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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이대로면, 우리도 미국식 의료 민영화로 간다

 

25.11.15 17:52최종 업데이트 25.11.15 17:52


보건복지위에 와 있는 원격의료 법제화... 서민 건강엔 관심 없는, 기업 돈벌이 위한 것에 가까워

김재헌(freemedical) 

    무상의료운동본부는 2010년, 삼성이 원격의료를 운운하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원격의료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대안이 아님을 주장하며 영리 기업들을 위한 원격의료 법제화 시도를 저지해 왔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권에서 원격의료 법제화가 급물살을 타며 다시 한 번 한국 사회가 미국식 의료 민영화로 흘러들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영리플랫폼이 주도하는 원격의료의 실체를 더 널리 알리고 문제점과 대안을 논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원격의료 법제화를 다루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많이 읽고, 주변에 권해주길 바란다.
     Stethoscope on a pastel blue background.
    Stethoscope on a pastel blue background. ⓒ etactics on Unsplash

    '어떻게 하면 환자들 주머니 털어 돈 벌 수 있을까'하는 궁리만 수십 년 해 온 기업들의 숙원 사업인 '원격의료 법제화'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원격의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고, 11월 중순에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이에 십수 년간 원격의료 법제화를 반대해 온 시민사회의 우려가 크다. 재벌들을 위한, 환자는 없고 돈벌이뿐인, 마침내 미국식 의료 영리화로 빠질 위험까지 있는 위험천만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원격의료가 처음 등장한 때로 돌아가 보자. 그것은 2010년 공개된, 이명박 정부가 발주하고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 보고서였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원격의료는 IT재벌을 비롯한 경제계가 주구장창 요구하는 숙원 사업이 되었다.

    정부와 경제계의 원격의료 추진론자들은 호시탐탐 원격의료 법제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최선을 다했다. 십수 년이 지나면서 IT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원격의료가 의료 영리화 세력의 이해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원격의료가 서민 건강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재벌들의 돈벌이를 위해 영리적인 의도로 주창되고 추진되어 왔기에, 지금까지 시민사회는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와 다르지 않음을 밝히며 법제화를 반대해 왔다.

    '재난자본주의', 원격의료
    그러다 최근 수년간 원격의료 법제화가 급물살을 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비상 상황을 이용해 한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원격의료를 실시한 것이 좋은 구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의 시범사업은 원격의료의 안전성, 유용성을 증명하지 못했고 여전히 완강한 반대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틈타 원격의료를 대거 실시할 명분이 생기자 전통적 의료 영리화 세력들은 물론 우후죽순 새로 등장한 스타트업 기업들과 여기에 투자한 투기 자본까지 나서서 법제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른바 '재난 자본주의'의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핵심 근거로 내세웠지만 정작 의료 이용의 형평성이나 안전성, 유용성 등 의료의 본령상 중요한 가치들은 생략했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시기 원격의료는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화상 면담이 아니라 진짜 의사와 진짜 병상이었다. 정작 충분한 공공 병원과 인력이 없었다. 원격의료로는 정말 치료해야 할 중환자들과 감염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 의료 확충보다는 원격의료를 택했다. 정작 정부가 즉각 취했어야 할 조치인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공공 의료 인프라 확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상 사태' 해결과는 거리가 먼 영리적 원격의료만 활개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정부가 공공 의료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면서 열어준 '시장'에 뛰어든 민간 영리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자라나고 성장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를 거의 규제하지 않았다. 실제로 코로나19 기간 동안 전면 확대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비급여 과잉 진료와 개인정보 보호 위반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비상 사태라는 구실이 영원할 순 없었다. 2023년 6월 1일 코로나19가 위기 대응 '심각' 단계에서 '경계'로 조정되면서, 원격의료가 불법이 될 위기에 처하자 영리 플랫폼들은 원격의료를 중단하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며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고, 원격의료를 추진해 오던 윤석열 정부도 이를 냉큼 받아들이며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이상한 시범사업을 재개했다.

