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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7일 일요일

14만 원 받겠다고... 죽은 채무자 독촉한 '독한 추심'


[기획-부채 탕감①] 천만 원짜리 빚도 십만 원에 '땡처리' 하는 부실 채권 유통 14.07.28 08:30l최종 업데이트 14.07.28 08:30l김시연(staright) 고정미(yeandu)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장기 연체 채무자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99%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비롯된 '롤링 주빌리'가 한국에 더 절실한 이유입니다. <오마이뉴스>는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희망살림과 함께 장기 연체 부실 채권 '땡처리' 실태와 '대출 권하는 사회'를 고발합니다. [편집자말] 5년 소멸 시효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빚의 굴레를 벗기지 못했다. 지난 21일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 두 번째로 소각한 장기 채무자 99명 가운데는 사망자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7~10년 넘은 장기 연체 채권들의 원금만 10억 원에 달했는데 이미 지난 2009년 2월에 숨진 조아무개(사망 당시 45세)씨의 카드 빚 14만 원도 그 일부였다. 채권 소멸 시효 유명무실 기사 관련 사진 ⓒ 고정미 지난 2003년 1월 한 신용카드사 연체로 시작한 조씨의 채권은 한 유동화전문회사를 시작으로 11년 동안 모두 8차례나 주인이 바뀌었다. 이 가운데 5차례는 채권 소멸 시효 5년이 지난 2008년 1월 이후 거래가 이뤄졌고, 심지어 조씨가 숨진 2009년 2월 이후에도 3차례나 매각됐다. 7번째로 이 채권을 넘겨받은 한 대부업체는 지난 2009년 12월 숨진 조씨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낸 '채권양도통지서'에서 "귀하의 채무가 장기 연체되어 채무금을 일시불 또는 분할 처리할 것을 최종 권고"하면서 '신용불량 등재', '지급 명령', '법원 본안소송'에 이어 '재산 압류' 등 강제 집행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고 '경고'했다. 당시 조씨가 진 빚 원금은 고작 14만3410원이었고 이자 11만 원을 포함해도 25만 원 정도였다. 결국 14만 원을 받아내자고 사망한 채무자를 독촉한 셈이다. 채무자가 종적을 감추고 소멸 시효가 지나도 채권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지난 2002년 당시 22살이었던 유아무개씨는 신용카드 연체로 1700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 당시 카드사 기록에는 2002년 5월 한 달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집이나 휴대폰으로 독촉 전화를 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유씨는 이미 회사도 그만두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같은 해 유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주소 보정' 문제로 기각돼 사실상 채권이 제 기능을 상실했지만 지금까지 대부업체들을 전전하다 12년 만에 소각됐다. 지난 21일 열린 부채 탕감 토론회에서 자발적으로 참석해 자신의 채무 사례를 발표했던 이정식(가명)씨는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소멸 시효가 끝난 뒤에도 원금 30~50%만 내놓으라고 독촉 전화가 왔고 견디다 못해 지난해 법원에 파산 신청해 면책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2003년 카드 대란 당시 '카드 돌려막기' 끝에 3000만 원에 이르는 빚을 얻은 이씨는 군복무 때 당한 부상 때문에 일을 못해 빚을 제때 갚지 못했다. 그 대가는 라면박스 3개 분량의 독촉장과 범죄자가 된 듯한 강한 수치심이었다. 천만 원짜리 채권 십만 원에 사놓고 원금 절반만 갚아라? 기사 관련 사진 ▲ 한 대부업체는 지난 2009년 12월 이미 숨진 조씨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낸 '채권양도통지서'. 이 대부업체는 채무금을 일시불 또는 분할 처리하라고 '최종 권고'하면서 '신용불량 등재', '지급 명령', '법원 본안소송' 과 '재산 압류' 강제 집행 등을 '경고'했다. 당시 조씨가 진 빚 원금은 고작 14만3410원이었고 이자 11만 원을 포함해도 25만 원 정도였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어떻게 소멸 시효를 넘긴 장기 부실 채권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일까? 바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마음만 먹으로면 얼마든지 채권 소멸 시효를 정지시키거나 늘릴 수 있어서다. 이번에 희망살림 등 시민사회단체에 10억 원어치 부실채권을 기부한 대부업체 대표 A씨 역시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소멸 시효가 지난 채권이지만 남겨뒀다 '불쏘시개'라도 쓰려고 했는데 편법으로 추심 행위를 하기 싫어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채권 소멸 시효가 지나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3만 원을 내고 채무자를 상대로 전자 소송을 제기하거나,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1만 원만 입금하면 원금 50%를 면제해 주겠다고 속여 소멸 시효를 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멸 시효가 지났어도 원리금 일부만 갚으면 채무자가 빚을 갚을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소멸 시효를 연장하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은행, 카드사,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에선 채무자가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부실 채권'으로 분류한다. 