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명랑한 아이가 처음 세운 결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치’ 도전
‘노동자 정치’로 가는 우여곡절
빛을 발하는 ‘주민 직접정치’
정혜경이 말하는 ‘섬김의 정치’

‘민플러스’가 새 기획 ‘인플러스(人+)’라는 인물인터뷰를 시작한다.

인플러스는 진보민중진영에서 모범을 만들고, 이끌고 있는 인물을 탐색하고 발굴해 그들의 삶과 투쟁을 소개하고, 이 시대 모범적인 진보활동가의 전형적인 면모를 진보진영에 전파하기 위한 기획이다.[편집자]

▲ ‘인플러스(人+)’ 첫 번째 주인공, 정혜경 진보당 경남도당 창원 의창구위원장.
▲ ‘인플러스(人+)’ 첫 번째 주인공, 정혜경 진보당 경남도당 창원 의창구위원장.

학교비정규직(학비) 노동자, 정혜경 위원장은 ‘자신을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주민을 우습게 알면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정 위원장이 하고 싶은 정치는 “주민들이 나를 통해 정치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 마음이 주민에 가닿으면서 “내 인생에 새로운 정치인은 이제 없을 줄 알았는데, 정혜경이 나타나서 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자회사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고, 민주노총 최대 비정규직노조인 학비노조에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한 정혜경 위원장. 어떤 시간을 거쳐 ‘주민 섬김’의 정치인이 되었을까?

밝고 명랑한 아이가 처음 세운 결심

정혜경 위원장의 학창시절, 생활통지서엔 ‘밝고 명랑한 아이’라고 쓰여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매일 신문 사설을 읽었던 여고생이 바로 그였다.

여대생이 되었을 때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노동자를 위해 살겠다고 거리로 나갔을 때

교수님이 불러 그러시더군요

노무사가 되어 노동자를 도우면 되지 왜 이리

어려운 길을 가냐고요

저는 제 낡은 운동화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노동자를 돕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일은 다릅니다

계속해 보겠습니다

_ 시 ‘밝고 명랑한 아이’ 中

그는 스스로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의 전환점(터닝포인트)이 여럿 있었다”고 했다. 그 전환점을 시로 써내려 가기도 했다. 밝고 명랑한 아이였던 그가 ‘주민’밖에 모르는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의 시집 ‘을들의 노래’에 녹아있다.

‘노동자를 위해 살겠다’고,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결심했던 그의 여대생 시절.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든 계기가 선명히 떠오른다.

경상대 법대 재학시절 학교 축제 때 초청 강사로 온 김진숙 지도위원(한진중공업)이 이런 말을 했다. “여대생들 가방 고를 때 디자인 보고 고르제? 근데 그거 고를 때 가방 만드는 사람 생각해 봤나? 너희들하고 똑같은 나이 여공 누이들이 그거 만들다가 손가락 잘리고 다친다. 너희는 그거 생각해 봤나?”

‘그거 생각해봤나.... 그거 생각해봤나.... 수십년간 따라오는 그 목소리’.

‘대학 축제 때’라는 시 안에 담긴 ‘그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그래서 “노동자가 되어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결심이 피어올랐다.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정혜경 위원장은 한국소니전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기 전의 일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는 일’은 같았지만 ‘신분’은 달랐다. 비정규직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재계약을 해야 했다.

“정규직의 상여금은 750%였어요. 김장비까지 줬으니까. 내 옆에 정규직 친구는 월급날만 되면 떡을 돌렸어요. 자기만 월급을 많이 받는 게 미안하다고…. 지금 생각하면 정규직이 월급을 더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하죠. ‘억울하면 정규직 하면 되지, 시험 봐서 취직하면 되지’ 이런 말이 나오는 세상이니까….”

그 역시 2002~2006년까지 5년간 60번의 계약서를 썼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러나 결국 해고 됐다. “그때 ‘비정규직’에 한이 맺혔어요.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정혜경 위원장은 요즈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면 김진숙 지도위원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가방 고를 때 무엇을 보고 고르냐”고. ‘디자인’을 보고 고를 수 있고, ‘브랜드’를 보거나 ‘실용성’을 보고 고를 수 있다. 그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가방 고를 때 가방 만드는 여공들의 노동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학교 급식’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메뉴’가 무엇인지, ‘맛은 어떤지’에 대해선 생각하지만, 급식노동자들의 피땀은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 노동자들은 머리를 끄덕인다.

