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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5일 화요일

엄마와 함께 논둑길 산책 나선 행복한 새끼 고라니

엄마와 함께 논둑길 산책 나선 행복한 새끼 고라니

윤순영 2017. 09. 06
조회수 626 추천수 0
모처럼 동반 산책, 보통은 새끼 숨겨놓고 어미만 활동
엄마는 잔뜩 긴장해 경계 늦추지 않지만 새끼는 신나 앞장

크기변환_DSC_8684.jpg» 논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는 암컷 고라니. 다른 고라니에 비해 유난히 귀가 크고 털이 무성하다.

지난 6월 파주 송촌리 평야 논둑길을 거니는 고라니를 만났다. 어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미가 움직일 때마다 뒤따라 가는 새끼가 얼핏 보인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다. 벼와 풀들이 높게 자라 새끼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크기변환_DSC_8695.jpg» 새끼가 딸린 고라니였다. 오른쪽 짙은 고동색이 새끼다.

크기변환_DSC_8705.jpg» 먼 거리에서도 새끼의 안전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물끄러미 필자를 쳐다본다.

고라니 어미는 대개 새끼를 숨겨두고 활동하지만 오늘은 새끼를 데리고 움직이고 있다. 새끼를 혼자 두는 습성 때문에 종종 홀로 있는 새끼를 발견한 사람이 길을 잃었거나 버려졌다고 착각해 잘못 구조하곤 한다. 

모든 야생동물들이 그렇듯 인기척을 느끼면 자리를 피하기 마련이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촬영했다.

크기변환_DSC_8720.jpg» 어미 뒤를 따라가는 어린 고라니는 풀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고라니는 어릴 때 몸 전체에 짙은 고동색을 띠고 등과 옆구리에 흰 반점이 나 있어 위장에 적합하다.

크기변환_DSC_8749.jpg» 걸어가는 와중에도 어미는 새끼가 마냥 귀여운지 몸을 핥아 준다.

어미가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새끼는 어미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마냥 즐거워 한다. 어미가 잠시 앉아 쉬는 사이 새끼는 어미 곁으로 다가가 재롱을 부리고 어미는 새끼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새끼는 어미가 좋아 뺨을 맞대고 혀로 얼굴 맞춤을 한다.

크기변환_DSC_8769.jpg» 잠시 쉬어가는 틈을 타 고라니 새끼가 어미의 귀를 핥으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크기변환_DSC_8771.jpg» 어미도 마냥 좋은 표정이다.

어미는 새끼를 꽤 오랫 동안 데리고 다니더니 논으로 들어가 앉는다. 어미의 얼굴만 빼꼼히 보이고 새끼는 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새끼가 달려있는 어미는 평상시와 달리 경계심이 강하다. 

고라니는 단독생활을 하며 대개 새벽과 해질녘에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물을 좋아하며 하루에 보통 두 번 정도는 물가에서 물을 먹고 헤엄도 친다. 수영을 잘하는 동물이다. 영어 이름이 ‘물 사슴’(Water Dear)인 이유가 있다.

크기변환_DSC_8786.jpg» 호기심 많은 어린 고라니가 길을 재촉하는 것 같다.

크기변환_DSC_8805.jpg» 새끼는 겁 없이 앞서 간다.

놀라면 토끼처럼 높게 뛰고 귀소성이 있기 때문에 처음 있던 곳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되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고라니는 채식을 하며 먹이를 그다지 가리지 않는다. 야산의 중턱 이하 산기슭이나 강기슭, 억새가 무성한 황무지, 풀숲 등에서 살며 계절에 따라 사는 장소를 옮긴다.

크기변환_DSC_8807.jpg» 어미는 계속 주변을 살핀다.

크기변환_DSC_8815.jpg» 새끼 고라니도 주변을 살펴본다.

봄에는 논밭과 풀숲, 여름에는 버들 밭이나 그늘진 냇가, 가을에는 풀숲과 버들 밭, 곡식 낟가리 속에서 발견되며, 겨울에는 양지바른 논둑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6월에 여름털로 바뀌고, 8~10월에 겨울털로 바뀐다. 

11∼1월 짝짓기 철에는 암컷 고라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 관계인 수컷 고라니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암수 고라리가 뒤섞여 질주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이때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임신기간은 170∼210일이며, 5∼6월에 한 배에 1∼3마리를 낳는다.

크기변환_DSC_8816.jpg» 어미가 새끼 안전을 위해 앞서 나간다.

한국과 중국이 원산이며 몸 길이 약 77.5∼100㎝, 어깨 높이 약 50㎝, 꼬리 길이 6∼7.5㎝이며 몸무게는 9∼11㎏이다. 거칠고 두꺼운 모피의 상부는 황갈색이고, 하부는 흰색이다. 

수컷도 뿔이 없으나 송곳니가 입에서 밖으로 길게 자라 삐죽 튀어나온다. 송곳니는 끝이 구부러져 있으며 약 6㎝에 이른다. 번식기에 수컷끼리 싸울 때 쓰인다. 눈 밑에 냄새를 분비하는 작은 샘이 있다.

크기변환_DSC_8822.jpg» 마냥 즐거워 뛰어 노는 고라니 새끼.

