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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0일 월요일

[단내나는 삶] ‘아무 일도 없었다’는 계엄 선포의 영향

 

나는 그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긴급 대국민담화 발표에서 비상계엄령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YTN 뉴스 화면 캡처) ⓒ뉴시스

평온한 이 시대를 비상사태로 인식해 계엄이 선포되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고, 국회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한 지도 곧 두 달이 되어간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그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은 많은 시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그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문제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심지어 타인에게 전가하는 비열함 때문에 더욱 더 분노한다. 사실 리더십을 행사하는 사람의 유혹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명성, 명예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려는 의도이다.

계엄 선포로 인해서
과거 치욕스런 폭력과 같은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몸이 그 경험을
다시 기억하여 긴장을 경험해야 했다


탄핵당한 대통령은 계엄 당일 아무 일도 없었으므로 무엇을 지시했는지, 받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마치 그 어떤 호수 위에 떠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현실과 분리된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계엄 선포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순식간에 마비가 되었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미시적이고 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계엄 선포로 인해서 과거 치욕스런 폭력과 같은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몸이 그 경험을 다시 기억하여 긴장을 경험해야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수녀는 계엄 선포가 장난이 아닌 사실임을 확인하고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동료 수녀님들을 깨워 함께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는 매 20분마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 장난 같았던 비상계엄은 그 수녀로 하여금 계엄으로 삶이 망가진 오빠의 삶을 다시 소환하였고, 그 아픈 기억으로 인하여 그의 몸은 긴장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서 신지현 민중의소리 PD가 영상으로 찍은 계엄군. 2024.12.03. ⓒ민중의소리

그 수녀의 오빠는 5.18 계엄 확대 당시 공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친 후 자신의 고향 광주에 머무는 것을 회피하였고 안정감 없이 계속 떠도는 삶을 살았다. 그는 군복무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이 복무했던 사람들 중 몇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몇 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경험했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곤 했다. 그 수녀는 오빠가 물리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혼자 고립된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날 가족들끼리 콩국수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는데 내가 콩국수를 만든 언니에게 ‘언니 어떻게 비린내도 안 나게 콩을 잘 삶으셨어요?’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오빠가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을 응시하며 ‘비린내 중에 가장 지독한 비린내가 뭔지 알아? 피비린내만큼 지독한 비린내도 없어.’라고 말했어요. 오빠는 그렇게 혼자 고립됐어요. 그런 오빠가 항상 안타까웠어요.” 그는 지병으로 50대 후반에 혼자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그의 시신을 보고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병원 측으로부터 군 관계자들이 와서 그의 죽음을 조사해 갔다는 설명을 들었다.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맺는 관계와 경험, 심지어 경직된 문화가 생산하는 억압과 폭력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경험과 타인과 맺는 관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사회구조의 억압적 환경이 만들어낸 고통스런 경험은 몸에 내면화되어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질병을 앓게 한다. 우리는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그 수녀의 오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이는 보는 가족들도 같이 고통을 경험했던 것이다. 계엄 선포는 그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4일 오전 1시 40분께, 국회에 진입했던 계엄군이 철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영어에서 책임(responsibility)이란 말은 response(응답)와 ability(능력)의 합성어이다. 책임이란 응답하는 능력, 응답을 선택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결정의 과정은 단순히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 영적식별의 과정을 갖기도 한다. 이런 식별의 과정은 올바른 응답을 선택하기 위해서이고 책임을 지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상황이 그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선택한 결정에 그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사실 그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삶에 큰 영향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범죄에 연류 되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광장에 나온 젊은 세대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에 놀랄 뿐만 아니라 고마운 마음이다. 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비해서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상상력은 매우 빈약하다. 나는 특히 기성세대의 리더십과 관련한 경직된 상상력은 도전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십 행사는 권위를 가지고 하는 것이지 권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권위란 있는 그대로의 사람 됨됨이이다. 타인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고 싶다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 때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권위가 없는 리더십은 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권위적 리더십이라고 한다. 그럴 때 소통방식은 쌍방이 아니라 일방적이어서 소통부재와 폭력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의 8년 전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이 체포영장 집행으로 법무부 호송차에서 내려 특검 사무실로 압송되며 취재진들을 향해 “(자신이 조사를 받는 이 특검은)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라며 자신의 주장을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을 목격한 특검 사무실을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가 “염병하네!”라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주었다. 욕이란 ‘사회적 응징’이라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앞에 ‘지랄’이라는 삽입어가 있었다면 ‘더 찰진’ 사회적 응징이 되었을 것 같다. 뻔뻔스런 사람들에게 해줄 찰진 욕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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