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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준 기자
- 승인 2024.12.3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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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윤석열 정권 퇴진 3차 총궐기·범국민대회
해병대 예비역 444인도 시국 선언 발표
그날,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
12월 7일, 3차 퇴진 총궐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11월 9일 노동이 중심이 된 1차 퇴진 총궐기, 농민이 중심이 되었단 2차 총궐기에 이어 ‘더 강하고 더 넓은 퇴진 광장’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3일 오전에는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준)은 ‘윤석열 정권 퇴진 3차 총궐기·범국민대회’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같은 날, 해병대 예비역 444인은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연대’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앞서 대학에서 교수, 학생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시민들은 총이라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국회 앞으로 모였다. 국회는 군대의 침입을 막아서고 계엄 해제안을 통과시켰다. 7일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차 범시민대행진’에는 100만 명의 시민이, 14일 2차 대행진에는 2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7일 부결되었던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14일 결국 통과되었다. 광장의 힘이 국회를 움직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노래로 신나게 하는 투쟁, 선결제와 난방 버스, 동학 농민의 한을 풀었던 남태령 투쟁, 2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시민들이 모인 퇴진광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윤석열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퇴진광장을 축적해 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23년 6월 27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맨,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빈민해방실천연대를 주축으로 윤석열퇴진운동본부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여성·청년·종교 단체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2023년 7월 15일 윤석열정권 퇴진 1차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민생 법안에 대한 무차별 거부권 행사, 노동 탄압, 굴욕외교, 전쟁 위기 고조 등이 이유였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권이 자행한 건설 노동자, 화물 노동자, 조선 하청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임기 1년 차이지만 이 정부와 함께 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섣부르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퇴진을 앞세운 단체를 결성한 것은 영원한 건설 노동자, 양회동 열사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2023년 8월 12일 2차 범국민대회, 9월 16일 3차 범국민대회, 11월 11일 윤석열 정권 퇴진 총궐기를 개최해 왔다. 윤석열 퇴진광장을 앞서서 열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2024년, 투쟁의 방향은 총선으로 향했다. 부글부글한 민심은 총선으로 심판하자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퇴진광장의 열기가 생각보다 오르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윤석열에 대응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국회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윤석열 심판 국회를 만들기 위해 야 4당(민주당, 녹색정의당, 새진보연합, 진보당)이 한 자리에 모여 논의했다. 그 결과로 더불어민주당과 새진보연합, 진보당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더불어민주연합이 만들어졌다. ‘윤석열 정권·검찰 심판’을 기치로 내건 민주연합은 200석을 목표로 두고 총선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자는 목표 하나로 인내하고 양보한 결과다.
비록 200석을 만들진 못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108석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22대 윤석열 심판 국회를 만들지 못했다면 계엄령 해제도 윤석열 탄핵소추안도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총선 이후에도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어졌다. 거부권 남발하는 윤석열 거부대회, 윤석열 퇴진 8.15 범국민대회, 윤석열 거부권 OUT 시민한마당, 윤석열 정권 퇴진 민중대회 등 다양한 모습으로 거의 매주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퇴진 광장이 열렸다.
지난 8월 13일 윤석열은 노조법 2·3조 개정안, 방송4법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21번째 거부권 행사였다. 이날 윤석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윤석열퇴진운동본부(준) 박석운 공동대표는 “정권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10월 8일부터는 국민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한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가 시작되었다. 윤석열퇴진국민투표 추진본부는 “총선을 통하여 심판하여도 귀를 닫고, 국회에서 민심을 반영한 모든 법안은 거부하고, 검찰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지지율이 10%대가 되어도 버티려는 윤석열 정권. 이제 직접 나서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온라인과 더불어 골목, 지하철역, 동네, 현장, 포장마차마다 투표소를 설치하고 윤석열 퇴진하자는 투표를 받았다. 투표소 설치 과정에서 부경대는 학교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투표 방해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끌어냈다. 홈플러스는 현장 투표소를 운영하는 조합원들에게 훼방을 놓고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열렬한 활동으로 총 61만 5,41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11월 9일, 노동을 중심으로 1차 퇴진총궐기가 진행되었다. 이날, 경찰은 신고된 행진 경로를 차 벽을 세워 틀어막고, 본 대회장으로 침투하기도 했다. 폭력을 유발하려는 기획된 탄압이었다. 정권 말기에 보이는 전형적인 발악이었다.
같은 날, 총궐기가 끝나고 ‘국정농단 윤석열 OUT 시민촛불대행진’이 진행되었다. 행진은 노래에 맞춘 구호로 신나게 진행되었다.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 목소리에 열렬하게 반응했다. 버스에서, 가게 안에서, 길 위에서 활짝 웃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11월 20일, 농민을 중심으로 2차 퇴진총궐기가 진행되었다. 농민들은 상여와 만장을 들고 용산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경찰은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길을 가로막았다.
지금의 퇴진광장은 윤석열 계엄으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윤석열 퇴진광장을 열기 위한 윤석열퇴진운동본부(준), 김건희 특검, 검찰 공화국 반대를 외친 촛불행동, 거부권 남발 윤석열 거부, 오염수 방류 반대 등 다양한 투쟁이 지금의 거대한 퇴진광장을 만들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윤석열 퇴진광장은 내란 일당들의 버티기와 왜곡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광장의 투쟁이 정치권에서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광장이 국회를 만드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2025년, 더욱 크고 뜨거운 퇴진광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경준 기자 han99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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