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16년 7월 4일 월요일

재난 응급구호품, 면도기는 괜찮아도 생리대는 안돼

‘여성마다 취향이 달라 생리대를 제외했다는 국민안전처’
임병도 | 2016-07-05 07:25:3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민안전처가 입법예고한 ‘재해구호법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응급구호세트에서 생리대를 삭제한다고 되어 있다. ⓒ국민안전처
2016년 7월 8일부터 재난현장에 지급되는 응급구호세트에서 생리대가 제외됩니다. 국민안전처는 다음 달부터 ““손거울․빗, 볼펜, 메모지, 손전등, 우의, 생리대”를 삭제하고 “바닥용 매트(140×200, 우레탄, 방수) 1개, 슬리퍼(대, 중, 소) 1족, 안대 1개, 귀마개 1개”를 추가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안전처의 생리대 제외는 지난 4월 22일 입법 예고한 ‘재해구호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때문입니다. ‘재해구호법 시행규칙’ 제3조에는 ‘비상식량·침구·의류 등 필요한 재해구호물자를 충분히 확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시행규칙에는 별도로 재해구호물자의 종류 및 기준을 정해 놓고 있으며, 국민안전처는 명시된 재해구호 물자를 확보 또는 파악해야 합니다.

‘면도기는 유지하고 생리대는 제외한 국민안전처’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재해구호물자의 종류 및 기준 ⓒ국가법령정보센터
현행법으로 확보해야 하는 재해구호물자는 여성과 남성 등 개인에게 지급되는 응급구호세트와 1세대 4명 기준으로 지급되는 ‘취사구호세트’가 있습니다.
시행규칙을 보면 응급구호세트 남성용과 여성용에는 ‘담요, 칫솔, 세면비누, 수건, 화장지, 베개, 손거울(빗), 볼펜, 메모지, 손전등, 우의, 면장갑, 간소복, 속내의, 양말’이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공통 품목 이외 남성용에는 ‘1회용 면도기 1개’가 여성용에는 ‘생리대 일반 중형 1조’가 포함됩니다.
국민안전처는 남성과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손거울(빗), 볼펜,메모지, 손전등,우의’를 삭제하면서 여성에게 지급되는 ‘생리대’를 제외했습니다.
남성용 면도기는 유지하면서 여성용 생리대는 제외한 국민안전처의 결정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면도를 하지 않더라도 신체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소지는 적지만, 생리대의 경우는 여성에게 필요한 물품인 동시에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마다 취향이 달라 생리대를 제외했다는 국민안전처’
시사오늘 김인수 기자에 따르면 국민안전처는 “생리대는 오래보관 할 경우 변질의 우려성이 있고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 개인별 취향이 다르다는 등 의견사항을 조정해서 제외시켰다”고 합니다.
▲지난 4월에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재해구호물자 개선대책 ⓒ국민안전처
국민안전처는 ‘변질의 우려성’ 때문에 응급구호품목에서 생리대를 제외했다고 설명했지만, 통상적으로 생리대는 유통기간이 3년으로 꽤 긴 편입니다. 국민안전처는 2016년 4월 재해구호물자 관리 개선대책에서 ‘비축기준의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또한, 국민안전처가 ‘여성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리대를 제외한 부분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생리대가 필요한 여성이 자신이 사용하던 제품과 달라 사용하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재난 현장 여성에게 절실한 생리대’
태풍이나 지진으로 발생한 재난 현장에서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품 중의 하나가 생리대입니다. 여성신문에 따르면 2013년 초강력 태풍 하이옌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필리핀 NGO 관계자들은 ‘여성의 경우 속옷과 생리대 등 기본적인 위생용품을 구할 수 없고 화장실도 부족해 질염 등 생식기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면서 생리대가 절실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생리대, 분유가 절실해요)
불과 얼마 전에 여학생이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지자체에서는 저소득층 학생에게 생리대를 무료로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생리대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닙니다. 여성의 건강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중요한 구호물품 중의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제대로 된 조사 없는 정부의 법 개정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재해 현장에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구조해야 하는 정부가 여성의 건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듯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090 

북, 미국이 끼친 피해액 약 65조달러, 약 7경 5천조원

북, 미국이 끼친 피해액 약 65조달러, 약 7경 5천조원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7/04 [20: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오늘날 미국의 대결광기는 유럽에서 러시아에게, 동아시아에서 조선에게 각각 집중되었다. 조선은 미국의 대결광기에 맞서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고 미국에게 항복을 요구하며 최후결전의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위의 사진은 2015년 7월 2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로 개건증축된 신천박물관을 현지지도하는 장면이다. 신천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자료들 가운데는 "미제는 신천강점 52일 간에 3만5천383명 학살"이라고 쓴 글도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하며 미제와는 반드시 총대로 결산해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신천 계급교양관에서 미군들에 학살만행으로 희생된 북 주민들에 대한 설명들 들으며 대미 적개심을 고취하고 하고 있는 북 주민들, 요즘 북의 곳곳의 학살 기념관에서 이런 교육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북미 미국과 최후 결전 의지를 가다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 자주시보

▲ 신천기념관에 전시된 미군들의 양민학살 만행 자료     ©자주시보


26일 한겨레신문 게시판,  6월 25일 재미동포연합 페이스북 등 복수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소개된 북의 대외선전사이트 조선의 오늘의 '미제가 공화국북반부에 끼친 피해액 64조 9 598억 5 400만US$'라는 제목의 글은 미국이 그간 북에 끼친 피해액이 64조 9 598억 5 400만US$(현 환율로 7경4,619조3,842억8,980만 원)이라고 보도하였다.

