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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6일 금요일

[단독] 퇴사할 때 천만원 내라? 약손명가 ‘갑질’에 경종 울린 법원

 

  • 최지현 기자 cj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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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3-01-06 17:35:29
  • 약손명가 ⓒ약손명가 홈페이지 캡쳐

     

  • 국내 대표적인 피부미용 컨설팅 주식회사인 ‘약손명가’가 퇴사하는 직원들에게 그간 교육비 명목으로 천만원을 내라고 요구하다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들의 퇴사의 자유를 사실상 제약해 온 ‘약손명가’의 부당한 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3민사부(부장판사 김우현)는 약손명가 본사와 가맹점주 A씨가 퇴사하려는 직원 B씨를 상대로 낸 위약벌 등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기각을 결정했다. 소송 비용도 모두 원고인 약손명가 본사와 가맹점주 A씨가 부담하도록 했다.

    그동안 비슷한 내용으로 약손명가가 제기한 소송들에 대해서는 정식 재판을 하지 않고 화해권고를 해온 법원이 처음으로 원고 패소를 결정한 것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약손명가는 전국에 100개가 넘는 가맹점을 두고 있을 만큼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회사다.

    일을 그만 두려면 천만원 이상 내라는 회사의 ‘갑질’

    직원 B씨는 약손명가 가맹점에서 2016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약 4년간 근무를 한 끝에 퇴사를 했다. 수습관리사부터 일을 시작해 부원장까지 오를 정도로 열심히 일한 그였지만, 주말에도 쉴 수 없는 과로와 원장의 일까지 대신해야 하는 부당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퇴사를 하려는 B씨에게 약속명가 본사와 가맹점주 A씨가 대뜸 위약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청구 금액은 각각 천만원, 490만원이었다. B씨가 4년간 근무해 받은 퇴직금이 천만원 정도 됐는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토해내라는 것이었다. 

    약손명가 측이 그 근거로 내민 건 앞서 B씨와 작성한 두 개의 서류였다.

    첫 번째는 B씨와 약손명가 본사를 상대로 쓴 서약서다. 거기에는 ‘본인은 원장 실기반 과정을 수료한 때부터 1년의 기간 내에 회사의 각 지점에서 퇴사하는 경우, 회사가 각 지점의 원장이 되는 조건으로 본인에게 무상 교육을 해준 것에 대한 위약벌로 원장실기반 교육비에 상당한 천만원을 회사에게 지급할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두 번째는 B씨가 가맹점주 A씨를 상대로 쓴 확약서다. 이 확약서에는 ‘본인은 원장 실기반 과정을 수료한 이후 OO지점에서 퇴사하는 경우(단, 원장이 되는 경우는 제외한다) OO지점 원장이 본인에게 원장 실기반 교육 과정에서 지원한 교육비 일체를 OO지점 원장에게 반환할 것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현재 약손명가는 가맹점주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회사가 연구한 피부 관리 과정, 방법 등을 교육하는 ‘원장 실기반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승진을 위해서는 교육 과정 이수가 필수적이므로 부원장이었던 B씨도 이 교육 과정에 참여하면서 해당 서약서와 확약서를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교육 과정은 그 ‘수료’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았고, 회사에서 교육 종료를 명하지 않는 이상 B씨는 무한정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국 B씨는 교육 과정을 수료하지 못하고 지쳐 퇴사를 하게 됐다. 당연히 가맹점주인 원장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약손명가 측은 퇴사하려는 B씨에게 위약금을 지급하고 교육비를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B씨가 부당하다며 이를 거부하자, 약손명가 측은 법원에 소송장을 냈다. 청구한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연 12%의 이자를 내라고도 요구했다.

    이에 B씨의 소송대리인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20조에 따라 이 사건의 서약서 및 확약서는 그 자체가 무효라고 반박했다. 설령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수료’를 하지 않았으므로 위약금 지급이나 교육비 반환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진급이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서약서는 불공정하며 무효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약손명가 측이 ‘무상교육’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교육을 빙자한 수익사업’이라고 지적했다.

    1심은 B씨 측 소송대리인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약손명가 측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교육 과정을 마쳤다는 의미의 ‘수료’가 교육 과정 도중에 퇴사한 B씨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서약서 및 확약서는 원장 실기반 과정을 ‘수료’하는 것을 전제로 위약금 지급 의무 및 교육비 반환 의무를 정하고 있다”며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원장 실기반 과정을 수료했음을 인정할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고가 원장 실기반 과정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수료를 하지 않고 교육 도중에 퇴사한 경우에도 위약금 지급의무 내지 교육비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할만한 특별한 사정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발하며 약손명가 본사와 가맹점주 A씨가 항소를 했지만, 항소심 역시 이를 모두 기각했다. 1심과 같은 이유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서약서 및 확약서에서 ‘수료한’이라는 문구를 명확히 사용하고 있는 이상, 원고들 주장과 같이 수료 이전 퇴사한 경우에도 피고가 위약벌 지급 의무 내지 교육비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기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돈을 내며 퇴사하거나 퇴사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약손명가 노동자들


    이번 판결은 약손명가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계약을 강요하고, 이를 근거로 사실상 퇴사하지 못하고 계속 일하게 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돈을 내면서 퇴사하게 해 온 약손명가의 행위에 경종을 울린 첫 번째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21년 1월 법원은 다른 소송 사건에 대해 화해권고를 내린 바 있다. 이번 사건과 똑같이 약손명가 본사와 가맹점주가 퇴사를 하려는 직원에게 각각 천만원, 110만원을 위약금과 교육비 반환 명목으로 내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법원은 약손명가 본사에게 390만원을, 가맹점주에게 11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중재’하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민사소송법 제225조에 따르면 법원은 청구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건의 공평한 해결을 위해 화해권고 결정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법원이 ‘서로 양보해서 해결하는 게 어떻겠냐’는 취지로 권고를 하는 것이다. 이 권고는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그동안 ‘을’인 노동자들은 ‘갑’인 약손명가 본사와 가맹점주의 위세에 눌려 약손명가 측이 요구하는대로 돈을 납부하거나 화해권고 결정에 따른 금액을 지급해왔다. 그게 아니면 자신들의 의사대로 퇴사를 하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화해권고라는 결과물은 또 다른 노동자들에게 ‘약손명가 측의 요구는 정당하다’는 근거로 악용됐다. 약손명가 측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도 이전 화해권고 결정문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는 ‘공평한 해결’이 아니었음이 이번 새로운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현재 약속명가 측은 2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헌법 제15조는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여기에는 직장 이전의 자유, 즉 퇴사의 자유도 포함된다. 법원의 이번 기각 판결로 지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 최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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