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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북한 김정은 신년사,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 용의”

“남북관계 개선해야…각계 단체 대화의 길 열어놓을 것”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18-01-01 11:20:11
수정 2018-01-01 1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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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해를 맞아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아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뉴시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과적으로 열리길 바란다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신년사 연설에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동족끼리 행사를 돕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메시지도 내놨다. 그는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 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북남이 폭넓게 교류해 통일 주체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는 진정으로 민족적 화합을 바라며 각계단체 인사와의 대화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민간교류 재개 가능성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나는 이 기회에 남, 북, 해외 전체 조선 동포들에게 따뜻한 새해 인사를 남기며 북남의 모든 일이 진심으로 잘 되기 바란다”고 덕담을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남북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언급했다. 그는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한다”면서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난 7월 우리 정부가 제안했던 남북 군사당국회담에 북측이 응할 가능성도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은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할 게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 노력에 성의 있게 나서야 한다”며 “외세와의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며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행위를 걷어 치워야 한다”고 한미 군사연합훈련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서는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경향신문 신년기획 1면]헌법 11.0···다시 쓰는 시민계약

입력 : 2018.01.01 01:15:00 수정 : 2018.01.01 02:03:40

[경향신문 신년기획 1면]헌법 11.0···다시 쓰는 시민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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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년기획 1면]헌법 11.0···다시 쓰는 시민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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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독일 헌법 첫머리는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이다. 국가로 시작한 헌법과 인간으로 시작한 헌법. 2018년 1월1일자 경향신문 표지는 이런 차이에 주목한 한 편의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글자체나 글자 배치를 이용한 디자인)이다.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를 역사적, 환경적, 철학적으로 해석해 표현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명조체와 가운데 정렬 방식을 채용했다. 명조체는 붓글씨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양의 관념적 특징을 갖고, 가운데 정렬은 권위적이면서도 우아한 방식이다. 독일 헌법은 고딕체와 왼쪽 정렬 방식을 썼다. 고딕체는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기능적 글자체다. 왼쪽 정렬은 1900년대 이후 등장했는데, 사람이 읽기에 가장 편한 방식이다. 개헌이 화두로 떠오른 2018년 독자들에게 우리 헌법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김의래 디자이너(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가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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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칼럼]
2017.12.31 21:30:50




2017년 정유년 세밑을 뜨겁게 달군 농업계 화두는 단연 '농업 가치 헌법 반영 1000만 명 서명운동'이 추진된 지 한 달 만에 목표 1000만 명을 돌파한 사건이다. 그리고 12월 5일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과 서울특별시 박원순 시장의 동참 서명이 대미를 장식하였다.

농업 가치 헌법 반영 1000만 서명 돌파!!

농협중앙회(회장 김병원)가 선두에서 이끈 동 서명운동은 농(임,축산)업과 농촌이 갖는 농림축산물의 본원적인 생산 기능 외에도 식량 안보와 안전, 농촌 경관 및 환경 생태계 보전, 수자원 확보와 홍수 방지 등 다양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농업의 만고불변한 기본 가치(價値)를 헌법에 명시적으로 반영하여 정부의 관심을 적극 끌어들이려는 농업계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1987.10.29. 전부 개정)의 기초(起草) 전문위원으로 농업 및 경제 분야 조문의 개정 작업에 직접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역대 정권 교체기마다 농정 적폐청산 제1호로 지목 받던 농협중앙회가 새 정권 초기에 발 빠르게 농업 가치 헌법 반영 서명운동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그 감회가 더욱 착잡하다.

서명운동에 참여한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과 농업종사자들은 개정 헌법에 농업의 가치가 제대로 명문화되면 정부와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올곧게 일깨우고 무언가 좀 더 3농 부문을 긍정적으로 배려하여 침몰 직전의 농촌경제와 환경생태계를 되살릴 묘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설사 획기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지난 9년간의 암흑과 같은 '이명박근혜' 정권 치하의 농업 무시, 농촌 천대, 대농민 사기 행위들일랑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잡고 싶었을 것이다. 

헌법에 농업 가치 조문이 명문화되지 않아 3농이 피폐해졌나?

그러나 말이야 바로 해 권력과 돈의 힘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현실 정치구조를 직시해 볼 때, 헌법에 농업의 가치가 명문화되지 않아 오늘날 우리나라 3농, 즉 농업·농촌·농민이 이렇게 피폐해졌는가? 아니다. 그게 전적으로 헌법 조문 탓만이 아니다.

예컨대, 현행 헌법 제121조 제①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小作制度)는 금지된다'라고 엄연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1948년 제헌국회 헌법이래,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하의 제3공화국 헌법,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그리고 1987년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바뀔수록 계속 강화돼 왔다.

그런데도 그 결과는 어떠한가? 제헌헌법 하의 '농지개혁법'이 1950년 실시되기 이전보다도 현재 전국의 논과 밭은 그 절반 이상이 비농업인, 부재지주 그리고 도시 투기꾼들에 의해 더 많이 소유되어 소작(임차) 농민의 비중이 60% 에 달한다. 도시 근교의 농지는 8~90%가 임차 소작농지이다. 참고로 1950년 농지개혁 당시 소작농지 면적은 전체 농지의 32.4%이었다.

결코 이 '농사직썰'란에서 주장하려는 메시지는 농업가치의 헌법 반영이 필요 없다거나 그 선의를 폄하하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도리어 헌법 조문화의 선행(先行) 조건과 이행조 건 그리고 그를 추동하는 농정철학(農政哲學)이 확고히 세워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농업 가치의 헌법 조문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를 추진할 정직하고 정의로운 정부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철학이 깊은 정의로운 정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워낙 급하게 탄생한 정부이다. 이재욱 농어촌사회연구소장이 '문재인 정부의 농정을 평가한다'(<농촌과 목회> 2017년 겨울호)에서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는 국정 운영 계획을 정부가 출범한 후에 세울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탄생했지만,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 구두로 직접 약속한 말까지 없었던 일인 양 눈감아주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농업 문제는 자기가 직접 챙기겠고 또 농정철학과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고 공언했지만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어떻게 직접 챙길지 전혀 오리무중이다. 최소한 농민 대표들을 공식적으로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직접 만나 토론 한 번 하지 않았다. 농정 기조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담화 발표도 이제껏 한 번도 없다. 그와 똑같은 말을 이미 박근혜 씨도 대통령 후보 때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몰락한 후 들어선, 농정 철학이 깊은 정의로운 정부가 취할 자세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전임 대통령인 김영삼 씨 후보 시절 발언으로 적잖이 재미를 본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겨우 4개의 농업분야 과제에 포함되어 시선을 끈다. 구체적으로, 사람이 돌아와 살고 싶은 복지 농산어촌을 만들기 위해 교통·의료·생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휴식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실천사항이 마치 외지 사람들이 놀러 오는 농산어촌을 만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으로만 읽히는 것은 너무 오버한(over, 지나친) 판단인가. 