1, 2, 3편으로 나누어 소개된 이 피해액은 1945년 9월 8일부터 60년간 북에 입힌 모든 인적, 물적 피해액을 공개적으로 표출된데 기초한 것이므로 확증되지 못한 피해는 훨씬 더 많을 것이고, 미국이 여성들에 가한 조직적이며 집단적인 인권유린범죄들에 대하여서는 계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북은 "미제가 북에 끼친 피해 가운데서 가장 엄중한 것은 수많은 평화적 주민들을 야수적으로 살륙한 것이라고 하며, 북의 인민은 이에 대하여 끝까지 계산하고 피의 대가를 받아낼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보도에서는 한국전쟁 기간 미국이 살륙만행을 감행함으로써 발생한 북 주민 인명피해자수는 사망자 124만 7 870여명, 납치자 91만 1 790여명, 행방불명자 39만 1 740여명을 비롯하여 도합 506만 770여명에 달하고있다. 

국제관례에 따른 계산방법에 준하여 이 피해액을 계산한데 의하면 사망자, 랍치자, 행방불명자의 피해액은 16조 5 333억9 600만US$, 부상자와 장애자의 피해액은 9조 6 354억 2 700만US$로서 도합 26조 1 688억 2 300만US$이라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미제가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일시적강점시기 늙은이이건, 미성년이건, 임신부이건 녀성들을 닥치는대로 릉욕한것과 같은 조직적이며 집단적인 인권유린범죄들에 대하여서는 계산하지 않은것이다.

북은 2009에는 북만 65조달러 남북 통틀어 107조 달러, 올들어 2016년 1월엔 노동신문을 통해 남북을 합쳐 116조 달러 배상금을 계산하여 발표하였는데 이번엔 북만 약 65조 달러라고 발표한 것이다.

특히 이번엔 정제제재로 인한 피해액을 1940년대부터 시기별로 구분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물인 경제제재와 봉쇄책동에 의하여 우리 인민이 받은 피해는 이루 헤아릴수 없지만 공개적으로 표출된 문제들에 한하여 2005년까지 60년간의것을 계산한 액수만도 13조 7 299억 6 400만US$에 달한다고 발표하였으며 경수로건설과 중유납입이 지연파탄된것으로 하여 입은 손실액은 1조 1 650억 800만US$나 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미국이 최근년간 우리의 평화적인 위성발사를 문제시하고 나라의 최고리익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정정당당하게 시행한 핵시험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오도하면서 유엔안전보장리사회를 사촉하여 날조해낸 《제재결의》로 강성국가건설을 저애시킨 막대한 피해액은 계산도 하지 않았다며 추후 이에 대한 계산도 더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올해 들어 벌써 2번째나 북이 이런 전쟁배상금을 언급하고 있는데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현재 북미 사이에는 막후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된 심각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국제법 교수는 평화협정에는 종전선언, 양국관계정상화, 전쟁배상금 지급이라는 3가지 내용에 대한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지급하는 것이 전쟁배상금이다. 북은 미국에게 이런 막대한 금액의 전쟁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미국의 2016년 예산은 약 4조달러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가 돈 한 푼 쓰지 않고 15년 이상 예산을 모두 북에 갔다 주어야 겨우 갚을 수 있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북이 요구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와 봉쇄 물가상승에 의해 그 액수는 증가하고 있다.

국제무역에 밝은 본지의 한 자문위원은 한꺼번에 갚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북미가 관계개선 의지만 있다면 온갖 형태의 무담보 차관, 자원개발, 무역 최혜국 대우 등 경제적 이권 제공 등의 방법으로 이 정도의 전쟁배상금은 해결할 수도 있다며 문제는 미국이 진정으로 북과 관계개선에 나설 용의가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남산 끌려가 ‘코렁탕’ 먹던 시절과 얼마나 다른가


[뉴스분석] 보도지침 폭로 30년, 여전히 계속되는 청와대의 전화… 협조 요청했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었다고?

이정환 기자 black@mediatoday.co.kr  2016년 07월 04일 월요일
“여기 남산인데요. 지금 무슨 통신으로 무슨무슨 기사 들어왔죠? 그거 내보내면 안 됩니다. 알았죠?” 

남산은 중앙정보부를 말한다. 남산에서 전화를 받으면 편집부는 “무슨무슨 기사 hold”라고 적어놓곤 했다. 그게 이른바 ‘보도지침’이었다. 신아일보 정치부장 출신 김희진씨가 쓴 ‘유신체제와 언론통제’에 따르면 “신문사 편집국에 중앙정보부원이 상주하고 있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고 육군 보안사 요원이 자주 들르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걸 ‘라면 먹는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미국의 한 신문이 CIA를 ‘Central Ill-informed Agency’라고 비꼰 걸 인용하면서 중앙무지부라고 번역했다는 이유로 밤새 라면을 먹어야 했다. 미국 CIA를 비아냥거리는 건 KCIA(중앙정보부를 의미)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라면을 먹는다’는 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코로 라면 국물을 먹기도 했다. 군복을 갈아입히고 욕설과 구타로 조사를 시작하는 경우도 흔했다.