금강산, 오대산, 설악산,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을 포함하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중국의 양쯔강 유역, 장쑤 등지에도 분포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 목록에서는 '취약'으로 지정해 두었으나, 한국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농작물 피해를 상습적으로 입혀 농민들이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우리나라 국가 성립, 중국보다 빨랐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8) 고조선의 국가성격 논쟁, 고대 노예제 국가
  • 박경순 우리역사연구가
  • 승인 2017.09.05 11:14
  • 댓글 1
고조선의 국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우리나라 원시시대와 역사시대의 계선에 관한 문제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첫 국가는 고대국가이다. 각 나라와 민족들은 고대국가를 세우면서 원시시대를 끝내고 문명시대 역사시대로 진입했다.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반만년 전에 고대국가가 성립됐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데, 역사학계에서는 그것을 부정한다. 기껏해야 기원후 3~4세기에 이르러서야 고대국가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18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 아니라, 중국보다 2000여년 뒤늦게 역사시대로 접어든 역사 지진아일 뿐이다. 과연 우리나라 역사는 1800년인가 반만년인가? 이것이 고조선의 국가 성격의 본질이다.
초기 국가론을 비판한다
고대국가 성립 시기 문제가 쟁점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원시시대에서 역사시대로의 역사적 전환의 징표이자 귀결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들은 고대국가 성립시점부터 그 나라 역사시대가 시작됐다고 본다. 역사학에서 국가는 원시공동체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원시공동체는 씨족이나 부족 등 혈연적 관계에 의해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된다. 반면에 국가는 계급 계층으로 이루어진 지역 공동체에 기초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권력기구(국가)에 의해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된다. 고대국가 성립의 징표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군대, 법률, 감옥 등 물리적 권력기구와 함께 조세를 징수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관료조직, 지배이념, 그리고 최고 통치자(전제군주) 등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우리나라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3~4세기로 못 박아 놓고, 이를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유적 유물, 역사자료에 의해 그 실체성이 확인되고 있는 고조선을 고대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입각해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가건설 시기마저도 부인하고 소위 원삼국시대라는 해괴한 개념까지 만들어냈다. 원삼국시대란 아직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기 전의 삼국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한국 고대사회 출발점이 되는 고대국가의 형성 문제가 이처럼 복잡하게 된 것은 일제의 단군조선 말살책동 때문이다. 일제는 단군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사를 완전히 부정하고 우리 민족사의 앞머리 부분을 몽땅 잘라버린 왜곡된 조선역사를 조작해냈다. 그 이후로 단군조선은 신화의 영역에 갇혀 버리고 역사의 영역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반갑게도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성을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도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성립시기가 3~4세기경이 아니라 고조선의 성립으로부터 고대국가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인정한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라고 기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대국가 성립 시점은 여전히 3~4세기라는 것이다. 요즘 약간 진취적인 역사학자들은 고구려의 고대국가 성립 시점을 3~4세기라 아닌 1세기경에 고대국가체제가 성립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라고 할 때 그 국가는 고대국가가 아닌 어떠한 국가란 말인가? 고대국가 이전단계에도 국가가 존재했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기원전 10~8세기경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됐으나, 아직까지 고대국가의 체모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고대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초기 국가(원시공동체와 고대국가의 과도적 단계의 국가형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3~4세기로 못 박아 놓기 위해 이렇게 초기국가론을 새롭게 고안해냈다. 그렇다면 초기국가는 고대국가인가 아닌가? 이에 대해 매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초기국가론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력이 행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단일한 국가체가 형성되기 이전 상태인 초기 국가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봄으로써 고조선의 국가적 실체성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고대국가와 구별되는 초기 국가단계를 설정함으로써 내용적으로는 부족국가론 등 과도기 국가론과 다를 바 없게 돼버린다. 원래 고대국가란 개념 자체가 인류의 최초의 국가 형태로서 국가발전단계에서 초기 국가단계에 해당되는 역사적 개념이다. 따라서 고대국가에서는 관료조직이라든가 전제군주권이라든가, 무장력(군대조직), 법률제도, 조세제도 등 국가의 기본 체제들이 아직 초보적 형태로 매우 불완전하고 엉성하며, 낡은 사회(원시공동체 사회)의 유재들이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고대국가라는 개념 자체는 원시시대와 문명시대(역사시대)를 나누는 계선으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고수하고 있는 고대국가의 징표는 국가의 발전단계로 볼 때 초기 단계를 훨씬 뛰어넘어 상당히 발전된 국가 단계 즉 중세사회에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다. 그러한 높은 기준을 내세워 고조선의 고대국가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의 유구성을 부정하려는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역사학계는 삼국 시대를 고대국가단계가 아니라 중세국가단계로 규정하고 있다. 초기 국가론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1800년에 불과하며, 기껏해야 2000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 우리나라는 고조선과 같이 고대국가로 발전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해도, 아직까지 고대국가의 체모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원시시대의 단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중세사회로 발전해 나가려는 시점에 우리나라는 비로소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역사의 유구성을 부정하려는 식민사학의 틀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적 유물과 역사자료로 본 고조선의 고대 국가적 성격
고조선은 원시공동체 사회와 고대국가 사이에 있는 과도적인 국가체제가 아니라, 역사시대 문명시대를 열어나간 고대노예제 국가체제이며, 사회발전단계로 볼 때 원시공동체 사회단계를 뛰어넘어 고대 노예제 사회 단계에 속한다. 고조선이 고대국가인 까닭은 첫째 사회발전단계로 볼 때 원시공동체 사회관계가 붕괴된 후 새롭게 등장한 고대 노예제적 사회관계에 기초해서 국가가 세워졌으며, 둘째 노예 소유를 합법화하는 성문법 체계를 갖고 있으며, 셋째 세습군주제도와 중앙관료기구 및 지방 행정조직을 갖춘 관료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넷째 국왕이 통솔하는 군대와 국가적 방어체계인 성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고대국가인 까닭은 사회발전단계가 공동소유와 공동노동에 기초한 원시공동체 사회관계에서 벗어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계급이 발생해 사회가 지배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로 나뉘어 끊임없는 갈등과 혼란이 발생했던 노예제 사회 발전단계에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노예제 국가였다는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유적 유물들로 입증된다. 고조선이 노예제 국가였다는 것은 고조선시기의 고인돌 유적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는 수만개의 고인돌 무덤이 존재하는데, 고인돌 무덤은 그 조성규모와 수법으로 볼 때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일정한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노예 노동을 동원해서 건축한 것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것은 순장무덤이다. 순장무덤은 노예주가 죽었을 때 노예주의 무덤에 산 노예를 강제로 생매장한 무덤인데, 지금까지 평양근처의 용산무덤(기원전 31세기), 중국 요녕성 대련시 감정자구에 있는 강상무덤(기원전 16~15세기), 누상무덤(기원전 10세기 전후) 등이 발굴되어 고조선 사회의 노예제적 성격을 증명해 주고 있다.
▲ 강상무덤
후조선 시기의 성문법인 범금 8조 역시 고조선의 고대국가적 성격을 증명해주고 있다. 법은 지배계급의 의사의 표현이며 중요한 통치수단으로써 국가와 함께 발생해 지배계급의 이익을 반영하고 옹호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법의 존재 유무는 곧 국가의 존재 유무의 핵심적 징표 중의 하나로 된다. 고조선에도 법이 있었다는 것은 후조선 시기의 성문법으로 제정된 것으로 인정되는 범금 8조가 증명해 준다. 범금 8조는 후조선 초기에 제정된 것으로 지금 전해지는 것은 그중 3개 조항뿐이다. 중국 역사서인 한서지리지에 실려 전해져 온 범금 8조 중 3개 조항은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부상을 입힌 자는 곡식으로서 보상해야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남자의 경우에는 도적을 맞은 자의 노로 만들고 여자의 경우에는 비로 만든다. 만일 훔친 자가 죄를 벗으려면 50만의 돈을 내야 한다”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범금 8조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문법 체계로서, 그 내용을 볼 때 사적 소유와 노예제 사회에서 지배계급(노예소유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법체계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조선 초기에 이처럼 발전된 성문법이 존재했다는 것은 단군조선 초기부터 법이 제정되어 부단히 발전되어 왔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고조선의 무기: 비파형 단검
고조선의 고대국가적 성격은 또한 정연한 국가 통치기구와 관료조직, 군대를 갖추고 있다는 점으로도 입증된다. 고조선은 국왕 중심의 세습 전제군주제 체제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고조선 사회에서 기원전 4~3세기경부터 왕 칭호가 쓰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전제군주제 국가로 발전했다고 본다. 전제군주의 칭호는 나라와 민족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금(단군: 밝은 임금)이라 했고, 중국에서는 왕(王)이라 했고, 서양에서는 킹(king)라고 불렀다. 기원전 3~4세기에 왕의 칭호가 쓰인 것은 그 때부터 전제군주 권력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왕에 해당되는 우리의 고유 칭호(단군, 밝은 임금)를 쓰다가 왕이라는 중국식 칭호도 같이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단군조선 시기부터 전제군주제 국가형태를 갖추었다. 단군은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이자 전제군주로서 세습됐다. 이는 단군의 아들 부루에게 왕위를 물려줬다는 역사기록과 함께 후조선 말기 왕들인 부와 준이 부자 세습했다는 역사기록, 그리고 만조선의 삼대에 걸친 왕들이 모두 부자 세습의 형태로 왕위가 계승됐다는 역사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에서 군주는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정치 경제 문화 대외관계 등 모든 분야의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했다. 또한 중앙통치기구뿐만 아니라 지방통치기구도 장악하고 전국에 대한 지배와 통치를 실현했다. 군주(단군) 밑에는 비교적 정연한 중앙관료기구와 통치기구가 있었다. 중앙관료기구에서 기본은 8가 또는 9가 제도였다. 가라는 말은 고대 우리말에서 귀한 사람, 큰 어른을 가리키는 존칭어로서 귀족층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는데, 고조선에서는 원시사회의 동물신앙의 유제를 외피로 해 범 말 소 개 곰 등 동물 이름을 가와 결합시켜 해당 동물의 특성과 관리들의 직분에 어울리게 최고 관료의 관직명을 삼았다. 호가, 마가, 우가, 웅가, 학가, 로가, 구가 등이 그것이다. 후조선 말기에 이르면 비왕, 상, 장군, 대부등의 관직명 등이 나타난다. 고조선의 지방통치체계는 당시의 발전정도에 맞게 임금의 직접통치와 간접통치로 나뉜다. 직접통치 지역을 직할지라고 부르며, 간접통치지역은 후국 속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밑에 말단 행정단위로서 각이한 규모의 고을과 마을들이 층위를 이루고 종속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와 함께 고조선에서는 상설적인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별도끼, 비파형동검 등의 단군조선 시기 유물들에 의해 확인되며, 또한 후조선 말기 연나라 장수 진개의 고조선 침공시 10만의 연나라 군대가 동원됐다는 것으로도 그에 맞설만한 고조선의 상설 군대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고조선-한 전쟁 당시 동원된 한나라의 군대가 10만에 이르는데, 이에 맞서 1년 이상 싸웠다는 것은 그에 견줄만한 고조선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반 사례로써 고조선에는 상설적인 군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고조선의 무기: 좁은 놋 단검
우리나라 역사는 1800년이 아니라 5천년이다
흔히 우리들은 관습적으로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나라 역사를 상고시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상고시대라는 말은 고대 이전의 과도적 시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상고시대라는 용어는 고조선의 고대국가적 성격을 부정하는 견해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상과 같이 발굴된 유적유물들과 역사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해 볼 때 고조선은 고대국가 이전 단계(원시시대)의 초기 국가가 아니다. 이와 달리 고조선은 고대국가의 징표를 제대로 갖춘 명실상부한 고대국가이다. 고조선의 개국시조는 단군으로, 단군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고대국가 고조선을 건국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로부터 우리나라는 선사시대로부터 역사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 문명시대로 접어들었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할 당시 동아시아 이웃나라들에서는 아직까지 고대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원시시대의 낙후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박경순 우리역사연구가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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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마 MBC 해직 기자 "김장겸 사장,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제대로 알라"