핵심은 새 정부의 농정철학과 기조가 너무 얄팍하고 광대하여 분명하지 않거나, 역대 정부의 실패한 농정의 되풀이 또는 설거지하는 모양새라는 점이다. 농민의 연평균 농업소득은 2005년 수준에 제자리걸음하고 있으며 명목상의 농가소득 총액이 4000만 원에 훨씬 못 미치는데 비해 농민이 주인이라는 농축협 조합장의 연봉은 그 몇 곱절의 억대를 호가하고 중앙회장을 비롯 간부 임원들의 연봉도 평균 3억4000만 원으로 농가 소득의 거꾸로 된 역피라미드 소득구조는 무엇인가. '임직원을 위한 농축협'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사실이라는 것만 확인시켜 준다. 위치와 가치가 전도(轉倒)된 농정 현장은 거슬러 올라 가 보면 수입먹거리 위주의 식품행정, 자급률의 끊임없는 하락 현상, 농약으로 뒤덮인 농토와 환경생태계,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국민소비자, 농가와 농민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늘어나는 농업 관련 공직자와 단체들과 임직원, 중앙으로만 집결된 농정관련 권력과 행정력과 예산권이 이 나라 농정을 거꾸로 치닫게 하고 있다. 농정현안, 현장에서는 배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지속·재생 가능한 농업과 나라 

구미 선진제국이 추구해온 농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속가능한 재생 농업이다. 지속가능한 재생농업(Sustainable Regenerative Agriculture)이란 무엇인가?

첫째, 농업 생산력의 주체인 농업인이 안정된 삶을 유지하면서 상호 신뢰와 협력으로 지속적으로 환경과 인간이 성장하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며, 둘째, 환경생태계와 농업생산 활동이 조화를 이루어 공존·공영하는 것이며, 셋째, 농업과 공업, 유통업이 상호 연계되어 발전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이 서로 보완 발전한다. 끝으로 지역 지방 정부가 농정활동의 주체가 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수평적 협력 체제를 일컫는다. 그래야 농업 농촌 농민이 지속 재생할 수 있고 사회와 국가가 유지 발전 재생할 수 있다. 

위 네 항목 중 그 어느 하나라도 미진하거나 불비(不備)할 때 그 사회 그 나라의 지속가능성과 재생 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진다. 농업부문이 먼저 망하고 그 사회 그 국가도 마침내 지속 불가능해진다. 친환경적인 농업이야말로 사회와 국가 형성에 최소한 갖춰야 할 필요기본조건(National Minimum Requirement, NMR)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꿈꾸듯 토로한 지속가능한 농업의 기본 틀과 철학은 앞에 소개한 네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을 두고 말한 것이다. 

이에 따른 구체적인 행정 사항은, 농산물 및 그 가공품의 판로 확보와 가격안정, 그에 의한 농어민 소득의 안정적인 유지 보장, 그리고 농어민 주도의 생산, 가공, 유통, 무역 활동, 이른바 농민 주도의 6차 산업화 대책 등이다. 그리고 이를 더욱 알차게 실천하기 위한 농민 생산자/소비자의 자조적인 협동조직 육성과 연계, 지방분권에 의한 명실상부한 지방정부 주도의 3농 현장지원 활동 등이다. 

이 같은 복합적이고 중차대한 농정 철학과 기본 틀, 즉 지속 재생 가능한 국가사회 건설은 단순히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영역을 넘어 대통령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임무이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가 경영의 기본 조건인 것이다.  

이 글은 전국농민회가 발행하는 <한국농정신문> 2018년 1월 1일 자 '농사직썰'난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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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농업 및 환경문제 전문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프레시안> 고문을 맡고 있다. 대학과 시민단체, 관직을 두루 거치며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앞장 서 온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서 <김성훈 칼럼>을 통해 환경과 농업,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정은위원장, 2018년 초강경 행보 걸을 것

김정은위원장, 2018년 초강경 행보 걸을 것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1/01 [04:0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최근 국내 한 북관련 동영상 사이트에 소개된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어'. 이 영화는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2012년부터 2016년 초반까지 북의 최고지도자로서 걸어온 행보를 정리 종합한 동영상이었다.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어 화면복사

▲ 김일성주석과 머리 모양도 비슷하게 하는 등 외모는 물론 북 주민들을 만날 때의 미소, 글씨체까지 같이 하려고 애를 써온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글씨체도 김일성주석과 비슷하다. 사업분야에 있어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빠른 속도로 추진해나갔다. 하여 북 주민들은 김정은위원장을 통해 두 선대 지도자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2017년 각종 위력적인 전술핵탄두장착용 탄도미사일 시험들은 물론, 두 번의 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과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까지 성공시키면서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행보를 보여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게에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2018년에는 더욱 더 강력한 행보를 내디딜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된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상정치사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진들, 각 분야 핵심간부들에 대한 사상정치사업이 정말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당 세포비서(세포위원장) 대회만 봐도 조선노동당 창건 이후 총 다섯 번 중에 김정은위원장 집권 6년 동안 두 번이나 진행했다.  대회마다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나와 연설도 했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 북녘 곳곳에 김일성 김정일 선대 지도자의 동상과 기념비를 대거 새로 건립하고 있다. 주요 도시는 물론 마을과 공장에도 우후죽순처럼 건립되고 있다.  북 주민들이 두 지도자를 단 한 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원히 함께 있다는 말이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최근 국내 한 북 동영상 사이트에서 소개한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련 기록영화를 보니 2017년의 과감한 행보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위해 집권초부터 북 간부들에 대한 사상정치사업을 치밀하게 진행해왔으며 서해 최전방 작은 섬 초소까지 찾아가 직접 주민들과 만나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며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 의지를 매우 빠른 속도로 최상의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 북의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라는 기록영화를 보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짧은 기간 써 낸 노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교육, 국방, 경제, 행정, 건설, 문화예술 등 주요분야는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시절 군부대 현지지도를 가면서 헐벗은 산을 보며 가슴아파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무심기와 관련된 노작까지 전 분야에 걸쳐 매우 구체적인 제목으로 쓴 노작이 헤아릴 수 없이 소개되고 있었다.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더불어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미국과 그 동맹국이 아무리 강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더라도 자체의 힘, 자강력으로 뚫고 나갈 비결을 과학기술로 보고 과학자 기술자들의 사기를 최대로 끌어올려 최첨단 무기도 개발하고, 경제발전도 이루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은 1년을 경제선진국 10년 맞잡이로 따라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도 과학기술력을 이용하여 추동해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을 위해 은하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살림집, 김책공대교수 살림집 등 과학자 기술자들을 위한 일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대학과 각 지역에 수많은 연구소를 설립하고 최신식 시설과 장비를 갖추어주었다.
하여 지금은 최첨단 모든 군사장비를 100% 북의 기술과 재료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경제분야도 거의 국산화 비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 북의 최근 보도들이다.

