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태원 참사 3주기, 첫 참사 현장을 찾은 외국인 유족들... "가늠할 수 없는 슬픔"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찾아 현장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자식 잃은 슬픔은 이날 이태원역의 공용어였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나흘 앞둔 25일,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이 처음으로 참사 현장을 찾았다. 곁엔 같은 보라색 조끼를 입은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이 함께 했다.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해밀톤 골목은, 유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슬픔을 토해내는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위로와 슬픔, 울음바다 된 이태원 해밀톤 호텔 골목의 외국인 유족들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을 찾은 희생자 유가족과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서로를 위로하며 고통과 슬픔을 나눴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을 찾은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사고 현장을 살펴본 뒤 유가족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을 찾은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사고 현장을 살펴본 뒤 유가족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과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이날 참사 현장을 방문한 외국인 희생자 유족은 40여 명이다. 이란, 러시아, 미국, 호주, 중국, 일본, 프랑스,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12개국에서 온 이들은 한국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방한해 전날(24일)부터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현장인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방문하는 것으로 방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유족들이 한국을 방문한 것도, 참사 현장을 찾은 것도 처음이다.
오후 1시 8분. 40여 명의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유족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도착했다. 한국인 유족과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유족임을 드러내는 보라색 조끼를 맞춰입은 채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국인 유족들이 곧바로 다가가 외국인 유족들을 맞이했다. 현장은 금새 눈물바다가 됐다. 유족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울음을 토해냈다. 인종, 나이, 출신국을 불문하고 유족들은 연신 휴지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한 참석자는 보라색 손수건을 꺼내 히잡 쓴 또 다른 외국인 유족의 눈물을 직접 닦아주었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숨결이 흩어진 해밀톤 골목에 닿자, 외국인 유족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이들은 좁은 골목을 차례로 오르고 헌화하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어떤 이는 미소짓는 딸의 영정사진 액자를 품에 안고 골목을 한바퀴 돌았고, 어떤 이는 추모 공간 한 구석에 멈춰서서 벽에 머리를 박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주황색 해밀톤 호텔 벽을 직접 쓸면서 희생자에 말을 건네는 유족도 있었다. 흰 국화를 든 유족들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일부 유족이 걷기 힘들어 넘어지려 하자 또 다른 유족이 이를 부축하기도 했다.
오열하며 참사 현장을 한바퀴 돌아본 유족은 이내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서로를 끌어 안으며 슬픔을 위로했다. 몇몇 유족은 골목 한켠에 조성된 추모 공간에 포스트잇 메세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설명 불가한 슬픔, 책임자 합당한 처벌 원해"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찾아 현장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찾아 현장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러시아에서 온 라이나씨(고 크리스티나 가드너씨 여동생)는 참사 현장을 둘러보는 내내 언니의 사진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언니의 작은 영혼의 조각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며 "한국에 있어 2년이나 보지 못하는 언니를 만나려고 약속을 잡는 사이에 언니가 희생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책임자들의 처벌을 원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희생자 그레이스 라쉐드(Grace Rached)씨의 어머니 조안 라쉐드(Joan Rached)씨 역시 한국을 찾은 이유를 "정의를 위해서(for justice)"라고 설명했다. 호주에서 온 그는 참사 후 한국을 세 차례 방문했고, 지난 2주기 시민추모대회 때도 직접 연단에 나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조안씨는 참사 현장을 둘러본 심경을 "슬프다(It's sad)"고 전하며 "안전 책임을 무시한 이들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원한다"고 밝혔다. 함께 온 남편 라쉐드 라쉐드(Rached Rached)씨 역시 "너무 힘들다(It's so hard)"며 "자식 잃은 심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며 울먹였다.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은 직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3주기 4대 종교 기도회'에도 함께했다. 기도회 현장 맨 앞자리에 자리한 유족들은 동시통역되는 기도 내용을 들으면서도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모두들 "진상을 규명하라!"라 쓰인 피켓을 손에 들고, 서로의 손을 꼭 붙든 채였다.
이 자리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운영위원장 유형우씨(고 유연주 양 아버지)는 "3년이 흘렀지만 아직 진실은 다 밝혀지지 못하고, 책임져야 할 이들이 아직도 뉘우치지 못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추모의 자리는 단지 눈물로 그리움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변화하도록 생명과 안전이 가장 우선되는 세상이 되도록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불교·기독교·천주교·불교의 추모 기도가 차례로 끝난 뒤, 외국인 유족들을 포함한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용산 대통령실을 거쳐 서울광장까지 행진한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 멈춰선 이들은 정부를 향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홍두표씨(고 홍의성 군 아버지)는 "진상조사가 시작된지 4개월이 됐지만 아직도 미비하다"며 "정부에 간곡히 말씀드린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달라. 책임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서울광장까지 행진한 유족들은 이어 오후 6시 34분, 같은 곳에서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도 참석한다. 시민추모대회 시작 시각인 오후 6시 34분은 참사 당일 최초 112 신고가 접수된 시각이다. 이날 추모대회에서는 각종 추모공연이 이어진 뒤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도 직접 추모 메시지를 낭독할 예정이다. 또한 이들은 오는 30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유가족 간담회, 특별조사위원회 방문, 합동 기자회견, 3주기 당일 정부 공식 추모식 등 일정을 이어간다.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찾아 현장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희생자 유가족과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찾아 현장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찾아 현장을 살펴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불교 스님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합장을 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4대 종교 추모기도회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4대 종교 추모기도회에서 원불교 교무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4대 종교 추모기도회에서 기독교 목사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4대 종교 추모기도회에서 천주교 신부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4대 종교 추모기도회를 마친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유성호
▲ 10.29 이태원참사 3주기를 앞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 앞에서 열린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4대 종교 추모기도회를 마친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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