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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9일 금요일

<기고> 건축가 강신천의 ‘4일간의 오키나와 평화기행’

“우리가 사는 방식을 존중해주면 된다”<기고> 건축가 강신천의 ‘4일간의 오키나와 평화기행’
오키나와=강신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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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8  14: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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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 일본 오키나와 활동가들의 초청을 받은 이시우 씨의 집회 연설 및 강의에 동행하기 위해서 나는 함민복 시인과 함께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이시우 씨는 오키나와 국제대학교에서 강의하였고 후텐마기지 건설반대집회와 6.23평화시민집회에서 연설하였다. 또한 카데나기지 철수집회와 헤노코기지 건설반대연좌농성에도 참여하였다. 우리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고 일일이 통역하며 세심하게 안내한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한 3박 4일의 일정을 소개한다.
가데나기지는 철수하라!
아침 일찍 스피커와 피켓을 챙긴 니시마네 부부를 따라 집회에 참석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카데나기지 정문 앞에 모여들었다. “집회는 두 시간동안 진행되는데 경우에 따라 약 20명부터 100여 명이 참여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의 의지와 계획에 의해 참여합니다. 이상한 것은 집회가 있는 날에는 들어가는 차만 보이고 나오는 차는 없어요. 아마 미군들이 우리 집회를 의식하는 것 같아요.” 머리와 수염이 백발인 노인이 우리에게 설명했다.
오늘은 30여 명의 참여자들이 확성기와 깃발, 손 피켓을 들고 출근 중인 미군 병사를 향해 소리쳤다. WE DON’T NEED!” 집회에 참석한 우리도 열심히 따라 외쳤다. “CLOSE KADENA BASE!”
  
▲ 카데나기지 앞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기 위해 신호대기 중이던 미군들을 향해 미군은 필요 없다고 소리치고 있다. [사진 - 강신천]
정문 앞에는 경비원들이 시위대를 주시하며 교통을 통제하였고 바닥을 따라 노란 라인이 그어져 있었는데 시위대는 그 라인을 넘어서지 않았다. 나는 사진기를 들고 라인을 슬쩍 넘어 다녔다. 그럴 때마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비요원이 나를 제지하며 ‘옐로 라인’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시마네 씨는 그의 집에서 열린 저녁 환영모임에서 “오키나와에서도 한국에서 일어난 혁명(촛불혁명)이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2006년 퇴임하고 고향인 오키나와에 정착하게 된 부부는 시민들과 협의하여 금요일 아침 미군의 출근시간에 맞춰 열리는 카데나기지 철수를 위한 집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집회는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카데나기지는 대형 폭격기는 물론 F15. F22스텔스를 포함한 전투기와 수송기 등이 수시로 이착륙하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지다. 잔디가 곱게 깔리고 쾌적해 보여 마치 잘 정돈된 공원처럼 보이는 이곳이 사실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가득한 장소다.
“이 마을의 부지 중 83%가 미군기지입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는 나머지 17%의 작은 지역에 살고 있지요. 이곳 지하에는 아마 아시아에서 가장 큰 탄약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통역을 하는 평화 활동가인 오키모토 히로시(沖本裕司)씨는 커다란 기지 한쪽에 밀집된 기형적인 형태의 마을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키나와의 강정마을 ‘헤노코’
헤노코로 이전하는 미 군사기지 건설비용 100%를 일본 정부가 지불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후텐마기지를 확장하려는 진짜 의지의 실체는 미군보다 오히려 일본군인지 모릅니다.”
헤노코의 캠프 슈와브 정문 앞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는 미군기지반대농성캠프가 있다. 길을 따라 하얀 천막을 치고 후텐마를 방문하는 전 세계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오키나와 평화운동의 중심이다.
  
▲ 헤노코로 확장 이전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진 - 강신천]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시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요. 2014년 군용기가 국제대학건물에 추락하는 등 많은 민원이 발생하자 기지를 옮기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전이 아니라 철수하라고 요구합니다. 시민의 70%가 넘어요.” 그들이 옮기려는 기지인 헤노코는 세계적인 희귀동물인 ‘듀공’이 서식하는 곳이며 오키나와의 산호초가 매우 다양하게 자라는 곳이다.
연설에 나선 이시우 씨는 “평화 만들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평화 지키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기에 평화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평화를 강화시키기 위해 실천하다 보면 밖의 평화를 위해 싸우느라 내 안의 평화가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아는 것은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알게 된 것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즐기는 것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체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평화를 즐기는 자는 무적입니다. 우리가 그런 내공을 가질 때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라며 투쟁의 승리를 기원했다.
  
