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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일 수요일

시장통 실향민이 품었던 제비…관광객 몰리자 절반 '뚝'


김정수 2015. 06. 03
조회수 1159 추천수 0
동병상련 느낀 실향민들 보살핌 속 해마다 찾아와 새끼 키우던 제비들
육로 연결 1년 만에 눈에 띄게 줄자 주민들 곳곳 안내문 걸고 보호 나서
swa1.jpg» 지난달 31일 오전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을 찾은 관광객이 시장 골목의 한 가게 처마밑에 연이어 지어진 제비집과 그 속의 새끼 제비들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과거 시골과 도시 변두리 어디에나 흔했던 제비가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 전역의 제비 서식 실태는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부분적인 조사 결과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서해의 섬과 해안 지역을 제외한 내륙에서는 제비를 보기 어렵게 됐음을 말해준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 김인규 부소장은 “2009~2010년 제비 번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한 문화재청의 조사 용역을 수행했는데, 내륙에서는 <흥부전>의 무대인 남원에서도 번식지를 찾지 못하고 경북 상주에서 한 곳을 발견했지만 문화적 배경 등이 맞지 않아 추진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제비 번식지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검토됐다는 사실 자체가 제비가 놓여 있는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swa2.jpg» 처마에 튼 제비집. 주택개량과 먹이 부족, 집 지을 습지 감소가 제비를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제비를 사라지게 만든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과도한 농약 사용이다. 제비의 먹이터인 논에 뿌려지는 농약으로 곤충이 사라지면서 제비는 먹잇감을 찾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 주택 개량으로 제비가 집을 지을 처마가 줄어든데다, 사람들이 처마밑이 지저분해진다고 제비집을 뜯어내면서 제비를 쫓아버린 것 등도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swa4.jpg» 대룡시장 안에 있는 한 귀제비집에서 귀제비가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살피고 있다. 김석민 교사 제공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강화도 옆 교동도에서는 요즘도 제비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섬 한가운데 위치한 대룡리의 대룡시장 골목에서는 가슴과 배에 줄무늬가 나 있고, 꼬리깃과 등 사이가 붉은 것이 특징인 귀제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귀제비는 귀신제비를 줄인 이름을 얻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일찍부터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가끔 다른 제비집을 빼앗아 자기 집을 짓는 등의 행동으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외딴 폐가나 흉가로 쫓겨나게 되고, 그런 곳에 살다보니 점점 음습한 이미지가 굳어져 사람들이 멀리하게 된 새다.

swa3.jpg» 제비 둥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강화 교동도의 거미 모습. 30~40년 전으로 돌아간 풍경이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31일 찾아가본 대룡시장은 너비 3m도 안 되는 좁은 골목에 이발소, 고무신을 파는 신발가게, 시계방과 도장포, 다방 등이 들어서 마치 30~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었다. 이런 느낌엔 골목 양옆으로 이어진 처마밑 곳곳에 지어진 제비집도 한몫했다.

제비집들에선 머리를 내밀고 먹이를 찾으러 간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제비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입구를 작은 터널 모양으로 지어서 속에 들어 있는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 귀제비집들도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어미들이 줄 먹이를 연신 물어 나르는 제비들을 보면 10마리 가운데 3마리꼴로 귀제비였다.
 
제비들이 교동도를 계속 찾아오는 것은 마을들이 논 사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어 제비들이 집을 짓기 쉽고, 특히 인사리·삼산리 지역에만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지가 30만평에 이르러 오염 안 된 먹잇감을 찾기 쉬운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탐조 활동을 위해 교동도를 자주 찾는 김석민 고양 안곡초등 과학전담교사는 “요즘 시골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기 힘든 형태로 개량된 집들이 많은데 교동도에는 옛날 집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비를 각별히 생각하는 주민들이다. 교동도에는 처마는 물론 가게 형광등 갓 위, 창고 천장 밑 등 실내까지 기꺼이 제비에게 내주며 살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swa5.jpg» 제비 둥지와 들머리에 구멍을 뚫은 형태인 귀제비 둥지.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대룡시장에서 북서쪽으로 3㎞쯤 떨어진 인사리에 사는 유정옥(52)씨 집 1층 창고 안 천장 밑에선 올해도 제비 부부 한 쌍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 “몇 해 전 창고 문을 열어둔 사이에 제비 한 쌍이 들어온 것을 그냥 뒀더니 해마다 찾아오네요. 바닥이 좀 지저분해지긴 하지만, 살려고 들어온 새를 매몰차게 내쫓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유씨의 말투에 북한말 억양이 느껴진다. 건너편 황해도 연백에서 살다 월남한 친정 부모님의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대룡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장과 제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대룡시장 안 대와민속공방 주인 최안례(57)씨는 “6·25 직후 연백에서 피난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한 실향민들이 해마다 제가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제비들에게 특별히 정을 느끼고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롯한 대룡시장 주민들은 올해 시장 골목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이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을 아직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지난해 6월 강화도와 교동도가 다리로 연결된 뒤 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한 것에 의심을 둔다.

제비의 최적 서식처 선택 연구를 진행해온 한현진 전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연구원도 “제비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을 번식 위치로 선호하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해 사진을 찍는 등의 행동은 스트레스를 줘서 서식지를 분산시킬 위험이 높다”며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주민들은 제비 서식 환경 보호를 위해 처마 아래쪽 벽 곳곳에 ‘휴대전화를 너무 가까이 접근시키면 아기 제비가 불안해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31일 대룡시장에서는 이런 안내문에 아랑곳하지 않는 관광객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대룡시장에서 만난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문화지리학)는 “교동도의 제비를 잘 보호해 생태체험 자원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강화군에 교동도 입구에서부터 관광객들에게 제비 보호 안내문을 건네는 등의 제비 보호 노력을 권유하고 있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2015년 6월 2일 화요일

교사에게 정치를 말하지 말라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

전교조 교사가 왜 정치적인지 아세요?
교사에게 정치를 말하지 말라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김용택 | 2015-06-03 07:36:22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교조는 창립당시에는 권위주의적 학교문화 타파하고 학생 체벌과 교장의 권위주의적 학교행정, 촌지문화 개선 등 교사·학생의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날이갈수록 전교조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외면하고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반정부 집회에 참여 하는 등 정치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교조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전교조를 비방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전교조는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그들은 ‘선생이 아이들이나 가르치지 왜 정치적인 집회에 참석하고 순진한 아이들에게 정치를 말하느냐’고 한다. 폐일언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치고 정치를 떠나서 단 하루라도 살 수 있느냐고…? 법의 보호를 떠나서는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에서부터 생필품을 구입하고, 차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일상의 하나하나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인 무엇인가라고…?