[허프 인터뷰] 이용마 MBC 해직 기자 "김장겸 사장,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제대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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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자다. 또 정치학 박사다. 늘 학구적이다. 뭐든 설명하기 좋아한다. 분석적이고, 치밀하다. 2012년 MBC 170일 파업 이후 노조 집행부 가운데 가장 먼저 해고됐다. 해고된 시간도 허투루보내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강단에도 섰고, 국민TV에서 '이용마의 한국정치'라는 대담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MBC 한 기자는 그를 가리켜"배우 현빈과 이미지와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앵커감이라는 거다. 이제 그의 일정은 잠시 멈췄다. 많이 아파서다. 5년 만에 만난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탁자에 앉았다. 자택에 갖춘 오존 기계를 가리켰다. "저게 참 좋아. O3로 씻으면 과일을 껍질째 먹을 수 있게 해주거든. 사람들이 이걸 잘 몰라" 조곤조곤 설명하는 통에 하마터면 어디서 파냐고 물어볼 뻔했다. 그는 여전히 호기심이 많은 기자다. 그러나 일상의 화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MBC 문제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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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총파업이 오늘(9월4일)부터 시작됩니다. 5년 만의 파업입니다. 2012년 파업 당시 노조 집행부였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 이번 파업은 찬성률, 투표율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전무후무할겁니다. 총파업 출정식 참여인원도 역대 최고 수준이고요. 조합원들의 참여 열기가 굉장히 높거든요. 대단한 거죠. 조합원들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할 수밖에 없어요. 불과 몇달 전만 해도 '과연, 우리가 파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패배의식이 짙었어요.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 사상 최대의 파업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하고 감격하고 있어요. 사실상 이번 싸움은 2010년 39일 파업, 2012년 170일 파업, 그리고 2017년의 파업인데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봐요. 2010년 김재철의 낙하산 투입 반대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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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노동지청에 자진 출석한 김장겸 MBC 사장
- 김장겸 사장이 배수진을 친 것으로 보입니다. MBC에서는 '언론탄압'이라고 합니다. 자유한국당도 동조하며 김 사장 지키기에 나서며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공영방송 사장과 제1야당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현 시국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 하! 한마디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시절에 축적한 재산이 상당히 많잖아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다음에 그 재산이 여전히 자기 거라고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일제 식민지 기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엄청나게 억압받고 탄압받았고, 친일파들은 일제 총독에 빌붙어서 작위와 많은 돈과 땅, 재산을 축적했죠. 이 부당하게 축적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도둑들이 이 재산은 내 것이고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지금 김장겸 사장이 공영방송 손대지 말라고 하는데, 그러면 작년부터 대한민국 1800만 명의 국민이 나서서 촛불 항쟁을 해서 박근혜 정부가 무너졌단 말이에요. 촛불 항쟁의 열망은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열망도 담겨있거든요. 그런 국민을 향해서 지금이 정상이니까 내버려 두라는 거랑 똑같아요. 적반하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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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전 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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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한 전 MBC 사장
-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 등이 저지른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처벌에 관심이 쏠립니다. 김장겸 현 사장은 "취임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사장"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는데요. 노동법, 방송법 등 실정법의 처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 당연히 실정법으로 처벌받을 대상들이죠. 김장겸, 안광한, 그 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 사실상 권언유착 관계였거든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이 사람들을 MBC 사장으로 임명해주고, 이 사람들은 정권을 대신해서 그동안 MBC 구성원들에 대해서 많은 탄압을 해왔단 말이에요. 불법적이고 부당한 일을 저질러왔고, 정권은 그걸 용납해왔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정권이 비호를 해줬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보호를 받았던 거든요. 하지만 법대로 처리만 이뤄진다면 이 사람들은 처벌을 받아야 해요. 법이 '인제 와서야' 제대로 집행이 되려고 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말이 안 된다고 앞을 가리는 거 자체가 웃긴 일이라는 거죠.
- 보도국 기자 시절 김장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김장겸 사장이 제 기억에는 그렇게 남아 있지 않아요. 제가 1996년에 입사했는데요, 김장겸 사장은 당시 보도국에서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김장겸 선배가 런던 특파원을 했죠. 어떤 능력으로 런던 특파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노태우에서 YS로 이어지는 영남 정권이다 보니까 수혜를 입어서 특파원을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입사한 이후에는 김장겸이라는 존재는 눈에 띄지 않았어요. 1987년도 입사한 동기들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잘 나갔던 선배들이 많거든요. 영남 출신임에도 중요한 출입처 보직들을 맡으면서 잘 나간 선배들이 많아요. 그런데 김장겸 선배는 부장도 못 했던 걸로 알거든요. MBC 뉴스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든지 앞장서서 외치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주요 직책이라는 측면에서 잘 나간 것도 아니고 반정부나 반체제 성향을 보이고 눈에 띄지도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느닷없이 이명박, 박근혜 체제에서 잘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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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과거에 이 사람이 사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느냐. 선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김장겸 선배는 그 당시에도 이미 편향적이었다는 거에요. 그 시각이 좀 심했다는 거예요. 같은 보수적인 선배들끼리도 대화가 잘 안 통하는 거죠.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일베' 적이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동기들이나 사내에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 우리 사회가 '일베화'가 돼 가잖아요? 극우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직책을 차지한다든지, 오죽하면 대통령을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이 방문진 이사장을 하고 있잖아요. 김기춘 같은 공안검사가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고. 이런 식으로 사회 체제가 바뀌면서 김장겸 같은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진 거죠. 그러면서 김장겸이라는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정치부장이 됐죠. 정치부장도 MBC 역사상 가장 오래 하지 않았을까. 2년 정도 했어요. 군사정부 이래로 그렇게 오랫동안 정치부장을 한 사람이 없어요. 보도국장도 오래했고, 그 다음에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수직 상승을 했어요. 이건 그만큼 김장겸이라고하는 존재가 일베 성향의 정치 체제와 맞물리면서 한순간에 올라가는 거라고 봐야 하거든요.
그렇게 취재를 열심히 했던 기자가 아니에요. 취재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면 선후배들의 눈에 띄었겠죠. 기자가 취재하지 않았다는 건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에요. 그런 상태에서 정치적인 의식조차도 편향적이었죠. 이런 상황에서는 기자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는 거죠.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하면서도 기사를 보는 시각이나 관점, 기사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 있어서 일반적인 상식적인 논리에서 많이 벗어난 결정들이 나오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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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철 사장 이후 MBC는 신뢰도를 비롯해 물론 브랜드 파워 등 각종 지표에서 곤두박질쳤습니다. 
= 김재철 체제가 등장한 이후에 김장겸 뿐만 아니라 제2의 김장겸, 제3의 김장겸들이 등장했어요. 보수-진보 정권을 떠나 대체로 사내에서 평가해주는 게 있잖아요? 저 사람은 성향으로는 보수적이라도 취재도 제대로 하고, 일을 열심히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 사람은 성향은 진보적이라도 일은 제대로 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권 아래에서도 평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김재철 사장이 등장한 이후에 소위 '보직 부장'을 달며 승진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MBC를 장악하고 있어요. MBC에서 일을 잘했던 기자, PD들은 다 현업에서 쫓겨났잖아요. 대표적으로 황우석 사건을 밝혀냈던 한학수 PD도 쫓겨났죠, 기자로서 많은 활약을 했던 박성제 기자 등 대부분의 일 잘하는 사람들은 다 쫓겨났어요.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들이 과거에 자기들이 대우를 잘 못 받은 것인 양, 억지를 부리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MBC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죠. 김장겸, 고영주가 주장하는 대로 현재 MBC를 그대로 둔다고 하면 MBC 경쟁력 자체가 너무 떨어져서 그대로 놔둬도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 조직에서 '인사'(人事)가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지난 정권을 돌아보면 이런 식의 인사가 눈에 띈다. 원세훈 국정원장 같은 경우도 서울시 공무원들 가운데서는 혼자서 식사를 하고 눈에 띄지 않아 '원따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는데 MB에게 발탁돼 국정원장을 지냈죠. 김재철 전 사장 같은 경우도 MBC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사장에 발탁됐고 그러고 한 일은 구성원들이 이해하지 못할 인사였습니다. 결국 '조인트 까이고 좌파 청소'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왔습니다. 