▲ 우리가 방문한 날도 헤노코기지의 거대한 방파제 근처에는 공사 크레인이 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해상시위를 하고 돌아 온 시민들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기지건설 반대 헤노코 캠프에서 기지건설의 부당함에 대해 설명하던 활동가는 미군보다 오히려 일본 정부가 기지 확장을 더 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진 - 강신천]
기반시설 공사가 진행 중인 헤노코 캠프에 방문한 순간 제주의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건설 당시 정부는 민군복합항이라고 주장하며 건설하였지만 현재 민간인을 통제하고 있는 강정해군기지 앞에도 헤노코캠프와 같은 ‘강정마을캠프’가 있다.
헤노코 바다엔 새로 조성한 방파제가 하얗고 길게 늘어져 있다. 천막엔 그 동안 싸워 왔던 기록들이 전시되었지만 에메랄드빛으로 가득한 바다를 가로지른 방조제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슬픔이 묻어 있었다.
국제대학 강의
  
▲ 오키나와 국제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시우 씨.(오른쪽에서 두 번 째) [사진 - 강신천]
‘이시우 초청강의’는 의제를 발표하고 발표가 끝날 때마다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오키나와 방문의 주요 이유였던 이시우의 강의 의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근래에 일어난 매우 중요한 새로운 흐름을 핵을 보유한 김정은의 의도에 의한 것일 수 있으며 이를 ‘공격적 평화주의’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공격적 평화주의는 아직까지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행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트럼프라는 정치 이단아가 나타나 갑자기 일어난 실수가 아니고 “미국 중심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던 힘의 균형이 조금씩 약화되는 과정이며 트럼프로 대변되는 자국의 이익에 민감한 정부가 들어선 미국이 취한 중요한 변화”라고 말한다.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3국 정상(김정은․트럼프.문재인)의 협상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유라고 말한다. 평화를 위해서 핵을 만들었다는 김정은의 태도를 읽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시선이라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주장하는 유엔사령부의 실체가 유엔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모순투성이의 억지 주장일 따름이며 사실은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미국패권주의의 불편하고 부끄러운 모습일 따름이라고 말하였다. “유엔의 어느 자료에도 유엔이 한반도전쟁에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했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당시 한반도 전쟁에 참여한 미군은 사령관이던 맥아더에 의해 유엔군사령부라고 명명되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한다.
강의를 들은 참가자들은 집중했고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질문이 이어졌다. 유엔사령부가 “맥아더사령관의 셀프작품”이라는 말이 통역될 때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격적 평화주의’로 표현된 생소한 이론이 잘 진행되어 한반도의 전쟁이 종결되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오키나와의 군비확장문제도 멈추기를 기대한다며 이렇게 극적 반전이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오히려 부러워했다.
오키나와는 500년 동안 류큐왕국으로 있었고 줄곧 한반도와도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1872년 일본의 작은 현으로 재편될 때부터 일본의 작은 섬이 되었다.
35회 국제반전오키나와집회
  
▲ 국제반전오키나와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사진가 이시우 씨와 통역중인 평화 활동가 오오무라(大村)씨. [사진 - 강신천]
2018년 6월 23일 아베총리는 오키나와 평화공원추모식에 참여하였다. 그가 지나가는 길엔 경찰이 일렬로 서 있었다. 많은 경찰들 사이로 깃발을 들고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민단체들은 아베 수상의 참배는 물론이고 그의 오키나와 방문 자체를 반대했다.
“아베는 미국의 편에 서서 오키나와를 기만하는 이중적이고 비겁한 정치인이에요 그가 정말 아시아의 평화를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베 수상을 태운 차량들은 철통 경비 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 일행은 건너편에서 격렬하게 경찰과 대치하던 다카하시 토시오(高橋年南)씨, 도미야마 마사히로(豊見山雅裕) 씨와 함께 오키나와평화집회에 참석하는 버스에 올랐다.
혼백의 탑 광장에서 사람들은 나무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조용한 노래, 조용한 연설 그리고 조용한 집회는 세 시간가량 이어졌다. 집을 설계하다 이제는 평화를 설계한다는 건축가, 50년을 시민사회를 위해 헌신한 일명 레지스탕스 목사 부부, 폴란드에서 유학 온 유학생, 조선인 교포4세, 한국전과 월남전과 오키나와 전쟁을 모두 경험한 늙은 미군도 집회에 참석하였다.
연설에 나선 이시우 씨는 “김정은 위원장은 핵을 폐기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고 말하며 “핵을 평화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인해 “변화되기 시작한 남북미 관계를 비롯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관계속에서의 일본의 입장과 평화운동의 과제를 평화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은 마지막 하루를 문학평론가인 아키라(玉代勢 章)씨 집에서 지냈다. 나하시에 있는 오래된 작은 집이다. 아키라 씨는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혼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우리와 소통하였다.
그는 한국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김원일 씨의 작품 ‘어둠의 혼’을 스스로 번역해 읽으며 받은 감동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을 하는 아버지를 저주하고, 나는 아버지 죽음보다 배고픈 것이 더 서럽고,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어요” 남북대결을 핑계로 만들어 낸 민중의 비극적 풍경이다. 이 잔인한 풍경을 설명하던 그는 울고 말았다. “울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울어요.”
  
▲ 우라소에 성을 방문한 일행. 맨 왼쪽부터 타마요세 아키라 씨.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이시우. 함민복. [사진 - 강신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민중을 억압하던 거대권력의 실체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회복 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하였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삶을 폐허로 만든 이데올로기의 벽도 그저 몇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손을 잡으면 사라질지 모른다.
국가를 움직이는 거대한 폭력이 사실 작은 기만에서 시작된 것이며 동족을 가르는 비극을 만든 공포의 실체가 우리와 동일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사실 앞에 서 있다. 오랫동안 미군과 일본 정부 즉 제국주의와 맞서 싸워 온 오키나와 사람들도 다만 “우리가 사는 방식을 존중해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북, 공업폐설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비누생산기술을 개발

