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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0일 금요일

[세상만사]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세상만사]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입력 : 2022-09-30 04:06


아기가 옹알이할 무렵이면 부모는 매일 거짓말을 한다. 엄마를 말했다, 아빠를 말했다며 호들갑이다. 말을 했다기보다 입을 여닫다가 우연히 비슷한 소리가 났을 뿐인데 부모에겐 자신을 부른 것처럼 들린다. 이때부터 부모는 매일 수시로 아기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엄마, 아빠를 반복한다. 아기는 부모에게 눈을 맞추고 입술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매우 신중하게 잘 듣는다. 그렇게 단어를 습득하고 말을 배운다. 대화할 때도 부모와 아기는 서로에게 집중한다. 아기는 이때 표정에서, 눈빛에서, 발음의 높낮이에서 부모의 감정을 파악하는 법도 배운다.

듣기는 매우 중요하다. 영유아기 언어 습득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커서도 잘 들어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먼 곳을 보거나 두리번거리면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다. 의사소통에도, 관계 형성에도 감점 요인이다. 들을 때는 미리 짐작하고 판단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말을 가로채 이야기를 끊거나 조언이나 언쟁을 준비하려고 하면 상대의 말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말하는 순서를 지켜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뜻이나 의도를 물어보기도 해야 한다.

아기가 자라 또래 집단에 속하게 되면,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듣기보다 말하기에 골몰한다. 자기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욕도 배운다. 호기심으로 배워 활용법을 체득하면서 점점 많이 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등학교 때가 아마 험한 말 사용의 정점이지 싶다. 듣기 거북한 일상의 대화가 이어진다. 듣는 이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욕을 친근한 방식으로 말하는 법도 깨우친다. 사회에 나오면 말하기의 횟수도, 욕의 사용도 줄어든다. 위계 사회에서 또래 집단의 방식으로 상대를 대하다간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말하기는 인격을 나타낸다. 말하는 태도와 단어 선택 등으로 교육의 정도, 성격 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욕설이나 비속어를 자주 사용하면 오히려 자신을 깎아내려 이로울 게 없다. 일정한 지위에 오른 뒤 상대에게 친근감을 주겠다고 가볍게 욕설까지 섞어 대하면 당장은 친해진 것처럼 보일진 모르겠지만 마음을 얻진 못한다. 듣는 사람, 상황 등에 적합한 단어를 써야 한다. 논리적이지 않거나 어설픈 말하기는 듣기와 읽기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읽기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다.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이를 떠나 꾸준히, 많이, 다양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 너머의 삶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경험에 갇히지 않으면서 편견과 아집,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쓰기는 언어의 종합 운용 능력이다. 듣기와 읽기는 정보의 수집과 해석, 말하기와 쓰기는 생각의 결과와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 하나다. 듣기와 읽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말하기와 쓰기를 잘하기 어렵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의 능력이 쌓여야 넓고 깊은 사고력을 갖게 되고 인성과 품성 품위 품격, 교양을 갖출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선 교양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의 본성이라고도 한다. 인은 측은지심,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어질다는 뜻이고, 의는 수오지심, 부끄러워하는 마음, 옮음을 뜻한다. 예는 사양지심, 겸손 배려 등의 예절, 지는 시비지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혜다. 신은 광명지심, 중심을 잡고 빛을 내는 믿음이다. 네 가지는커녕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말하기를 더디 하고, 듣기와 읽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66118

2022년 9월 29일 목요일

포항 참사 진짜 원인, 처참한 현장에 남은 결정적 증거

 

[최병성 리포트] 기후 재난 시대에 맞춰 하천 관리 방식 전면 바뀌어야

22.09.30 05:12최종 업데이트 22.09.30 05:12

▲ 거센 빗물에 제방이 무너져 바닥 콘크리트가 유실되면서 공장이 붕괴했다. ⓒ 최병성

 
거센 물결이 공장을 덮쳤다. 공장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제방이 불어난 빗물에 맥없이 무너졌다. 제방이 사라지자 빗물에 바닥 콘크리트도 유실돼 결국 공장이 붕괴했다.
 

▲ 불어난 빗물에 제방이 붕괴해 물이 밀려들면서 지반이 약해져 신축 빌라가 기울어졌다. ⓒ 최병성

 
숲이 우거지고 졸졸 냇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에 깔끔한 펜션과 카페가 들어섰다. 이 작은 냇물이 튼튼한 신축 건물을 무너뜨리는 거센 물길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튼튼한 제방도 쌓았으니 홍수와는 상관없는 안전한 곳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번에 태풍 힌남노가 쏟아 부은 빗물에 주저앉아버렸다.

지난 9월 6일 힌남노 폭우로 포항시 냉천이 범람해 큰 피해가 발생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물이 밀려들어 7명이 사망했고 포항제철이 침수돼 공장이 멈춰 섰다.