▲ 북 국가나노연구소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 북의 연구소     ©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 화면복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하면서부터 북의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북 주민들에게 미국과의 전쟁공포로부터 벗어나 마음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는 북 언론 보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북을 방문하고 온 해외동포들의 전언에 따르면 실제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좋은 살림집이 제공되고 매대마다 질좋은 상품들이 가득가득 쌓이고 있으며 월급도 획기적으로 오르게 되니 북 주민들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열광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장성택 숙청 이후 혼란스러워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 주민들 전체에게 100% 상여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해외 언론인의 전언에 따르면 성과급제가 도입되어 실적을 높이면 월급을 두세배가 아니라 수십배를 더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상교육이 1년 더 확대되고 전국 도처의 애육원 육아원이 새로 건설되었고 고아들의 기숙학교인 초등학원과 중등학원이 최신식 시설로 전국 도처에 일떠서고 있다. 
해외교포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뿐만 아니라 평양에 유희장, 물놀이장, 동물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과학기술전당 등 북 주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학습도 할 수 있는 최신 시설들이 계속 건설되어 북 주민들의 생활의 질을 높여내고 있으며 평양에 정치사상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온 북의 각 지역 간부들도 이를 참관하고 나서 자신들이 일한 보람으로 국력이 커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또 자신들의 지역에도 그런 시설들을 건립할 꿈을 키우게 하여 지방까지도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한다.
  
 [↑ 위의 동영상은 최근 국내 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소개한 북 기록영화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어'의 한 대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의 최고지도자로서 국방과 경제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지도를 단행한지 만 6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정치를 그대로 변함없이 이어나갔다는 사실이다. 위의 동영상만 봐도 머리 스탈일에서부터 주민들을 만날 때 표정까지도 같았다. 외모는 김일성주석을,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많이 닮았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11월 29일 오전 2시 48분(평양시간) 평양의 교외지역에서 화성-15형이 거대한 발사폭음과 불줄기와 후폭풍을 내뿜으며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다. 최대고각발사체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서 화성-15형은 최고정점고도 4,475km까지 상승하여 950km를 53분 동안 비행하였고, 동해의 설정된 수역에 탄착하였다. 화성-15형 전투부에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가 장착된다고 한다. 화성-15형의 사거리는 14,000km로 추산된다. 화성-15형은 100% 조선의 힘과 기술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발되었다고 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따라서 2018년에도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뜻을 이어나가려는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모든 성과를 이제 북미대결전을 끝내는데로 집중시켜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7년 이전에는 사상정치사업과 경제분야에 대한 현지지도 많았는데 지난해는 경제지도가 퍽 줄었다. 대신 박봉주 총리나, 최룡해 부위원장 등이 단독적으로 경제단위에 대한 현지요해사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연초부터 어린이 가방공장 등 경제단위 현지지도도 하기는 했지만 2017년 김정은위원장은 군사분야에 주력했다. 단 몇 발만으로 미국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수소탄을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적으로 시험했고 미 본토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전략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화성-14형, 화성-15형 두 종류나 성공시켰다. 

이럴 경우 미국은 선제타격으로 북을 제압하거나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제재를 기본에 두면서도 끊임없이 선제타격 가능성도 타진하였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김정은위원장은 전쟁도 제재도 북 주민들이 일심단결만 굳게 한다면 얼마든지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과학기술력을 활용하면 실질적으로 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주시여'를 보면 2-3년만에 북 주민들이 보여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열광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김정은위원장이 각 사업장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북 주민들이 열광하는 장면을 이번 영상에서 처음 공개했는데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열열한 장면들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집권 3년 안에 찍은 영상들이었는데도 그랬다. 

[↑ 김정은국무위원장은 전 지도자였던 김정일국방위원장 급서로 북 주민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최고지도자가 되어 북의 전권을 맡아야했다. 나이도 너무나 젊었으며 모든 것이 장막에 가려져 있어 과연 북 주민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낼 수는 있을지, 권력다툼 속에서 확고한 지도력을 장악할 수는 있을지 의문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위의 영상을 보면 2-3년도 지나지 않아 북 주민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외모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북 주민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점도 역할을 했겠지만 단 몇년만에 북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여낸 점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이라는 자긍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어 북 주민들의 그에 대한 열광은 더욱 뜨거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2016년 1월 6일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보도를 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백두산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을 게재했다. 이때부터 최후승리를 앞당길 결정적 조치들을 단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집권 초부터 최후승리를 앞당겨내자고 호소한 바 있다. 북이 말하는 최후승리는 사회주의 이상사회건설, 북미대결전 종식, 조국통일 이 세가지를 이루는 보이는데, 북 주민들의 지지를 최대의 높이까지 높여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힘을 모아 최후승리 목표를 향해 더욱 빠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2017년 두 차례의 수소탄 시험과 두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한 무지막지한 공세적 행보도 그런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6년부터 최후승리를 앞당길 구체적 조치들을 단행할 결단을 내렸던 것 같다. 2016년 수소탄 시험 이후 선군915전차의 위력적인 도하훈련과 사격훈련, 오차 1미터 안 초정밀 타격이 가능한 200km사거리 300미리 대구경방사포, 훨씬 위력이 커진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완벽한 성능을 보여준 번개 지대공 미사일 등 각종 전술무기들을 줄줄이 공개하였다. 이는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통일성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2017년 미국이 전쟁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미사일 장착용 수소탄과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한 것이다.

미국이 이제 평화적으로 살고자 한다면 북과 우호관계를 맺거나 선제타격으로 제압하거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미국은 지난해 실제 심각하게 전쟁을 고민했다. 항공모함을 3척이나 동시에 한반도 수역으로 끌고 오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것이다. 하지만 2106년부터 북이 보여준 전술무기들과 2017년 저 엄청난 전략무기들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김정은위원장은 2018년은 아마 이보다 더 강력한 행보를 보여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일심단결력이 더 높아지는 등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는 앞으로 질주할 일만 남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 2017년 이전보다 그 후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 의지는 열 배 이상 더 뜨거울 것이 확실하다. 이젠 경제적으로만 풍요로워진 것이 아니라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강국이라는 자부심까지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력이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어떤 행보도 이제는 주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봐야한다. 
지난해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수소탄을 두 번이나 시험할 결심을 내렸을 때 전쟁까지도 예상했을 것이다. 화성-12형은 정상각까지 쏘아 일본열도를 두 번이나 넘겼다. 태평양의 괌 미군기지까지 북 미사일 사정권에 완전히 들어갔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다만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고각발사만 하고 정상각발사는 하지 않았다.