보도지침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주언 전 KBS 이사가 쓴 ‘한국의 언론 통제’에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언론 통제 사례가 다양하게 설명돼 있다

학생들의 ‘시위’는 ‘학원사태’라고 쓰게 했고 ‘물가 인상’ 대신 ‘상향 조정’으로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부천서 성 고문 사건은 “운동권 학생들이 성을 혁명 도구화한다”는 공안 당국의 발표 내용을 쓰게 했다. 미국의 민주화 압력은 철저하게 통제했고 군 관련 뉴스나 정부 고위층의 부패도 보도 관제 사항이었다.

보도지침은 ‘가’ ‘불가’ ‘절대 불가’ ‘과대선전 보도’ ‘용어 사용 불가’ ‘이행 안 하면 엄중 문책’ 등과 함께 어느 면에 몇 단 등 제목과 단수, 활자 크기, 사진 사용 등을 구체적으로 명기해 내려왔다.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도하지 말라” 1986년 7월27일. 
“경상수지 계속 흑자라는 한국은행 발표는 1면 톱으로 다뤄라.” 1985년 10월21일. 
“학생 시위를 ‘적군파식 수법’이라고 제목 붙일 것.” 1985년 11월28일.
“‘유인물 압수’ 보다는 ‘화염병과 총기 등 압수’로 뽑을 것.” 1986년 2월15일. 
“검찰이 발표한 내용만 싣되 검찰 자료 중 ‘사건의 성격’에서 제목을 뽑으며 검찰 발표 전문을 꼭 싣고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 보도는 불가” 1986년 7월17일. 
▲ 보도지침의 일부. "김대중 회견 보도 불가"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이 책에 인용된 신홍범 전 조선일보 기자의 글 일부다. 

“기자들이 고생해 가면서 쓴 기사가 부차장의 서랍 속으로 들어가거나 내용이 잘려나가고 위로 올라가면서 아예 묵살됐다. 그러고도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기사가 나가면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해 조사하고 위협했으며 걸핏하면 기자들에게 폭행을 가해 공포에 떨게 했다. 권력은 이런 폭력의 공포가 가져오는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김주언 전 이사는 ‘한국의 언론 통제’에서 “언론이 미움과 적대와 분열을 위해 동원되고 이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언론에 지극히 불행한 일이며 동시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김성우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의 에세이집 ‘돌아가는 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한국의 언론 통제’ 다시 인용.)

“1986년 6월9일 김씨의 단식이 중단됐을 때 정부 당국은 ‘제목은 2단’이라는 단서를 붙여 기사를 해금했다. 이 단서에서 탈출하려는 각 신문의 숨바꼭질을 보면 가련하도록 가상하다. 석간의 A 신문은 가판용 첫 판에서 주문대로 2단을 지켰는데 B 신문은 5단으로 껑충 위반했다. 당국의 불호령으로 배달판에서 B 신문은 3단으로 복귀한 대신 A 신문은 B 신문의 위반을 핑계대고 4단으로 솟았다. 조간은 첫 판인 지방판에서 C 신문이 석간의 B 신문을 견본 삼아 5단, 우리 신문은 석간 배달판의 단수를 평균하여 3단으로 정했다. 그러나 시내판에서는 C 신문도 우리도 모두 2단의 철책 속으로 수용되고 말았다. 탈옥은 실패했다.” 

▲ "성 고문"을 "성 모욕"으로 순화하도록 지시가 내려왔다.
이채주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이 쓴 ‘언론 통제와 신문의 저항’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정치현안’ ‘재야문제’로 표현돼 온 전 신민당 총재 김영삼씨의 단식 관련 기사를 1면 2단으로 사진을 빼고 보도해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이 붙은 보도지침이 전달됐다. 크게 고민했다. 보도지침을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1면 톱 5단 크기의 기사로 보도했다. 기사가 나가자 편집국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압력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서울시대 일부 지역에 배달되는 2판부터는 2단으로 줄였다.” 

보도지침을 위반할 경우에는 혹독한 보복이 뒤따랐다. 1985년 3월 김대중-김영삼의 만남을 3단 이하로 보도하라는 보도지침을 깨고 한국일보가 6단 크기로 보도했다. 청와대 홍보조정실장이 신문사를 찾아와 회장을 만나고 갔고 편집국장이 경질됐다. 중공 폭격기 불시착 사건의 엠바고를 깬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편집국장의 첫 일과는 아침에 출근해 그날의 지면 제작에 협조를 요청하는 이른바 보도지침을 전화로 통고받는 데서 시작된다. 이 기사는 1단으로 해라, 이 기사는 2단을 넘어설 수 없다, 이 사진은 못 싣는다는 것 등이다. 사건의 중요도에 맞춰 담당관 또는 홍조실장 선에서 선처를 요망한다. 조금 있으면 안기부 담당관이 확인차 전화를 하거나 찾아온다. 문공부 장관은 좀처럼 전화는 걸지 않는다. 큰 일이 있어 필요할 때만 신문사 편집국장과 방송사 보도국장을 한꺼번에 사무실로 부르는 것이다.” 

이채주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의 증언이다.

김주언 전 이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주요한 기사가 모든 신문에 사회면 1단으로 보도되던 때 언론인들은 비통함에 젖어 낮술을 마시면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가판에는 크게 난 기사가 시내판에서 줄어들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88년 언론 청문회에서 이광표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보도지침의 70% 가량이 지켜졌다고 한다.

