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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31일 화요일

[단독] 행정처 출신 '전관'까지 입법로비에 조직적 동원 의혹


사법농단 미공개 문건, 이광범 변호사 통해 문희상-우상호 등 여야 유력 정치인 접촉18.08.01 00:17l최종 업데이트 18.08.01 10:11l배지현(creativebjh)
큰사진보기 31일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제20대 국회의원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건
▲  31일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제20대 국회의원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건
ⓒ 법원행정처

[기사 보강 : 1일 오전 10시]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법원행정처 출신의 '전관예우' 변호사까지 동원해 조직적인 로비에 나서려고 한 정황이 확인됐다. 최근 해당 변호사가 사법농단 핵심 관계자인 김민수 전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의 변호인으로 선임되면서 법원이 과연 사건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법원행정처는 7월 31일 오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조사한 문건 410개 중 지난 5월 공개하지 않았던 나머지 196개 문건을 법원 전산망을 통해 공개했다. 법원행정처는 그중 2016년 7월 27일 작성된 '제20대 국회의원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사법농단 문건에서 '비공개' 처리된 국회의원들, 왜?)

해당 문건은 약 A4 용지 62페이지로 정당별 국회의원과 가까운 법조인, 주요 이력, 평판, 사법부에 대한 인식 등을 정리한 내용이다. <오마이뉴스> 취재결과 해당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판사 출신의 변호사들을 동원해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입법을 추진하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법원행정처 출신 '전관'이 문희상-우상호 등 접촉 루트로

법원행정처가 입법로비에 활용하려 한 대표적인 '전관'은 이광범 변호사였다. 이 변호사는 해당 문건에 4번이나 등장한다. 법원행정처가 이 변호사를 '접촉 루트'로 상고법원 입법 로비를 벌이려 한 대상은 문희상·우상호·심재철·노회찬 의원 등 당시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이었다.

이 변호사는 이상훈 전 대법관의 동생으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인사실장·사법정책실장 등을 거쳤다. 이 변호사는 2011년 법원을 나와 변호사로 개업했고, 2012년 자신의 이름을 딴 로펌(법무법인 LKB)을 설립했다.

그는 서초동 바닥에서 '영장 기각 전문'으로 이름을 날리며 유명한 전관 변호사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실제 이 변호사가 맡았던 2011년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회장, 2015년 회삿돈 횡령 혐의를 받았던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다수 관계자의 영장이 기각됐다.

법원행정처가 이미 법복을 벗은 변호사까지 입법 로비에 동원했다는 점에서 해당 변호사가 수임한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전관 출신 변호사가 입법 로비를 대가로 '영장 기각' 등 자신의 수임 사건에 유리한 결론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이 변호사는 김민수 전 심의관의 변호사로 선임됐다. 김 전 심의관은 법원행정처 파일 2만 4500건을 지운 의혹을 받고 있으며 검찰 주요 수사대상에 올라와있는 사법농단 핵심관계자다. 그는 또 이 변호사가 법원행정처의 '로비 루트'로 등장하는 해당 문건을 작성한 장본인이다.

최근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김 전 심의관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연달아 기각했다. 당장 이러한 판단에도 김 전 심의관의 변호인 이 변호사와 법원행정처 사이의'거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이 변호사는 1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법원행정처 문건을 전혀 모른다. 내 이름이 나왔나 본데, 금시초문인 내용이다"라며 "개인적으로 그동안 상고법원에 반대해 왔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한 적은 있어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누구에게도 상고법원 관련해 부탁 받은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 (문건에 거론된)문희상 의원은 일면식도 없다. 친분이 있는 분도 있지만 상고법원 관련해서 10년 내에 통화하거나 만난 적 없다"라며 "심재철·우상호 의원과는 10년 동안 만난 적 없다. 노회찬 의원의 연락처는 알지도 못한다. 의원들에게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7월 30일 월요일

北신문, 판문점선언 석달..."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속있는 진행 없다"

北신문, 판문점선언 석달..."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속있는 진행 없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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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31  11: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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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4.27 판문점선언이 발표된 지 석달이 되도록 다양한 부문의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관계개선의 실천적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조성에 그치고 있다면서 남측 당국에 우려와 불만을 표시했다.
<노동신문>은 31일 '무엇이 북남관계의 새로운 여정을 가로막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5.24 대북제재와 유엔제재라는 안경을 끼고 북남(남북)관계를 다루다나니 제 입으로 말 한마디를 하자고 해도 이쪽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제 팔다리를 움직이자고 해도 저쪽의 기분상태를 고려해야 하는 등 민망스러운 행태를 보이며 제 스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제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측 당국의 태도로 인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사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현재 북과 남 사이에 여러 갈래의 사업들이 분망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그 내막을 현미경적으로 투시해보면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속있게 진행되는 것은 거의나 없다. 여기저기에서 무엇을 한다는 여론만 무성할 뿐 그 어디서도 실제적인 움직임은 볼래야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온 민족이 요구하는 것은 북남관계의 부분적인 변화가 아닌 전면적인 대전환이며 대결국면과 전쟁위험의 일시모면이 아닌 항구적인 화해와 평화"인데 비해, 남측 당국이 취하고 있는 관계개선 조치와 협력교류를 위한 실행방식은 그와 다르다면서, "북남관계를 다루는 남조선당국의 공식은 '비핵화 진전에 따른 관계개선 추진'"이라고 비판했다.
남측 당국이 서해 군통신선 연결같은 극히 사소한 문제도 미국의 승인을 받느라 분주하고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에 필요한 몇 kW 용량의 발전기를 들여오는 것도 제 마음대로 결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협력사업의 경우 북측도 북측이지만 남측으로서도 '숨통을 틔우는 절실한 문제'라고 하면서도, " 남조선당국은 '공동점검'과 '공동조사', '공동연구' 등의 '돈 안 드는 일'들만 하겠다는 심산인데다가 그것마저도 1차회의요, 2차회의요 하면서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고 쏘아 붙였다.
남측이 그 핑계로 들먹이는 '여건조성'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해제되는 경우, 즉 북의 비핵화가 이루어졌을 때를 의미하는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북이 한반도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핵시험과 탄도로케트 발사를 중지하고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한 것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한 조치가 있어야 정상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특히 5.24 대북제재조치와 개성공단 폐쇄, 금강산관광 중단 등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유엔 제재와 상관없이 단독으로 취한 대북제재 조치를 수습하기는커녕 도리어 새로운 제재압박 목록으로 추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들어서는 '여건조성'이 말치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모한 행동조치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남측 당국이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하는 단체와 관계자들에게 여러 구실을 붙여 압박을 가하고 있다면서 "남조선 통일부는 북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고려항공이 아닌 다른 나라 비행기를 타도록 뻐젓이 요구하고 있으며 물 한 고뿌도 제대로 사먹지 못하게 훼방을 놀고 있는 등 과거 보수정권의 대결 행태와 다를 바 없이 치사하게 놀아대고 있다"고까지 지적했다.
신문은 "북남관계의 개선과 발전, 협력교류와 화해단합이 얼마나 소중한가는 적대와 대결의 기나긴 나날을 보낸 남조선의 현 당국이 뼛속깊이 절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열망하는 온 겨레와 민심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판문점선언 이행에 대하여 진정한 태도와 올바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7월 29일 일요일

