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사진: 백은지 기자
사진: 백은지 기자

‘임금과 성적 빼곤 다 올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고물가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유독 쌀값만은 예외다. 쌀값은 전년 동기 대비 23.6%가 하락했다.

3년 연속 풍작에 따른 쌀 비축량 증가가 원인이라는 정부 발표가 나온다. 과연 쌀 풍년이 원인일까?

고물가 시대, 쌀값까지 오르면 서민들 먹고살기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식량자급률 60%를 약속한 윤석열 정부는 지금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안고 전농을 찾았다. 하원오 의장의 구수한 미소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발표된 농업관련 자료는 ‘MMA’, ‘TRQ’, ‘RPC’, ‘시장격리’ 등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이런 기자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하 의장은 동네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처럼 쉬운 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진: 백은지 기자
사진: 백은지 기자

 

밥이 남게 쌀을 안쳤다고 어머니를 욕하는 경우도 있나?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을 맞았으면 농민에게 박수를 보내도 시원찮을 판에 이 무슨…

쌀값 폭락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하 의장은 대뜸 이렇게 역질문을 해왔다.

“풍년 농사를 지었으면 정부가 농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쌀값이 물가 인상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게 말이 되냐?”며 농민을 밥 짓는 어머니에 비유했다.

쌀값이 폭락한 사연은 이렇다.

고물가가 계속되자 정부는 주곡인 쌀값이라도 잡기 위해 40만 톤을 수입하고, 공공비축미를 대거 방출했다. 그러나 쌀 수요가 준 데다 2021년 풍작으로 쌀은 공급과잉이 되었다. 여기에 2022년까지 풍작이 예상되면서 쌀값 하락세를 부추겼다.

쌀값은 공급이 많은 추수철 10월이 가장 싸다. 쌀 수요자 입장에선 몇 달만 기다리면 값싼 햅쌀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지금 쌀을 살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지금 쌀값은 작년 추수기보다 22.8%가 하락한 실정이다. 이마저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뒤늦게 시장격리(쌀을 시장에 내놓지 않아 공급량을 조절하는 것)를 실시했지만 이미 쌀값은 폭락할 대로 폭락한 상태라 효과는커녕 최저가 역공매로 인해 가격 하락만 부추겼다.

결국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값을 직접 관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쌀값 폭락의 주범이 되고 만 것.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부 양곡창고에 쌀 비축분을 6개월 치로 늘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현재 14만 톤 수준의 비축분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권고량 80만 톤에 맞추면 물가 걱정 없이 쌀값 폭락을 막을 수 있다.

 

커피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앞섰다. 커피 한잔 원두 가격 500원, 밥 한 공기 쌀값 230원.

쌀값이 물가 인상 원인이라는 건 거짓 정보

‘농민의 주장대로 쌀값을 올리면 자칫 물가 인상을 부추기지나 않을까?’라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하 의장은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요즘 사람들 하루 세끼를 다 합쳐도 겨우 밥 한 공기가 고작이다. 커피는 최소 2잔을 마신다. 원두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앞질렀다. 쌀 한 공기 값을 현 230원에서 300원으로 올린다고 물가가 뛰면 얼마나 뛰겠는가. 차라리 커피값을 통제하는 편이 낫다.”

하 의장은 영농비 폭등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는 윤석열 정부를 힐난했다.

실제 비룟값은 지난해보다 150% 올랐고, 인건비는 70%, 영농자재비 38%, 사룟값은 30%가 올랐다.

농가도 고물가와 공급망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비룟값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영농기계 면세유 지원까지 줄였다. 여기에 쌀값까지 폭락했으니, 농민들이 논농사 대신 아스팔트농사를 선택할 수밖에. 최근 농민들이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연일 대규모 상경투쟁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 백은지 기자
사진: 백은지 기자

 

윤석열, 5천만의 압박보단 200만 농민 목소리에 귀 닫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

하 의장은 “윤석열 정부가 쌀값 폭락을 막을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농민 목소리에 귀를 막고 요리조리 상황만 모면하려는 정부의 농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2%대로 추락한 농정예산 비중을 반등하고, 식량자급율도 60%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물가 폭등을 쌀값 때문이라며 농민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룟값 지원마저 삭감하는 것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약속을 지킬 의지가 전혀 없다.”

하 의장은 “세계적인 기후위기, 공급망 위기,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장차 우리나라도 식량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대비책 마련을 주문했다.

실제 세계 7대 곡물수입국인 한국의 곡물자급률(2020년 기준)은 20.2%, 식량자급률은 45.8%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특히 주식인 쌀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소비가 많은 밀은 0.5%, 옥수수 0.7%, 콩 7.5%에 그친다.

하반기 투쟁계획에 대해 하 의장은 “쌀값 투쟁이 전부는 아니지만, 쌀은 농업의 기준”이라며, “이길 때까지 싸우는 것이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