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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3일 수요일

[단독] 군검찰, ‘항명죄’ 구속영장 청구 전날 국방부 측엔 ‘수사외압’ 추궁

 

  • 강경훈 기자 qa@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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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4-01-03 16: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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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1-03 16:46:04
  •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작년 10월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방부 군사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유재은(오른쪽) 법무관리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군검찰이 지난 8월 말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대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바로 전날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을 불러 수사외압 행사 여부에 대해 강하게 추궁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민중의소리’ 취재에 따르면 군검찰은 8월 29일 오후 유 관리관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하면서 박 대령의 수사외압 주장을 토대로 박 대령과 수차례 통화한 경위, 박 대령이 수사외압이라고 느낄 만한 정황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신문했다. 이날 참고인 조사는 오후 6시경부터 시작해 오후 9시까지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군검찰의 이날 조사 내용을 보면 유 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혐의자·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말고 경찰에 기록만 넘기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 개정된 군사법원법을 위반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한 상태에서 신문을 한 정황이 드러난다.

    군검찰은 유 관리관에게 “‘혐의자나 혐의를 특정하지 말고 사건기록 일체를 넘기는 방법’을 수사단장이 따르도록 한 것 아니냐”, “단순히 이첩 방법만 설명할 것이라면 국방부 장관 지시를 받아 수사단장에게 전화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피의자(박정훈 대령)는 법무관리관이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사법원법 취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죄명, 혐의사실을 제외해야 한다고 한 것이라면 직권남용이나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등을 캐물었다.

    유재은 관리관은 구체적인 수사 방향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국방부 장관으로부터는 이첩 보류 지시만 받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외압 행사에 따른 직권남용 소지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죄명과 혐의사실을 특정할 경우 경찰에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군검찰은 유 관리관 주장을 토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회수한 뒤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장성급 지휘관들을 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대장들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군검찰은 “(사건을) 재검토한 (국방부) 조사본부도 특정 인원만 혐의자에서 제외하고 일부 인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죄명, 혐의사실을 특정해 이첩했는데 진술인 주장대로면 조사본부도 전체적으로 혐의자를 다 제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유 관리관은 “조사본부도 혐의자나 혐의사실을 제외하고 기록 자체를 이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사본부에 법무관리관실에서 직접적으로 어떤 지시를 할 수 있는 관계는 없어서 의견을 준 것은 없다”고 답했다.

    군검찰은 유 관리관을 상대로 직권남용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한 바로 다음 날인 8월 30일 항명 혐의로 박 대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날 국방부 측의 직권남용 소지를 인지하고 유 관리관을 조사했던 군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러한 인지 내용을 원천 배제했다. ‘혐의자 및 죄명을 빼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군사경찰(해병대 수사단) 수사 독립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한 지시가 있었다면 불법적인 수사외압의 근거가 되는 반면, 항명죄는 성립되기 어려워진다.

    특히 군검찰은 군사법원에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법무관리관이 피의자에게 ‘혐의사실, 혐의내용을 다 빼라’고 말했다는 점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는데, 이는 참고인 조사에서 “죄명과 혐의사실을 제외한 것이라면 직권남용이나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한 신문 취지와 상반된다.

    군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유 관리관의 행위를 비호하는 취지의 내용을 포함해 박 대령의 항명죄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조목조목 기재한 것과 달리, 정작 공소장에 항명과 관련한 범죄사실을 기재한 부분은 1페이지에 그쳤다. 또한 구속영장 청구서 전체 분량은 40페이지에 달한 반면, 공소장 분량은 3페이지에 불과했다. 이는 영장 내용을 간결하게 하고, 그에 비해 공소장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수사기관의 최근 관행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박 대령 측은 “유 관리관을 조사한 검사는 직권남용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신문 태도가 매우 날카롭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유 관리관의 직권남용 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조사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공소장 분량과 관련해서는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그나마 ‘장관 복귀 후 별도 지침을 받아서 처리하라’는 해병대사령관의 지시사항이 나오는데, 공소장에는 이 내용조차 싹 빼버렸다”며 “(기각된) 구속영장에 준해서 공소장을 자세히 쓰면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으니 공소장을 간단히 쓴 것 같다”고 했다.

    참고인 조사에서 유 관리관을 몰아붙였던 군검찰 이모 검사는 지난달 초 군사법원에서 진행된 박 대령 항명 사건 1회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소장에도 이 검사의 이름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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