▲ 2022년, 노동자 직접정치 기자회견에서 정혜경 후보(오른쪽에서 다섯번째). ⓒ학비노조 경남지부
▲ 2022년, 노동자 직접정치 기자회견에서 정혜경 후보(오른쪽에서 다섯번째). ⓒ학비노조 경남지부

한 통의 전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을 받는 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중 최대 조직으로 손꼽히는 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노동조합이 생기고 ‘근속수당 쟁취’를 위해 투쟁하며 정규직과의 차별이 조금씩 줄어드는가 했다. 그러나 차별은 좀처럼 좁혀지기는커녕 그 간격은 더 벌어졌다. 학교급식실에서 영양사, 조리사, 조리실무사 등 모두가 ‘급식’을 위해 일하는데, 월급은 달랐다.

정혜경 위원장은 노동조합의 ‘교섭과 투쟁’으로는 차별을 없앨 수 없고, 정규직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차별을 없애려면, 비정규직 체제를 없애려면, 국회에서 법을 바꾸면 되는데, 왜 우린 이에 도전하지 않을까?” 고민이 생겼다.

우리의 아이들에겐

똑같은 임금 평등한 세상을 물려줘야 합니다

이 우주엔 차별이란 별은 없습니다

차별은 인간들이 만든 쓰레기별입니다 여러분!

_시 ‘한국의 여성노동자 여러분!’ 中

정 위원장은 학교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정치’의 중요성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노조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급식노동자에서 퇴사한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겠다’는 전화다. “일하다 병이 들었는데, 수술과 치료를 계속 받아도 낫지를 않아 한 사람 분의 일을 다 해내지 못해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사직서를 냈다”는 것이다.

일하다가 병이 들었는데

일하다가 다쳤는데

왜 동료에게 미안해야 하나

_시 ‘한통의 전화’ 中

정 위원장이 학비노동자로서 가장 속이 상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자신이 아픈 것보다 ‘동료에게 더 미안하다’는 조합원의 말에 정 위원장의 가슴은 더 아팠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학교나 교육청이 인력을 더 배치해 해결하거나, 사용자에게 산재보장 책무를 명확히 하는 법이 필요해요.” 그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을 확고히 하게 했다.

학교비정규직 조합원 교육시간, 정혜경 위원장은 조합원들과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노조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구조를 바꾸는 사람이 되면 되는데, 왜 우리는 여기에 도전하지 않는가?” 질문이 던져진다. ‘정치가 바꿀 수 있다’라는 말에 조합원들의 눈빛이 확 달라진다”고 했다. 노동조합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조를 바꾸는 싸움’, 정치의 중요성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순간이다.

경남지역 학비노조에 일명 ‘반반운동’이 시작됐다. ‘조합원 반 이상이 진보정당 당원이 되자’, ‘노동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정 위원장은 조합을 만나며 확신에 찬 대화를 한다. “내 몸 닳고 피땀 흘려 일해도 행복하지 않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정치권력을 잡지 않고, 그들이 주는 모이만 조금씩 조금씩 받고 살다 간 우리 정년이 될 때까지도 바뀌는 건 없다. 노조 활동만으론 바꿀 수 없는 세상, 정치권력을 잡아야 바꿀 수 있다”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이 바로 노동자인데, 그들이 중심이 되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계급적 분노와 모순이 가장 집약된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를 위한 정치, 노동의 뿌리를 박은 당 운동은 당연합니다.” 정혜경 위원장이 되묻고 답한다.

경남 학비노조는 6,500여 조합원 중 3천 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진보정당 당원이다.

3%의 의미

정혜경 위원장은 ‘반반운동’을 뛰어넘어 ‘집권운동’을 한다고 했다. 자신을 ‘집권에 미친 자’로 소개하기도 한다. 그 한 발을 내딛기까지 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는 진보당 경남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 예비후보이기도 하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 후보로 출마했다. 출마 제안을 받았을 때, “그때가 첫 번째 시험대”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처음 받은 제안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이전 시기 노동자 후보 출마, 그리고 그 후보를 지지·지원했던 학비 노동자들의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울산 못지않은 ‘노동자의 도시’라는 창원에서도 노동자 후보, 진보정당 후보의 출마가 이어졌다. 경남 학비노조도 후보를 냈다. 당시 조합원들은 속된 말로 ‘몸도 받치고 돈도 내고’ 열성적인 선거 지원을 했지만, 기득권 양당정치 그리고,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던 창원에서 성과는 크지 않았다. 3% 안팎의 득표 결과.