1986년 9월9일 월간 말에 보도지침이 공개됐던 날 정부에서 내려온 보도지침은 “보도지침 공개 기자회견 보도 불가”였다. 보도지침을 폭로한 김주언 전 이사는 당시 한국일보 9년차 편집부 소속의 기자였다. 그무렵 월간 말은 여러 발행인들이 돌아가면서 구류를 살았다. 안기부는 김태홍 월간 말 사장을 지명수배했고 김 사장의 진술에 따라 김주언 기자와 신홍범 기자 등을 곧바로 구속했다. 이들은 170여일의 옥고를 치른 끝에 1심에서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1995년에서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긴 했지만 그동안 이들이 치러야 했던 고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의 언론 자유, 30년 전과 과연 다른가. 
참담한 일이지만 이걸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 이후 8년, 숱하게 많은 기자와 PD들이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물리적인 폭력이냐 시스템적인 겁박과 불이익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보도지침 폭로 이후 정확히 30년이 지난 지금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녹취록이 터져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전 수석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21일과 30일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압박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전 수석은 “하필이면 (대통령이) 오늘 KBS를 봤네, 한 번만 도와주시오”라며 “이런 식으로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KBS가) 지금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 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하는 등 김 전 보도국장을 압박했다. 특히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고까지 요구하면서 직접적으로 편집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 통제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다를 게 없다. 특히 이 경우는 세월호 참사 직후 온 국민의 관심이 희생자 구조와 책임 규명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고약하다. 희생자들이 늘어난 책임이 청해진 해운에 있는지 해양경찰에 있는지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청와대든 어디든 그 비판의 당사자가 그 비판 자체를 없는 걸로 할 수는 없다. 설령 그게 협조 요청이든 친분 있는 사이의 읍소든 매우 적절치 않다.

이정현 : “고거 좀 한 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나 요거 한 번만 도와주시오. 아주 아예 그냥 다른 걸로 대체를 좀 해 주던지 아니면 한다면은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 번만 더 녹음 좀 한 번만 더 해 주시오. 아이고.”
김시곤 : “그렇게는 안 되고 여기 조직이라는 게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렇게는 안 되고 제가 하여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게요. 내가.”
이정현 : “그래 한번만 도와줘. 진짜 요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 한번만 도와주시오. 자~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김시곤 : “하여간 어렵네 어려워.”
이정현 : “국장님 요거 한 번만 도와주시오. 국장님 요거 한번만 도와주고 만약 되게 되면 나한테 전화 한번 좀 해줘~ 응?” (2014년 4월 30일, 이정현-김시곤 녹취록 가운데)
문제는 이런 보도 통제가 일상적으로 전방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은 극히 일부의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물 밑에서 작동하는 압력은 다층적이고 구조적이다. 이 전 수석은 방송법 위반 혐의로 이미 검찰에 고발된 상태인 데다 야당이 백종문 녹취록 등과 함께 방송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향후 추가로 언론 통제 정황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주목할 부분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반응이다.

이정현 전 수석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사이라 통화가 조금 지나쳤다”며 “내 불찰이고 김 국장에게 굉장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당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구조작업을 전담하고 있던 해경이 선조치 후징계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뜻에서) 간절히 호소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1일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정현 홍보수석이 뉴스를 보고 이야기했던 것은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요청)를 했던 것 아닌가라고 추측한다”고 답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도 “긴급한 상황에 놓이다보니 거친 표현이 오해를 살 순 있었지만 본연의 업무수행을 했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이 전 수석을 옹호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응은 협조 요청이었을 뿐 지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30년 전에도 정확히 같은 논리로 보도지침 폭로에 대응했다.

“보도지침을 두고 정부 당국은 국가기밀 사항에 대해 언론이 신중을 기해 달라는 의미에서 요청한 것일 뿐 요청 내용을 언론사가 알아서 판단하는 참고사항에 불과하다고 했다. 언론을 통제한 것이 아니라 언론사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언론 통제’ 가운데)

정부의 보도지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문책을 받거나 경질되는 건 물론이고 남산에 끌려가 라면을 먹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남산에 불려가지도 않고 고문도 사라졌지만 정부의 협조 요청이 단순히 요청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일자리를 잃거나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김시곤 전 국장은 이 전 수석의 전화를 받은 지 열흘만에 사퇴 기자회견을 연다. 당초 세월호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김 전 국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지만 김 전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서 사퇴를 압박했다”면서 “길환영 KBS 사장은 언론에 대한 어떤 가치관과 신념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다”고 폭로했다.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의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에는 적반하장식 물귀신 작전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2년 만에 숨겨진 맥락이 드러난 것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김시곤 국장을 해임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청와대 입장에서는 아주 기쁘게 받아들여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KBS 보도국장 입장에서 청와대 수석의 전화는 단순히 협조 요청 이상의 무시할 수 없는 압박이 된다. KBS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보도국장을 사장이 임명한다. 윗 선에서 누군가의 말 한 마디면 하루 아침에 자리가 날아간다.