한국전쟁,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다

국회의원회관, 7.27 국제토론회에서
▲ 제시잭슨 목사가 7월 27일 오후 1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7.27 국제토론회'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7월 27일 오후 1시 30분부터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과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이 주관하는 코리아 종전선언, 평화체제 이행에 즈음한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미제국, 전쟁의 세계화”라는 주제 아래, “인류에 맞선 긴 전쟁”이라는 부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한반도, 중동, 베트남, 남미에 이르는 미 제국의 전쟁범죄가 인도주의에 어긋난 미제국의 대량학살로 점철되었다고 폭로 규탄하였다.
위기를 기회로 – 새로운 평화의 지대로
첫 번째 순서로 최근 방한 중인 미국 인권운동가이자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제시 잭슨 목사가 '특별연설'을 하였다.
제시 잭슨 목사는 “한반도에도 평화의 기회를! 대립과 분열의 벽을 허물고 희망과 통일의 새 다리를 놓자! 정전협정 체결 65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연설했다.
제시 잭슨 목사는 “오늘 한반도 사건은 변화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면서, “강력한 희망과 치유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시간은 우리 편이지만 시계를 되돌리고 냉전을 격화시키려는 역풍”이 있다고 경고하고, “김 위원장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조선)이 한반도 내, 주변의 핵무기를 제거하고 정상화를 향한 상호조치를 취하는 비핵화에 대한 단계적 접근 방식”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한국을 미국 무기의 최고 구매자로 유지하려는 군산복합체”를 경계해야 한다면서, “틈을 열고 들어가 평화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고 언급했다.
▲ 황성환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도서출판 민플러스)(구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의 저자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근안 “고문은 예술이다”의 원조는 미국
기조연설자로 나선 황성환 저자(‘아메리카 제국의 몰락’, 구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는 “제국주의라는 말을 빼놓고는 미국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황성환 저자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되었지만, 실제로는 “잔혹한 원주민 학살” 위에서 건국되었고, “흑인 노예체제”로 유지되는 그들만의 자유와 평등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건국이후 곧바로 멕시코에 대한 영토탈취 전쟁에 돌입하여 맥시코 영토 1/3을 탈취한 국가이고, 메인호 폭침을 비롯한 자해공갈극 등 갖은 간계와 폭력을 통해 쿠바와 필리핀을 점령하고 2차대전에 개입하여 세계 최대 제국이 되었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또한 남미에 대한 미국의 침략의 역사를 언급하는 가운데, 잔혹한 고문과 대량학살이 진행된 남미의 참상을 고발했다.
특히 미 정부가 우루과이 경찰에 파견한 고문기술자 단 미트리온이 “인체의 특정 부위에 적확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예술이다”라고 언급한 점을 두고, 한국에서 악명 높은 이근안 역시 “고문은 예술”이라는 식의 발언과 그 정신세계는 제국주의 미국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리고 실제로 AP통신은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미국의 고문 교본을 공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황성환 저자는 기조연설 말미에서 “미국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 “간계와 폭력의 역사”이고,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으나, 이제 달러체제의 약화 등을 거치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단지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 아니면 공중분해인가?”만 남았는데, 그 선택은 “전적으로 미국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 7.27 국제토론회에 참가한 발제자들(왼쪽부터 이병진 외국어대 교수,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황성환 기조발제자)과 토론사회자(최은아 6.15남측본부 사무처장)
한국전쟁, 전쟁인가 학살인가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신기철 소장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 “한국전쟁”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었다고 지적했다.
신 소장은 지난 2월 발굴된 아산 배방면 민간인 학살 자료를 제출하며, 208명의 시신 가운데, 성인 남성이 23명, 성인 여성이 127명, 어린아이가 58명으로 추정된다면서, 이것이 학살이지 어떻게 전쟁이냐고 물음을 던졌다.
신기철 소장은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서, 이 땅의 민중들이 분단 이후 “적이 된 국민”으로 살아야 했고, 학살의 대상으로 되었다고 하면서, 48년 단독정부 수립 이전 시기의 민간인 학살, 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부터 전쟁 이전 까지의 민간인 학살, 초기 전쟁 전개 과정에서의 민간인 학살, 부역자 처리과정에서의 학살의 사례들을 수도 없이 열거했다.
신 소장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정보처 자료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4개월 동안 민간인 학살 피해는 106만 명을 넘어선다“면서, ”단순 계산만으로도 군인들 피해의 10배를 넘어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 역사서에는 “마치 인민군이 1백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처럼” 보이려 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례를 있는 그대로 외국 학자들이 인용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진실은 정반대”였으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에 의하면, 미국과 이승만 군대는 인민군보다 자국의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더욱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고 고발했다.
미국의 중동 침탈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침략을 분석한 한국외국어대 이병진 교수는 “미국의 원유수탈 정책”이 “아랍과 중동 인민들의 삶을 황폐화 시켰고, 반미의 싹”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 이란 혁명의 중동지역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사우디-미국 군사위원회”를 구축했고, “후세인은 사우디왕으로부터 전쟁자금과 영공 사용 승인을 받고” 이란 침략전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라크-이란 전을 통해 사우디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으나, 이라크는 국력이 피폐해졌는데, 이에 대한 전후지원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쿠웨이트를 침공하게 되고, 결국 미국은 이것을 핑계로 1차 이라크 침략전쟁을 시작했다고 고발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관련하여, 사우디내에 반동적인 와하비즘 세력(이슬람판 재림예수인 마흐디를 주장하는 세력)이 만연했던 것이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의 뿌리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교조적인 이슬람 근본주의가 통치명분이었던 사우디 봉건정권이 “나날이 성장하는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운동을 통제할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상황에서 구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자, 이를 계기로 “파키스탄 정보부의 정보력과 사우디의 재정, 미국의 무기지원이 결합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전사들은 막강한 무장조직으로 성장하였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건설업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 왕실의 재정도움을 받아 아프간에서 ”알 카에다 조직을 만들어 이슬람 전사들의 후예“들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시리아 내전은 “단순한 종파전쟁이”이 아니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IS)가 시리아 내전을 틈타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시리아 내전의 성격이 세속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대결로 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란 대 사우디+카타르+터키 인근의 중동 국가의 대리전이면서, 러시아 대 미국+유럽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미국은 겉으로는 이슬람 국가(IS)를 괴멸시키겠다고 주장하나, 실제 “제1목표는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토론과 더불어 베트남 밀라이 학살 관련 동영상과 주권방송에서 제작한 아메리카 제국의 침략(아카) 동영상 시리즈 등이 상영되었다.
토론회는 공주대학교민주동문회, 민중당, 민플러스, 사월혁명회, 서울대학교민주동문회, 서울진보연대,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우리학교와아이들을지키는시민모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통일의길, 한국전쟁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한국진보연대, A.O.K., 4.9통일평화재단이 공동주최하였다.
참고로 아래 링크를 통해 토론자료 원문을 볼 수 있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軍 장성들이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한 이유

문재인 대통령,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
임병도 | 2018-07-30 07:59:4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통령께 대하여 경례. 충성!”
7월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는 어깨에 별이 달린 군장성 수십 명이 꼿꼿한 자세로 거수경례와 함께 ‘충성’을 외쳤습니다.
원래 청와대에서 열리는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이 있더라도 거수경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거수경례와 함께 충성이라는 구호까지 나왔습니다. 심지어 군장성들은 대통령이 오기 전에 거수경례와 구호를 연습하기도 했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장군들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랬던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관례를 깨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성 구호까지 외쳤을까요?
문재인 대통령, 계엄령 검토는 불법적인 일탈행위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이 나왔을 때만 해도 ‘계엄 문건이 구체적 실행 계획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라며 진위 파악이 먼저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실 관계를 정확히 검토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는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이다”라며 강하게 비판을 하고 나섰습니다.
문 대통령이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내란 음모’처럼 엄청난 범죄 사실로 규정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군을 더는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군을 견제하는 일 뿐입니다. 군장성들 입장에서는 군 통수권자를 잘 따르고 있다는 모양새를 취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충성’을 외치게 된 배경입니다.
국방부, 장군 76명 감축하겠다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군장성과 악수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국방부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방 개혁 2.0 보고를 통해 “현재 436명의 장군 정원을 2022년까지 360명으로 76명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장군 숫자는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군 장성 감축 계획을 실행하려고 해도 군대 내의 반발로 무산되기 일쑤였습니다.
MB정부도 2020년까지 60명의 장군을 감축하겠다고 국방계획에 포함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고, 결국 40명 감축으로 축소됐습니다.
과거 정부와 다르게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군장성 감축은 실행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으로 국민 대다수가 장군 감축 계획에 적극 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목을 날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승승장구하던 장군들마저도 몸을 사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개혁 2.0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는 ‘국방개혁 2.0,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 보고대회와 함께 열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가 마련한 ‘국방개혁 2.0’에 대해 “군 스스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국방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으로 임해 주시길 바란다”라며 아래와 같이 당부했습니다.
첫째, 질적으로 강한 군대를 건설해야 합니다.
둘째, 스스로 책임지는 국방 태세를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스마트 국방, 디지털 강군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넷째,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기무사가 박근혜 탄핵을 막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엄령 문건을 만들고 내란음모를 계획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100만이 넘는 국민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국민의 힘이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되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군장성들은 결코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13 

