게 방향을 잡을 것인가. 2019년은 그 가닥을 잡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엽 이래 적어도 수십만 명의 국민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나가야 했던 역사적 경험을 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의 국민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이다. 이러한 "절대빈곤국가의 질곡"을 벗어나는 것이 이제 지상과제라는 북한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봄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직후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서 그 때까지 북한 국가정책의 금과옥조였던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발전 우선 노선을 통과시킨 것은 그 상황을 반영한다.  

다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중관계와 함께 핵무장이라는 상황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그리고 효과적인 지렛대로 삼을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지속가능한 안전보장과 경제 제재 해제 일정표와 동등하게 맞교환하고 그것을 미국 정치권에서 초당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의 형식으로 확보해내는 한에서만 진정한 비핵화 일정표를 제시해 합의하고 그것을 진실하게 이행할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정상 공동선언의 요체는 명백히 평화협정체제 건설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원칙이다. 이 대원칙이 구체적인 후속협상에서 일관성과 신뢰성 있게 관철되지 않을 때 북한은 비핵화가 아닌 다른 길을 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점은 2019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새 길"을 언급함으로써 더 구체성을 띠기에 이르렀다. 후자의 불행한 상황이 되면 그 책임은 결코 북한에게만 전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점 한미 양국 외교가 함께 명심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에서 "2018년 안에 종전선언"을 하고 이어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간다는 비전에 동참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그 원칙과 미국이 제기해온 다양한 형태의 북한 비핵화 선행조치론 사이에서 때로 스스로 입장이 불분명하거나, 때로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선행조치론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함으로써 말 그대로 "가야 할 노선은 미국이 정하고 한국은 운전만 하는," 그래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미 간 협상에 맡긴 채 방관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행은 북한과 미국이 서로 줄 것과 받을 것을 포괄적이고 동시적으로 규정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8년 9월 정의용 특사단의 2차 방북 때 김정은이 재차 강조한 것 역시 그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정부는 협상 교착의 원인과 해법의 본질에 관해 정면으로 명확하게 언명하는 것을 회피해왔다. 한국정부는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정상공동선언의 기본 취지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북한 비핵화"라는 대원칙에 대한 한국 및 미국 정상들의 동의였다는 사실을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에 명확하게 밝히고 여론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북미협상의 본질이 평화협정 협상의 본격화 여부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하여 명분과 전략적 불가피성을 당당하게 밝히며 설득하는 더 적극적인 외교가 시급하다. 그 핵심은 미국이 사실상의 '북한 선비핵화 요구'가 뒤섞인 '막무가내식 빅딜'을 내세울 때, 한국은 포괄적이면서도 단계적 동시행동의 일정표를 담은 일괄타결인 평화조약 형태의 '합리적인 빅딜'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는 데에 있다.  

굳이 미국 대륙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북한은 이미 2017년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확립할 정도의 핵무장 완성을 달성했다. 그 핵무장을 전쟁의 위협 없이 평화적으로 해체해내기 위해서 한국과 미국이 각오해야 할 협상의 실체, 그 최소요건이 평화협정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숙제를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 요행을 바라며 비켜가려 해서는 안 된다.  

6.12 싱가포로 선언의 정신을 잃어버린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그러한 미국에게 한때나마 가졌던 기대를 이제는 접고 비핵화 의지에서 뒷걸음질치고 있을 북한, 이 둘을 다시 견인해낼 수 있는 궁극적인 접점 역시 평화협정 협상의 본격화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힘이 약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보수적인 행정부라도 미국 정부 안에는 강경파와 협상파 사이에 경쟁과 긴장이 있다. 둘 사이의 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한반도의 당사자인 한국의 선택과 비전이며 이에 기초한 지혜로운 외교적 노력 여부이다. 강경파는 전쟁불사를 외칠 수 있지만, 그들 역시 실행할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비전과 선택은 결코 무력한 것이 아니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결정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 정치권, 언론 그리고 지식인사회가 모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빠져있는, 평화협정을 평화의 결과로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평화협정은 평화과정의 출구가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내고 제도화시키는데 필수적인 '진정한 평화의 입구'이며, 그렇게 활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전쟁의 끝무렵에 맺어지는 평화협정은 분명 이미 힘으로 결정된 평화의 뒤처리 문서이기에, 평화과정의 '출구'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회피하고 더 나아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한 약속 문서로서의 평화협정은 당연히 평화의 '입구'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인식되어야 한다. 

■ 필자주석  

(1) Joel S. Wit and Jenny Town, "What Happened in Hanoi?," 38 North, February 28, 2019. Editor's Column. 

(2)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서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Editorial, "Yes, John Bolton Really Is That Dangerous," By The Editorial Board, The New York Times, March 23, 2018.

(3) SBS 뉴스, 2018.10.6. 

(4) The Associated Press, "North Korea says peace declaration not a nuclear bargaining chip," The Asahi Shimbun, October 2, 2018. 

(5) 김진명, "리용호 '핵무장 일방 해제는 없다: 유엔 총회 연설서 주장, 미국의 선상응조치 요구," <조선일보>, 2018.10.1. 

(6) 2018년 12월 1일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언론 브리핑.

(7) 2019년 1월 1일 김정은 신년사의 핵심을 한 미국 언론이 파악한 것을 보면, 그 실체는 결국 평화조약의 문제였다. David E. Sanger, "Kim and Trump Back at Square 1: If U.S. Keeps Sanctions, North Will Keep Nuclear Program," The New York Times, January 1, 2019.

(8) 2017년 12월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문건은 북한이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대북한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음해라며 반발했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이 화학무기를 4,500톤 정도 보유한 것으로 주장해왔고, 2018년 2월 미 국무부는 김정남 암살 사건을 근거로 북한이 화학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뉴스위크> 등 외신들이 지적하듯, 북한이 무기급 화학무기를 대량생산해 보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한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다. 랜드(RAND)연구소가 2018년 1월 발행한 보고서도 북한의 생화학무기 보유를 주장하지만, 정보 부족으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음을 시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