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방통위 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이진숙 위원장의 발언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지시가 사실이라면 방송3법 통과를 주장해온 언론, 시민단체들의 비판이 이 대통령에게 쏟아질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기도 했다. 결국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위원장 명의로 대통령실 측에 공식 확인을 요청했다. '이진숙 위원장에게 방송3법 대안을 마련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는지'를 확인 요청한 것이다.
이날 오후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은 '그런 지시가 없었다'고 밝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모든 메시지는 수신자의 오해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제가 기억하기로는, (대통령의 말씀은) 업무지시라기보다 의견을 물은 쪽에 더 가깝다"고 했다. 한 마디로 이진숙 위원장이 대통령 말을 곡해해서 받아들였다는 것.
강 대변인은 "입법에 의해서 거버넌스가 결정된다면 방통위원장으로서 입법기관인 국회와 더 긴밀히 소통해야한다"면서 이 위원장을 질타했다. 이진숙 위원장 개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대통령실 대변인이 기관장을 공식석상에서 질타하는 것은 방통위 조직 차원에서도 굴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일이다.
이번 일은 정부기관 수장이 대통령 지시 사항을 곡해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대한민국 행정 역사상 보기 드문 '대참사'로 기록될 만 하다. 그동안 이진숙 위원장은 국회 등 공식석상에서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행태를 보여왔는데, 이런 행태가 이번 참사로 이어졌다. 이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말을 '곡해'해서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에게 대통령 추천 몫 상임위원을 임명해달라고 요구했고, 이 대통령은 "1대 1로 의견대립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 위원장은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방통위 2인 체제를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1대1 구조는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있지만 의결이 가능하다는 걸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주장이었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필요한 여러가지 전제를 건너뛴 이 위원장의 인식은 결코 일반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이 위원장은 지난 5월 YTN에 대한 과징금 취소 소송(방통위 패소) 판결문에선 2인 체제가 적법하다고 언급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은 물론 방통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이 2인 체제 합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지난 5월 EBS 사장 선임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서울행정법원 행정2부), 지난해 12월 MBC의 '윤석열 검증 인용' 보도 행정처분 취소 판결(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지난해 10월 MBC 과징금 처분 취소 판결(서울행정법원 행정7부) 등을 비롯해 방통위원장 탄핵 재판에서 4인의 헌법재판관까지 "2인 체제의 절차적 부당성과 위법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선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면, 섣불리 말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진의를 확인하는 것은 공직자의 기본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허위 정보'를 보도하는 주체를 두고 "흉기"라고 주장했는데, 본인 스스로 '흉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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