비공개 구두약속, 세상을 바꾸는 격변의 기폭제

[개벽예감 308] 비공개 구두약속, 세상을 바꾸는 격변의 기폭제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7/30 [08: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미국군 유골송환은 언제나 전승역사와 연관된다
2. 단독회담 중에 비공개 구두약속 있었다
3.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의 정체
4. 통일을 위해서라면 9억 달러짜리 시설도 아깝지 않다
5. 3단계로 도약한 조선, 2단계 진입 주저하는 미국


1. 미국군 유골송환은 언제나 전승역사와 연관된다 

2018년 7월 27일, 이 날은 조선에서 국가명절로 경축하는 전승절이고, 미국에서는 기억하기 싫은 패전일이다. 미국인들은 조미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했다는 조선의 역사인식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공화국 남반부를 무력으로 강점한 미제침략군이 공화국 북반부까지 강점하려고 추종국 군대들을 거느리고 전면전을 도발하였으나,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북침공격을 저지하고 정전협정을 항복의 표시로 받아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전승 65주년을 맞은 지난 7월 27일 오전 6시경, 오산미공군기지를 이륙한 미국 제11공군 산하 제15비행단 소속 C-17 글롭매스터(Globemaster) 수송기 한 대가  원산국제비행장에 착륙하였다.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가 담긴 유골함들이 수송기에 실렸다. 유골함을 실은 수송기는 곧바로 이륙하여 오전 11시경 오산미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지난 시기 조선은 판문점에서 육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원산에서 항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다.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조선에서 전승 65주년을 맞은 2018년 7월 27일 미국 제11공군 산하 제15비행단 소속 C-17 수송기는 원산국제비행장에서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가 담긴 유골함 55개를 싣고 오산미공군기지로 돌아갔다. 이 사진은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한 수송기에서 유골함을 내리는 장면이다. 지난 시기 조선은 판문점에서 육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원산에서 항공로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다.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었을까?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원래 조선은 전승절 65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려고 계획하였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전협정은 조미전쟁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받아낸 첫 번째 항복의 표시이고, 종전선언은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받아낼 두 번째 항복의 표시이므로, 조선은 첫 번째 항복을 받아낸 곳에서 두 번째 항복도 받아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기가 조선에게 항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종전선언 발표를 뒤로 미루었다. 미국의 지연전술 때문에 종전선언 발표와 유골송환은 뒤로 미루어졌으나, 조선은 미국의 지연전술을 무력화시키고 오는 8월 중에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나머지 유골을 추가로 송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조미전쟁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항복의 표시로 정전협정을 받아낸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여야 마땅하므로, 종전선언을 발표하지 못한 채 미국군 유골만 넘겨주게 된 이번에는 판문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고, 다음번에는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면서 미국군 유골을 넘겨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이미 발굴된 미국군 유골 200여 구 가운데서 55구 유골만 1차로 넘겨주었고, 나머지 150여 구 유골은 판문점에서 추가로 넘겨주려고 남겨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평양국제비행장이 아닌 원산국제비행장을 송환장소로 택했을까? 원산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이 원산 앞바다를 침범하여 첩보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끌어갔던 전승기억이 남아있는 항구도시다. 조선은 30여 년 동안 원산항에 푸에블로호를 전시하였다가, 1999년에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겼고, 지금은 2013년 7월 28일에 개관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보통강변 옥외전시장에 전리품으로 전시하였다. 판문점에서도 원산에서도 조선의 유골송환은 언제나 조선의 전승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미국군 유골송환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조미정상회담 확대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요청하여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된 것이므로, 백악관은 송환당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이 미국군 유골을 송환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지적하였지만, 그런 지적은 백악관의 일방적인 시각만 생각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백악관의 일방적인 주장을 따르는 편중보도로 유골송환의 진실을 가렸지만, 유골을 송환한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조선이므로 유골송환의 의미는 조선의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조선의 시각에서 유골송환을 바라보면,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조선이 그 대결에서 패한 미국에게서 항복의 표시로 종전선언을 받아내기 위해 우선 미국군 유골 55구를 1차로 송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단독회담 중에 비공개 구두약속 있었다

2018년 7월 24일 미국 쌘프랜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외교-국방장관회담이 진행되었는데,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그는 취재기자로부터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를 시작하였다는 미국의 언론보도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때,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약속에 완전히 부합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구두로 약속했다”고 답변했다.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에서 중요한 계기이므로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려고 하는데, 우선 팜페오 국무장관의 답변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공동성명 이외에 공개되지 않은 구두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두 정상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들어있지 않은 비밀사항이어서 구두약속이 실행되기 전에는 두 정상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고, 더욱이 두 정상 간의 비공개 구두약속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격변의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개 구두약속을 나누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도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진행된 단독회담에서 비공개 구두약속을 나누었다. 비공개 구두약속의 중요성을 간파한 트럼프의 정적들은 조미정상 단독회담의 비공개 구두약속과 미러정상 단독회담의 비공개 구두약속을 모두 세상에 공개하라고 백악관에 요구하며 소란을 피웠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 단독회담을 시작하기에 직전 취재기자들 앞에서 발언하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에서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구두약속을 나누었다. 두 정상 간의 비공개 구두약속은 모두 10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구두약속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격변의 기폭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나는 2018년 6월 18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트럼프가 말하지 않은 조미정상회담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공개 구두약속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였다.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실현되는 것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철군조치에 상응하여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5년 동안 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핵대결의 내면을 파헤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비공개 구두약속, 다시 말해서, 주한미국군의 완전한 철수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실현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조선이 이행하려는 중대조치가 실행되기 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다섯 가지 중대사안을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이행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 종전선언 발표 
- 평화협정 체결 
- 대조선 경제제재 해제 
- 주한미국군 철수

미국이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대조선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 분야별 교류를 추진하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단독회담 중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섯 가지 중대사안을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이행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 미국군 유골송환 및 발굴 
-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 녕변흑연감속로 해체 
- 핵확산금지조약 복귀 

조선이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대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각 분야별 교류를 추진하게 되면,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구두약속 가운데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약속만 실행에 옮겼고,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약속은 뒤로 미루었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공개 구두약속 가운데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기로 한 약속을 이미 이행하였고, 지금은 미국군 유골을 송환, 발굴하기로 한 약속과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이 지연전술을 쓰는 바람에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이루어진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속도가 약간 늦어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가지 구두약속을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지연전술이 무력화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행시간표가 예정대로 실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3.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의 정체

