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자신이 챙긴 ‘돈’에 대하여 고마워 할까?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과 한미연합훈련 문제
핵농축과 재처리 문제는 다른 양보의 대가가 될 수 없다
상업적 합리성뿐 아니라 ‘안보적 합리성’ 추구해야

대의제 민주주의란 참 묘한 것이다. 인구가 많아지면 대의제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진정 민의를 대표하는지는 항상 논란거리다. 국민은 일단 대표를 뽑고 나면 국가정책의 결정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국민’이란 추상적 개념이기에 ‘민의’라는 것도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정책은 돈이고 피와 땀과 눈물로 연결되는 실체다. 지난 10월29일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로 11월14일에 나온 (공동)팩트시트와 이어 발표된 제57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을 보고 든 생각 한 조각이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정책은 한국에서 꽃을 피울 모양이다. 한국은 미국을 ‘항상’ 위대한 나라로 보기 때문에 그 구호는 “미국을 ‘지금보다 더’ 위대하게”로 들리는 것 같다. 이번 회담들에서 미국은 ‘말’을 주고 ‘돈’을 챙겼기에 그것은 한국보다는 미국을 더 위대하게 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관세와 투자 관련 협상은 그쪽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어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안보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미국은 자신이 챙긴 ‘돈’에 대하여 고마워 할까?

미국의 ‘말’은 일관성이 있다.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방위공약을 확인 또 재확인 해준다. 지속적인 핵우산 제공도 잊지 않고 주한미군 감축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 정도만 해도 한국은 안도감과 사의를 표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미국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국은 국방비를 GDP 대비 3.5%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한다. 지금 2.4% 수준이니 거의 50% 인상하는 셈이다. 금액으로는 30조원 정도다. 그걸 5년에 걸쳐 한다면 매년 6조원 이상씩 (전년 대비 8~9%) 인상해야 한다.

국방비 증액의 대부분은 미국산 무기 구매에 할당될 것임은 모두가 짐작하는 바다. 아니나 다를까. 구체적 숫자가 나온다. 한국은 미국 무기를 250억불(37조원) 어치 구매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으로도 국방비 증액분을 대략 커버할 듯한데 하나의 숫자가 더 나온다.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불 상당의 포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5년에 걸쳐 한다면 매년 66억불(약 10조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수치다. 트럼프가 1기 재임시부터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주한미군 주둔비를 (당시) 1조원에서 10배 인상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 돈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제공하는 직접 및 간접 비용을 모두 합산한 것이고 그렇게 보면 현재도 이미 3조원이 넘는다. 그렇다 해도 추가로 7조원 가량 더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 참 (미국에게) 고마운 나라다. 사실 미국의 ‘언약’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한국의 ‘화력(firepower)’은 세계 5위,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충분성’ 이상을 이미 확보했다. 하여 미국의 방위공약은 립서비스 이상의 의미가 없다. 주한미군 감축은 의회에서 제정한 소위 ‘국방수권법(NDAA)’의 금지조항 상 어차피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미국의 인태전략을 위해 나가라 해도 나갈 수 없을 만큼 군사전략 상 필요한 전력이다. 이 즈음에서 반드시 제기되는 것이 북한핵 위협이다. 그러나 핵무기는 정치적 무기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핵억제’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효력 검증이 불가능한 전략이다. 군사적 해결 즉, 핵전쟁은 그냥 공멸이다. 그 해결 가능성을 1994년 제네바합의부터 6자회담에서의 2005년 9·19 공동성명, 남북정상회담들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에서 여러번 목격했다. 아, 인간이 기억력이 이다지 허약한 것이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과 한미연합훈련 문제

