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도로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지판이다. 미세먼지 좋음, 오존 좋음. 좋은데 현황판을 왜 설치하는지. 대기 중 미세먼지 상태와 오존 상태로 적확하게 표현해야 맞다. [영상=정수남 기자]

[스페셜경제=정수남 기자] 세종대왕은 왕위 재임 25년 되던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했다.

당시 집현전 학자 등이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고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이는 당시 4대부 등 양반이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 폄하한 데서 드러난다.

조철현 감독이 2019년 자신의 작품 영화 ‘나랏말싸미’에 이를 잘 그리고 있다.

극중 세종대왕(송강호 분)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극은 세종대왕이 결국 신미 스님(박해일)의 도움으로 훈민정음을 만들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역 사거리, (초)미세먼지 보통. 위 표현보다는 낫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 송파구 잠실역 사거리, (초)미세먼지 보통. 위 표현보다는 낫다. [사진=정수남 기자]

훈민정음 창제 500년이 훌쩍 지난 1900년대 주시경(1876년 11월 7일~1914년 7월 27일) 선생은 현재 한글을 완성했다.

그는 “오늘날 나라의 바탕을 보존하기에 가장 중요한 나라의 말과 글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도외시한다면, 나라의 바탕은 날로 쇠퇴할 것이요, 나라의 바탕이 날로 쇠퇴하면, 그 미치는 바 영향은 측량할 수 없이 되어 나라 형세를 회복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이에 우리의 말과 글을 강구하여 이것을 고치고 바로잡아, 장려하는 것이 오늘의 시급히 해야 할 일”이라며 한글 완성에 주력했다.

치석 케어 치약. 우리나라에는 치석을 보호하는 치약도 있다. 아울러 한글이면 한글, 영어면 엉어로 표기해야지 한글과 영어 혼용은? [사진=정수남 기자]
치석 케어 치약. 우리나라에는 치석을 보호하는 치약도 있다. 아울러 한글이면 한글, 영어면 엉어로 표기해야지 한글과 영어 혼용은? [사진=정수남 기자]

이후 한글 지키기는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가 잇는다. 2019년 엄유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해진(김판수 역), 윤계상(류정환) 씨 등이 열연한 ‘말모이’가 이를 잘 그리고 있다.

현재 전국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인지, 미국인지, 영국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 상점의 간판이 영어라서다. 상품명도 영어가 대부분이다. 2020년 말부터 지속해 오른 기름값이 부담스럽다는 문구를 일부 운전자가 주유구에 새겼다. 영어 대신 ‘기름 절약, 마지막 한방울까지’로 표기하면 없어 보일라나? 현재 국내 유가는 정부가 지난해 8월 유류세 50%를 내리면서 안정세다. 아울러 국산차묭은 모두 영어다. 해방 이후에는 대부분 우리말 차명을 사용했으며, 대우자동차가 1997년부터 2002년꺼까지 생산한 중형세단 누비라가 마지막 한글 차명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현재 전국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인지, 미국인지, 영국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 상점의 간판이 영어라서다. 상품명도 영어가 대부분이다. 2020년 말부터 지속해 오른 기름값이 부담스럽다는 문구를 일부 운전자가 주유구에 새겼다. 영어 대신 ‘기름 절약, 마지막 한방울까지’로 표기하면 없어 보일라나? 현재 국내 유가는 정부가 지난해 8월 유류세 50%를 내리면서 안정세다. 아울러 국산차묭은 모두 영어다. 해방 이후에는 대부분 우리말 차명을 사용했으며, 대우자동차가 1997년부터 2002년꺼까지 생산한 중형세단 누비라가 마지막 한글 차명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현재 전국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인지, 미국인지, 영국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 상점의 간판이 영어라서다. 상품명도 영어가 대부분이다. 2020년 말부터 지속해 오른 기름값이 부담스럽다는 문구를 일부 운전자가 주유구에 새겼다. 영어 대신 ‘기름 절약, 마지막 한방울까지’로 표기하면 없어 보일라나? 현재 국내 유가는 정부가 지난해 8월 유류세 50%를 내리면서 안정세다. 아울러 현재 국산차명은 모두 영어다. 해방 이후에는 시발, 새나라 등 대부분 우리말 차명을 사용했으며, 대우자동차가 1997년부터 2002년꺼까지 생산한 중형세단 누비라가 마지막 한글 차명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다만, 세종대왕과 주시경 선생이 환생해 현재 우리의 우리말 씀씀이를 보면 통곡하고 통탄할 수준이다.

