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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아이들 죽인 현장실습, 정말 달라질까?

[기자의 눈] 칼 빼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와 우려
2017.12.01 17:16:16




지난 11월 19일,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일하던 고 이민호(19) 군이 프레스기에 목이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6일, 박모(19) 군이 자신이 일하던 안산 공장 옥상에서 투신해 중태에 빠졌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전주 여고생(19)이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이들은 모두 현장실습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일하던 이 군은 작업장에서 혼자 일했다. 현장실습생은 선임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규칙을 회사가 어겼다. 노동자 한 명의 임금이 곧바로 회사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프레스기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이 군이 주변 동료들(현장실습생)에게 발견되기까지 5~6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공장 옥상에서 투신한 박 군은 안산 반월공단 내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10명이 조금 넘는 노동자가 전부다. 사장은 3년 전 이 업체를 세웠다. 박 군은 선임에게 욕설을 듣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체 사장은 욕설이 전혀 없었다고 해명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했다고 덧붙였다.  

직접적인 투신 원인은 이처럼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이곳 안산 반월공단은 소규모 업체들이 모여 공단을 이룬 곳이다. 불법파견의 온상으로 불리는 곳으로, 작업조건이나 급여 등이 매우 열악하다. 노동부의 감시도,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 군이 다니는 학교는 이곳에 많은 학생들을 현장실습 보낸다. 그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어디냐는 식이다.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상담사로 일하던 홍은주(가명) 양은 일명 '욕받이' 부서에 배치됐다. 인터넷 해지 방어 부서로, 기존 베테랑 상담사들도 꺼리는 업무다. 고객이 해지하려고 하면, 이를 막는 게 홍 양의 업무였다. 그렇다 보니 손님에게 육두문자를 듣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홍 양은 그 부서에 배치됐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 11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특성화고 실습생 고 이민호 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앉아있다. ⓒ연합뉴스
'묻지마 취업률‘에 목매는 학교들, 왜? 

현장실습을 하다 죽은 학생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생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 실습생은 지금까지 뇌사상태라고 한다.

학생들이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구조는 오래전부터 고착화됐다는 방증이다. 통계자료에도 나와 있다. 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특성화고 출신 취업률은 2012년 41.5%에서 2015년 62.6%로 증가한 반면,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급감했다. 질 좋은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취업률이라는 실적이 급한 학교는 학생들을 사실상 목숨 걸고 근무해야 하는 곳으로 몰아넣었다는 얘기다.  

학교가 취업률에 전전긍긍하는 까닭은 돈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사업 대상은 '취업률 45.5% 이상인 학교'로 제한돼 있다. 취업률 기준에 못 미치는 학교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취업률은 말 그대로 '취업률'만 본다. 학생이 실습하는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 노동조건 등은 따지지 않는다.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취업률이 미미하거나 일정 규모 이하인 특성화고는 종합고(인문계와 전문계가 같이 있는 학교)에 통폐합을 권고하고, 취업률에 따라 지원을 차등하는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대로면 아이들은 점점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현장실습제도, 칼 빼든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그나마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해결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특성화고 학생의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하지 못한다.  

다만 정부는 예외적으로 실습 지도와 안전 관리 등이 확보된 현장에는 현장실습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우수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을 각 학교에 제공하고 해당 기업에 대해선 다양한 행정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현재 고교생 실습이 이뤄지고 있는 모든 현장을 전수 점검해 학생의 인권보호와 안전 현황을 중점 확인한 뒤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각 학생들의 복교를 조치키로 했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도 손질해 학생의 현장실습 자율성을 부여하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부과키로 했다. 취업률 중심의 학교평가와 예산지원 체제의 개선도 약속했다.  

이러한 개선안은 학생들의 작업현장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조치를 조금 더 일찍 했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생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지 않고, 산업을 중심에 둔 정책이 빚은 참화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리라 믿는다. 문 대통령은 1일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 학습권이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관계 당국에 지시했다.

앞으로도 학생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위한, 사람 중심의 정책이 보다 많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들의 업무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라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누군가 프레스기에 끼여 사망할 것이고 상담을 하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는 노동자들은 또 나온다. 

교육 당국과 학교 역시 작업 현장의 열악함, 위험성은 그대로 둔 채, 즉 노동하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덮고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그저 '폭탄 돌리기'일 뿐이다. 

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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