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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9일 일요일

남북해외 통일운동 거목들 만나다


<친절한 통일씨> 6.15민족공동위 공동위원장회의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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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9  16: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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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20일 중국 선양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6.15북측위원회 김완수 위원장,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6.15해외측위원회 손형근 부위원장(위원장 대행).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지난 19~20 중국 선양(심양)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북해외 위원장회의’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정부는 남측 대표단의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수리하지 않았지만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등 대표단은 회의 참가를 강행했다. 
선양 6.15민족공동위 공동위원장회 결과, 올해 6.15민족공동행사는 개성에서, 8.15민족공동행사는 서울에서 각각 개최하기로 하는 등 활발한 민간교류 추진을 결의한 공동보도문이 발표됐다.
이번 회의에는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6.15북측위원회 김완수 위원장, 6.15해외측위원회 손형근 부위원장(위원장 대행)이 참석했다.
이창복 의장은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거쳐 16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완수 위원장은 조국전선 의장 겸 서기국장으로 12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를 지낸 비중있는 인물이다. 손형근 위원장 대행은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의장으로서 6.15일본지역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6.15민족공동위원회의 주요 회의체인 공동위원장회의와 남, 북, 해외 공동위원장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6.15민족공동위 발족과 공동위원장회의 설치
  
▲ 2005년 3월 4일 금강산에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문동환 공동위원장이 불참한 가운데 4명의 공동위원장이 선출됐다. 왼쪽부터 6.15남측위 백낙청 상임대표, 6.15북측위 안경호 위원장, 6.15해외측위 곽동위 공동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2005년 3월 4일 금강산에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 명칭으로 발족했다.
발족 과정에서 해외측 공동위원장 문제로 논란을 빚었지만, 결국 6.15남측위원회 백낙청 상임대표와 6.15북측위원회 안경호 위원장, 6.15해외측위원회 곽동의.문동환 공동위원장 4명이 공동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같은 해 12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2차 회의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로 개칭하고(약칭 6.15민족공위원회), 6.15민족공동위원회 운영규약을 제정했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이 규약에서 “6.15공동선언을 실천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이룩하려는 남, 북, 해외의 각 정당, 단체, 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하기 위한 상설적인 통일운동연대조직”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또한 규약 제3조에 6.15민족공동위원회는 ‘회의’와 ‘공동위원장회의’, ‘실무회의’를 통해 운영하고, 공동위원장회의는 “남측위원회, 북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이 협의하여 소집하며,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의 사업 및 운영과 관련된 주요 문제들을 조정하고 합의한다”고 명시했다.
곡절 겪은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
  
▲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는 민족공동행사 계기에 주로 열렸다. 남북 당국 대표단까지 함께 자리한 2005년 서울 8.15민족대회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 6.15민종공동위원회는 '회의'와 '공동위원장회의', '실무회의' 체계로 운영된다. 2007년 중국 선양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회의'에 나란히 참석한 공동위원장들. 왼쪽부터 곽동의 해외측위 공동위원장, 안경호 북측위 위원장, 백낙청 남측위 상임대표, 문동환 해외측위 공동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민족공동행사 공동위원장회의는 주로 민족공동행사 계기에 열렸고, 2006년 6.15민족통일대축전 기간 광주 무등파크호텔에서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와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곽동의.문동환 6.15해외측위 위원장이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의 영문명칭을 ‘All Korean Committee for June 15 Joint Declaration’으로, 약칭은 ‘June 15 All Korean Committee’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같은 해 4월 27일 개성에서 6.15공동행사를 논의하기 위해 백낙청 상임대표와 안경호 위원장이 ‘남북 위원장단 회의’를 갖는 등 중요 결정은 남북 위원장단 회의에서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남측 보수정권 집권 이후 2008년 금강산 6.15공동행사를 마지막으로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하는 민족공동행사가 더 이상 열리지 못 했고, 2009년 3월 평양에서 공동위원장회의만 한 차례 열렸다.
평양 공동위원장회의에서는 6.15남측위 김상근 상임대표와 6.15북측위 안경호 위원장, 6.15해외측위 곽동의 공동위원장이 6.15기념행사를 논의했지만 합의문을 내지 못했고, 이때부터 사의를 표명한 6.15해외측위 문동환 공동위원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6.15해외측위 공동위원장 한 자리가 공석으로 남겨져 있다.
이후 남측 정부의 불허로 직접 대면하는 공동위원장회의는 열리지 못했고, 2013년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6.15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곽동의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과 공동위원장회의를 개최했다.
귀국한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등 남측 대표단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과태료 100만원씩이 부과됐다.
이어 지난 19~20일 중국 선양에서 공동위원장회의가 다시 열렸고, 역시 남측 정부는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등 남측 대표단의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수리하지 않았다.
중량감 있는 이창복, 김완수, 곽동의 공동위원장
  