만약 북이 그런 전략무기들을 정상각도로 쏘아 미국 앞바다를 뒤집어 놓거나 태평양 상에 수소탄을 터트리는 시험이라도 단행하면 미국은 정말 북과 전쟁이 아니면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체결 담판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반도는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 휴전 즉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정전협정 상태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핵미사일을 중국, 러시아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로 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18년 최후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 초강경 행보가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대책을 잘 수립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군사적 제재와 압박은 더욱 더 강한 북의 반발만 초래해왔다는 이미 증명된 사실을 잘 분석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장하고 있듯이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에 기초한 대화의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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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한반도 평화 새 지평 열자

평창, 한반도 평화 새 지평 열자

등록 :2018-01-01 09:24수정 :2018-01-01 09:31

위기 가시지 않는 한반도
세계가 평창올림픽 주목
군사긴장 악순환 끊으려면
북 도불-한미훈련 중단해야
메티스 국방, 훈련 연기 시사
200개의 천연색 엘이디(LED)가 장착된 픽셀스틱(라이트 페인팅 도구)을 들고 지나가면 공중에 빛이 뿌려진다. 카메라 셔터를 4초 동안 열어 공중에 뿌려지는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사진과 평창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를 함께 담았다. 평창/김명진 이정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개의 천연색 엘이디(LED)가 장착된 픽셀스틱(라이트 페인팅 도구)을 들고 지나가면 공중에 빛이 뿌려진다. 카메라 셔터를 4초 동안 열어 공중에 뿌려지는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사진과 평창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를 함께 담았다. 평창/김명진 이정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분단의 한반도, 그중에서도 분단의 땅 남강원도에 속해 있는 평창은 올림픽 정신에 가장 적합한 개최지다. 올림픽 휴전 기간 동안 의미있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2017년을 뒤흔들었던 한반도 위기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2018년 평창에서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낼 천금같은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고 했다.
‘하나된 열정. 새로운 지평.’ 평창 겨울올림픽(2월9~25일)이 열리는 2018년 새해가 밝았다. 평창에 이어 2020년 여름 도쿄와 2022년 겨울 베이징까지 ‘평화의 제전’은 앞으로 4년간 동북아에서 릴레이로 치러진다. 평화를 향한 열정으로, 냉전의 유일한 섬으로 남은 한반도의 새 지평을 열 기회다.
미국외교협회(CFR)는 2018년 미국이 직면하게 될 ‘8대 안보위협’ 가운데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첫손에 꼽았다.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보면 결코 무리한 평가가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23기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한차례(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11월29일엔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의 도발적 발언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백악관에선 공공연히 ‘선제타격’, ‘예방전쟁’이 거론됐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등 전략자산을 대거 전개시키며 위기감도 키웠다. 한반도는 1년 내내 ‘위기설’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북-미가 실제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유엔 헌장 2조3항은 “회원국은 국제분쟁을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의 근거로 삼는 헌장 41조는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조치”에 국한돼 있다. ‘자위적 차원’의 군사력 사용의 명분이 되는 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란 전제를 달고 있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위기감이 가시지 않는다. 북-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소한 실수와 판단 착오가 언제든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이를 두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잠든 채 걷듯 전쟁으로 빨려들 수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상황의 엄중함은 미 의회의 이례적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회는 지난해 11월14일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권한을 따져묻는 청문회를 열었다. 상·하원을 막론하고 미 의회가 핵무기 사용 문제를 두고 청문회를 연 것은 냉전이 불을 뿜던 1976년 3월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었다.
북-미 사이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실수든 판단 착오든 ‘군사적 옵션’이 가동된다면 한반도는 파멸 수준의 대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에 나선다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모두 파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은 즉각 보복 대응에 나설 것이다. 쉽게 전면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미국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관련 보고서에서 “개전 초기 불과 몇시간 안에 재래식 무기 공격만으로도 최소한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일단 멈춰야 한다. 더이상의 정세 악화를 막고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위기의 한복판에도 기회는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1월13일 만장일치로 ‘평창 올림픽 휴전 결의’를 채택했다. 올림픽 개막 1주일 전인 2월2일부터 패럴림픽(3월9~18일) 폐막 1주일 뒤인 3월25일까지 유엔 회원국은 ‘적대행위’를 멈춰야 한다. 결의 채택 당시 마리아 테오필리 유엔 주재 그리스 대사는 “차이와 불평등, 갈등으로 점철된 세계가 잠시나마 휴전에 합의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19일 미국 <엔비시>(NBC)와 한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평창 올림픽 뒤로 연기할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12월29일(현지시각) 기자 간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 연기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 정부가 발표할 것”이라며 “우리는 늘 훈련 일정을 조정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통상 매년 2~4월 열렸던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은 ‘올림픽 휴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52일간의 ‘올림픽 휴전’이 만들어낸 평화의 문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한-미 연합훈련 연기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맞물려야 한다. 이럴 경우 잠정적이나마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이 성사될 수 있다.
낙관은 금물이다. 어렵게 대화가 시작돼도 당장 손에 쥐는 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암울한 전망을 할 필요도 없다. 경험도 있다. 냉전체제 해체 직후인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2년 동안 남북은 모두 8차례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이를 통해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17일)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1991년 9월27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년 12월13일)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발효(1992년 2월19일) 등을 이끌어냈다. ‘한반도 평화여건 조성’과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긴장완화 조치’를 이유로 키리졸브연습·독수리훈련의 전신인 팀스피릿 훈련을 1992년 중단한 게 결정적이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91년 중반께 이듬해 팀스피릿 훈련 중단을 결정해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 등 숱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기회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2018년 평창을 시작으로 앞으로 4년간 동북아 3국을 돌며 열리는 ‘평화의 제전’을 버팀목 삼아 긴 안목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한국적 아니라 통일국적을 갖고 싶다”

