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시작해 통일의 현장으로

6일 오전 7시 51분, 노수희 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이 급성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전날 비전향장기수 고 박순자 선생 빈소를 찾은 뒤 몸 상태가 나빠 숙소에서 휴식 중이었고, 다음 날 아침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1944년 전북 군산 출생인 고인은 1980년대 초 서울 세운상가 인근에서 노점을 하며 생계를 잇다가 도시빈민 현실과 맞닥뜨렸다. 거리에서 시작한 활동은 곧 조직적 운동으로 이어졌다. 1987년 도시노점상연합 부회장, 1988년 전국노점상연합 수석 부회장을 거쳐 1991년 전국노점상연합 의장을 맡아 생존권 투쟁의 전면에 섰다. 빈민 문제를 민중의 권리 문제로 확장해 온 그의 시선은 통일운동으로 접속했다.

1990년 범민련 결성 준비위원으로 합류한 뒤 서울연합 의장, 남측본부 부의장 등 요직을 맡았고, 2011년에는 남측본부 의장 직무대행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201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00일에 즈음해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고,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016년 7월 4일 만기 출소했다. 이후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2019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을 다시 맡았고, 최근까지 자주연합 명예회원으로 활동했다.

장례는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3층에 차려졌다. 조문은 11월 7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추도식은 11월 8일 토요일 오후 6시(잠정), 발인은 11월 9일 일요일 오전 5시(잠정)로 예정됐다. 화장은 서울시립승화원(벽제),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잠정)이다. 일정은 7일 오전, 장례위원회 논의 후 변경될 수 있다.

통일민주투사 노수희 선생 약력

1944년  전북 군산 출생
1963년  전북 이리 남성고등학교 졸업
1964년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입학
1968년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중퇴
1980년  세운상가 근처에서 노점상 시작
1987년  도시노점상연합 부회장 역임
1988년  전국노점상연합 수석 부회장 역임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 준비위원회 가입  
1991년  송파투쟁으로 구속
(~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서울연합 공동 의장
           전국빈민협의회 공동 대표
(~94년) 전국노점상연합 의장
1992년  (~95년) 전국빈민연합 부의장
1994년  (~98년) 범민련 서울연합 부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역임
1996년  범민족대회 사건으로 구속(2심 집행유예)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권한대행
1999년  (~04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공동 의장
2000년  (~05년)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2001년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 공동대표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서울본부 공동대표, 서울진보연대 공동대표
2006년  (~19년)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 이사 역임
2011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직무대행
2012년  (2월23일~7월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00일 맞아 조의 방북
            조의 방북 건으로 구속(4년)
2016년  (7월 4일) 만기 출소 
2019년  (~24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2022년  (~25년) 자주통일만세투쟁본부 활동
2025년  (~현) 자주연합 명예회원,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고문, 계승연대 이사
2025년  11월 06일 오전7시51분 급성심장마비로 운명(향년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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