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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5일 월요일

‘따뜻한 눈’으로 역사를 보자?

[손석춘 칼럼] 청와대에 가서 다큐를 ‘고발’하는 게 학자의 본분인가
입력 : 2015-01-05  10:35:45   노출 : 2015.01.06  09:55:40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
따뜻한 눈으로 역사를 보잔다. 새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고운 말’을 한 사람은 이인호다. 자신의 경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 KBS이사장을 여든 살의 나이에 덥석 받은 서양사학자다. 현직 언론인들의 ‘사표’로 존경받고 있는 원로 언론인 김중배가 MBC사장에 연임되었을 당시, 고희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용퇴한 모습과 참 대조적이다.  
이인호는 “새해가 다가오니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인터뷰했다. 조선일보는 그를 “역사학자이자 지성계, 여성계의 원로”라고 추어올렸다.
KBS 이사장실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취임 뒤 “왜 그렇게 거친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나”는 기자 질문에 그는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언죽번죽 답했다. 구체적 사례로 ‘백년전쟁 다큐 비판과 고교 교과서 선정 싸움’을 들었다. 
  
조선일보 2015년 1월3일자 B1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명확한 사실을 내놓고 왜곡해서다. 그가 KBS이사장에 취임할 때  거센 비판을 받은 이유는 식민사관에 절은 ‘문창극 동영상’을 적극 비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TV조선에 출연해 문창극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제정신이 아닌”, “완전히 비이성적이고 양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살천스레 몰아세웠다. 심지어 그는 “이같은 이유로 문 후보자가 낙마해야 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라고 사뭇 울뚝밸을 터트렸다. 
어떤가. 문창극이 낙마한 직후 그는 나라를 떠나기는커녕 권력이 임명한 KBS이사장 자리를 꿰찼다. 그의 할아버지 친일이력이 논란을 빚은 이유도 그가 식민사관에 찌든 문창극의 ‘눈빛과 강연에 감동받았다’고 공언해서다. 친일 행위가 명백한 증거로 남아있는 조부에 대해 이인호가 ‘내 조부가 친일파라면 그 시대 중산층은 모두 친일파’라는 해괴한 주장을 펼 때, 나는 저 이가 과연 학자인가 싶었다. 더구나 그는 ‘친일파 청산’이 ‘소련의 지시’라고 호도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친일파 비판을 ‘좌경’이나 ‘종북’ 따위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수구세력의 ‘색깔 공세’를 체화한 ‘원로 사학자’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처음부터 나에 대한 공격이 특수한 정치적 의도를 품은 어떤 세력이 한 일이지, 국민 또는 KBS 구성원 전반의 반대는 아니라고 믿었다”고 언구럭 부렸다. 대체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단 말인가. 이인호에 따르면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고 “양심이 하나도 없”고 “특수한 정치적 의도를 품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성찰할섟에 되레 “기가 막혔다. 나의 80년 인생 전부가 잘못됐거나, 아니면 대한민국이 이상해졌다는 징후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일자 ‘대한민국이 이상해졌다’고 추정하기란 심각한 과대망상 아닌가. 
나는 이미 본란을 통해 정중하게 ‘학자로서의 겸손’을 촉구했다(원로교수 이인호의 마녀사냥, 2014년 7월7일자). 그가 서양사학자이기에 한국사에 들씌워진 식민사관, 정체·타율성론을 모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조선일보 인터뷰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학자, 더구나 사학자라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책무인 진실을 외면 또는 모르쇠하고 있다. 기실 청와대에 가서 권력 앞에 다큐를 ‘고발’하는 작태부터 학자의 본분을 벗어났다. 
이인호는 역사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 ‘고질화되고 있다며 “자기와 입장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의도가 나쁜 사람으로 악마화한다. 또 그런 사람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거짓과 궤변을 동원하는 나쁜 관행이 성행”한다고 개탄했다. 행여 내가 이인호를 악마화한다고 생각할까 싶어 묻는다. 지금 이 글에 ‘왜곡’이나 ‘거짓과 궤변’이 있는가? ‘무조건’ 당신을 비판하고 있는가?  
더 역겨운 대목은 다음이다. 그는 “세속적 성공이나 쾌락을 죄악시하는 것도 위선이다. 사회관계를 모두 갑을 관계로 보는 것도 큰 함정에 빠지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정말이지 궁금하다. 이인호는 그에 대한 비판이 그의 ‘세속적 성공’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 손석춘 언론인
 
백번 양보해서 사회관계를 모두 갑을관계로 보는 것이 그의 말대로 ‘큰 함정’이라고 치자. 다시 정말이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갑’의 부당성에 대해 얼마나 글을 써왔는가? ‘을’의 처지에서 진실을 얼마나 증언해왔는가?  
80평생 ‘따뜻한 곳’에서 살아온 이인호에게 더 늦기 전에 간곡히 권한다. 인생 앞에 겸손하기를. 후학들의 정당한 지적에 감사하기를. 새해 KBS수신료를 올리려고 이사장으로 동분서주할 계획을 세우기보다 지금이라도 물러나 고요히 자신을 성찰하기를. 하여, 지금 이 순간도 골골샅샅에서 아우성치는 민중의 고통을 제발 ‘따뜻한 눈’으로 바로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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