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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월요일

일본,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옥 갈 일' 하라는 건가?

[기고]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을 점검한다 ②



한일관계가 최악이라고들 한다. 지난해 11월 21일에 여성가족부가 '화해‧치유 재단' 해산 방침을 발표한 것이나, 뒤이은 일본 초계기 논란도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이 신일철주금(현재의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한 것이 꼽힌다.

판결이 선고되자 '국가의 자격이 없다'라는 등 험한 말을 쏟아내던 일본은 이후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과 11월 29일에 발표된 외무대신 담화에 압축되어 있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1.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협정' 위반이다, 2.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3. 그러지 않으면 일본 정부가 대응 조치를 강구하겠다'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일본 정부와 기업도 참여하는 기금을 만들어 해결하라거나(2+2), 일본 정부는 빼고 3자가 참여하는 기금을 만들어 해결하라는(2+1) 주장들이 그것이다. 심지어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낙인으로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칼럼까지 나왔다.  

모두 다 표적을 벗어난 것이다. 반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이 갈등은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포착함으로써만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상의 조약 해석 원칙에 따라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판단이 자신의 해석과 다르다고 해서 '조약 위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주장은 최대한으로 잡아도 '해석이 다르다'라는 데 그쳐야 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라 '해석상의 분쟁'에 관한 협의를 요청해왔다. 2011년에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같은 근거로 협의를 요청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이다. 당시에는 일본 정부가 요청을 거부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요청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해석상의 분쟁'은 존재하는가?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하려면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단지 '징용공 문제 혹은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라고 할 뿐이다.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과 징용은 다르다고 한다. 전자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것인 데 대해 후자는 그 합법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전제인 '식민지배의 불법성' 자체를 부정한다. 따라서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도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애당초 '해석상의 분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나서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해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마냥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라고만 하고 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그게 뭘까? 한국 정부가 나서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라는 것인가? 한국 정부가 압력을 가해 대법원으로 하여금 판결을 뒤집게 하라는 것인가?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에 입각한 민주주의국가이다. 당연히 행정부가 사법작용에 관여할 수 없다. 판결도 강제집행도 모두 사법작용이다. '재판거래'를 시도해 삼권분립을 유린했다는 혐의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되어 있고, 그 '거래'의 상대인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삼권분립을 허물라니, 대통령에게 감옥갈 일을 하라니, 이것이 과연 이웃나라에 대해 할 수 있는 요구인가? 

무엇보다 일본 정부 자신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기업보다 더 큰 책임이 있다. 강제동원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강행한 주체는 다른 아닌 '대일본제국 정부'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할 때는 일본 기업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도 피고로 했다. 2000년에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할 때 일본 기업만을 피고로 한 것은 '다른 주권국가를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주권면제 법리'를 고려한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에 들어 국제인권법의 발전에 따라 '주권면제 법리'를 제약하려는 흐름도 형성되고 있다. 2004년에 이탈리아 대법원은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동원됐던 이탈리아인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인권 등 국제법상의 보편적인 가치가 우선한다는 이유로 '주권면제 법리'를 배제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2012년에 국제사법재판소가 그 판결을 뒤집었고, 이탈리아 국회가 그 취지를 반영한 법률을 제정했으나, 2014년에 이르러 이번에는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주권면제 법리'를 배제했다.  

한국에서도 2016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현재 진행 중이고, 강제동원, 징용, 징병, 사할린 억류 한인, BC급 전범 피해자 등도 한국 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소송에서 '주권면제 법리'가 다투어지게 될 것이다. 

요컨대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지금까지는 소송 절차상의 장애 때문에 제기되지 않은 것일 뿐이며, 앞으로 법정에서 다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책임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일본 정부가 마치 한국 정부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양 채근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적반하장이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2+2는 대법원 판결과 충돌한다.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강제동원 문제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곧 강제동원 문제는 해결된 적이 없고, 일본 정부와 기업에게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청구권협정'의 결과 한국 정부가 수령한 무상 3억 달러의 가치를 가지는 일본국의 생산물 및 일본인의 용역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한국 정부와 기업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법적 책임'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적 책임이 없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이 없는 한국 기업에게까지 기금을 내게 하여 해결하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은 오히려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구나 그렇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빼주자는 2+1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전례로 드는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은 가해자인 독일 정부와 기업이 만든 재단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터이다.

한국 정부의 '감성적 종족적 민족주의'를 탓하는 비난 역시 뒤집힌 논리이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상의 조약 해석 원칙에 근거하여 내려진 판단이다. 극단적인 '종족적 민족주의'인 '대일본제국'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눈 감고서, 그 잘못을 조악한 법논리로 회피하려는 일본국의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해 눈 감고서, 그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에 오히려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그 전도된 의식의 뿌리가 사뭇 궁금하다. 

위와 같은 근거가 박약한 주장이나 비난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제안도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 "먼저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인정"하고, "대신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해온 여러 경제적 조처를 사실상의 배상으로 우리가 인정"하는 역사선언을 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 관련 기사 : '레이와' 시대, 오해와 진실 

이 제안은 대법원 판결 이전이었으면 매력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 지금의 일본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현실적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나아가 무엇보다 대법원 판결이 일본 정부의 여러 경제적 조처는 배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한국 정부가 그것을 배상으로 인정하게 되면 배상 책임을 대신 떠안아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의 협력을 도출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모든 주장의 근거로 등장한다. 그 당위론 자체는 틀린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이다. '종족적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움직인다면 그것이 과연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보다 현실적으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인가? 냉철하게 따져보고 대응해야 할 일이다.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가 취하고 있는 원칙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는 것이다. 2+2 이야기가 불거졌을 때 '비상식적'이라고 잘라버린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조치 자체는 적절했다.  

한편 한일관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과 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점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라는 것이 외교부의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문제는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과거 불행했던 역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며,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고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므로, 일본도 "한국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문제를 정치 쟁점화해서 논란거리로 만들고 확산시키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짚은 것도 같은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0일 청와대에서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기본적으로 타당한 방향이다. 하지만 왠지 수세적이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다'라며 연일 떠들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대응방안'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가해자가 큰 소리를 치고 피해자는 움츠러들어 있는 듯한 어색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 문제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곧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는 승소한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도 배상하라고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해 요구하여 마땅하다.

그 요구의 시기와 강도는 현실 외교의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라는 입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하다. '사법부의 판단'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관한 문제는 해결된 적이 없고, 일본 정부와 기업에게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라는 것이다. 그것을 한국 정부의 입장으로 명확하게 선언함으로써 이 어색한 풍경을 바로 잡아야 한다. 

문제는 문자 그대로 '역사'에 관한 것이다. 1965년에 해결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본질적인 문제가 반세기가 지나 다시 분출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보다 꽉 짜인 '사실과 법논리의 대결'이라는 모습으로 불거졌다. 적어도 1990년대 초 이래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축적된 사료와 논리의 결과물이다.  

문제가 본질적인 것인 만큼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긴 호흡으로 충실한 자료와 정치한 논리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마침 일본 정부가 역사 갈등 상황에 대한 대응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전문가를 육성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컨트롤 타워 부재'를 지속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크게 주목해야 할 일이다. 

덧붙임 : 다수의 언론이 계속해서 '강제징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다. 대법원 판결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강제동원'이다.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을 합친 개념이다. 무엇보다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과 징용이 엄격하게 구별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강제징용'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큰 용어이다. '강제징용' 대신 '강제동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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