최근 카메라로 잡았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글공원. 우리말 모음과 자음을 엮어 공원을 만들었다. 호머 헐버트(1863년 1월 26일~1949년 8월 5일) 선생의 부조도 보인다. 그는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활동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교육자, 언론인, 역사연구가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 중구에 있는 한글공원. 우리말 모음과 자음을 엮어 공원을 만들었다. 호머 헐버트(1863년 1월 26일~1949년 8월 5일) 선생의 부조도 보인다. 그는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활동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교육자, 언론인, 역사연구가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 중구에 있는 한글공원. 우리말 모음과 자음을 엮어 공원을 만들었다. 호머 헐버트(1863년 1월 26일~1949년 8월 5일) 선생의 부조도 보인다. 그는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서 활동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교육자, 언론인, 역사 연구가다. [사진=정수남 기자]

호머 헐버트 선생은 1886년 조선에 입국해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호머 헐버트 선생은 원활한 수업을 위해 개인 교사를 고용해 한글을 배우면서 3년 만에 상당한 한글 실력을 갖추게 됐고, 1889년 국내 최초의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해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한글 연구와 확산에 기여했으며, 대한제국 말기 국권 수호를 적극 도왔으며 우리의 독립운동도 지원했다.

호머 헐버트 선생은 1908년 귀국 이후에도 한국에 관한 글을 지속해 발표했고, 1919년에는 3·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내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 국빈으로 방한했으나 일주일 후 병사했다.

호머 헐버트 선생은 고국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외국인이 이럴진대, 하물며….

서울시, 종로구, 구세군 등이 서울 중구 새문안로 일부 구간을 한글 가온길로 2010년대 만들었다. 한글가온길 역시 영어가 받치고 있다. 초석 왼쪽 부분에 스토리텔링, 프로젝트가 보인다. “행복한 동행, 구세군과 함께”는 “구세군과 행복한 동행‘으로 하면 충분할 듯.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시, 종로구, 구세군 등이 서울 중구 새문안로 일부 구간을 한글 가온길로 2010년대 만들었다. 한글가온길 역시 영어가 받치고 있다. 초석 왼쪽 부분에 스토리텔링, 프로젝트가 보인다. “행복한 동행, 구세군과 함께”는 “구세군과 행복한 동행‘으로 하면 충분할 듯. [사진=정수남 기자]
20대 여성이 한글 가온길 취지 등을 살피고 있다. [사진=정수남 기자]
20대 여성이 한글 가온길 취지 등을 살피고 있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교통공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역명 병행 표기로 입찰해 역삼역을 센터필드라고 병기했다. 센터필드는 역삼역 인근 상권 명칭이라는 게 역관계자 설명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교통공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역명 병행 표기로 입찰해 역삼역을 센터필드라고 병기했다. 센터필드는 역삼역 인근 상권 명칭이라는 게 역관계자 설명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교통공사가 기존 신천역(잠실새내), 성내역(잠실나루)을 순우리말로 2010년대 중반 변경했다. 이들 두역은 여전히 행정구역상 신천동에 있다. 동명은 그대로인데, 역명만 바꾸고. 어불성설이다. 잠실도 누에집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국어사전에 있는 70%의 낱말이 한자다. 모두 바꿀 수 없다면, 차리리 그대로 두는 것도 이용자 혼선을 줄이는 방법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서울교통공사가 기존 신천역(잠실새내), 성내역(잠실나루)을 순우리말로 2010년대 중반 변경했다. 이들 두역은 여전히 행정구역상 신천동에 있다. 동명은 그대로인데, 역명만 바꾸고. 어불성설이다. 잠실도 누에집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국어사전에 있는 70%의 낱말이 한자다. 모두 바꿀 수 없다면, 차리리 그대로 두는 것도 이용자 혼선을 줄이는 방법이다. [사진=정수남 기자]

한편, 프랑스인은 자국어를 세계 최고 언어로 자부한다. 거리에서 영어 간판을 쉽게 볼 수 없다. 최근에는 상당히 개선했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관광객이 영어로 길 등을 물으면, 현지인은 프랑스어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