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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6일 목요일

더민주당,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추하라


친노의 패거리 작태, 시정되었는가
김갑수 | 2016-05-27 09:18:0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 11월, ‘100년 정당’의 기치를 올리면서 출범한 열린우리당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불과 3년 만의 일이었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지지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착잡함을 안겨 주었다. 열린우리당은 이전의 정당에 비해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강을 내걸었다. 그리고 금권정치와 권위주의라는 구태를 청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현저히 당세가 위축되었으며 국민의 지지도 역시 전성기의 4분의 1 이하 수준으로 전락했다. 2006년 가을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규모로 탈당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분주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했다. 정작 큰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위축된 이유는 무엇이며, 향후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를 냉철하게 판단해 보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첫째, 노무현과 친노의 근시안적 세계관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과 지역구도타파를 마치 ‘절대선’인 양 내세웠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정당개혁이나 지역구도타파는 모두 국내용일 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집권 정당의 목표로는 지나치게 협소하고 미시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치적 저의가 담겨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들은 정당 개혁과 지역구도타파에 집착한 나머지 이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남북관계나 세계외교에 힘을 쏟지 않았다. 대북송금특검으로 남북관계는 퇴보하였고 세계외교는 오로지 대미외교로만 편중된 결과를 낳았다. 국보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의 실패, 이라크 파병, FTA 밀어 붙이기 등도 노무현과 친노의 근시안적 세계관과 인과적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구보수 영남 정당 한나라당만 엄청난 반사이익을 챙기게 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로는 핵심 구성원들의 배타성을 들 수 있다. 정치란 융화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소수자가 대중 역사에서 성공한 예는 없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기도 하다. 중국의 현대화를 1,000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고 평가 받는 송(宋)의 천재 정치인 왕안석의 변법도 결국 배타성으로 인해 휴지 조각으로 남고 말았다.
물론 정치에서 최소한의 명분은 지켜야 승리한다. 예컨대 당시 이인제 따위나 받아들이며 융화를 운운했던 ‘민주당 세력’의 경우 최소한의 명분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과 친노가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추미애 등을 포용하지 못하고 내친 것은 배타성이라고밖에 달리 평가할 말이 없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당시 열린우리당의 핵심 인사들은 툭하면 “나가라, 떠나라!”를 반복했다. 심지어 2006년 지방선거 투표일 며칠 전 날 당시 친노 김두관이 당의장 정동영에게 “당을 떠나라”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것은 그들의 배타성을 첨예하게 표출한 사례였다. 다른 친노 이병완은 당내 비노그룹에게 ‘살모사론’을 제기했고, 이기명은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지 마라는 식의 막장 표현을 구사하기도 했다.
한 술 더 떠 친노 유시민은, ‘비례대표 의원들을 편하게 해 드릴 테니 나가라’고 했다. 국민들은 복지부장관 유시민이 그렇게 큰 힘을 갖고 있는 건지 그저 의아스러울 따름이었다. 당에 남고 안 남고는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누가 나가라고 먼저 말할 수는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들이 나가라고 윽박지른 대상 정동영·김근태가 친노 인사인 안희정·이광재보다 못한 게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당시 유시민은 ‘정동영 김근태에 관한 설문조사’라는 것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설문조사는 ‘왜 김근태, 정동영은 두 사람 합쳐 3%의 지지율로 불출마선언을 하지 않을까?’라고 질문해 놓고, 답변 문항 중의 하나로 ‘마지막 계급장을 떼기 싫어서’를 설정해 놓았다. 게다가 이광재는 정동영·김근태에게 난데없이 ‘불출마선언을 왜 안 하느냐?’고 내질렀다. 이런 식의 행태는 정동영·김근태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에게도 반감을 일으켰다.
열린우리당은 지역구도를 타파하기는커녕 새로운 지역감정을 파생, 분화시켰다. 열린우리당에서 힘을 쓴 사람들은 주로 영남권 인사거나 아니면 최소 비호남권 인사였다. 지역끼리 똘똘 뭉치는 행위나 특정지역만을 소외시키는 행위는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해 모두 지역 패거리 의식인 것이다.
2007년 4월 노무현 정부 집권기 마지막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호남 두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한 채 나머지 비호남 지역에서도 대패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이는 영남은 물론 호남과 다른 지역에서마저 모두 거부되었다.
이는 국민이 직접 열린우리당은 문을 닫아야 함을 알려 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국민은 열린우리당에게 ‘닫힌너희당’이라는 낙인을 무정히도 찍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는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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