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0년 11월 29일 일요일

“33년의 기다림, 지금 곧 찾으러 갑니다”

 


[수정] KAL858 가족회.진상규명위, 33주기 희생자 추모식 거행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0.11.29 16:11
  •  
  •  수정 2020.11.29 22:14
  •  
  •  댓글 1
 

SNS 기사보내기

    
[캡쳐사진 - 통일뉴스]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29일 오전 서울 천주교 예수회센터에서 개최한 ‘제33주기 KAL858기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임옥순 가족회 회장이 성명서를 읽고 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우리 KAL858기 가족들은 정부가 가족의 이런 아픔을 이해하고 이번에 시작되는 수색 인양을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닌 오직 가족의 아픔을 풀어준다는 마음으로 임해주길 바란다.”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강대길 천주교 예수회센터 214호에서 개최한 ‘제33주기 KAL858기 사건 희생자 추모식’은 “33년의 기다림, 지금 곧 찾으러 갑니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정부의 미얀마 현지 수색에 대한 기대감 속에 진행됐다.

가족회와 진상규명위는 임옥순 가족회 회장이 낭독한 성명서에서 “KAL858기 탑승자의 가족들은 고통과 기다림 속에 미얀마의 바다에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의 수색 조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우리는 이 수색 조사가 적법하고 정의롭게 그리고 실수 없이 진행되어 진실이 인양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의 재조사 당시 KAL858기 추정 동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해저 바위로 판명됐던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

이들은 “과거 정부와 달리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 준 현 정부에 감사와 지지를 보내는 동시에 이 사건을 수색하고 진상을 밝히는 전 과정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며 만약 KAL858기 동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도 “동체 수색과 인양.조사 작업을 계속”해달라고 요구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진상규명위 소속 채희준 변호사가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진상규명위 소속 채희준 변호사는 경과보고에 나서 지난 1월 대구MBC가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서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를 발견했다는 보도부터 11월 25,26일 미얀마를 공식방문한 김건 외교부 차관보가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가 미얀마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한 사실 관계 확인 노력에 대해 미얀마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고, “미얀마측은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표명하였다”는 외교부의 발표까지를 개괄했다.

채 변호사는 “가족들은 KAL858기 추정 동체의 인양 조사에 대한 현 정부에 대한 진정성과 의지를 믿고 있다”면서 “만 33년 115명의 희생자 가족 어느 누구도 단 한조각의 유품조차 찾지 못했다”며 “1987년에 발생한 KAL858기 사건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경과 보고 요지]

- 1월말,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미얀마 앞바다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KAL858기 추정 동체를 촬영, 방송했다. 이로써 다시 한 번 이 사건이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 방송 이후,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즉각적인 인양과 조사를 요구했다.

- 2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설훈 의원이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서 동체확인, 유해수색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 3월말, 외교부는 30년 경과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KAL838기 사건 관련 공문서 2천여 건을 공개했고, 이후 박강성주 박사가 이를 분석해 통일뉴스에 연재했다.

- 5월, MBC가 좀더 진전된 영상을 보도하면서 KAL858기 동체가 폭파된 것이 아니라 동체착륙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안에 유해와 유품이 남아있을 가능성 크다고 보도했다.