▲ 마지막 공동행사가 된 2008년 금강산 6.15민족통일대회에 나란히 자리한 6.1민족공동위 공동위원장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2008년 6.15민족통일대회에서 둘러앉은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들. 왼쪽부터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 문동환 6.15해외측위 공동위원장,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곽동의 6.15해외측위 공동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6.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된 2005년 이후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는 백낙청, 김상근 상임대표를 거쳐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6.15북측위원회 위원장은 안경호, 김령성을 거쳐 김완수 위원장이, 6.15해외측위원회는 곽동의.문동환 공동위원장에서 곽동의 위원장 단일체제로 운용돼 왔다.
이번 선양 공동위원장회의에는 6.15해외측위 곽동의(86) 위원장이 고령으로 병환 중이라 손형근(65) 부위원장이 위원장 대행자격으로 참석했다. 심양 공동위원장회의에서는 6.15해외측 위원장 문제는 6.15해외측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했다.
6.15남측위 1,2대(2005.3~2009.2) 상임대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창작과 비평>을 이끌어 오면서 ‘분단체제론’을 설파한 대표적 지식인이고, 김상근 3,4대(2009.3~2013.2) 상임대표는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기독교 목사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이창복 5,6대(2013.3~현재) 상임대표의장은 대표적인 재야단체인 민통련 사무국장과 전민련 상임의장,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거쳐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6.15북측위 발족 당시부터 2012년 1월까지 위원장을 도맡아 온 안경호(87) 위원장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 출신으로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 등 남북회담 북측 대표로 활약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지낸 베테랑이다.
두 번째 6.15북측위 위원장은 남북장관급회담 단장을 맡았던 김령성(2012.1~2013.6)이 고령의 안경호에 이어 위원장이 됐다. 조평통 서기국 제1부국장,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부회장 등 대남사업을 담당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준비접촉 북측 단장으로 활약했다.
  
▲ 2013년 7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 공동위원장회의 모습. 왼쪽부터 6.15북측위 김완수 위원장, 6.15남측위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6.15해외측위 곽동의 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난 19~20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6.15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 왼쪽부터 6.15북측위 김완수 위원장, 6.15남측위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6.15해외측위 손형근 부위원장(위원장 대행). [자료사진 - 통일뉴스]
세 번째 6.15북측위 위원장을 맡은 김완수(2013.6~현재) 위원장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표를 거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의장 겸 서기국장을 맡았고, 12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현 13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과 조국전선 서기국장을 맡고 있는 비중있는 인사다.
6.15해외측 위원회 공동위원장 중 지금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동의(2005.3~현재)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최고고문은 고령(86)으로 1년전 병원에 입원했다. 곽 위원장은 일본에서 ‘김대중 구출 투쟁’ 등을 전개, 해외 반독재투쟁의 대명사가 됐고, 한통련은 지금도 반국가단체의 굴레를 벗지 못한 상황이다.
6.15해외측 초대 공동위원장을 지낸 늦봄 문익환 목사의 동생 문동환(95) 목사는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민당 부총재를 역임했고, 미주지역을 대표해 활동했지만 6.15해외측위의 내부 갈등과 고령으로 2009년 3월 평양 공동위원장회의 때부터 공식 석상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선양 공동위원장회의에 곽동의 위원장을 대행해 참석한 손형근 6.15해외측위 부위원장은 곽동의 위원장에 이어 한통련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4년 3월 6.15일본지역위원회 제6차 총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손형근 부위원장은 한국 여권이 취소돼 법정소송을 진행했지만 현재 입국 금지 상태에 있다.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클린턴의 이란식 대북압박책은 전쟁불사정책, 트럼프는 어떨지...

