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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6일 목요일

[운동사이] 그 단어, 여혐인 걸 알고 쓰나요?

 

[운동사이] 그 단어, 여혐인 걸 알고 쓰나요?

양민영『운동하는 여자』저자
  • 입력 2025.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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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0월 6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주짓수 여자 52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박정혜(오른쪽)와 임언주가 기술을 겨루고 있는 모습. 이날 박정혜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지난 2023년 10월 6일 중국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주짓수 여자 52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박정혜(오른쪽)와 임언주가 기술을 겨루고 있는 모습. 이날 박정혜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주짓수의 수많은 기술 용어 중에 허니홀(Honey Hole)이라고 불리는 게 있다. 허니홀은 상대의 하체 움직임을 제어하는 포지션으로 다양한 하체 관절기(발목, 무릎 등 하체 관절을 꺾는 기술)를 적용하기에 유리하다. 주짓수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 같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포지션을 잡으면 상대의 하체 관절을 공격하기 쉬워진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데 있다. 즉 육각형 모양의 방마다 꿀이 가득한 벌집처럼 여러 가지 공격 기술을 쉽게 구사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문제는 이 단어가 풍기는 성적 뉘앙스다. 일반적인 영어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은 신조어, 은어, 비속어, 문화적 표현 등을 정의하는 온라인 사전 어반 딕셔너리를 보면 허니홀이 우리가 짐작하는 의미의 비속어로 쓰이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허니홀은 물고기와 사냥감이 풍부한 장소, 그리고 여성의 질을 뜻한다고 명시돼 있다.

허니홀이라는 용어가 여성 혐오적이라는 의견은 주짓수 커뮤니티 내 여성들 사이에서 종종 제기됐다. 주짓수를 포함한 격투기 전반이 남성 위주로 발전한 스포츠임을 감안하면 이 용어도 남성 중심적인 문화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주짓수를 수련하는 여성이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이처럼 여성 혐오적인 용어가 계속 통용돼야 하는가 생각하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도자에게 허니홀이라는 단어가 여성 혐오적인 비속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다른 용어로 대체할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도 그는 문제의식에 공감했고 앞으로는 다른 용어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스포츠 용어에 잔재하는 여성혐오

스포츠 전반이 남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만큼 일부 용어에는 여성 혐오적인 의미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서 골프 용어 가운데 레이디 티(Lady Tee)가 그렇다. 티는 공을 치는 위치를 뜻하는데 레이디 티는 골프 코스에서 가장 앞쪽에 있다. 따라서 레이디 티라는 용어에는 여성 골퍼의 비거리가 남성보다 짧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이는 모든 여성이 신체적으로 약하거나 골프 실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골프 실력이 성별로 결정되는 게 아님에도 레이디 티라는 명칭이 성별 자체를 실력의 척도로 삼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다행히 최근 골프 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레이디 티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추세다. 성별 구분 대신 티를 색상으로 구분해서 레드 티, 또는 코스의 앞쪽에 위치하므로 전방 티(Forward Tee)와 같은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멈출 수 없는 문제 제기

과거와 비교하면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여성 스포츠 팬을 비하하는 용어마저 따로 있는 걸 보면 스포츠의 근간에 여성 차별적이고 여성을 배척하는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퍽 버니(Puck Bunny)는 북미 하키 문화에서 유래된 속어인데 하키 자체보다는 하키 선수에게 열광하는 여성을 뜻한다. 퍽은 하키에서 사용되는 고무 디스크이며 토끼는 일종의 속어로 어떤 활동이나 그룹을 지나치게 따르거나 집착하는 사람을 뜻한다. 퍽 버니와 비슷한 단어가 한국에서도 널리 쓰인다. 운동 자체보다 선수의 얼굴을 보고 따라다니는 여성 팬을 지칭하는 ‘얼빠’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처럼 여성 팬을 비하하는 속어는 스포츠에 대한 여성의 관심을 무시하고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남성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함으로써 스포츠 팬덤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데 기여한다.

언어는 한 집단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 특히 개념을 정의하고 확산시키는 스포츠 용어는 관련된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접근하기 쉽고 또 언어가 개념을 재정의하기도 한다는 면에서 사소한 듯 보여도 절대 사소하지 않다.

앞서 소개한 여성 혐오적인 스포츠 용어와 비속어는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 구시대의 유물이다. 문제 제기와 해결을 위해서 가뜩이나 차별받는 여성들이 나서야 한다는 점이 다소 성가시고 피로하지만 더 많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면 감수해야 할 과정일 것이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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