- 5월, 문재인 대통령 ‘정부 차원의 미얀마 현지조사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양국 정부가 협의의 속도를 내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 8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관련 질의가 나왔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얀마 당국과 협의하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터져 진전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미얀마 측과 협의해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11월 25,26일 외교부 차관보 미얀마 공식 방문해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가 미얀마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한 사실 관계 확인 노력에 대해 미얀마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였으며, 이에 대해 미얀마측은 적극적인 협력 의지를 표명하였다”고 발표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던 박창진 호루라기재단 집행위원장과 막내동생이 스텔라데이지호 2등항해사였던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연대사를 하고 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던 박창진 호루라기재단 집행위원장은 연대사에 나서 “용기냄의 힘듦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스텔라데이지호의 유가족 여러분들의 힘든 과정과 그 용기에 저는 큰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아직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고난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고 더 단단히 나아간다면 분명히 그 답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막내동생이 스텔라데이지호 2등항해사였던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이제 4년째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며 “KAL858기는 33년째 싸우고 있다”고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KAL858기 실종자들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정부는 정확하게 KAL858기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소수인원만 참석한 추모식에 많은 정치인 등이 영상으로 격려사와 연대사를 보내왔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인해 연대사와 격려사는 영상으로 상영됐다. 청와대 시민사회 비서관을 지낸 강문대 변호사가 정부 진상조사단 구성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KAL858기 사건에 대한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강문대 변호사는 “이 정부 들어 청와대 사회조정 비서관으로 재임하던 중 KAL기 동체의 모습이 촬영되었고, 유족들께서 청와대로 와서 최소한 동체가 맞는지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다행히 대통령님도 같은 생각을 하셔서 정부내 진상조사단이 구성되는 결실을 맺게 됐다”고 경과를 전했다.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의 현지 조사를 위해 정부내 진상조사단이 구성된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관계자로부터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강 변호사는 “내년 34주기에는 동체와 진상이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위로전문을 보내와 “유가족 여러분의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위로하고 “유해 수습과 동체 수색 등 충실한 재조사가 이뤄지도록 유가족 여러분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저와 민주당도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정동영 전 의원은 “33년 세월, 그동안 가족들이 흘리신 눈물들을 다 모으면 강물이 되었을 시간”이라며 “이제 그 긴 가디림을 세월을 끝내가 영혼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라고 위로하고 “115분의 희생이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공작원에 의한 소행이 아니라 또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면 그것을 벗겨내고 밝혀낼 책임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설훈, 서동용,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배진교 정의당 의원, 표창원 전 의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박강성주 박사, 이규연 JTBC PD 등이 영상으로 격려사와 연대사를 전했다.

추모식 참가자들은 33송이 장미를 헌화하고 고인들 한명 한명을 영상으로 회고했다.

33주기 추모식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대표 김정대 신부의 사회로 진행됐다고 유튜브를 통해 생중. [캡쳐사진 - 통일뉴스]
33주기 추모식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대표 김정대 신부의 사회로 진행됐다고 유튜브를 통해 생중. [캡쳐사진 - 통일뉴스]

추모식 사회를 맡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대표 김정대 신부는 “불행하게도 작년 추모식 이후 새로운 회장단이 선출되었는데 그 후에 다른 가족회가 만들어져서 가족회가 분리되었다. 그리고 추모식마저 함께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며 “가족호와 진상규명위원회는 오랫동안 KAL858기 사건에 진상규명 활동에 관심을 가져준 많은 시민들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아울러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하여 많은 가족회 회원들이 모일 수가 없는 상태”라며 “오늘 우리는 이 추모식을 영상으로 중계하는 가운데 조촐하게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은 가족회 유튜브 계정을 통해 생중계됐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년 11월 28일 토요일

[곽노현 특별 인터뷰①] “윤석열, ‘판사 사찰문건’ 보자마자 찢어버렸어야 했다”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0-11-28 12:31:56
수정 2020-11-28 14:57:1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진보적 법학자로 시민사회활동을 활발히 해온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지난 19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한 사찰 정보문건 30건을 받았다.

곽 전 교육감은 '민중의소리'와 직접 만나 사찰 피해 당사자이자 오랜 기간 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에 관해 연구했던 법학자로서 이번 사찰정보 공개에 대한 평가부터 최근 사찰 논란이 불거진 검찰의 문제점까지 긴 이야기를 나눴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김철수 기자

"감개무량하고 짜릿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심리전' 대상이었던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자신을 불법사찰했던 국정원 문건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데 대해 이같이 심경을 밝혔다.

