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2년 9월 9일 금요일

[진보자치 리포트①] 재생에너지 공영화 추진하는 ‘농민 도의원’ 박형대

 박형대 전남도의원(전남 장흥군) 편



편집자주

올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며 진보정당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2024년 총선을 향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기도 한다. 현장과 지역에 답이 있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결론이 모아지지만, 이런 논의조차 중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6.1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정당은 30명의 선출직 지방공직자를 배출했고 이들이야말로 진보정치의 최일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 지방공직자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진보자치 리포트’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진보당 박형대 전남도의원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3년째 매주 토요일에 이어오고 있는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을 이번엔 추석 연휴가 있는 관계로 앞당겨 하게 된 것이다.


박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 장흥군에서 당원들과 함께 2020년부터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6시부터 2시간 반 동안 동네를 돌며 주민들이 내놓은 아이스팩을 수거하고, 이를 씻어 말리고, 다시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전달한다. 진심을 담지 않으면 하루 이틀 이어나가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박 의원과 진보당 당원들이 진심을 담아 매주 빠짐없이 진행한 덕분에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은 어느새 일상생활 속 ‘기후정의운동’으로 자리매김했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는 박 의원이 전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해 1등으로 당선되는 하나의 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왼쪽)와 박형대 전남도의원(오른쪽)의 모습. 박 도의원 가슴에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다. 자료사진. ⓒ윤희숙 페이스북

가슴엔 ‘배지’ 대신 이름 석자 적힌 ‘명찰’

박 의원은 ‘배지’를 단 이후에도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박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남들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게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이란 주민들의 삶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그는 “아이스팩을 수거하러 동네를 돌면서 만나는 주민들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쭉 나누기도 하고 도정에 관한 얘기도 한다. 아이스팩을 전달하러 갔다가 만난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 경제 상황도 읽힌다. 아이스팩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실 땐 경제가 잘 도는 거고, 필요 없다면서 안 받으실 때는 요즘 장사가 잘 안 되시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게 주민들의 삶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침에 일을 끝내고 함께 한 분들과 아침을 먹으면 굉장히 뿌듯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박 의원의 가슴엔 빛나는 ‘배지’ 대신, 진보당 로고와 그의 이름 석자가 또렷하게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자체 제작한 명찰을 의회 안팎에서 늘 차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상경해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농민들과 쌀값 폭락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도 그의 가슴엔 명찰이 있었다. 당시 이를 본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가 이유를 물으니 박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선거 때는 환장하고 이름 알리려고 하더니 당선되서 싹 떼버리면 쓰겄습니까?”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일단 도의원은 주민들을 대표해서 대의정치 실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다”라며 “주민들이 저 사람이 ‘도의원 누구’라는 걸 알게 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지보다는 이름표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배지는 주민들이 도의원을 자신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거나 일종의 권위로 느껴질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저는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한 것이지 어떤 특별한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지는 권위의 상징이지만 이름표는 일꾼의 상징”이라며 “배지가 필요한 자리에선 차겠지만, 국민들한테 제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 역할을 할 땐 이름표를 계속 찰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당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지난 8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모습. 자료사진. ⓒ뱍형대 페이스북

‘농민운동가’ 출신 도의원의 무거운 책임감
1호 조례안은 전국 최초 ‘재생에너지 공영화’


박 의원은 재수 끝에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도의회에 처음으로 입성하게 됐다. 2018년 전남도의회 장흥군제1선거구에 출마해 32.3%를 얻어 2등으로 낙선했는데, 이번엔 같은 선거구에서 62.0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어 현역이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1등으로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박 의원의 직업란에는 ‘농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하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 등으로 활약하는 등 ‘농업 정책통’으로 이름을 날려왔다.

특히 그는 농민수당을 처음 공론화한 인물로 꼽힌다. 농민수당 전남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그는 20018년 지방선거 낙선 이듬해에 전남도민 4만3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농어민 가구당 월 10만원을 지급하는 주민조례안을 전남도의회에 제출했다. 도의회 논의 중 ‘가구당 5만원 지급’으로 축소됐지만 농민소득 시행 자체는 큰 성과였다.