북, 공업폐설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비누생산기술을 개발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8/06/29 [13: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매체 웹사이트 ‘메아리’는 “최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순천탄부물자생산사업소의 일꾼들과 노동계급이 공업페설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비누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생산공정을 확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

▲ 북 매체 웹사이트 ‘메아리’는 “최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순천탄부물자생산사업소의 일꾼들과 노동계급이 공업페설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비누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생산공정을 확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

▲ 계면활성제 분자. 친수성(머리), 소수성(꼬리) 부분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

▲ 계면활성제 분자. 떼를 제거하는 원리.     ©

북 매체 웹사이트 ‘메아리’는 “최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순천탄부물자생산사업소의 일꾼들과 노동계급이 공업폐설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비누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생산공정을 확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인터넷 소식에 따르면 매체는 “이들이 생산한 비누를 분석해본데 의하면 기술적지표들이 가성소다로 만든 비누와 같이 표준값에 도달하였으며 거품가와 세척력은 더 높다는 것이 확증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공장에서는 카리비누생산공정의 통합조종체계를 완비하는 한편 인민들의 기호와 수요에 맞는 기능성비누들을 개발하기 위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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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7일 수요일

[이 언론이 사는 법] ⑦ 진실탐사그룹 셜록

[인터뷰] 박상규 기자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는 반드시 반응한다"윤수현 기자 | 승인 2018.06.28 08:45
편집자주 = 경제에 위기가 없던 적은 없다.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저널리즘은 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호황은 있어도 저널리즘 호황이라는 말은 없다. 다른 영역이기 때문일 게다. 방금 전까지 저널리즘은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터널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널리즘 위기는 질문의 방식을 묻는다. 정해진 결론은 없다. 미디어스는 질문의 방식을 묻고 있다고 판단되는 언론에 대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의 방식은 다양하며 다양함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박상규 기자는 원 직장인 오마이뉴스를 나온 후 더 유명해졌다. 국가권력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가짜 살인범’으로 살아온 희생자들을 조명한 ‘재심’ 시리즈를 기획했다. 변호사, 전직 경찰 등과 함께 기획한 재심 시리즈는 스토리펀딩에서 5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모금했다. 그가 취재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가짜 범인 희생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중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배우 정우 주연의 영화 <재심>으로 재탄생해 호평을 받았다. 오마이뉴스를 나온 후 무직자 신분에서 이뤄낸 일이다.
박상규 기자가 기획한 <재심 시리즈> 스토리펀딩(위)과 해당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재심(아래) (스토리펀딩 홈페이지, 영화 포스터 캡쳐)
박상규 기자는 재심 시리즈의 성공을 기반으로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창간했다. ‘왓슨’이라 불리는 후원자가 셜록에 후원하고, 후원금을 기반으로 사회에 감춰진 진실을 찾겠다는 포부로 만든 언론이다.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로 유명한 이명선 기자(전 채널A 기자)를 영입했다. 광고 없이 탐사보도, 르포만으로 지속성을 가지는 언론을 꿈꾸고 있다. 
창간 후 1년이 지났다. 박상규 기자는 “너무 순진했고, 이상적이었다”라고 고백했다. 2017년 2월 셜록을 창간할 당시 꿈꿨던 ‘1년 후의 셜록’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0여 명의 기자를 꿈꿨지만 기자 수는 창간 때보다 줄었다. 자금 상황도 획기적으로 좋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박상규 기자는 “창간 때 가진 초심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많은 언론계 종사자가 “후원자 모델의 언론이 생존할 수 있을까, 좋은 기사가 회사의 지속성을 담보해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셜록을 지켜보고 있다. 이에 미디어스는 22일 셜록의 박상규 기자를 만나 셜록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상규 기자는 “상황이 어려운 건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는 반드시 반응한다”고 확신했다.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미디어스)
Q.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어떤 매체인가
A. 시대에 역행하는 매체다. (웃음) 짧은 동영상, 색다른 형식으로 독자의 눈길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셜록은 긴 호흡의 기사를 쓴다. 이를 통해 잘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찾는 탐사보도를 지향한다. 진실과 사실은 속보로 전달이 안 된다. 
사건의 이면과 맥락을 분석해야 진실이 보인다. 진실이 드러나면 시민이 숙고할 수 있고 권력이 바뀔 지점이 만들어진다. 셜록은 그런 측면에서 진실을 보도하려는 매체다.
Q. 왓슨(후원자)이 셜록을 특별하게 만든다
A. 왓슨은 <셜록>에 자발적으로 구독료를 내는 독자를 뜻한다. 종이신문으로 따지면 구독자 개념이다. 물론 왓슨에게만 따로 제공되는 기사는 없다. 다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터디 모임 기회, 기자들의 강의 수강권을 준다. 독자가 셜록에 후원하고, 우리는 후원금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Q.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A. 왓슨의 후원금과 스토리펀딩 모금액 외에는 수익 모델이 없다. 아직 셜록의 치수가 작으므로 현재까지는 무리가 없다. 뉴스타파나 셜록처럼 후원자가 언론에 돈을 기부하는 구조가 언론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가 반응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
Q. 실제로 독자가 좋은 기사에 반응하고 기꺼이 돈을 내는가 
A. 그동안 독자들이 기사에 돈을 내지 않은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자가 기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후원하려는 마음이 생겨야 가능한 일이다. 후원자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언론사가 있다면 “당신들이 그만한 가치의 기사를 쓰고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Q. 셜록이 탄생한 지 1년이 넘었다. 회사 운영에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다
A. 우선 운영을 하면서 여러 실수가 잦았다. 경험이 없었고, 경영자 정신이 부족했다. 쉽게 생각한 경향도 있었다. 막연하게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심 프로젝트’처럼 잘된 경험을 두고 오만함에 빠진 것 같다. 순진했고,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고 생각한다. 1년 동안 어려웠던 것은 우리가 좋은 기사를 생산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 
상황이 어려워도 기자들의 연봉은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한다. 적은 급여를 주고 기자를 부리는 것은 기사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올해 열심히 해서 작지만 강한 매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셜록이 지향하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Q. 셜록이 집중하고 있는 취재원은 누구인가
A. 셜록이 중앙권력이나 고급 정보에 접근하는 건 제한적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사실 기성 언론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협소하다. 사대문 안에 있는 권력자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는데, 일반 시민과는 크게 상관없는 주제다.
그래서 셜록은 그동안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게 우리의 경쟁력이다. 시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는 소외된 피해자들에게 있다.