클린턴의 이란식 대북압박책은 전쟁불사정책, 트럼프는 어떨지...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5/29 [08:3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의 방사포 사격, 북은 미국과 판가리 대결전의 시각이 분분초초 다가오고 있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주시보, 민족통신 페이스북

  
29일 스푸트닉은 미국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시) 차기 행정부의 북핵 문제 해결 전략을 제시했는데 바로 이란식 시나리오라며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란식 북핵 해결방식을 제안했다. 클린턴 후보의 최측근인 제이크 설리번은 정책 연설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와 협상에 다시 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재를 최대한 강화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며 그는 클린턴 후보의 외교 정책 총괄자다고 스푸트닉은 말했다.

그러면서 스푸트닉은 대이란 제재는 3가지 주요 패키지로 구성됐었다며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이란 제외,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 유조선 보험 가입 제재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결과 사업가들과 투자자들은 이란을 떠났다. 국가 통화 가치가 무너졌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경제가 침체됐기 때문에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스푸트닉은 북은 이란과 다르다며 이런 제재가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제이크 설리번의 말대로 이란식 핵문제 해결 방식이 북한에도 적용될까? 의심스럽다. 이란과 북한은 완전히 다른 국가다. 정치, 국가 이념,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가 그렇다. 이란은 다양한 제재(대부분 미국에 의한) 하에 처해 있었지만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었다.
이란 경제는 국제경제시스템 내부에 깊숙이 자리잡은 채 발전해왔다. 석유 생산량과 수출량을 증량해왔고 국민 소득도 증가했다. 이란의 통치이념은 루홀라 호메이니(1900년 9월 22~ 1989년 6월 3일)의 네오 시아파다. 개인의 부와 인민에 대한 정부의 배려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북한의 지도 이념인 주체 사상은 실질적으로 세계로부터의 완전한 분리에서 출발한다. 주체 사상은 병영식의 집산주의에서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자기 절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제재로 강력히 압박하는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이란의 핵협상 타결'과 같은 결과는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스푸트닉의 고립이란 말은 번역을 잘못해서 나온 것으로 보이고 실질적으로는 자립이라고 해석해야 문맥에 맞다고 본다. 기본적인 경제체계가 외부와 교류가 끊겨도 유지될 수 있도록 자립경제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실 수십년간 진행된 북에 대한 제재가 심각한 타격까지 주지 못했다고 북은 주장하고 있으며 최근엔 주체철, 주체비료, 주체화학공업 강화 등으로 더욱 더 경제자립력과 자강력이 더 커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스푸트닉은  북의 대외 무역의 70%를 차지하는 중국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다며, 제이크 설리번의 지적처럼 힐러리 클린턴이 차후 미 대선에서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북에 대한 압박을 중국에 요청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물론 최근 북한 핵실험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렇지만 북한 경제를 산산조각 낼 정도의 강도 높은 제재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중국의 대북압박 참여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했다.


특히 북은 이란과 달리 북은 90년대 초부터 핵무기 개발을 예고했고 2003년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면 몇번의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어떠한 법률에도 얽매여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즉, 북은 이란과 달리 내놓고 핵개발을 해오고 있으며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해버렸기 때문에 국제법에 저촉될 여지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푸트닉은 북 스스로 이란과는 다르다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이란식 해법은 북에 통하지 않는다는 스푸트닉의 보도     ©자주시보

[7월 14일 타결된 (이란)핵협상 이후 이란이 선택한 비핵화가 북에도 적용되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한국은 북에 이란처럼 핵을 포기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슬픈 일이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채택된 후 일주일이 지나 북한은 제재 철회같은 떡고물과 핵프로그램 포기를 맞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란핵협상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며 이렇게 답했다. "이란핵합의는 자주적인 핵활동권리를 인정받고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장기간의 노력으로 이란이 이룩한 성과지만 우리는 실정이 완전히 다르다. 이란핵합의를 끊임없는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비롯한 미국의 도발적인 군사적 적대행위, 최대의 핵위협이 항시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비교하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먼저 핵을 동결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논하는 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의 핵 억제력은 반세기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핵위협과 적대시정책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서 협상탁 위에 올려놓을 흥정물이 아니다"]

사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휴전상태도 아니고 언제든 핵미사일을 쏴댈 수 있는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을 이끌고 이란 주변 해상에서 연례적인 공격훈련도 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북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이란과 다를 수밖에 없다.