26일 삼청동에 위치한 개인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난 곽 전 교육감은 "사찰당한 사람이 그 사찰 문건을 보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나 했겠느냐"면서 "민주화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사찰자료를 본 소감에 대해서는 "내용은 아연실색할 정도로 기가 막혔다"면서 "무책임한 '카더라' 내용으로 첩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을 기록한 것을 보니 서글펐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한편으로는 이런 문건이 수십년이 지나서 본인 외에 공개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이미 사찰 피해자가 사망했을 수도 있는데 해명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야사를 구성하는 등 악용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곽 전 교육감과 함께 사찰정보 공개 청구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내 파일 내놔라' 시민행동은 고 문익환 목사, 장준하 선생, 이소선 여사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사찰 대상자에 대한 자료공개 청구도 유족의 동의를 얻어 추진하고 있다.

"국정원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비로소 시작됐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김철수 기자

지난 2017년 9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진보 인사에 대한 '심리전'을 펼친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심리전의 대상에는 현재 국정원장인 박지원 전 의원을 비롯해 초기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됐던 곽 전 교육감도 포함돼 있었다. 국정원의 불법사찰과 정치공작이 심증에서 확증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에 지난 보수정권에서 탄압받은 각계 인사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국정원을 상대로 사찰 자료를 당사자에게 공개하고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내 파일 내놔라' 캠페인이 시작됐다.

국정원의 자료 공개 거부에 곽 전 교육감,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 등이 대표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6일 국정원에 정보공개를 명령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내파일 내놔라' 시민행동 캠페인이 시작된 지 3년만, 곽 전 교육감이 불법사찰 피해를 받은 지 9년여만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를 법원이 심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보공개법'(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정보공개의 범위를 규정한 4조에서 '보안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에서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의 분석을 목적으로 수집하거나 작성한 정보'에 대해서는 예외로 두고 있다. 국정원이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국가안전보장 목적'에 의한 정보수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부의 소관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안보'라는 이유만 대면 사법마저도 '프리패스'였던 국정원의 정보수집 활동이 사법부의 판단 앞에 놓인 것이다.

또다른 쟁점은 당시 공직에 있던 곽 전 교육감에 대한 사찰이 공직자 신원조회권을 가진 국정원의 적법한 정보수집 활동이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1, 2, 3심 모두 적법한 정보수집 활동이 아니라고 곽 전 교육감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에 대해 곽 전 교육감은 "시민들이 '내 파일 내놔라' 운동으로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업무를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법원에 제공했고, 법원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사법부가 이제부터 국정원 정보기관의 정보업무 수행의 적법성을 심사해서 통제해야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국정원은 지난 25일 사찰정보 공개 청구에 대응하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정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향적인 태도다.

이에 대해 곽 전 교육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데 대해 국정원도 더이상 달리 행동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정원의 대응은 미흡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신속하고 전향적인 건 맞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전향적 태도에는 국정원 개혁의 성과라고 봤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훈 전 국정원장이 임명되고, 일성으로 정치사찰부서, 국민감시부서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해당 인력을 재배치하고, 정보요원의 기관 출입을 금지했다"면서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과 차이나는 검찰의 개혁의지...'재판부 사찰'로 드러나"

곽 전 교육감 등 사찰 피해 당사자가 사찰 자료를 직접 받아보게 되고, 국정원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또다시 사찰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과 함께 개혁의 대상이 됐던 검찰이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것이 최근 밝혀진 것이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김철수 기자

이에 대해 곽 전 교육감은 국정원과 검찰의 개혁의 차이를 차이를 비교하면서 "국정원이 검찰과 달리 개혁 수준은 좀 더 나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집행 정지와 징계 청구를 발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감찰 결과 '재판부 사찰'이 있었다고 밝혔다.

법무부 감찰 결과 지난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현 수사정보담당관실)이 조국 전 장관 가족 의혹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들을 상대로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물의 야기 법관' 여부 등이 기록된 문건을 작성해 윤 총장에게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곽 전 교육감은 '재판부 사찰'에 대해 "'우리법연구회'라는 특정단체에 소속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는 부분이 가장 문제"라며 "'우리법연구회'라는 판사 단체를 적대시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심리적 바탕이 있는 거다. 일종의 낙인 찍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을 윤석열 검찰총장은 알고 있었을텐데 그것을 보고받은 순간에 즉시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찢어버렸어야 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했던 판사 사찰을 여전히 하고 있냐고 호통을 쳤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3년 반이나 지냈다는 건 너무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곽 전 교육감은 '재판부 사찰'이 행해진 데에는 윤 총장을 비롯한 기존 검찰 조직이 가진 잘못된 사법 철학이 배경에 깔린 것이라고 봤다.