Q. 셜록은 스타트업 매체면서도 기존 언론의 문법을 이용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A. 우선 회사의 크기가 작다. 그렇기에 큰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위기가 온다면 고전적인 방법을 써서 돌파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기사를 써서 독자의 인정을 받는 방법 말이다. 좋은 기사가 셜록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 거고,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다. 저널리즘은 가장 바보 같은, 미련한 행동을 할 때 좋은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사가 돈을 벌기 위해 궁리를 하는 순간 돈을 벌지 못한다.
실제 데이터가 입증하기도 한다. 스토리펀딩 자료를 보면 좋은 기사를 썼을 때 후원자와 펀딩이 늘어났다. 새로운 이야기나 기존 매체에 없던 사실이 합쳐져서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사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반응한다. 
Q. 한국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A. 많은 언론이 욕을 먹고 비판을 받는다. 기자들이 오만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시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보에 접근하는데, 언론은 자신들이 정보를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시민을 하찮게 보고, 갈등과 대립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그 갈등은 정리가 될 것이다. 언론과 기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관적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땐 상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Q. 언론이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못 주는 것 같다
A. 많은 언론이 종이신문의 방법론에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간 종이신문은 시민이 원하는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언론이 비판을 받고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이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가령, 많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스토리펀딩에 도전한다. 하지만 스토리펀딩에서 기자가 성공하는 기획은 별로 없다. 기자가 독자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육하원칙에 맞춰 빨리 쓰는 능력은 있지만, 독자를 감동하게 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Q. 설득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A. 기성 기자들의 글쓰기 방식이 변해야 한다. 현재는 종이신문 방식의 글쓰기가 기자들에게 주입되어 있다. 스트레이트는 좋은 방식이지만, 종이신문의 유산이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세상에 있는 진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진실을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복잡한 사안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있어야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 짧게 쳐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Q. 본인의 글쓰기 능력이 탁월하기에 읽히는 글을 쓰는 게 아닐까
A. 맞다. (웃음) 나도 콤플렉스가 있다. 오마이뉴스는 신문·방송에 비교해 초라해 보였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나의 가장 큰 힘은 콤플렉스에서 나왔다. 체계적인 기자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처음부터 딱딱한 기자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의 글쓰기가 답답했겠지만,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기에 사안에 맞는 글쓰기가 가능했다. 앞으로 종이신문·방송사 기자도 자유로운 글쓰기를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 그쳐선 독자가 반응하지 않는다. 
Q. 언론의 위기가 왔다고 한다
A. 언론의 위기는 기술의 발전 때문에 찾아오는 게 아니다. 기자가 저널리즘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기자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저널리스트의 사명과 기본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술의 변화는 변수이지 핵심이 아니다.
Q. 2019년 6월의 셜록은 어떤 모습일까
A. 현실적으로 왓슨이 늘었으면 한다. 셜록 운영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말이다. 스토리펀딩 모금액은 회사 운영의 변수다. 핵심은 왓슨이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에 필요한 기사를 써야 한다. 근거 없는 이상향보단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싶다. 우선 좋은 기사를 쓰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Q. 향후 취재 계획은 뭔가
A. 재심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제주도는 올레길, 낭만적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제주도에는 간첩이 많다. 진짜 간첩이 아니라 국가가 조작한 간첩 말이다. 육지가 아닌 변방이라는 이유로 많은 간첩이 만들어졌고, 피해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다.
제주도에는 일본으로 밀항을 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에서는 유학생이 간첩 누명을 썼다면, 제주도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밀항한 서민이 누명을 썼다. 그걸 취재하려 한다.
Q. 언론에 당부의 말 한마디만 해달라
A. 최근 일부 시민의 세력화가 눈에 보였다.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비판하면 금방 돌아서더라. 일부 언론은 그 과정에서 휘청이기도 했다.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게 언론의 책무이지만, 마냥 따라가는 것이 언론의 정도는 아니다. 진실을 듣는 건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언론은 세상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언론은 우상을 파괴하는 사람이지, 우상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Q. 시민, 그리고 독자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한다
A. 기자를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아직 훌륭한 기자들이 많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진실을 찾고,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기자들이 존재한다. 셜록도 그런 기자가 되기를 바라고, 노력한다. 진실을 찾고,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이 되겠다. 많은 후원과 구독 부탁드린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오! 필승 코리아’…독일 뺀 전세계가 한국 승리 즐기고 있다

