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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31일 토요일

노엄 촘스키, 강정 무력 행정대집행 중지 박대통령에 친서


뉴스프로 창간 1주년 기념 중ㆍ고교생 국제 영문번역 경시대회
뉴스프로 | 2015-01-31 12:53:2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노엄 촘스키, 강정 무력 행정대집행 중지 박대통령에 친서 -70년 전 폭력의 역사 제주도에서 재현되는 듯
-박 대통령 사회 화해와 통합, 인권과 정의 존중 약속지킬 것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MIT 교수가 한국의 박 대통령에게 강정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 중단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한국정책연구소 연구원(Fellow, Korea Policy Institute)인 시몬 천 정치학 박사가 뉴스프로에 전했다.
시몬 천 교수는 영국 출신 평화 운동가와 노벨 평화상 후보였던 엔지 젤터 등을 포함한 여러 국제학자들도 1월 31일 예정된 해군의 강정마을 행정대집행 반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편지를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촘스키 교수는 4만명 가까이 희생된 제주 학살 사건을 언급한 후 70년이 지난 오늘 비극과 같은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 하다며 강정에서 수천명의 용역과 경찰을 동원하여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려는 행정대집행을 중단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다음은 노엄 촘스키 교수의 서신 전문과 번역이다.
Honorable President Park Geun-hye:
As you know, between 1948 and 1949, approximately, 40,000 residents in Jeju Island were massacred by South Korean army which was at the time under the control of the U.S. Interim Military Government. The massacre left more than 50 percent of homes in Jeju Island destroyed, 40,000 residents seeking refugee in Japan, and survivors, descendants, family members with tragic memories and trauma. More than 70 years later, the tragic and violent history seems to repeat in Jeju Island.
I have learned that on January 31, 2015, more than 1000 scabs and police force supported by the Korean army are expected to forcefully disband villagers and activists who have been engaging in a peaceful 24-hour protest in front of the construction site of the new housing for 3000 navy personnel. We respectfully request that you stop the planned attack on Gangjeong villagers by the Korean army and police. You had promised a departure from the iron-fisted policies of your predecessor, declaring your intention to lead the nation based on a policy of social consensus, respect for human rights, and justice. We hope that you keep your promise.
Please stop the planned attack on Gangejong villagers on January 31st based on humanitarian grounds.
Respectfully,
Noam Chomsky
친애하는 박근혜 대통령님:
아시다시피 1948년과 1949년 사이, 40,000명 가까운 제주 도민들이 당시 미국 임시 군사 정부하의 한국군에 학살되었습니다. 그 학살은 50 퍼센트가 넘는 제주 도민들의 주택을 파괴 했고, 40,000 도민들을 피난민으로 일본에 이주하게 했으며, 생존자와 자손들, 가족들에게 비극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70년 지난 오늘, 비극과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 합니다.
1월 31일 한국군 지원을 받는 1,000명이 넘는 용역과 경찰들이 3,000여명의 해군과 가족들을 위한 새로운 주택을 건설 현장 앞에서 24시간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정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을 막아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통령님은 과거의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화해와 통합으로 국민들을 이끌고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켜 주길 빕니다.
인도적인 원칙에서 1월 31일 강정 주민들에 계획된 공격을 중지해주십시오,
노엄 촘스키

포커스 아시아, 박근혜 지지율 20%대 추락 보도
-레임덕의 현실화
-네티즌들의 준엄한 비판 생생히 전해

박근혜의 지지율은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인 30%선도 붕괴할만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의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일본은 지지율 30%선 붕괴를 타전했다.
일본 포커스 아시아는 28일 박근혜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음을 한국 이데일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한 레임덕이 현실화 되었다고 전하면서 “당연한 결과다”, “4월 16일이 지나가면 10%대가 될지도” 등 박근혜에 대한 민심이반을 드러내주는 네티즌들의 생생한 반응을 상세히 전했다.
박근혜 집권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음을 감안해 볼 때 일본 언론의 냉담함은 박근혜 정권의 자업자득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포커스 아시아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Ohara Chizuru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8CmS1g
 レームダックが現実化・・朴槿恵大統領の支持率が20%台に転落、韓国ネットは「当然の結果だ!」 「支持率がここまで低い政権は…」