<ins class="adsbygoogle" data-ad-layout="in-article" data-ad-format="fluid" data-ad-client="ca-pub-5296626924422790" data-ad-slot="6512932687" data-adsbygoogle-status="done" data-ad-status="filled"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padding: 0px;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height: 188px; width: 750px;">포항시는 80년 빈도인 시간당 강우량 77㎜로 하천을 설계했는데 이를 초과하는 시간당 110.5㎜ 폭우가 쏟아졌다며 홍수 예방을 위해 상류에 댐 건설을 추진 중이다.</ins>
힌남노가 많은 비를 쏟아 부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참사가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일까? 상류에 댐을 세우면 더 이상 홍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포항 냉천 참사가 인재인 이유

강과 하천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폭이 넓어진다. 그런데 포항시 냉천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하천 폭이 좁아진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구조다.

냉천 제일 아래쪽에 냉천교가 있다. 약 150~160m의 하천 폭이 바로 이 지점에서 90m로 좁아진다. 심지어 하천이 우측으로 급격하게 꺾인다. 1970년대 포항제철이 이곳에 자리하며 하천을 우측으로 밀어낸 결과다. 그러나 1970년 하천 변경 이래 지금까지 이번과 같은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다. 포항제철의 하천 변경 이외에도 더 중요한 홍수 발생 요인이 있다는 뜻이다.
 

▲ 폭 150~160m의 하천이 90m로 좁아지며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에 냉천교가 위치하고 있다. 병목 현상으로 빗물이 범람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냉천교 높이가 낮고 교각이 많아 이번 홍수 사태를 키웠다. ⓒ 카카오맵

 
냉천교와 상류에 있는 원용교의 다리 구조를 비교해 보자. 원용교는 아치형으로 다리의 중앙부가 위로 살짝 올라가 있고 교각이 두 개다. 홍수가 났을 때 빗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원용교 양변의 산책로가 유실될 만큼 폭우가 쏟아졌다.
 

▲ 빗물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아치형에 두 개의 교각만을 세운 원용교.(윗쪽 사진) 반면 하류에 있는 냉천교는 다리 높이가 낮고 교각이 많아 빗물이 흐를 공간이 적다. ⓒ 최병성

 
냉천교는 다리 높이가 낮고 교각이 4개다. 여기에 우측에 콘크리트 기둥이 두 개나 더 있다. 특히 하천 양변에 산책로가 넓고 높게 만들어져 있다. 냉천교 아래로 빗물이 흐를 공간이 좁다.

중장비들이 한창 복구공사 중인 냉천교 아래 우측 산책로에 내려섰다. 냉천교 천장 철골 기둥에 냉장고가 걸려 있었다. 떠내려 온 나뭇가지들도 가득하다.
 

▲ 냉천교 다리에 걸려 있는 냉장고와 나뭇가지 ⓒ 최병성

 

▲ 냉천교 다리에 가득찬 나뭇가지들. 냉천교가 불어난 빗물의 흐름을 방해한 댐이었음을 보여준다. ⓒ 최병성

 
차가 오가는 다리 상판에서 다리를 받치고 있는 철골 기둥까지의 길이를 재보았다. 약 2.5m였다. 가뜩이나 높이가 낮은 냉천교인데 수면 쪽으로 무려 2.5m나 내려 온 다리 구조물이 불어난 빗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댐 역할을 한 것이다.
 

▲ 손을 뻗으면 냉천교 철골 기둥이 닿을 만큼 다리가 낮다. 상판과 철골의 길이는 약 2.5m였다. ⓒ 최병성

 
커다란 중장비들이 냉천교 교각에 걸린 나뭇가지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냉천교와 산책로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는 작은 중장비들이 나뭇가지와 토사들을 연신 퍼내고 있었다. 지난 6일 홍수 당시 냉천교에 막혀 빗물이 흐르지 못한 상황을 가늠할 수 있었다.
 

▲ 냉천교 아래 걸린 나뭇가지들을 중장비들이 끄집어 내고 있다. 냉천교는 물길이 통하는 다리가 아니라 물길을 막는 댐이었다. ⓒ 최병성

 
좌측 산책로에서 살펴 본 냉천교 역시 나뭇가지들로 가득했다. 냉천교 좌측 역시 빗물의 흐름을 막는 산책로가 높고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평소 빗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처럼 폭우로 빗물이 불어나면 산책로는 빗물 흐름을 막아 주변 마을로 넘쳐흐르게 하는 주범이 된다.
 