등록 :2018-06-28 10:28수정 :2018-06-28 11:45

멕시코 누리꾼 “미안해 친구 우리가 빚짐” 잉글랜드도 ‘환호’
미 라디오 방송 “대통령도 밀어내고 독일도 밀어내고…대단”
국내 누리꾼 “앞으론 닥치고 볼게요” “2002년이후 처음 울어”
폭스스포츠 브라질 계정에 올라온 멕시코 국기와 태극기 합성 짤방
폭스스포츠 브라질 계정에 올라온 멕시코 국기와 태극기 합성 짤방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전 대회 우승국이자 피파(FIFA) 랭킹 1위 독일 축구대표팀을 2:0으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자 독일을 제외한 전 세계 누리꾼들이 합성 짤방을 쏟아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국 포털 사이트는 ‘독일 하이라이트’ ‘멕시코 반응’ 등 축구와 관련된 실시간 검색어가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전 세계 트위터에는 한국 축구에 대한 놀라움과 월드컵에서 유독 강했던 독일 축구에 대한 몰락을 즐기는 반응들이 쏙쏙 올라왔다.
28일 오전 한국어 트위터에는 “이걸로 월드컵 우승했다고 쳐도 돼요(리**)”, “우린 16강을 원한 게 아니야. 이런 축구를 보고 싶었던 거야(마**)”, “2002년 이후로 축구 보면서 처음 울었다(갑**)”, “앞으로 축구 볼 때 닥치고 보겠습니다(kwan****)” 등의 반응이 나왔다. “우리는 망해도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한국인들의 힘”이라는 우스개도 있었다.
그동안 비판을 받아온 신태용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위로도 있었다. 한 누리꾼(방방***)은 “그래도 신태용 감독 마음 고생 많이 했을 건데, 마지막에 기적 같은 유종의 미를 거두셨네요.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적었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멕시코 언론 누리집에 올라온 ‘고마워, 한국’이라는 한국어. PEKOPA 누리집 갈무리.
멕시코 언론 누리집에 올라온 ‘고마워, 한국’이라는 한국어. PEKOPA 누리집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한국이 독일을 이긴 덕분에 F조 예선 스웨덴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0:3으로 대패하고도 16강에 진출하게 된 멕시코 누리꾼들은 한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트위터를 쏟아냈다. “바텐더, 한국 친구들에게 한잔씩 돌려(pf****)”, “케이팝 논스톱으로 틀어라(mui*****)”, “나 방금 서울 서포터즈로 가입함(thin****)”, “S. Korea 고맙습니다(101****)” 등의 반응이다.
멕시코 국기에 태극기나 독일전에서 두 번째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의 얼굴을 합성한 트위터도 인기다. 또 한 멕시코 누리꾼은 멕시코가 스웨덴에 지는 바람에 한국의 16강 진출이 좌절된 것에 대해 “미안해 친구 우리가 빚짐(cpt*****)”이라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브라질 누리꾼이 “프랑스는 어디에 있지? 브라질은 어디에 있지? 그렇다면 한국은? 마음속”이라는 내용으로 올린 합성 사진. 트위터 갈무리.
브라질 누리꾼이 “프랑스는 어디에 있지? 브라질은 어디에 있지? 그렇다면 한국은? 마음속”이라는 내용으로 올린 합성 사진. 트위터 갈무리.
국가명을 ‘한국’으로 바꾼 브라질 지도.
국가명을 ‘한국’으로 바꾼 브라질 지도.
폭스스포츠 브라질 트위터 계정
폭스스포츠 브라질 트위터 계정
안방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1:7로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던 브라질 누리꾼들도 독일의 승리를 즐거워하며 각종 합성 짤방을 만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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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종주국이고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에서 항상 독일 축구에 지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기록했던 잉글랜드 팬들도 독일 축구의 패배를 즐거워했다. 영국의 한 스포츠바에선 한국의 승리로 독일 축구의 탈락이 확정되자 마치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과 같이 환호하는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경기에 대한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 앵커 멘트도 눈길을 끌었다. 한 누리꾼(지*)이 올린 트위터에는 “미국 라디오: 와,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요. 대통령도 밀어내고 독일도 밀어내고 하여간 재밌는 나라입니다”라고 전했다. 이 글에 대해 한국 누리꾼들은 “그래, 재밌는 나라에 산다” “안보 위기도 밀어내고 있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반면,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은 세상 잃은 표정으로 한국의 승리를 축하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독일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도 “친구들이 세상 잃은 표정으로 출근중”, “오늘은 일본인이라고 말하고 다녀야 겠다” 등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인스타그램 갈무리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국과 독일 경기 당일 오전에 발행된 독일의 신문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한국을 ‘KO’시키겠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결국 패배하면서 누리꾼들에게 조롱당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 경기 당일 오전에 발행된 독일의 신문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한국을 ‘KO’시키겠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결국 패배하면서 누리꾼들에게 조롱당하고 있다.
한편, 일부 멕시코 누리꾼들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사진을 올려 한국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멕시코러트위터 일각에 자신의 눈을 양쪽에서 손으로 잡아당겨 가늘게 만드는 방식으로 동양인을 희화화하는 사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누리꾼들은 “그만해라”, “몰라서 하는 게 아니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아직도 양심수가 감옥에 있다”

