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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7일 월요일

‘여야 합의’에 숨는 한덕수·최상목…전직 공무원이 본 관료의 ‘두 얼굴’

 정치BAR_이승준의 핑퐁

이승준기자

수정 2025-01-28 08:00등록 2025-01-28 08:00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 전인 2024년 12월27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국무위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에 대한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 뒤 우리는 ‘관료’ 두 명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임명,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과 관련한 두 권한대행의 선택은 12·3내란 사태 수습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권한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 등을 앞세워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방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들이 가진 관료라는 ‘정체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정부 부처 근무 경험이 많은 한 여권 관계자는 “두 권한대행의 결정들을 보면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권자나 여론의 반응에 민감한 관료의 전형적인 특성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출간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노한동 지음·사이드웨이)은 이러한 공무원들의 모습에 돌직구를 날립니다. 10년간 정부부처에서 일하다 2023년 4월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공무원을 그만둔 저자는 “지난 10년간 경험하고 관찰한 공직사회의 무능한 일상과 좌절을 보여주는 일종의 에세이이자 르포”라고 책을 소개합니다. 책을 펼치면 두 권한대행의 행보와 저자가 관찰한 공무원들의 초상이 겹쳐 보입니다. 저자가 경험하고 목격한 것과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의 최근 행보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관료’라는 이름 아래 교집합을 형성합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24년 12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갑과 을의 두 얼굴’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로 빛나던 젊은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현실에 실망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 논리에 길든다. 공직사회의 수많은 헛짓거리 때문에 진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할 여유가 없어서기도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그저 세월을 버티기만 하면 정해진 승진과 적당한 명예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료는 두 얼굴을 갖는다. 평소에는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법과 제도가 준 권한과 직위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한다. 그러나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을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26일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저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며 당시 공석이던 헌법재판관 임명을 사실상 거부했고, 다음날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2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도 마은혁 후보자에 대해선 “여야의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다”며 임명을 보류했습니다. 대부분의 헌법학자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권한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후보자를 임명하면 된다고 했지만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최 권한대행의 2명 임명, 1명 보류 결정에선 한 총리의 ‘여야 합의’ 논리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고집도 엿보입니다.

헌법재판소가 8인 재판관 체제가 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은 정상화가 됐습니다만, 두 권한대행 모두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거나 보류한 것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관료는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12·3 내란사태를 수사 중인 공조수사본부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관저 구역에 진입한 체포팀이 2차 저지선을 넘어 관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체포영장 집행 ‘뒷짐’=부작위와 책임회피

“정부의 일 처리는 언제나 국민의 요구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에 명시된 절차를 준수해야 하고,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선의의 이유로 정부의 일 처리가 늦어지는 건 아니다. 정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일부러 처분을 부작위(不作爲, 법률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것)하며 시간을 끄는 경우도 많다. 축구 경기 후반전 막판,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볼을 돌리는 것처럼, 관료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교묘히 시간을 끄는 방법을 안다. 여기서 핵심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물론 언론, 국회 등 '시어머니의 눈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공무원인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특별히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본인이 있을 땐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이 공무원의 태생적 속성이다. 연구용역과 위원회는 정책의 전문성과 민주성 증진을 핑계 삼아 공무원이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정의 완충지대이다. 이런 완충지대는 논의와 검토의 과정을 길게 끌며 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적합하다. 즉,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호막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최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는 경호처에 협조를 지시하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야당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수사기관과 이를 불법적으로 막아서는 경호처의 관계를 ‘두 기관 간 갈등과 충돌’로 동일 선상에 올리며 ‘충돌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대통령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경호처를 지휘할 권한과 그 근거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최 권한대행의 방관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둘러싼 무력 충돌 우려와 여야 갈등, 사회적 혼란은 계속됐습니다.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부작위하며 결정을 최대한 미룬다’는 책의 지적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서진 건물 외벽.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6개 거부권 행사: 권한과 의무와 책임의 불일치?

“‘정치권’을 단순히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실과 여당 등 집권 세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정책 결정 권한이 정부 관료들에게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관료가 겪는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료의 정책 결정 권한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부와 관료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묻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 이는 정책 결정 권한의 대부분을 휘두르는 정치권조차 마찬가지다. 공직사회의 문제 중 많은 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 관료가 가진 권한은 약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만 져야 하는 신세이니 자연히 업무에 무기력해진다.”

“어쨌거나 세상은 공무원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월성원전 자료삭제 사건’이나,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에선 국장급 이하 공무원부터 구속했다. 윗선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의 책임이 징계 등에 머무르지 않고 형사 처벌 등 법적 책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일단은 나중에라도 책임질 만한 소지가 있는 일은 최대한 맡지 않으려고 하고, 맡더라도 책임 소재를 남기는 일에 열성을 다한다. 예를 들어 국·과장이 보고서를 수정하면 실무자는 ‘과수원’(과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 ‘국수원’(국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 등을 파일명에 추가하여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남긴다. 몰래 휴대폰을 사용하여 회의를 녹음하는 사례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업무수첩에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빼곡히 적는 것은 이제 공직사회에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 통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최 권한대행은 26일 현재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6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여야 합의가 없었다’거나, ‘위헌적 요소가 있다’ ‘정부 재정에 부담을 준다’ 등의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모두 정부·여당이 반대해온 법안입니다. 야당 주도로 통과한 법안들 대부분은 행정부가 안 하려는 ‘무언가를 새로 하겠다’는 것으로 관료들에게 현상 유지 대신 부담과 책임을 증가시킵니다. 책은 권한은 줄어드는데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정도가 커지는 것도 공직사회의 무기력을 야기한다고 지적합니다.

최 권한대행 쪽 관계자들은 ‘권한대행의 권한의 범위와 구체적 내용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이 없고 명확하지 않아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야는 각각 최 권한대행에게 정반대의 시각으로 권한을 행사하라고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권한이 없고, 그래서 책임을 최소화하겠다’는 최 권한대행의 선택은 여야 뒤에 숨어 정치 현안에 대한 개입과 결정은 피하되, 거부권 행사는 이어가겠다는 거로 보입니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서 재의결 절차를 한 번 더 거치고, 여야가 한 번 더 협상할 여지가 있다 보니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기도 합니다. 당장 최 권한대행은 설 연휴 뒤 야당 주도로 통과한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일을 걷어내고, 관료가 본래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관료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공직사회의 자기방어적인 거짓말을 들춰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저자는 책 막바지에서 공직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12·3내란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과 혼란을 수습 해야 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주는 말 같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이승준 기자

사람의 마음이 늘 궁금합니다. 눈높이를 맞추고 듣고 또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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