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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5일 화요일

원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막힌 일... 눈물 나는 24명 '최후진술'

 [김소리의 세상을 읽다] 오래된 극장 지키려다 원주시 고발에 피고인이 된 사람들

정의를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주는 세상이라고 아직 믿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순진하다고들 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법은 기득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겉으로는 약자를 위한다고 표방하는 것이 또한 법이기에 부조리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법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상의 모습을 이곳에 전한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지난 14일 마지막 공판 후 철거된 아카데미 극장 부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아카데미의 친구들

24명의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섰다. 고발인은 원주시장이다. 검사의 공소장 죄명은 '업무방해'. 피해자는 공사 관련 업체들이다. 예술인들이 공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예술인들과 시민들이 공사를 방해했다니, 무슨 일인 걸까? 또 주목할 부분은 공소장에 있는 피해자인 업체들은 피고인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고 있는 점이다. 심지어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탄원하기도 했다. 오로지 원주시만이 이들의 처벌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카데미 극장을 철거하려는 시장, 대체 왜?

사건의 시작은 원강수 원주시장이 취임 이후 원주에 있는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을 철거하겠다고 하면서부터다. 지역의 예술인과 시민들은 극장 지키기에 나섰고, 전국의 영화인들도 극장 보존에 목소리를 보탰는데, 그 결과가 현재와 같이 범죄자로 몰려 법정에 선 모습이다.

아카데미 극장은 1963년 원주 원도심에 개관하여 한국에서 원형을 간직한 가장 오래된 단관 극장이었다. 멀티플렉스의 성행으로 원주 내 다른 단관극장은 모두 없어지고 아카데미 극장만이 유일하게 남았는데, 이곳 역시 2021년에 철거 논의가 시작되었다.

1983년 당시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 아카데미극장 외관 ⓒ 아친연대 제공

그런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3주만에 1억여 원을 모금하고, 전국 54개 영화문화단체에서 보존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는 등 극장보존 의견이 다수가 되었다. 그렇게 철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원주시(당시 원주시장 원창묵)는 32여억원을 들여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했다. 이후 아카데미 극장 보존사업은 문체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 사업으로 선정되어 국도비 39억 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일은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시민들은 2016년경부터 재생사례 연구와 전문가 포럼, 영화, 연극, 공연, 인문학 강좌 등의 다양한 재생실험 등을 하며 극장 보존운동을 했다. 그야말로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 지역의 커먼즈(공유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시가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던 아카데미 극장 보존 사업은 2023년 6월 현 원강수 취임 이후 물거품이 되었다. 원강수 시장은 돌연 아카데미 극장 철거를 결정하고 이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32억여 원을 들여 극장을 매입하고 국도비 39억 원까지 확보했는데, 이를 모두 포기하고 철거비 6억 5천만 원을 추가로 지출하여 갑자기 철거를 한다고 하니 시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아카데미 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극장 철거 반대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원강수 시장은 극장 보존에 관하여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는데, 이에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그렇다면 함께 이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원주시 주민참여 조례에 따라 정식으로 시정 토론을 요구했고, 조례상 원주시는 이에 응해야 하는데, 원주시는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반면, 아카데미 극장 보존의 목소리와 정당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한국영화학회, 한국사회학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극예술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등 28개의 학술단체는 아카데미 극장이 희소성 높은 근대문화자산임을 강조하며 문화 철거 계획 즉시 중단을 요구했고, 보존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확보, 보전, 관리 활동을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역시 극장 보존을 호소했다.

전국 대학교수, 강사, 연구자들, 영화문화단체들도 비민주적인 철거 강행을 비판했다. 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도 아카데미극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실제로 문화재청장은 원주시에 등록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라고 두 번이나 이야기했다.

그러나 원주시는 '귀틀막'이었다. 심지어 철거 공사에 앞서 법령상 거쳐야 하는 심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법을 외면하는 시장 앞에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

강원도 원주시는 지역 시민과 영화인들의 아카데미 극장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지난 2023년 10월 극장을 강제 철거했다. ⓒ 유성호

이제 정말 공사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사에 앞서 내부 자료들을 옮긴다고 했는데, 극장 안에 있는 자료들은 모두 그 자체로 역사자료임에도 원주시는 이 자료들을 어디로 옮겨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조차 시민들에게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 역사자료 반출이 예상되는 날, 20여 명의 시민들은 급히 극장 앞에 모였다. 그러자 원주시는 100여 명의 남성 공무원들을 현장에 투입시켜 시민들을 물리력으로 몰아붙였다. 시민들의 집회가 예상되는 또 다른 어느 날에는 경비용역을 불러 시민들의 극장 진입을 차단했다. 원주시 공무원은 법정에서 약 2천만 원을 들여 경비용역업체를 불렀다고 진술했다.

건물 외벽 철거가 예상되는 날에는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이은 명필름 대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등 전국에서 영화인들이 아카데미 극장으로 모였다. 공사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보자는 마음으로 다 같이 팔짱을 끼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30분 만에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절박한 일부 예술인 등은 옥상에 올라가 철거를 몸으로 막아보려 하기도 했으나, 마찬가지로 모두 연행되었으며 극장은 철거됐다.