물가가 그렇고 길을 가다 만나는 도로교통법이 그렇고 생필품의 가격에서부터 유통기한까지 모두가 법이다. 학생들의 급식을 제대로 하려면 급식조례가 만들어져야 하고, 학생들이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는 학생인권조례로 더욱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려면 예산이 좀 더 풍족해야 하지 않은가? 학교환경개선이며 교육여건의 개선을 위해서는 교육예산을 얼마나 더 확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학생들이야 어떤 대접을 받거나 말거나 교실 안에서 정부가 만들어 준 교과서나 가르치고 있는 게 정말 교육자로서 존경받을 사람일까?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사는 가장 정치적이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를 떠나서 살라는 말은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마시지 말고 살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먹고 입고 자고 그리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정치행위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무식하거나 청맹과니다. 독재자들이 전교조를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데모를 한다고 윽박지르지만 젖먹이 어린아이도 배가 고프면 울고 괴로우면 표정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 하물며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성인이 된 후 올곧은 삶을 살도록 안내해야 할 교사가 세상과 담쌓고 고고하게 책이나 외워 점수나 매기는 게 교사로서 직무를 다 하는 일일까?

역대 독재자들은 교사들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했을까? 일제식민지 시대 교육의 목적은 황국신민화였다. 조선사람을 일본사람으로 만드는 것, 그게 식민지 교육이다. 식민지시대 교사들은 일본이 만들어 준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도록 했고 그런 교사를 훌륭한 교사로 인정했다. 그런데 피지배 국민을 가르쳐야 할 교사라면 어떤 형태로든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는 게 교육자로서 할 일이 아닐까?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가르치라고 했다. 그들이 만들어 준 국정교과서를 열심히 가르치기만 했던 교사들이 가장 훌륭한 교사였을까?
<이미지 출처 : 자주 시보>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자들은 학생들에게 정치의식, 민주의식을 가르치는 교사를 싫어했다. 그들은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비판능력이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원치 않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 비파의 식이 거세된 사람…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 근면한 학생… 이런 학생을 모범학생으로 보고 그런 인간을 길러내기를 원했다.
불의를 보고 방관하는 자는 기회주의자거나 이기주의자다.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은 비민주적인 반 교육이다. 제자를 올곧은 사람으로 길러내겠다는 것은 모든 부모나 교사들의 한결 같은 바램이다. 복잡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나 건강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을 있는 사람이 아닐까?
독재자가 길러내고 싶었던 인간상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하는 도구적인 인간이다. 물가가 곤두박질 치고 묻지마 범죄자가 날뛰고 환경오염으로 안심하고 마실 물이 없어도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일까? 비판의식이나 정치의식이 거세당한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다. 자본도 그런 사람을 원한다. 어둡던 시절 학교가 ‘근면 성실한 사람’ 범생이를 길러내려고 했던 것도 자본의 논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치의식이나 민주의식을 거세당한 사람이 어떻게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며 민주시민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참교사라면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나도 열심히 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게 왜 욕먹을 일인가? 교사에게 정치를 말하지 말라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34 

안보장사꾼의 놀이가 된 한반도의 전쟁 이미지

안보장사꾼의 놀이가 된 한반도의 전쟁 이미지

김종대 2015. 06. 02
조회수 1004 추천수 0
 김종대.jpg

 조중동 등 보수 성향의 언론 기사를 보면 이제는 국가의 안전이라는 것이 무슨 어린 애들 전쟁 놀이와 같이 희화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미국의 사드 요격체계 배치를 안 하면 국가가 망하는 것처럼 요란 떨던 언론이 이번엔 뭐라고 했느냐?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로 인해 사드나 킬체인(kill-chaine),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체계가 무력화 되어 실효성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뒤에서 쏘는 걸 잡을 수 있는 해군의 해상초계기,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을 더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전쟁의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내 북치고 장구치는 언론과 전문가들

 통상 핵심무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를 건설하려면 10년이 넘게 소요됩니다. 천문학적인 무기도입 비용에다가 운용요원의 무기 숙달, 정비시스템 구축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뭘 슬쩍 보여주기만 해도 석 달 전부터 지면을 장식한 자신들의 주장을 폐기하고 또 새로운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경망스러움을 드러냅니다. 마치 철부지 어린 애들의 전쟁놀이에나 나올 법한 일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잠수함에서 튀어 오른  미사일(모조품)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도 어린 애의 천진난만함 그대로입니다. 도대체 전쟁이 뭔지, 군사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는 자들이 전쟁을 소비하고 즐기는 일종의 놀이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살아있는 전쟁의 이미지에 실컷 취하고 놀면서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초등학교 야구 선수가 공 한 번 잘 던졌다고 류현진이나 박찬호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류현진이나 박찬호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지금 남북한이 티격태격하는 건 메이저리그 야구 보고 흥분한 어린 애들의 동네 야구 시합과 무엇이 다릅니까? 북한이 핵 미사일체계와 잠수함발사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체계까지 모두 보유했다는 건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걸 의미합니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반도 북단의 이 나라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해 낸 것입니다.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여기에 한국과 미국, 일본이 다 달라붙어야 대적이 되는 이 짜릿한 전쟁놀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이건 영화 속에 있던 전쟁 이미지가 현실로 튀어나온 사건입니다. 드러누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지 않습니까? 자세한 기술적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의 SLBM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야구공 한 번 잘 던졌다고 박찬호나 류현진이 되지 않습니다. 그걸 알면 차분하게 대응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전쟁의 가짜 이미지에 속지 않고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면 초라한 북한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 나라는 총체적인 품질불량 국가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렇게 허세를 부리고 허풍을 떠는 것만이 고립된 처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막다른 현실이 보인다는 겁니다. 정작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다른 데 있습니다. 어린 애들 같은 언론과 군사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찌 할 바 모르는 국방부를 향해 “군사정책을 바꾸라”며 호통을 치고 자기들 멋대로 군사정책을 좌우하려고 갑질을 해대는 겁니다. 이들은 북한의 잠수함 미사일 사출실험만 보고 “내 이럴 줄 알았다”며 얕은 전문성을 과시하면서 새로운 전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국방부가 쩔쩔 맵니다.
 이런 가짜 전쟁광들이 떠드는 건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자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의 능력이 아니라 의도를 보라