레임덕의 현실화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 한국의 SNS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지지율이 최저인 정권은 …」
FOCUS-ASIA. COM 1月28日(水)15時14分配信
아시아 포커스. 1월 28일(수) 15시 14분 배포
28日の韓国・イーデイリーによると、朴槿恵大統領の支持率が就任後初めて20%台に落ち込んだ。
28일 한국 · 이 데일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20 %대로 떨어졌다.
世論調査機関リアルメーターの調査によると、26、27日に全国の成人1000人を対象にした調査の結果、朴大統領の支持率は29.7%となった。朴槿恵大統領の支持率は昨年までは40%以上で推移してきたが、今年に入って急落、ついに20%台となった。
여론 조사 기관 리얼 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26, 27일 전국 성인 1000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9.7%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까지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 급락, 마침내 20% 대를 기록했다.
一方で、不支持率は62.6%と過去最高を更新している。イーデーリーは、朴大統領が任期を3年残した段階で早くも「レームダックが現実化」と伝えている。
한편,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62.6%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데일리는 박 대통령의 임기를 3년 남긴 시점에서 이미 「레임덕의 현실화」라고 전했다.
これに対し、韓国ネットユーザーからも朴大統領に手厳しいコメントが寄せられている。
이에 대해 한국 네티즌들도 박 대통령에게 준엄한 비평을 가하고 있다.
「当然の結果だ!ロクに成果もあげず。公約も守らずに!」
「당연한 결과다! 제대로 된 성과도 없고. 공약도 지키지 않고!」
「4月16日が過ぎれば10%台あるかも」
「4월 16일이 지나가면 10%대가 될지도」
「増税。無い福祉」
「증세. 없는 복지」
「慶尚道の人口が多すぎるのが問題」
「경상도의 인구가 너무 많은게 문제」
「高齢者は放っておこう、クソッ」
「노인은 건드리지 말자. 제발」
「この辺で辞めなされ。貴女がいつも口にしたがる国民こそが望んでいる。そもそも貴女は大統領の器では無かった。お疲れ様。降りなさい。もう…」
「이쯤에서 물러나세요. 그대가 항상 입에 달고 있는 국민들이 희망하고 있다. 원래 그대는 대통령의 그릇이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려 오십시오 이제 …」
「朴大統領はマインドが腐っている。失政続きの2年間が立証している。もう何も望まないし、退陣決断が答えだ。さもなきゃ、国民が力づくで青瓦台から引きずり出そうか?」
「박 대통령은 마인드가 썩어 있다. 계속되는 실정 2년이 이를 입증한다. 더 이상 아무 미련두지 말고, 퇴진 결단만이 해답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힘을 합쳐 청와대에서 끌어내야 되겠습니까?」
「キム秘書室長・側近3人衆を切れば支持率回復します。もう決断して。国民を捨てるか、側近3人衆を捨てるか」
「김 비서실장 · 측근 3인방을 경질하면 지지율은 회복합니다. 이제 결단하세요. 국민을 버릴것인지, 측근 3인방을 버릴것인지」
「支持率がここまで低い政権は過去に例が無いな…鉄板の支持率50%後半台を2年で半分まで落とした朴槿惠政権の威厳…それもすべて親父の支持率だったろ…全然ダメ」
「지지율이 여기까지 낮은 정권은 과거에 예가 없는데 … 콘크리트 지지율 50% 후반대였던 것을 2년반 만에 떨어뜨린 박근혜 정권의 위엄 … 그것도 모두 아버지의 지지율일 것이다 … 해답이 안 보인다」
「この大統領は支持層を裏切る変わった気質の持ち主で、トンデモ人事が特技!!!」
「이 대통령은 지지층을 배신하고 입장을 쉽게 바꾸며, 황당한 인사가 특기 !!!」
「本人はまた誰かのせいにするさ~~~」
「본인의 잘못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
「親日派=大手保守メディア3社=政経癒着で続いてきた、財閥に協力する政治勢力・既得権による勢力強化など…これらの歴史の積み重ねが、国中に不正腐敗をはびこらせ、原則や正義より非常識のまかり通る社会を作った。弾劾せねば」
「친일파 = 주요 보수 언론 3사 = 정경 유착으로 이어져 온 재벌에 협력하는 정치 세력 · 기득권에 의한 세력 강화등 … 이러한 역사의 축적으로. 역대 부정 부패중 가장 심하며, 원칙이나 정의보다 비 상식이 난무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탄핵해야」

뉴스프로 창간 1주년 기념 중ㆍ고교생 국제 영문번역 경시대회
지난해 3월 3일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와의 인터뷰로 첫 뉴스를 내며 창간한 미국소재 비영리 외신전문 언론기관인 뉴스프로가 창간 1주념 기념 행사로 중ㆍ고등학생 국제 영문번역 경시대회를 개최합니다.
그간 뉴스프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독어 등의 외국어 기사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번역해 정치, 사회, 경제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보는 외국의 시각을 독자들께 제공해왔습니다.
뉴스프로 번역기사를 이용해 외국어 공부를 한다거나 가족들의 대화로 이용한다는 소감을 독자들이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창간 1주년을 맞아 뉴스프로는 특히 청소년 독자들의 영어 학습을 돕고 격려하는 취지에서 국제 영문번역 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런 번역을 경험으로 많은 우리 청소년들이 직접 외신을 찾아 읽으며 국제 뉴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가자격은 전세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최우수작과 우수작 각각 한 편을 선정해서 상금과 상장을 드리며 최우수작은 뉴스프로에 올려 소개됩니다.
1. 경시대회 일시2015년 2월 22일 오후 7시 – 2015년 2월 23일 오후 7시 (미 동부).
2015년 2월 23일 오전 9시 – 2015년 2월 24일 오전 9시 (한국).
2. 참가신청 
2015년 1월 30일 – 2015년 2월 20일 오후 9시 (미 동부)/2015년 2월 21일 오전 11시 (한국) .
신청서는 https://thenewspro.org/?p=10441 의 신청하기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필수사항을 모두 기입하신 후 학생증 복사본을 첨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신청서가 접수된 후 접수확인 이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3. 대회 진행번역할 영문글이 2월 22일 오후 7시 (미 동부)/ 2월 23일 오전 9시 (한국) 이메일로 발송이 되며, 번역글의 마감시간은 24시간 후가 됩니다. 번역문은 완성 후 이메일(news@thenewspro.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번역문을 받은 후에 확인 이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4. 심사 기준
원문에 충실한 정확성과 한글의 자연스러움을 봅니다.
5. 당선작 발표
2015년 3월 3일 오후 9시 (미 동부), 2015년 3월 4일 오전 11시 (한국).
6. 상금
최우수작 1인 500 달러
우수작 1인 300 달러
* 상금은 페이팔로 보내 드립니다.
단 참가자의 번역문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당선작을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타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이메일(news@thenewspro.org)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09 