2018년 6월 25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팜페오 국무장관은 “북조선이 여전히 핵분열물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짤막한 발언이었지만, 조미관계의 깊숙한 비밀공간에서 그 발언의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새로운 대조선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의 눈치를 살피며 발언수위를 조절해야 하였던 팜페오 국무장관이 조선에서 여전히 핵분열물질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극도로 민감한 문제를 슬쩍 덮고 넘어간 임기응변이었다. 임기응변을 발휘한 팜페오 국무장관의 머릿속에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차마 꺼내놓지 못한 말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조선에서 여전히 핵무기가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차마 꺼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핵분열물질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물질이므로, 조선에서 핵분열물질이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말은 핵무기가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뜻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조선에서 핵분열물질만 생산되고 핵무기는 생산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를 알지 못하는 착오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와 동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완전히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점차적으로 축소한다고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조선에게 핵분열물질 감산과 핵무기 감산을 기대할 수도 없고, 요구하지도 못한다. 미국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점차적인 핵감산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허점이었다. 미국은 조선의 점차적인 핵감산 문제를 협상에서 제기하지 않은 실수를 후회하면서, 그 무슨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느니, 영구적이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라느니,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느니 하는 괴상한 개념들을 조작, 유포하면서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허상에 한 눈을 팔았다. 미국은 실책을 범했다.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에서 끊임없이 울려나오는 기계동음이 백악관의 속을 바작바작 태우고 있다. 백악관은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사업을 현지지도한 소식을 보도한 조선의 언론보도에 나오는 현장보도사진들 가운데 하나인데, 공식명칭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 6기가 놓여있다.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그와 동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은 핵무기생산체계를 멈춰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조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무기 생산을 점차적으로 축소한다고 합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조선의 핵무기생산체제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은 평안북도 녕변에 있는 핵시설단지에서 가동되는 흑연감속로에서 핵물질을 연소하고 그것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하여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데, 그 생산량은 연간 5kg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건설하여 2010년에 세상에 공개한 우라늄농축시설에서 제조되는 고농축우라늄을 가지고 대부분의 핵무기를 생산한다.  

<워싱턴포스트> 2017년 8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핵탄두 보유량은 2017년 7월 28일을 기준으로 최대 60발에 이른다고 하는데, 2017년 6월 27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 박사는 조선의 연간 핵탄두 생산량이 6~7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은 핵탄두를 2개월마다 1발씩 계속 생산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핵무기 생산을 중지시키는 것은, 백악관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를 끄는 것처럼 화급한 문제다. 백악관이 자기 발등에 떨어져 타들어가는 불덩이를 화급히 끄려면,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구두약속을 꾸물거리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도 조미고위급회담에서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연전술을 들고 나와 종전선언 발표를 뒤로 미룬 것은 발등에 불덩이가 떨어져 타들어가는 백악관의 화급한 처지를 망각한 처사였다. 


4. 통일을 위해서라면 9억 달러짜리 시설도 아깝지 않다
  
2018년 7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38노스(North)>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2018년 7월 20일과 22일에 각각 촬영된 그 위성사진자료들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업위성이 7월 20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자료에서 해체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 보인 것은, 그 해체작업이 그보다 며칠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평소에 조선을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미국 첩보위성이 상업위성보다 앞서, 더 세밀하게 해체작업현장을 포착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24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해외참전노병 전국대회에서 연설하면서 “북조선이 핵심적인 미사일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을 해체하는 절차를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진들이 나왔다. 우리는 그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그가 연설하기 전날인 7월 23일에 <38노스> 보도기사에 실린 위성사진자료를 보고나서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처럼 말한 것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7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38노스>에 실린 상업위성사진자료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위성발사시설들이 해체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약속한 중대조치들 가운데 하나다. 2011년 말에 완공된 서해위성발사장은 9억 달러짜리 현대식 위성발사시설이다. 지금 조선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그런 위성발사시설을 주저없이 해체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7월 6일과 7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미고위급회담을 마친 팜페오 국무장관은 7월 8일 일본 도꾜에서 한미일 3자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였는데, 회담 직후에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미사일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을 해체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약속해온 그 문제에 관해 (조미고위급회담에서) 논의했다. 중요한 시기에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될 것인데, 곧 시작된다니 희망적이다. 이것은 비핵화를 향한 행동에서 중요한 사건이며, 그들의 목표를 이행하는 데서 좋은 발걸음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팜페오 국무장관의 이 발언은, 조미고위급회담 중에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재확인하고, 2018년 7월 20일 직전 어느 날부터 해체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통보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팜페오 국무장관의 조미고위급회담 결과를 보고받고 조선이 7월 20일 직전 어느 날부터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7월 24일 해외참전노병 전국대회 연설에서 마치 그 전날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었던 것이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8일 도꾜에서 진행된 3자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이 “미사일시험장”을 곧 해체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는 보도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서해위성발사장 경내에 있는 대륙간탄도탄엔진분사시험장이 해체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38노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대륙간탄도탄엔진분사시험장과 함께 위성발사시설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을 해체하는 것은 응당한 조치로 되지만, 서해위성발사장 전체를 해체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서해위성발사장은 2011년 말에 완공되었다. 250만 평방미터(76만평)에 이르는 방대한 부지에 현대식 시설들이 들어섰다. 2012년 3월 31일 <조선일보>는 서해위성발사장 건설비용이 약 8억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한국 정보당국의 추산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완공 이후에도 조선은 서해위성발사장 시설을 더욱 확충, 보강하였으므로, 서해위성발사장 총건설비는 9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이 9억 달러를 들여 건설한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서해위성발사장이 9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비로 산출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시설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만일 서해위성발사장이 없었다면, 1998년 8월 31일 조선이 첫 인공위성을 동해위성발사장에서 쏘아올린 때부터 오늘까지 20년 동안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기울여온 국가우주개발사업도 성과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우주개발은 위성발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6년 2월 7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4호를 탑재한 위성운반로켓 은하가 서해위성발사장 수직발사대에서 거대한 화염과 굉음을 내뿜으며 우주공간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구관측위성을 탑재하고 수직발사대로 이동하기 직전 조립시설 작업장에 가로놓인 위성운반로켓 은하의 동체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기울인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고, 우주강국건설의 꿈은 원대하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오고 있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스스로 중단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8천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결심하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국가우주개발보다 더 중대하고 고귀한 과업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에 기울인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다. 조선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제1차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자기의 우주과학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13년 4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제12기 제7차 회의에서 국가우주개발국(NADA) 창설을 결의하였고, 우주개발법을 채택하여 우주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조선에서는 국가우주개발국 이외에도 민간단체인 조선우주협회가 2016년에 조직되어 해마다 우주과학기술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우주강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은 2022년까지 정찰위성, 통신위성, 위치관측위성을 연속 쏘아올려 독자적인 위성항법체계(GPS)와 지리정보체계(GIS)를 구축하기 위한 우주개발의 길에 나섰던 것이다.  

2016년 8월 4일 미국 통신사 <AP>는 조선의 국가우주개발국 현광일 과학연구실장이 2016년 7월 28일 <AP> 특파원과 현지에서 진행한 대담을 실었다. 대담에 따르면, 조선의 우주과학자들은 제2차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2020년까지 완수하고, 그 다음에는 달탐사위성을 쏘아올려 달표면에 공화국 깃발을 꽂으려고 구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없어서는 안 될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다니, 지난 20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이제 와서 중단하려는 것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는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만이 내릴 수 있으므로, 지난 7월 20일 직전에 시작된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정에 따른 조치인 것이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는 조선이 지난 2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오는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스스로 중단하는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8천만 민족의 절절한 염원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얼마나 강고하고 강렬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있어서 국가우주개발보다 더 중대하고, 고귀한 과업이다.    

(2)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겨 이른 시일 안에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조선이 국가우주개발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에 통일공화국이 세워지면, 분단체제 아래서 남과 북이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온 우주개발사업이 하나로 통합될 것이며, 통일공화국의 국가우주개발사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추진력과 추진속도로 비약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전략은 통일공화국에서 실현될 원대한 우주개발전략으로 확대되었다. 통일공화국의 우주과학자들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유리한,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에서 최첨단 위성들을 우주공간으로 연속 쏘아올리며 신흥우주강국의 위용을 떨칠 것이다. 8천만 우리 민족에게 조국통일은 다른 모든 분야들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우주개발분야에서 경이로운 신기원을 이루는 대사변을 일으킬 것이다.   