  그러던 중 미국의 북한 전문 분석 누리집인 <38노스>에서 이번 북한의 잠수함 미사일 발사시험이 가짜로 의심된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군요. 사실이라면 이 미사일이 진짜라는 가정 하에 거의 매일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던 박근혜 정부에게는 참으로 어이없는 해프닝입니다. 그동안 우리 보수언론과 종편은 북한의 잠수함과 미사일 능력에 대한 우리 정부와 동맹국의 기술적 분석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북한 조선 중앙방송을 받아 적기에 바빴습니다. 심지어 어제 국방위에서 군 출신 의원들은 “북한이 잠수함 발사 미사일을 개발하는 동안 뭐하고 있냐”고 호통을 쳤고, 한 군 장성 출신 의원은 “1년이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이 전력화 된다”며 군사적 전문성이 의심스러운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북한 조선 중앙방송과 같은 계열사로 의심되는 조선TV는 아예 조갑제씨를 출연시켜 “핵무장을 하자”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는 주장을 내보냈습니다. 역시 같은 계열사인 조선일보는 “이제 킬체인과 사드 체계, 한국형미사일방어도 무력화 된다”며 대한민국을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이들 언론이 북한 위협을 보도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의 새로운 위협에 우리는 아무 대책이 없어야 합니다. 대책이 있다면 기사가 되지 않습니다. 핵미사일이건 잠수함 발사미사일이건, 무인정찰기이건, 공기부양정이건 무엇이든 새로 나타나면 “그런데 한국군에는 대책이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야 공포 영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이 산불을 내도 대책이 없고, 돌맹이를 던져도 대책이 없고, 노크 귀순을 해도 대책이 없고, 굶주린 개들을 내려 보내도 대책이 없고, 심지어 1990년대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북한 식량난으로 모기가 흡혈을 할 가축이 줄어들어 대거 남하하여 전방 군인이 1년에 3000명씩 말라리아에 걸려도 대책이 없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일일이 우리가 왜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까? 어떤 것은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무시해버려도 되는 것이고, 어떤 것은 대책을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문제는 대책이 없어야 합니다. 예컨대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확실한 대책이 있다면 한미동맹은 깨집니다. 미국의 억지력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국가적 취약성이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겁니다.
  그런데 단순히 “대책이 없다”고 동어반복만 되풀이 하는 것이 오늘날 군사전문가들의 직업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북한이 대책이 안 통하는 나라여야 한다는 게 우리 보수언론이 기사를 키우는 방법이라면 앞으로 뭐가 나타난다 한들 대책은 없는 겁니다. 사실 인간의 삶 자체는 대책이 없는 겁니다. 한반도에 지진이 나도 대책은 없고, 백두산에서 화산이 폭발해도 대책은 없고, 혜성이 지구에 충돌해도 대책이 없고, 만일 제가 내일 암에 걸린다 해도 대책은 쉽게 나올 수 없는 겁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국가는 원래 그렇게 불완전한 겁니다. 그러니 핵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극한의 공포를 내세우며 “대책이 없다”고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저의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겁니다. 무슨 남한이 핵 무장을 합니까? 할 수 있는 건 북한 핵이 위협적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밖에 없지요. 그게 아니면 이민을 떠나시든가. 이민도 안 가고 강남의 아파트에 살면서 대책 없는 공포를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안보장사입니다. 이런 언론과 가짜 미사일에도 흥분하는 군사전문가들이 과연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믿으십니까? 거기에 넘어가는 박근혜 정부가 안보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

민족공동행사 방해 한.미 정부 규탄


범민련 남측 본부 “장소. 내용 핑게 민족 잔치 방해”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6/02 [14: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회원들과 양심수후원회 민가협 통일광장 회원들이 한미 당국이 민족공동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장 이규재 이하 범민련)가 한국 정부와 미국이 6.15 민족 공동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양국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2일 오전 11시 청와대 인근 청운동 사무소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5월 20일경 예정 되었던 6.15민족공동행사를 위한 개성 실무접촉이 무산되고, 6.15민족공동행사가 파탄의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범민련 이규재 의장은 “올해는 외세에 의해 조국이 분단 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일의 이정표인 6.15 남북정상을 한지 15년째 되는 의미 있는 해로 남북 8천만 민족은 작년부터 올해를 통일의 획기적 해로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에 따라 남북 민간단체들은 “6.15 민족공동행사는 서울에서, 8.15 광복절 행사는 평양에서 갖기로 합의했으나 남측 정부는 불필요 하게 간섭하면서 민족공동행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규재 의장은 “현재 박근혜 정부는 님북 민간교류를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를 불허 하고 있다.”면서 “1999년 남북 노동자 축구 대회를 계기로 남북정상이 만남을 가졌고, 금강산길이 열렸으며 개성공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5.24 조치를 해제하고 남북 민간 교류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 의장은 “명분상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남북 교류를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미국이 뒤에서 남측 정부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 자명하다.”며 미국을 규탄했다.
 