 딸 방한과정 지켜본 조선적 재일동포 배안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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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30  23: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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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 만에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방한한 배안 씨가 21일 카페 '연필1/3'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방한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토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약속한지 4개월여가 흐른 지금,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1945년 해방 이전 일본에 거주하다 일본에 남게 된 재일동포들은 일본 국적이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경우 기존 조선적(朝鮮籍)을 유지하고 있고, 대체로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 밀접한 조선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다.
조선적 재일동포로서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배안(60) 씨는 일본으로 돌아갈 비행편 마저 하루 연기하고 21일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만큼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포들이 많이 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 눈치보고 있다. 와도 괜찮냐? 아무리 문 대통령 시대로 바뀌었다 한들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실제로 조선학교 출신의 배안 씨의 딸이 한국영사관에서 ‘김’ 영사와 면담하며 들은 이야기는 ‘문재인 정부 시대가 맞나’ 귀를 의심할 정도다.
“도쿄에 사는 딸이 11월 초에 여행증명서 신청을 했었는데 11월 20일 (도쿄)영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와서 “좀 편하게 이야기 하자”. 이름도 밝히지 않고 “김”이라고 했다고 딸한테 전화가 왔다. 너무 수상하지 않나? 딸이 아무리 30대여도 딸이라서 내가 같이 가겠다고 따라갔다.”
배 씨가 동행한 딸의 한국영사 면담에서 ‘김’ 영사는 “조선적이라고 누구나 다 입국시키라는 말이 아니다”면서 “총련 활동 하거나 친북인 경우, 우리는 그 동포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살림이 바빠서 국적에 신경 쓸 수 없었던 분들, 아예 한국에 갈 필요가 없어서 별로 바꿔야 된다는 의식이 없었던 분들을 이야기한 거다”라고 했다.
더구나 “당신처럼 간부는 쉽게 입국 못 한다”며 배 씨의 인권협과 평통협 활동을 문제삼고, “배 선생님 아버지는 조총련의 간부였다. 아버지가 간부라면 배안 씨도 따님도 간부가 된다. 우린 그렇게 본다”고 말했다.
특히 “앞으로 머지않아 총련이 붕괴돼 나가리라 우리는 보고 있다. 아주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다”며 “총련과 조선학교를 떼어놓을 수 없는가? 배 선생은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본다”고 노골적으로 회유하기도 했다.
‘김’ 영사는 조선적을 유지하겠다는 배 씨의 딸에게 “비현실적이다”며 사실상 한국 국적으로 전환을 압박했다. 배 씨는 “보통 해외로 나가면 거주국 국적을 갖는데, 우리가 일본 국적을 안 가지는 것은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의 국적을 갖기 싫기 때문”이라며 “한국이라는 것은 사우스(south)에 지나지 않지 않나. 사우스 국적을 가지기 싫다. 더군다나 한국의 복지제도를 우리가 적용받고 사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무슨 혜택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남 또는 북의 어느 쪽 국적을 갖고 싶은 게 아니라 통일국적을 갖고 싶다”며 “그게 우리한테 가장 어울린다. 지금 내가 조선적을 한국적으로 바꿔놔도 뭐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냥 한국에만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그것 뿐이지 다른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배 씨의 딸은 ‘신원진술서’와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유서’를 제출하고 ‘특별한’ 영사 면담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실현을 위한 모임’은 지난 7월 국민인수위원회가 설치된 ‘광화문 1번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선적 재일동포의 조건없는 자유왕래를 위한 정책제안서’를 제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신원진술서는 ‘조총련 경력’ 란이 있고, 기간, 직책, 교육및 상벌관계를 상세히 써야 한다. ‘북한방문 경력’과 ‘북한선박 승선관계’ 란에는 기간과 초청자, 목적을 각각 써넣게 돼 있다. 이 외에도 배우자와 부모, 3촌 이내의 북한 및 해외거주 가족, 친교인물 등을 상세히 기록해야 하고 초청자와 발급신청 이유, 대한민국내 여행일정도 적어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실현 모임’은 29일 “포용과 존중의 정신으로 동포들을 맞이해야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 “현 정부가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을 위해 여행증명서 발급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발생했던 신원조회를 이유로 정보제공강요 등 변칙적인 정보수집을 금지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렇게 어렵게 발급받은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도 유효기간 3개월에 단 한 차례 6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을 뿐이다. 배 씨는 “여행증명서는 일회용이 아니라 적어도 1년 짜리 복수로 나와야 되고, 좀더 영사관 측에서 재일동포들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또한 “이제까지 못 들어간 사람들에 대해서 저런 식으로 동포들을 파헤치거나 조직이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흔들기 하거나 그거를 좀 안 해 줬으면 좋겠다”며 “그게 싫어서 한국에 아예 안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나”라고 짚었다.
나아가 “한국적 소지자와 똑같이 여권을 발급하면 된다”고 제시하고 “북쪽은 한국적이라도 여권을 발급해준다”고 전했다.
배 씨는 “조선학교에 대해서도 건드리지 말라고 써달라”고 각별히 부탁하며 “동포들의 재산이고 민족의 재산이지 않나. 그것을 쉽게 영사관에서, 한국 정부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학교 입학응원대’가  지난 4월 가나가와조선초급학교 입학식장에서 신입생들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제공 - 배안]
배 씨는 가나가와 현의 경우 조선학교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원이 잘 진행되고 있다며 “NGO들, 그러니까 보통사람들을 연결시켜 ‘비빔밥 네트’, ‘더불어 투어’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조선학교 입학응원대’ 그런 것도 보통사람들이 시작했다”고 자랑했다.
가나가와 현 일본시민들로 조직된 ‘조선학교 입학응원대’는 2003년부터 조선학교 입학식 날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통학로에서 지켜보며 격려하는 것으로 시작돼 올해 14년째 입학식을 함께 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옛날 총련과 민단이 생겼을 때는 동포들 한사람 한사람이 힘이 없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다 혼자 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이런 피라미드형 조직 안에 묶어두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식으로 거미줄처럼, 평탄한 관계로 이어주면 동포사회가 더 힘을 가지게 되고, 더 펼쳐질 수 있다.”
변화된 일본사회와 재일동포 사회의 추세에 발맞춰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배 씨는 “평소 NGO 활동을 많이 하면서 일본사람들에게 재일동포, 조선학교 상황에 대해서 알릴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꽉막힌 북-일 관계에 대해서는 “그냥 만경봉호 왔다갔다 하기만 하면 많이 변할 거다”며 “우리 동포 1세들이 거의 80,90이 되셨다. 그분들이 아들딸 보고 싶고 손자손녀 보고 싶은데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고 중국 공항을 거쳐가야만 한다. 중국 공항도 불친절하고 보통이 아니다. 그곳을 지나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참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12월 17~19일 광주에서 열린 ‘제7차 한중일 YMCA 평화포럼’에 일본 요코하마YMCA 대표단의 일원으로 11년 만에 방한한 배 씨는 “사실은 촛불 때 오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못 왔다. 시청 앞을 지나가면서도 좀 눈물이 날 듯했다”며 “남자들이 멋있어졌고, 그리고 10년 동안 못 와서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좀 밝아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자꾸 와야만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줄 수가 있고, 또 다음 과제가 보이고, 또 숙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그러지 않나. 안 오면 과제도 안생기고, 문제 해결이 안 되고 그렇지 않나”라며 “내년에는 적어도 두 번 올까 한다”고 말했다.
배안 씨는 21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에 자리한 몽당연필이 운영하는 카페 ‘연필1/3’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쾌활한 웃음과 아픈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으며, 이 자리에는 배 씨의 여동생과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이 함께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영사관에서 서류 작성하고 11년 만에 방한
  
