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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1일 수요일

[아침햇살194] 북한의 핵무력법 채택과 우리의 대책

 김민준 기자 | 기사입력 2022/09/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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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핵무력 정책 법령을 채택

 

북한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회의(아래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아래 핵무력법)라는 법령을 채택했다. 

 

핵무력법은 서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력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정, 근본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을 방지하며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보장하는 위력한 수단”이라고 규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기의 핵무력 정책을 공개하고 핵무기 사용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의 오판과 핵무기의 남용을 막음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 북한의 화성포-17형 발사 장면.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핵무력법의 취지와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에 국가 핵무력 정책을 법화한 것은 공화국 정부의 자주적 결단과 견결한 국권 수호, 국익 사수 의지에 대한 더욱 뚜렷한 과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백날, 천 날, 십 년, 백 년을 제재를 가해보라 합시다.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을 잠시라도 면해보자고, 에돌아가자고 나라의 생존권과 국가와 인민의 미래의 안전이 달린 자위권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며 그 어떤 극난한 환경에 처한다 해도 미국이 조성해놓은 조선반도(한반도)의 정치군사적 형세 하에서, 더욱이 핵적수국인 미국을 전망적으로 견제해야 할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며 대북 제재에 굴복해 핵 폐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또한 “핵무력 정책을 법화해 놓음으로써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되었습니다”라며 핵무력법의 의의를 소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비핵화 조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면서 “지구상에 핵무기가 존재하고 제국주의가 남아있으며 미국과 그 추종 무리들의 반공화국 책동이 끝장나지 않는 한 우리의 핵무력 강화 노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전 세계가 비핵화되고, 제국주의가 사라지고, 미국과 친미 국가들의 대북 적대 정책이 사라질 때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비핵화’를 한다는 것도 아니고 ‘핵정책이 바뀐다’, ‘핵무력 강화를 하지 않는다’는 정도다. 

 

이에 따라 비핵화를 위한 협상도 완전히 끝난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라고 하여 앞으로 관련 협상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 

 

 

2. 북한의 비핵화 정책 변화

 

비핵화와 관련하여 북한의 정책은 크게 세 번의 변화가 있었다. 

 

주한미군 전술핵 철거

 

1980년대까지 북한의 비핵화 정책은 한국에 배치된 미군 핵무기를 철거하라는 주장이 중심이었다. 

 

1957년 12월 24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한국에 핵탄두 운반용 어네스트 존 미사일과 280밀리미터 포를 배치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58년부터 한국에 핵무기가 들어오기 시작해 최대 900기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었다. 군산 공군기지에는 핵폭탄을 장착한 F-4 팬텀이 언제든 출격할 수 있도록 대기하였다. 

 

당시는 북한에 핵무기는 물론 핵개발 의혹도 없던 시기였다. 따라서 한미 당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또 북한은 1985년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했는데 이는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NPT 가입국은 기존 5개 핵보유국을 제외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 의도가 있었다면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자유롭게 핵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다. 

 

핵개발 중단 대 안전보장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뀐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개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북한의 비핵화 정책은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 대신 미국이 안전보장을 하라는 것이었다. 안전보장이란 미국이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고 북한을 겨냥한 핵무기를 철거하며 위협을 중단하는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체결한 북미 제네바 합의에는 이런 북한의 요구가 일정하게 반영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지키지 않았고 다시 북한에 핵위협을 가했다. 이에 북한은 2003년 1월 10일 NPT를 탈퇴하였다. NPT를 탈퇴하였으므로 북한은 자유롭게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2003년 6자 회담을 시작했는데 여기서도 북한의 입장은 ‘미국이 안전보장을 해야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6자 회담에서도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주장하는 등 억지를 부렸고 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계속했다. 