▲ 냉천교 좌측 산책로가 흙으로 쌓여 있다. 중장비들이 교각에 걸린 나무 기둥을 끄집어 내고 있다. 다리가 낮고 교각이 많아 물길을 막는 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로 침수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이 보인다. ⓒ 최병성

 
주민들이 지목한 MB표 '고향의 강 정비사업'

냉천교가 포항 홍수 참사의 모든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길을 막은 냉천교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중·상류에도 빗물이 제방을 넘는 큰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장 하류의 냉천교부터 상류의 오어저수지까지 냉천을 오르내리며 양변의 홍수 피해 현장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산책로와 운동시설들은 이번 홍수에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하천에 시설물을 많이 설치했으나 대부분 파괴되고 유실되었다. ⓒ 최병성

 
냉천변에는 '고향의 강 정비사업' 홍보물이 세워져 있었다. '2012년부터 8.24km 구간에 297억 원을 투입해 자연형 여울 및 어도 5개와 잔디마당, 게이트볼장, 야구장, 축구장, 여울형 낙차공, 징검다리 등을 설치했다'는 내용이다.
 

▲ 냉천에 약 300억 원을 투입해 하천 정비사업을 했다는 고향의 강 정비사업 안내문 ⓒ 최병성

 
냉천변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고향의 강 정비사업이 이번 홍수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양변에 콘크리트 산책로를 만들었다. 하천변에 넓은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물길과 운동장 경계면도 콘크리트 제방을 쌓았다. 결과적으로 불어난 빗물이 하류로 미끄럼 타듯 빠르게 흘러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 물길 양쪽에 또 다른 제방을 쌓아 빗물이 빠르게 흘러 홍수 피해를 가중시켰다. 결국 이번 비에 처참히 망가졌다. ⓒ 최병성

 
하천변에 나무를 심고 운동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제방이 하천 안쪽으로 옮겨졌다. 그 결과 하천 폭이 8~24m 좁아졌다.
 

▲ 하천 둑에 나무를 심고 운동시설을 설치하면서 하천 폭이 줄어들었다. 빗물이 흐를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운동시설 뒤로 유실된 제방이 보인다. ⓒ 최병성

 

▲ 좁은 하천에 수많은 시설을 설치했다. 이번 홍수에 처참히 망가졌다. ⓒ 최병성

 
약 300억 원을 들여 냉천 변에 만든 운동시설과 콘크리트 산책로들은 이번 폭우로 모두 유실됐다. 하천 시설물들이 홍수 피해를 가속화 했고 그 힘에 의해 모든 시설물들이 파괴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 안내판에 적힌 자연형 여울과 어도도 홍수를 가중시켰다. 냉천은 바닷가에 위치한 하천이라 하천 길이가 짧고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임에도 제방이 낮고 다리도 낮은데, 고향의 강 사업으로 짧은 하천 주변에 집중적으로 너무 많은 시설을 한 것이다.
 

▲ 빗물의 흐름을 막아 제방을 넘쳐 흐르게 한 주범 중 하나인 보와 어도 ⓒ 최병성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참사가 일어난 이유

우방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밀려든 빗물에 입주민들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빗물이 왜 급격하게 밀려든 것일까?

아파트 위치를 살펴보았다. 냉천이 살짝 휘어 흐르는 물길 정면에 있다. 직선화되어 빠르게 흐르는 거센 물길이 아파트로 몰려드는 구조다.
 

▲ 좌측으로 살짝 굽어 흐르는 냉천의 물길 정면에 주차장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난 우방아파트가 있다. ⓒ 최병성

 

▲ 냉천이 좌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물길 정면에 침수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가 있다. ⓒ 독자 제공

 
특히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우방아파트 쪽의 제방이 낮았다. 제방이 유실되어 임시방편으로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는 공사 중이었다. 넘쳐흐른 빗물에 무너진 아파트 울타리는 아파트로 밀려든 그날의 물길이 얼마나 거셌는지 짐작케 했다.
 

▲ 침수 피해가 발생한 아파트 앞 하천 제방 모습. 빗물이 쉽게 넘쳐 흐를 만큼 제방이 낮고 연약한 구조로 되어 있다. 냉천은 위치마다 제방 구조와 높이가 제각각이었다. ⓒ 최병성

 
문제는 고향의 강 정비사업이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좌측 하천변에 각종 운동시설들이 조성되었다. 사망자가 발생한 우방아파트 건너편을 살펴보았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하천변을 반원형으로 성토하여 운동시설과 산책로를 만들었다.
 

▲ 사망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 방향으로 타원형으로 산책로가 높게 조성되었다. 빗물이 우측 아파트 방향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측 아파트 아래 제방이 유실되어 공사중인 모습이 보인다. ⓒ 최병성

 
성토한 산책로 위에 올라섰다. 차가 오가는 제방 밖의 도로와 높이 차이가 겨우 1m에 불과했다. 침수 피해를 입은 아파트 방향의 수면 쪽으로 내려갔다. 사람 키 높이보다 더 높은 2m 이상의 제방을 쌓아 올렸다.

하천에서는 커다란 돌 하나도 물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파트 방향을 향해 2m나 높게 반원형으로 성토하였으니 당연히 빗물이 아파트 방향으로 흐르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성토한 타원형의 산책로가 건너편 아파트 침수 피해를 가중시켰음을 보여주는 시공 현장 모습. ⓒ 최병성

 
우방아파트와 하류에 있는 냉천교와의 거리는 겨우 1.2km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참사 당시 성난 빗물이 마치 역류해 올라오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빗물이 냉천교에 막히자 수위가 급격히 상승해 역류 현상이 발생했고 제방을 넘쳐 주변에 침수 피해가 크게 발생한 것이다.