김 전 국장이 자신의 징계 무효 소송과 관련 법원에 낸 이른바 ‘김시곤 비망록’에 따르면 길환영 당시 사장이 “윤창중 속보를 첫 번째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한 직후 이 전 수석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한 적도 있다. 그 결과 톱 세 꼭지로 편성돼 있었던 윤창중 보도가 두 건으로 줄어 3~4번째로 밀려났고 사장과 보도본부장이 주문한 ‘정부, 북한에 대화 제의’ 관련 리포트 두 꼭지가 톱으로 올라갔다. (당시는 이정현 전 수석이 홍보수석이 아니라 정무수석을 맡고 있을 때였다. 김시곤 전 국장은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본연의 업무 수행이었다는 청와대 해명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수석이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 리포트를 문제 삼아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김 전 국장은 비망록에서 “맨 뒤에 편집하는 것은 오히려 시청자 주목도가 높아서 홀대하는 게 아니다”라는 설명을 했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김 전 국장은 이 전 수석을 ‘이 선배’라고 부르며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 “저기 뉴스라인 쪽에 내가 한번 얘기를 해볼게요”, “제가 하여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게요”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실제로 보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와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방송의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 이번에도 KBS는 취재를 했지만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다. 6월 30일 오후 전국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취재중인 뉴스타파, JTBC, KBS 영상카메라와 취재진(왼쪽부터).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30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편집국과 보도국에 기관원이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기자들에게 보도지침이 내려오는 건 아니지만 낙하산 사장을 통해 보도에 영향을 미치고 청와대가 협조 요청이라는 명분으로 직접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건 본질에서 다를 바 없다. MBC에서는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고 편집과 편성의 독립을 요구했던 기자와 PD들이 아직 현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조중동 등 일부 보수 성향 언론은 특혜에 가까운 종합편성채널을 불하 받아 편향적인 방송을 쏟아내며 여론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등 YTN 해직 언론인들은 해직 8년에 들어서고 있다. 숱한 검찰 수사와 징계, 해고 등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들은 씨가 말랐고 예능 프로그램 조차 검열과 심의의 압박로 자기검열의 덫에 걸려 있다. 

남산에 불려가 코렁탕을 먹던 그 시절에 비교해 과연 한국의 언론 자유는 얼마나 더 진전됐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1975년 동아투위 사건으로 해직돼 41년을 해직기자로 살아온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미디어오늘 기고에서 이정현 녹취록을 “신종 보도지침”이라고 규정한다. 김 이사장은 “박근혜 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언론 탄압이나 통제를 보면 언론자유 지수 70위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 출소환영대회 열려

'동지들 품으로, 대중속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 출소환영대회 열려
강경태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
승인 2016.07.04  23:38:28
페이스북트위터
  
▲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조의 방북 건으로 4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7월 4일 만기 출소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44년이 되는 날, 대구교도소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00일에 즈음하여 ‘조의 방북’길에 올랐던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이 4년간의 옥고를 이겨내고 사랑하는 가족과 동지들의 품으로 걸어나왔다.
노수희 부의장은 지난 2012년 3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00일에 즈음하여 ‘지도자를 잃은 충격과 상심으로 피눈물의 대국상을 치르며 가슴 아파하는 북녘동포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민족적 의리와 동포애의 마음으로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조의 방북길에 올랐다’고 범민련 남측본부는 밝힌 바 있다.
104일간의 조의 방북 이후 판문점을 넘어서는 노수희 부의장을 공안당국은 짐승처럼 끌고가, 2013년 9월 26일 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등의 혐의로 4년의 형을 선고했다.
  
▲ 출소환영 현수막을 들고 노수희 부의장의 출소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 출소환영 현수막을 들고 노수희 부의장의 출소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이 날 4년의 형을 마치고 출소하는 대구교도소 앞에는 ‘동지들 품으로! 대중 속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라는 환영의 구호와 함께 범민련,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사월혁명회 회원들과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노수희 부의장의 출소를 환영하기 위해 서울, 경기, 광주, 충북, 부산, 경남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180여명이 모였다.
이 날 환영사에서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눈 앞에 있는 8.15민족공동행사와 북측이 제안한 ‘연석회의’를 성사하는 과정이 부끄러운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노수희 부의장의 환영사를 대신 하겠다”고 운을 뗀 뒤 ‘감옥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완강한 투쟁 속에서 많은 옥고를 치르고 탄압을 감수해야만 했던 범민련’처럼 “여기 있는 후배들도 이제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노수희 부의장이 걸어갔고 또 걸어가야 할 그 길에 함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했다.
  
▲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8.15민족공동행사와 북측이 제안한 연석회의를 성사하자’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반민족, 반통일정부를 철저히 심판하는 것과 아울러 우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이 그 연석회의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조의 방북은 죄가 아니며 방북의 당위성은 여전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숱한 탄압 속에서도 범민련 남측본부는 여전히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한 남과 북, 해외의 3자연대 조직체로서 굳건히 서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북측이 제안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를 소개하고 노동, 농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회단체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반민족, 반통일정부를 철저히 심판하는 것과 아울러 우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이 그 연석회의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반민족, 반통일 정부를 철저히 심판하는 것과 아울러 우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이 그 연석회의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련 양연수 고문은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은 민주노련의 고문이기도 하다”고 소개하면서 “함께 빈민운동을 이끌면서 없는 사람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고 “노수희 부의장이 걸어온 길처럼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이 모두 통일운동에 나설 때 이 나라는 진정한 자주국가가 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 바쁜 일정 중에도 진보진영을 대표하여 출소환영대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상임공동대표.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진보진영을 대표하여 발언에 나선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상임공동대표는 “이제 자주통일시대를 열어 갈 것이냐, 전쟁으로 갈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고 말하고 “노수희 부의장이 감옥문을 박차고 우리 투쟁의 대열에 동참하자고 나오셨다”며 “함께 투쟁해서 자주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반드시 이루자“고 강조했다.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 조덕휘 위원장은 “30여년 전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며 “제가 배가 고파서 갈 때면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술도 받아주면서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사이”라고 회고했다.
노점투쟁 과정에서 옥고를 치르고 통일운동하면서 옥고를 또 치르면서 “30년 동안 너무 고생하는 사모님이 오늘처럼 계속 웃으셨으면 좋겠다”며 “같은 민족이 자기네 땅에 조문을 갔는데 국가보안법의 사슬을 엮어서 감옥에 보내는 세상을 갈아 엎어버리고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 사모님 얼굴을 항상 활짝 웃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 김영표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은 4.13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에 대한 공안탄압을 지속하면서 우리를 분열시키고 단결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노수희 부의장 출소에 맞추어 “우리 공안탄압을 이겨내고 진보진영 스스로의 분열을 끝장내면서 굳게 단결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돌파하자”고 강조했다.
  