▲ 카페 ‘연필1/3’에서 가진 배안 씨와의 인터뷰에는 배 씨의 여동생과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이 배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언제 한국에 왔나?
■ 배안 : 16일 들어 와서 오늘(21일) 저녁에 비행기 타고 간다.
□ 몇 년 만에 방한한 건가?
■ 11년 만에 왔다.
□ 그동안은 안 왔나, 못 왔나?
■ 아예 신청도 안 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못 들어 갈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했고, 그럴 필요도 별로 없었다.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 일도 있었고, 가족일도 많았다.
□ 이번에 입국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 그냥 요코하마 영사관 가서 신청서만 제출했다. 신원확인서는 가족관계를 다 쓰라고 해서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다 썼다. 그리고 한국 국적으로 바꾸지 않은 이유서를 작성했다. 북으로 갔던 기록도 다 쓰라 하더라. 총련에서 일을 했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슨 직책으로 했는지도 쓰라고 했다. 다 쓰지는 않고 공백으로 남긴 데도 있었다.
□ 이번에 들어온 주요한 일은?
■ 요코하마 YMCA 운영위원으로서 외국인들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이번에 광주에서 YMCA 국제포럼을 하는데 주제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다. 한‧중‧일 YMCA들이 모여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앞으로 각국에서 평화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자는 포럼이었다. 포럼은 17일부터 19일까지 열렸다.
□ 광주 국제포럼 참가는 성과가 있었나?
■ 아주 많았다. 이번에 젊은이들, 새세대들을 내세워주고 새세대들이 기존세대와 같이 평화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가 많은 화제거리가 됐다.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도 평화가 좀 실감이 안 난다. ‘평화가 위태롭다’ 할 적엔 북핵이라든지 미사일이라든지 그런 식으로만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일본에서 평화를 위해서 자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불공정이나 격차, 그런 것을 없애 나가는 게 오히려 평화를 쟁취하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기존세대들은 남북이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한국측의 제안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일본에서 해야 할 일이 뭔가?’ 하는 의식을 가지게 됐다. 굉장히 성과가 많지 않았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에게 남북통일은 별로 화제거리가 되지도 않고 고민해 보지도 못하지 않나. 그런 기회가 없으니까. 이번에 그런 의미에서는 내가 잘 간 것 같다.
그리고 5.18국립묘지를 방문하고 기념관도 가보고 영상도 봤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몰랐다고, 이런 일이 광주에서 일어났다는 것 자체를. 일본사람들 보기엔 영상이 좀 그렇지 않나 궁금했었다. 묘를 옮기는 장면 다 나오고, 그때 희생된 분들 사진 나오는 것 보니까. 일본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자기 나라 군대가 자기 국민을 지켜야 되는데 학살하느냐”고.
영사관 ‘김’의 딸 호출에 따라나선 엄마
  
▲ 배안 씨는 자신의 딸이 한국 입국을 위해 한국영사와 면담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인터뷰를 자청한 이유는?
■ 포럼 마치고 바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딸 때문에 일이 생겨서, 이건 좀 이야기해야 싶어 가지고 하루 연장시켰다.
□ 딸의 입국 과정에 문제가 있었나?
■ 하도 어이가 없어가지고.(웃음) 도쿄에 사는 딸이 11월 초에 여행증명서 신청을 했었는데 11월 20일 (도쿄)영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와서 “좀 편하게 이야기 하자”. 이름도 밝히지 않고 “김”이라고 했다고 딸한테 전화가 왔다. 너무 수상하지 않나? 딸이 아무리 30대여도 딸이라서 내가 같이 가겠다고 따라갔다.
그랬더니 우선 들어갈 때 옥신각신 했다. 소지품을 맡기라고 했다. 이제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직원하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영사님께서 이렇게 하면 일이 진전이 안 된다 하신다”고 해서 “아, 우리 영사 만나는 거야?” 그랬다. 결국 짐을 맡기고 올라갔다.
영사가 “아, 어머님 같이 오셨어요?”, “배안 선생님, 안 그래도 뵙고 싶었어요” 이러는 거다. 그리고 나의 경력,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
“문 대통령께서 조선적 동포들도 자유롭게 입국시켜야 한다고 말씀했지 않느냐”고 했더니 “조선적이라고 누구나 다 입국시키라는 말이 아니다”면서 “총련 활동 하거나 친북인 경우, 우리는 그 동포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살림이 바빠서 국적에 신경 쓸 수 없었던 분들, 아예 한국에 갈 필요가 없어서 별로 바꿔야 된다는 의식이 없었던 분들을 이야기한 거다”고 하더라.
그리고는 “당신처럼 간부는 쉽게 입국 못 한다”고 하더라. 그때 나도 허가가 안 나온 상태였다. 나에게 평통협 최신 회의록을 가지고 있다면서 내가 인권협회와 평통협 이사를 하고 있지 않냐고 하더라. 더구나 “배 선생님 아버지는 조총련의 간부였다. 아버지가 간부라면 배안 씨도 따님도 간부가 된다. 우린 그렇게 본다”고 말하더라.
□ 총련 간부의 자녀와 손녀까지 간부로 간주한다는 영사의 발언은 놀랍다. 영사관 측에서 총련 간부로 파악하고 있다는 건가?
■ 그래서 내가 인권협 경우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일본 사람을 포함해서 도와달라는 사람 도와주는 것이다. 평통협은 그냥 통일을 위한 단체이지 않느냐. 나는 정치사상이나 신앙 같은 걸 따져서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정치적인 이슈가 있는 통일단체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의 국적을 갖기 싫다”
  
▲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 영사관에서 발급받는 '대한민국 여행증명서'와 일본으로 입국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 발급받는 '재입국 허가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딸도 간부라는데, 영사 면담에서 국적을 바꿔야 된다고 이야기했나?
■ 영사는 조선적으로 있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딸이 아예 한국적을 선택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보통 해외로 나가면 거주국 국적을 갖는데, 우리가 일본 국적을 안 가지는 것은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의 국적을 갖기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것은 사우스(south)에 지나지 않지 않나. 사우스 국적을 가지기 싫다. 더군다나 한국의 복지제도를 우리가 적용받고 사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무슨 혜택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적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남북의 국적을 갖는 소원을 안고 살고 싶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더니, “비현실적이다”. 우리 딸은 조선적인 채로 해외로 자주 나간다. 스위스로 가고 네델란드도 가고, 미국도 가고. 브라질도 가고 그렇다. 거의 대부분 나라 가는데 유독 한국만 못 들어간다.
그러니까 딸이 “한국 안 가도 된다. 굳이 한국 갈 필요도 없고 안 해주면 안 해주는 거지, 권리를 가지고 싶을 뿐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나라도 조국이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갈 필요는 없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가기 싫다”고 했다.
나도 남 또는 북의 어느 쪽 국적을 갖고 싶은 게 아니라 통일국적을 갖고 싶다. 그게 우리한테 가장 어울린다. 지금 내가 조선적을 한국적으로 바꿔놔도 뭐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그냥 한국에만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그것 뿐이지 다른 것은 별로 없다.
□ 결국 영사관에서 발급받은 것이 ‘대한민국 여행증명서’인가?
■ 3개월 짜리다. 3개월 동안 한 번이고, 체류기간은 6개월이다. 3개월 안에 한 번 들어오면 6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 나도 이번에 새로 받았다. 일본 정부가 발급하는 재입국허가서는 6년짜리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면 재입국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 딸도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나?
■ 결국은 받았다. 그제 19일 들어왔다.
□ 결과적으로 모녀 모두 3개월짜리 ‘대한민국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왔는데, 영사와의 면담 과정이 문제였지 이전에 비해 발급 자체가 거부되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진전 아닌가?
■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돼서 굉장히 변하기는 변했다. 그런데 변하는 것에 대해서 겁이 나는 것 같다. 정보를 얻어내자고 그런 것 같다. 필요하지도 않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꺼내려고 하고.
“총련과 조선학교를 떼어놓으려 하더라”
  