그는 "사법부의 판단을 그 판사의 정치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정치성향이 법리를 압도한다는 철학을 가진 것"이라며 "스스로 사법의 정치화를 용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와 권력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법이 아니라 권력과 정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보고 있다"며 "모든 판결을 정치적 이념으로 채색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곽 전 교육감은 '재판부 사찰'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수집한 데 대해서도 "대검이 공판부 검사로부터 자기들이 겪은 판사들의 정보를 일괄 수집한 거 아닌가"라며 "판사의 성향이나 취미가 어떻게 '수사정보'가 되느냐. 판사성향정보실이나 재판예단정보실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만약에 판사들의 정보를 악용하게 되면 법관의 독립에 심대한 침해가 되는 것"이라며 "'이 판사 뒷조사 좀 해봐' 이렇게 된다면 아주 명백한 검찰에 의한 법관독립 침해가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꾸로 법원행정처가 검사 정보 수집했다면 검사들이 가만 있었겠나"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곽노현 전 교육감의. 연구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6ⓒ김철수 기자

'재판부 사찰'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공개된 정보를 수집한 내용으로 관행적 업무'라는 이유로 사찰이 아니라는 반발이 나오기도 한다. 윤 총장 스스로도 "사찰이 맞는지 국민들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문건 전문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이에 대해 곽 전 교육감은 "인권감수성이 둔감하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개된 정보라고 해도 민감정보인 '우리법연구회' 소속 여부를 정보 수집 항목에 하나로 설정한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면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공소유지를 위한 통상적인 일이었다고 하면 얼마나 인권감수성이 없다는 건가"라고 말했다.

곽 전 교육감은 또 '판사를 위협할 목적도 없고, 위협할 위치도 아니다'라는 반발에 대해서도 "거꾸로 법원행정처가 재판에서 겪은 검사들의 동향을 보고하게 하고,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면 검사들은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정보를 수집해서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대상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곽 전 교육감은 검찰이 스스로 개혁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지원 국정원장 스스로도 '심리전' 피해자로서 국정원 개혁법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반면 윤 총장은 그런 적극적인 입장이 없었다"면서 "사실상 마지못해 쫓아간 것이 '재판부 사찰'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스스로 목을 칠 각오가 있어야 한다"면서 "정의는 실체적 결과 뿐아니라 실현되는 외양까지 갖춰야 공신력이 쌓이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공정성의 외양을 해치는 윤 총장의 행태가 결국 직무정지의 사유가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백겸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범민련의 깃발은 더욱 세차게 나부끼게 될 것이다”

 

[범민련 30주년 기념 인터뷰]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 기자명 이기영 통신원 
  •  
  •  입력 2020.11.28 16:59
  •  
  •  댓글 0
 
권낙기 대표와 인터뷰는 지난 11월 9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근처 중식당에서 진행됐다. 권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다.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권낙기 대표와 인터뷰는 지난 11월 9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근처 중식당에서 진행됐다. 권 대표는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다.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전인미답의 혈로(血路)를 걸어온 범민련”

분단 이후 최초로 결성된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결성 30돌을 맞이하였다. 범민련은 남북해외 동포들의 단일한 민족대단결 조직이며 하나의 강령과 규약을 가지고 활동하는 유일한 거족적인 통일운동 연합체다. 지난 30년간 범민련이 걸어온 노정은 오로지 민족의 자주와 존엄을 지키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참다운 애국애족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누구나 쉽게 결심하고 걸을 수 있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통일애국의 투철한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감히 선택할 수도 선뜻 내디딜 수도 없는 전인미답의 혈로(血路)였다. 그동안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은 온갖 고초와 정치적 박해를 당하면서도 변함없이 애국애족의 한 길을 걸어왔으며 오로지 민족의 자주와 대단합,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지난 30여년간 엄혹한 공안탄압의 정세 속에서도 언제나 범민련을 지키고 범민련과 함께 투쟁해온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일광장은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모임이다.