= 하나의 조직이 잘 굴러가려고 하면,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일 잘하는 사람을 일하는 능력에 따라 평가해주는 조직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걸 그 사람의 능력이나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서 그냥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 나의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인사를 했을 경우에 사실은 그 조직이 그런 식으로 해서 망가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방금 얘기한 원세훈 원장 같은 경우도 조직 내에서는 왕따를 당했던 사람인데, 이명박 당시 시장의 눈에 띄어서 나온 거예요. 이 사람은 이명박 시장한테 올곧게 충성한 거 아니에요? 자기한테 충성을 잘한다는 그 하나로 대통령이 되면서 행자부 장관을 시키고, 국정원장을 시켰죠. 아무 비판 없이 충실하게 따른 거 아니에요? 조직은 망가졌잖아요.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망가졌어요. 관권선거 운동이라는 건요, 군사정부 이래로 찾아보기 어려운 거예요. 국정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직을 국가가 동원을 해서 선거운동을 한 거거든요. 이건 굉장히 엄하게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이죠. 징역 4년, 저거는 얘기 안 된다고 봅니다. 굉장히 엄중하게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이고 저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사건이거든요. 이런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잖아요. 그래서 인사가 중요하다고 하는 거예요.
- 2012년 파업과 2017년 파업을 대하는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은 훨씬 더 절박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시청자들의 시선도 예전보다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JTBC와 같은 종편의 약진과 시청환경의 변화가 더 MBC를 기대하게 하지 못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구성원들이 더 절박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지금 상황에서는 구성원들이 절박할 수밖에 없어요.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에 MBC는 완전히 망가졌어요. 지금 수많은 기자, PD, 아나운서들이 그동안 피를 토하는 인터뷰를 많이 했잖아요? 그동안 스케이트 관리를 하러 쫓겨났던 사람들,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회사를 그만둬버려야 했던 아나운서들, 마이크 한번 잡아보지 못한 기자들, 지금 엄청나게 많잖아요. 이 사람들이 인터뷰도 못 할 정도로 억압적인 체제를 지내왔거든요.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고 보세요. 그럼 MBC에서 남아있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아나운서들 10여명, PD들 떠난 게 문제가 아니에요. 이 체제가 지속한다고 하면 지금 MBC 구성원들 대부분이 회사를 떠날 겁니다. MBC 구성원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건요 '언젠가는 우리 일터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남아있었던 거에요. 아니었으면 진작 떠났을 겁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죠. 이 많은 사람이 배제된 동안에 얼마나 MBC가 망가졌어요.
오죽하면 사람들이 채널에서 지워버리잖아요. 'MBC 그런 게 있었냐'고 묻는 사람조차 있잖아요. 그런 정도로 MBC 존재감이 약화했고, MBC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어요.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터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MBC가 예전의 명성,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겠느냐. 설령 그 정도는 아니라도 지상파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170일 파업을 하고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우리가 MBC를 사랑했기 때문이거든요. 'MBC를 살려야 한다'는 극한의 심정 때문에 업무로 복귀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 싸움에서 패한다고 생각해보세요. MBC는 이제 기사회생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박한 겁니다.
-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영방송 정상화'를 표방했습니다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치가 미진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 우리 심정이야 당장에라도 바꿨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우리 사회잖아요? 법과 제도적인 절차를 따라야 하므로 그런 것들을 최대한 준수를 하면서 나갈 수밖에 없죠. 그것이 우리가 추구했던 사회잖아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김장겸 나가라, 고영주 나가라 할 순 없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을 지키자고 우리가 하는 거기 때문에 그 정도 인내는 필요하다고 봐요.
- 지난 2월 MBC 사장 면접 과정에서 파업 참가자들을 배제할 방안을 묻고 답하는 방문진 속기록도 나왔고,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도 나왔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정황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 이 사람들은요 법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어요. 지금 밝혀진 거 말고도 경력직 사원을 뽑는데 '지난 2012년 파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입사하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이냐'는 등의 질문을 해요. 이건 부당노동행위로 법에서 금지된 항목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은 개념 자체가 없는 거예요. 개념이 없는지, 이런 불법을 저질러도 지금 정권 아래에서는 다 두둔해줄 거니까 문제가 없다는 생각의 발로인지는 몰라도 일상적으로 부당노동행위가 진행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장 후보 면접 자리에서도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해야 쫓아낼 수 있지 하는 걸 공공연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심각한 거죠.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이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중요한 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거죠.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점령하고자 하는 그런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 이게 대한민국에 굉장히 위험한 겁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들이라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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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겸 사장이 내일(9월5일) 노동청에 출석한다고 하는데 한 말씀 해주시죠. 
= 조사 잘 받겠죠. 한편의 코미디인데, 그냥 서부고용지청에 가서 조사받으면 될 일이에요. 거기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가서 조사받고 나오면 될 일을 '나는 MBC 사장인데, 내가 왜 가서 조사받아야 돼' 이런 오만, 이런 것들의 발로 아니에요? 괜히 안 나간다고 버티다가 체포영장이 날아온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야 3번 이상 나오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게 당연한 거거든요. 법에 그렇게 돼 있어요. MBC 노조가 파업할 때요, 경찰에서 출두서를 보냅니다. 우리도 3번까지는 안 나가면 체포영장이 청구되기 때문에 3번째에 출두명령서가 나올 때 출두를 했습니다. 누구나 다 밟아야 할 절차에요. 오만불손한 거죠. 이 사람들이 법 위에서 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해프닝을 벌이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이제 정권이 바뀌었구나' 뒤늦게 깨달은 거죠. 이제 법대로 집행이 되네? 그 전에는 이 정도 버텨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법대로 집행이 되니까 뜨끔한 거죠. 버티려고 봤더니 이제는 구속영장이 날아온단 말이에요. 그렇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출두하겠다고 하는 거죠. 그런 태도를 봐도 그렇고 이 사람들이 얼마나 대한민국 실정법을 얼마나 무시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어요. 김장겸 사장, 이제 세상 바뀌었다는 더 제대로 알고 이제 법 절차에 따라서 순응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에 조사 좀 제대로 받고요. 고용지청 조사를 받으면 검찰에서 또 조사할 거에요. 괜히 또 이번처럼 고집부리고 안 나가다가 고생하지 말고 얌전히 법대로 나갔으면 해요. 더 MBC 구성원들 망신살 뻗치게 안 했으면 좋겠어요.
- 새 방문진 이사가 꾸려지고 새 사장이 들어오고, MBC 구성원들이 그토록 바라던 'MBC 정상화'가 되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요?
= 하하. MBC가 정상화되면?(웃음) 글쎄 지금은, 병가를 내야 할 거 같은데? 하하하. 그 얘기는 많이 해요. 사회적 약자를 둘러보는 방송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요. 우리가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감시에 초점을 많이 맞춰왔다면 이제는 그 이면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둘러보는 방송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회적 약자로 많이 지냈잖아요. 우리가 170일 파업을 하더라도 주류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번 파업 때는 다르더라고요. 포털에도 MBC 파업 소식 많이 올라가고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아무리 우리 내부에서 아우성을 쳐도 언론에서 안 써주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너희 지금까지 뭐하다가 정권 바뀌니까 지금에 와서 파업한다고 악악대나'고. 영화 '공범자들' 통해서 많이 드러났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싸워왔는지, 주류 언론을 통해서 안 드러나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거거든요. 마찬가지죠. 우리 사회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가 많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과연 얼마나 반영을 했냐, 이 사람들에게는 언론이라는 게 목 매일 정도로 그리웠을 텐데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줬나, 이런 부분들을 MBC 구성원들이 그동안에 뼈저리게 느꼈을 거예요. 그런 만큼 MBC가 정상화된다고 하면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방송을 많이 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김민식 PD가 2012년 170일 파업 중단을 놓고 이용마 기자와 격한 논쟁을 벌였던 일화를 언급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파업 이후 현재는 복막암 투병 중이십니다. 많은 MBC 구성원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 민식이 그 녀석은 울보가 되가지고 말이야(웃음). 앞장서서 싸워야 할 사람이 자꾸 울고 그러면 어떻게 돼요.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은 설령 울음이 나와도 참아야 해요. 그만큼. 음. 굉장히 단호하고 이길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민식이가 이번에 굉장히 열심히 했고요. 굉장히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요. 민식이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함께 떨쳐 일어난 수많은 조합원, 정말 감격스러운 모습이죠. 아마 이런 힘이 기반이 되서 이번 파업 투쟁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투쟁이 될 거예요. 아마 가장 빨리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싸움이 될 거라고 봐요. MBC 노동조합이 지금까지 수많은 파업을 해왔는데요, 사실은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어요(웃음). 사람들은 MBC 노동조합이 파업 많이 했다, 강성이다 이런 얘기 많이 하지만요. 사장 퇴진 투쟁을 해서도 이긴 적이 없고요, 다른 요구 사항을 내세워서도 이긴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노동조합이라는 역할이라는 것은요 대응하는 역할이지 적극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역할은 아니거든요. 회사의 대응에 대해서 노동조합은 반응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가자 하는 거죠. 이렇게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만, 이번 싸움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를 거둘 거에요. 자신감을 이미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의 기대와 바람이 이뤄질 거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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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7일, 해고되기 전 파업투쟁이 한창이던 때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던 이용마 기자 그리고 김민식 PD.
글=원성윤 에디터
사진=윤인경 에디터