5. 3단계로 도약한 조선, 2단계 진입 주저하는 미국 
  
2018년 7월 24일 미국 쌘프랜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진행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외교-국방장관 직후 공동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팜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에 따라 미사일엔진시험장(서해위성발사장을 뜻함-옮긴이)이 해체되는 경우, 미국은 해체작업현장에 사찰원들을(inspectors) 보내게 해달라고 (조선에게) 요구해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위에 인용된 팜페오 국무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할 때, 사찰단을 현장에 파견하는 검증문제를 조선에 제기했으나, 조선은 그런 검증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강도적인 검증요구”는 조선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체험적으로 잘 아는 미국은 통하지도 않을 검증요구를 그만 제기하고, 조미정상 단독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구두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회담에서 나눈 구두약속은 단계별-동시적 행동원칙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 정상의 구두약속 이행과정이 어느 단계까지 진전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공화국 쎈토사섬에서 진행된 조미정상 확대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중대한 구두약속을 나누었고,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채택,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조선의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미국의 속도는 한참 느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년 뒤에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격변의 시간표는 온갖 장애를 넘어 힘있게 실행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시험 및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지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이미 조미정상회담 직전에 이행하였고, 그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조미정상회담 직후에 이행하였다. 이것은 조선과 미국이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1단계를 이미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에 미국군 유골을 송환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비공개 구두약속을 이행하는 2단계와 3단계에 각각 순차적으로 진입하지 않고,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것만큼 이행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고,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6개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년 뒤에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간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2단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은 2단계와 3단계에 동시에 진입하였는데, 미국은 2단계에 아직 진입하지 못하였으니 조선의 이행속도와 미국의 이행속도는 격차를 보인다. 피동에 빠진 미국이 조선의 주동적인 조치를 따라가려면,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은 일정한 시간을 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해체작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조선의 핵무기생산체계는 오늘도 여전히,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조선의 핵무기 생산을 중단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하루빨리 실현하려면,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종전선언을 발표하기로 한 구두약속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구두약속을 동시에 이행하여 추진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추진속도를 높여 비공개 구두약속을 신속히 이행하는 것은 조미 양국의 공동이익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일이므로,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용단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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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분단 때문에 주눅 들어, 통일이 해결책”

<인터뷰> 이경자 (사)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계환.조정훈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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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9  2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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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자 이사장은 달변이었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이 없었다. 목소리는 낭랑하고 소프라노였다. 손 제스처와 몸짓도 삼가지 않았다. 답변은 단호했고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경자 (사)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처음부터 그는 달변이었다. 한국작가회의에 최초로 여성 이사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자, 대뜸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변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일장 풀어놓았다. 이후 어떤 질문이든 막힘이 없었다. 목소리는 낭랑하고 소프라노였다. 손 제스처와 몸짓도 삼가지 않았다. 답변은 단호했고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이사장은 한국문학의 현황에 대해 “한국문학이 그동안 주눅 들어있었다”면서, 그 이유로 분단을 들었다. “분단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짓눌렀기 때문”에 “작가가 감수성을 세계화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응축”됐다는 것이다. 예술가들 정신에 식민지, 반공법, 6.25, 분단 등등이 ‘얼음’처럼 박혀있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당연히 분단문제 해결을 들었다. 분단문제가 해결되면 “작가는 우리의 현실을 더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언어와 문장, 문체로 표현해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문학은 세계성을 갖게 되는 것”이기에 “작가들에게도 통일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야 “우리 문학이 주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서 “그래서 세계성을 띨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언어로 분단문제, 민족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역사를 반추하면서 일제식민지, 4.19, 5.16쿠데타 이런 걸 다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2007년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을 떼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꿀 때 “찬성”했다면서, 분단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민족문학보다는 그냥 한국작가회의라고 하는 게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는 게 세계성을 띤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특히, 이 이사장은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 기쁨, 자부심 그리고 해방”이라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며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 관심 갖고 풀 것을 제의했다.
올해 초부터 한국사회를 강타해 홍역을 치른 문단 내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고은 시인이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은 문화가 달라졌다면서 “고은 선생을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사장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의 역할에도 애정을 표했다. 그는 “(한국작가회의가)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면서 “내 기질이나 분위기만으로도 회원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편안함, 누나에게서 느끼는 친근함,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만족해했다. 나아가 그는 “이경자가 작가회의 이사장하면서, 작가회의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첫 번째 욕심”이라며 “작가회의는 권력 단체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의 문학이 주로 분단문제와 여성문제 등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다룬 것에 대해 “내 기질과 비슷한 것 같다”고는, 고향인 강원도 양양을 ‘강원도의 전라도’라고 하며, 양양에 있는 조산을 두고 ‘양양의 모스크바’라고 했다며 자신의 삶과 기질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6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 소재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열렸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한국작가회의, 내가 이사장 된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
□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 : 지난 2월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첫 여성 이사장이다. 늦게나마 이사장에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
■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고맙다. 여성으로는 처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함축된 상징성이 있다. 그동안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변화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다. 물론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수공업 노동자, 그리고 미군이 한국에 왔을 때 양색시, 그 전에 일제시대 때 정신대 성노예 이런 게 있었지만, 그건 다 주류 남성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부수적인 존재였다.
이어 한일협정반대 6.3데모니, 유신반대, 그리고 끝없이 통일을 주장하는 통일운동세력들, 그 다음에 전태일과 전태일을 통한 노동자들의 사회적 대각성에 따른 노동자 대투쟁, 그리하여 80년대 중반에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각성이 일어났지만 그건 거의 상징적 수준이었다. 여성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소수의 여성들만이 역사의 무대에 조금 등장한 정도였다.
  