▲ 빈민조직의 대표들이 노수희 부의장 출소환영사를 함께 하고 있다.(좌-전노련 조덕휘 위원장, 우-민주노련 김영표 위원장)[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이어 각 지역과 부문을 대표하는 환영인사에서, ‘출소환영대회’를 함께 준비한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권택흥 본부장은 노수희 부의장 출소를 맞아 전국에서 오신 원로 어르신들과 통일동지들에게 감사를 인사를 전하면서 “대구지역 노동자들과 민중들은 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을 기념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이곳 대구에서 개최한다”고 소개하고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대구교도소에 통일운동의 거목 노수희 부의장이 계신것도 큰 영향을 준 것”이라고 말하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어 “우리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3자연대의 정신이 살아있다”며 “노수희 부의장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 노동자, 민주노총은 8천만 겨레 앞에 최선봉에서 자주통일의 선봉대로 힘차게 달려나가겠다, 꼭 믿어주고 함께 해달라”는 결의를 밝혔다.
평통사 배종렬 지도위원은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6.15공동선언을 통한 자주평화통일을 해결해 나갈 만한 큰 인물이 많지는 않다”면서 “민족적 의리로 동포를 위로하기 위해 어렵게 결단하여 조문을 다녀오고 4년 동안 감옥에서 고생하신 노수희 부의장 같은 분이 이제 나오셔서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8.15민족공동행사와 ‘연석회의’ 제안을 모두 이뤄나갈 수 있도록 함께 손잡고 전진하자”고 말했다.
  
▲ 평통사 배종렬 지도위원이 환영사에 앞서 포옹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 희망새가 힘찬 노래로 환영분위기를 더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축하공연에서 희망새는 ‘아침을 빛나라’를 불러 환영의 분위기를 더했다.
노수희 부의장의 출소를 환영하는 환영사를 ‘범민련 북측본부’와 ‘범민련 해외본부’를 비롯한 7개 지역에서 보내왔으며 ‘범민련 북측본부’의 환영사가 대독됐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신념으로 걷고 의지로 만난시련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 조국통일의 길’이라고 강조하고 ‘범민련 남측본부와 남녘의 각계각층이 통일애국의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게 하며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련방제방식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활동에서 계속 선봉적역할을 다해나가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면서 노수희 부의장에 대해 ‘건강과 앞으로의 통일애국활동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해왔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은 마지막 환영과 결의의 발언을 통해 “처한 조건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로 다른 장소에서 우리는 다 같이 범민련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노수희 부의장이 4년을 고생하고 나온 것은 북측의 지도자가 돌아가시고 큰 국상을 맞은 동포들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다녀온 것이고 최소한도의 남측 자주역량의 양심이라도 지켜줬고 예의라도 갖춰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아픔을 겪는 동포들에게 위로 차 들렀다고 해서 나이 70이 넘는 사람을 4년씩이나 가둬 놓는다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부족 심지어 어느 도둑놈 소굴에도 없는 경우”라고 정부를 규탄했다.
  
▲ 마지막 환영사를 하고 있는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이규재 의장은 “지금 우리는 조국통일과정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며 “그것은 대단히 경사스러운 일이고 이번에 북측에서 제안한 ‘연석회의’ 제안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받아안고 민족이 힘을 합쳐서, 지난 48년 미국놈들과 이승만의 역적질을 견제 해내지 못한 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지 말고 빛나는 조국통일을 완수하는 것으로 그 매듭을 짓자”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평화를 선두에서 이끌고 핵 없는 세상, 압박 받는 민족이 없는 세계의 자주화, 세계의 평화 등 이 모든 것이 높은 사상과 철학으로 무장된 우리의 경험을 살려나간다면 세계를 이끌어 나갈 책임도 능력도 우리에게는 당연히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하고 “그것에 앞서서 우리가 해야할 과제는 반드시 미국놈들을 몰아내는 것은 물론, 이 땅에서 미국놈들이 지은 죄값을 반드시 받아내고 자주통일하는 방향으로 일치단결하는 것”이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은 ‘진보민중진영이 믿음과 신뢰로 더욱더 일심단결하여 민중 앞에 당당히 다가서자’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이어 범민련 진군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노수희 부의장의 출소인사가 이어졌다. “오로지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이행하여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조국통일하는 것 만이 우리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진리에 차있는 북한 인민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로 방북 소감을 밝히면서 “진실의 역사는 진실한 인민이 만들어 나간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제 조국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정세를 낙관하며 “우리 진보민중진영이 믿음과 신뢰로 더욱더 일심단결하여 민중 앞에 당당히 다가서자”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자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출소인사를 마무리했다.
이 날 출소환영대회는 대구교도소 앞에서 진행되었으며 약 1시간 가량 진행된 출소환영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기념촬영 후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아침식사를 하면서 4년간의 옥고를 치른 노수희 부의장에게 그 동안 못다한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 대구경북진보연대 참가자들과 기념사진.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 각 지역에서 함께한 참가자들과 기념사진.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범민련 남측본부는 오는 7일(목)에 남영역 인근 슘(Zum)에서 다시 한번 ‘노수희 부의장 출소환영식 및 범민련 후원주점’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 노수희 부의장 출소환영식 및 범민련 후원주점. [사진 - 통일뉴스 강경태 통신원]