문 대통령 "북핵 근원적.포괄적 해결 방안 모색할 것"

러시아 언론들과 인터뷰, "어떤 차원의 대화도 피하지 않을 것"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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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23: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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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는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고 이러한 도발이 있을 때마다 강력히 규탄하고 압박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벗어나 북핵 문제를 근원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하면서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일간 <로시스카야 가제타>와의 공동 서면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떠한 차원의 대화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북한의 위험천만한 도발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탄하고 압박해야 할 때이지 대화를 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응징만을 강조하던 기조와는 온도차가 있는 데다, “어떠한 차원의 대화”도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남북 특사교환이나 정상회담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다음날인 4일 미국, 러시아, 독일 정상과 전화통화를 갖고 대응책을 협의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날 전화통화 결과를 묻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가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거듭된 핵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는데 합의를 봤다”면서도 “북핵 문제가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도 합의했다”고 밝혀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푸틴 대통령은 5일 북한의 행위를 “도발”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이 상황에 어떠한 제재를 하든지 소용없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추가 도발을 중단하며, 대화의 길로 나오도록 강제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최고의 강도로 부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재확인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응징하기 위해 압도적인 국방력을 갖추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해제 합의도 이 일환이라는 것.
또한 “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이 핵과 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도록 만들 것”이라며 “ 북한은 비핵화만이 자신의 안보를 지키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지금이라도 깨닫고, 핵과 미사일 개발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제시한 대화의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이다. 두 번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북한체제를 붕괴시키거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음.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운데, 북핵문제 해결을 추구하면서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재확인했다.
다가오는 평창올림픽 관련 질문에는 “북한도 함께 참여하는 ‘평화올림픽’이 될 수 있도록 IOC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해 갈 생각”이라며 “나는 평창올림픽이야말로 ‘평화올림픽’으로서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 스포츠의 힘을 보여줄 특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