▲ 지난 2월 10일 한국작가회의 총회에서 이사장 취임인사를 하고 있는 이경자 소설가. 왼쪽은 신임 사무총장 한창훈 소설가. [사진제공-한국작가회의]
이제 비로소 여성이 인간화, 주체화에 대해서 각성하게 되었는데. 그 각성한 것이 소수 지식인 여성이나 소수 엘리트 여성들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의 의식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20대 젊은 여성부터 말이다. 이런 것은 마치 누군가가 사회를 이념적으로 주도하는 계층에서 선도해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을 가진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올해 들어 누군가 불을 지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내가 작가회의 이사장이 된 것은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이 시대 한국사회는 남성적인 것, 남성문화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인 사회인 것 같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 가정이나 개인 등 총체적인 분야에서 남성이라고 지칭되는 군사문화, 폭력문화, 위계문화, 가부장문화, 싸움으로 해결하는 것 등,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진저리가 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점에 나이로 보나, 등단한 경력으로 보나, 작가회의에서 꾸준히 회원으로 역할 해온 것 등이 집약에 돼서 이사장이 된 것 같다.
□ 여성의 지위 역할의 변화과정을 설명하셨는데, 이게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 그렇다.
□ 문단에도 남성이 많고 남성 위주로 돌아갈 테니까.
■ 특히, 한국작가회의는 내부에서 그런 문화가 지배했건 아니건 상관없이 외부에서는 굉장히 남성적이고 권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기질이라는 게, 권력을 싫어하고 또 군대 문화나 가부장 문화 같은 거 근본적으로 반대하기에 내가 있는 존재만으로도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 내 기질이나 분위기만으로도 회원들이 엄마에게 느끼는 편안함, 누나에게서 느끼는 친근함,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좋다. 기쁘다.
□ 지금 이사장 되신지 몇 개월?
■ 4개월 됐다.
□ 한국작가회의에서 아직 큰 변화가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다.
■ 아니다. 변화가 있다. 왜냐하면 조직이 옛날과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옆 책상을 가리키며) 여기 우리 한창훈 소설가가 사무총장인데, 작가회의는 이 사람이 다 꾸려가고 있다. 내가 작가회의에 들어와 조직개편을 했다. 그래서 그동안 권위적인 것으로 비친 사무국에서 그런 권력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작가회의에는 2,700명 회원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중앙에서 내려가는 수직이 아니라 그 회원들에게 역할을 고루 분배하는,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조직을 개편했다.
□ 4개월 만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면,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 이사장 임기가 2년이다. 계속 변화하지 않으면 지루해질 것 같다.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오늘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이 변경돼 왔다. 각 명칭에는 그 시대를 반영한 정체성이 있을 것 같다. 단체 이름에 자유실천, 민족문학, 한국이 각각 들어간 이유를 설명해 달라.
■ 한국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창립된 게 1974년이다. 그때 유신반대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80년대까지는 모두 모여서 농성하고 데모하러 다녔다.
그때 우리는 독자나 사회가 우리 작가를 통해 무엇을 요구하는지 귀 기울였다. ‘자유’를 실천하고 자유가 무엇인가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가 변해서 ‘민족문학’ 하자고 했다. 그리고 자유와 민족을 지나서 지금 ‘한국’작가회의가 가장 중요한 이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분단된 조국에서 분단현실을 인식하거나 자각하지 않으면 작가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민족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끼리만 하는 것 같다. 문학은 우리의 분단현실을 자각하고 그걸 개선하려고 하고, 또한 분단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비극이나 억압과 차별들을 극복해내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극복해내는 것, 문학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런 것들은 결국 세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분단도 폭력이지 않은가. 거대한 폭력의 산물이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 여러 군데에서 폭력이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데 우리가 분단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민족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고, 더 민족문제를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족문제를 떼고서는 우리 현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단문제로 인해 우리 내면에서 국가보안법을 의식하고, 분단된 반쪽을 끝없이 의심하고 밀어내고 배척해야 하고 증오하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닌 것 같은 왜곡된 심성이 길러지고 있다. 분단문제로 생긴 노이로제 때문에 남한 모든 사람들의 심성이 왜곡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민족문학보다는 그냥 한국작가회의라고 하는 게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는 게 세계성을 띤다는 게 내 생각이다.
□ 2007년 당시 제 기억에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을 떼고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꿀 때, 1년여 시간을 끈 걸로 안다.
  
▲ "민족문제는 나의 문제이다.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이름 바꾸는 것, 명패를 바꾸는 것에 나는 그때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문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체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위한 것인데 당장 밥상 위에 분단이 있어서, 그것을 드러내면서 우리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어떻게 세계성을 띨 수 있을까가 작가들의 고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취성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회의라는 게 무슨 누군가의 독재성을 갖고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라서, 가능하면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쓴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 반대가 심했다는 말씀이다.
■ 반대가 많기는 했다. 하지만 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는 것에 설득되거나 못마땅해도 받아들이거나 그렇게 된 거다. 인삼 녹용도 체질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이념이나 헌장 같은 것들이 누구에게나 다 맞겠는가.
□ 그런데 아직도 민족에 대한 희망, 민족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 작가회의도 그렇고 나도 엄청 그렇다.
□ 단체 이름에 ‘민족’이 빠진 것 자체를 불순하게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 그건 오해다.
□ 지난 3월 문단 일부에서 민족작가연합이 창립됐다. 민족작가연합은 강령에서 일제시대에는 저항의 문학을 지향해야 했듯이 분단시대에는 통일의 문학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바른 작가의 사명이라 했다. 그래서 ‘민족’을 넣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문학’이 빠진 것에 대한 반발로 보여진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향후 양 단체의 관계 설정은?
■ 나도 그 단체에 참가한 작가들의 명단을 봤다. 그리고 주축인 작가들을 광주에서 만났는데, 이 분들이 딱히 우리 한국작가회의에 대해서 대척점에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작가회의의 40년 넘는 역사에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수고들이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우리 작가회의에 계신 분들 중에서 투옥되고 고문 받은 분들이 많다. 그리고 그분들의 투옥과 고문에 대해서 후배 작가들의 존경과 위로를 위한 노력의 역사가 있었다. 상호 대립하는 게 아니기에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회의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 이사장께서는 소설 <순이>, <언니를 놓치다>에서도 보이듯 분단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 내가 쓴 작품에 50%가 분단과 관련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분단에 대해서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우리는 분단과 관련돼 있고 그리고 분단으로부터 나온 모든 억압이 우리들의 의식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는다고 하면 곤란하다.
□ ‘민족은 하나다’, ‘언어도 하나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분단 상황에서는 모국어를 쓰는 작가는 문학을 통해 민족과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사장께서 생각하는 민족문학이란? 
■ 나는 지금 민족의 현실이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민족문제는 나의 문제이다. 민족문제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민족문제에 대해서 인식하든 아니든 남북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조짐에 한 발 한 발 가고 있다. 그런 것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민족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나아가 민족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게 된 원인들에 대해서는 처절하게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는 누군가 민족문제에 대한 분단현실, 분단을 낳게 된 역사적 맥락을 통시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디에서 일하든 타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본다. 민족문제에 대해서 자각이 없다면 박근혜처럼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쇼하다 만다. 그러면 안 된다.
“고은 선생을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 이사장께서는 분단문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특히 여성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 <절반의 실패>와 <사랑과 상처> 등은 페미니즘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시인이자 운동가였던 고정희의 정신을 잇기 위한 ‘고정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올해 이사장이 된 뒤 문단 내 성폭력 문제, 미투 운동을 겪었다. 이에 대한 생각과 관련 문인들의 처리 방향은?
■ 신문이나 보도를 보셔서 알겠지만 고은 선생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기 발기인이다. 고은 선생이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이사장도 하면서 그 분의 이름과 우리 작가회의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그 분 덕을 많이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시대에 따라서 영웅이 역적도 되고 그러는 게 인간사 아닌가. 시대는 변한다. 중국의 모택동도 대장정하고 농민혁명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손꼽히는 위인인데, 그렇지만 그 시대에 문화대혁명은 잘못됐다. 사실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이 그런 식으로 가는 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문화를 건들지 않으면 혁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모택동이 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영웅은 없다. 그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고은 선생이 활동하시고 고은 선생이 사랑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는 맞다. 우리도 그 분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문화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너무나 훌륭하고 유명하기 때문에 전체 국민들이 다 아는 큰 사건이 되고 말았다.
  