 

이에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보유 선언을 하였다. 당시 성명은 “우리(북한)는 미국에 ‘제도전복’을 노리는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조미(북미)평화공존에로 정책전환을 할 데 대한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고 그렇게만 된다면 핵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랬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하고 계속 북한을 위협했기 때문에 “6자 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하고 “핵무기를 만들었”으며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핵화 대 안전보장

 

결국 미국이 한발 물러서면서 6자 회담이 재개됐고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맞바꾸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미국은 합의를 지키지 않았고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첫 핵시험을 단행해 핵보유가 사실임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7년 북한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까지 북한의 요구는 시종일관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1년 반 정도 한반도에는 비핵화 최전성기가 펼쳐졌다. 북한은 핵시험장 폐기와 핵시험 중단,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단 등 비핵화 선제조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이행했다. 2018년 4월 2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이었던 고유환 교수는 TBS방송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선제조치에 관해 “진정성 있는 행동” 측면에서 “앞으로 북미대화의 어떤 전도가 비교적 밝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갖게 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이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은 대북 제재 해제,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북한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 주장에 일정한 설득력을 더해 주었다. 

 

북한은 비핵화 선제조치 이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거듭 밝혔다. 

 

북한은 4.27판문점선언 3조 4항에서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비핵화 선제조치를 의미-필자 주)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합의하였다. 

 

또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3조에서 “2018년 4월 27일 발표된 판문점선언의 의의를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라고 합의하였다. 

 

9월 평양공동선언 5조에서는 아래와 같이 더욱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을 합의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① 북측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

②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③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특히 9월 19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한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의 최고봉이었다. 문 대통령은 “(오늘 남북 정상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라고 하여 청중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남북 정상은 물론 북한 국민도 모두 비핵화에 동의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이처럼 비핵화 분위기가 꽃을 피우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는 합의에 실패했고 비핵화 과정도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비핵화 목표를 폐기한다거나 비핵화 회담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회담 다음 날 기자들과 만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도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라면서도 “우리가 했던 요구사항들이 해결된다면야 상황이 달라지겠죠”라고 하여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면 얼마든지 회담이 재개될 것임을 밝혔다. 이후에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면 비핵화 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고 거듭 천명했다. 

 

사실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한 협상안은 북핵 대결 30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주한미군 전술핵 철거 → 핵개발 중단 대 안전보장 → 비핵화 대 안전보장 등 지난 시기 북한의 요구는 시종일관 안전보장, 즉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었다. 북한은 한 번도 비핵화와 경제문제를 맞바꾸자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에서는 ‘비핵화 대 제재 해제’를 주장했다. 매우 특이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매우 파격적이고 특이한 협상안을 거부했고 북한은 다시 ‘비핵화 대 안전보장’으로 입장을 바꿨다. 2019년 4월 25일 북러정상회담 후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자국 안보와 주권 유지를 위한 보장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하였다. 다시 ‘비핵화 대 안전보장’으로 돌아간 것이다. 

 

불가역적 핵보유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위한 협상은 없다,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안전보장조차 ‘맞바꿀 흥정물’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북한 창건 74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처음으로 ‘비핵화는 없다’라고 공식 선언을 한 것이다. 북한이 기존의 비핵주의 노선에서 벗어났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게 되었다. 

 

북한이 비핵화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전제조건은 전 세계 비핵화, 제국주의 소멸, 미국과 친미 국가들의 대북 적대 정책 폐기 등이 모두 실현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다시 비핵화를 고려할 일은 없는 셈이다. 위의 전제조건이 실현된다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대사변이 아닐까 싶다. 

 

 

3. 한미 북핵 정책의 실패

 

30년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199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 총력전을 펼쳤다. 