815 대사면 추진위 발족, ‘사면복권 신청접수’ 사이트 개설
“우리가 말하는 사면은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 남용한 자들에게 저항하다가 선의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제도다. 대통령이 우리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바란다.”
▲ 박래군 인권운동가(인권중심 ‘사람’ 소장)의 사회로 27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박승렬(목사, NCCK 인권센터 소장), 강문대(변호사, 민변 전 사무총장), 박석운(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김명환(민주노총 위원장), 이태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등 종교계, 노동계 및 시민사회 인사 30여 명이 참석했다.
오는 8.15광복절 ‘양심수’ 대사면을 목표로 시민사회가 나섰다. ‘이명박·박근혜 국가폭력 피해, 생존권 침해 815 대사면 및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가 27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처 입은 곳에서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며 “‘815 대사면’ 닻을 올린다”고 선포했다.
이날 회견에서 ‘815 대사면 추진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양심수가 감옥에 있다”며 “명박산성에 용기있게 맞서던 유모차 엄마, ‘삶을 가압류하지 마라’ 흐느끼며 손배가압류에 항거하던 노동자, 철거와 노점의 현장에서 생존권을 빼앗겼던 빈민,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네티즌, 환경파괴와 개발에 맞서던 시민, 세월호 진실의 편에 섰던 시민, 소녀상과 함께 했던 학생,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던 청년을 비롯해 공작정치와 종북몰이의 희생양으로 탄압받았던 사람들, 감옥에 갇힌 이 땅의 모든 양심수들에 대한 사면, 복권”을 주장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역사와 정의를 바로 잡는 것이 사면”이라며 “왜 한상균이 총궐기를 했는지, 왜 이석기가 자주통일과 평화를 얘기했는지 정부가 아무런 고민이 없다”며 개탄했다.
‘815 대사면 추진위원회’는 피해 국민이 직접 자신의 사면을 촉구하는 ‘당사자 운동’, ‘직접 행동’의 방식으로 펼친다는 계획 아래 ‘사면복권 신청 접수 사이트(https://goo.gl/N7imM3)’를 개통했다. 이후 7월 중순께 접수된 전체 명단을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고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한반도에 평화의 새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평화' 이 두 글자는 오랫동안 우리 모두의 꿈의 단어였습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말인지, 또한 얼마나 가슴 떨리는 말인지 새삼 절감하는 시기입니다. 촛불이 정권을 바꾸고 나아가 한반도의 운명도 바꾸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촛불이라고 우리는 감히 말합니다. 촛불을 들었던 우리 모두는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평화를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봅니다.
적폐정권 9년은 많은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습니다
명박산성에 맞선 유모차 엄마, 손배가압류와 정리해고에 항거하던 노동자, 철거와 노점의 현장에서 생존권을 빼앗긴 빈민, 정권을 비판하던 네티즌, 환경파괴와 개발에 맞서던 시민, 세월호 진실의 편에 섰던 시민, 소녀상을 지키던 학생, 역사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던 청년들. 그리고 공작정치와 종북몰이의 희생양으로 탄압받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 모든 분들은 적폐 정권 9년이 아니었다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을 국민들입니다. 촛불 시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분들을 모두 즉각 사면하고 아직도 감옥에 있는 분들을 석방해야 합니다.
815 대사면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앞둔 용기있는 결단입니다
올해 2018년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입니다. 지난날의 매듭을 풀어야 비로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 정부의 잘못으로 인한 오랜 상처를 안고서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벌금형이든, 징역형이든 형벌의 경중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진실의 편, 정의의 편, 양심의 편, 인권의 편, 민주주의의 편에 섰다가 국가권력으로 인하여 피해를 받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815 대사면 추진위원회'는 대통령에게 요구합니다
적폐 정권 9년 동안 각종 국가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노력하다가 사법처리된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등 기층민중, 그리고 그에 연대하다가 처벌받은 모든 국민들에 대하여 사면복권을 요구합니다. 적폐정권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빼앗겼던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촛불정부의 의무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지연된 정의를 815 대사면으로 이제는 실현해야 합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앞당기기 위해 대통령의 결단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2018년 6월 27일
815 대사면 추진위원회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제주 실습생 사망 7개월, 자식 잃은 아버지는 지금...

[죽음의 그후 ①]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이민호 군 이야기
2018.06.28 01:08:36




제주도, 한 고교실습생이 프레스에 짓눌려 사망했다. 7개월이 지났다. 이제 누가 관심을 갖고 있을까.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LG유플러스 여고생 자살, 제주 음료회사 사고... 연달아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과정에서, 그리고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학생이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조기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 계획을 발표하면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애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선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재학 학생의 반발이 거셌다.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앨 경우,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교육부는 두 달 후인 2018년 2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 방안(안)'을 발표한다. 문제가 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게 아닌, 보완·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안전이 확보된 경우에 한해 겨울방학 전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즉, 안전 등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한 뒤, 이러한 기업에 한해서만 학기 중 취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선도기업으로 인정되지 않는 기업은 겨울방학 이후, 즉 학기가 끝난 뒤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직업교육을 위한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다시 제2의 LG유플러스, 제주 음료회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프레시안>은 과거 특성화고 현장실습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취업했다가 사고를 겪은 학생들의 유가족을 만났다. 그들이 생각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제도, 그리고 특성화고 시스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연합뉴스
큰아들 따라 특성화고 간 작은아들 

박정숙(51) 씨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오랜만에 큰아들을 본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버지인 이상영(56) 씨도 마찬가지다. 연신 큰아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운동도 잘하고 활발한 아들이 든든하단다. 큰아들은 지난 3월, 경상북도 구미에 있는 부대에 입대했다. 아들을 보지 못한지도 석 달이 다 돼 간다.   