▲ “시대와 문화가 달라졌다. 고은 선생을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미투 운동 초기에 걷잡을 수 없는 세찬 바람이 불 때, 내가 이사장으로 오고 작가회의가 새 조직이 꾸려졌는데, 그걸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가회의에는 70-80세 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20대 회원도 있다. 우리는 너무나 상이한 문화를 습득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 조직은 앞으로 나가야 하고 발전해야 하는 조직인 것이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조직도 생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활습관이나 양성 간 관계의 인습들을 주장해서 새로운 물결에 대해서 담을 쌓으려고 한다든가 둑을 쌓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문학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기본 성정이 자유, 평등, 평화이어야 하는데, 그건 그 정신과도 배치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1973년에 등단했기에 고은 선생과 오래도록 같이, 내가 시를 쓰지 않았지만 늘 모임에서 인사하고 뵌 분이다. 나는 술을 전혀 못 한다. 그래서 술자리에 같이 있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고은 선생을 아무튼 작가회의로부터 떠나게 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회원이 아니다.
□ 일종의 악역을 맡으셨는데, 착잡했을 것 같다.
■ 뭐, 굉장했다. 시간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신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그 분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행동이나 언행이 그냥 유쾌하게 통용되던 시대가 있는가 하면 지금은 범죄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미투 운동은 아마 지금 2, 3월처럼 요란하지 않아도 그 변화가 물밑에서 계속 흐르리라고 생각한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 관계에서, 남성에 의해서 여성이 억압받는가, 또는 그 반대인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 최근 한국사회가 다양화, 극단화되면서 ‘남혐’, ‘여혐’ 등의 조어가 나오면서 극도의 성 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여혐이 강한 ‘일베’에 대항해 ‘메갈리아’, ‘워마드’ 등이 나왔는데 일부에서 ‘남혐’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페미니즘 작가 입장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운동을 어떻게 보는가?
■ 레닌이 초기에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혁명은 처음에 이렇게 돌아있는 것을 이렇게 바꾸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가운데로 왔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림). 그래야 제대로 오는 것이다. 이건 모든 사회 변화에 필요한 명제이다. 극우는 극좌에 갔다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라고 생각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왜냐면 이렇게(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가는 걸 두고 나쁘다고 해서 막으면 이리(고개를 가운데로) 돌아올 수 없다. 저는 이런 거라고 본다.
□ 정상화로 가는 길에 있어 피치 못할 상황이다?
■ 거듭 레닌이 말했듯이 운동이란 이것(오른쪽)을 이렇게(가운데) 돌리려면 이렇게(왼쪽) 가야 하는 거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도 집이 미아리고개 너머인데 버스 타고 대학로 가다 보면 성폭력과 성희롱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서 까만 옷 입는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가서 앉고 싶다. 제 마음이. 너무나 앉고 싶다. 그러면서 지나간다.
어느 여성이 건물 앞에서 웃통을 벗어 던졌다고 치자. 이에 대해 그런 행위가 옳다, 나쁘다, 저거는 극단주의자다...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일반인은 그렇게 봐도 되지만 뭔가 사회 흐름을 읽고 책임지려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동참하면 안 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극우는 극좌로 가지 않으면 중간으로 올 수 없다. 그런 사회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71세인데. 아직 정신적으로 젊으시다.
■ 작가로서 늘 변화를 느낀다. 생각해보라. 한여름에 농구를 하다가 더우면 남자는 웃통을 벗는다. 웃통을 절대로 벗을 수 없는 사람의 억압 같은 거. 그 여성들은 우리도 남자처럼 웃통 벗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 어떤 극단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한류에도 한국문학 들어있다’
□ 이제 한국문학의 수준과 현황에 대해 묻고 싶다. 지난 1970-80년대만 해도 한국사회의 문화 분야에서 문학이 강세였다. 특히 민주화운동 시기 문학은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었고 문인이 민주인사이기도 했다. 그만큼 사회적 파급력이 컸다는 얘기다. 지금 한류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데 한류에서 문화는 케이팝,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 등인데, 문학은 없다. 한국작가회의가 큰 단체인데, 수장으로서 섭섭하지 않은가.
■ 우리 세대에서 문학의 영향이 극대화된 시대는 1990년대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학이란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을 문자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요즘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Fake Love)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언어에 리듬을 얹은 것이다. 리듬 속에 언어를 넣은 것이다. 가사를 보면 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진 불안, 슬픔, 저항을 담고 있다.
케이팝이라는 게 그 노랫말도 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2016년에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지 않은가. 책으로 된 것만 문학인 게 아니다.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 아리랑 아리라요”도 문학이다. 문학이 다양하게 넓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종이책이나 신문도 영향력이 약해졌다. 표현이 달라진 거다.
  
▲ 이경자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6월 26일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한류에도 사실은 한국문학이 들어있는 거군요.
■ 1970년대에 한국문학의 김지하 시인은 대한민국은 몰라도 세계적인 사람이었다. 유럽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다 알았다. 그런데 한국문학이 그동안 주눅 들어있었다. 왜 주눅 들었느냐. 분단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감수성을 세계화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응축된 것이다.
황석영 선생의 소설을 봐도 그게 분단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가슴 후련하게 확대되어 있지 못하다. 작가정신을 옭매이고 있는 게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우리의 DNA에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종북도 있고.
그것들이 작가의 정신, DNA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분단문제가 해결되면 그게 해결된다. 그러면 작가는 우리의 현실을 더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언어와 문장, 문체로 표현해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문학은 세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가들에게도 통일은 너무 중요하다.
□ 촛불집회를 안 짚을 수가 없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사이에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촛불집회에는 참여했는가?
■ 물론 참석했다. 안 갈 수가 없지 않은가. 회원들이 작가회의 깃발에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에서 막 오니까.
□ 작가는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따라 작품은 사회와 사건을 반영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이 한국문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고 보는가.
■ 이런 것도 다 결국은 억압을 푸는 일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탐욕과 위선, 비애국, 반민족, 특권의식, 척결되지 않은 가부장제와 봉건의식 등 말이다. 비서실장 김기춘이 박근혜를 여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그런 의식을 가지고 권력을 누린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 민중이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수 엘리트나 대학생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것이다. 촛불은 민중이라는 것이다.
□ 문학이 민중의 삶을 다뤄야 하는 만큼, 민중들이 촛불로 일어났으니 작품 속에도 녹아들어가겠다.
■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민중이다. 일단 민중이다. 민중이면서 작가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 기쁨, 자부심 그리고 해방”
□ 10여 년 동안 막혀있던 남북관계가 풀리고 있다. 남북의 정상과 북미 정상이 만나면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작가로서의 심정은?
■ 단어로 표현하라면 행복, 기쁨, 자부심 그리고 해방.
□ 다 긍정적인 표현이다.
■ 이번 기회를 통해서, 분단문제에 대해서 관심 없던 젊은 아이들이 아, 한국의 운명에는 이런 강대국과 연관되어 있구나, 이 사람들이 우리의 운명에 간섭하고 줄이 닿아있었구나, 그래서 이것에 의해서 우리 운명이 간섭받고 있었구나, 하는 게 교육된 것이다. 선생님이 교육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교육한 거다.
  
▲ "앞으로 문학에서 남북교류는 작가회의가 중심이 되지 않고 아마도 범 문단적으로 남북작가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더군다나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한번 안 하겠다고 했다. 그게 엄청난 교육적 효과를 한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성을 우리가 획득하지 못하면 이렇게 종속된다, 우리 운명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강대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앞으로 문학 분야에도 남북교류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지난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북측과 교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어떤 행사, 어떤 교류를 했는가?
■ 참여정부 때인 2005년에 남과 북의 작가들이 평양, 백두산 등에서 민족문학작가대회를 개최했고, 2006년에는 금강산에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는 끊겼다.
□ 앞으로 남북교류 계획은 있는가.
■ 예전 70-80년대, 90년대까지는 소수 엘리트들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촛불혁명에서 보듯이 모든 작가들과 단체들이 다 자기들의 지분과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작가회의가 중심이 되지 않고 아마도 범 문단적으로 남북작가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 그게 더 현실에 맞겠다. 촛불로 엘리트 위주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까.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한국작가회의가 기득권을 버리는 것 아닌가.
■ 기득권은 작가회의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지 버려야 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다 개개인을 존중하고 개개인이 가진 역량을 이해하는 사회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통일로 가는 길과도 맞다.
□ 이사장 되시고 4개월 지났다고 했는데, 그간 했던 사업은?
■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관심을 가져줬지만 제주4.3 평화문학, 5.18문학 등의 행사를 아주 크게 치렀다. 이들 행사에서 나온 어휘와 발언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적나라해졌다. 진실에 가까운 표현을 할 수 있었다. 학살자, 자유당 정부, 이승만 정권이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옛날에는 적나라하게 말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말하고 있다.
□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더 있는가.
■ 금년에 몇 개의 사업들을 할 것이다. 여수, 순천사건도 할 것이다. 감추어졌던 역사, 감춰진 비극을 우리가 분단과 관련해서 꺼내야 한다. 여순을 비롯해 4.3제주, 광주 등이 모두 분단과 관련된 것이다.
□ 민주정부가 들어선 나아진 조건에서 전보다 더 과감하게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큰 사건 위주로 다루는 것 같다.
■ 내가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정신에 얼음이 박혀있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의 정신에, 우리 민족의 정신에도 박혀있다고 본다. 이런 것을 꺼내는 작업 중의 하나가 여수, 순천사건이다.
“내가 문학에서 분단문제와 여성문제를 주로 다룬 건 내 기질 때문”
□ 개인사가 궁금하다.
■ 해방공간에서 태어나서 내 고향이 38선 이북이다. 강원도 양양인데 양양의 절반이 38선 이북이다. 군청, 면사무소가 다 이북에 있었다. 내 집이 이북 쪽에 속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끝없이 엄마들이 부엌에서 속닥속닥하면서, 저 집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거다. 손가락질하면서 국군이 와서 쏴 죽였다, 굴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다, 평양에서 공부한 삼촌, 심지어 김일성대학 다닌 삼촌이 한밤중에 내려왔다가 들켜서 온 집안이 박살났다 등등. 나는 어려서 이런 걸 많이 겪었다. 게다가 60년대, 통일혁명당사건. 그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말하고, 그리고 인간이 잘 살자, 우리가 평등하게 살자, 가난과 부자의 간극을 줄이자고 말해서 무기징역을 받고 사형당한 것이다.
  