  
▲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오픈된 2018평창동계올림픽 입장권 2차 온라인 판매에 참여해 피겨스케이트 종목 입장권을 구매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문 대통령은 5일 오후 2시에 오픈된 2018평창동계올림픽 입장권 2차 온라인 판매에 참여해 피겨스케이트 종목 입장권을 구매하고, 150여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 보다 많은 국민이 함께 즐기고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관련 질문에 “사드 배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능력이 과거와 다른 수준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면서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평가 종료 후 현재 임시 배치되어 있는 사드 체계의 배치 문제를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러시아와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약속하고 “사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배치하는 것인 만큼, 북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경제협력과 관련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며, 이는 러시아 극동지역 발전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며 “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신동방정책’과 내가 추진하고자 하는 ‘신북방정책’의 비전을 공유하고 극동지역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극동지역의 개발 수요와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결합하면, 극동지역의 무한한 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북극항로 개발, 철도, 항만, 조선, 도로와 같은 인프라 개발과 농․수산, 물류, 보건․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사업의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제3차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 정부의 동북아 및 유라시아 경제 협력 증진을 위한 ‘신북방정책’ 구상을 밝힐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러 3각 협력은 한-러 관계 증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당장은 어렵더라도 한-러가 먼저 시작하고 향후 북한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언젠가 남북러 3각 협력이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와 극동, 동북아의 평화·번영은 물론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협력과 번영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러시아는 북한과 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7일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의 한.러 정상회담을 비롯, 한.일, 한.몽골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북한에서는 김영재 대외경제상이, 중국에서는 왕양 국무원 부총리가 회의에 참석한다.

(추가, 6일 00:38)

조선공화국, 고구려제국을 뛰어넘을 것인가


조미대결, 막바지인 것만은 틀림없다
김갑수 | 2017-09-05 13:36:57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선공화국, 고구려제국을 뛰어넘을 것인가- 조미대결, 막바지인 것만은 틀림없다