우방아파트 피해가 큰 이유는 명백했다. 냉천교에 막힌 빗물이 역류하며 수위가 상승했고,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성토한 산책로와 운동시설이 아파트 방향으로 물길을 밀어내는 등의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상류에 댐 만들어 홍수 예방?

포항시는 반복되는 홍수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상류에 댐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댐을 건설하면 태풍과 집중 호우시 홍수를 조절하고 가뭄 때 용수 확보가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포항시가 추진하는 항사댐은 높이 50m, 길이 140m, 저수용량 476만t의 소규모 댐으로 약 800여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과연 댐이 없어 이번 홍수 참사가 발생한 것일까? 그동안 우리는 댐이 홍수를 막아준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 위에 건설한 댐의 수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더 큰 홍수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지난 2020년 8월 19일 '주호영 대표님, 악마 목사와 4대강 1대1 끝장 토론 합시다'(http://omn.kr/1rfdl) 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섬진강 홍수는 상류의 댐 수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었다. 홍수를 막아야 할 다목적 댐이 오히려 홍수를 유발한 것이다.
 

▲ 냉천 상류에 위치한 오어저수지. 포항시는 홍수를 막기 위해 오어저수지 위에 또 하나의 댐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 최병성

 
항사댐 예정지 바로 아래 항사댐의 저수용량과 비슷한 오어저수지가 있다. 일부 주민들은 '오어저수지 수문 개방이 홍수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고, 농어촌공사는 오히려 오어저수지가 홍수 피해를 막았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 논란이다.

오어저수지는 홍수조절 능력이 없는 농업용 저수지다. 저수지 좌측에 2개, 우측에 1개, 총 3개의 방수문이 있고 집중 호우 시 빗물이 불어나면 저수지를 넘쳐흐르게 하여 제방 붕괴를 막는다. 3개의 작은 방수문은 저수율 65%에 해당하는 높이에 설치돼 있다. 즉 저수율 65%까지 수문을 개방해 초기 홍수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 만수위에 가까워지면 물이 넘쳐 흐르도록 설계된 오어저수지. 물이 넘치는 곳에 나무 기둥들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최병성

 

▲ 물이 넘치는 곳 바로 옆에 열려 있는 방수문 두 개가 보인다. ⓒ 최병성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서 오어저수지의 시간대별 수위 그래프를 보자. 9월 6일 새벽 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급격하게 수위가 올라 거의 만수위에 도달했다. 그러나 새벽 4시부터 수위가 완만하게 유지됐다. 강수량 데이터에 따르면 6일 새벽 4시 이후인 6시~7시 사이에 큰 비가 쏟아졌다.
 

▲ 9월 6일 오어저수지 저수율 그래프 ⓒ 농어촌공사

 
저수지 둑에 걸린 덤불들이 만수위까지 물이 차올랐음을 보여준다. 시간대별 수위 그래프에서 만수위에 차오를 때 물이 넘치는 저수지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것은 수문을 열었음을 의미한다.

도시 위에 만들어진 저수지가 붕괴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발생한다. 저수지 관리자가 저수지 붕괴를 막기 위해 수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저수지 수문을 연 직후의 시간대에 하류에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어저수지의 물이 흘러내리는 여수로 끝 지점에 있는 콘크리트 바닥 보호공이 모두 파괴되었다. 여수로에서 빗물이 흐르는 맞은편 둑이 유실되어 자루를 쌓아 올리는 긴급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닥 보호공과 둑이 처참히 파괴될 만큼 급격한 빗물이 여수로에서 흘러내렸음을 의미한다. 이게 단지 저수지를 월류한 물 때문인지 아니면 수문을 열어 홍수량이 늘어났기 때문인지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 오어저수지 여수로 끝에 위치한 바닥보호공 유실 모습 ⓒ 최병성

 

▲ 오어저수지 여수로 맞은 편 둑이 유실되어 자루를 쌓아 올리는 긴급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 최병성

 
진정한 홍수 피해 대책

지난 2020년 섬진강 홍수에서 보듯 도심 위의 댐은 오히려 대홍수를 조장할 수 있다. 포항시가 추진하는 냉천 상류 댐 건설은 올바른 홍수 예방책이 될 수 없다.

홍수 참사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대책이 나온다. 포항시는 80년 빈도인 시간당 77mm를 넘는 110.5㎜의 비가 쏟아져 천재지변이었다고 주장한다.

비가 많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냉천의 홍수 피해는 4대강사업의 하나인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하천 폭을 줄이고, 하천에 과도한 시설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속이 증가하고 빗물이 넘쳐흐르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리고 물길을 막는 댐 역할을 하여 홍수 피해를 가중시킨 냉천교가 두 번째 주범이다.