이규재 의장은 특히 “우리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주와 통일”이라며 “각계 각층이 떨쳐일어나 손을 맞 잡고 조국의 자주 통일을 열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 범민련 이규재 의장이 우리민족에게 시급한 것은 자주와 통일이라며 각계각층이 연대하여 조국의 자주 통일을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이어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남북 민간단체와 당국은 분단 70주년을 통일의 전변적 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이를 훼방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장소와 내용을 가지고 민족 공동행사를 방해하자 북 당국도 급기야 지난 1일 남북 분산 개최를 통보해 왔다.”고 말하며 남측 정부가 의도적으로 민족공동행사를 파탄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권오헌 명예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 시키고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북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북에 대해 공포정치 운운하며 비방중상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느냐”고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권 명예회장은 “정부가 6.15민족공동행사를 비정치적인 것으로 한정하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북 겨레가 공연이나 보고 꽃놀이나 하라는 것”이냐며 “공동행사가 열리면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민족공동행사의 핵심적 내용이 되어야한다. 그 것은 최고의 정치적 내용인데 이를 논하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적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은 발전하고 있다.”면서 “우리민간 통일 운동 단체들은 정부이 대북적대 정책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주통일의 기치를 높이들고 반드시 올해를 통일의 전환적 해로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범민련 서울본부 김규철 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적대 정책과 외세 공조를 폭로 규탄하며 자주통일의 길을 지켜 갈 것을 천명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서울범민련 김규철 의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5월 20일 ∼ 21일의 개성 실무접촉이 무산되고, 2015민족공동행사를 위한 남북협상이 박근혜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표류하던 상황에서, 지난1일 북측은 “6.15공동선언발표 15돌 기념 민족공동행사를 각기 지역별로 분산개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입장을 보내오기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기자회견문은 “우리는 분단 70년, 6.15공동선언발표 15돌을 맞는 올해 민족공동행사와 남북 각계각층의 상봉이 이루어져 남북관계 개선이 제2의 6.15시대로 이어지기를 학수고대하여 왔다.”면서 “민족경협사업을 곤경에 빠뜨린 5.24조치는 남북의 대화와 왕래를 가로 막고 있고 한반도 군사긴장으로 인해 남북당국간 회담도 난망한 상황에서 남북해외가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6.15민족공동행사는 이 땅의 평화와 대화를 바라왔던 우리민족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민족공동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러나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의 남북해외 실무협의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오만무도한 간섭과 통제는 결국 민족의 간절한 염원을 파탄지경으로 내몰았다.”며 “이러한 결과는 6.15공동선언 이행의 통일궤도에서 탈선하여 통일문제를 정권안보용으로 써먹으려는 박근혜정부의 대결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정부는 인수위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없다. 오히려 드레스덴 선언과 <통일준비위>의 활동을 통해 ‘경제통합을 통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만을 반복하여 말하여 왔다. 대다수 통일전문가들과 국민들이 5.24조치를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여 철회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비핵화’니 ‘대화의 진정성’이니 하는 조건을 달아 대결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박근혜 정부의 반북 적대정책을 비판했다.
 
▲     © 이정섭 기자


아울러 “정부는 ‘조국광복 70돌 8.15행사’를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과 ‘체제대결’로 끌고 가며,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를 관변행사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하거나 정부의 통제아래 두려 하고 있다.”며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총리내정자로 지명하여 전면적인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한편으로는 한미일전쟁동맹을 서둘러 구축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문화예술행사로 통일행사를 치루라는 것 자체가 박근혜정부의 순수치 못한 치밀한 정략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통준위가 앞서서 개혁개방유도해서 흡수통일 할테니 민간은 그저 문화예술계가 만나서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라’는 얼빠진 소리인 것이다. 통일 없는 통일행사만 하라는 것이야말로 민족공동행사를 하지 말라는 압력이자 겁박 아닌가”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범민련 기자회견문은 “굳이 6.15선언발표 15돌을 맞아 미국에 가서 대북제재를 위한 한미공조강화를 논의한다는데서 이미 박근혜정부는 공동선언이행의지도, 공동행사 성사의지도 없었음을 말하여 준다.”면서 “6.15와 8.15를 맞이하여 남북해외가 한자리에 모이는 민족공동행사는 정부도 아니고 통일준비위도 아닌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가 당사자이며 주관기구이다. 정부는 그 어떤 부당한 간섭도 통제도 즉각 중지하여야 한다.”고 정부의 간섭 배제를 거듭 촉구했다.
 
▲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민족공동행사가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대북적대정책이라고 폭로하며 민족의 이익을 위해 박근혜 정권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전향적 자세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기자회견문은 “2008년 이후의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민족문제에 미일외세를 끌어들이면 이 땅에는 대결과 영구분단과 전쟁의 위험만이 남게 된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라고 강조하고 “분단된 민족의 비극과 고통은 사상과 제도를 상호존중하고 공존공영공리의 원칙에서 공동번영하는 통일국가를 지향할 때라야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대북 통일정책의 전환을 요구했다.
 
회견문은 끝으로 박근혜정부가 5.24조치를 철회하고 6.15공동선언이 민족의 살길임을 인정하고 민족공동의 자주통일행사를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며 “범민련 남측본부는 7.4조국통일3대원칙과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아래 6.15, 10.4선언에서 합의한대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세력과 힘을 합쳐 더 힘차게 투쟁해 나갈 것”이이라고 천명했다.

새로운 통일운동을 향하여


<기고> 이재봉 원광대 교수
이재봉  |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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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2  10: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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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남이랑북이랑 통일운동 대표)