IS, 두번째 일본인 인질 고토 ‘살해’ 영상 올려

등록 : 2015.02.01 07:58수정 : 2015.02.0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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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유카와 참수에 이어 고토도 참수 주장
일본 정부 “격렬한 분노”, 미국 정부도 “강력 규탄”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47)씨를 참수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1일(한국 시각) 오전 올렸다. 영상에서 고토씨는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의 옆에 복면을 하고 있는 남성은 앞서 여러 서방 인질 살해 영상에 등장했던 ‘지하드 존’과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2015.2.1 / AP 연합뉴스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47)씨를 참수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1일 인터넷에 올렸다. 지난달 24일 고토씨와 함께 붙잡고 있던 또다른 일본인 인질 유카와 하루나씨를 참수했다고 밝힌 지 8일 만이다.
IS는 한국시간 이날 오전 5시께 고토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살해됐음을 보여주는 1분 분량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AFP와 NHK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일본 정부에 대한 메시지’라는 영어 문자로 시작하는 영상에서 고토로 추정되는 남성은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의 옆에 복면을 하고 칼을 든 남성이 서서 일본 정부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여러 서방 인질 참수 영상에 등장했던 ‘지하드 존’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영국 남부 억양의 영어로 “너희는 이슬람 칼리파 국가의 권위와 힘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부주의한 결정 때문에 이 칼은 겐지뿐만 아니라 너희 국민을 계속 겨냥하게 될 것”이라며 “일본의 악몽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고토씨가 살해된 이후 모습을 담은 정지 화면이 등장했다. 영상 왼쪽 상단에는 IS의 홍보부서가 성명 등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로고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테러 행위가 재차 발생한 데 대해 격렬한 분노를 느끼며, 단호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또 아베 총리 주재로 관계 각료 회의를 소집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버나뎃 미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현재 영상의 진위를 확인 중”이라며 “IS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IS는 지난달 20일 일본인 유카와씨와 고토 씨 등 2명의 영상을 공개하며 72시간 안에 2억달러를 주지 않으면 이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일본 정부가 몸값 요구에 응하지 않자 IS는 지난달 24일 고토 씨를 내세워 유카와 씨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9일 일몰까지 사형수 사지다 알리샤위와 고토씨를 교환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생포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IS는 이날 고토 참수 주장 영상에서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않았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출신인 고토씨는 1990년대 도쿄에서 ‘인디펜던트 프레스’를 설립한 후 분쟁지역 취재에 천착해온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그는 작년 10월 말 자신에 앞서 IS에 붙잡힌 유카와 씨의 정보를 얻고, IS가 장악한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도하고 싶다는 말을 현지인 가이드에게 남긴 뒤 시리아로 들어갔다가 실종됐다.
(도쿄=연합뉴스)

한파 속 주말 세월호 촛불.. “진실 인양하라” “끝까지 밝혀줄게”

“진상규명 아직인데 농성장 철거? 국민이 지켜달라”한파 속 주말 세월호 촛불.. “진실 인양하라” “끝까지 밝혀줄게”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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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31  20:56:41
수정 2015.01.31  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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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시민들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서북청년단의 ‘세월호 농성장 철거 테러’를 막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31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백여명의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 장갑과 목도리, 핫팩 등으로 무장을 하고 “진실을 인양하라”, “끝까지 밝혀줄게” 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 ⓒ go발뉴스(나혜윤)
이날 토요 촛불문화제는 ‘서북청년단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라는 짧은 강연으로 시작됐다. 앞서 서북청년단은 31일 자정을 기해 광화문 농성장을 철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강연에 나선 이동훈 전 우리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서북청년단은 46년 서울에서 결성된 단체로,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이승만과 미 군정 세력을 등에 없고 조직됐다”며 “경성방직공장 테러, <동학란> 공연장 다이너마이트 투척 등 온갖 백색테러를 일으켰던 단체”라고 서북청년단을 설명했다.
이 전 연구원은 “김구 선생 암살과 4.3 사건에서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폭거를 저질렀다”며 “이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국민에게 공포를 주어서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게 아닐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로 ‘가만히 있으라’ 이것을 원하는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라는 말을 했다”며 “70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지 않고 오늘 끝까지 남아 이 사회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힘을 모아달라”고 시민들에 호소했다.
올해 졸업하는 단원고 8기 졸업생들은 ‘끝까지 밝혀줄게’ 라는 피켓을 들고 무대에 올라 안산부터 팽목항까지 세월호 인양을 위한 도보행진에 나선 유가족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원광현 학생은 “이번에 도보행진 참가하면서 유가족분들을 만나 뵈었는데 더 챙겨주시고 농담도 하시면서 저희를 아껴주셨다”며 “유가족들의 반응이 어떨까 망설이시는 분들 망설이지 말고 다같이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행진에 관심을 촉구했다.
또한 이날 문화제에서는 ‘엄보컬과 김선수’,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노래패 소리결’ 등이 공연을 펼쳤다.
노래패 소리결은 무대에 올라 “참사 200일이 지나는 동안 변한 것도 없고 슬펐던 봄 여름에 시청 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던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며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 같아 현실적인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공연을 기획했다”고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촛불을 머리 위로 높게 들고 흔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하루 빨리 진상규명이 될 수 있기를 염원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수원에서 온 40대 여성은 ‘go발뉴스’에 “춥지만 유가족들이 인양을 위해 행진을 시작한 소식을 듣고 작은 마음이라도 표현하고 싶어 광화문에 나왔다”며 “이 광장을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켜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서울 광진구에서 온 한 대학생도 “실종자 수습을 위해 인양은 꼭 이루어졌으면 한다”며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국가가 한명의 국민일지라도 어떻게 책임을 지는 지 꼭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요 촛불문화제가 마무리되자 시민들은 ‘가족도보행진과 함께하는 광화문 달빛행진’에 나섰다.
앞서 지난 26일 세월호 가족대책협의회는 지난 26일부터 세월호 실종자 수습을 위한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안산을 출발해 진도 팽목항까지 530여 km 길이의 이번 도보행진은 내달 14일 팽목항에 도착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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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원탁회의 거리에서 '정권 퇴진'외쳐


오는 2월 28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 예정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1/31 [22:3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민주수호 1천인 원탁회의 참가자들이 유신부활을 막아내자며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 1,000 여명이 현시국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로 규정하고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민주수호 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는 NCCK 조헌정 목사함세웅 신부안병길 양심수후원회 회장정동익 사월혁명회 회장류경원 6.15 합창단 운영위원장 등이 제안자로 참여했다.