스푸트닉은 마지막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 6개국(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북한)이 모두 참가한 북핵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부 차관의 말을 전하면서 협상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이란보다 1000배 이상의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고 이란식 방정식을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P5+1(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와 이란의 핵협상 타결 경험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진단해다.

▲ 북핵해법은 이란을 참고해야 한다는 2015년 스푸트닉 보도     ©자주시보

한편 스푸트닉은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문제연구소 한국연구센터장의 주장인 '북한핵문제를 이란이 아닌, 인도의 경험을 적용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실현가능성이 있는 해법'이란 보도를 종종 내놓았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같이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느 나라도 그들의 핵을 와해시키자고 하지 않는다며 북도 누가 인정하건 말건 핵보유국이라고 표방하며 핵무기전파금지 등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을 뜻을 밝히고 있기에 인도 등의 나라들처럼 이를 인정해주어야지 무조건 와해시키려고만 하면 북의 반발만 초래하게 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클린턴 후보는 이런 입장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어떻게든지 미국과 그 추종국 특히 중국 등 주변국들을 최대한 동원한 제재와 압박을 통해 이란처럼 북의 핵무기를 포기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정책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을 압박하는 정책으로 강력한 북의 반발을 살 것이 자명하고 심각한 전쟁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북은 최근에도 미국과의 총결산 대결전이 분분초초 도래하고 있다며 계속 북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적대시정책으로 나온다면 임의의 순간 불의의 타격으로 미국을 없애버리겠다는 무서운 경고를 자주 내놓고 있다.
클린턴은 북과 그런 전쟁마저 불사하겠다는 의지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차라리 트럼프 후보가 지금까지는 '미국이 굳이 북과의 전쟁에 휘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이 간다.
아직 그도 정확한 대북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북과 북미정상회담까지 언급했다가 북에는 죽어도 가지 않는다고 말을 틀기도 하고 한국, 일본의 핵무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말까지도 서슴없이 내지르기도 했다가 다시 주워담기도 하는 등 아직은 왔다갔다 하고는 있지만 더는 미국이 북핵문제로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말은 미국에 이익이 되면 북핵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차라리 트럼프 진영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대북 해법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든다.

스푸트닉 보도가 사실이라면 클린턴 후보의 대북정책은 매우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5월 27일 금요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예수가 말하지 않았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예수가 말하지 않았다

박기호 신부 2016.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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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단 타종교인, 무종교인까지도 구원의 길에서 만난다

03508122_P_0.jpg» 기독교의 일방적인 전도는 가끔씩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3일 오후 서울 명동 입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문구를 한글뿐만이 아닌 중궁어, 일본어, 영어까지 동원해서 적은 피켓을 지고 이곳을 누비는 교인. 윤운식 기자