 

미국이 북한에 가한 군사적 압박은 전면전을 수십 번 치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단 한 척으로도 웬만한 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다는 핵항공모함을 3척이나 동시에 한반도에 투입해 북한을 위협하고, 시시때때로 전략폭격기를 북한 코앞까지 비행시키고,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을 매년 반복하는 등 미국의 전쟁 위협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 2017년 11월 12일 핵항공모함 3척을 동원한 사상 초유의 한미연합훈련이 동해에서 진행됐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경제제재와 봉쇄를 통해 북한 경제를 무너뜨리고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항복하도록 압박했다. 또, 유엔에서는 각종 결의안과 규탄 성명을 쏟아내 외교적으로 국제 고립을 시켰다. 북한과 친하다는 중국, 러시아도 한때 북한에 등을 돌릴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핵시험을 통해 핵개발에 성공했다. 그래도 한미는 포기하지 않고 ‘북핵 폐기’를 주장하며 군사, 경제, 외교적 압박을 더욱 강화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반도에는 비핵화 의제가 3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북한도 비핵화 회담에 나섰고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도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했으며 6자 회담 등 다양한 국제회의도 계속됐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비핵화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됐다. 한미의 북핵 정책은 총파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지난 19일 시사저널 기고문에서 “근 30년간 계속돼온 북핵 저지 노력은 기어이 실패했다”, “다 무위(아무것도 이루지 못 함)다”라며 개탄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지난 14일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중국, 러시아를 끌어들여 6자 회담을 다시 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제는 그런 식의 6자 회담도 영원히 끝났다. 

 

중국, 러시아의 태도도 과거와 다르다. 최근 미국이 유엔에서 추진한 대북 결의문이나 성명 따위는 모두 중국,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제 중국, 러시아는 한미가 추진한 북한 비핵화에 더 이상 호응하지 않는다. 심지어 콘스탄틴 코사쵸프 러시아 상원 부의장은 SBS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유엔 헌장과 안보리 의무에 맞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면, 우선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과 안보리 국가들이 같은 행동을 하기를 기대해야 한다”라며 안보리 대북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에 석유를 수출하겠다고 발언했다. 다른 나라들은 유엔 정신을 어기며 러시아를 제재하는데 왜 러시아만 유엔 안보리 결정을 따라야 하느냐는 것이다. (「“퇴각 아니라 계획된 군 재편성”..패배 없는 푸틴의 딜레마」, SBS, 2022.9.19.)

 

이제 한미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남았을까? 

 

이번에 북한이 핵무력법을 통과시키고 비핵화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한미의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다. 원래대로라면 북한의 ‘도발’을 어떻게 ‘응징’할지 전 세계에 선포하고 즉각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우리는 북한에 적대 의도가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외교를 추구하고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미국은 몇 년째 북한과 ‘조건 없는 만남’을 추구하는데 이제는 그것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듯하다. 윤석열 정부의 한 당국자도 12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입장이 달라질 것은 없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일관되게 대북, 통일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지속할 뜻을 밝혔다. 

 

이런 한미의 반응을 보면 정말 김이 빠진다. 이들에게서 북한을 비핵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반응을 안 할 수 없으니 그냥 앵무새처럼 맥 빠진 소리만 되풀이하는 듯하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9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비핵화’에서 ‘핵 위기관리’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14일 열린 17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남·북·미가 비핵화를 하나의 목표로 삼되 그 과정이 점진적이거나 부분적인 핵위협 감소를 상당 기간 경유하는 긴 호흡과 시간을 요”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북한 핵무기와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책임 규명과 책임자 처벌

 

한미가 대책을 찾기에 앞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30년 총력전의 실패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책임 규명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핵심 사건은 하노이 회담이다. 만약 여기서 북한의 제안대로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고 대신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했다면 북한 비핵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회담에서 북미가 합의에 실패하는 바람에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 

 

앞에서도 살펴봤듯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제안한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한미가 주장해 온 영변 핵시설 폐기를 수용하는 대신 민간 영역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처지에서는 대북 제재 부분 해제가 안전보장보다 훨씬 부담 없고 쉬운 요구다.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보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북한을 겨냥한 전략무기의 접근 금지 등인데 모두 미국의 패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이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반면 대북 제재 부분 해제는 언제든 다른 명분으로 제재를 복귀시킬 수 있으므로 큰 부담이 없다. 