“범민련 운동은 정당하다”

권낙기 대표는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은 온갖 정치적 박해와 가혹한 탄압이 뒤따르고 가슴 아픈 희생도 각오해야 하는 간고하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면서 “범민련 선배들은 이 길에서 조금도 동요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자주와 민주의 제단에 한 몸을 바쳐왔다”고 범민련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권 대표는 “최근 십수년간 통일운동 과정에서 투옥된 사람이 범민련 간부들 말고 누가 더 있냐”면서 “범민련 운동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권 대표는 지금까지도 일부 통일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범민련에 대해 ‘원칙이 밥먹여주냐’, ‘합법적으로 통일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범민련 활동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범민련도 이제 감옥 안 가고 운동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범민련이 통일운동 대중화를 가로막고 있다’, ‘6.15공동위가 있는데 범민련이 왜 있어야 돼냐’, ‘범민련이 통일운동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등등의 온갖 비난과 문제제기에 일침을 가하면서도 그럴수록 더욱 더 범민련이 분발하고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권 대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의 혁명의 신심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다”면서 어린 시절 불행한 일을 겪으면서 “이건 반드시 해결하고 말겠다는, 바꾸고야 말겠다는 ‘한’에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느 시대를 어떻게 살아왔는가’라고 하는 점에서 ‘시대적 소명’, ‘소명의식’은 대단히 중요하고 이것은 어느 개인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범민련 30주년의 의미는 단지 30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민련의 결성은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결성을 절실히 요구하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를 만드는 인간의 반영이라는 점을 우리가 깊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범민련 결성 30주년’을 맞아 이뤄졌다. 권낙기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월 9일 서울 중구 충무로 근처 중식당에서 진행됐다. 권 대표는 지팡이를 짚는 불편한 몸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 어디든지 한걸음에 달려가서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중 범민련 30주년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해서 재구성했다.

“혁명적 낙관성”

권낙기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권 대표는 운동진영 안에서도 가장 발이 넓고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권낙기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권 대표는 운동진영 안에서도 가장 발이 넓고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 통일뉴스 통신원 : 먼저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권낙기 대표 : 내 소개랄 것은 특별한 건 없지만 조금 이야기하면, 나는 1946년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된 그 이듬해였다. 부득이하게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출신성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좀 독특하다 보니까. 누가 운동을 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 중에서도 집안환경을 제일 먼저 꼽는다.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감옥 가시는 걸 보고, 백부님이 사형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구타하고 끌고 가는 모습을 직접 봤다. 그때는 내용도 알 겨를이 없었지만 그런 과정들이 내가 성장하면서 지금의 권낙기가 되는데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런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집안 사정이라든지 원래 내 기질도 있고, 특수성, 성격 등등 대신 좀 학벌은 없다.(웃음)

다른 친구들 가방 메고 학교 다닐 때 난 중학교 2학년 때 가정형편 때문에 중퇴를 했다. 신문팔이 구두닦이부터 시작해서 인쇄공장, 국수공장 그리고 4부두, 3부두, 2부두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그때 일이 다른 한편으로는 먼 훗날 사고의 지평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경험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감옥에서 출소하신 숙부님 밑에서 첫 심부름을 하면서 요즘 말로 하면 ‘비합법활동’,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숙부님이 1966년도에 평양을 다녀오시고, 그리고 관련된 일이 통혁당이었다.

나는 72년도 통혁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감옥살이를 했다. 1심에서 검사 구형 15년을 받았는데 재판과정에서 난리치고 하니까 무기를 선고받았다. 고법에서 10년으로 감형되고,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사형에서 무기, 어머니는 5년에서 3년 6월, 동생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가 없는 건 당시 비록 전셋집이었지만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나이 어린 두 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참담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놈들의 만행을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평생 한으로 남아있다.