전철이나 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간판을 목에 걸고 전투적으로 선교하는 이들을 볼 때면 조금 안쓰러운 느낌이 있어요.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존중하지 않고 막무가내식입니다. 옛날 서교동 본당에 있을 때인데 누군가 밤중에 성모상에 빨간 페인트를 칠해 놓았습니다. 또 미사 중인데 뒷담에서 스테인드글라스에 돌을 던져서 깨트렸습니다. 불상에 불을 지르고 초등학교의 국조 단군상 목을 자르기도 하고요. 암튼 자신들의 신앙만이 절대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라서 참 답답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가르쳤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그런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랬다면 그리스도교 발생 이전 선대의 사람들은 다 지옥으로 갔다는 걸까요?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대륙의 사람들은, 또 세계 인류 3분의 1을 차지하는 무슬림들, 힌두교, 불교도들 모두 지옥행인가요?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가르치실 분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이란 요한복음(14,6)에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거두절미한 이해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의 어두(語頭)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의 예수님을 넘어 진리와 생명의 화신이십니다. 생명과 진리의 길을 사는 자 누구나 예수님을 통하는 것입니다. 여객선이나 돛단배나 배를 타고 가는 이는 모두 바다를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생명과 진리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구하면 훨씬 쉬워집니다.
 생명은 창조주 하느님만의 전유물이요 권리입니다. 최신 인공지능이나 위성기술로도 민들레 한 송이의 생명을 만들어낼 순 없습니다.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신성으로부터 온 존재이며 존엄하고 고귀합니다.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가 먹이사슬을 넘어 공존하고 서로 생명의 평화를 원하십니다. 진리는 동서고금의 시공에 의해서도 변할 수 없는 상식이며 절대선이며 가치를 말합니다. 신앙이란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절대 옳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리는 신에게만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힌두교도들은 신을 ‘진리’와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격언도 있고 눈 귀 입을 각각 가리고 있는 세 마리 원숭이 인형도 볼 수 있지요.
 길은 신이 만드신 질서의 법칙이고 이법입니다. 질서의 으뜸은 ‘자연’이지요. 세상의 모든 법칙과 질서와 이치가 있겠지만 최고의 절대 질서는 자연법칙으로 창조된 이래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습니다. 기적의 현상까지도 인간의 눈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속할 뿐 자연법칙 안에 있습니다. 창조질서를 따르는 것이 생명 평화이며 진리를 따르는 것이 바른 걸음이라 마침내 하느님께 귀의하게 인도합니다.
 신의 이름은 생명이요 진리요 자연입니다. 모든 인류가 생명 평화, 진리만을 삶의 절대가치로 추구하고 산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합니다. 타종단 타종교인, 무종교인까지도 관계없이 구원의 길에서 만나게 됩니다. 다툼도 분쟁도 없는 평화의 길이며 모두가 형제가 됩니다.
 
 종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기운이 있다. 
 첫째는 화기(和氣)이니, 항상 훈훈하고 화기로운 기운이 넘쳐흘러야 할 것이요. 둘째는 슬기이니, 항상 높고 넓고 깊고 슬기로운 기운이 밝게 비쳐야 할 것이요. 셋째는 정기(正氣)이니 항상 바르고 침착하고 정의로운 기운이 바탕해야 하느니라.
 -원불교 대산 종사
 
 ※<산위의마을입니다>에 실린 박기호 신부님의 글입니다.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野‧시민단체 “한일 ‘위안부’ 굴욕 합의 무효화, 20대 국회가 나서라”


김복동 할머니 “아베 사과‧명예회복 원해”.. 우상호 “20대 국회서 논의하겠다”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를 위한 20대 국회의 역할 촉구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야당 의원들과 시민단체가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 및 재협상을 위한 20대 국회의 역할을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남윤인순, 도종환, 서영교, 이학영, 진선미, 홍익표 의원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은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선언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데 20대 국회가 나서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공개 증언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책임인정, 진상규명,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책임자 처벌을 일관되게 요구해왔다”며 “그러나 한일 정부의 12.28합의는 피해당사자들의 요구사항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당사자들을 배제한 굴욕적 합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단 설립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시민의 힘으로 <일본군 ‘위안부’ 정의와 기억재단>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뜻을 담아 한일 정부가 회피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 진실규명과 정의실현을 시민의 힘으로 정의롭게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감시하고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며 20대 국회에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 자리로 안내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국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도 동행했다. 김 할머니는 오전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정부를 믿었던 게 탈”이라며 “아베가 사죄하면 (할머니들도) 말 들을지 모르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들(정부)끼리 속닥속닥해서 타결됐다고 한다. 뭐가 타결 됐나”고 질타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가 일본하고 싸우고 있는 것은 돈이 욕심나서가 절대 아니다”면서 “아베의 사과와 자신들이 끌고 갔다는 것을 밝히고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더 큰 국론 분열만 야기 시켰다”며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 문제에 대해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는 “25년 동안 정부는 뒷짐지고 있었다”며 “아시아국제사회가 공조해서 (성과를)이뤘는데 한국 정부가 (지난 연말 합의로) 장벽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윤 대표는 그러면서 “국제사회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상황이다. 긴박한 상황이라 생각해 거듭 부탁드린다”며 문제 해결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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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당,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추하라


