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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2일 수요일

‘소득→자산’으로 옮겨가는 ‘불평등’... 해법은 없을까?

 


[전혀 다른 불평등이 온다3] 전문가 “공공서비스 공영화·공공 주거 확대” 제안

  •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25-11-12 17:03:27
    서울 영등포구 연남동의 한 골목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이 리어카를 끌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원인이 '소득 격차'에서 '자산 격차'로 옮겨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공동으로 수행한 ‘다차원 불평등 지수’ 연구 결과를 보면 2011년 이후 14년간 한국의 소득, 교육, 건강 격차는 점차 완화하거나 정체된 반면, 자산 불평등은 꾸준히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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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책도 '기존의 소득 재분배' 중심에서 '자산의 재분배' 혹은 '자산지원 형태'로 옮겨가야 한다고 짚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영화된 공공서비스를 다시 공영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자산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주거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발표된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복지패널 자료(2011~2023년)를 활용해 소득, 자산, 교육, 건강 등 4개 차원을 통합한 다차원 불평등 지수(MDI)를 산출했다.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의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2011년 0.176에서 2023년 0.190으로 상승했다. 소득·교육·건강 차원에서는 불평등이 완만히 감소했지만, 자산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커졌다.

    특히 자산의 불평등지수는 2011년 0.23에서 2023년 0.32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다차원 불평등 지수 내 자산의 기여율도 25.5%→35.8%로 10%p 이상 상승했다. 반면 소득의 기여율은 38.9%에서 35.2%로 하락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국회 주도 첫 다차원 불평등 지수 연구 결과 발표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5.10.28. ⓒ뉴시스

    ‘다차원 불평등 지수’ 상승 원인 ‘자산 격차’... 사회적 상속 대안될까 


    이번 조사를 주도한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실장은 “소득 격차는 정체되어 있지만, 자산 격차가 다차원 불평등의 주된 요인으로 부상했다”면서 “한국의 불평등은 이제 ‘자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부실장은 사회적 상속 정책을 새로운 불평등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회적 상속은 개인이 소유한 부나 자산을 사회 전체 또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환원하거나 투자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해외 유명 학자나 국내 정치권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주장이다.

    김 부실장은 “2010년 이후 소득 불평등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자산 불평등의 심화는 보고서에서 뚜렷하게 관찰됐다. 한국 사회에서 계급 이동성을 가로막고, 건강한 노동 윤리를 저해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자산 불평등이 부상하고 있다”면서 “자산소득이 근로소득을 압도한다면, 또 자산이 부의 대물림을 낳는 주된 경로가 된다면 건강한 노동시장이 형성되기도 어렵고, 건강한 복지국가가 성장할 수도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연세대 한국불평등연구랩이 ‘한국의 불평등과 사회정책’을 주제로 연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는 ‘최소 상속제’를 자산 불평등 문제 해소 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모두를 위한 상속제’로도 불리는 최소 상속제의 개념은 단순하다. 한 나라 전체 성인 평균 순자산(부채를 뺀 자산)의 60%를 일정한 나이(25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이 같은 제안이 현실성 없게 들릴 수 있지만, 그만큼 현실이 암울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감한 정책적 상상과 의지 없이는 갈수록 커지는 자산 격차를 쉽게 좁힐 수 없다는 의미다.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보다 소득이나 자산 불평등도가 낮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조차 자산 불평등은 심각하다. 예를 들어서 프랑스에서 순자산의 크기에 따라 줄 세웠을 때 하위 50%가 전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6%에 불과하다는 게 피케티 교수의 설명이다. 서유럽으로 넓혀 보더라도 그 비율은 4~5% 수준이다. 반면 상위 10%의 몫은 50%가 넘는다.

    국내에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존 정책을 강화하는 방식의 자산지원을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계획으로 내놨다. 영유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별 자산형성 지원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대표적으로는 아동이 성인이 되기 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 청년의 경제적 자립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년미래적금’ 등이 있다. 이외에도 주택연금 제도개선을 통해 노후 연금소득을 확대하거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경제·금융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의당도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만 20살이 되는 모든 청년에게 3천만원을 지급하는 '청년기초 자산제'를 1호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 아동)에게 1,000만~2,000만원의 자립정착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일반 청년에까지 확대하자는 구상이었다.

    자료사진 (해당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뉴시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공공서비스 공영화·공공 주거 확대 제안


    진보당은 자산 불평등 해소 방안의 하나로 ‘민영화된 공공서비스를 다시 공영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신석진 진보정책연구원 연구원장은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단기 목표, 또 중장기 목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 장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한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30년 동안에 무분별하게 난발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있다. 그것들은 큰 법률 개정이 없어도 다시 공영화시켜 모두의 소유로 바꿀 수 있다. 거기서부터 출발하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민간기업이 자산으로 소유하면서 손쉽게 수익을 누리는 현실을 바로잡아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산 불평등 발생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선 ‘공공주거’를 대안으로 내놨다. 신 원장은 “부동산과 관련해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정치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거대 정당들도 절대 부동산 가격을 낮출 수 없다. 집값을 하락시키는 순간 표를 모두 잃는다”면서 “자기 자산의 80~90%가 부동산으로 축적해 있기 때문에, 또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아직 벌지도 않은 미래의 소득까지 다 끌어다 쏟아부은 게 부동산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신 원장은 “그런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공공주거다. 공공 주거를 끊임없이 확대하고 대폭 늘리는 방식밖에 없다”며 “만약 지난 30년 동안 조금씩이라도 확대했다면 지금 공공주거가 서울에 30%는 됐을 것이고, 집 문제는 해결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서울 집값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고 설명했다.

    앞서 진보당은 지난 202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본자산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집 사용권’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역시 공공주거 확대의 일환이었다. ‘집 사용권’은 만 19세~39세 청년에게 최대 20년간 주거사용권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집 사용권'은 매매나 증여, 양도는 불가하고 집을 사용하는 권리라는 개념이다. 주택을 가격 중심으로 한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공평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진보의 새로운 대안, “모두를 위한 소유”> 진보당 정책대토론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5.10.13 ⓒ민중의소리

    “불평등 문제 해결 위해선 데이터 통합・연계・관리 제도화해야”


    향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불평등 지수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데이터 통합・연계・관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기태 부실장은 “불평등 문제의 분석과 대응을 위해서 데이터의 집적・연계・활용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공공영역에서 누적한 행정데이터의 안전하고 투명한 관리 및 활용은 전 세계적인 의제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데이터 관리 및 활용을 중심에 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데이터 품질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서 테이터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불평등 현황의 정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포괄적이면서 정확한 행정 데이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김 부실장은 “데이터 수집・정제・검증의 표준 운영과 품질관리 전담 역량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와 함께 데이터 통합・연계・관리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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