이론 습득 과정을 통해서 갖게 되는 결의도 중요하지만 어떤 생활과 경험 속에서 얻게 되는 어금니 꽉 깨물 수밖에 없는 그런 ‘한’이라고 할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한’, 이건 반드시 해결하고 말겠다는 그런 결심이나 각오 같은 것이 이 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출소해 나와서 민가협 장기수가족협의회 회장, 그리고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나오고 통일광장을 만들었다. 통일광장 만들었을 때 내가 ‘비합에서 합법으로 나오는데 무려 35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스갯소리 겸 우리 역사의 속도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 그만큼 우리 운동이 쉽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마디 덧붙이면 조국통일과 혁명을 말하고 실천하는 우리 범민련 일꾼들은 반드시 머릿속에 기억해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혁명적 낙관성’이다. 혁명적 낙관성이란 혁명의 속도도 때로는 늦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지 그저 입버릇처럼 하는 ‘낙천적인 것’과는 다른 것이다.

“역사의 필연으로 탄생한 남북해외 3자연대 조직 범민련”

2018년 8월 14일, 1차 조국통일촉진대회에서 격려사를 하는 권낙기 대표.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2018년 8월 14일, 1차 조국통일촉진대회에서 격려사를 하는 권낙기 대표.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3자연대 조직 범민련 결성의 의미는?

■ 사실 오늘 인터뷰가 범민련 30돌을 축하하고 인사하는 자린데, 지금까지 내 이야기만 했다.(웃음) 개인적으로 칭찬과 배려에 인색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개인한테는 칭찬이 인색할지 모르지만 조직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싶지 않다.

3자연대 조직 범민련 결성 30돌을 맞이해서 우리가 ‘축하한다’ 내지는 ‘지지찬성한다’, ‘지원한다’라고 하는 개인의 각오를 말하기 앞서, 먼저 30돌 이전부터 범민련의 역사를 역사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건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들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먼저 알아야 되고, 범민련 30돌을 30년이라는 햇수에 현혹되지 말고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3자연대 조직이 만들어졌는지 각자 깊이있게 생각해보면 범민련 조직에 대한 뜻이 더 깊어지리라고 본다.

다 알다시피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 불행의 시대 때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우린 확인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 또는 무장투쟁, 이러저러한 개인과 집단, 모든 걸 헌신 희생 탈탈 털어가면서도 조국과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를 내던졌던 우리 역사가 있다.

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도 바로 탈만 바꿨지 미제국주의라는 새로운 굴레를 덮어쓰고 지금 70년 가까이를 살아오고 있고, 싸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단체들이 양심을 갖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1960년대 통혁당도 비합법 조직이지만 만들어졌고, 인혁당 그리고 남민전, 전략당 등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다. 우리 민중들은 기쁨도 가졌고 또 때로는 탄압에 무릎을 굽혔고, 굽혔던 무릎을 다시 펴고 흟어졌던 사람들을 모으고 다시 구두끈을 매면서 그렇게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군사독재 시절,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으로 세상을 옥죄어 오던 그 때 통일은 말도 못 꺼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하로 비합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그 때, 30년 전에 범민련이라는 3자연대 조직이 탄생했다. 이것은 바로 시대의 반영이었다. 그리고 시대를 만드는 인간의 반영이다.

왜 3자연대를 만들었을까? 남쪽에 허다한 통일운동 단체들이 있었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바로 멀리 앞을 내다보면서 2000년 6.15공동선언이 나오기 10년 전에 준비되고 결성되면서 범민련이 만들어졌다. 일대 사변이었다. 그리고 10년 후에 우리 민족의, 우리 역사의 서광이라 할 수 있는 6.15공동선언이 나왔다.