올해 ‘분단 70년’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주제도 “분단 70년을 맞아 새로운 통일운동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분단된 지 70년이 흐르도록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한 채 통일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게 안타깝다. 나는 전업 또는 전문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북한 및 통일문제에 관해 공부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으며, 부업으로 평화와 통일운동에 한쪽 발이나마 걸쳐온 것이다. 부업 통일운동가로서 시민단체의 새로운 통일운동을 모색해보는 게 부담스럽지만 지금까지 겪어온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통일운동에 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내가 통일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북한의 식량난이었다. 1995년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세계식량계획 (WFP)에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일본에도 식량지원을 부탁했다. 쌀이 남아돌아 보관하기 어렵다면 창고에서 썩고 있는 쌀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에 따른 남한의 ‘조문 파동’으로 남북 사이에 대화나 접촉이 끊긴 터였다. 북한이 남한에 손을 내밀지 못하던 차에 김영삼 정부가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했다. 일본보다 한국이 먼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무무장관은 한국이 식량을 보낸 뒤 일본이 지원해달라며 협조를 부탁하고, 통일부장관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보내면 한일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위협하기도 했다.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속셈이었다. 6.25전쟁 발발 45주년 기념일에 “잊지 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을 외치는 대신 부랴부랴 쌀을 보낸 배경이다. 쌀을 보낸 다음날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선거 하루 전날, 청진항에서 이른바 ‘인공기게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쌀을 주면서도 뺨을 맞았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에 대북 식량지원에 호의적이던 여론이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6월 27일 선거에서 여당이 재미를 보지도 못했다. ‘순수한 인도적 차원’이 아닌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대북 식량지원의 불행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두 달 뒤인 8월 북한에서 이른바 ‘100년 만의 물난리’가 나서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졌는데도 김영삼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간 차원의 식량 지원까지 방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7월 북한 및 통일 관련 월간지에 “조건 없이 북한을 지원하자”는 내용의 글을 썼다. 잡지사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반대하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난 지지한다고 했더니, 그럼 찬성의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이었다. 나중에 잡지를 받아보니 “이 달의 쟁점”이라는 주제로 대북 식량지원에 관해 찬성과 반대의 글이 각각 한 편씩 실려 있었다. 반대의 글은 통일부 관리가 쓴 것이었다. 그 글 때문이었는지 여러 통일운동 단체들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의 반대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지원 운동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 무렵 <전북 종교인 연합회> 대표라는 분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전주고백교회 한상렬 목사였다. 그가 <북녘동포 돕기운동 전북본부>를 주도하면서 전북 도내 14개 시와 군에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아놓으면 내가 왜 북한에 식량을 보내주는 게 바람직한지 강연했다. 그 때부터 학자가 대중 강연이라는 외도를 시작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서울 이외엔 전북 지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모았다. 1998년까지 2년 동안 5억 원 정도 모금했을 것이다. 전라북도와 함경남도 사이에 역사 문화적 공통점이 적지 않다는 점을 찾아내, 남쪽에서 가장 차별 받는 전라도 사람들이 북녘의 가장 어려운 함경도 사람들에게 식량을 보내면서 자매결연으로 발전시켜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1998년 5월 이러한 취지로 북한 당국자들과 협상하고 싶으니 주선해달라는 편지를 중국 연변의 조선족 교수에게 보냈다. 6월 긍정적 회답을 받았다. 평양 사람들이 우리와 베이징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일부에 신고하고 허락을 받아 한 목사와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초청장을 건넸다.
1998년 10월 한 목사와 둘이 일주일 일정으로 북녘 땅을 밟게 된 것은 상당한 뉴스거리였다. 남북 사이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계기였던 2000년 6.15 정상회담 2년 전이었고,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도 전이었기 때문이다. 평양에 다녀오자 여러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나 방북기 게재를 요청해왔고 다양한 단체와 기관에서 강연을 부탁해왔다. 그런 가운데 많은 대북지원 단체 임원들이 조용히 묻는 게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지원 물자를 평양에 직접 갖고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의 대북지원 운동엔 북한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의도가 배어있었던 것이다. 평양 방문을 위해 북녘동포 돕기 운동을 주도하는 듯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1999년 6월 1차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원인과 과정이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30명 안팎의 북녘 젊은이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남북 사이에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사건이 터졌는데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전투에서 이겼다고 환호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퍼졌다. 국방부는 거의 모든 일간신문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실어 “민과 군이 함께 애창할 수 있는 승전가”를 현상 공모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더욱 나빠지는 가운데 서해에서의 싸움에 이겼다고 축제 분위기에 빠져드는 우리 사회를 지켜보며 나는 열흘 남짓 밤잠을 설쳤다. 고민 끝에 시작한 게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이었다. 남북을 공멸로 이끌 전쟁의 가능성을 단 1%라도 줄이려면 북한에 대한 원한이나 적대감을 누그러뜨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1999년 8월부터 매달 1-2차례 10쪽 안팎의 ≪남이랑북이랑≫ 소식지를 만들어 먼저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냈다. 내 글을 읽고 동의하면 구독료나 회비라 생각하고 매달 1,000원씩 보내달라고 했다. 매달 1,000원씩 보내기 귀찮겠으면 1년치 10,000원 또는 평생회비 100,000원을 한꺼번에 보내도 좋다고 했다. 소식지를 만들고 보내는 비용은 모두 내가 부담하고, 구독료나 회비는 전부 북녘동포를 돕는데 쓰겠다고 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원한과 적대감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호소했다. 배부른 남쪽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편견과 왜곡에서 벗어나 북녘동포를 도우며 원한과 적대감을 줄이고, 배고픈 북녘 사람들은 남쪽동포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원한과 적대감을 줄인다면, 서해교전 같은 불행하고 위험한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달 만에 200만 원 이상 모였고 1년 만에 1,200만 원 이상 들어왔다. 2007년 말 ≪남이랑북이랑≫이 서울의 <남북평화재단>과 합칠 때까지 8년 남짓 구독자 또는 회원은 5,000명을 넘었고 모금액은 1억 원 가까이 되었다.
회원이나 구독자 또는 후원자들을 분류해보니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처음엔 내 글의 내용보다 나와의 친분 때문에 회비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둘째,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모르지만 내 의견이나 호소에 동감한다며 구독료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셋째,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 <개성 평화의숲 가꾸기> 등 큰 단체들을 통해 북녘동포를 도우며 회원들이 평양이나 개성을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하자 북녘 땅을 밟아보기 위해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남북교류 활성화를 불러왔다. 교류라지만 남북 경제력의 커다란 격차 때문에 남쪽의 일방적 지원이나 다름없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남쪽 사람들은 서서 주고 북녘 사람들은 앉아서 받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남쪽의 수많은 민간단체들이 경쟁하듯 저마다 북녘의 서너 개 관변기관 가운데 한 곳과 접촉하느라, 주는 쪽이 오히려 낮은 자세를 취하며 줄을 서는 듯했다. 북녘 땅에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나 후원자 한 명이라도 더 보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교류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완전히 끊어졌다. 대북지원과 남북교류를 주요활동으로 삼아온 많은 통일운동 단체들이 거의 모두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평화와 통일을 외쳐온 활동가들은 감옥에 갇혔다. 보수정권과 수구언론 그리고 극우단체 등에 의해 모든 통일운동은 ‘친북’이나 ‘종북’ 행위로 매도당하게 되었다. 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은 물론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조차 ‘친북’이나 ‘종북’과 연결되었다.
2014년 11월 ‘신은미-황선의 통일토크 콘서트’가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다. 종편이 이를 악의적으로 보도하면서 ‘종북몰이’ 광풍이 시작되었다. 극우언론의 왜곡과 억지 그리고 횡포가 얼마나 극심한지 전국 각지에서 예정되었던 콘서트가 줄줄이 취소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분들이 중심이 된 단체의 초청도 취소되고, 현직 국회의원들이 초청한 국회에서의 행사까지 무산되었다. 더구나 신은미 씨는 그녀의 방북기 때문에 바로 몇 달 전 각종 언론단체들로부터 상을 받았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터였다. 그 무렵 박근혜 정권의 공안통치와 극우언론의 ‘종북몰이’에 숨죽이는 야당 정치인들이 한심했고, 무기력하게 침묵을 지키는 다양한 진보운동 단체와 조직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보자는 말이 있지만, 그렇게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도저히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중북 아줌마’로 매도당하며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극우언론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껏 강연하라고 부추겼다. 나 홀로 만용을 부리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행사가 전국 모든 곳에서 취소되더라도 익산에서는 꼭 성사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주관한 12월 10일의 익산 콘서트는 ‘일베’ 고교생의 테러로 중단되고 나는 화상을 입었다. 통일운동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었다.