“전국에서 어느 노조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인 활동을 벌였지만, 낡은 선거의 최전성기에 후보로 나서 3%의 지지율을 받았고, 조합원과 간부들에게 ‘이게 우리의 한계인가’라는 생각, ‘패배감’을 안겼던 때였습니다.”

2020년, 노조에서 정혜경을 국회의원 후보로 논의하고 결심하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제 노동자 정치의 길을 가지 않을 거냐, 변화하지 않고 여기서 주저앉을 거냐, 무엇을 위해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인가?” 노조는 치열한 토론을 시작했다.

정혜경 위원장은 그때 생각했다. ‘우리가 민중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건 아닌가?’, 그래서 ‘민중이 열망하는 새로운 정치, 노동자 정치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그리고 ‘우리 조합원, 당원들에게 우리 당이 가장 민중을 사랑하는 당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자’는 목표를 세웠다. 6개월간의 토론이 끝났다.

그렇게 출마한 2020년 총선. 후보가 되어 코로나시대 고통받는 민중을 만나러 다닌 이야기를 매일매일 영상에 담아 조합원, 당원, 주민들과 나눴다. 그리고, 그해 총선에서도 이전 선거 때처럼 3%의 지지율을 받았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민중사랑’의 마음을 남긴 아름다운 선거였다”고 돌아봤다. 당원들 속에서 “그래 우리 당이야말로 누구보다 민중을 사랑하는 당이지”라는 마음이 싹텄다.

“이렇게 행정 할 바에야 내가 하는 게 나아요”

“위원장, 본부장, 지부장 등 노조 대표 역할 한번 해보지 않은 나에게 ‘왜’ 후보 출마 제안이 들어 왔을까” 고민해 본 정혜경 위원장. ‘대중조직(노조)에서 대중들의 요구를 발동시키는 일을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잘한다’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떠올려 봤다.

6개월간 치열했던 토론의 ‘끝’은, 창원 의창구에서 직접 정치 운동을 벌이는 ‘시작’이었다. 노동조합에서의 경험, 정 위원장의 장점은 ‘주민 직접정치’ 운동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창원 의창구엔 ‘도계동 안골 북부순환도로 노선 반대(변경) 투쟁’에서 발휘된 주민들의 힘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주민 직접정치’의 단적인 예다.

창원시가 2004년부터 계획해 추진 중인 도시 내 교통량 순환계획인 ‘북부순환도로 노선’은 아파트 40m 거리에 위치할 예정으로, 공사 시 주민 피해는 물론, 완공 후엔 출퇴근 상습 정체구간을 만들고, 지역발전과 경제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주는 등 문제투성이였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주민간담회, 투쟁 의의 해설, 투쟁방법 결정 등 주민이 주인이 되어 결정하고 주민들이 앞장서 실행해 온 것이었다. 노조에서의 활동 경험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주민들은 홍남표 창원시장을 주민대회에 불러냈고, “주민 동의 없는 노선 추진은 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구두 답변만이 아닌 문서(공문) 답변도 받았다.

정혜경 위원장은 “안골마을 투쟁 승리 요인엔 두 가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투쟁거점’과 ‘주민이 결정하고 실행한 투쟁전술’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투쟁거점으로 삼지 않고, 안골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입구에 천막을 설치했다. “‘고가도로(북부순환도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실체를 보여주고, 여기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천막”이었던 셈이다. 주민들의 의지가 ‘천막’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풍이 불면서 세 번이나 천막이 날아갔다. 그러나 천막은 매일매일 그 자리에 있었다. 또, “주민 설명회, 주민들의 투쟁전술 논의와 합의, 그리고 실행까지 모든 것이 주민이 주체가 되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정 위원장은 말한다.

주민들은 지금 ‘주민대책위원회’ 안에 똘똘 뭉쳐있다. 가가호호 소식지를 받지 않아도, 각 빌라 1층 소식지함을 통해 직접 소식을 나누고, 주민 스스로 결정한 투쟁지침을 이행한다.

정 위원장은 이 투쟁을 거치며 주민의 입에서 “내가 시장할게”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장 기뻤다고 했다. “정치인이 ‘이렇게 해주겠다 저렇게 해주겠다’는 거 못 믿어요. 이렇게 행정 할 바에야 내가 하는 게 나아요”라고 말하는 주민들. 주민 직접정치의 힘이 증명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고 있는 분위기다.

