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받는 돈’ 1%p 차이로 좁혔지만...갑자기 ‘자동조정장치’ 조건 내건 국민의힘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5-02-28 17:19:34

자동조정장치는 국민연금 급여를 사실상 삭감하는 기능을 한다. 구체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국회에서나 사회적으로도 제대로 논의된 적은 없다. 윤석열 정부도 자동조정장치에 대해 '도입을 검토'하겠다면서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현재 정부와 거대 양당만 모여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상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받는 돈' 약 20% 삭감되는 '자동조정장치'...연금개혁 논의 쟁점으로
정부와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7일 오후 국민연금 개혁 관련 실무 협의를 했지만 연급개혁안에 대해 합의를 보지는 못했다.쟁점은 소득대체율과 자동조정장치였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실무협의 뒤 기자들과 만나 "(소득대체율과 자동조정장치에 관해) 전혀 합의가 안 됐다"고 말했다.
현재 여야는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놓고 국민의힘은 43∼44%, 민주당은 44∼45%를 주장하면서 의견이 갈린 상태다. 1%p(포인트) 차이로 결국 연금개혁 모수조정 합의를 보지 못한 지난 21대 국회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4%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경제 지표를 반영해 소득대체율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다. 현재 정부는 급여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때 가입자수 감소율과 기대수명 증가율를 빼는 일본식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지급액은 전년도 소비자 물가 인상률을 반영해 인상된다. 여기에 가입자수가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날수록 물가 반영 비율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급여는 가입자의 수급 전 소득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만큼 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급여의 실질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부터 정부가 검토하는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된다고 가정하면,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3%가 온전히 급여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지난 2023년 발표된 국민연금보고서는 올해 가입자 변동률(감소율) 3년 평균을 1%, 평균수명 증가율을 0.4%로 추산했다. 이를 반영해 자동조정장치를 적용하면 올해 급여에는 물가가 0.9%(2.3%-(1.0%+0.4%))만 적용된다.
사실상 국민연금 급여를 깎는 효과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추계에 따르면 자동조정장치를 오는 2036년에 도입하는 것을 기준으로 1975년생(50세)은 20.3%, 1985년생(40세)은 21.8%, 1995년생(30세)은 22.1%, 2000년생(25세)은 21.3%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 평균 21% 정도 급여가 삭감되는 셈이다. 급여 삭감 효과는 청년세대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자동조정장치가 매년 작동될수록 물가반영 비율이 점점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소득대체율이 8%p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면서 "(여야가) 소득대체율을 44%에서 합의한다고 해도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실제로는 36%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금특위서도, 공론화서도 논의 없었던 '자동조정장치'
윤석열 정부도 "신중하고 충분한 논의 필요" 강조했는데
자동조정장치가 본격적으로 언급된 것은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편안에 담기면서부터다. 그러나 당시 정부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데서 그쳤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자동조정장치에 대해 "소득보장 수준에 미칠 변화 등을 고려하여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좀처럼 재개되지 못하던 상황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자동조정장치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갑자기 자동조정장치를 제안하면서 연금개혁의 중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연금개편안을 다시 밀어붙인 셈이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정부·여당이 소득대체율 44%를 수용하는 대신, 자동조정장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 대표는 자동조정장치 발동 시 국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 대표의 자동조정장치 수용 입장이 알려지자 사회시민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검토 가능성에 대해선 열어둔 상황이다.
문제는 자동조정장치가 연금개혁의 핵심 쟁점으로 갑자기 협상 테이블에 올랐지만, 제대로 된 검토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정권 출범 초기부터 구성돼 2년 가까이 연금개혁을 논의했던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는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지난해 4월 시민 500여명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도 안건으로 조차 오르지 못했다.
자동조정장치에 대해선 아직 논의할 부분이 많다. 정부는 일본처럼 가입자수 감소율과 기대수명을 반영하는 자동조정장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나라마다 조정방식이 다르다. 안철수 국민의힘이 주장하고 있는 스웨덴식 자동조정장치는 소득연금(IP)의 경우 평균임금 변화율과 기대수명을 반영해 급여를 산정한다. 덴마크, 이탈리아, 핀란드 등은 기대수명에 따라 수급연령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이마저도 덴마크 등은 기대수명을 모두 반영하는 반면, 핀란드 등은 2/3만 반영하는 등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기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지난해 자동조정장치 도입 검토를 제안하면서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초과하는 2036년(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 정부안 기준), 기금 감소 5년 전인 2049년, 기금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2054년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 및 경제 상황에 맞는 자동안전장치 모델이 무엇인지, 또 이를 언제 도입돼야 하는지 제대로 된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논의 없이 정부와 거대 양당이 자동조정장치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돼면) 생애 연금액이 경우에 따라선 20% 가까이 떨어지는데,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이 급여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도입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찬섭 교수도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장 명문화는 몇년 동안 주장해도 안 받아줬는데 자동조정장치는 말이 나오자마자 (민주당이) 덥석 물어버린 건 말도 안 된다"면서 "자동조정장치를 협상카드로 인정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국회 승인' 조건을 걸어도 자동조정장치가 법제화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 교수는 "법안에 어떤 형태로라도 (자동조정장치를) 넣는다면 국민연금의 소득보장성 강화보다는 급여를 어떻게 깎을지에 대한 논의부터 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에 국민연금 정책 방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 당장 자동조정장치를 막아둔다고 해도 급여 삭감 방안을 법제화한다면, 향후에 국민연금 재정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우선 논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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