▲ 요코하마 조선초급학교 수업 모습. 한국 영사는 총련과 조선학교를 떼어놓자고 제안했다. [사진제공 - 배안]
□ 딸의 영사 면담 과정에서도 그런 게 있었나?
■ 총련과 조선학교를 떼어놓으려 하더라. “앞으로 머지않아 총련이 붕괴돼 나가리라 우리는 보고 있다. 아주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다.” “총련과 조선학교를 떼어놓을 수 없는가? 배 선생은 그 정도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본다.” 이런 식이다.
총련이 어떻게 무너지나? 보통 동포들은 그냥 커뮤니티로만 생각한다. 동포들이 서로 만나고 싶고, 우리 음식을 같이 먹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고, 춤도 추고, 아이들 공연하는 것도 보고 싶고, 다만 그것 뿐이다.
정치적 의식이 아주 깨어난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냥 동포들은 서로가 만나고 싶고 우리말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가령 우리말과 일본말의 비빔밥이 되더라도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은 서로 동포밖에 없지 않나. 그런 마당을 이야기하는 거다.
총련이라고 특별한 것 없고, 민단 동포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에 우연히 어떻게 소속이 됐냐 하는 것만 가지고 동포사회를 이해하면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그것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래서 “일주일만 조선학교 와보라. 오면 확 변할 거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씩씩 웃기만 하더라.
□ 조선학교를 총련과 떼어놓을 수 있나? 배 선생의 영향력이 그렇게 큰가?
■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하하. 그것은 총련이 결정하는 것도 민단이 결정하는 것도 하물며 한국 정부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조선학교는 동포들의 학교니까 동포들이 결정하는 거지, 우리는 동포들의 의사에 따를 뿐이다. 동포들의 결심에 의해서만 우리학교가 지켜진 거다.
너무 어이없다. 그리고 민족교육을 한다면서 설맞이 공연 같은 경우에 우리 딸도 갔는데 “아버지 원수님, 장군님 하면서 애들이 울고 춤도 추고 그렇게 하는 거 보니까 너무 불쌍하다”고 하더라.
그냥 입을 다물었지만, “너네들은 동포 유학생들이 오면 다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해내고 사형까지 선고하고 그랬잖아. 스스로 조국을 알고 싶다고 들어오는 유학생들을 그렇게 해놓고 그것은 무슨 이유냐?”고.
조국에서 학교 짓는데 보탬이 되라고 학교에 돈도 보내주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재일동포의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그렇게 지원해준 것 사람으로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한국이 그런 것 한 번이나 해줬나?
지금은 교과서 내용을 재일동포들이, 우리학교 선생들이 만들지 않나. 그것을 만들기 위한 필요한 자료와 그 자리를 마련해준 거다. 북에서 쓰는 똑같은 교과서는 일체 안 쓰지 않나.
외국인학교법안이라는 것을 일본 국회에 상정시켜서 우리학교 없애려고 얼마나 날뛰었나. 게다가 한국정부가 압력까지 가하면서 조선학교 없애려고 했는데 어떻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님” 할 수 있겠나.
우리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북쪽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걸 모른다. 내가 북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렇게 커피 한잔 사주더라도 감사하는 게 사람인데 그 많은 돈을... 눈물이 나려 한다.
아무튼 보니까 샘이 나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어렵고 악의 축이라고 불리는 나라를 조국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한국을 고국이라고 하지 조국이라고 하지도 않고 그게 좀 샘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동포들이 원래 국적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냥 ‘너 국적이 뭐니, 그러면 우리 편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안 하지 않나. 특히 아이들 세대는 그렇다. 한 세대가 다르니까. 일본 국적이더라도 그냥 동포는 동포인 거다.
그런 것을 다 하나하나씩 분단시켜 가지고 동포들이 힘을 모으지 못하게 하고 모이지도 못하게 하고, 그게 목적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름을 다 댄다. 한국적으로 바꾼 총련 관계 사람들 이름을.
“좀더 영사관 측에서 재일동포들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
3개월짜리 단수 여행증명서를 1년짜리 복수 여행증명서로

  
▲ 배안 씨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조선적 동포에 대한 한국영사관의 자세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정부는 바뀌었지만 실제로 영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이나 조선적 동포를 대하는 자세는 별로 변화가 없다는 판단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여행증명서가 나왔지 않나?
■ 조금 나아진 것 같다. 그렇지만 11년 전에도 더 심하게 당했지만 결국 나왔다. 그런 점에서는 답보인 거다.
□ 정권 교체에 따른 기대감, 더구나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도 해서 동포사회 분위기나 방문 신청 상황도 바뀌고 있나?
■ 동포들이 많이 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 눈치보고 있다. 와도 괜찮냐? 아무리 문 대통령 시대로 바뀌었다 한들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소문들이 잠깐잠깐씩 나가지 않나. “신문당했다. 한국적으로 바꾸라고 강요당했다”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가니까 한국을 안 나오려 한다.
□ 실제로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나?
■ 늘어나고 있다.
□ 그들도 딸과 같은 영사 면담과정을 거치나? 아니면 딸이 특수한 경우인가?
■ 특수한 것 같다. 요새 이렇게까지 당한 사람은 별로 없다더라. 내가 이야기를 하니까 놀라더라. 요새는 면담하더라도 쉽게 하고 전화로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영사 면담은 일체 없었다.
□ 딸 보다는 사회활동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아는데 뒤바뀐 것 아닌가?
■ 지역에 따라서는 민단과 총련이 담을 쌓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마당이 많이 있고 그런 이벤트에 영사관에서 사람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사는 가나가와현에도 그런 마당이 있어 영사관에서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조금은 아니까 여행증명서가 쉽게 나왔지 않을까. 아마 그런 것 같다. 외국인 지원도 하고 한국사람들 많이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아니까.
또 내가 떠들면 시끄럽게 되지 않나. 하하하. 우리 딸 같은 경우는 뭔가 꺼낼 수 있지 않나 꿍꿍이가 좀 있었던 것 같다. (영사 면담에) 내가 같이 안 갔다면 정말 “나 안 가도 돼”하고 끝났을지 모른다.
□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 여행증명서는 일회용이 아니라 적어도 1년 짜리 복수로 나와야 되고, 좀더 영사관 측에서 재일동포들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 이제까지 못 들어간 사람들에 대해서 저런 식으로 동포들을 파헤치거나 조직이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흔들기 하거나 그거를 좀 안 해 줬으면 좋겠다. 그게 싫어서 한국에 아예 안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나.
나아가서는 한국적 소지자와 똑같이 여권을 발급하면 된다. 북쪽은 한국적이라도 여권을 발급해준다.
특히 조선학교에 대해서도 건드리지 말라고 써달라. 동포들의 재산이고 민족의 재산이지 않나. 그것을 쉽게 영사관에서, 한국 정부가 건드리면 안 되는 거다.
□ 돌아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행을 권유할 의향이 있나?
■ 할 것이다. 자꾸 와야만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줄 수가 있고, 또 다음 과제가 보이고, 또 숙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그러지 않나. 안 오면 과제도 안생기고, 문제 해결이 안 되고 그렇지 않나. 내년에는 적어도 두 번 올까 한다.
“만경봉호 왔다갔다 하기만 하면 많이 변할 거다”
새로운 바람, 가나가와현의 ‘비빔밥 네트’
  