지난주 5월 24일 세계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북녘에서 남쪽으로 비무장지대를 건너 왔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추구하기 위한 ‘여성 비무장지대 건너기 (Women Cross DMZ)’였다. 오래전 행사의 기획 단계부터 주관자로부터 자문을 부탁받아온 터라, 여기저기서 미국, 북한, 남한에서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귀띔 받을 수 있었다. 4월 초 남한 정보부의 끄나풀로 여겨지는 한 미국인이 남한 정권에 꽤 영향력 있는 극우인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종북’ 행사를 반대하거나 방해하라고 부탁했다. 여성들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판문점을 통해 휴전선을 건너오지 못하고 개성을 거쳐 경의선 도로를 따라 내려온 데다 300여명 우익세력의 시위를 받은 배경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에 한 재미동포 여성은 반대 시위의 규모가 예상보다 작고 강도가 약해 ‘무사히’ 남쪽 땅을 밟은 자체에 안도하는 뜻을 서울 도착 직후 전해오기도 했다. 이제는 세계적 여성운동가들의 순수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행사조차 ‘한미 공조’에 의해 반대와 방해를 받게 된 것이다. 2015년 5월 현재 민간 통일운동의 서글프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이에 앞서 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10여 차례 법정에서 이른바 ‘전문가 증언’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 통일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변론하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시대엔 ‘승공통일’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공산당을 쳐부수자고 주장하는 게 애국이었을지라도, 노태우 정부 이래 지금까지 남한의 공식 통일정책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이제는 ‘친북’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이러한 증언을 묶어 2015년 1월 ≪이재봉의 법정 증언≫을 펴냈는데, 이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강연 요청을 많이 받아왔다. 오늘 이 자리도 그렇게 마련된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해외에서든 국내에서든, 서울에서든 지방에서든, 북한 및 통일문제와 관련된 강연장에선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70-80대 어르신들이 청중의 대부분이다. 내가 올해 회갑을 맞는데 나보다 어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참 안타가운 현실이다.
부업 통일운동가가 새로운 통일운동을 제안해보기 위해 지금까지 직접 겪고 느낀 점을 위와 같이 시시콜콜 밝혔다. 1996년 북한 식량난을 계기로 대북지원에 관해 짧은 글 한 편 쓰는 바람에 통일 관련 대중강연에 나서기 시작하고, 1999년 1차 서해교전을 계기로 소박하게나마 내 나름대로 통일운동을 주도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보고들은 점을 얘기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통일운동은 주로 대북지원과 남북교류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엔 북녘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 같다. 둘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과 남북교류조차 끊어지자 통일운동 단체들의 일거리가 없어지다시피 했다. 셋째,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 및 박근혜 정부의 공안통치 강화로 평화와 통일 운동이 ‘친북’이나 ‘종북’ 행위로 매도당하며 활동가들이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다. 넷째, 시간이 흐를수록 통일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나아가 ‘종편’의 영향력 확대로 통일운동에 대한 무관심이 반감이나 적대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찾아보는 게 내가 제안하고 싶은 통일운동의 방향이다. 첫째, 대북지원과 남북교류 중심의 통일운동을 지속하는 게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면 ‘5.24 조치’의 부당성과 비현실성을 지적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활성화가 막힘으로써 북녘의 고통보다 오히려 남쪽의 피해가 훨씬 크지 않은가. 남북교류가 끊어지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를 불러오기보다 남한 중소상공인들의 붕괴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널리 알려 ‘5.24조치’의 해제를 이끌어내고 남북교류가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 대북지원과 남북교류 없이는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통일대박’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홍보해야 한다. 북한 붕괴를 바탕으로 한 ‘통일대박론’의 문제점에 대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통일대박론’의 허상”이라는 글을 참고자료로 덧붙인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827
둘째, 통일운동 단체들의 연대와 단합이 필요하다. 분단 70년을 맞아 가장 절실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인데, 한국전쟁의 법적 종식조차 끝내지 못하고 있다. 60여년 이상 정전협정을 종전/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때문이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이 유지되어야 할 법적 명분이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미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구멍이 뚫리기 된다. 거꾸로 말해, 미국은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끊임없이 ‘악마’로 만들며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들어서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궁극적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가 주한미군과 평화협정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평화/통일운동 단체가 드물다. 이 분야에선 아마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평통사)>이 거의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활발하게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운동해온 것 같다. 주한미군과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하면 ‘반미용공’으로 매도되고 ‘이적단체’로 처벌받기 쉽기 때문에 많은 단체들이 나서기 곤란하겠지만, 이 기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어떠한 평화/통일운동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셈이라는 생각으로 모두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셋째, ‘종북몰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추구할 수 없다. 1989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노태우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공식 통일정책 1단계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또는 공존공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반대와 비난을 일삼으며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큰 모순이다. ‘반북’이 아니라 ‘친북’을 해야만 화해협력과 공존공영을 통한 평화통일을 성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남한이 북한보다 나은 사회라도 단점이 있고, 북한이 남한보다 못한 사회라도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 남한을 비판할 수 있고 북한을 칭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친북’ 운동도 펼치고, 북한 사회의 훌륭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본받는 ‘종북’ 행위도 떳떳하게 벌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넷째, 요즘 통일운동은 특별한 사람들의 유별난 행동으로 취급당하는 듯하다. 통일운동이 대중성을 확보하려면 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특히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고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통일운동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먼저 통일운동가들의 어려운 그리고 투쟁적 언어부터 조금 쉽고 부드럽게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 1980-90년대 그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었지만, 그들의 말투는 나에게도 생경하게 들릴 때가 적지 않다. 하물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떠하랴.
또한 통일운동가들조차 분단의 폐해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예를 들어, 사회혼란이나 세금부담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북한붕괴와 흡수통일이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취업이나 실업 문제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에겐 통일이 되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처럼 군대 안에서의 사고가 잦거나 병역 비리가 그치지 않을 때는 징병제를 폐지할 수 있도록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야 한다. 또한 얼마 전 경남에서 있었던 일처럼 수천 만 원의 예산을 아낀다고 아이들 급식을 중단하겠다면 ‘아줌마’들까지 들고 일어서지만, 수 억 원의 경비가 들어갈 고고도미사일 방어망 (THAAD)을 구축하겠다는 데는 통일운동가들조차 조용하다. 통일이 되면 그렇게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쓸데없는 파괴 비용도 생산적 복지비용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렇듯 통일은 거의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 또는 ‘민생 문제’에 직접 커다란 혜택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며 온 국민이 통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없을까. 분단의 문제점과 통일의 필요성 및 방법 등에 관해서는 “분단 70년에 생각해보는 통일”이라는 글을 참고자료로 덧붙인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857
* 이 글은 2015년 6월 1일 목원대학교와 대전YMCA가 주최한 <시민단체의 통일운동>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필자 주
  이재봉 교수
  