예상대로 조선은 9월 3일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조선 중앙 TV는 중대 발표에서 “ICBM 장착용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직전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연구소 현지 지도에서 ‘새로 제작한 대륙간탄도로케트 전투부(탄두)에 장착할 수소탄을 보았다’고 보도된 바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한 3일 이춘희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수소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도하고 있다./AFP
이에 못지않게 유별난 대목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electromagnetic pulse)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 전투부“라는 김 위원장의 언급이다. 이것은 결코 범상치 않은 ‘사건’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조선을 건드릴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동북아 조선의 군사적 굴기는 같은 지역의 7세기 고구려 제국을 방불케 하는 면이 있다. 우리가 알듯이 7세기 초반 중원을 통일한 수 제국은 4차례의 고구려 원정에서 모두 실패했다. 특히 612년 수 양제의 2차 원정은 113만 대군을 동원하는 등 제국의 전 국력을 기울인 대역사였다. 그러나 수 제국은 망했고 이것은 고구려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중국의 고구려 침공은 수에 이어 들어선 당 제국 시대에도 멈추지 않았다. 당은 수보다 강했고 당 태종은 수 양제보다 더 신중했다. 그러나 당은 황제가 친정한 644년의 고구려 원정에서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시성에서 패퇴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구려의 승리다.
자고이래 강대국이란 군사력보다 외교력이 더 강한 법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이 강한 것이야 두말할 것 없지만 조선도 미국에 뒤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경제대국 미국이 장기 소모전으로 나갈 경우 시간은 조선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 태종을 물리친 고구려가 오히려 불과 23년 만에 망했다는 것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 정면대결에서 실패한 당은 고구려에 외교전과 함께 장기소모전을 펼쳤다. 고구려 멸망의 내재 요인이 된 연개소문 대 영류왕의 내분은 사실 당 제국에 대한 척화 대 주화 갈등 때문에 생긴 일이었기에 이것 역시 당이 개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조선은 바로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선은 “이제 더 이상 협상의 안건은 조선반도 핵이 아니라 미 본토 공격 문제”라고 한 게 아닐까? 요컨대 더 이상 장기 소모전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숨 쉴 사이 몰아친 ‘괌 포격’과 ‘화성 12형’과 ‘수소탄 실험’ 등은 이제 조미대결에서 가부간 끝장을 내겠다는 조선 측의 확정된 전략으로 읽힌다. 과연 조선은 조미대결에서 승리할 것인가? 우선 나는 조선이 고구려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나는 조심스럽게 ‘조선의 포격 없는 승리’를 점쳐 본다. 조선은 미국과 달리 잃을 것을 각오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승리인 것은 기원 전 손자병법 이래의 진리다. 앞서 말했듯이 최고 강자는 군사보다 외교가 더 강해야 한다. 조미대결, 막바지로 가고 있는 점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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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4일 월요일

북, 핵전쟁 도발 책동 영원히 끝장낼 것

북, 핵전쟁 도발 책동 영원히 끝장낼 것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7/09/05 [12:0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서태평양지대에서 북의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은 무적임이 증명되었다.     ©자주시보

북 노동신문은 5일 '자멸을 재촉하는 무분별한 불장난 소동'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정세논설에서 "조선반도에서 갈수록 무모해지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의 핵전쟁 도발 책동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히 끝장내려는 것이 우리의 단호한 결심이고 의지"라고 경고했다.

인터넷 매체에 따르면 신문은 “이번에 진행된 대륙간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의 완전 성공은 국가핵무력완성의 완결단계목표를 달성하는데 매우 의의 있는 계기로 되었다”며 “핵광기를 영원히 끝장내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한 "북침 합동군사연습들에 대처하여 우리 식의 앞선 선제타격을 가할 수 있는 만단의 준비 태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UFG 훈련을 언급하면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군사연습으로 우리를 놀래 우려 하였지만 적들의 군사적 도발망동은 오히려 우리 군대와 인민들로 하여금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전면대결전의지를 더욱 굳세게 다지게 하였다”며 “우리를 감히 위협해보려던 적들의 이번 전쟁불장난소동은 우리의 대미초강경공세로 죽탕이 되어 초라한 광대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를 자극하는 것을 피할 심산 밑에 이번 합동군사연습의 구체적인 내용들과 연습에 투입된 핵 전략자산들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다"며 "연습의 도발적이며 침략적인 성격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이 북침 흉계를 포기하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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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일 일요일

시진핑, 文도 외친 軍개혁…‘육’방부가 문제다!