서울시민 원탁회의는 3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오는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오는 28일 서울 시민들과 함께 대규모 시국대회를 연다고 밝혀 대정부 투쟁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 향린교회 조헌정 담임 목사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민중의 생존권과 통일인사를 탄압하는 박근혜 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제안자인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이대표 의장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부자 감세를 하면서 봉급 생활자들에게는 세금을 전가해 살기 힘들다면서 남북관계는 대결로 치닫고 있다.”고 정책 실종을 비판했다.

이창복 상임대표 의장은 민주수호운동이 서울로부터 시작하여 전국으로 번져가길 바란다.”며 대정부 투쟁에 함께 할 것을 호소했다.

NCCK 조헌정 화해평화위원장은 대표자 제안 연설을 통해 생명과 평화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박정권 아래에서는 땅에 떨어졌다.”며 박근혜 정권은 평화와 통일을 외치는 인사들을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고 있다반생명반평화 정권에 맞서 싸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의소리 백운종 대표는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과 기무사를 비롯한 정부의 거의 모든 기관이 총체적으로 개입해 부정 당선되었다.”며 역사는 예측 가능하지 않을 때 일어섰다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대정부 투쟁에 떨쳐나서자” 목소리를 높였다.
▲ 천도교 수운회관 본당을 가득 메운 1천인 원탁 회의 참가자들이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통합진보당 변호를 맡았던 이재화 변호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은 또 다른 종북 몰이라면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찌라시 엉터리 판결이다헌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을 철회하고 다시 재판을 열어야 한다.”고 헌재의 결정을 비난했다.

통일이야기 공연에 참여했다가 종북으로 몰려 구속당한 희망정치 포럼 황선 대표의 남편인 윤기진 선생은 통일이야기 공연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대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폭탄 테러의 피해자인 황선대표를 구속했다황선 대표는 구속 되면서 페이스북에 단 줄을 써달라고 요구했다내용은 이번 구속은 종편방송과 검.경을 앞세운 정부의 청부 구속이다’”라고 말해 황선 대표 구속 뒤에 정부가 있음을 확인했다.
▲ 1천인 원탁회의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거리 행진에 나섰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제안자 발언에 이어 자유 토론 시간에는 노동자주부철거민청년들이 나서 민주수호 서울시 원탁회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기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자고 결의했다.

원탁회의 참석자들은 회의 후 촛불을 들고 천도교 수은회관부터 행진을 시작해 을지로를 거쳐 청계광장까지 행진 한 뒤 마무리 집회를 마치고 해산했다.

방송통신대 총장 임명 거부된 류수노 후보

"총장 임기 첫 날, 교육부 공문 한 장에 죄인됐다"

15.01.31 19:39l최종 업데이트 15.01.31 19:3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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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수노 방송대 총장 후보.
ⓒ 류수노
류수노(59)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농학과 교수의 삶은 지난해 9월 29일 이후 크게 변했다. 당초 이 날은 류수노 교수가 방송대 7대 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검정고시 출신인데다 방송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첫 번째 총장의 탄생이라는 스토리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그날 오전 10시 30분께 교육부는 방송대에 몇 줄짜리 공문 한 장을 보냈다. 류 교수를 총장으로 임용 제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제청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류 교수는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고 말했다. 공문에는 그가 총장으로 왜 부적합한지 나와 있지 않았다.

류 교수는 집으로 돌아갔다. 칩거 생활을 했다. 학내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집에서 물 한 잔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짧은 시간에 살이 5kg 빠졌다. "한 순간에 죄인 신분이 됐다"면서 "음주운전 한 번 하지 않고 파출소 한 번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문을 두드렸지만, 부적합 사유를 알려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탓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결국 류 교수는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에 교육부의 임용제청 거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2일 법원은 류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류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재판을 끌고 가면 무슨 실익이 있느냐"면서 "교육부가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답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 있는 방송대 학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청와대에서 광우병 사태 시국선언 물었다"

방송대는 지난해 4월 새 총장을 뽑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류수노 교수를 포함해 5명의 후보가 나섰다. 세 차례의 토론과 후보자 심사 과정이 있었다. 학내·외부 위원 50명이 참여하는 총장임용후보자 추천위원회 투표에서 류 교수는 과반이 넘는 31표를 받았다. 방송대는 한 달에 걸친 연구윤리 검증을 거쳐, 류 교수를 총장 1순위 후보자로 교육부에 추천했다.

- 그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나.  
"그렇다. 9월 초로 기억한다. 사정조사팀이라는 곳에서 여러 차례 내게 전화했다.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제가 낸 서류 내용을 토대로 여러 질문을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청와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실히 대답했다. 그랬더니 '오케이, 오케이'라고 했다."

- 청와대 쪽에서는 2008년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우병 사태 당시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사회 퇴행을 우려하는 교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사정조사팀에서 이와 관련해 물었고, '내가 하는 학문은 진보나 보수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다, 난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의 일이고 문제 될 것 같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 9월 29일 교육부는 임용제청을 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7대 총장 임기 시작일 전날까지 소식이 없었다. 당시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잦았기 때문에, 결재가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인수인계를 받았다. 총장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는 첫 날, 공문이 내려온 것이다. 부적합 사유가 없으니, 해명하고 싶어도 해명할 수 없었다. 학내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얼마 전 교수회에서 '내가 키가 작고 못생겼다거나 학력이 부족하고 세련되지 않았다는 부적합 사유를 내놓는다면, 수용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서 "그만큼 답답하다"고 전했다.

