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 발행 2024-12-25 17:33:19
헌재 서류 수취 거부하며
시간만 끄는 윤석열
현재 내란 피의자 윤석열은 이런 법치주의의 혜택 속에 내란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협조하지 않은 채 버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계엄 선포와 관련한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던 약속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지난 16일부터 윤석열에게 심판 접수 통지서,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의 서류를 우편과 인편을 통해 보냈지만 송달에 실패했다. 한남동 관저로 보낸 우편은 대통령경호처에서 수령을 거부했고, 대통령실로 보낸 우편은 수취인(윤석열) 부재를 이유로 반송됐다.
재판 과정에서 소장을 송달하는 건 피고에게 소송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절차다. 피고가 소송이 시작됐는지 인지하지 못해 재판에서 불이익 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윤석열은 탄핵심판이 시작된 사실과 한남동 관저에 있다는 사실을 전국민이 알고 있지만, 법적 권리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서류 수취를 거부하며 시간을 끈 것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윤석열이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탄핵 심판 서류와 관련해 “발송 송달의 효력은 대법원 98모53 판례에 따라 소송 서류가 송달할 곳에 도달된 때에 발생하므로, 소송 서류를 실제로 수령하지 아니한 때에도 송달의 효력은 발생한다”며 탄핵 심판 서류가 윤석열에게 송달된 것이고, 27일로 예정된 첫 변론준비기일도 그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윤석열은 헌재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국무회의록은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 따질 중요한 자료지만, 제출하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등은 국무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 국무회의가 제대로 절차에 맞게 진행됐는지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엄연히 대통령, 오란다고 가겠냐?”
공수처의 거듭된 소환조사도 거부
탄핵심판뿐 아니라 내란 수사도 거부하고 있다. 수사가 시작된지 2주를 넘어가면서 내란에 가담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을 비롯한 군과 경찰 수뇌부 등 10명이 구속됐다. 내란을 실행한 조직과 가담자를 비롯해 사건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또 국무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조사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내란 사건의 우두머리(수괴)인 윤석열에 대해선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못했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 등에서 각각 출석을 요구하자 윤석열의 40년지기 친구라는 석동현 변호사가 언론을 통해 “수사기관도 2, 3개의 기관이 서로 경쟁하듯이 소환 출석요구, 강제 수사 등등을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조정이 필요하지 않나”고 주장했다. 수사기관들의 조정을 통해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25일 출석조사를 통보했지만, 이마저 거부했다. 석 변호사는 24일 “대통령은 국회가 소추한 만큼, 탄핵심판 절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때가 되면 수사에도 응하겠지만, 탄핵심판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탄핵이 우선이라면서도 정작 탄핵서류조차 받지 않는 등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대통령실 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막고 있다. 경찰청 국수본,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가 참여한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가 지난 17일 대통령실 경호처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8시간가량 대치하다 철수해야만 했다.
윤석열이 이렇게 사법 절차를 회피하는 배경엔 대통령이란 권력이 자리하고 있다. 윤석열 측 변호인을 자처하는 석 변호사도 “법 절차에 따르겠지만, 탄핵소추로 권한만 정지됐을 뿐 엄연히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오란다고 가고” 그러겠냐면서 대통령의 권위를 직접 내세우기도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엔
“힘 있는 자들은 사소한 절차와
증거획득 과정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더니
지금은 권력 이용해 노골적 수사 기피
윤석열은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이 출범하면서 박영수 특별검사의 지목을 받아 수사팀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권력을 상대로 벌인 이때의 수사는 이후 박근혜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졌고, 검사였던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윤석열은 법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고, 권력과 힘있는 자들도 예외없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2019년 7월 25일 검찰총장 취임사에선 “권력기관의 정치·선거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 퇴임사에선 “재판 과정에서 힘 있는 자들은 사소한 절차와 증거획득 과정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처럼 법 절차를 교묘하게 피해가는 권력자를 비판하기도 했다.
2022년 3월 10일 대선 당선인사를 통해선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반 국민과 다른 대우를 받길 원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에도 나와 있듯이 윤석열이 저지른 내란죄는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는 범죄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던 박근혜
자신이 저지른 국정농단 사건
참고인 조사도 거부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 및 수사 과정도 비슷했다. 박근혜도 윤석열과 비슷하게 평소 모든 사람이 법앞에 평등하다면서 법치주의를 강조해왔다. 박근혜는 2013년 4월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제50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부끄러운 말이 우리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사용되지 않도록 여러분께서 앞장서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은 박근혜 그 자신과 힘있는 자들은 제외한 일반국민들에게만 해당됐다. 박근혜 탄핵과 수사 재판 과정에선 ‘엄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2016년 11월 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진상과 책임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고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약속했지만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박근혜의 대통령 신분을 예우해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었지만, 박근혜는 거부했다. 결국 박근혜에 대한 검찰 수사는 2017년 3월 10일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3월31일 구속된 뒤에야 시작됐다.
출석거부, 부상핑계 등
탄핵과 재판 노골적 시간끌기
대통령 직위 악용해
증거도 숨긴 박근혜
탄핵심판 과정도 비슷했다. 윤석열과 달리 탄핵 관련 서류는 지체없이 받았지만, 헌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탄핵심판엔 단 한차례도 참여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재판정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하며 여론전에만 집중했다.
아울러 탄핵심판 초기부터 박근혜 대리인단은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모두 따져보겠다면서 무더기로 사실조회와 증인 신청을 하며 재판 지연 의도를 드러냈다. 신청한 증인들이 헌재에 출석하지 않는 일도 빈번했다. 결국 헌재가 출석 요구서를 전달하기 위해 증인의 주소지에 직접 찾아가거나 경찰에 소재탐지를 요청했음에도 증인신문이 파행되는 일이 속출했다. 탄핵심판 내내 노골적인 시간끌기가 이어진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박근혜 변호인단은 재판과정 내내 수백 명에 달하는 증인 요구, 발가락 부상 등을 이유로 한 불출석 등 갖은 방법으로 재판을 지연시켰다. 당시 박근혜의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기 위한 꼼수였다. 이런 꼼수에도 불구하고 구속 기간은 다시 연장됐다. 하지만, 박근혜 변호인단은 구속 기간 연장을 이유로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 7명 전원이 사임 의사를 밝히며 또다시 공판을 지연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탄핵 선고를 앞두고 청와대가 나서 각종 자료를 무단파기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황교안이 박근혜 집권시기의 국정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면서 법을 악용해 증거인멸을 돕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 대통령인 윤석열과 전 대통령인 박근혜만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한 민주주의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일반 범죄 피의자라면 불가능한 특혜를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또는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게 과연 정당할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의 구절이 윤석열과 박근혜 앞에선 공염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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