친노의 패거리 작태, 시정되었는가
김갑수 | 2016-05-27 09:18:0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 11월, ‘100년 정당’의 기치를 올리면서 출범한 열린우리당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불과 3년 만의 일이었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지지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착잡함을 안겨 주었다. 열린우리당은 이전의 정당에 비해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강을 내걸었다. 그리고 금권정치와 권위주의라는 구태를 청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현저히 당세가 위축되었으며 국민의 지지도 역시 전성기의 4분의 1 이하 수준으로 전락했다. 2006년 가을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규모로 탈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분주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했다. 정작 큰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위축된 이유는 무엇이며, 향후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를 냉철하게 판단해 보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첫째, 노무현과 친노의 근시안적 세계관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과 지역구도타파를 마치 ‘절대선’인 양 내세웠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정당개혁이나 지역구도타파는 모두 국내용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집권 정당의 목표로는 지나치게 협소하고 미시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치적 저의가 담겨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들은 정당 개혁과 지역구도타파에 집착한 나머지 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남북관계나 세계외교에 힘을 쏟지 않았다. 대북송금특검으로 남북관계는 퇴보하였고 세계외교는 오로지 대미외교로만 편중된 결과를 낳았다. 국보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의 실패, 이라크 파병, FTA 밀어 붙이기 등도 노무현과 친노의 근시안적 세계관과 인과적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구보수 영남 정당 한나라당만 엄청난 반사이익을 챙기게 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로는 핵심 구성원들의 배타성을 들 수 있다. 정치란 융화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소수자가 대중 역사에서 성공한 예는 없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기도 하다. 중국의 현대화를 1,000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고 평가 받는 송(宋)의 천재 정치인 왕안석의 변법도 결국 배타성으로 인해 휴지 조각으로 남고 말았다.
물론 정치에서 최소한의 명분은 지켜야 승리한다. 예컨대 당시 이인제 따위나 받아들이며 융화를 운운했던 ‘민주당 세력’의 경우 최소한의 명분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과 친노가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추미애 등을 포용하지 못하고 내친 것은 배타성이라고밖에 달리 평가할 말이 없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당시 열린우리당의 핵심 인사들은 툭하면 “나가라, 떠나라!”를 반복했다. 심지어 2006년 지방선거 투표일 며칠 전 날 당시 친노 김두관이 당의장 정동영에게 “당을 떠나라”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것은 그들의 배타성을 첨예하게 표출한 사례였다. 다른 친노 이병완은 당내 비노그룹에게 ‘살모사론’을 제기했고, 이기명은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지 마라는 식의 막장 표현을 구사하기도 했다.
한 술 더 떠 친노 유시민은, ‘비례대표 의원들을 편하게 해 드릴 테니 나가라’고 했다. 국민들은 복지부장관 유시민이 그렇게 큰 힘을 갖고 있는 건지 그저 의아스러울 따름이었다. 당에 남고 안 남고는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누가 나가라고 먼저 말할 수는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들이 나가라고 윽박지른 대상 정동영·김근태가 친노 인사인 안희정·이광재보다 못한 게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당시 유시민은 ‘정동영 김근태에 관한 설문조사’라는 것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설문조사는 ‘왜 김근태, 정동영은 두 사람 합쳐 3%의 지지율로 불출마선언을 하지 않을까?’라고 질문해 놓고, 답변 문항 중의 하나로 ‘마지막 계급장을 떼기 싫어서’를 설정해 놓았다. 게다가 이광재는 정동영·김근태에게 난데없이 ‘불출마선언을 왜 안 하느냐?’고 내질렀다. 이런 식의 행태는 정동영·김근태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에게도 반감을 일으켰다.
열린우리당은 지역구도를 타파하기는커녕 새로운 지역감정을 파생, 분화시켰다. 열린우리당에서 힘을 쓴 사람들은 주로 영남권 인사거나 아니면 최소 비호남권 인사였다. 지역끼리 똘똘 뭉치는 행위나 특정지역만을 소외시키는 행위는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해 모두 지역 패거리 의식인 것이다.
2007년 4월 노무현 정부 집권기 마지막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 두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한 채 나머지 비호남 지역에서도 대패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이는 영남은 물론 호남과 다른 지역에서마저 모두 거부되었다.
이는 국민이 직접 열린우리당은 문을 닫아야 함을 알려 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국민은 열린우리당에게 ‘닫힌너희당’이라는 낙인을 무정히도 찍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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