조례에 따라 토론하자는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고, 공사에 앞서 지켜야 할 법령상 사항도 무시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막는 것밖에 없었다. 특히 극장 철거는 비가역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를 막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회복할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 당시 예술인들과 시민들의 항의 행동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공사 관련 업체들도 이러한 점을 이해하기에 이들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한 업체의 대표자는 자신도 원주시민으로서 아카데미 극장이 무너지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으며, 이에 저항한 시민들이 처벌을 받게 된다면 자신이 너무나 큰 마음의 빚을 지게 된다고 이들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탄원했다.

이처럼 원주시만이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를 통한 갈등 해결이 아닌 고발을 통한 억압을 택한 원강수 시장은 과연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에 대해 묵직한 울림 준 시민들의 최후진술

2023년 11월 12일 강원 원주시 서원대로 일원에서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가 아카데미극장 위법 철거 반대 2차 시민대행진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은 '업무방해'와 '특수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피고인이 된 24명에게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우리('아카데미의 친구들'측 변호인들)는 무죄를 주장한다. 대법원은 이미 공적 사안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에 대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쉽사리 인정하면 공적 관심사에 대한 민주적 담론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주시 행정의 위법성을 밝히고, 시민들은 그저 구호를 외치고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등의 지극히 평화롭고 소극적인 방식이었던 점(시민들은 욕설과 같은 폭언을 행한 적도, 물리력을 행사한 적도, 물건을 손괴한 적도 없다), 무엇보다 실제 철거가 예정된 공사 시간에 모두 이루어져 업무방해의 결과도 없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 공판기일었던 지난 14일 춘천지법 원주지원에서 피고인이 된 24명 예술인과 시민들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사람이 많아 최후진술만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지역의 창작자로, 원주의 오랜 시민으로, 영화인으로 각자 제각각 자신에게 갖는 아카데미 극장의 의미, 자신들이 왜 극장 앞에 모여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극장과 지역 공동체 문화를 지키려는 순수한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느새 법정은 훌쩍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고, 나 역시 변호인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민주주의, 지역문화와 예술 다양성에 대해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진술이자, 변호인들의 법적인 변론보다 훨씬 뛰어난 자체 변론이었다. 아래 그 일부를 소개한다.

"저는 아카데미 친구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이들은 여러 노력 끝에 극장을 문화재로 지정권고까지 이끌어왔고, 극장을 불법적으로 철거하려는 것에 맞서 경제적 어려움도 그리고 일부 부정적인 시선도 감당하며 원주시의 부당함에 움츠러들지 않고 극장을 지키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런 노력이 서울에 있는 저를 이곳까지 오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고, 함께 가꾸며 문화적 가치를 키워온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 소중한 장소가 일방적으로 철거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32년간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스스로 자립하는 삶' '가치 있는 온전한 삶' '혼자만의 성공하는 삶이 아닌 더불어 함께 잘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을 지지하고, 함께 곁을 지켜주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공간을 통해 역사적 가치와 미래문화유산으로의 가능성을 알고, 시민들의 참여로 그 공간을 지키고 되살리려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참 소중하여, 그 곁에서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은 누군가에겐 이미 문화재였고, 누군가에겐 흉물과도 같은 폐건물이었습니다. 결국은 가치관의 차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가치관, 아카데미극장을 바라보는 견해는 좁혀질 기회도 없이 극장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극장이 헐린 것보다 아쉬운 지점입니다. 시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모은 후 내린 결정이 극장 철거였다면, 이처럼 허무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상실감을 쥐여주는 행정을 막기 위해 시민들은 목소리를 내고, 대화를 위해 옥상에도 오른 것입니다."

"비민주적인 행태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행태 속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극장 앞에 서 있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죄가 된다면 지역의 민주주의가,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통탄할 일이 될 것입니다."

"과연 소통하려 하지 않고 무리한 행정에 대한 시정은 불가한 것이 되는 것인지 어떠한 폭력이나 위력적인 행사가 없었음에도 수갑을 채우는 일은 정말 괜찮은 것인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무력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게 됩니다."

건물을 부수는 시장, 시민들은 이를 저지하고자 했을 뿐

시장이 시민들을 고발하며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취하다니, 혹시 이 예술인들이 서부지법 폭동들처럼 건물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한 걸까 싶지만, 이처럼 실상은 정반대였다.

이전에 이어져 온 정책 방향을 돌연 뒤엎고 건물을 부쉈던 것은 원강수 시장이다. 시민들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민주시민으로서 해야 할 행동을 했을 뿐이다.

최근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영국의 켄 로치 감독으로부터 연대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타인의 노동을 착취해 부를 축적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기회를 틈타 돈을 벌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모두에게 필요한 건물들을 기꺼이 파괴하기도 하죠. 정말 긴 싸움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한 번의 전투에서 졌더라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역문화 파괴, 시민공간 축소의 움직임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싸움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아카데미 극장은 무너졌지만,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무너지지 않도록 부디 재판부가 이들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란다.

켄로치 감독이 연대의 마음을 담아 아카데미의 친구들에 편지를 보냈다. ⓒ 아카데미의 친구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소리 변호사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측 변호인입니다.

#아카데미극장#지역공동체#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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