▲ 북부순환도로 투쟁 천막에서 주민과 소통하는 정혜경 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 ⓒ진보당 창원의창구위원회
▲ 북부순환도로 투쟁 천막에서 주민과 소통하는 정혜경 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 ⓒ진보당 창원의창구위원회

정혜경이 말하는 ‘섬김의 정치’

정혜경 위원장이 이루고 싶은 정치는 주민 직접정치, 그리고 ‘섬김의 정치’다. 주민을 섬기고 사랑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여느 정치인들 모두 “지역을 사랑하고 주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정혜경의, 진보당의 ‘주민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질문에 답이 돌아왔다. “기존 정치인은 장마철에 우수관이 철철 넘치고, 주민이 피해를 보고 나서야 현장을 찾습니다. 그러나 주민 사랑은 우수관이 철철 넘치기 전에 주민들의 위험과 피해를 예상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눈’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진보당이 그랬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몇 개월을 땡볕에서도, 비가 오는 날에도 우수관 막힘이 없도록,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사랑을 하면 더 많이 알고 싶어지고, 무엇을 하면 그가 행복할지 늘 고민하게 되잖아요? 의창구 한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사랑이 들키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정혜경 위원장은 주민을 사랑하고, 주민 섬김에 가까이 가고자 뛰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구체적인 대중을, 정기적으로, 깊이 만나면 길이 열린다”는 말. 정 위원장은 긴 시간 전통시장 상인들, 환경미화원 노동자, 새벽 첫차 버스운전 노동자, 기차역 앞 택시노동자, 경로당 등을 많은 주민을 만나왔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시작한 곳도 있다. 그런데, 자주 만나니 정이 들었다. “‘자주 오니까 시장에 활력이 돋는다’는 말부터, ‘안 찍을래야 안 찍을 수가 없네’, 이젠 ‘더 야무지게 해야 당선된다’는 걱정도 들어요. ‘내 인생에 새로운 정치인은 이제 없을 줄 았았는데, 정혜경이 나타나서 달라졌다’는 말도 듣습니다.” 보수 여론이 강했던 시장의 상인들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태어나 단 한번도 남에게 선의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타인에게 존중같은 것도 받아본 적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분도 있었다

진짜 선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진짜 존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_시 ‘새벽을 건네받는 사람들’ 中

정혜경 위원장은 시 ‘새벽을 건네받는 사람들’이 시집 ‘을들의 노래’의 전체 주제라고 말했다. 존중받아야 할 사람, 바로 새벽을 열고 ‘일하는 사람’이 바로 정혜경이 말하는 ‘섬김’의 대상, 정혜경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주민과 함께 정혜경이 가는 길

“한 명의 힘은 작을 수 있지만, 집단으로 뭉쳐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주민들이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 그리고 섬김의 정치를 이어가는 시간 동안 정혜경 위원장도 얻은 것이 있다. 노동조합하며 ‘조합원’ 대중을 만났던 정 위원장은 이제 “내가 힘들 때, 정답을 모를 때, 손 벌려서 만날 수 있는 주민, 정혜경과 함께 할 주민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안골마을에 북부순환도로(고가도로)가 들어서면 긴 시간 공사 피해를 받고, 집값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주민들이 하나둘 이사를 서둘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제 이사를 취소한다. ‘내 힘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고 싶다’는 주민들로 바뀌었다.

주민사랑, 지역사랑은 학비 조합원들에게도 퍼졌다. 6개월의 토론 끝에 ‘우리 당이야말로 누구보다 민중을 사랑하는 당’이라는 자부심을 키워가던 조합원들. 현장에서 벗어나 지역을 둘러보고 쓰레기 줍는 봉사에 열성을 발휘했다. ‘패배감’은 저리 가라, 이젠 ‘콩나물 한 줌’을 사더라도 전통시장만 찾으며 지역사랑을 표현하는 조합원들이다.

“처음엔 ‘노조하면 당을 해야 한다’ 정도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욱 커집니다. ‘섬김 정치’의 길, 주민이 존중받고 권력의 주인이라는 정당함, 그리고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는 결심은 더욱 커졌고, 집권 의지도 더 강렬해지고 있습니다.”

“주민의 힘, 주민 사랑, 사람이 모여드는 창원 의창을 만들고 싶다”는 정혜경 위원장. 그가 다다르고자 하는 직접정치, 섬김의 정치, 집권의 시대가 궁금해진다.

조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