한국 정말 고마운 나라다.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대단해 보이는 무기를 갖겠다고 간청해 오니 미국은 짐짓 놀라는 척하면서 수많은 이익을 덤으로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몇 가지 조건을 걸고 ‘승인’해 준다. 농축도 80%이상의 핵연료는 한국도 인정하다시피 미국이 전적으로 제공한다. 손도 못 대고 볼 수도 없는 물건이다. 핵추진 엔진은 한국이 꽤 연구를 많이 했다 하니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터. 연료든 엔진이든 미국의 국내법과 한미원자력협정(일명 123협정), 특허와 비용 문제 등 수없이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미국은 여유있게 기다리며 천천히 진행하면 된다. 필요하면 ‘급행료’를 받거나 추가적인 요구플 한국에 제기하여 이권을 취할 수 있다. 만들었다고 하자. 그걸 어디에 쓰겠다는 것인가. 얕고 좁은 남한의 연해와 근해에서는 별 효용이 없다. 멀리 멀리 나가야 한다. 거기서 누구를 겨냥할 것인가? 핵무장을 하지 않은 핵잠수함(SSN)은 원해에서 핵무장잠수함(SSBN)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따라서 ‘대양해군’의 일원으로 미국 핵잠수함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 작전통제는 물론 미국이 할 것이다. 멋진 그림이지만 전략적으로 맞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핵추진 잠수함 말고도 해전의 게임체인저가 될 만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무인잠수정과 수중탐지체계를 유무인 수상함들과 AI로 연결하는 것이다. 한국은 부자이고 머니머신이라는데 돈 쓸 줄 좀 알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듯하다. 미국에게는 나쁘지 않다.

연합훈련 문제는 미국이 한국에게 고마워할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번 SCM에서 한미 양 국방장관은 핵억제를 위한 훈련, 재래식-핵통합(CNI:한국군 첨단 재래식 전력이 미국의 핵전력 지원) 훈련, 을지자유의방패(UFS), 한미일 연합훈련 등을 강화하거나 ‘실효성’을 높이기로 합의했다. 미군에게 가장 절실한 현실적 요구 중 하나가 훈련이다. 한국만큼 좋은 곳이 없는데 한국은 이를 대북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면서 고마워한다. 사실은 연합군사훈련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관계 복원을 결정적으로 저해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안보환경이 나빠지면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고 싶어도 환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모순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미국에게 이보다 고마울 수 있을까.

핵농축과 재처리 문제는 다른 양보의 대가가 될 수 없다

기술과 경제 분야이면서 안보적 성격을 가진 것이 농축 및 재처리 문제다. 얼핏 핵추진 잠수함과 연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별개 문제다. 1972년에 체결되어 최근 2015년에 개정된(2035년까지 유효) ‘123협정’은 한미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이다.. 협정 11조는 “20% 미만의 농축”을 “양자 간의 합의”에 의하여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른 말로 미국의 ‘승인’ 없이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국이 이를 개정하여 농축과 재처리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주권’ 측면에서 찬양할 만한 일이다. 물론 한국이 핵주기 주권을 확보하더라도 농축시설을 지을 부지 선정과 생산된 농축 우라늄의 경제성 문제는 극복할 과제다. 특히 재처리 시설은 환경과 안전, 경제성 검토가 한층 더 어려운 문제다. 요컨대 이 문제는 순수히 주권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누구도 비판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양보하거나 다른 양보들을 덮기 위해 성과로 포장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상업적 합리성뿐 아니라 ‘안보적 합리성’ 추구해야

한국은 미국한테 진짜 고마운 나라다. 이렇게 아낌없이 주고도 오히려 미국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부와 국회와 언론의 변함없는 미국 사랑은 눈물겹다. 여론조사를 해도 아름다운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 ‘정치하는 내가 어쩌란 말이냐’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써보자. 미국에게 돈을 ‘강탈’당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런 김에 국방비라도 화끈하게 늘려 안보라도 튼튼히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한미동맹 현대화가 활용되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미국을 버리고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미우나 고우나 현실적으로 협조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해야 그래도 국민 다수가 안보에 대하여 안심하고 주식시장도 커지고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정권도 유지되지 않을까.

돈 얘기를 많이 했으니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짚고 마치자. 국방비 증액은 핵추진 잠수함에 소용될 비용과 미국 무기 구매, 주한미군 지원비 등을 모두 포함할까. 국방비 증액은 대미 투자액과는 별도로 간주될 듯한데 이걸 연계하면 어떨까. 미국은 한국이 사용할 ‘꼼수’를 미리 계산하고 있지 않을까. 한국은 그런 창의적 꼼수라도 부릴 지혜와 용기가 있을까. 대미투자는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된다고 한다. 믿어보자. 그런데 안보에서의 합리성은 그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투자가 이윤을, 국방비 증액이 평화를 보장한다면 아까울 게 있을까. 반대로 국방비 증액, 군사력 증강, 동맹현대화와 주한미군 지원 확대, 훈련 강화 등이 오히려 평화를 해친다면? 응답하라, 책임있는 누군가여. 참으로 애써 봐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