나는 30년 범민련 역사 속에서 또 하나 시대의 역할과 역사의 반영으로 만들어졌던 범민련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갖고 확인을 받을 수 있고 승리를 예감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범민련은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아왔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온갖 단체, 온갖 활동가, 온갖 양심을 갖고 참된 삶을 살겠다고 나선 청년학생,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범민련을 지켜왔고 키워왔다. 오히려 탄압이 범민련을 키워온 측면도 있다. 범민련은 강인한 의지로 화를 복으로 만들어왔다.

“범민련의 깃발은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더욱 세차게 나부끼게 될 것이다”

2019년 11월,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29돌 기념대회에서 권낙기 대표는 대회 초청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왼쪽부터 권오헌 명예회장,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2019년 11월,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범민련 결성 29돌 기념대회에서 권낙기 대표는 대회 초청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왼쪽부터 권오헌 명예회장,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 범민련 30년을 돌아보면?

■ 범민련은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부른 배를 두드리면서 30년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으면서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지켜왔던 우리 민족의 강인한 의지, 그 결의가 바로 역사에 대한 희망이라고 나는 본다.

그동안 철창 속에서 어금니를 깨물고 결의를 다졌던 우리 선배들, 선열들, 열사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범민련 활동가 중에 감옥에서 투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 되나? 이것이 바로 범민련이다. 불굴의 신념과 통일애국의 의지로 범민련을 지켜왔다.

지난 10월 2일,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故 박정숙 선생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권낙기 대표.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지난 10월 2일,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故 박정숙 선생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권낙기 대표. [사진제공 - 범민련 남측본부]

범민련 30돌을 맞이해서 꼭 인사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의 내가 어디에 있는가?’ 범민련 조직에 있다. 범민련 조직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왔고, 어떤 역사를 가져왔는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범민련 성원들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웃음이 되고, 오늘의 고통을, 슬픔을, 비참함을, 화를 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범민련이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범민련 동지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지지와 성원, 경의를 표한다.

30년 범민련 역사에서 거의 한 10년은 깃대를 꽂는데 다 바쳤다. 내외적으로 법적으로 심지어 같이했던 사람들 한테서도 눈흘김, 비아냥거림, 무시를 당하면서도 범민련 깃발을 지켰다.

615공동선언이 나왔다. 그 좋은 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깃발을 만들었다. 이제 4.27 공동선언이 나왔다.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겠지만 이제부터는 선배들이 꽂아 놓은 깃발과 또 민중들이 만들어 놓았던 깃발은 이제 우리들이 펄럭이게 하자. 우리 모두가 범민련 구성원이다. 범민련이 이제 산들바람이 되고 더 나아가서 광풍이 불어오는 통일의 큰 바람이 되어 주면 좋겠다.

“범민련 사랑합니다”

제20회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서 여는 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제20회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서 여는 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왼쪽부터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임방규 통일광장 전 대표,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자료사진 - 범민련 남측본부]
왼쪽부터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임방규 통일광장 전 대표,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자료사진 - 범민련 남측본부]

□ 범민련 성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 여러분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사탕발림 소리, 겉치레 인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다.

다만 솔직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칭찬하는 것보다 범민련 성원들 스스로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범민련 활동이 1년이 되든 10년이 되든 30년이 되든 관계없이 범민련 조직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30년, 긴 세월이었다. 역사는 점 점으로 이어지고 선이 되듯이 30년 동안 우리 선배 열사들이 얼마만큼 탄압과 고통, 헌신과 희생 속에서 우리들 곁을 떠났나? 또 우리 선배들은 그 사랑하는 후배들이 감옥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이제 30년이 아니라 300년까지도 만들어내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주체로서 우리 한번 힘껏 단결해서 나아가보자.

본래 사람이 둘이 있으면 그림자도 둘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업으면 그림자는 하나다. 우리 조국 땅도 하나고 우리 민족도 하나인데도 지금 우린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하나로 만들자.

다시 한 번 여러분의 투쟁에, 동지애에, 조직애에, 모든 사랑에 성원을 보내고 싶다.

“범민련 사랑합니다!” (끝)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