그런 박 의원에게 농민들이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박 의원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수확철을 앞두고 농촌의 최대 이슈인 쌀값 폭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농민들과 함께 대규모 상경 집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진보당 의원이기도 하고 농민운동가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역할을 많이 요구받고 있다”며 “당연히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처럼 앞장서서 환경을 생각하고 농민을 보듬고 있는 박 의원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는 농촌에 집중되고 있는 재생에너지의 난개발이다.

박 의원은 “최근 어느 지역보다도 전남이 신재생에너지 난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며 “이로 인해 농촌지역의 공동체나 생태계가 많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 전환을 진보당이 적극적으로 끌고 갈 필요 있다”며 “이것이 시대적 화두”라고 강조했다.

이에 박 의원은 자신이 처음으로 대표발의 할 ‘1호 조례안’으로 ‘전라남도 재생에너지 공영화와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내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박 의원이 지방선거에 앞서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을 지내면서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올해 도입된 주민발안제도를 이용해 도의회에 제출했던 것을 바탕으로 만든 조례안이다. 진보당 의원이 없던 이전 도의회에선 해당 조례안에 대한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박 의원이 직접 발의에 나서는 동시에 관련 논의를 이끌고 있다. 같은 도의회 안에서 진보당 오미화 의원(전남 영광군)이 든든한 ‘동지’가 되어주고 있기도 하다.

박 의원은 “재생에너지 사업이 민영화가 아닌 공영화로 전환되고, 지금처럼 자연생태계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인공지형물 등을 활용해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방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또한 공영화의 취지에 맞게 재생에너지 사업 이익 전액이 지역주민에게 돌아가고, 지역 에너지 자립에 기여하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조례안을 설명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명시돼 있다.

만약 해당 조례안이 도의회에서 통과된다면, 재생에너지를 공영화하는 전국 최초 조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기후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탄소중립 정책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전남에서부터 자연파괴 없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공영화 방식으로 추진된다면 전국적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을 불러 일으키고, 지역위기에 직면한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무게감이 있는 조례안인 만큼 처리되는 과정 또한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박 의원은 지난달 10일 조례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이후에도 전남도 담당자 등과 협의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조례안 발의가 임박한 셈이다.

박 의원은 “재생에너지 공영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라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전남도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어느 정도 됐는지도 조례가 성사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간도 필요하고, 고통도 수반되는 조례”라며 “계속 이야기하다보니 (의견이) 모아지는 지점들이 있다. 그렇게 협력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박 의원은 ‘전남도 주요 농산물 가격안정 지원 조례’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조례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어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도시가스보다 많이 사용하는) 기름값이 올라간 상황에서 서민들의 난방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지난 7월 29일 전남도의회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전남도가 ‘말로만 대전환’을 선언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전남도 대전환의 기관차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박형대 페이스북


상임위에서도 빛 발하는 ‘진보 도의원’

도의회의 전남도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이와 관련된 박 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이 쏟아졌다.

박 의원은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상구 전남도 에너지산업국장을 향해 민간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해상풍력 사업 과정에 발생한 송전선로 문제나 ‘기후 악당’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 문제 등을 따졌다. 특히 재생에너지 사업 과정에서 도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민원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할 것을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은 “에너지 자립이라든지 신재생에너지 전환은 오히려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훨씬 더 제대로 되는 것이다. 저는 이게 대전환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영화를 오히려 부추기는 이전의 방식보다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주택지원사업 등 지역민들에게 더 구체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을 더 활성화해야 하는데, 굳이 왜 기업들(민간사업들)을 활성화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또한 박 의원은 강효석 전남도 농축산식품국장을 향해선 농민에 대한 면세유·화학비료 지원 등에 있어 사각지대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해소할 것을 주문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는데, 알고보면 ‘농민운동가’ 박 의원이 처음으로 배정받은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원회라는 것이다. 박 의원은 “상임위원회라는 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배정되는 것이라서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저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전남도와 전남교육청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혁신학교 계승·발전 방안을 물었고,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과 기후생태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졌다. 모두 진보당을 비롯해 진보진영이 내세우던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박 의원은 학교 조리실무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충원 문제도 빠짐없이 챙겼다. 박 의원은 “혁신학교를 어떻게 계승·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추석 연휴에도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추석 연휴 뒤 15일부터 첫 정례회 회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어렵게 추석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가방 싸들고 공부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최지현 기자 ” 응원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