 
화와이대학교 정치학 박사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 대표

"시행령 국회통제가 위헌? 논란 거리도 안돼"


국회법 개정안 위헌 제기에 전문가들 "행정입법 더 통제해야"
15.06.02 19:58l최종 업데이트 15.06.02 19:5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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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가 상위 법률에 위배되는 정부 시행령의 수정·변경 요구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첨예한 대결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위헌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논란 거리도 안 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우선 이번에 개정된 국회법에 대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과거 비슷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예를 들며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회 스스로가 이번 개정안이 위헌의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일부 법학자들도 국회법 개정 과정을 '졸속 입법'이라거나 '3권분립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는 의견을 내면서 개정된 국회법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라고 파상공세를 펼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면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난 자체가 허무하다. 개정 전후의 국회법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개정되기 전의 국회법 98조의 2의 3항이다.

"(전략)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다음은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 정부 이송을 앞둔 국회법 개정안 같은 조항이다.

"(전략)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내용을 요약하면, 기존 국회가 법률 위배 내용을 행정기관장에게 통보하는 것에서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로, 행정기관장이 국회에 시행령 수정 처리계획과 결과를 보고하던 것에서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바뀐 것이다.

큰 차이가 없다. 기존 국회법이 다소 두루뭉슬하게 축약해 놓은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명시한 수준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행령 수정·변경 의무가 강제성을 띠는지 아닌지 여야가 확정해 달라고 하고, 여야는 이를 두고 논란 중이다.

"개정안으로도 정부가 '배째라'면 별 도리 없어"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날 정도로 강제력이 있다고 하려면 국회의 수정 요구를 행정부가 거부했을 때 시행령은 효력이 없어진다거나 정지되는 등의 결과가 야기돼야 한다"며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에 행정부가 막말로 배째라고 나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적어도 강제력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클 교수는 "논란이 있을 게 없는 사안을 갖고 논란을 벌이는 상황이 우습다"며 "강제력이 있냐 없냐, 위헌이냐 얘기하는 게 오히려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정 교수는 "대통령령 같은 행정입법은 입법부인 국회가 '사소한 것들은 대통령이나 총리나 장관 등이 알아서 정하라'고 헌법에 따라 위임한 건데, 정부가 이런 위임의 취지에 맞지 않게 시행령을 만들고 있으니 '원래 내가 부탁한 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라'고 요구한 게 이번 국회법 개정 취지인 것 같다"며 "그렇다면 당연히 위임을 받은 정부는 원래 입법권의 주인인 국회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법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지 않아 문제가 된 최근 사례가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대통령령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다. 정부는 시행령을 정하면서 특별조사위 인원과 예산을 당초 안보다 축소시키고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특별조사위에 파견토록 해 '꼼수 시행령으로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정부 때의 대표적 사례는 4대강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당연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이지만 정부가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수정해 재해예방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결국 수십조 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사가 적절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시행됐다.

"행정입법 당연히 통제해야... 나라 망할 것처럼 얘기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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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 세미나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참석해 국회법 개정안 위원논란을 주제로 한 제정부 법제청장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은 국회가 입법권한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걸 염려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행정부가 입법부에 위임받은 권한으로 시행령을 마음대로 정하고 수정·변경하는 상황을 통제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의 경우 입법부의 '입법독재'가 아니라 행정입법에서의 독재가 더 문제시 돼 왔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보는 이들이 입법독재를 거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에도 정부에 법안제출권이 없지만 한국은 법안제출권뿐 아니라 국회의원을 통해 청부입법하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 정도로 행정입법을 통제하겠다는 걸 입법독재라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도 "법치주의의 기본틀을 가진 국가는 행정입법을 다 통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엔 헌법에서 행정명령에 대해선 의회의 동의권을 부여했다"며 "시행령이 법률에 맞도록 노력하는 건 행정부의 당연한 업무인데 거기에 국회가 관여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이어 "그런데 이게 마치 새삼스러운 일처럼 위헌 논란을 일으키고, '무능한 국회가 유능한 행정부를 통제하느냐'는 식의 얘기까지 하고 있다"며 "입법부가 당연히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한다. 잘하고 못하는 건 나중의 문제고 먼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2015년 6월 1일 월요일

'메르스'를 '케르스'로 만든 박근혜, 불안하다

'메르스'를 '케르스'로 만든 박근혜, 불안하다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메르스 쇼크


메르스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만들다

창피하고 한심하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1일 현재 벌써 환자가 18명이다. 단 한 명의 환자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메르스가 빨리 확산된 것은 진원지인 중동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환자 숫자나 확산 속도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사망자가 나왔느냐, 3차 감염이 있느냐'도 아니다. 설혹 사망자가 나오거나(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몇몇 환자가 이미 몸의 피를 밖으로 빼내 기계 장치에서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피를 집어 넣어 생명을 유지하는 에크모 장치로 생명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지도 모른다.) 3차 감염자가 나온다고 해도 난리법석을 떨 일은 결코 아니다.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감염병, 만성 질환, 산업재재, 교통사고와 살인, 자살 등으로 우리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때론 두 눈 뜨고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중동 국가를 제외하곤 최대의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려하고 두려워하며 분노하는 것은 메르스보다 훨씬 더 가공할 위력과 전파력을 지닌 감염병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더라도 과연 국가가, 박근혜 정부가 이를 감당해낼 능력과 자질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는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고 몸서리가 처질 일이다. 

