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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9일 목요일

가혹한 진실 드러낸 성매매 여성 14인의 죽음




15.01.29 18:17l최종 업데이트 15.01.29 18:27l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2년 1월 29일. 모두가 한일월드컵으로 기억하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당시 전북 군산시 개복동 일대는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했다. 전날도 성매매 영업은 번성했고, 유흥주점의 조명은 찬란했다. 

유흥업소의 찬란한 조명이 꺼진 오전 11시. 대명동 성매매업소 '대가'는 삽시간에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화재였다. 인근 유흥업소의 무선전화기 전선 합선으로 일어난 불은 '대가'로 옮겨 붙었고, 불과 30분 만에 2층 건물을 태웠다. 2층 건물이 모두 탄 현장에서 개복동 일대를 가득 채웠던 찬란한 조명의 '민낯'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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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월 29일, 개복동 유흥업소 '대가' 건물 화재를 진압하는 장면. 이 안에서 모두 14명의 여성이 사실상 감금 상태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진 제공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대가' 1층과 2층은 방으로 된 구조였다. 화재 당시 1·2층은 좁은 계단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었다. 밖으로 통하는 1층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2층 출입문도 잠금 열쇠로 봉쇄된 상태였다. 밖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곳은 모두 베니어합판에 벽지가 붙어 있던 벽이었다. 

이날의 화재 진압 뒤 '대가' 건물 계단에서 15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이 중에는 1명의 남성 지배인(신고서 상 주인)이 있었다. 1층에서 잠을 청하던 이들은 화재가 나자 봉쇄된 1층 문을 부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2층으로 대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2층 출입문도 봉쇄된 상태여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뒤엉켜 계단에 쓰러졌다. 그들의 주검 밑에서는 열쇠꾸러미가 발견됐다. 긴박한 상황에서 탈출을 위해 사력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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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발생 11년이 지난 2013년 2월, 건물 내부가 공개됐다. 2층 방은 보는 바와 같이 창문이 벽으로 막혀 있었다. 희생된 여성들의 옷이 화재 당시 그대로 있었다. <사진 제공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추후 여성 시신 한 구가 2층 숙소에서 발견됐다. 이 화재로 모두 14명의 꽃다운 여성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평소 나비가 되어 자유롭고 싶다던 이 여성들의 꿈은 화재가 발생한 뒤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대학에 합격했으나 가정 형편으로 진학을 포기한 이가 있었고, 아픈 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지던 이도 있었다. 이날의 화재로 딸을 잃은 한 어머니는 따뜻한 밥 한 번 먹이지 못하고 고생만 시켰다며 절규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다수의 차용증과 노예각서와 다름없는 각서들은 성매매가 사실은 성 착취이고, 여성에 대한 심각한 폭력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 업소의 주인은 화재 발생 후 달아났고 5일 만에 검거됐다. 그는 감금 및 불법성매매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그의 부인도 감금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화재가 일어난 개복동 '대가' 건물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화재는 물론이고 이들에 대한 심각한 폭력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들이 이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참사 발생 한 달 뒤, 군산경찰서와 개복동 파출소 경찰관들이 업주들로부터 떡값을 받아온 사실이 밝혀졌다. 군산소방서장은 화재 당시 혼선과 소방점검 미비 등의 이유로 직위해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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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월 29일 개복동 화재참사로 14명의 여성들이 희생되면서 성매매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많은 여성단체들이 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됐다. <사진 제공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참사 현장, 여성인권센터로 만들어 여성인권 보호의 현장으로"

이와 같은 진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성매매 특별법' 제정의 주춧돌이 됐다. 군산 개복동 성매매집결지 화재 참사 이후, 성매매는 이 사회의 침묵과 비호 속에 성장한 폭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리고 여성단체들의 노력으로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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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9월이면 '민들레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여성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을 찾았다.
ⓒ 문주현

조금이나마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은 개선됐다. 그러나 여전히 성매매 여성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법으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며 포주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나비가 되고 싶었던 개복동 참사 희생자들의 바람은 여전히 묘연하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3년 2월 흉물처럼 존재했던 개복동 '대가' 건물이 철거됐다. 그동안 여성단체들과 반성매매 시민사회단체들의 순례지였던 그 현장은 현재 잔디밭으로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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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개복동 화재 건물을 군산시는 안전의 이유로 철거했다. 그 후 여성단체들은 여성인권센터 건립을 요구했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묘연하다. <사진 제공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그 현장에 여성인권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는 제안은 그때부터 나왔다. 참사 현장을 여성과 아동, 청소년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 한국사회에서 여성 인권의 역사 과정을 기록한 공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제안에 담겼다.

그러나 건물의 안전성을 문제로 철거를 하고 함께 대안을 만들자던 전라북도와 군산시, 정치권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근거로 머뭇거리고 있다. 벌써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살아서는 무시 받으며 폭력 앞에 고통 받던 여성들의 죽음이 이대로 잊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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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단체들은 이 곳이 성매매와 여성폭력, 성 착취의 인식이 바뀔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문주현

"참사 아픔 치유 위해 더욱 기억해야"

그동안 희생된 여성들의 추모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사단법인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참사 13주기를 맞이해 29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잔디밭으로 조성된 참사 현장을 여성·인권교육의 현장으로 되살려야 한다면서 여성인권센터 건립을 재차 촉구했다. 

여성인권지원센터는 "군산 개복동 주민들도 화재사건을 상처로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장으로 만들고, 인권과 평화교육의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라며 "이는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살고 싶다는 여성들의 외침에 우리사회가 대답하는 것은 성산업 확산을 막아내고, 성착취 피해자인 성매매여성에 대한 처벌이 아닌 비범죄화로 인권이 보장하는 대안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여성폭력과 성 착취, 성매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공간, 개복동에 여성인권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송경숙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장은 "세월호 참사도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더욱 기억을 해야 하듯이 개복동 화재 참사의 아픔도 기억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라며 "10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을 만나보면 여전히 당시 일을 상처로 안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구도심이 된 개복동의 재개발 문제나 청소년 문화의 거리 등 군산시가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추진이 예상되는 여러 계획들과 여성인권센터는 충분히 공존이 가능하다"면서 "지역사회와 여성인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정책 방향을 갖고 군산시와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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