    2022년 봄부터 시작된 전공의 파업에 의한 '의료 대란' 상황에서도 재난자본주의는 반복되었다. 전공의들의 부재와 원격의료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의사가 없는데 원격의료가 무슨 소용인가), 이들은 의료 대란조차 원격의료를 전면 실시하는 기회로 삼았다. 의료 대란 상황도 진정되자 원격의료 법제화 추진자들은 2020년 2월부터 2025년 2월까지 492만 명이 원격의료를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띄우며 시범사업을 연장하고 법제화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원격의료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환자가 아니다

    정부와 원격의료 산업계는 이제 원격의료가 국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수단이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2025년 8월 1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5년간의 원격의료 실시 통계를 보면 이것이 크게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체 외래 진료 대비 원격의료가 차지한 비중은 0.2~0.3%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원격의료를 경험해 본 국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마치 많은 국민들이 원격의료를 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원격의료가 법제화 전 단계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오직 영리 플랫폼들을 비롯한 산업계와 정부(윤석열에 이어 이재명 정부에서도)만 원격의료가 당장 법제화돼야 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지금 원격의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영리 플랫폼들이다. 이들의 목적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법제화 전이라 수익 추구를 뒷전으로 미뤄 놓았지만 법제화된다면 본격적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 수익을 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배민 등의 플랫폼들이 했던 수법을 생각해 보면 된다. 영리 플랫폼들이 수익을 극대화할수록 누군가는 이들의 수익을 위해 희생돼야 한다.

    원격의료가 본질상 기술 혁신을 이뤄 추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므로 - 그저 기존 기술을 이용해 환자와 의료 기관 중간에서 중개를 빌미로 중개료를 받는 것이다 - 이들의 수익은 누군가에게 빼앗아 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은 먼저 원격의료를 이용하는 환자들과 건강보험 재정이다.

    친기업 성향이었던 윤석열 정부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수가를 30% 가산해 줬고 이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약 2500억이 낭비됐다. 이 돈이면 좋은 공공병원을 하나 세울 수 있다. 원격의료가 법제화 되면, 30% 가산이 없다고 해도 영리 플랫폼들에 흘러가는 건강보험 재정은 훨씬 더 늘어나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할 것이다.

    미국식 의료 민영화 막기 위해 필요한 공공 플랫폼

    가장 우려되는 점은 거대 민간보험사들이 원격의료 체계를 장악하는 것이다. 지금은 플랫폼들이 난립해 있지만 결국 한두 곳이 독과점하게 될 것이고 그 주체는 거대 민간 보험사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거대 민간 보험사들이 의료 기관과 환자들 사이에서 이 둘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미국식 의료 체계로 가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이미 거대 보험사들은 플랫폼을 인수하거나(KB손해보험 자회사 KB헬스케어가 '올라케어' 인수) 공동 사업을 한 바 있다('굿닥'에서 진료를 받으면 삼성생명 특정 보험상품 무료 가입 가능). 최근 원격의료 법제화를 걱정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의원도 이 점을 걱정했다.

    해외엔 영리 플랫폼이 아니라 정부에서 책임지고 운영, 관리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원격의료를 실시하는 곳도 있다. 이 나라들은 미국이나 잉글랜드처럼 영리 플랫폼들의 수익 추구로 인해 의료 체계가 왜곡되지 않고,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공공 플랫폼이 양질의 공공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가 그렇다.

    또한 영리 플랫폼들은 의료 취약지나 의료 취약 계층은 신경쓰지 않는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대도시의 상대적으로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게 된다. 5년간의 시범사업 동안 이 점이 드러났다. 읍면 지역 거주자 중 약 5%, 60대 이상의 2.5%만 원격의료를 이용했다. 이들 의료 취약층을 위해서도 수익만 추구하는 영리 플랫폼이 아니라 공공 플랫폼이 필요하다.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없이 대다수 국민들 모르게 지금의 원격의료를 법제화해서는 안 된다. 민간 의료 기관이 9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리 플랫폼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것은 의료를 더욱 영리화·민영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격의료 법제화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입니다.


    #원격의료#비대면진료#의료민영화#윤석열의료#이재명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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