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 자리에서 "아마 검찰총장 인사에 이렇게 국민 관심이 크게 모인 적은 역사상 없지 않았을까 싶다"며 "그만큼 국민 사이에 검찰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크고 '우리 윤석열 신임 총장님'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발언 중 거듭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표현하면서 "여러모로 국민 기대가 높고 저도 기대를 많이 한다. 잘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이 이른바 '조국 사태'를 일으키고 청와대를 겨냥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까지 요란하게 벌이기 시작한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윤 총장에 대해 "엄정한 수사,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수사, 이런 면에서는 이미 국민에게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조직 문화 개선에 앞장서면 더 신뢰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윤 총장 징계, 나아가 해임 문제까지 거론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여권 내에서도 많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거꾸로 윤 총장 신임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윤 총장이 급기야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칼을 겨눈 월성 원전 관련 수사에 나서고 '추윤 갈등'이라는 하극상 막장극을 일파만파로 일으키던 시점의 2021년 1월 18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 전 대통령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윤석열 총장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며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돌이켜 볼수록 촛불 시민들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에게 통탄스러운 장면들이다. 이렇듯 윤석열을 파격적으로 중용하고 막판까지 신임을 유지한다는 뜻을 나타내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문 전 대통령이 이제야 뒤늦게나마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데 대한 뼈저린 후회를 털어놨다. 아울러 현 정권을 탄생시킨 책임감과 자괴감, 국민을 향한 송구한 마음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표명했다.
한겨레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오후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자택에서 이 신문과 2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2022년 5월 퇴임 이후 언론과 첫 인터뷰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야당 세력을 전부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 이런 걸 듣고는 대통령이 정말 망상의 병이 깊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탄핵 재판에서 내란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엔 "어떻게든 연명해보고자 하는 태도가 너무 추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과정과 관련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가장 단초가 되는 것이니 후회가 된다"며 "그 당시 찬반 의견이 나뉘었는데 비율로 따지면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의견이 훨씬 많았고 반대하는 의견은 소수였다.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찬성하는 그런 의견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러나 이 반대 의견이 수적으로는 작아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면서 "윤석열을 가까이에서 겪어본 사람들이 '욱하기를 잘하는 성격이고 자기 제어를 못 할 때가 많다. 윤석열 사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기 사람들을 아주 챙기는 스타일이다' 이런 의견들을 냈다. 나중에 다 사실로 확인됐다"고 했다.
또 "반대하는 수는 작지만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어서 많은 고민이 됐다. 그래서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 4명을 한 명씩 다 인터뷰를 해봤는데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검찰 개혁에 대해 윤석열 후보자만 지지하는 이야기를 했고 나머지 3명은 전부 반대하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며 "최종적으로 2명으로 압축해 고민했다. (윤석열 후보자 말고) 다른 한 분은 조국 수석과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니고 우리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하면서 조국 수석과 인간적인 관계도 나쁘지 않고 소통도 꽤 잘 되는 관계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분은 검사로서 검찰 개혁을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후보는 소통하기엔 좀 불편할 수 있지만 검찰 개혁 의지만큼은 어쨌든 긍정적으로 말했고, 실제로 중앙지검장 할 때 검찰 개혁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있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조국 수석과 소통이 되고 관계가 좋은 그런 쪽을 선택하는 것이 순리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하고 조국 수석은 검찰 개혁에 너무 꽂혀 있었달까, 그래서 다소 불편할 수 있어도 윤석열 후보자를 선택하게 된 것인데 그로써 이후에 굉장히 많은 일이 생겨났기 때문에 그 순간이 두고 두고 후회가 된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 됐느냐"고 묻자 문 전 대통령은 "조국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라며 "조국 후보자 일가에 대한 수사는 명백히 조국 수석이 주도했던 검찰 개혁, 또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더 강도 높게 행해질 검찰 개혁에 대한 보복이고 발목잡기였다. 그때 처음 안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 바람에 조국 장관 후보자 가족들은 이른바 풍비박산이 났다"면서 "사실 참 인간적으로 아이러니하다.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할 때 가장 지지한 사람이 조국 수석이었고, 검찰총장으로 발탁할 때도 조국 수석이 편이 되어준 셈인데, 거꾸로 윤석열 총장으로부터 그런 일을 겪었다"고 탄식했다.