석 달 만에 큰아들을 만나는 날은 한국 대 멕시코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큰아들은 밤에 치킨을 먹으면서 경기를 볼 생각에 이미 마음은 부대 밖으로 나와 있다"며 어머니 박정숙 씨가 웃었다. 첫 외박인지라 먹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듯 하단다. 

박 씨 부부는 제주도 토박이다. 나이가 들어 서울로 상경했다. 박 씨는 제주도가 섬이라 답답해서 싫었다. 바쁘게 움직이고 변화무쌍한 서울을 동경했다. 아버지 이상영 씨는 서울에 스무살 넘어 돈 벌러 올라왔다 이내 제주도로 내려갔다. 서울의 복잡함이 자기와 맞지 않았다. 

아내인 박 씨는 이후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결심했고, 그렇게 박 씨 부부는 제주도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러 일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자연히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 씨 부부 둘 다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가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일찍 철이 들었던 듯했다. 큰아들은 어느 날 집에 와서는 특성화고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했다. 3년 동안 수업료도, 기숙사비도 무료라고 했다.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큰아들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아빠, 나 괜찮아' 이 말 한마디 남기고는 집을 떠났다. 집안 사정을 생각해서 자기 진로를 선택한 큰아들이 기특하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해가 지난다고 쪼그라든 형편이 펴질 리는 만무했다. 큰아들에게는 한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활발한 성격의 형과는 달리 얌전하고 조용한 동생이었다. 큰아들은 뭐를 시켜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작은아들은 그 반대였다. 자기가 뭐라도 먼저 하려 했다. 심성이 고왔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그런 작은아들이 중3이 됐을 때였다. 2학기가 됐음에도 아이가 진학 관련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참다못해 작은아들에게 진학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아버지로서는 어렵게 꺼낸 질문이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쿨'했다. "형 따라 갔어." 

집안 사정을 잘 알기에 부모와 상의 없이 큰아들을 따라 특성화고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큰아들을 보낼 때 꽂힌 비수가 다시금 아버지의 가슴을 후볐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특성화고에서의 생활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조경과를 전공으로 한 고3 큰아들이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부터였다. 전공과 상관없는 일자리였다. 한창 귤을 딸 시기에는 귤을 따고 나르는 일만 죽어라 했고 그런 시기가 지나니 성산항, 서귀포항 등에서 갈치를 운반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다. 일도 힘들었지만, 근로시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큰아들은 어차피 군대에 갈 생각이었다. 일한 지 1년이 조금 안 된 시기였다. 군대에 가야 하기에 그만둔다고 회사에 통보했다. 하지만 회사는 계속 다니라고 했다. "바쁜 시즌인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는 책망이 돌아왔다. 작은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때는 그즈음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에 사고 진상규명과 후속조치를 요구하던 중 이민호 군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갈비뼈가 다쳤는데도 출근하라는 회사 

형과 같은 학교에서 원예를 전공한 작은아들은 형과 마찬가지로 고3이 되면서 현장실습을 나가야 했다. 당시 운송업을 하던 아버지는 과거 자신의 거래처인 음료공장을 아들에게 추천했다. 회사도 건실하고 직원들을 잘 돌보는 듯했다. 착각이었다. 작업실장이 바뀌면서 아버지가 알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변해있었다.  

애초 음료회사는 자동차학과 전공만 갈 수 있었지만, 지게차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가능했다. 마침 작은아들은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해둔 상태였다. 아들이 다니던 학교는 졸업하기 위해 최소 1개의 자격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속한 원예과에는 딱히 취득할만한 자격증이 없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 굴착기 자격증을 따라고 조언했다. 

마침 학교에 굴착기 장비가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비는 있으나 이를 가르쳐줄 교사가 없었다. 그나마 지게차는 배우는 게 가능했다. 

작은아들 학교에서 총 다섯 명의 학생이 현장실습으로 아들과 같은 음료회사에 취업했다. 이중 작은아들을 포함해 3명만이 지게차 면허가 있었다. 공장에 가자마자 지게차 운전 테스트가 있었다. 작은아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명은 면허는 있으나 운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작은아들만 생산라인에서 포장된 음료를 지게차로 나르는 업무에 배정됐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작은아들은 일하는 게 무척 고되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사회생활이란 그렇다"며 "배운다 생각하고 조금만 더 버텨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다. 하루 14시간 일한 날도 비일비재했다. 주말 근무도 해야 했다. 현장실습생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는 것은 불법이다. 

한 번은 작업장에서 기계를 고치다 떨어져 갈비뼈를 다치는 일도 발생했다.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회사에서는 작은아들을 찾았다.   