'징역 5년' 한상균 "독재정부보다 탄압 가혹해"


16.07.04 17:18l최종 업데이트 16.07.04 17:19l







▲ 한상균 징역 5년에 울분 토하는 최종진 위원장 대행 서울지방법원이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선고공판을 지켜본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이 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은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정치보복 공안탄압 유죄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석방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법정의와 공안탄압, 노동탄압에 맞서 집회시위의 자유, 완전한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성호


"징역 5년..."

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심담 재판장이 한상균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을 향해 판결 선고를 내리자, 방청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이어지는 선고 내용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심 재판장이 "조용히 해주십시오"라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방청객들의 항의는 계속됐다. 

방청석에서는 "6월 항쟁 때도, 1987년에도 이런 선고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켰느냐"라는 거센 항의가 쏟아졌다. 곧 살구색 수의를 입은 한상균 위원장이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법정을 빠져나갔다. 방청객들은 그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한 위원장은 이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이날 법원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때 경찰관 108명이 다치고 경찰버스·차벽트럭 등 경찰 차량 43대가 파손된 책임을 한상균 위원장에게 물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공용물건손상 등을 인정해 징역 5년과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관련기사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징역 5년 선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선고 직후 민주노총을 통해 "동지들이 무죄라 생각하시면 무죄라고 생각한다. 독재정부 때보다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은 더 가혹하고 교묘하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태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민주노총 "11월 다시 민중총궐기 연다"
▲ 한상균 징역 5년 선고에 화난 민주노총 조합원 "권력에 굴복한 판결 규탄한다" 서울지방법원이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선고공판을 지켜본 민주노총 조합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권력에 굴복한 공안판결 중형선고 규탄한다"며 "한상균 위원장과 모든 구속자를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민주노총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정치보복 공안탄압 유죄판결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두고 "사법부마저 청와대의 손바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판결이다. 오늘 판결은 정권을 우러러 민주와 인권, 노동을 짓밟은 판결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제는 독재 권력만이 공안탄압을 명령하고 있다. 판사는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민중총궐기 집회가 이 땅의 민생·민주화를 이루고 노동개악을 저지하는 정당한 집회였다는 점을 국민들은 4·13 국회의원선거에서 판결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차벽 설치, 물대포 발사 등을 두고 "3중의 차벽과 수 만 명의 경찰 병력, 쏟아지는 물대포는 13만 민심을 짓밟고서라도 청와대 길목을 지키겠다는 이른바 '디펜스 존' 사수를 위한 공권력이었고 불법적 국가폭력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석방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법정의를 요구하는 투쟁과 공안탄압, 노동탄압에 맞서 집회시위의 자유, 완전한 노동 3권 쟁취를 위한 투쟁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노총은 다시 민중총궐기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박근혜 정권의 폭압에 맞서 노동개악폐기, 최저임금 1만 원 등 5대 요구 쟁취를 위한 7월 20일 총파업 총력투쟁, 9월 2차 총파업, 11월 20만 민중의 총궐기로 휘청거리는 정권의 마지막 기반을 무너뜨리는 투쟁의 가장 앞자리에 설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라고 강조했다.
▲ 민주노총 조합원 "한상균을 석방하라"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앞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어 한상균 위원장의 무죄석방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 민주노총 "총파업 정당하다 한상균을 석방하라"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앞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집회를 열어 한상균 위원장의 무죄석방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2016년 7월 3일 일요일

북 전략군, 건드리면 전세계 미군 거점 초토화

북 전략군, 건드리면 전세계 미군 거점 초토화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7/04 [13: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화성14호의 탄두는 화성13호의 탄두와 비교할 수 없이 직경이 크다. 한 눈에도 3배 이상이다.     ©자주시보

▲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탄두, 3개의 폭탄을 장착한 다탄두미사일이다. 북의 화성14호가 이런 3개의 탄두를 장착한 다탄두미사일로 추정된다.     ©자주시보

▲ <사진 11> 화성-13은 1발만 장착하는 단탄두미사일인데 비해, 화성-14는 여러 발 장착하는 각개발사식 다탄두미사일이므로, 탄두폭발력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화성-14 탄두부에는 각개발사식 탄두 4-8발이 장입되는 것으로 보인다. 윗쪽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당위원장이 현지지도한 핵무기병기화공장에 일렬로 놓인 화성-14 6발의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2015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 열병행진에 참가한 8축16륜 자행발사대에 실린 화성-14호의 모습이다.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회람한 화성-14 분석자료에 따르면, 조선은 화성-14를 시험발사하지 않았지만, 개발단계에서 이미 모든 부분의 성능평가시험을 거쳤다고 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왼쪽 북극성이 고체연료, 오른쪽 북극성-1호가 액체연료로켓으로 만든 SLBM이다. 모두 전략미사일들이다.   ©자주시보