윤석열 발탁의 책임론을 묻는 질문에는 "윤석열 정부가 너무나 수준 낮은 정부, 이번 계엄 이전에도 참 못하고 수준 낮은 정치를 했는데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정권을 넘겨줬다는 자괴감이 아주 크다. (윤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국민한테 참 송구스러웠다"면서 "거기에다가 이번 계엄 사태가 생기고 나니까 정말로 자괴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또 "검찰총장 발탁이 끝이 아니고 그 이후에 징계, 이런 과정들이 매끄럽게 잘 안 되고 엉성하게 되면서 거꾸로 굉장히 많은 역풍을 받고, 그 바람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치적으로 아주 키워준 것"이라며 "그것도 또 끝이 아니라 더 유감스러운 것은 사실 지난번 대선이다. 윤석열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 자질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고, 우리 쪽 후보(이재명 후보)가 비전이나 정책 능력 또는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훨씬 출중하기 때문에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극심한 네거티브 선거에 의해서, 마치 비호감 경쟁인양 선거가 흘러가 버렸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패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전 과정을 통해서 후회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지만, 총체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 정부(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물론 내가 제일 큰 책임이 있을 테고, 그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른바 추윤 갈등 때 왜 대통령 인사권을 행사해서 검찰총장을 그만두게 하지 않았을까. 이를 의아해하는 시민들이 많은데 문 대통령은 본인도 답답하다는 듯 당시 불가항력적이던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가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에게 제왕적인 권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거랑 같은 거다. 우선은 대통령에게 검찰총장을 해임할 수 있는 인사권이 없다. 한다면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신뢰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든지 뭐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언론을 통해서 압박한다든지,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대통령이 조금 불편하게 여긴다고만 해도 검찰총장들이 알아서 물러났다.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그렇게 압박했다가는 윤석열 총장 본인은 물론 검찰 조직 전체가 반발하고 나설 거고 당연히 보수 언론들도 들고일어날 거고, 그러면 엄청난 역풍이 생기고 그것은 또 대선에서 굉장히 큰 악재가 된다. 그걸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었다. 자꾸 대통령에게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니까 그런 말들이 있는 건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면 좋겠다.
그 당시에 윤석열 총장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무부 장관이 징계 건의로서 징계 해임을 할 수가 있어서, 실제로 당시 법무부 장관이 그렇게 하려고 시도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아주 잘 처리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안 됐기 때문에, 말하자면 해임도 못 하고 거꾸로 역풍을 받고 정치적으로 이 사람을 키워주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나름대로 진솔하게 본인 입장을 밝혔지만 핵심인 윤석열 검찰총장 발탁 과정과 관련해서는 부분적으로 다른 증언들도 존재한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찬성하는 그런 의견이었다"고 회상했으나,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저서 <조국의 시간>에 이렇게 기록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청와대 안팎에서 의견이 확연하게 나뉘었다. 나는 민정수석으로서 찬반 의견을 모두 수집해 보고해야 했기에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지만, 의견을 표명한 사람의 실명을 밝힐 수는 없다. 다만, 당시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과 법률가 출신 국회의원 대다수와 문재인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 소속 법률가들 다수는 강한 우려 의견을 제기했다는 점은 밝힌다. 이들이 사용했던 표현 가운데 기억나는 것만 옮긴다.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수사의 대가다' '뼛속까지 검찰주의자다' '특수부 지상주의자다' '정치적 야심이 있다' 등이다."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 검증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맡았고 책임자는 최강욱 비서관(민주당 전 의원)이었다. 최 비서관은 '윤석열 불가'라는 인사 검증 결과를 세 번이나 조국 민정수석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으로 발탁할 때도 조국 수석이 편이 되어준 셈"이라고 했으나, 조 수석 역시 윤석열 총장 카드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부적격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내에서 윤석열을 밀어주는 목소리가 강하자 조 수석이 직접 강도 높은 압박 면접을 실시했다. 하지만 결국 후보자 4명 가운데 유일하게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호응한 윤석열이 낙점되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의 인터뷰를 기사를 두고 각종 SNS에서는 "윤석열이 뽑힌 지난 대선 전에 사과했다면 '괴물'의 탄생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만시지탄이다" "버스 지나고 손 흔들면 뭐 하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지체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이제라도 사과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문재인이니까 진솔하게 사과한다" "언론 인터뷰에 끼워넣는 것보다 별도로 격식을 갖춰서 대국민 사과를 했으면 더 좋았겠다" "민주 진영의 통합과 지지자들의 결집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등 아쉬움과 호평이 엇갈리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아주 진솔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며 "그게 굉장히 우리 이재명 지지층이 통합하는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수현 의원은 YTN 라디오 '뉴스 파이팅'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국민께 언젠가 한 번 드려야 될 말씀을 잘하셨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1월 23일 제가 평산을 방문했을 때 그런 인터뷰 예정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솔직하게 말씀하겠다고 그때 이미 결심이 계셨던 것 같다"고 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가 계엄 이후에 바로 귀국해서 찾아뵙는데 그때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한창 탄핵 때문에 국민들이 그 추운 거리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인데 그걸 보시면서 전 정부를 책임졌던 사람으로서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지속해서 발전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국민들이 지금도 이렇게 고생해 정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검찰 개혁을 책임지겠다고 했던 사람이 검찰 개혁보다는 장관 때려잡는 데 힘을 쏟은 거 아니냐. 그런데 임기가 보장된 총장을 자를 수 없었던 대통령으로서는 얼마나 여러 가지 후회가 많겠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신이자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가장 큰 책임을 말씀하신 문재인 대통령님의 고백에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로서 마음이 아팠다"면서 "포용과 확장을 강조하신 대통령님의 절박함이 전해진다"고 했다. 문재인 청와대의 좌장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아직 아무 언급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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