"작은아들이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는데도 회사에서는 계속 업무에 나올 것을 독촉하는 전화를 해댔다. 작은아들이 없으면 공장 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고작 일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는 현장실습생에게 그정도 능력이 있나 싶었다. 아들에게 일 못 나간다고 하고 끊으라고 했다. 그렇게 했는데, 다음 날 우리 부부가 일하러 나간 사이, 회사에서는 다시 나오라는 전화를 해댔다." 

결국, 작은아들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회사로 가야 했다. 회사 공장장이 몸소 아들을 데리러 집 근처까지 온 결과였다.   

그렇게 몸을 '갈아' 넣어 한 달 손에 쥔 돈이 250만 원. 그 돈으로 작은아들은 100만 원을 부모님 생활비로, 나머지 100만 원은 자기 적금을 부었다. 그리고 50만 원은 자기 생활비로 사용했다.   

아들의 죽음에 자책, 또 자책하는 아버지 

그렇게 일을 하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작은아들은 공장 컨테이너벨트 위에서 작업하다 갑작스럽게 벨트가 역방향으로 작동하는 바람에 쓰러졌고, 동시에 멈춰 있던 프레스기가 작동하면서 그만 압사 당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손쓰기엔 치명상을 당했다. 열흘간 병상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작은아들은 1년 전인 2017년 11월 19일,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사망한 고(故) 이민호 군이다.  

아들 사고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탓했다. ‘지게차를 잘 다루지 않았다면 그렇게 됐을까', '음료공장에 취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자식이 죽었을까', '집안 형편이 좋았다면 그렇게 됐을까',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제주도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됐을까' 자책하고 또 자책하는 아버지였다. 

아들 죽음의 원인을 밝혀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들은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애초 아들에게 일을 가르쳐준 사수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아들에게 자기가 하던 일을 가르쳐 주고는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석 달 전부터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회사에 했다고 한다. 기계 결함 때문이었다. 자기가 다루는 기계에 문제가 있다며 수리를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회사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자기가 다칠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사표를 썼다고 했다. 황당한 점은 그렇게 석 달 동안 회사는 이 직원에게 새 직원 뽑을 때까지 기다라고 하더니, 그 새 직원이 현장실습생인 우리 아들이었다."

2년 동안 일해 온 직원이 나간 자리를 고작 1주일 교육을 받은 아들이 맡은 셈이다. 더구나 선임은 기계결함의 수리를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만뒀다. 그런 현장에 아들이 홀로 일했던 것이다. 아들이 결함이 있는 기계를 만지다 그런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의심하는 아버지다.  

게다가 공장 내 아들의 작업공간은 학생들만 일했다. 사고가 난 뒤, 아들을 발견한 것도 아들의 친구였다. 현장 관리자가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믿지 못하는 아버지다. 

"사고가 났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하는 사람이 현장 관리자 아닌가."

하지만 관련해서 만족할 만한 수사결과나 관련부처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공장 내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고, 죽은 아들은 말이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 지난해 12월 6일, 오전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열린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의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 후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사고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아들이 죽고 난 뒤, 공장은 운행을 중단했다. 재가동을 하려면 안전이 담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사고 발생 이후, 노동부 관계자는 우리에게 공장을 재가동할 경우, 현장을 방문하도록 해서 안전한지를 체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느 날 소리소문 없이 공장은 운영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관계자에게 따졌더니 알릴 의무가 없다며 (약속을 지킬지는) 자기가 판단한다고 하더라."    

이민호 군의 추모비 건립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으로 다시는 아들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주지역공동대책위 등에서는 제주교육청에 추모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학생을 관리해야 하는 교육청에서 제대로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그렇기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에서 추모비를 교육청 앞에 세우려 했다. 하지만 교육청에서는 그곳에 추모비가 세워지면 선례가 된다고 반대했다. 너도나도 교육청에 추모비를 세우려 하기에 결국, 교육청은 '비석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는 자기네들은 우리 아들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하기에 계속 그런 사고는 날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있나. 더구나 교육부는 이후 산골짜기에 있는 교육원 등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추모비를 세우자고 한다. 어떻게든 아들의 죽음을 숨기고 싶은 것이다." 

허탈하다 못해 부아가 치밀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큰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작은아들 사고 이후, 몇 달 동안 자기 방 안에서만 살았다. 끼니도 홀로 방에서 때웠다. 그러다가 예정된 날짜에 맞춰 입대했다. 어머니 박 씨는 큰아들이 군대를 연기하고 심리치료라도 받았으면 했다. 하지만 큰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생활하는 게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버지 이 씨는 작은아들 사고 이후 당뇨 때문에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일도 그만두고 작은아들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자다가도 울화가 치밀어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아들의 죽음 이후, 그래도 뭐라도 바뀌었으면 하는데 전혀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게 못내 답답하다. 아버지는 곧 2학기가 되면, 작은아들과 같은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까 노심초사다. 

"우리 아들이 현장실습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표준협약서 등을 다 작성했다. 하루 7시간 일하고, 시간 외 근무를 추가로 못하게 돼 있다. 그런데 그러면 뭐하나. 현장에서는 안 지켜진다. 관리·감독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사고가 나면 관련 부처는 서로 책임을 미룬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굳이 현장실습을 계속 진행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붙인 조건이 '현장실습 선도기업'에 한해서라고 한다. 궁금한 게 그러면 선도기업은 누가 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업에서 아이들이 실습을 하다 다치거나 죽으면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지금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나는 묻고 싶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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