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비관세 장벽’ 포함해 ‘상호관세’ 검토...부가세·검역 등 겨냥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5-02-19 16:11:09
- 수정 2025-02-19 16: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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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도 상호관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과 미국은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수입 제품, 해외 기업에 적용되는 국내 규제도 관세 대상으로 검토되기 때문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에 대한 내용을 담은 '상호 교역과 관세'(Fair and Reciprocal Plan)라는 제목의 각서(Memorandum)에 서명했다. 각서 내용을 보면,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뿐 아니라 부가가치세 등 역외의 세금, 환율 정책을 상호관세의 검토 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세금 외에 미국 제품 및 기업에 차별적인 규제 등 각국의 국내 규제 정책을 포함한 비관세 장벽도 상호관세를 위한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 미 상무부 등은 이 같은 고려 대상을 검토해 오는 4월 1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할 방침이다.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검토 결과, 한국의 규제로 미국 제품이나 미국 기업이 한국 수출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판단된다면 이를 금액으로 환산해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 미국은 한미FTA로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내법과 국제통상 기준을 통해 일정 부분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산 소고기다. FTA 체결 전에는 한국으로 수입되는 미국산 소고기에는 40%의 관세가 부과됐지만, FTA 체결 이후에는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해 내년에는 미국산 소고기에 부과되는 관세는 0%가 된다.
그러나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국민적 우려를 받은 미국산 소고기는 검역 기준을 이유로 30개월 미만의 소고기만 수입되고 있다. 한미FTA는 농축산물의 검역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에서 합의한 SPS(동식물위생검역조치)를 따르도록 하고 있는데, SPS 규정은 해외에서 질병이 발생할 경우 이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 사과, 배, 복숭아 등에 대한 해외 수입이 규제는 되는 것도 SPS에 근거한 것이다. 한미FTA로 인한 농업 부문의 시장 개방률이 약 98%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산 농축산물의 수입이 제한되는 이유다.
이 같은 '비관세 장벽'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부과하거나, 규제 완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한국의 '30개월 미만 월령 제한 및 가공육 수입 금지'를 지적했으며, 사과, 블루베리, 체리 등 원예작물에 대한 시장 개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USTR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대한 검역 절차를 비관세 장벽으로 꼽기도 했다. 한국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심사를 통과한 GMO만 수입·유통하고 있다. USTR은 이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농촌진흥청 등 최대 5개 기관의 검토를 받아야 하는 등 GMO에 대한 수입 절차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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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직 논의 중인 '온라인플랫폼법'도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
특히 미국이 문제 삼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온라인 플랫폼법' 등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애플, 구글,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유럽에서 불공정 행위로 벌금 등 규제를 받는 데 대해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상호관세 각서에 서명한 직후 유럽의 빅테크 규제에 대해 "그곳의 법원 시스템은 우리 회사들에게 그다지 좋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안을 아직 논의하는 중이지만, 미국 재계는 이에 대해 우려와 불만을 제기해 왔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해 1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플랫폼 규제 입법 추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12월 미국상의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수석부회장은 성명을 통해 "특정 기업을 표적으로 삼으면서도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제3국에 있는 다른 경쟁업체는 (규제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도 지난 6일 한국을 포함한 해외 국가들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추진 상황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이와 관련,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공정위는 미국 측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17일 "플랫폼법 입법 과정에서의 통상 환경 변화가 종합적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하고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구글 유튜브 등 해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기업들에게 제기됐던 '망 이용료 부과법'도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 해외 OTT들이 고화질 동영상을 서비스하면서 국내 통신망에 큰 부담을 주면서도 이에 대한 대가를 국내 통신사업자들에게 지불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회에서는 망 이용료 부과의 법제화가 추진된 바 있다. 당시 USTR은 망 이용료 부과 법제화가 한미FTA에 위배되는 등 통상문제가 될 수 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백악관도 이번 상호관세를 설명하면서 캐나다, 프랑스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이를 무역 장벽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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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상호관세는 한미FTA 위반...FTA 체제 재검토 계기 삼아야"
트럼프 대통령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선 한국의 자동차 배출관련 인증 절차가 비관세 장벽으로 꼽힌다.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은 자동차 배출 관련 부품이 변경될 경우, 자동차 제조업체나 수입업체가 이에 대한 인증을 받거나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중대한 변경일 경우 인증을, 사소한 변경을 경우 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USTR은 중대한 변경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세가 예고된 의약품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약 값 정책이 상호관세 검토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제약업계는 한국이 약 값을 책정할 때 미국의 혁신적인 제약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부가가치세를 꼽기도 했지만, 한국의 부가세를 상호관세 검토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유럽으로 수출되는 미국 자동차는 부가가치세와 관세를 포함해 약 30%의 세금을 부담하지만, 유럽산 자동차는 미국에서 2.5%의 관세만 낸다"며 부가세를 공격했다.
유럽의 부가세율은 20%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미국은 주별로 부가세 성격의 판매세를 걷고 있는데, 주별 판매세 평균은 6.6%다. 한국은 이보다 높은 10%의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유럽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상호관세가 특히 한미FTA 맺은 한국을 대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고만큼 광범위하게 전개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미 FTA는 미국이 합의했고, 이를 통해 미국도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면서 "한국의 부가세 등 국내 규제를 가지고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한미FTA의 핵심인 관세 철폐를 명확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도 사회적으로 미국의 상호관세가 한미FTA를 위반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공격적인 관세 정책 중 실현된 것은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 부과뿐이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각국과 협상을 진행하겠다며 실행을 3월로 미뤘다.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예외 없는 25% 관세 부과에 대한 실행 시기도 오는 3월 12일로 예정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도 관세율을 검토한 뒤 오는 4월부터 실행할 예정이다. 관세 정책의 실행시기에 말미를 두면서 오히려 협상으로 통상 문제를 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25%의 자동차 관세를 예고하면서 "그들(기업들)에게 시간을 주려고 한다"고 협상 여지를 열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정책을 가볍게만 봐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 송 변호사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협상을 위한 엄포로만 볼 수도 없다"면서 "한미FTA 체결 당시에는 미국에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자유무역 체제로 가야만 한다고 몰아붙여 왔는데, 현재에 와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에 한미FTA가 얼마나 무력한지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한미FTA에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한미FTA 체제에서 국가의 역할보다 민간 기업이 시장경제 원리로 잘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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