전쟁 상태 무시한 메르스 확산 사태 

감염병에 대한 대처는 전쟁 치르듯이 해야 한다. 감염병 관리의 기본이요, 철칙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감염병 관리의 이 기본이 무너졌다. 너무나 안이한 대처를 했다. 적(메르스)의 정체, 즉 원인과 전파 경로, 증상과 잠복기, 유전자 염기 서열 등이 이미 드러나 있음에도 적을 제압하지 못했다.

적을 효과적으로 깨부술 무기와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후진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초동 제압에 실패했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지난해 4월 그 끔직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방패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감염병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이다. 이번 메르스 확산은 우리 사회가 감염병 관리 후진국임을 중국과 홍콩뿐 아니라 전 세계에 민낯으로 실황 중계했다.

그동안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에이즈 관리, 사스 관리, 홍역 관리 등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로 하루아침에 그런 노력과 지위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인권 후진국, 복지 후진국, 언론 자유 후진국, 산재 예방 후진국, 자살 예방 후진국에 이어 감염병 관리 후진국이란 혹까지 붙이게 된 것이다. 

감염병, 특히 메르스와 같이 치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감염병은 일반 시민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하다. 메르스라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범인이 이곳저곳에서 활개를 치고 심지어는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까지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을 보고 불안에 떨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연합뉴스

메르스 '괴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트위터 등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떠도는 것은 위험 인지 심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의 감염병 부실 대응이 낳은 부산물이다. 이런 부작용은 정부가 앞으로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려질 수도 있다.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수산물 우려 사태 때처럼 정부가 괴담 운운하며 유포자 처벌을 들먹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그런 식의 대응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 긴급 조치나 담화문을 통해 국민을 겁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구시대적인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개미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감염병 관리는 결국 사람(환자 또는 보균자) 관리이기 때문이다. 개미 운운하는 것은 호들갑을 떤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아직 메르스 사태를 복기할 시점은 아니지만 중간 복기를 해보자면 어처구니없는 패착을 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초 환자를 일찍 발견, 격리 할 수 있었는데도 환자 미발생국인 바레인에서 입국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시했다는 점, 최초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엉터리로 이루어진 점, 이런 유형의 감염병을 퍼트릴 수 있는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인데도(사스 때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들 관리를 소홀히 한 점, 체온이 38도가 넘어야 감염 의심자로 분류해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는 탈레반식 지침 해석,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권 침해가 불가피하며 이를 충분히 대상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소통 노력이 너무나 부족한 점 등등이 당장 눈에 띄는 패착점들이다.

메르스 사태 후 '직무유기' '국격 손상' 책임 묻자! 

문 장관은 최초 환자 병실에 국한해 감염 확산 관리를 하고 접촉자 격리를 소홀히 하는 등 메르스에 대한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 등을 시인한 바 있다. 이는 물론 장관의 시인이나 유감 표명으로 덮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메르스 확산이 진정되는대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면 굳이 책임 운운할 것도 없지만, 이번 사태는 기본 중의 기본을 게을리 한 탓에 벌어졌기 때문에 책임 추궁은 당연한 일이다. 감염병에 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도 능히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었다. 사실상 방역 당국의 직무유기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고 지적해도 달리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메르스 확산은 국제적 망신뿐만 아니라 홍콩과 중국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주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외쳐댔던 대한민국 국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국격을 입버릇처럼 올렸던 대통령의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격리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생업에 종사할 수도 없게 된 것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메르스 때문에 문을 닫은 병원의 물질적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메르스 유행을 성공적으로 저지한다 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첩첩산중이다.

질병 관리, 특히 감염병 관리를 잘 하기 위해 우리는 캠페인을 벌인다. 손을 잘 씻자고 하거나 기침을 할 때는 옷소매나 손수건으로 가리고 하자거나, 심한 기침을 하는 사람은 외출이나 출근을 삼가고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자거나, 병의원은 감염병 환자로 의심이 드는 사람을 반드시 신고하고 격리치료하자는 등이 그런 캠페인의 메시지이다. 

캠페인(campaign)은 캄파니아(campania)란 라틴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평평한 지역을 뜻한다. 고대와 중세 때 유럽에서는 평평한 지역에서 전투를 치러왔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이 때문에 감염병 예방 캠페인에는 에이즈와의 전쟁 등 전투적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오랜 옛날부터 감염병은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 적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국, 소나무 초토화시킨 것처럼 방역해야 

몇 년 전 '소나무 에이즈'란 별명을 얻은 소나무재선충병이 일본과 한국, 중국, 대만 등에서 창궐한 적이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산림 관계자들에게는 공포의 질병이다. 아직 그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창궐 당시 중국은 명산이자 세계적 관광지인 황산의 비경을 빛내주는 소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경 4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소나무를 베어버렸다. 이 나무 병을 일으키는 해충(선충)을 옮기는 흰수염하늘소가 날아서 병을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의 과감한 초토화 작전이다. 이 작전 덕분인지 황산 소나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러한데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보다 더한 작전을 감행해도 나무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땠는가? 너무나 안이했다. 환자가 거의 확실한 상황인데도 밀접 접촉자의 중국 출국을 막지 못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지침이 없는 듯이 보인다. 또 그런 상황에 대비한 방역 실무자 교육 등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서둘러 완전 복기를 해야 한다. 메르스 관리 실패를 통절히 반성하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감염병 관리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가 중동에서 확산,전파되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이 감염병이 확산·전파되는 것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생활문화나 의식행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특성이나 질병의 증상 등도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38도를 고집하는 탈레반식 사고가 아니라 한국에 온 메르스는 케르스(KERS), 한국호흡기증후군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감염병 관리 선진국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