▲ 북의 화성 10호의 화염을 보면 중앙의 큰 불꽃 화염과 주변의 작은 직경의 불꽃이 쌍으로 나오고 있다.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전략미사일이다.     ©자주시보


북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전략군절을 맞아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전략군은 침략의 아성은 물론 도처에 널려진 미제침략군기지들을 모조리 불바다로 만들어놓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3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신문은 이날 '우리 당의 믿음직한 핵무장력-조선인민군 전략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민군 전략군은 가장 강위력한 타격무력이며 믿음직한 핵보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어 "위대한 당의 영도를 받는 군대와 인민의 영웅적 투쟁에 의해 전략군의 위력은 날을 따라 비상히 강화될 것이며 정의의 핵보검에 의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굳건히 수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또 "경애하는 원수님의 정력적인 영도의 손길 아래 전략군은 그 어떤 화력타격임무도 막힘없이 수행할 수 있는, 지구상에 원수들이 그 어디에 있든 전면적이고 현실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가진 세계최강의 무장력으로 강화발전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7월 3일을 미사일 부대를 총괄하는 '전략군'의 명절로 정했다.

이번 북의 보도는 조선인민군 전략군들이 한반도와 그 주변의 미군기지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 산개되어 있는 미군 거점 모두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한반도와 동북의 평화와 안전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지키는 무력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이 인정을 하건 말건 북은 이미 군사력에 있어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반열에 올라섰음을 지적한 것과 같다.

문제는 북은 러, 중, 미, 영, 프 이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처럼 평화적 공존 관계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북은 미국과 현재 전쟁 중이다. 잠시 정지, 즉 휴전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위험한 관계에 놓여있는 북이기에 북의 전략무기는 단순한 억제력이 아니라 자칫하면 보복타격 혹은 선제타격용으로 즉각 사용될 수 있는 무기이다. 북의 군사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세계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으며 전쟁위기 또한 고조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016년 7월 2일 토요일

김주언 전 KBS 이사 “전두환 시절 ‘보도지침’처럼 박근혜 정부, 교묘한 언론통제”

[위기의 공영방송]김주언 전 KBS 이사 “전두환 시절 ‘보도지침’처럼 박근혜 정부, 교묘한 언론통제”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ㆍ‘이정현 녹취록’ 공개 설득한 김주언 전 KBS 이사
김주언 전 KBS 이사가 1일 서울 중구의 한 찻집에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간 통화 녹취록 공개 과정을 이야기하다 생각에 잠겨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김주언 전 KBS 이사가 1일 서울 중구의 한 찻집에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간 통화 녹취록 공개 과정을 이야기하다 생각에 잠겨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는 ‘보도지침’이 있었다. 당시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에서 언론통제를 위해 특정 사안의 보도 여부와 방향, 심지어 기사의 크기까지 정했다. 언론 내에서만 쉬쉬하던 보도지침은 1986년 한국일보 기자 김주언 등 언론인들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도 보도지침을 떠올리게 하는 폭로가 나왔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공영방송 보도에 개입한 것이다. 30년 전처럼 김주언 전 KBS 이사(62)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56)의 지난달 30일 녹취록 공개를 설득했다.
1일 김주언 전 이사는 “30년 전 독재정권은 대놓고 보도지침을 내렸지만, 30년 후 박근혜 정권은 교묘하게 보도에 간섭하는 것 같다”며 “녹취록에도 회유, 협박, 욕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정부에서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김시곤 전 국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와 길환영 전 사장이 KBS 보도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가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지난 4월 관련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1심 재판부는 길 전 사장의 보도개입을 인정했다. 최근 김 전 국장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 길 전 사장이 보도개입을 부인하자 비망록과 녹취록 공개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이사는 “재판부와 특조위에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용이 알려질 텐데 특조위 종료일에 맞춰 언론통제를 밝히자고 했다”면서 “개인적인 핍박이나 어려움이 있겠지만 공영방송 독립과 언론 발전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생각을 하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는 “김 전 국장은 이념적으로 보수 쪽이고, 밑에서 들고일어나면 참지 못하는 권위적인 사람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보도 문제에 있어선 외부 개입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신념이 확고하다”면서 “비망록에 기록만 남기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개입이 심해지면서 이정현 전 수석과 통화하던 도중 도저히 참지 못하고 녹음까지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이사는 “김 전 국장도 세월호 특조위 조사를 통해 참사 원인과 자신이 얽힌 보도개입 문제가 함께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언론의 편파, 불공정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김 전 이사는 여당 일변도로 구성된 공영방송 이사회는 문제를 감싸기 급급하고, 이사회에서 선출된 경영진은 ‘알아서 기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김 전 이사는 “보도지침이 있던 시절 기사가 빠져서 데스크에 항의하면 ‘몰라서 묻냐’고 했는데 요즘 그런 식으로 물으면 ‘알면서도 왜 그러냐’고 한다고 한다. 기자들의 자기검열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 이후 김 전 국장과의 통화에서 “이번 폭로를 계기로 KBS가 제대로 국민의 방송이 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