홍수 예방을 원한다면 댐 건설 대신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냉천 변에 설치한 모든 시설물들을 걷어내야 한다. 빗물이 흐를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하천은 빗물이 흐르는 공간이 우선해야 한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은 홍수를 예방하는 '치수'보다 사람들의 유희를 위한 '친수' 사업에 치우쳤다. 그 때문에 힌남노 폭우에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 빗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냉천교를 철거하고 새로운 다리를 놓는 것이 냉천의 홍수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 최병성

 
홍수 예방을 위한 두 번째 대책은 다리가 낮고 교각이 많은 냉천교를 전면 철거하고 빗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다. 냉천교 철거가 상류의 댐 건설보다 더 긴급한 홍수 예방 대책이다. 물길의 흐름을 막는 냉천교를 그대로 둔다면 상류에 큰 댐을 세운다 할지라도 또 다시 포항제철과 주변 마을에 침수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

도로에서 갑자기 한 차선만 줄어들어도 병목 현상으로 심각한 교통 체증이 발생한다. 폭 150m의 하천이 무려 90m로 줄어들었고, 그것도 좁아진 하천이 우측으로 꺾였다면 병목 현상으로 빗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특히 상류에 비해 하천 폭이 급격히 좁아진 냉천교 하류 양안의 잔디밭과 산책로를 모두 걷어내 통수(通水) 능력을 키워야 한다.
 

▲ 포항시가 냉천의 빗물 흐름을 막는 잠수교를 철거하고 있다. 이처럼 냉천의 홍수를 에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홍수를 유발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으로 설치한 시설들과 냉천교를 철거하면 냉천은 안전한 하천이 될 것이다. ⓒ 최병성


그동안 우리는 물을 다스릴 수 있다며 하천을 직강화하고 제방을 쌓고 그 안에 물을 가두었다. 그러자 흐를 공간을 빼앗긴 빗물이 인간들의 터전으로 밀려들고 있다. 이는 분명 천재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이 초래한 인재다.

이번 냉천 홍수 참사는 단지 포항시만의 일이 아니다. 하천을 직강화하고 물이 넘쳐흐르던 범람원에 건물들을 세운 도시들이 언젠가 겪을 일이다. 기후 재난의 시대를 맞아 이제 하천 관리 방식을 전면 바뀌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9월6일 포항 홍수 참사의 현장 사진을 제보 받습니다. cbs5012@naver.com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보자치 리포트③] ‘사라질 위기’ 농촌 주민들에게 ‘거주수당’ 추진하는 도의원 오은미

 진보당 오은미 전북도의원(전북 순창군) 편



편집자주

올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며 진보정당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2024년 총선을 향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기도 한다. 현장과 지역에 답이 있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결론이 모아지지만, 이런 논의조차 중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6.1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정당은 30명의 선출직 지방공직자를 배출했고 이들이야말로 진보정치의 최일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 지방공직자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진보자치 리포트’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지난 18일 해가 진 어두운 밤, 진보당 오은미 전북도의원은 한 주민의 전화 한통을 급하게 받고 전북 순창군 북흥면을 찾았다.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인 하천 옆에 있는 논의 벼를 베기 위해 콤바인 두 대를 동원했는데, 논에 들어가는 진입로를 공사 업체에서 막아버려 벼를 베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종일 여기저기 전화해도 연락이 안 되자, 이 주민은 결국 오 의원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현장을 확인한 뒤 면장과 전화통화를 해 ‘공사 업체가 내일 아침 진입로를 뚫어주기로 했다’는 답을 받고 돌아서는 오 의원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베어봤자 똥값인 나락, 태풍 소식...농촌의 현실, 농민의 처지가 더 어둡고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오 의원은 당시 상황을 이같이 페이스북에 적었다.

지난 7월 18일 전북도의회 본회의에서 진보당 오은미 전북도의원이 ‘소멸 위험지역에 대한 거주수당 도입’을 촉구하는 5분 발언을 하고 있다. ⓒ오은미 페이스북

‘농민 대변인 오은미’가 돌아왔다. 오 의원은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를 통해 3선에 성공하면서 8년 만에 다시 도의회에 입성하게 됐다.

그는 2006년 민주노동당 전북도 비례대표를 시작으로 2010년 순창에서 단 한 명 뽑는 도의원 선거에 당선돼 전북지역 정치사를 새롭게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식농성을 불사하며 논에만 지급되는 직불금을 밭에도 지급하도록 만든 당사자로 지역에선 유명하다. 이번에도 오 의원의 선거구인 순창에선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 후보의 맞대결이 펼쳐졌는데, 순창군민들은 민주당이 아닌 진보당의 손을 또다시 들어줬다. 그렇게 오 의원은 전북도의원 선거구 36개 지역 중 유일하게 민주당 소속이 아닌 진보당 소속으로 당선된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오랜 세월 공천이 곧 당선인 민주당 텃밭에서 한 표, 한 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번호와 이름을, 모양으로 이어가며 간절한 마음으로 저를 찍어주셨던 고령의 어머니들을 위시해서 순창군민들께 먼저 뜨거운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7월 4일 전북도의회 본회의에서 오 의원이 한 말이다.

