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398] ‘백수(白手)’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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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고 나면 한가할 줄 알았다. 친구들이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길래 그냥 웃음으로 넘기고 “이제는 좀 쉬면서 편하게 글이나 써 보련다”고 생각했었다. 백수 생활을 시작한 지 딱 한 학기가 지났다. 요즘은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교직에 있을 때보다 일(?)이 훨씬 늘었다.
‘백수(白手)’란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백수(白壽)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 나이로 아흔아홉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흰 백(白) 자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백수는 앞의 경우를 이른다. 일(?)이 많으니 백수의 의미와는 다르겠지만, 뾰족한 직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허울 좋은 ‘명예교수’라는 직함만 지니고 있다. 그러니 박사과정 수업하고, 타 대학 두 군데 강의하고, 유행하는 동영상(요즘 사람들은 ‘너튜브’라고도 한다) 촬영하고, 여기저기서 “요즘 한가할 테니 같이 일 좀 하자”고 한다. 그런데 수당은 없단다. 결국 무료 봉사로 하는 일만 많아진 것이다. 그래, 그동안 월급 타 먹었으니 이제는 봉사라도 좀 해야지 하면서 위로하고 산다.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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