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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3일 일요일

[하승수의 직격] 국회 해산하고 장기집권, 내란의 진짜 목적

 

노상원 수첨에 담긴 3선 개헌 등 장기 집권 시도와 관려한 한겨레와 MBC의 보도 ⓒ인터넷 캡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 25일로 예정된 최종변론이 끝나면 선고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탄핵심판의 결과는 ‘윤석열 파면’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을 파면시키지 않으면,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와 선관위를 침탈해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헌법재판관들로서는 윤석열을 파면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것은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을 떠난 얘기이다. 민주공화국이 존립하려면, 윤석열은 파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은 내란죄로 처벌도 받게 될 것이다. 이것 역시 예정된 결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훼손된 헌정질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내란의 동기와 기획을 밝혀내야


아직까지도 내란의 진정한 동기는 규명되지 않았다. 단순히 ‘김건희 지키기’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까지도 윤석열은 여전히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리고 내란은 위험부담이 매우 큰 일이다. 그런 일을 단지 ‘김건희 지키기’만을 위해 했을 리는 없다. 김용현이나 여인형 등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단지 김건희 한 명을 지키기 위한 내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이유는 없다. 더 큰 동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부정선거’ 얘기도 내란의 진짜 동기는 아니다. 내란세력의 진정한 목표는 국회를 해산시키는 것이었고, 그 명분으로 ‘부정선거’를 활용하려고 했던 것일 뿐이다. 국회를 해산시키려면,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정도의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란의 진정한 동기는 ‘장기집권을 하는 독재정권 수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의 목표가 있어야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사실상 해산시키려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래야 내란에 가담한 자들이 나눠 먹을 권력이 커진다.

MBC뉴스가 공개한 윤석열에게 최상목 부총리가 받았다는 쪽지 사본. 내용엔 국가비상입법기구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MBC캡쳐

그리고 그 단서가 노상원 수첩에서 나왔다. 한겨레신문이 2월 14일 보도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헌법개정(3선-재선)’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단어는 내란의 진정한 동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이 단서와 최상목 권한대행이 윤석열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지시문’에 적혀 있던 ‘비상입법기구’를 조합하면, ‘비상입법기구를 통해서 헌법개정’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말이 비상입법기구이지, 정확하게 표현하면 불법 입법기구이다. 이런 불법 입법기구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3차례나 있었던 일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 국보위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세력은 국회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1961년 5월 19일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불법적인 기구를 설치했다. 불법적인 기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 헌법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기구이고, 자기들 마음대로 구성한 기구였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이 불법적인 기구의 부의장을 맡았다가 곧 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년 12월 16일까지 무려 2년 7개월간 존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자기들 마음대로 법률도 통과시키고 헌법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른바 ‘3공화국 헌법’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이었다.


박정희가 제안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통과시킨 3공화국 헌법

박정희가 제안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통과시킨 3공화국 헌법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검색

그리고 박정희는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1972년 10월 17일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고 국회를 해산시킨다. 그리고 국회 대신에 ‘비상국무회의’라는 기구를 통해서 입법을 했다. 역사상 두 번째 불법 입법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18일부터 1973년 3월 11일까지 국회를 대신하여 입법활동을 했다. 그리고 비상국무회의가 유신헌법도 통과시켜서 국민투표에 회부했다. 유신헌법은 국회의원 3분의1을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게 하는 등 노골적인 장기독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유신헌법 추진을 위해 통과시킨 특별법

박정희 정권이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유신헌법 추진을 위해 통과시킨 특별법 ⓒ자료

역사상 존재했던 3번째 불법 입법기구는 전두환이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쿠데타 이후에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이다. 국회를 해산하고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980년 10월 28일부터 1981년 4월 10일까지 존속하면서, 각종 법률을 제정ㆍ개정했다.

전두환은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하기 전에 먼저 헌법 개정부터 했다. 이른바 5공화국 헌법을 만든 것이다. 이 헌법 개정은 국회의 의결도 없이 곧바로 국민투표에 붙여졌다. 그리고 5공화국 헌법 부칙 제6조 제3항에서는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제정한 법률과 이에 따라 행하여진 재판 및 예산 기타 처분 등은 그 효력을 지속하며, 이 헌법 기타의 이유로 제소하거나 이의를 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뒀다.

헌법개정 통한 장기집권이 내란의 진짜 동기


12.3 내란은 박정희식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전두환식의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사실상 해산한 후에, 불법 입법기구를 만들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법률 제정ㆍ개정을 하고, 헌법개정까지 추진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1980년 11월 열린 국가보위입법회의 첫 회의 모습 ⓒ대한뉴스 캡쳐

그리고 5년 단임제 조항을 바꿔서 윤석열이 재선, 3선을 한 후에, 후계자에게 정권을 물려준다는 구상이었을 것이다.

또한 국회를 해산하고 불법 입법기구를 구성하더라도, 언젠가는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기집권에 유리한 선거제도까지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도를 바꿔서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파를 차지할 수 없도록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문제는 노상원 혼자서 이런 기획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상원 수첩도 누군가의 얘기나 회의 결과를 메모한 것일 수도 있다. 내란을 기획한 단위는 별도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단위가 존재했다면, 그 단위에서 포고령 초안이나 각 부처 장관들에게 지시할 지시문도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용현이 그 모든 것을 주도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아무리 엉성한 친위쿠데타라고 해도, 김용현이 정무적 기획과 물리적 실행 모두를 맡았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그래서 내란의 동기와 기획 단위에 대한 수사가 시급하게 필요하다. 이 부분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12.3 내란의 실체가 규명되는 것이다. 
“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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