 

그런데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더해서 ‘다른 핵시설’까지 폐기하라고 했다. ‘다른 핵시설’은 북한이 인정한 적도 없고 그동안 비핵화 회담에서도 다룬 적이 없는 실체 불명의 시설이다. 이걸 하나하나 사찰해서 핵시설 여부를 확인하고 폐기 방식을 따지자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미국의 추정만으로 북한이 자기들 시설을 공개한다는 것은 주권 침해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또 미국이 지목한 시설을 모두 확인한다고 해도 나중에 가서 미국이 추가 핵시설이 또 있다고 주장하면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요구는 북한이 절대 받을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추가 핵시설’ 폐기라는 합의가 불가능한 주장을 하는 바람에 영변 핵시설 폐기조차 따내지 못한 셈이다. 만약 ‘추가 핵시설’이 있다는 미국의 첩보가 사실이었다고 해도 당장 하노이 회담에서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따라서 ‘추가 핵시설’이 있냐 없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영변 핵시설이라도 폐기하는 게 가치가 있냐 없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줄기차게 영변 핵시설 폐기를 주장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미국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실제로 2021년 7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보고서를 통해 당시 영변 핵시설이 폐기됐다면 북한의 핵무기 생산능력이 80%나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핵문제에 정통한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의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도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북한의 핵능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은 확실하다”라고 하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영변이 북한 내 핵무기 생산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하였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2019년 5월 22일 VOA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핵시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첩보’와 ‘정보’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며 “북한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에게는 어떤 세부 정보도 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직 트럼프 대통령에게만 이를 건네려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걸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통해 ‘다른 핵시설’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힐 전 차관보의 말처럼 ‘첩보’와 ‘정보’는 엄연히 다르다. ‘첩보’를 교차 검증하여 사실로 확인했을 때 비로소 ‘정보’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흘린 역정보에 속을 수도 있다. 어쩌면 트럼프는 북한의 역정보에 속아서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애초에 영변 핵시설 폐기는 북한이 제안한 것인데 북한이 역정보를 흘려서 자기 제안을 무산시킬 이유가 있을까?

 

당시 북한에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자. 2017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후 북한에 남은 과제는 중국, 러시아마저도 반대하는 불리한 국제 환경 구도를 뒤집는 것이었다. 즉, 북한은 중러가 북한의 핵개발을 지지하고 세계 여론도 북한의 핵개발에 우호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하노이 회담을 거치며 북한은 자기가 필요한 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계는 ‘북한은 비핵화를 하겠다는데 미국이 억지를 부려서 무산됐다’는 여론으로 정리됐다. 중러도 더 이상 미국의 억지 요구에 동의해줄 수 없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제로 중러는 유엔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나 규탄 성명 채택을 모두 반대해버렸다. 이번에 북한이 핵무력법을 채택했을 때도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은 변화 없다”라며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다. 러시아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위원장은 핵무력법 채택을 지지하는 축전을 북한에 보냈다. 

 

이처럼 하노이 회담을 거치면서 비핵화의 정치적 주도권이 북한에 완전히 넘어갔다. 

 

앞서 30년 총력전의 실패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책임 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보면 하노이 회담에 대한 평가와 책임 규명이 가장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당시 하노이 회담에서 결정적 오판을 부른 책임자들을 모조리 색출해서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 그렇게 교훈을 찾지 않으면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북한에 농락당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4. 우리의 대책

 

이제 북한의 비핵화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비핵화를 다시 추동할 방법이 없다. 

 

우선 북한이 내건 비핵화의 전제조건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노이 회담 때는 제재 일부 해제가 전제조건이었지만 이번 시정연설에서는 전 세계 비핵화, 제국주의 소멸, 미국과 친미 국가의 대북 적대 정책 폐기가 비핵화의 전제조건이다.

