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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캄보디아로 간 청년의 죽음과 디지털 노예제의 그늘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 교수

mindlenews01@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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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근원은 구조적 불평등과 절망

단순한 단속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어

캄보디아 당국이 온라인사기 범죄를 단속해 3개월간 3400명 이상 체포했다고 16일 밝혔다. 캄보디아 현지 매체 크메르타임스에 따르면 캄보디아 온라인사기 대응 위원회(CCOS)는 지난 7월 2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합동 단속을 벌여 20개국 출신 3455명을 체포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사진은 캄보디아 온라인사기 대응 위원회의 온라인사기 조직 단속 모습. 2025.10.16 [크메르타임스 캡처] 연합뉴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 청년이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된 사건은 한국 사회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국제적 인신매매와 청년착취의 구조 속에서 벌어진 비극이기 때문이다. 경찰청과 외교부가 뒤늦게 합동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수많은 피해자들이 동남아 각지의 ‘디지털 감옥’에서 강제노동과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범죄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등지에는 지난 5년간 중국, 대만, 한국 등에서 흘러들어온 보이스피싱 자금과 조직이 얽히며, 사실상 ‘사이버 식민지’와 같은 범죄 경제권이 형성됐다. 지역 정부의 부패, 불안정한 정세,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악화된 청년실업이 이 범죄 생태계를 키웠다.

중국에서는 이미 이 문제를 다룬 영화 '孤注一掷'이 2023년에 개봉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영화제목인 孤注一掷은 노름꾼이 마지막 남은 밑천을 베팅하는 일종의 All-In의 의미다. 즉, ‘한탕’을 노린 청년들이 해외에서 어떻게 사기조직의 노예로 전락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고발이었다.

내가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중국 운남성은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과 접경하고 있는 바, 초국경 범죄 예방경고문이 거리 곳곳에 붙어 있다. “낯선 해외 채용광고를 믿지 말라” “고수익 해외 아르바이트 제의는 함정이다”와 같은 경고 메시지가 매주 갱신된다. 국경 인근의 접경지대에서는 실제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로 청년들이 유인되어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문제의 근원은 단순히 ‘범죄조직의 탐욕’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과 절망에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험한 세계로 빠져드는 동안, 국가들은 청년안전보다 자국 이미지 관리에 더 몰두해왔다. 한국 역시 ‘국제범죄’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외주화해버린 채, 국내의 청년 불안정노동과 절망의 문제를 외면해온 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해결책은 단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첫째, 한·중·아세안 간의 실질적 공조 체계가 필요하다. 형식적인 사법협력 MOU가 아니라, 실시간 정보공유와 피해자 보호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노동 이주와 온라인 채용시장에 대한 감시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노동 착취’를 규제할 국제기구 차원의 논의가 절실하다.

셋째, 국가 내부의 청년 절망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합법적 일자리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한,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해외에서 빌어진 일’이 아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한국인을 착취하고 한국인을 속이는 구조 자체가, 국경을 넘은 범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준다. 국가는 범죄자만이 아니라, 그 범죄를 낳는 절망의 구조를 함께 소탕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비극에 대한 진정한 애도이자, 또 다른 희생을 막는 최소한의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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