"교육부, 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 내지 않았다"

류 교수는 결국 교육부 상대로 소송을 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로부터 미운 털 박히는 게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았고 떳떳했다,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대학의 자율권을 위해 싸워 이름을 남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장이 교육부 쪽에 임용제청을 거부한 관련 증거를 내라고 했다. 교육부 쪽 변호인은 없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서류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임용제청 여부를 심의할 때 쓴 자료가 있지 않았겠나. 설마 백지를 앞에 두고 심의했겠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법원은 교육부가 어떠한 근거와 이유로 임용제청하지 않았는지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행정절차법 23조 1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모든 국민이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는 헌법 25조와 대학의 자율성을 규정한 헌법 31조 4항을 거론했다. 판사 출신인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는 뼈아픈 판결문이다.

특히, 김현규 공주대 총장 후보자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내,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김사열 경북대 총장 후보자도 소송을 냈다. 류 교수는 "법원에서 헌법을 언급했다"면서 "교육부가 교육을 책임지는 부서답게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해놓고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느냐"고 지적했다.

-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육부는 이미 세 차례나 졌는데…. 대법원에 간다고 해도 결과가 뻔하지 않겠나? 교육부는 그렇게 국민의 세금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또한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서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총장 선거를 다시 한다면 학생들 등록금을 사용해야 한다. 지금 혼란도 큰데, 더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 누가 책임지려고 하나."

- 임용제청 거부를 두고 정치적인 이유 탓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으로,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 미스터리다. 한국체육대는 4명의 총장 후보자가 낙마한 끝에 새누리당 전직 의원이 후보자가 됐는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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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임용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7일 방송대에서 교육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임용 비상대책위원회

"박근혜 대통령, 학내 혼란 알고 있나"

- 방송대 캠퍼스에 교육부를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많이 보인다. 동문과 학생들이 격앙돼있다.
"재학생과 동문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5만 명이 총장 임용 제청을 요구하는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들었다. 1972년 방송대가 개교한 후 졸업생만 58만 명이고, 현 재학생은 14만8000여 명에 달한다. 졸업식 때 총장대행의 졸업장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마저 격에 안 맞는 행동하면 되겠나."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하늘 아래 비밀이 어디 있겠나. 언젠가는 그 사유가 밝혀질 것으로 본다. 초조해하지 않고, 논문을 쓰고 정상적인 연구자의 길을 가겠다. 또한 당당한 총장 후보자로서 법적 대응을 하면서 우리 학교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 이번 일은 정상의 비정상화다. 방송대를 비롯해 국립대 여러 군데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박 대통령 지지도 20% 대로 추락"

"박 대통령 지지도 20% 대로 추락"<한국갤럽>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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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30  11: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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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대통령 지지도 추이. [자료출처-한국갤럽]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지지도가 20%대로 추락했다. '소통' 문제와 '증세' 소동이 주 원인으로 거론됐다.
30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27~29일 전국 성인 1,009명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질문한 결과, 29%는 긍정 평가했고 63%는 부정 평가했으며 8%는 의견을 유보했다(어느 쪽도 아님 3%, 모름/응답거절 5%).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지난 주 대비 1%p 하락, 부정률은 3%p 상승, 3주 연속 취임 이후 긍정률은 최저치, 부정률은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부터 40대까지 긍정률 20% 이하, 부정률은 70%를 넘어섰고, 50대도 긍정 34%, 부정 60%로 3주 연속 부정률이 더 높은 가운데 부정-긍정률 격차가 더 벌어졌다. 60세 이상에서만 긍정률(55%)이 부정률(36%)을 앞섰다. 성별로 보면 남성은 긍정 26%, 부정 68%로 지난 주와 비슷했으나, 여성은 긍정 36%→32%, 부정 53%→58%로 대통령에 대한 평가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직무 수행 부정 평가자(634명)는 부정 평가 이유로(자유응답) '소통 미흡'(16%)과 '세제개편안/증세'(16%), '인사 문제'(14%)(+6%p), '공약 실천 미흡/입장 변경'(9%), '경제 정책'(8%)(-5%p), '복지/서민 정책 미흡'(8%),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6%) 등을 지적했다.
긍정 평가자(292명)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자유응답), '열심히 한다/노력한다'(23%), '주관, 소신 있음/여론에 끌려가지 않음'(12%)(-5%p), '외교/국제 관계'(10%), '복지 정책'(10%), '대북/안보 정책'(6%) 순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휴대전화 임의걸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3.1%p(95% 신뢰수준), 응답률은 18%(총 통화 5,680명 중 1,009명 응답 완료). 

2015년 1월 29일 목요일

[뉴스타파 3년]기성언론에서 온 기자들이 말하는 ‘변화’

“뉴스타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자유롭게 취재 못했을 것”[뉴스타파 3년]기성언론에서 온 기자들이 말하는 ‘변화’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뉴스타파>는 3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지원 아래 임의단체로 시작했던 <뉴스타파>는 2013년 3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KCIJ)’라는 비영리 민간단체(NPO)로 거듭났다. 꾸준한 채용을 통해 취재인력도 보강했다. 취재, 촬영을 도맡는 인력만 어느덧 스무 명을 넘겼다.
특히 KBS 등 소위 ‘메이저 언론’이라고 불리는 주류매체에서 옮겨온 경력기자, PD들이 중심축을 잡아가고 있다. KBS 탐사보도팀장 출신인 김용진 기자가 대표를 맡고 있고, MBC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었던 <PD수첩>에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검사와 스폰서’ 등을 제작해 반향을 일으킨 최승호 PD가 대표적이다.
<미디어스>는 오랫동안 기성언론에서 취재, 보도 경험을 쌓아온 5명의 기자들에게 기존에 몸담았던 언론과 <뉴스타파>가 어떤 점에서 가장 다른지, <뉴스타파>로 와서 생긴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 가나다 순)

