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을 맡고 있는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만에 하나 탄핵에 반대의견을 낼 재판관이 존재한다면 1순위일 것이라고 꼽혀온 정 재판관은 최근 윤 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을 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을 상대로 다른 재판관들과는 달리 유독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 삼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지며 심지어 신경질적인 모습까지 드러내 많은 시민을 의아하게 했다.
정 재판관은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6차 변론에 출석한 곽 전 사령관에게 12·3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직접 확인하겠다며 약 6분간 질문을 던졌다. 정 재판관 신문에 앞서 곽 전 사령관은 이날 증언을 통해 지난해 12월 4일 0시 30분쯤 윤 대통령이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거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으며, 여기서 말하는 '인원'은 707특수임무단 '요원'이 아닌 국회의사당 내 '의원'이 맞다고 수차례 분명히 밝혔다. 이는 곽 전 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와 내란국조 특위에 출석했을 때도 변함없이 일관되게 증언했던 사안이다.
검찰과 국회 등에서의 진술이 달라졌다고 윤 대통령 대리인단이 공격하자 곽 전 사령관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거친 표현을 차마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검찰 자수서를 쓸 때 '부수고'를 '열고'로, '끌어내라'를 '데리고 나와라'고 하는 등 일부 용어를 순화한 것이지 말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또 계엄 선포 직후부터 특전사 전투통제실에서 예하 지휘관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할 때 마이크가 켜져 있었던 탓에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지시한 내용을 회의 참석자들이 실시간으로 듣게 됐고, 자신이 당시 경황이 없어 기억하지 못하던 내용도 이들을 통해 나중에 알게 됐다고 충분히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 재판관은 지엽적인 대목에 집착해 같은 질문을 집요하게 되풀이하며 증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갔다. 다음은 정 재판관과 곽 전 사령관의 문답 요지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의) 반대신문에서 계속 얘기하는 게, 증인의 진술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사람'이라고 그랬다가, 나중에 '의원'이라고 그랬다가, 또 '데리고 나와라' 그랬다가 '끄집어내라'고 그랬다가. 이런 것들이 지금 혼재가 되어 있어요. 법률가들은 그 말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신빙성을 다시 판단합니다. 말이 달라지니까. 증인은 아까 그것을 순화시켜서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말이 달라지니까 자꾸 문제가 되는 거예요. 몇 번 답을 하긴 하셨는데 명확하게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의결정족수) 150명 얘기했습니까?
"12월 3일 당시에는 150명이라는 기억이 없었는데 나중에 제가 그 말을 했다고 누가 그렇게 얘기를 해 줘서 150명이라는 상황을 다시 인식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기억에는 그 150명이 안 채워진 것 같다고 들었다는 얘기입니까?
"아닙니다.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로지 증인의 기억에 의해서만 말하라는 겁니다. 자꾸 말이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150명 얘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
"12월 3일 당시에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잊었다가) 이후에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들었다고요?
"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정확하게 제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들은 얘기냐고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 150명도 들은 얘기입니까?
"150명은 나중에 제가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을 들은 겁니다."
-들은 얘기가 '인원'입니까?
"네, 인원을 끄집어내라."
-인원을 끄집어내라.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 이랬습니까?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 그랬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말은 안 했습니까? 들은 기억이 없습니까? 있습니까? 전화로.
"전화로 들었던 표현은 안에 있는 인원을 밖으로 끄집어내라, 이렇게 들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정리하면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의원을 다 끄집어내라?
"제가 표현한 내용하고 말씀이 또 다른데 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 인원,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
-150명 얘기는 언제 했어요?
"150명 얘기는 대통령 얘기가 아닙니다."
-자꾸 말이 달라지잖아요. 아까 분명히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냐고 했더니 150명 들은 기억이 생각났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건 김용현 장관하고 했던 얘기고 대통령님 워딩은 제가 방금 말했던 세 마디 그게 (다입니다)."
-그러면 150명 이야기는 들은 바는 없습니까?
"네, 그때 당시 제가 나중에 기억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말씀하신 워딩은 딱 그 세 줄이었습니다."
정 재판관은 150명이라는 말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는지 구분해서 질문한 적이 없다. 그냥 "150명 얘기했느냐?"고 물으니까 곽 전 사령관은 당시 윤 대통령과 김 장관 전화를 교대로 받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지 150명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만 답한 것이다. 처음부터 150명 얘기를 누구한테 들었는지 구분해서 물었다면 곽 전 사령관은 '김용현 장관으로부터' 들었다고 명확하게 답했을 텐데 정 재판관은 도리어 곽 전 사령관이 자꾸 말을 바꿨다고 역정을 냈다.
지난 4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출석했을 때도 비슷했다. 정 재판관은 이번 탄핵심판 통틀어 가장 긴 약 12분에 걸친 직접 신문을 통해 계엄 당일 홍 전 차장이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명단을 듣고 받아 적은 메모가 부정확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각시켰다. 의도적으로 증언의 신빙성을 흔드는 것으로 비쳤다.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홍 전 차장이 밤 11시가 넘어 국정원장 관사 앞 공터 어두운 곳에서 선 채로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다 당혹감 속에 주머니에 있던 메모지를 꺼내 빠르게 요점만 휘갈겨 적은 것을 두고 왜 또박또박 주도면밀하게 기록하지 않았냐고 따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짜증 섞인 말투로 언성을 높이는 등 감정적인 모습도 보였다. 메모할 당시엔 본인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될 뿐 외부에 공개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홍 전 차장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홍 전 차장은 "여러 가지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기승전결에 맞춰서 할 수 있겠냐. 정확하게 기재 못 해서 죄송하다"고 뼈있는 사과를 했다.