 

혹시라도 북한이 일단 강하게 주장은 했지만 협상을 통해 적당한 선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북한은 한번 내세운 자기주장을 그대로 관철하기로 정평이 났다. 예를 들어 2020년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보자. 이틀 전인 14일 김여정 부부장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설마, 설마 하면서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말한 그대로 이행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 국민을 향해 시정연설에서 공약한 것인데 이를 뒤집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발표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17일 VOA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전략적 제안”이라고 해석했는데 북한의 주장을 왜곡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없는 얘기다. 

 

핵군축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을 적정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1991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전략무기감축조약(스타트)은 미소 양국이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 등의 수를 일정 비율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는 각각 1만 563개, 1만 271개에서 5,916개, 3,897개로 줄었다.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이 핵군축을 하면 서로 뭘 얼마나 줄이자고 합의할 수 있을까? 아마 양국은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것이다. 

 

남은 현실적인 대책은 미국의 일각에서 나오는 말처럼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조건에서 핵확산을 막고 미국에 핵미사일이 날아오지 않도록 위기관리를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한미가 진행한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에서 나눈 내용을 보면 전략무기로 북한을 위협해서 북한이 한미에 핵위협을 못 하도록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실효성 있을까? 

 

노컷뉴스 김형준 기자는 18일 기사 「핵 문턱 확 낮춘 '北 핵 독트린'..우린 어떻게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미 외교·국방 당국은 16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열어 북한 핵 위협에 대해 “전례 없이 압도적이고 결정적으로 대응”한다고 천명했지만 과연 북핵을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실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의문이 남는다. 

 

같은 기사에서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핵무력정책 법령에 대해 한미의 대응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으며,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이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현실적으로 지킬 수도 없으며 지킨다면 남북과 북미 간의 전면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공약(空約)한 것은 유감이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북한이 올해 들어 미사일을 여러 차례 발사했지만 한미는 ‘대화하자’는 반응 외에 제대로 된 ‘응징’을 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전에는 ‘선제타격’이니 ‘버르장머리’니 하는 자극적인 발언을 했지만 정작 별다른 행동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8월 한미연합훈련도 엄청난 기동훈련을 한다고 떠들썩했지만 정작 언론에 그럴듯한 사진 한 장 내보내지 않고 이른바 ‘로키(low-key)’로 조용히 진행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미국은 말로는 뭐든 다 할 것처럼 하지만 정작 행동에서는 한 발 빼고 있다. 대만의 경우도 중국이 포위사격을 하는 동안 미국은 멀리서 지켜만 봤지 대만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확장억제니 하는 그럴듯한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북한이 핵무력법을 채택해도 대화 타령 외에는 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위협하는 시절은 예전에 끝났고 지금은 북한이 미국을 핵으로 위협하는 시기다. 그러니 북핵 위기관리라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다. 

 

미국은 답이 없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방법이 하나 있다. 북한을 와락 끌어안아서 핵무기를 든 손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통일이다. 

 

 

남북이 통일하면 북한이 한국을 향해 핵을 쏠 일이 없다. 쏠 수도 없다. 

 

핵을 손에 든 북한을 끌어안아 통일하면 좋은 게 또 하나 있다.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이 눈독을 들이는 전략적 요충지다. 남북이 통일하면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국에 유리하게 요리하려고 할 것이다. 70여 년 전 해방 직후 유행한 말이 있다.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나고 되놈(중국) 되(다시) 나온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지금 국제정세를 보자. 중러와 미일이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이 통일하면 북한의 핵무기가 주변 강국을 억제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을 위협하던 북한 핵무기가 주변 강국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무기로 역이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최선의 방법이다. 

 

머니투데이 20일 자 기사 「“北, 핵탄두 300개 보유 목표” 관측..성공하면 英·佛보다 많아진다」에 달린 댓글 중 가장 많은 찬성을 받은 댓글이 “핵폭탄 500개 만들고 나서 통일하자. 어디에서도 못 건들 것 같은데?”이다.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재미교포 정형외과 의사인 오인동 박사는 오래전부터 북한의 핵을 한국이 ‘겨레의 핵’으로 품어 안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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