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쿠데타의 특징과 위험성
- 강호석 기자
- 승인 2025.02.13 13:49
- 댓글 0

12.3계엄 사태는 친위쿠데타다. 쿠데타란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행위다. 박정희의 5.16쿠데타, 전두환의 12.12쿠데타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친위(親衛. 국가 원수의 신변 호위)가 붙으면 정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최고 권력자가 스스로 계엄을 선포하고 예비검속 등을 단행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쿠데타는 시쳇말로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 된다. 하지만 친위쿠데타는 실패한다고 곧바로 반역자로 처단되지 않는다. 아직 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친위쿠데타는 일반 쿠데타에 비해 실패 확률이 낮다. 드물게 실패한 경우라도 가진 권력을 총동원해 마지막 순간까지 판 뒤집기를 시도한다.
친위쿠데타는 그만큼 내란 종식이 쉽지 않다. 마지막 한 놈까지 모조리 처단해야 내란이 종식된다. 그래서 내란 종식 투쟁은 매우 까다롭고 장기적이며 복잡한 양상을 띤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국회에서 탄핵하고 구속까지시켰지만, 정국이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친위쿠데타에 실패한 이후 다시 쿠데타를 시도, 결국 장기집권에 성공한 예가 있다. 바로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그 장본인이다.
1921년 나치당 대표로 선출된 히틀러는 극우세력들의 연합체 ‘독일투쟁동맹’을 결성하고 지도자로 추대된다. “공산주의는 유대인의 음모”라며 ‘반공·반유대인’ 정책을 펼치던 히틀러는 1923년 ‘뮌헨 맥주홀 쿠데타’를 일으킨다. 하지만 쿠데타의 성패를 가를 주요 인물 3인방을 석방하는 실수를 저질러, 친위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히틀러는 5년 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1년 만에 사면돼 출소한다. 교도소 수감 중에 히틀러는 나치당 와해를 막고 낙심한 당원들과 지지자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나의 투쟁’을 집필한다.
1933년 히틀러는 나치 독일 총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쿠데타가 실패할 당시 ‘반공·반유대인’을 주창한 히틀러의 나치 선동은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도 백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괴벨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혐오하는 거짓 선동을 지속한 결과 “유대인은 죽여도 된다”는 파시즘 체제 구축에 성공한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부정선거 여론을 부추기고, 헌재 재판관 자격을 시비하고, 종북 간첩을 운운하고, 중국혐오를 조장하고, 내란혐의를 왜곡하고, 국민의힘과 지지자들을 향해 폭동을 선동하는 이유는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처럼 파시즘을 부활하고 싶어서다.
윤석열의 목표는 분명하다. 헌재에서 파면이 결정되면 판결을 부정하고, 지지자들에게 서부지법처럼 헌재 난입을 추동한다. 조기 대선 과정에 야당 대선 후보에 테러를 가하는 등 폭도를 동원해 선거를 방해한다. 만약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내란범을 모두 사면하고 윤석열은 영웅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야당이 당선되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곧바로 탄핵을 추진한다. 폭도의 준동으로 사회는 대혼란에 빠진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45년 만에 계엄을 부활시킨 자들이다. 판을 뒤집지 못하면 사형에 처하거나 평생 감옥에 처박혀야 한다. 그러니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