▲ 비빔밥 네트는 2014년 7월 첫 학습회로 박영이 감독을 초청해 영화를 감상하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 배안]
□ 아베 정부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재무장을 강화하는 추세다. 일본 동포사회나 일본 사회의 기류는 어떤가?
■ 우리 주변에는 아베를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 어떻게 저 사람이 정권을 지키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일본이 투표율이 낮다. 20프로대 밖에 안 된다.
좀 진보적인, 보수라고 해도 좀 나은 그런 당에 대해서 기대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깨지고 깨지고 그런 상황이니까. 확실히 일본사람들이 좀더 나은 정치정당을 바라는 것 같다. 마음은 있지만 일본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잘 못하는 국민이다.
좌파거나 운동권에 있는 분들, 노동운동 하는 분들이 중심이 돼 가지고 조선학교를 지원했었는데 가나가와 현에서는 NGO들, 그러니까 보통사람들을 연결시켜 ‘비빔밥 네트’, ‘더불어 투어’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조선학교 입학응원대’ 그런 것도 보통사람들이 시작했다. 정당이나 그게 아니라.
□ 북한과 일본의 관계도 막혀 있다.
■ 북‧일관계는 딴 거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만경봉호 왔다갔다 하기만 하면 많이 변할 거다. 우리 동포 1세들이 거의 80,90이 되셨다. 그분들이 아들딸 보고 싶고 손자손녀 보고 싶은데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고 중국 공항을 거쳐가야만 한다. 중국 공항도 불친절하고 보통이 아니다. 그곳을 지나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참 힘들다.
만경봉호만 왔다갔다 하면, 1세분들 그냥 싣고 들어가 가족방문하고 들어올 수 있다. 또 일본 사람들도 북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일단 어떤 나라인지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이웃나라인데 이렇게까지 단절이 돼 있어서 되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많다.
특히 젊은 세대들, 조선학교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일본학교 아이들이 자꾸 왔다갔다 하면서 친근감이 생길 거고, 그리고 신뢰감이 생길 거고, 나아가서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를 맺을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 재일동포 사회하면 민단과 총련이 먼저 떠오르는데 ‘비빔밥 네트’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단체들이 일본에 많이 있나?
■ 옛날 총련과 민단이 생겼을 때는 동포들 한사람 한사람이 힘이 없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다. 지금은 다 혼자 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이런 피라미드형 조직 안에 묶어두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식으로 거미줄처럼, 평탄한 관계로 이어주면 동포사회가 더 힘을 가지게 되고, 더 펼쳐질 수 있다.
일본사람들한테 재일동포 사회가 폐쇄적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런 형식이 바뀌어지면서 일본 사람들과도 더 연대할 수 있고 이해를 깊일 수 있고 생각한다.
비빔밥 네트 같은 경우는 가나가와현이 좀 특수한 지대라서 돼 나가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들, 일본사람들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 다 놀란다. 왜냐하면 요코하마 중심의 가나가와현에 NGO들이 많고, 괜찮은 NGO들이 아주 연결이 잘 돼 있다.
조선학교 문제도 “조선학교 아이들이 힘들다. 어렵다” 하면, “조선학교가 어렵다 한다. 조선학교 위기에 처해 있다 한다. 우리 뭐 해야 되지 않나” 해서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대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다 퍼져나가는 거다. 평소 NGO 활동을 많이 하면서 일본사람들에게 재일동포, 조선학교 상황에 대해서 알릴 수 있다.
조성금 문제 같은 것도 위기는 기회다. 이렇게 위기에 처하니까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본사람들이 이름도 밝히지 않고 학교에 와서 돈을 주고 간다고 한다. 보통 포럼이나 심포지엄을 하면 30명 정도 모이는데 NGO 네트워크로 조선학교 문제에 관해서 포럼을 하자고 했더니 150명이 모였다. 행사장에는 평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촛불 때 오고 싶었다.. 내가 광주에 올 자격이 있다”
  
▲ 지난 17-19일 제 7차 한중일 YMCA 평화포럼이 광주에서 열렸다. 배안 씨는 일본 YMCA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사진제공 - 배안]
□ 오랜만에 입국했는데, 소감이나 좀 바뀐 게 있는지?
■ 오랜만에 오니까 너무 좋고, 그동안 통역할 일이 없어서 우리말이 많이 서툴렀는데, 어제 오늘로 감을 좀 잡은 것 같다.
여기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남자들이 멋있어졌고, 그리고 10년 동안 못 와서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좀 밝아진 것 같다.
□ 촛불과 정권교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그런 것 같다. 사실은 촛불 때 오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못 왔다. 시청 앞을 지나가면서도 좀 눈물이 날 듯했다. 역시 우리 민중들이 보통 민중들이 아니고 또 우리 재일 동포들도 보통 동포들이 아니다. 서로가 손을 잡고 좀더 좋은 남북, 코리아, 그리고 동북아시아를 만들기 위해서 재일동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와야 한다.
□ 일본에서 촛불시위를 지켜보았나?
■ 많이 보고 싶었다. JTBC 보고, 오마이뉴스 보고... 아줌마들 떠드는(발언하는) 것이 되게 재미있었다. 얼마나 자리를 같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배 선생도 왔으면 무대에 올라 발언을 했을 것 같다.
■ 하하하. 나는 평범하다. 뭐하고 싶냐면, 집에 가서 남편한테 밥해주고 싶다. 그냥.
□ 이번 방한에서 불편함은 없었나?
■ 광주에서 어제 올라올 때 비행기를 못 탈 뻔 했다. 탑승 마지막 절차를 밟는데 이거(여행증명서)를 보이니까 안 된다고. 이거는 모른다고. 이거 가지고 못 탄다고 해서 옥신각신했다.
이거 어디서 났냐고 묻길래 영사관에서 내준 거잖냐고, 한국 정부가 내준 건데... 10년도 넘으니까 재일동포들의 여행증명서를 모르는 거다. 익숙하지 않은 거다. 정말 못 탈 뻔했는데 비행기가 연착돼서 30분을 옥신각신하다 간신히 탔다.
난리를 좀 쳤다. 그랬더니 “가세요”. 한국은 난리쳐야 되고 떠들어야 된다. 일본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떠들수록 안 해준다.
  
▲ 한중일 YMCA 평화포럼 참가자들은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제공 - 배안]
□ 이번 방문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 5.18 국립묘지를 참배한 것이다. 80년에 조대(재일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5.18이 났다. 5.18이 되자마자 광주에 대해 알리기 위해 우리는 맨날맨날 전단지를 뿌리고 단식투쟁하고 했다. 도쿄 한복판에서 단식투쟁도 하고 데모도 하고...
그때 그걸 했을 때는 ‘내가 이 일을 해가지고 광주에 도움이 되나’ 그렇게 많이 생각했다. 옛날에 광주에 갔을 때도, 이번에도 그 일을 해서 내가 광주에 서있는 거다. 그래서 내가 광주에 올 자격이 있었잖느냐 생각이 든다.
광주에 계신 분들한테 그걸 이야기하니까 눈물을 흘리신다. “우리가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외롭지 않았다. 먼 일본에서 우리를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재일동포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모자랐지만 같이 싸운 동포들이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