-방첩사령관이 쓸데없이 아무 데다가 막 얘기를 퍼뜨리고 다녔다 이런 얘기도 될 수 있는데, 정보 같은 거는 굉장히 민감하게 보존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얘기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명단을 주니까 증인이 체포 뭐 그래서 그때는 뭐 거의 듣기도 싫었다는 취지 아니에요. 증인은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용을 자세하게 또 여기다가 메모를 해놓은 게 선뜻 이해가 안 돼서. 하여튼 들은 얘기가 맞다는 거죠? 검거를 요청한 것도 맞아요?
"총리께서도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어떤 얘기들을 다 기승전결에 맞춰서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제 써놓은 순서나 이런 게 그래서 그래요. 검거를 요청…
."제가 그러면 여인형 사령관하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일부러 이런 거를…."
-아니 그런 취지가 아니고. 여기 이렇게 적혀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그리고 주신문 사항에서도 검거 요청 얘기는 나오지 않은데 메모에는 딱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여쭤보는 거예요. 검거 요청했어요?
"위치 추적을 해서 방금 얘기했던 10여 명의 대상자를 검거하겠다는 것 자체가 저는 검거 지원을 요청했다라고…."
-그럼 검거 지원 요청이라고 안 쓰고 왜 검거 요청이라고 썼어요? 이 말은 다르잖아요. 검거를 요청한다는 건 국정원에서 검거를 진짜 한다는 얘기고.
"제가 공문서를 작성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간단한 메모이지 않습니까?"
-메모는 왜 작성해 놨어요?
"제가 나름대로 그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서 메모해 놓은 거죠."
-그럼 정확하게 기재를 해야죠.
"예. 정확하게 기재 못 해서 죄송합니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문답에 고무된 듯 정 재판관의 증인신문이 끝나자마자 발언권을 신청해 "저 메모가 12월 6일 박선원 (민주당) 의원에게 넘어가면서부터 탄핵이니 내란이니 모든 프로세스가 시작된 거라고 본다"며 홍 전 차장 진술의 신빙성을 전면 부정했다. 그러면서 "계엄 관련 얘기는 이미 국정원장과 했기 때문에 홍 전 차장과 통화를 하기로 한 김에 격려 차원에서 전화한 것"이라며 "간첩 업무와 관련해 국정원은 정보가 많으니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한 것"이라고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펼쳤다. 윤 대통령은 곽 전 사령관 증인신문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발언권을 얻어 "12월 6일 홍장원의 공작과 특전사령관의 '김병주TV' 출연부터 바로 이 내란 프레임과 탄핵 공작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궤변을 당당하게 늘어놨다.
탄핵심판 초반엔 비교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심리를 벌여 애초 우려와 달리 '윤석열 파면'에 무난히 동참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정 재판관이 시간이 갈수록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입증하는 국회 측 핵심 증인들에게 부쩍 예민하거나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두고 이제 '본색'을 나타내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정 재판관은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직접 지명한 재판관이고 ▲자신의 처형(부인의 언니)인 박선영 전 의원이 계엄 사태 와중에 윤 대통령에 의해 장관급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돼 '탄핵 방탄 사전뇌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무엇보다 그간 판결에서 극보수적 경향성을 보였기 때문에 많은 시민이 불안한 시선으로 주시해왔다.
최근엔 박선영 위원장과 특수 관계인 김계리 변호사가 윤 대통령 대리인단에 돌연 합류해 의구심을 더 키웠다. 이제 41세인 김 변호사는 이렇다 할 경력은 없지만 박 위원장이 지난 2022년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로 뛸 때 박 위원장 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투입돼 홍장원 전 차장에 대한 주공격수로 나서 마치 검사가 피의자 취조하듯이 공격적인 질문으로 일관했다. 정 재판관도 이날 홍 전 차장을 매섭게 다그친 것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유무형의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여러 측면에서 윤 대통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 재판관이 얼마간 '보여주기식 연출'을 했을 뿐이지 내란 사태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입장 변화를 시사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그가 나중에 탄핵 기각 편에 설 것인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 계엄 선포의 위헌성과 불법성이 워낙 명백하기 때문에 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아직은 우세하다. 그럼에도 탄핵을 결사반대하는 내란동조 세력 측에서는 5차‧6차 변론기일을 거치며 정 재판관에게 본격적으로 열띤 환호와 찬사를 보내고 있어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송곳 질문'으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거짓말을 밝혀냈다고 환호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의 영상들
극우 유튜버들은 성창경TV <명재판관 탄생. 송곳 질문으로 홍장원 곽종근 허위 진술 밝혀낸 정형식 재판관의 빛나는 활동>, 고성국TV <홍장원 박살낸 정형식 재판관>, 배승희 변호사 <내란공작자 4인! 정형식 재판관이 밝혀내!>, 펜앤드마이크TV <곽종근-김병주 홍장원-박선원 공작 의혹 드러났다. 판 뒤집는 정형식 재판관의 매서운 활약>, 고영신TV <정형식 재판관 송곳 추궁. 곽종근 홍장원 진실 실토. 내란 프레임 흔들>, 손상대TV2 <정형식 헌법재판관 홍장원에 질타!>, 진성호방송 <정형식 재판관 집요한 질문에 무너진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이재명 난리 났다!> 등의 제목으로 정 재판관의 활약상에 열광하는 동영상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각 영상에는 "좌파 소굴 헌재에 정형식 같은 명재판관이 있다는 것에 힘이 됩니다" "진정한 법관입니다" "나라 살리는 데 큰일 하십니다" "정형식 재판관님이 대한민국의 희망" "정의로우신 분" "이런 분이 목소리를 크게 내셔야 합니다" "정형식 재판관님, 윤석열 대통령님 복귀시켜주세요"와 같은 댓글이 잔뜩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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