결혼을 한 뒤 순창에 뿌리를 내리게 된 오 의원은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만큼 주민들과의 관계도 두텁다. ‘번호’보다는 ‘인물’을 보고 자신에게 표를 몰아준 주민들의 응원이 오 의원에겐 의정활동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오 의원은 지난 8·9대 도의원을 지내면서 8년 동안 내리 몸 담았던 전북도의회 농산업경제위원회의 자리를 이번에도 이어가게 됐다.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으로 농업과 노동현장을 누비며 치열하게 활동했던 오 의원의 전문분야를 담당하는 상임위이기도 하다. 이를 또다시 고집한 이유에 대해 오 의원은 “농민·노동자·자영업자·상공인 등 서민의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음에도 이를 온몸으로 해결하는 정치인은 흔치 않은 현실에서 저는 다시 또 농산업경제위원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8년 만에 도의회에 돌아와서 들여다본 현실은 이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는 게 오 의원의 말이다. 그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상임위에서 8년을 활동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변함없이 행정은 행정대로 가고, 예산과 사업은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삶의 근본이고 국가의 근본은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농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위기 수준을 넘어 재앙 수준이다”라며 “그런데도 농업에 대해서 정부나 정치권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기타 국민’, ‘그림자 국민’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건 농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제가 해야 할 몫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논두렁에서 주민과 대화하는 오은미 후보 ⓒ오은미 후보 페이스북


지방소멸위험지역 모든 주민들에게 ‘거주수당’을 주자

그가 생각하는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인구 감소와 그로 인한 지방 소멸이다. 2021년 행정안전부에서 고시한 인구감소지역 지정 고시에 따르면 인구감소지역 절대다수가 농촌 지역이다. 특히 전북은 14개 시·군 중 무려 11개가 지방소멸위험지역이고, 이 중 7개 시·군은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오 의원의 지역구인 순창만 해도 2020년 2만8천여 명이던 인구가 올해 2만6천여 명으로 2년 사이 2천명 가까이 감소했다.

오 의원은 지난 7월 18일 전북도의회 본회의 5분 발언에 나서 이같이 지적하며 “이런 추세라면 순창군은 20여 년 후에 지도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 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인구 감소를 절실히 체감했다고 한다. 오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주민들을 만나러 장날 장터에 가는데 예전보다 사람이 없다. 장사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을 정도다. 주민 한 명을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거리가 한산하다”며 “예전에는 읍뿐만 아니라 면에서도 장날 장터가 섰는데, 지금은 면에서 장을 서는 곳이 없다”고 전했다. 

이에 오 의원이 대책으로 공개 제안한 것은 일명 ‘소멸위험지역 거주수당’이다. 그는 본회의에서 “12대 의정활동을 시작하면서 모두가 위기로 느끼고 있는 인구감소와 지방 소멸 문제의 대안으로 ‘소멸위험지역 거주수당’ 도입을 제안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이를 두고 “의정활동의 포문을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멸위험지역 거주수당’은 소멸위험지역에 주소를 둔 주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기본소득을 말한다. 오 의원이 처음으로 제안한 정책으로, 만약 전북에서 실현된다면 전국 최초의 거주수당이 될 전망이다.

오 의원은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일자리 창출, 귀농귀촌 정책, 각종 복지정책과 문화시설 확충, 관광 인프라 사업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나아가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신규 유입 인구에 대한 지원 정책에 집중되면서, 정작 이전부터 농촌에 거주해 왔던 농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오 의원은 “전체의 70%가 인구소멸위험지역인 우리 전북은 출생률 저하와 사망 등으로 인한 자연감소보다는 인구유출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청소년들이 진학과 취업을 위해 청장년들이 먹고살기 위해 농촌을 떠나고 있다”며 “이들이 농촌을 떠나는 분명한 이유는 먹고살기 어렵고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거주수당’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농촌을 지키며 살아갈 근거를 제공하고 자긍심과 존재감, 소속감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며 “또한 거주민들의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대도시지역의 정년퇴직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견인하는 큰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오 의원의 제안에 다른 정당 의원들도 호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일단 7개 고위험지역 의원들과 함께 연구 모임을 만들어서 토론회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들을 해나갈 예정”이라며 “그 결과물로 조례를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오 의원의 기초 구상은 거주수당으로 모든 주민에게 1인당 10만원씩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이다. 오 의원은 “10만원이 개인에게 큰 돈이 아니지만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주민들에게 지급하고, 2인 가구 이상이 되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본다”며 “또한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게 되면 해당 지역의 경제활성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오 의원은 거주수당 지급에 필요한 재원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우선 행안부가 올해부터 2년간 지자체에 지원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광역 560억원, 기초 1,498억 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현재 행안부 지침으로는 현금성 지급이 불가능하다. 이런 지침을 해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오 의원은 “일회성, 전시성 사업을 지양하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 ‘소멸위험지역 거주수당’ 재원으로서의 사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전북도도 이에 호응하면서 행안부에 건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오 의원은 “전라북도와 14개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 즉 남는 예산이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상황에서 더 이상의 예산 타령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며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오 의원의 ‘전력’을 살펴보면 ‘거주수당’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 의원은 비례대표 도의원이던 2006년 사라졌던 전북도 논직불금 60억 원을 회생시켰고, 2009년도에 100억 원으로 늘렸다. 그동안 없었던 밭에도 직불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밭직불금 지원 조례’를 대표발의해 제정까지 해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전북도는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다. 이에 오 의원은 당시 21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결국 5년 만에 밭직불금을 농민들에게 지급하게 했다.

