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장거리 비행 비결은 산들바람 소용돌이 타기
수백킬로 바다도 건너는 뛰어난 이동능력, 비결은 공기역학 이용
미풍이 일으킨 소용돌이 타고 상승 뒤 나노섬유 거미줄로 '비행선'
해저화산 폭발로 대양에 새로 생긴 섬에서 처음 발견되는 생물은 십중팔구 거미이다. 거미는 수백㎞ 거리와 4500m 상공으로 ‘비행’하는 이동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공중확산 거미, 항해도 능숙…다리는 돛, 거미줄은 닻). 찰스 다윈은 1832년 비글호를 타고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100㎞쯤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하다 하늘에서 수천 마리의 붉은 거미가 배 위로 떨어져 내렸던 특별한 경험을 그의 항해기에 남기기도 했다. 생물의 장거리 이동은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 중요하다.
거미는 알집에서 많은 새끼가 깨어났을 때, 또는 성체가 먹이나 짝을 찾아 새 서식지를 찾을 때 비행을 시도한다. 이륙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 바람이 잘 부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 끝에 올라 배 끝을 하늘로 최대한 쳐드는 ‘발도돔’ 자세와 거미줄에 매달린 상태에서 비행을 시도하는 ‘표류’ 자세가 그것이다.
두 자세 비행의 핵심은 낙하산 모양의 거미줄이다. 적당한 바람이 불 때 배에서 기다란 거미줄을 뿜어 충분한 부력을 얻으면 몸을 실어 날아간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미의 비행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었다. 거미는 강풍이 아니라 초속 3m 이하의 산들바람이 불 때 주로 이동에 나선다. 그 비밀을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조문성 독일 베를린 공대 박사과정생 등 이 대학 연구자들은 현장 관찰과 풍동 실험을 통해 거미 비행의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혔다. 과학저널 ‘플로스 생물학’ 14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은 참게거미 속 거미가 이륙 직전 적극적으로 풍속을 평가하는 행동을 하며, 몸을 고정할 때 쓰는 거미줄보다 훨씬 가는 나노섬유 거미줄을 50∼60가닥 풀어 비행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비교적 몸집이 무거운 거미라도 풍속 1.5∼3.3m/초의 약한 바람에서 소규모 소용돌이를 타고 비행에 충분한 상승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자들의 현장 관찰을 통해 이제까지 거미가 수동적으로 센 바람을 기다려 날아오른다는 통념이 사실과 다름을 밝혔다. 게거미는 이동에 앞서 “바람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먼저 이륙지점에서 바람의 상태를 다리에 난 강모로 느낀다. 괜찮다 싶으면 앞다리를 하나 또는 두 개 들어 올려 8초쯤 풍속을 잰다. 적당한 이륙조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하면 자세를 바꿔 꽁무니를 바람 아래 방향으로 올린 뒤 지름 121∼323㎚(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의 거미줄을 50∼60가닥 공중으로 펼친다. 바람에 날린 거미줄은 서로 엉키지 않고 연처럼 삼각형 모양의 연처럼 떠올라 몸을 공중에 띄운다.
조 씨는 “우리가 관찰한 게거미의 비행 전 행동을 관찰하면, 이륙 전 기상조건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미의 공중 비행은 바람에 되는 대로 몸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여행에 최적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실험에 제법 몸이 큰 무게 25㎎의 게거미를 썼다. 그런데도 강풍이 아니라 미풍이 불 때 거미가 너끈히 이륙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성과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요약했다.
“거미는 마이크로 스케일의 유체역학을 이용해 약한 상승기류를 가지고도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 측정결과 거미는 교란된 바람 속에서 나타나는 상승기류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왜 거미가 풍속이 낮을 때 비행에 나서는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상승기류는 종종 풍속이 낮을 때 나타난다.”
다시 말해 강풍이 불 때 거미는 공중으로 솟아오르기보다 엉뚱한 곳에 처박히기에 십상인 반면, 산들바람에서는 공기 속에 난류와 상승기류가 형성돼 떠오를 힘을 얻게 된다. 공중에 떠오른 거미는 이제 제트기류를 포함한 본격적인 기류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거미가 이륙할 때 내뿜는 수십 개의 나노 거미줄 가닥이 서로 엉키지 않는 이유와 거미가 비행할 때 마찰이 있을 텐데도 다리를 계속 뻗는 행동을 하는 것 등은 후속 연구 과제로 남겼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o M, Neubauer P, Fahrenson C, Rechenberg I (2018) An observational study of ballooning in large spiders: Nanoscale multifibers enable large spiders' soaring flight. PLoS Biol 16 (6): e2004405. https://doi.org/10.1371/journal.pbio.200440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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