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5년 1월 31일 토요일

방송통신대 총장 임명 거부된 류수노 후보

"총장 임기 첫 날, 교육부 공문 한 장에 죄인됐다"

15.01.31 19:39l최종 업데이트 15.01.31 19:39l


기사 관련 사진
▲  류수노 방송대 총장 후보.
ⓒ 류수노
류수노(59)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농학과 교수의 삶은 지난해 9월 29일 이후 크게 변했다. 당초 이 날은 류수노 교수가 방송대 7대 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검정고시 출신인데다 방송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첫 번째 총장의 탄생이라는 스토리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그날 오전 10시 30분께 교육부는 방송대에 몇 줄짜리 공문 한 장을 보냈다. 류 교수를 총장으로 임용 제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제청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류 교수는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고 말했다. 공문에는 그가 총장으로 왜 부적합한지 나와 있지 않았다.

류 교수는 집으로 돌아갔다. 칩거 생활을 했다. 학내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집에서 물 한 잔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짧은 시간에 살이 5kg 빠졌다. "한 순간에 죄인 신분이 됐다"면서 "음주운전 한 번 하지 않고 파출소 한 번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문을 두드렸지만, 부적합 사유를 알려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탓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결국 류 교수는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에 교육부의 임용제청 거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2일 법원은 류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류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재판을 끌고 가면 무슨 실익이 있느냐"면서 "교육부가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답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 있는 방송대 학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청와대에서 광우병 사태 시국선언 물었다"

방송대는 지난해 4월 새 총장을 뽑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류수노 교수를 포함해 5명의 후보가 나섰다. 세 차례의 토론과 후보자 심사 과정이 있었다. 학내·외부 위원 50명이 참여하는 총장임용후보자 추천위원회 투표에서 류 교수는 과반이 넘는 31표를 받았다. 방송대는 한 달에 걸친 연구윤리 검증을 거쳐, 류 교수를 총장 1순위 후보자로 교육부에 추천했다.

- 그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나.  
"그렇다. 9월 초로 기억한다. 사정조사팀이라는 곳에서 여러 차례 내게 전화했다.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제가 낸 서류 내용을 토대로 여러 질문을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청와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실히 대답했다. 그랬더니 '오케이, 오케이'라고 했다."

- 청와대 쪽에서는 2008년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우병 사태 당시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사회 퇴행을 우려하는 교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사정조사팀에서 이와 관련해 물었고, '내가 하는 학문은 진보나 보수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다, 난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의 일이고 문제 될 것 같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 9월 29일 교육부는 임용제청을 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7대 총장 임기 시작일 전날까지 소식이 없었다. 당시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잦았기 때문에, 결재가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인수인계를 받았다. 총장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는 첫 날, 공문이 내려온 것이다. 부적합 사유가 없으니, 해명하고 싶어도 해명할 수 없었다. 학내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얼마 전 교수회에서 '내가 키가 작고 못생겼다거나 학력이 부족하고 세련되지 않았다는 부적합 사유를 내놓는다면, 수용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서 "그만큼 답답하다"고 전했다.

"교육부, 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 내지 않았다"

류 교수는 결국 교육부 상대로 소송을 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로부터 미운 털 박히는 게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았고 떳떳했다,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대학의 자율권을 위해 싸워 이름을 남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장이 교육부 쪽에 임용제청을 거부한 관련 증거를 내라고 했다. 교육부 쪽 변호인은 없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서류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임용제청 여부를 심의할 때 쓴 자료가 있지 않았겠나. 설마 백지를 앞에 두고 심의했겠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법원은 교육부가 어떠한 근거와 이유로 임용제청하지 않았는지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행정절차법 23조 1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모든 국민이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는 헌법 25조와 대학의 자율성을 규정한 헌법 31조 4항을 거론했다. 판사 출신인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는 뼈아픈 판결문이다.

특히, 김현규 공주대 총장 후보자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내,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김사열 경북대 총장 후보자도 소송을 냈다. 류 교수는 "법원에서 헌법을 언급했다"면서 "교육부가 교육을 책임지는 부서답게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해놓고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느냐"고 지적했다.

-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육부는 이미 세 차례나 졌는데…. 대법원에 간다고 해도 결과가 뻔하지 않겠나? 교육부는 그렇게 국민의 세금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또한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서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총장 선거를 다시 한다면 학생들 등록금을 사용해야 한다. 지금 혼란도 큰데, 더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 누가 책임지려고 하나."

- 임용제청 거부를 두고 정치적인 이유 탓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으로,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 미스터리다. 한국체육대는 4명의 총장 후보자가 낙마한 끝에 새누리당 전직 의원이 후보자가 됐는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기사 관련 사진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임용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7일 방송대에서 교육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임용 비상대책위원회

"박근혜 대통령, 학내 혼란 알고 있나"

- 방송대 캠퍼스에 교육부를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많이 보인다. 동문과 학생들이 격앙돼있다.
"재학생과 동문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5만 명이 총장 임용 제청을 요구하는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들었다. 1972년 방송대가 개교한 후 졸업생만 58만 명이고, 현 재학생은 14만8000여 명에 달한다. 졸업식 때 총장대행의 졸업장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마저 격에 안 맞는 행동하면 되겠나."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하늘 아래 비밀이 어디 있겠나. 언젠가는 그 사유가 밝혀질 것으로 본다. 초조해하지 않고, 논문을 쓰고 정상적인 연구자의 길을 가겠다. 또한 당당한 총장 후보자로서 법적 대응을 하면서 우리 학교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 이번 일은 정상의 비정상화다. 방송대를 비롯해 국립대 여러 군데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