금융회사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고 회수하기 어려운 부실 채권을 대손상각 처리한 뒤 유동화전문회사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유암코 같은 자산관리회사(AMC), 대부업체 등에 헐값에 넘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현재 국내 부실 채권 시장 규모는 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산관리회사는 자신들이 회수하지 못한 채권을 다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 넘기는데, 이 가운데는 신용정보회사나 금융회사 자회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부동산 같은 담보가 있는 채권은 원금의 70%까지 거래되기도 하지만 카드 연체금 같은 무담보 채권은 여러 업체를 전전하며 원금의 1~10%까지 떨어진다. 1000만 원짜리 채권도 1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셈이다. 실제 국민행복기금이 지난해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에서 매입한 부실채권 가격도 평균 3%에 불과했다. 최근 이같은 부실 채권 거래가 일부 '큰손'들 사이에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채권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부업체와 투자자들은 전문 추심업체에 의뢰해 채권 회수에 나서기도 한다. 5년째 부실채권을 거래해온 A씨는 "무담보 채권은 보통 원금의 2.5~3%까지 거래되는데 위험 부담은 크지만 원금과 이자 등을 포함한 금액의 30% 정도만 받아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서 "그나마 요즘 채권 거래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돌면서 가격이 3~4%까지 뛰었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에 A씨가 기부한 채권 원금은 10억 원 정도지만 실제 매입 가격은 2천 만 원 정도라고 한다. 다만 회수 가능성이 있는 '우량'과 거의 불가능한 '악성' 부실채권이 패키지로 묶여 거래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매입 가격은 이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대부업체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이동문 서울시 민생경제과 팀장은 "부실 채권 회수 가능성은 보통 2~3년이면 판가름이 나는데 연체 1년만 지나도 회수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장기 연체 채권을 회수하려고 독촉하면 민원만 더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업체들을 설득해 사회 환원하라고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빚 탕감하면 채무자 도덕적 해이? 금융회사 약탈적 대출이 문제" 기사 관련 사진 ▲ "1인 1000만원, 10억원 빚 탕감"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가운데)가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10억원, 99명 빚 소각 기자회견'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맨 오른쪽)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희망살림 이사를 맡고 있는 제윤경 대표가 미국의 '롤링 주빌리(희년)'를 본 따 부채 탕감 운동에 나선 것도 국내 부실 채권 유통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미국 시민단체인 '월가를 점령하라'(OWS)는 지난 2012년 11월 시민들에게 7억여 원을 모금해 부실 채권 155억 5천만 원어치 소각했다. 국내에서도 희망살림, 희년함께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지난 4월 1300만 원을 모금해 117명의 장기 채권 4억 7천만 원어치를 소각한 데 이어 이번에 2차 소각을 진행했다. (관련기사 : 7년 넘은 빚 10억 원 탕감... 99%가 99명 살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8월 말 현재 국내 채무불이행자는 3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사망자만 5만 8천여 명이고, 채무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채무자도 114만 명에 이른다. 7년 이상 장기 연체자 30만 명과 기초수급대상자, 고령층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부 장기 연체 채권은 회수해도 실익이 없는데도 채권소멸시효 정지로 불공정 추심을 지속해 상환 능력이 없는 장기 연체자들의 재활을 막고 있다"면서 "불공정 추심 관행을 개선하고 불법 사금융 단속 등을 통해 과도한 추심을 막고 공적 AMC를 통해 회생, 파산 등 법적 채무조정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연구위원은 "금융회사의 채무 조정 범위가 금리를 낮춰주거나 연체 이자 면제, 상환 기간을 늘리는 데 그치고 정작 원금 탕감은 안 되고 있다"면서 "대손상각을 통해 채권을 추심업체에 값싸게 넘기는 대신 그만큼 채무자 원금을 탕감해주면 되는데 '채무자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는 문제 제기에 가로막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보다는 '약탈적 대출'을 일삼는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제윤경 대표는 "선진국에선 우리처럼 채무자를 쥐어짜지 않고 파산, 면책이 쉬워 금융회사에서도 과잉 대출하지 않고 책임 대출을 하고 있다"면서 "미국 '롤링 주빌리'도 면책이 안 되는 의료와 교육 관련 채권이 부실 채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실을 고발하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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