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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일 일요일

홍영표의 오만과 열린우리당의 추억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최저임금 개악, 문재인의 선택은?

국회가 개악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편안'은 '홍영표법'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최저임금법 개악을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과격한 언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노동계 안팎에서 퍼지고 있다. 

객관적 데이터 없이 '경험과 직관'을 근거로 강행된 이 법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을 저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거나 시행규칙 혹은 시행령을 통해 규율할 세세한 내용을 법률에 못 박음으로써 '입법 과잉' 문제 또한 일으키고 있다.  

홍영표 "노동부 장관 날리겠다" 
 

더욱 나쁜 것은 노동조건 변경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의 집단적 권한에 타격을 가하고, 사용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 존중'에 침을 뱉었다는 사실이다.  

홍 원내대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대화를 통해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정하도록 해달라는 민주노총 간부를 향해 "누가 봐도 불합리한 건 고쳐야지 그냥 갈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최저임금위원회로 다시 넘겨주면 6월에 논의를 끝낼 수 있다는 요청에는 "내가 보기엔 민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다. 양보할 줄 모른다"고 날을 세웠다. 

최저임금법 개악에 항의하는 이들에겐 "문재인 찍었느냐 (...) 민주노총이 10년간 못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우리가 1년 만에 했다"는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 관계자를 향해서도 "이렇게 일할 거면 옷 벗어라. 원내대표직을 걸고서라도 노동부 장관 날리겠다"고 윽박질렀다.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기자회견이 5월 30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가운데 민주노총 울산본부 조합원들이 최저임금법 통과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직격탄 맞은 사회적 대화  

필자가 보기에, 최저임금법 개악에서 드러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결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공들인 사회적 대화 흐름을 궤도에서 이탈시켰다는 사실이다. '촛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노사정 관계 수립을 원하던 조합원의 열망은 피어나기도 전에 짓밟힐 위기에 처했다.  

홍영표 원내대표와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개혁'에 나서겠다고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개혁에는 추진 동력이 필요한 법. 최저임금법 개악을 계기로 사회적 대화가 좌초되면 조직 노동이 개혁 전선에서 이탈하게 된다. 

이 경우 정부 여당은 재벌-관료 동맹에 압도당하고, 개혁 드라이브는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 결말은 '100년 정당'을 꿈꾸었으나, 창당 4년도 안 되어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진 열린우리당의 도돌이표다.  

'실용' 열린우리당의 몰락  

따라서 '민주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6.13 지방선거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152석으로 과반을 넘겼던 열린우리당의 몰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맞선 시민 저항으로, 민주노동당 10석을 합해 개혁진보 성향 정당은 162석을 차지했다. 탄핵을 주도했던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원내 2당으로 내려앉았고, 탄핵을 선동했던 추미애의 당시 민주당은 9석으로 몰락했다. 

열린우리당은 '새롭고 깨끗한 정치 실현', '중산층과 서민이 잘사는 나라 구현',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 건설', '한반도 평화통일'을 4대 강령으로 내세웠지만, 어느 강령 하나 제대로 실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못했다.  

처음부터 '실용'이라는 허명에 갇혀 개혁진보 노선에 거리를 두었다. 국회 과반을 장악했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힌 집권 여당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만족했다. 결국 개혁 진보를 향한 역사적 과제를 망각하면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재벌의 중소기업 착취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중산층과 서민이 더불어 잘 사는 따뜻한 나라를 공약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 강화와 부자 증세가 이뤄져야 했다. 또 재벌과 부유층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깨야 했다.  

하지만 재벌 개혁 시도는 이뤄지지 못했다. 초대 경제부총리 김진표가 취임 일성으로 '법인세 인하'를 내세웠다. '관료와 삼성경제연구소'에 포위된 열린우리당 의원 다수는 재벌 체제의 코털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재벌-관료 동맹이 강화됨에 따라,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재벌 입맛에 맞는 정책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게 '의료 민영화'다. '의료를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정책이 '신성장 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다. 

"무식하니 용감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재벌-관료 동맹에 포섭됨에 따라 노동권 강화와 노동조건 개선을 목표로 하는 노동개혁 정책도 자취를 감췄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훼손하는 노동법 개정에 소극적이던 노동부는 인력 파견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늘리는 법안을 적극 추진했다.  

비정규직 사용에서 사유를 억제하고, 기간을 제한하고,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에서 각종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요구는 무시됐다. 

당시 열린우리당 이목희 정책조정위원장은 "(여권이 추진 중인) 비정규직법은 국제적 수준의 법"이라 우겼고,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여당 안 반대 세력에 대해 "무식하니 용감하다"며 짜증을 냈다.  

문재인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비극적 죽음 이후에 출간된 자서전 <운명이다>(노무현·노무현재단 지음, 유시민 편집, 돌베개 펴냄)에서 국민의 정부가 수용한 노동시장 유연성 정책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반성했다.  

"사용자 쪽에서 이 무기를 휘둘러 시장 분배를 악화시켰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 제도를 악용해 실질임금을 깎았다.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교섭력은 현저하게 약해졌다.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어지면서 자영업이 팽창했다. 그러자 공급과잉으로 인해 자영업이 어려움에 처했다."  

"시장 분배가 지나치게 불균등하면 국가 정책을 통해 교정해야 한다. 조세와 복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 법인세 인하는 대기업의 당기순이익을 키워 주었지만 설비 투자와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국가 재정을 떼어내 부자들에게 나누어준 셈이다." 

박근혜가 승승장구하던 무렵인 2014년 11월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정권 시절 이랜드 비정규직 파업 사태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카트>(부지영 감독) 시사회에 참석해 말했다.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자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사용자들이 사내하청 등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참여정부가 서민들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 

최저임금법 개악, 문재인의 선택은?  

생의 마지막 날에 극우세력이 가하는 비열한 공세를 견디며 자신의 집권기를 반성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절반의 성공도 못 되는 절반의 미완성"이라 평가하고, "당정 분리, 독선과 아집, 무리한 의제, 언론의 흔들기와 관료의 무력화, 말씨와 품위"를 자기 오류로 지목했다. 

"취임하자마자 국회 과반수를 가진 한나라당이 법인세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 거부권을 행사하면 처음부터 국회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이 빚어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  

2003년 한나라당이 주도해 국회에서 의결한 법인세 인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소회다. 노 대통령은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국회를 선택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재벌 수중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소득 분배는 악화되고,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은 몰락했다. 결국 개혁은 좌절하고 정권은 실패했다.  

'실용'을 추구하는 홍영표 원내대표가 장악한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 승리를 빌미로 최저임금법 개악에 앞장섬으로써 재벌-관료 동맹에 놀아난 '실용' 열린우리당의 도돌이표가 될 우려를 낳고 있다. 

이제 개악된 최저임금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결정에 그 운명이 달려 있다. 민심의 바다에서 노동자 서민과 함께 과감하게 나아가는 촛불 정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수구파가 장악한 국회와 대립할 수 없다며 첫판부터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개혁 동력을 상실한 노무현 정권의 도돌이표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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