김경래 기자 / <뉴스타파> 취재2팀장, 전 KBS 기자

  
▲ 김경래 <뉴스타파> 취재2팀장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1.  <뉴스타파>로 온 후 달라진 점
“(언론사는) 어차피 기사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공정이다. <뉴스타파>는 사람도 적고 공간도 적고 일하는 구조도 단순하고 하나의 방에 20~30명 모여서 복작복작 만들어내는, 일의 가내 수공업이다. 반면 KBS의 경우 대형 공장이다. 아이템을 시작하는 자와 포장하는 자가 기본적으로 그 아이템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없는 구조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뉴스타파>는 가내 수공업이지만, 구성원이 어떤 아이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게 차이다. 하다못해 대표부터 시작해서 맨 마지막에 웹 작업을 하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 친구까지 어느 아이템에 대해 기본적인 걸 공유할 수 있는 기회와 여지가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아이템을 만들어낼 때 각별한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왜냐하면 KBS 같은 경우, 마지막에 공정하는 CG라든가 편집 쪽에서는 굉장히 기술적인 업무만 맡을 수밖에 없다. 일이 오면 처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아이템을 두고 어떻게 하면 원래 생각한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구성원 전체가 고민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물론 조직이 좀 더 커지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또, 여기는 이 아이템이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얘기가 되냐, 안 되냐’ 여부가 1번이자 100번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일선 기자, PD, 제작자들은 아이템을 생각할 때 ‘이게 아이템이 되냐, 안 되냐’만을 고민한다. 그런데 KBS는 고려할 게 많이 있다. 아이템 자체의 기사 가치가 아닌 다른 것들. 예를 들어 과연 통과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지는 않은가? 균형을 맞춰야 하지 않나? 등등. 그게 반드시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KBS라는 언론사가 가진 영향력과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7~8년 정도는 정치적인 면을 고려하는 분위기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강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 불만을 갖는 사람도 많고. <뉴스타파>에서는 그런 고려는 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템을 바라보는 눈이 좀 심플해졌다고 해야 할까. 기사 가치만 보면 되니까. 기사가치라는 틀 안에서 시의성, 타당성 등을 따지지만 어쨌든 기사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KBS에서는 기사 바깥을 계속 신경 쓴다는 것이 차이고”
2. <뉴스타파> 보도 중 기억에 남는 ‘자신의 보도’를 꼽아 달라.
“좋은 보도라고 보기는 힘든데 신기했던 게, 예전에 <4월 16일, 대통령 7시간 실종 미스터리>라는 짧은 꼭지를 만든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되게 세더라. 관련 정보가 비공식적으로만 유통이 되고 지상파를 중심으로 한 주류 매체에서 (7시간을) 잘 안 다루는 경향이 있지 않았나. 취재가 안 돼 팩트가 없는 상황이긴 했으나, 중요한 부분이었으니 의혹제기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때였는데 (타 언론에서) 별로 안 하니 시청자들은 그런 정보에 대해서 갈증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장취재가 아닌 제작물이었는데도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타 언론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던 사례가 아닌가 싶다”
3. <뉴스타파> 3주년을 맞는 소감은?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세 들어 살다가 나름 큰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고, 회원수도 35000명이 맥시멈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이 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저는 아직도 ‘제대로 출범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본다. 사람들 머릿속에 공식적인 언론사, 비공식적인 언론사가 나뉘는데 아직 저희가 제대로 된 언론사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지금은 아주 큰 틀에서 ‘진실’과 ‘사회적 약자’를 언급하며 우리 방송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방향성이 아주 잘 갖춰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3년 동안에 지금까지 했던 3년보다 좀 더 좋은 성과나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기존에 있었던 주류 언론사들의 시스템을 자칫하면 우리가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밖에서는 ‘안정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시점이 저희에게 오히려 조금 더 중요하고 어려운 시점이라고 보는 이유다. 조금 더 바뀌고, 그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어딘가에 끌려가기 시작하면 구태를 반복할 가능성이 꽤 있다. 구성원 자체가 기존 매체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한번 안도하기 시작하면 조금 안 좋아질 가능성도 많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2~3년 동안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수 기자 / <뉴스타파> 취재2팀, 전 OBS 기자