▲ “내가 문학에서 분단문제와 여성문제를 주로 다룬 건 내 기질 때문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박정희 정권 때 더군다나 70년대 들어가면 선거 임박해서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막 생겼다. 간첩사건이 막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면 나는 내 정신에 꼭 얼음이 막 박힌 것 같다. 냉동실에서 ‘나’라는 정신이 냉동된 것 같다.
이 냉동상태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거다. 북한은 원수다, 뿔 달렸다, 적화통일하자는 것이다. 우리 세대와 우리 윗세대가 이런 세뇌를 끝없이 받으면서 자랐으니,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물론 7.4남북공동성명도 있었고, 그게 오늘날 4.27판문점선언에 이르는데 주춧돌을 놓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때 그렇게 세뇌 받으며 컸다.
우리 예술가들도 정신에 식민지, 반공법, 6.25, 분단 등등이 박혀있는 거다. 이제 이런 것들이 통일과 관련해서 녹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문학이 주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세계성을 띨 수 있고. 그래야 제대로 된 언어로 분단문제, 민족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역사를 반추하면서 일제식민지, 4.19, 5.16쿠데타 이런 걸 다 쓸 수 있는 거다. 외국에서 한국같이 분단된 조건에서 왜 큰 문학이 안 나오느냐고 말하는데, 이건 우리를 너무 모르는 거다. 우리 정신에 얼음이 박혀있어 응축되어 있는 것을.
□ 1973년에 등단했는데,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 7번 떨어지고 8번째 붙었다.
□ 습작도 엄청 많았겠다.
■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소설을 썼다. 중편도 쓰고 단편도 쓰고. 될 만할 때 된 것 같다.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단했다면 꼴값했을 것 같다. 내가 21살에 등단했다면 꼴값해서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망가졌을 것 같다. 7전 8기라서 그나마 조금 나았다.
□ 신춘문예 당선이 무척 어렵다고 들었다.
■ 금방 되는 분도 있다. 한 번에 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소설가는 인생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40대에 되도 괜찮다. 나는 26살에 됐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썼다. 계속 썼다. 매년 신춘문예에 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글 잘 쓴다는 소리를 양양 시골 바닥, 인구 얼마 안 되는 거기에서 들었기 때문에, 그거 이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 태어나신 곳은 양양 골짜기인데, 문학은 분단문제와 여성문제를 주로 다뤘다. 뭐랄까 한국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에 접근했는데 이유가 뭔가?
■ 내 기질과 비슷한 것 같다. 강원도에서 양양을 어떻게 멸시하냐 하면, 비하하는 게 아니라 양양을 강원도의 전라도라고 한다.
양양에 낙산사가 있는데 그 근처에 조산(造山)이라고 있다. 조산이 김일성 정권의 초대 사법상을 한 최용달 씨 고향이다. 그리고 초대 양양군 인민위원장이 조산에서 나왔다. 그래서 조산을 양양의 모스크바라고 한다.
양양에서 내가 초등학교 다니고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조회를 서면 설악산 대청봉이 보인다. 10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 대청봉이 하얗다. 그 대청봉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서 싹 쓸어가지고 동해로 빠진다. 그 사이에 뭔가 없다. 벽이 없다. 둔덕이 없다. 바람 막을 둔덕이.
그래서 양양 사람들이 아주 거칠다. 악착같이 살아남고. 일제 때 항일운동 하거나 사회주의운동 할 때 춘천에서 대회한다고 하면 양양 대표와 철원 대표가 오지 않으면 회의가 안 됐다고 한다. 양양이 대한민국에서 3.1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지역으로 손꼽힌다. 산골은 아니고 작은 읍이다. 아주 세고 거칠다. 유관순 오빠가 양양 여자하고 결혼했다. 양양읍 성내리 여자하고 결혼했다. 그런 양양이 내 고향이다.
“작가회의는 권력 단체 아냐, 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해방”
□ 이사장 맡고 나서 바쁘실 것 같다. 그래도 본업은 작가다. 이사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행사나 모임에도 자주 참석해야 하기에 작가로서 작품을 못 쓰면 어떡하나 하는 기우가 든다. 혹시 최근에 준비하는 작품이 있는가.
■ 금년 5월에 장편을 끝내서 7월에 내는 게 목표였는데, 아직 못 쓰고 있다. 몇 년 동안 취재해서 쓴 것인데 멈춰있다. 가제인데 <슬픔의 정원>이다. 내가 분단문제를 <세 번째 집>으로 마감했다면, 이것은 여성 문제의 마감이다. 가부장제가 어떻게 남성을 망가뜨리나 하는 게 그 소설의 주제이다. 작가회의 일 때문에 아직 못 쓰고 있다.
포항제철소 가면 용광로 불 안 꺼뜨리는데, 소설가는 그래야 한다. 용광로 불을 꺼뜨려선 안 된다. 장편소설 같은 경우는 1년간 용광로 불을 때야 한다. 제가 <사랑과 상처>를 쓰기만 하는 데 22개월 걸렸다. 그 22개월 동안 용광로 불을 유지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작가회의 일 때문에 멈춰 있다.
□ 그래도 이사장으로서 좋은 점도 있지 않은가.
■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미투 운동 일어났을 때, 다양한 인간성을 볼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지금 준비하는 장편이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새롭게 접하는 관계로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 "이경자가 작가회의 이사장하면서, 작가회의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첫 번째 욕심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이경자가 작가회의 이사장하면서, 작가회의가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직,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첫 번째 욕심이다. 사실 똑같은 소설가이지만 한창훈 사무총장이 나보다 열배, 백배는 고생하고 있다. 우리가 재미있는 게, 내가 강원도 양양 사람이고 한 총장은 거문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무처장인 안현미 시인은 태백이다. 다 촌사람이 모인 거다. 촌이라는 게 좋다.
□ 4~5개월 됐지만, 이사장으로서 아직 1년 반 남았는데 앞으로 큰 변화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단체도 크게 되길 바란다.
■ 작가회의는 권력 단체가 아니다. 권력 단체여서도 안 된다. 지역과 중앙이 동등해야 하고, 민주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해방이다. 인간성을 얽매이는 어떤 것도 풀어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해방과 자유,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긍정, 문학은 이런 것들에 기여하는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