전북 농민수당 도입에도 오 의원의 역할이 컸다. ‘배지’가 없던 시절, 그는 농민수당조례 주민청원 공동대표로서 2만명에 가까운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도의회에 제출했다. 도민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서 가구당 연 60만원의 농민수당이 신설됐다. 이후 농민수당을 확대하기 위해 주민조례 청구를 다시 했으나 통과되지는 못했다. 오 의원은 이번 선거에 다시 나서면서 농민 1인당 연 240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오은미 진보당 전북도의원이 2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진보당 방의원단, 농민단체 합동 쌀값 폭락 대책을 촉구하며 윤석열 정부의 농정을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쌀값 대폭락(밥 한공기 쌀값 224원), 농자재 값과 인건비 폭등, 농가 부채 이자율 폭등 등으로 농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2022.08.22 ⓒ민중의소리

폭등한 농자재값 지원이 1순위 과제
농민과 노동자를 주인으로 세우는 정책 개발 계속


오 의원이 맞닥뜨린 당장 시급한 현안은 농자재값 폭등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 문제다. 최근 농자재값이 오른 데 비해 쌀값은 폭락하자 분노한 전북의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기도 했다. 만약 이 문제가 지속될 경우 농촌의 인구 감소는 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이에 오 의원은 필수 농자재값 지원 조례 제정을 우선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오 의원은 등원 후 농산업경제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꼼꼼하게 따졌다. “지금 국장님께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지을 수 있겠어요?”라는 오 의원의 질문에 신원식 전라북도 농축산식품국장은 “저한테 너무 큰 리스크인데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신 국장은 “요즘에 청년들은 힘든 거 잘 안 한다”며 전통적인 농업 형태도 이제는 스마트농업 등 다른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국장의 이런 대답에 오 의원은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농가가 처한 현실을 모르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오 의원은 “농민들이 요즘 하는 소리가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다’는 것”이라며 “물론 시대가 바뀌니 미래농업의 가치를 우리가 지향해야겠지만, 현재 우리 농업을 이루고 있는 많은 농가들에서 지금 곡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오 의원은 “지방이 소멸된다고 유입에만 계속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존에 있던 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떠나지 않게 하는 것도 우리가 중점에 두고 정책을 이끌어가야 한다”며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파격적인 정책들을 펼치지 않는 이상 우리 전라북도 농업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오 의원은 구직을 희망하는 전북 청년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축해 사후 관리를 해나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쌀값뿐만 아니라 고추값 정상화를 위해서도 오 의원은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순창 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추장이다. 하지만 ‘장의 고장’ 순창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겐 가격 결정권이 없다. 고추값이 폭락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 순창 쌍치면의 고랭지 건고추 선별장을 찾았던 오 의원은 “유통·가공·판매는 농협과 법인이 맡고 농민은 생산만 하고 적정한 가격을 받는 안정된 체계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고추 생산자 조직’과 ‘고추가격결정협의회’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추진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오은미 전북도의원이 지난 8월 초에 찾은 순창 쌍치면의 고랭지 건고추 선별장의 모습. ⓒ오은미 페이스북


지역 주민들에게 밀착해있지 않으면 전혀 모를 민원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긴급재난지원금의 사각지대다. 오 의원은 농산업경제위원회에서 “77세 옷 가게를 운영했던 분인데 정부로부터 손실보전금 지원 소식을 듣고 엄청 설레고 기대를 했다더라. (그걸 받으면) 못 낸 여러 가지 공과금도 내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는데 군청에 가서 보니 지급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자체 당국에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방안을 주문했다.