[밀리터리 차이나-윤석준의 ‘차밀’]
윤석준  | 등록:2017-09-04 12:01:14 | 최종:2017-09-04 12:06:3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시진핑, 文도 외친 軍개혁…‘육’방부가 문제다! 
[밀리터리 차이나-윤석준의 ‘차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측근인 리쭤청(李作成·64) 육군 사령관(상장)을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참모장으로 승진시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성도일보 등을 비롯한 각종 중화권 언론은 시 주석이 집권 2기를 맞아 공산당 인사보다 인민해방군 장악부터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했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처럼 정치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고 믿는 중국 혁명 1세대의 자녀다. 그만큼 공산당 정권 유지를 위한 병권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홍콩 명보가 인용한 군사전문가인 니러슝(倪樂雄)의 말이다. 시 주석이 지난달 1일 건군 90주년을 맞아 열병식, 경축대회에서 자신에 대한 충성이 군 전투력의 원천임을 강조한 발언했는데 그 뒤 깔린 배경이란 얘기다. 대만 군사전문가들 다수가 시 주석이 중국인민해방군(PLA)의 장‧단점을 경험하고, 어떻게 미국과 싸워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한다고 본다. 중국인민해방군 판공실 비서 근무한 경험이나 미 해군 항공모함 탑승한 경험 그리고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문선단 단장까지 거친 그의 경험도 한몫한다.  
[출처: 신화망]
이런 시 주석이 2013년 3월 후진타오(胡錦濤) 전(前) 국가주석로부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받자마자 착수한 게 인민해방군(PLA)을 대표하는 ‘육군(陸軍)’ 개혁이다. 중국군이 항공모함 건조에 나서고, 스텔스 전투기까지 만드는 마당에 어째 육군은 상당히 정치적이고, 병력만 많은 형태를 유지했다. 딱히 변화할 의지도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는 뜻이다.
미래전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변하지 않는 육군이 주도하다 보니 얼토당토 않은 상황도 벌어졌다. 해군이 2006년 건조된 루저우(旅洲)급 구축함 추진체계가 ‘스팀’ 체계였다. 변화는 해야 하는 데 군 현대화의 중심에 육군이 버티다 보니 껍데기만 그럴듯하고 추진 체계나 핵심 부품 등은 구식, 그 자체였다. 해군 입장에서 불만이 대단했다. 
051C형 루저우급 [출처: 위키피디아]
이 와중에 시 주석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동북아 상황을 평시가 아니라 전시로 보고 있다.  언젠가는 주변국과의 분쟁은 물론 미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평시체제인 ‘군구(軍區)체제’를 전시체제인 ‘전구(戰區)체제’로 바꾸며 대대적인 육군 개혁에 칼을 든다. 
2013년 11월에 개최된 제18기 제3차 중앙공산당 전체회의 이후 시 주석은 자신을 조장(組長)으로 하는 ‘국방군사개혁영도소조(國防軍事改革領導小組)’를 창설했다. 각 성(省) 별로 이권과 정치화된 군을 확실히 잡으려고 만든 새로운 지휘체계였다. 당장 조직에 처한 현실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지난해 11월 26일에 국방개혁영도소조 회의에서 ‘관위국방화군대개혁심화적의견(關爲國防和軍隊改革深化的意見)’이 공표됐다.
지난달 16일 조지프 던포드(Joseph Dunford) 미 합참의장이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과 만났다. 이후 던포드 의장은 북부전구 사령부을 방문해 쑹푸위안 장군도 만났다. [출처: 신화망]
중앙군사위원회(이하 중군위)에 ‘육군지휘기구’를 창설해 육군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해 1월에는 육군의 4대 총부(四代總部)를 해체해버리고, 중군위에 연합작전 수행을 위한 15개 참모부서를 뒀다. 중군위를 보면 미군 합동참모본부가 떠오를 정도로 유사하다. 지난 8월 17일 중국을 방문한 미 합참의장 조지프 던포드(Joseph Dunford) 미 합참의장(해병대 대장)이 만난 군 인사도 중군위 부주석이자 연합작전지휘소 부지휘관인 판창륭(范長龍) 육군 상장이었다.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왼쪽)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만났다. [출처: 중앙포토]
지난해 2월엔 평시체제인 7대 군구(軍區)를 해체해버렸다. 대신 전시체제인 5대 전구사령부(戰區司令部)를 창설했다. 기동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육군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나온 조치였다. 당시 중국 내 언론은 시 주석이 ‘중국군 개혁 2.0’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개혁 내용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조직 개편이다. 중국인민해방군(PLA)에서 육군을 분리시켰다. 3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줄이는 등 육군 경량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예비병력 관리 주력하는 동시에 ‘인민해방군-인민무장경찰-민병’의 3결합(三結合) 체제에 ‘예비역 부대’를 포함시킨 4결합(四結合) 체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인적쇄신도 진행한다. 주요 육군 부대 작전 보직자를 실전 경험이 있는 야전형 지휘관으로 바꿨다.
시 주석의 군 지휘관 교체 기준도 달라졌다. 50대 후반과 60대 초반 나이인 비교적 젊은 야전형 장성을 부사령관급 자리에 앉혔다. 이렇게 지난 6개월간 60~70대 나이인 약 40여 명의 장성을 퇴역시켰다. 파격적 인사도 이어졌다. 지난 6월 정허(鄭和) 육군상장(58)을 국방대 총장에 임명했고, 주성링(朱生嶺) 육군소장(59)을 중군위 정치위원에, 중국 공군 최고 조종사로 알려진 창딩추(常丁求) 공군소장(49)을 주(駐)마카오 부대장에  임명했다.
공군 최고의 조종사이자 용장인 창딩추 주마카오 부대장 [출처: 바이두 백과]
일각에선 시 주석의 ‘자기 사람심기’로 보는 경우나 후진타오 및 장져민(江擇民) 파벌 간의 권력투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시 주석의 육군 개혁을 너무 폄하한 분석이다. 내륙지역 각 지방성 정치권과 연계된 육군 파벌 조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정치군인을 배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들 대부분은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승진시킨 군부 지도자였고, 대부분 부패했다.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후(徐才厚) 상장을 부패혐의로 구속했다. 2012년 이래 약 100명의 육군 소장급 군수뇌부가 뇌물혐의로 퇴역했다. 지난해에도 4885명의 육군 간부가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음으로 부대를 전면 재배치했다. 각 성별로 있는 게 아니라 5개 전구사령부로 나눠버렸다. 미군이 전 세계에 맞춤형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통합사령부를 구축한 것과 비슷하다. 5개 전구사령부를 더 뜯어보면 이렇다. 북부전구사령부는 러시아·몽고·북한를 염두에 둔 지상전 위주 맞춤형 작전을, 서부전구사령부는 중앙아시아와 신장자치구 내전을 전제로 한 대테러 위주 작전을, 중부전구사령부는 수도권 방어를 위한 대공방어와 미사일 위주 맞춤형 작전을, 동부전구사령부는 동중국해·대만·일본·한국 등을 고려한 공중-해상 맞춤형 작전을, 마지막으로 남부전구사령부는 아세안, 인도와 남중국행를 염두에 둔 지상군-해군 상륙작전에 초점을 맞췄다.
[출처: 중앙포토 *유동원 ‘중국 군체제 개혁연구: 추진경과, 내용 평가 및 영향’]
지휘체계도 단순화시켰다. 각 군종(軍種)을 대변하던 ‘4대 총부’ 통제능력이 없었다. ‘중군위⇒총부⇒군구⇒현장부대’ 4단계에서 ‘중군위⇒전구사령부⇒현장작전부대’ 3단계로 간소화했다. 정치적 개입을 완전히 배제시키려는 전략이다. 총정치부가 주관하던 불필요한 문선단 활동을 축소시켰다. 그간 총정치부 문선단은 공산당 간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실제 지난 2013년 장쪄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의 총애를 받는 중국군 가수 송주잉(宋祖英)가 지휘하는 해군문선단의 중국군 순회공연을 취소한 바 있다. 연합작전(聯合作戰)을 강조하며 중앙집권적 체제도 갖춘다. 시 주석이 중군위를 통해 통합군에 직접 지시 내리는 형태로 운영된다. 미군과 유사한 작전지휘조직이다.
공중 급유 훈련중인 중국 공군 H-6U [출처: 신화망]
자연스레 시 주석의 육군은 ‘맞춤형 기동작전’을 지향하게 됐다. 우선 작전 리듬이 빨라졌다. 중국 전체 면적 1/2 이상을 작전구역으로 두는 서부전구사령부는 전투 리듬이 엄청 빠르다. 북부전구사령부는 내몽고까지 포함해 기동성이 더 필요해졌다. 그만큼 작전구역이 넓어진 것이다. 중국이 Y-20 대형 수송기와 H-6U 공중급유기를 가지려는 이유다. 지상군 기동작전에서 전투기의 활약은 매우 중요하고, 공중 급유는 필수다. 전차도 바꿔야 한다. 기존에 무거운 저속 대형 전차(MBT)가 아닌, 가볍고 빠른 경량 전차를 개발 중으로 서부 사막 지역에서 시험평가에 돌입한 상황이다.  
지난달 3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진해 기지에서 잠수함 안중근 함에 탑승해 근무 중인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합참의장 이·취임식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강한 군대가 평화 가져온다…국방개혁 신속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중앙포토]
물론 기존 육군 내 보수진영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예비역 대우와 복지 문제에 대해 크게 불만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중국군 개혁 2.0’은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다. 평시에 익숙해 늘어진 육군을 전시 체제의 강한 군대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명분상으로 봐도 맞다. 이번 개혁안을 보면서 중국이 미국식 통합사령부 개념에 오밀조밀 뜯어본 흔적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지난달 20일 합참의장 이·취임식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강한 군대가 평화 가져온다…국방개혁 신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은 벌써 저만큼 앞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정리=차이나랩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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