  
▲ 김성수 <뉴스타파> 취재2팀 기자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1.  <뉴스타파>로 온 후 달라진 점
“지상파 보도에서는 ‘중립’이라는 가치를 형식적인 측면에만 두는 경우가 많다. 선거보도 할 때도 여야 후보 발언을 초수로 정확히 끊어서 싱크(음성)를 따야 한다든지… 선관위에서 요청하는 부분이고 어느 정도 형식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런 관행이 확대돼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주제까지도 무리해서 양쪽 균형을 맞춰주는 건 문제다. 이건 반론을 넣는 것과는 매우 다른 문제다.
이렇다 보니 될 아이템도 안 되고 처음 취재와 달리 엉망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뉴스타파>는 구성원들이 토론하면서 가치판단을 해 나가기 때문에 제약 없이 취재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이템 발제하고 취재할 때 기분이 좋고 신이 난다. OBS에 있을 때는 내부에서 부딪치고 싸워야 되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내가 어떻게 발제하면 팀장이나 부장이 이 아이템을 받아들일까, 하면서 자체검열하거나 포기하는 때가 있었다. 아이템 발제부터 보도까지 집단지성을 발휘해 좋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변화도 있다. OBS에 있을 때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고 바쁘기는 한데 보도 결과는 좋지 않아서, 집사람이 “이런 뉴스 만들면서 아침부터 나가느냐”는 핀잔을 해 속상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와서는 그런 게 없어졌다. 기분 좋은 변화다”
2. <뉴스타파> 보도 중 기억에 남는 ‘자신의 보도’를 꼽아 달라.
“들어오고 나서 초반에 합동신문센터 얘기(<‘한국의 관타나모’ 탈북자 합동신문센터>)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최승호 PD가 가진 기초 데이터를 활용해 취재했기 때문에 온전히 제 힘만으로 한 건 아니다. 그래도 현장취재를 열심히 해서 국정원 직원과 몸싸움도 하면서 만들었다. 이거야말로 OBS에 있었으면 발제조차 못했을 만한 아이템이란 생각이 든다. 형식적으로나 보도 이후 기여 면에서 기억에 남는다.
나라사랑 교육 강사진 명단(<뉴스타파, 2014년 나라사랑 강사진 120명 명단 단독입수>)을 오랫동안 확인해서 보도한 적이 있는데 다른 언론에서 많이 받진(인용하진) 않았지만, 데이터팀과 협업하며 수많은 데이터들을 모아 어떻게 분석하고 유용화할 것인지를 고민한 시간이어서 인상적이었다”
3. 올해 집중하고 싶은 취재 분야는?
“세월호 특위가 시작되는 만큼 세월호 사안에 더 붙어서 감시해야 할 것 같다”

최기훈 기자 / <뉴스타파> 총괄 프로듀서, 전 YTN 기자

  
▲ 최기훈 <뉴스타파> 총괄 프로듀서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1.  <뉴스타파>로 온 후 달라진 점
“아이템이 결정되어 보도하는 과정이 가장 많이 다른 것 같다. 일단 여기는 각자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한다. 토론을 하다 보면 자기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상대방에 의해 보충이 되면서 처음에는 부족했던 아이디어가 완성형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개개인의 능력 최대화할 수 있는 토론문화, ‘집단지성’이 <뉴스타파>의 가장 큰 힘이다.
지명도가 낮거나 언론사 힘이 미약한 점은 신생 매체가 모두 겪는 어려움일 거라고 본다. 다만, 중요한 인물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려운 점은 있다. 예를 들어 여당 대표, 야당 대표라든지 영향력 있는 거물급 인터뷰이가 있다면 큰 방송사일 경우 메인뉴스에 출연을 하거나 중계차 연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저희는 라이브 방송하기가 힘들고 스튜디오에 초청하기도… 그쪽에서 볼 때 저희는 작고 매체 영향력이 작기 때문에, 저희는 인터뷰하고 싶은데 그쪽에서는 인터뷰할 메리트가 없다는 거다. 물론 알아서 방송에 나와주는 관계라면 비판적인 보도가 쉽지 않을 수 있겠죠”
2. <뉴스타파> 보도 중 기억에 남는 ‘자신의 보도’를 꼽아 달라.
“2013년에 국정원 트위터 대선개입 사건 보도(<트위터 핵심계정은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 확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달 동안 매달렸지만 ‘이게 과연 될까’ 의심했던 취재라… 하지만 나중에 국정원 직원 신상까지 밝혀내고, 조직적으로 트위터를 통해서 대선개입했다는 것을 확정지을 수 있게 됐다. 나중에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채동욱, 윤석율 등도 교체되는 걸 보면서 그 취재가 참 의미 있는 보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올해 집중하고 싶은 취재 분야는?
“총괄팀장을 맡고 있어서 이번주 뉴스타파 방송을 어떻게 꾸려갈까를 주로 고민한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간첩조작 사건, 원전묵시록, 세월호 보도 등 굵직한 보도를 했는데 올해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적인 보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임팩트 있는 보도를 했을 때 보도의 영향력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실감한다. 시청자들에게 알려지고 <뉴스타파>의 영향력도 제고되고… 저희가 최선을 다해 좋은 보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일반 시청자들도 알 수 있게 ‘아, 올해 <뉴스타파>가 이런 보도를 했지’ 할 수 있을 만큼 중량감 있는 기획물을 꾸준히 내고 싶다”

최승호 PD / <뉴스타파> 앵커, 전 MBC PD

  
▲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1. <뉴스타파>로 온 후 달라진 점
“취재가 자유로워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MBC가 좋은 시기였다고 해도 이 정도로 자유로운 취재를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더구나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뉴스타파>가 국정원 간첩조작에 대해 재작년부터 줄곧 보도하고 있지 않나. 관련 보도만 수십 번을 했을 텐데 MBC에서는 보도 한 두 번은 했겠지만 굉장히 관료적인 시스템이 있고 여러 가지 압력들이 상존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보도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큰 매체에 있을 때보다는 아무래도 영향력이 줄어들었으니, 시청자들한테 다가가려는 노력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겠죠. MBC에 있을 때는 방송을 만들면, 이후 과정은 따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는 만들고 나서 ‘전달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고 책임지는 부분이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기사를 알린다든가. 시청자들에게 기사를 더 많이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2. <뉴스타파> 보도 중 기억에 남는 ‘자신의 보도’를 꼽아 달라. 아니면 오프닝, 클로징 멘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자백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다큐가 있는데 새로운 시도를 해 봐서 참 좋았던 것 같다. 지상파에 있었으면 애니메이션으로 이런 프로그램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에서 있던 일, 국정원에서 있던 일은 찾아갈 수도 촬영할 수도 없어서 보통 재연을 쓰는데 그건 비용이 많이 든다. 스타일상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한 번 써 보자, 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다양한 형식 실험은 앞으로도 해 보고 싶다. <자백 이야기> 제작할 때만 해도 1주일에 한 번 진행했는데 이제는 2번 진행을 하니, 뭐 좀 취재하려고 하면 잘 진도가 안 나간다. 앞으로는 진행하는 걸 줄이고 취재를 좀 더 해 보려고 한다. 멘트… 멘트는 그동안 너무 많이 해서 고르지 못하겠다”
3. <뉴스타파> 3주년을 맞는 소감은?
(저를 해고한) 김재철 씨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저는 (MBC) 안에 있는 동료나 후배들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다. 마치 혼자 탈출한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있어서. 어떻게 보면 이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게 과거에 비해서 상황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의 수호자’로서 <뉴스타파> 후원해주시는 회원분들이 35000명이나 계시기 때문에 이런 길이 열린 게 아닐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노력을 했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후원자들,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해야겠죠. 2월에는 YTN 조승호, 현덕수 기자와 KBS 심인보 기자까지 3명이나 새로 들어오기 때문에 아마 더 좋은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황일송 기자 / <뉴스타파> 취재1팀, 전 <국민일보> 기자