나아가 지역화폐를 상품권이 아닌 카드로 지급하면 모든 주민들이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오 의원은 “사실 도시에 비해서 농촌은 아직도 카드 지급기가 없는 상인들이 많고, 특히 농사지어서 (농산물을) 노점에서 파는 분들은 카드를 쓸 수가 없다. 그분들에게 카드를 지급하면 소비만 할 수 있다”며 “저희 순창과 같은 지역에서도 작년에 추석 때 농민수당을 카드로 지급하면서 시장에서 혼란이 굉장히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하면서 또 카드로 지급했다”며 “이건 아니다 싶다. 행정편의적인 면이 굉장히 강하고, 결국 쏠림현상이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농촌에서는 카드가 있으면 주로 농협으로 많이 가게 된다”며 “여러 가지로 속상하더라”고 호소했다.

‘리노베이션 스쿨’, ‘라이스 컨소시엄’, ‘에코프로바이오틱스’ 등 농업과 관련된 정책 및 사업명이 외래어·외국어로 정해진 데 대해서도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고 비판하며 “농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사업명을 책정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오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소외 받고 아무런 혜택 못 받으시는 분들이 정말 마음으로 저를 찍어주셔서 당선이 된 것”이라며 “그런 만큼 그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하고, 그분들을 배려하고 그분들이 주인이 되는 정치를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농업 문제뿐만 아니라, 돌봄노동자 문제도 해결하고, 기업하기 좋은 전북을 만들겠다는 얘기가 늘 나오는데 노동하기 좋은,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전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서 해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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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한국의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 부통령은 한국 여성 리더들과 별도 간담회를 가질 만큼 성평등 이슈는 그의 방한 일정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처음에 '윤 대통령의 해리스 부통령 접견시 여성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브리핑했다가 이후 보도자료를 내어 정정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외교 참사'라는 비난을 낳은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이후 1주일도 채 안 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국회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된 날이기도 하다.

"여성 언급 없었다"던 대통령실, 백악관 자료 나오자 정정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29일 오후 3시께, 해리스 부통령 접견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한 후 기자들로부터 '여성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여성 관련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었다.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이 나온 것은, 해리스 부통령이 방한 전 일본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방한 시 윤 대통령에게 성평등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자 도쿄발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해리스 부통령은 방한시 성평등 이슈를 토의할 계획이라며 "나는 민주주의의 (발전)정도는 그 민주주의 하에서의 여성의 지위로 측정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는다. 그에게 이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낼 계획이다(I do plan on bringing it up with him)"라고 했다. 

신문은 한국은 선진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높고,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은 5분의 1에도 못 미치며, 윤 대통령은 대선 선거운동 기간 도중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는 등의 배경 사실을 함께 보도했었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SNS에 이 신문 보도를 번역한 <여성신문> 기사를 공유하며 "내 이럴 줄 알았다. 해리스를 응원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설명과는 달리,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미국 측 보도자료를 보면 "부통령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한국과 전 세계의 성평등과 여성 역량 강화(empowerment)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이 있다. (☞백악관 보도자료 보기) 

또 해리스 부통령이 이날 서울에서 한국 여성 리더들과 가진 간담회 관련 별도 백악관 보도자료를 보면, 해리스 부통령은 간담회 모두발언을 한 후 기자가 '윤 대통령과 (성별) 형평에 대해 이야기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백악관 보도자료 보기) 

대통령실은 뒤늦게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에게 접견 직후 일정인 '여성 리더 초청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언급하며 '여성 지도자를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참여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오늘 여성 지도자 환담이 유익한 결과를 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정부도 여성 역량 강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고 밝혔다. 당초 '없었다'고 한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또 백악관이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과 전 세계의 성평등과 여성 역량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했다고 밝힌 것과, 우리 대통령실이 "미국 정부도 여성 역량 강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고 발표한 것은 비슷한 내용이지만 뉘앙스 차이가 있다. 특히 한국 측 발표에는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아예 빠져 있다. 

해리스 방한 일정 3분의1이 '여성', 그런데…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3개의 주요 일정을 소화했다. 윤 대통령 예방, 판문점 비무장지대 방문, 그리고 여성 리더 간담회였다. 당일치기 방한임을 감안하면 여성 문제에 상당한 비중을 둔 셈이다. 

"여성 언급은 없었다"던 대통령실의 최초 발표가 단순 실수·해프닝이라 해도, 윤 대통령 순방외교가 각종 논란의 대상이 된 가운데 또다시 정상외교 관련 실수가 나온 것은 한숨이 나올 일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여성 문제를 얼마나 등한시하면 세계 최강대국이자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 부통령이 하는 말까지 안 들리느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물론 여성부 폐지 추진 등의 상황과 맞물린 정치적 부담 때문에 해리스 부통령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했던 것이라면 이는 거짓말이고 더 거센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실장은 "해당 발언을 못 들은 건지, 들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건지 궁금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윤 대통령 예방 직후 가진 한국 여성 리더 간담회에서 "여성이 성공할 때 사회 전체가 성공한다는 것을 강하게 믿는다"며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성평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는 '피겨 퀸' 김연아 선수와 배우 윤여정 씨, 최수연 네이버 대표, 김정숙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회장,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소설가 김사과 씨, 이소정 KBS 9시 뉴스 앵커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