  
▲ 황일송 <뉴스타파> 취재1팀 기자 (사진=<뉴스타파> 홈페이지)
1.  <뉴스타파>로 온 후 달라진 점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다는 본질 자체는 바뀐 게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에 대한 ‘자율성’은 여기만큼 존중되는 곳이 없을 것 같다. 사실 개별 사안은 <국민일보>를 포함해 일반 언론에서도 기자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편이다. 그런데 중대한 사안이 생겼을 때에는 기자보다는 편집국 상층부의 논의를 통해 기사 방향과 제목이 정해진다. 사실 기사는 ‘부장’이 쓰는 경우가 많다. 몇 개 면에 실릴 몇 매짜리 기사를 몇 시까지 보내라고 이렇게 돼 있지 않나.
하지만 <뉴스타파>는 기자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한다. 보도 시점도 마찬가지다. 다른 곳은 보도 시점이 정확히 정해져 있어서 조금 설익은 기사들도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여기는 취재 기한을 충분히 주어서 ‘아, 이제 농익었다’ 할 때까지 기다린다. 사실관계 확인 다 거쳐서 기자들 스스로 자기 양심에 비춰 진실에 접근했다고 느꼈을 때 보도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2. <뉴스타파> 보도 중 기억에 남는 ‘자신의 보도’를 꼽아 달라.
“지난해 제 기억에 남는 보도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세월호 리포트, 하나는 한체대 리포트다. 세월호 취재 때는 걱정이 많았다. 저희는 실시간으로 기사를 올리는 통신사나 타 매체에 비해 제작시간이 느리고, 이미 수백 개의 기사가 쏟아진 상황에서 기존 기자들과 어떻게 다른 관점과 사실을 보여줄까 하는 고민이 컸다.
오후 2시에 출발했는데 가면서도 계속 기사를 봤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과 방송 카메라에 담긴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 전원구출 오보도 있었고, 사상 최대의 구출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실종자 가족들의 말은 달랐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보고 들은 사실을 그대로 담자고 마음먹었다. 저희는 매거진 개념에 가까워 속보 경쟁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세월호 첫 리포트(<정부 재난관리시스템 불신 자초>)를 하고 나니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리포트가 세월호 사안을 꾸준히 좇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한체대 리포트는 제보자가 있었다. 그분은 다른 매체에도 제보를 했지만 촬영까지 마치고도 불방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검증하는 작업이 워낙 지난하고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재를) 포기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도 처음 제보 받고 리포트할 때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다. 한체대 교수 112명 중 100명을 조사했으니… 제보자가 말하는 표절 의혹을 검증했고, 저희가 새로 찾아낸 것도 있다.
일반적인 언론사에선 어려웠을 것 같다. 저희는 후원회원들이 있고, 내부에서도 취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아이템은 충분한 취재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만약 중요한 사실관계 확인이 안 됐으면 꼭 오늘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편성이 돼 있으니까 취재한 것까지만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설익은 것은 가려내고 ‘완료’된 결과를 내보내는 게 가능해서 한체대 리포트를 준비할 수 있었다. 보통 시청자분들이 생체실험 관련 팩트 검사한 리포트만 기억하시는데 최근 교육부 감사결과 리포트(<한체대 교수 백여 명 사상최대 징계사태>)가 핵심이다. 보도 이후, 교육부가 감사를 했고 한체대 교수, 조교 등 116명이 연구윤리 위반 및 연구비 횡령 혐의로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3. <뉴스타파> 3주년을 맞는 소감은?
“맨 처음에 뉴스타파 오게 된 건 이근행 PD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집에서 놀지 말고 같이 있어 보자(* 황일송 기자는 <국민일보> 해직기자다)고 한 거였다. 그래서 정말 일 안하고 같이 있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더라. 1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밤을 꼬박 새고. 잠 안 자고 일하는 걸 보기 미안해서 저도 조금씩 거들어주고 리포트도 하다 보니까 방송기자 일을 하게 됐다.
지난 3년은 시민들이 원하는 언론매체가 시민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광고주 입김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사실은 사실대로 보도하는 매체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뉴스타파>를 통해 일부 해소가 되고 다시 확산된 게 아닌가… 현재 언론 상황이 바뀌지 않은 한 <뉴스타파>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저희가 지향하는 건 진보 매체, 이런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다. 기자들이 기자의 양심에 따라 대다수 국민들이 알아야 할 진실에 대해 리포트한다는 것이 저희 목표다. 꼴통 우익 매체는 아니지만 진보 매체라고 하는 것도 좀 어렵다. 3년 동안 어느 정도 성장했으나 앞으로도 더 많이 성장해, ‘독립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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